[요약] 대중소기업 간의 동반성장에 주력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와 동반성장위원회의 최근 행보는 개발연대로의 회귀이며, '설계주의'의 '치명적 자만'의 발로이다. 동반성장지수 개발 및 순위 발표는 필연적으로 '지식의 문제’에 부딪쳐 작위적이고 무리한 평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익공유제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며, 그 속의 내용을 보면 황당하기까지 하다. 상생협력을 통한 동반성장은 기업들의 자율적인 선택과 경쟁에 맡겨야 한다. 정부가 시장을 대체하겠다는 '치명적 자만'을 부려서는 동반성장은커녕 '동반지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MB의 동반성장 접근, '개발연대’로의 회귀
이명박 정부는 최근 대․중소협력업체 간의 '동반성장’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사회적 양극화의 진원지가 기업 양극화이기 때문에, 기업 양극화를 풀면 사회적 양극화가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양극화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동반성장’은 당위적 명분을 갖는다. 글로벌 경제에서의 경쟁력의 요체는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의 '클러스터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대기업만으로는 그리고 협력업체만으로는 어떤 경쟁력도 가질 수 없다. 동반성장이 시장생태계의 기업문화로 정착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해서 정부의 역할은 명료하다. 동반성장이 서로에게 이득이 되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상생협력을 통한 동반성장은 서로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구체적 방법은 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하고, 정부는 울타리만 쳐주면 된다. '울타리’는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중소기업에 부당한 부담을 떠넘기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정거래정책이 사실은 '동반성장의 기반’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은 사전적 의도와는 달리 철저히 실패할 것으로 예견된다. 화근(禍根)은 동반성장에 대한 정부의 몰이해와 무리한 정책접근에 있다. 정부의 구상은 '동반성장위원회’라는 민간기구를 신설해 '동반성장지수’를 개발하고, 56개 대기업에 대해 동반성장 이행실적을 평가해 순위를 매기고 이를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우수 대기업에게는 유인제공 차원에서 조세감면과 더불어 공정거래조사를 일정부분 면제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업종과 업태(業態)가 천차만별인 기업을 획일적 잣대로 평가하고 순위를 공개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명박 정부는 정책의 시계(視界)를 '개발연대’로 되돌리고 있다.
동반성장지수는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동반성장 '이행노력’ 평가와 중소기업의 대기업의 노력에 대한 '체감도’ 평가로 이루어진다. '이행노력’에 대한 평가는 정량화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정성변수일 수밖에 없는 '체감도’를 정량화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채점표는 절대적으로 완벽하게 만들 수 없다. 시장의 평가가 아닌 인간의 이성에 의한 작위적 평가는 필히 '지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또한 56개 대기업에 걸쳐 평가하겠다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을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해 비교하는” '범주의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 평가결과를 공개하겠다는 것은 대기업을 한 줄로 세우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뒤에 서게 되는 기업은 동반성장에 별반 관심을 갖지 않은 '악덕기업’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반(反)기업정서를 다시 불러들일 것인가? '줄 세우기’는 동반성장위원회의 위상을 작위적으로 끌어올리려는 꼼수일 수도 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형식적으로는 '민간위원회’이다. 하지만 무늬만 민간위원회일 뿐이다. 진정 민간위원회가 되려면 위원장도 전(前)국무총리가 아니라 재계 또는 재계에서 추천한 인사가 맡아야 한다. 56개 대기업을 평가한 뒤 우수 기업에 대해 조세감면과 공정거래조사를 면제해주겠다는 것은 '민간위원회의 영역’을 넘는 것이다. 동반성장위는 정부에 건의만 할 뿐 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정부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수행이라는 본질은 그대로이다.
동반성장 전략, 기업 자율에 맡겨야
<그림-1>
<그림-1>은 30대 그룹의 2011년 협력사 지원규모를 나타낸 것이다. 30대 그룹은 올해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위해 1조808억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지난해 8652억원보다 24.9% 늘어난 액수이다.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에 호응하기 위해서라는 게 기업들의 설명이다. 분야별 비중에서는 판매·구매 지원이 32.9%로 가장 크다. 그 뒤로 R&D 지원, 생산성 향상 지원, 보증·대출 지원 등이 이어지고 있다. 지원내역을 보면, 협력업체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항목으로 보여진다.
상생협력을 통한 동반성장은 이해당사자의 자율에 맡겨져야 한다. 상생협력을 통한 기업의 성공은 그 자체가 성공사례로 시장에 확산될 것이다. 각양각색의 협력방안이 경합을 벌려야 승자가 시장에 안착된다. 국가개입은 '동반성장의 다양한 경로’를 차단할 수도 있다. 각 그룹별로 동반성장 성공사례를 공개하도록 해 확산을 돕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이익공유제는 사회주의적 발상
정운찬 위원장의 대기업과 협력사의 '이익 공유제’(profit sharing)는 황당하기까지 하다. 우선 주주의 동의는 차치하더라도 초과이윤을 어떻게 정하고 얼마를 '토해내라’는 건지 출발부터 불분명하다. 대기업의 이익 중 협력업체의 기여분을 산정하고, 개별업체들의 기여분을 다시 계산해 이익을 배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익공유제가 강제되면, 상당수 대기업은 부품업체를 수직계열화하거나 해외조달을 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협력업체가 설 땅은 좁아지게 된다.
'이익공유제’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퍼져 나가자, 정운찬 위원장과 청와대는 확대해석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진화에 나서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정위원장은 예상을 깨고 자신의 입장과 주장을 강화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일을 악화시킨 측면이 있다.
쟁점은 크게 3가지이다. 첫째는 초과이익을 협력업체와 나누자고 하는 데, 초과이익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정위원장은 예상이익에서 실제이익을 빼면 초과이익을 계산할 수 있다고 했다. 논리적으로 허술하기 짝이 없다. '초과이익’ 이라기보다 '예상외 이익’이 더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만약 정위원장식으로 초과이익을 협력사에 배분하라고 하면, 실제 배분액은 영(零)이 될 것이다. 예상이익을 높여 초과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이익이 예상이익을 넘을 것 같으면, 기업들은 더 이상 애써 이익을 올리지 않을 것이다. 초과이익은 그 기업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출액도 아니고 '이익의 예상치’를 발표하라는 것은 '무지’를 반영한 것이다. 이익은 '사후적 잔여’이다. 이익의 목표치를 사전에 설정하기에는 경제의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둘째는 협력업체에 대한 이익배분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정운찬 위원장은 애플을 예로 들면서, 애플은 아이폰 응용프로그램(App) 개발자에게 이익의 70%를 돌려준다면서, 마음만 먹으면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인식의 오류’이다. 사실 '애플’사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온라인 장터를 개설해 주고, 도리어 자릿세 명목으로 '응용프로그램 개발자’에게 이익의 30%를 요구한 것이다.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애플이 App 개발업자에게 이익을 나누어 준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개발자의 이익을 '갈취’한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이 같은 갈취에 분노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이익을 반분(半分)하는 것만이 동반성장이 아니다. 이해 당사자가 이윤을 나누는 방식에 동의하고 계약을 통해 서로의 경제적 처지를 개선했다면, 이것이 바로 동반성장인 것이다. 온라인 장터가 여기 저기 개설된다면 애플의 자릿세는 30%에서 내려 갈 것이다.
셋째는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동반성장기금으로 활용하는 것이 최선인가 하는 점이다. 기금은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을 부를 뿐이다. 기금을 관리하는 주체의 재량권만 높일 뿐이다. 동반성장은 말 그대로 대기업과 중소협력업체간의 상생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설령 초과이익을 나누더라도 협력업체에 바로 도움이 되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협력업체 간에 '기금’이라는 제3자가 낄 이유는 없다.
설계주의의 치명적 자만을 경계해야
동반성장 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철학빈곤과 정책능력 부재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웹 2.0 시대의 경제시계를 개발연대로 돌리고 있다. 동반성장이란 용어 자체가 그렇고 이윤을 공유하자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동반성장을 '2인 3각(脚)’경기로 착각하고 있다. 어떤 조(組)가 다리를 풀어지지 않게 잘 묶었나를 심사하겠단다. '2인 3각’ 경기식의 동반성장은 '동반지체’를 부를 뿐이다. 동반성장 정책은 '공정거래정책’의 기반 위에서 기업의 자율을 존중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동반성장은 '현장지식에 밝은’ 이해당사자의 몫이다. 동반성장위원회가 무슨 수로 동반성장의 내용까지 제시할 것인가? 그리고 동반성장은 결과이지 목적일 수는 없다. 동반성장은 시장 생태계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익공유제’는 '이익사유화’를 대척점에 놓고 있다. 이익을 '공동의 노력’으로 얻은 '같이 나누어야 할 공동재원’으로 왜곡시키고 있다. 이익은 혁신과 시장에서의 위험부담 행위에 대한 정당한 '대가’인 것이다. 정당한 대가를 갖지 못하게 하면 시장은 이내 질식된다. 기업은 이익이 아닌 성과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소비자에게 물건 값을 할인해 주고 협력업체와 공동으로 기술개발을 하는 것은 성과를 나누는 한 예이다. 성과를 나누는 것도 기업의 자율적인 판단에 기초해야 한다.
'동반성장지수’를 개발해 기업의 동반성장 노력을 정량화해 그 결과를 공표하고 이익을 협력사와 나누어야 한다는 것은, 시장을 '인간의 이성’으로 대체하겠다는 '설계주의’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치명적 자만의 끝은 사회주의의 길목이다. 친시장,국민성공,일류기업,선진국 진입을 주장하던 이명박 정부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조동근 / 명지대학교 교수, 경제학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