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수 | 2011-03-11 | 조회수 : 20

앞으로 더 세질 디도스(DDoS) 테러에 대비하자
- 김정은의 권력 세습 위해 또 다른 도발 감행 가능성 높아 -

3월 4일부터 세 차례에 걸친 디도스 사이버 테러의 연속으로 보이는 사건이 최근 발생하였다. 방통위는 “지난 8일 미상의 해커가 새로운 악성코드로 공격하는 사례가 발생했다”고 밝힌 것이다. 다행히 3.4 테러는 정부와 보안업체의 유기적인 대응체계로 큰 손실을 보지 않고 마무리 되었지만 앞으로가 더욱 걱정되는 부분이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번 3.4 테러가 지난 2009년 7.7 디도스 테러 때보다 7배나 강한 강도였다”고 말해 우려를 주고 있다. 또한 공격의 주체 역시 북한으로 예상되고 있어 앞으로 북한이 한국에 대해 전자전의 양상으로 도발할 가능성을 예측케 한다 .

실제로 경찰은 7.7 디도스 테러의 당사자가 북한이었음을 밝힌 바 있으며, 방송통신위원회는 3월 4일 발생한 GPS(위성위치정보시스템)의 장애가 개성에 이어 금강산 인근에서 보낸 신호에 의해 추정된다고 발표하였다. 과연 북한은 전자전의 양상으로 대남 도발을 계속 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이다. 7.7 테러 때부터 지금까지의 사건을 종합할 때 그런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우선 7.7 테러 당시 공격의 배후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있다는 것이다. 독재국가인 북한에서 한국을 공격할 명령권을 가진 사람은 김정일과 그의 후계자인 김정은 밖에 없다. 열린북한방송에 의하면 북한은 2007년부터 정보전자전략전의 일환으로 무력부 총참모부 산하에 사이버 전문부대를 창설하여 김정은의 직속으로 두었다고 한다. 사이버 테러가 적은 비용으로도 큰 효과를 줄 수 있다고 판단해 적극 육성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둘째, 7.7 테러 당시 약 30만 대 이상의 컴퓨터를 좀비 PC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3.4 테러에서 약 7만 7천대의 좀비 PC가 동원되었다는 방통위의 자료로 판단할 때 아직도 약 20만대 이상의 좀비 PC가 남아있다는 것을 뜻한다.

셋째, 7.7 테러 당시 북한이 심어놓은 악성코드가 40개 정도였는데, 한국에서 찾아낸 것은 약 12개에 불과했다. 이번 3.4 테러와 그 이은 공격은 아직까지 찾지 못한 나머지의 악성 코드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넷째, 북한 해커들은 자신들이 준비시킨 좀비 PC들에 감염시켰던 악성 바이러스들을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를 하였다. 안철수 연구소의 발표처럼 이번 3.4 테러의 가장 큰 특징은 더욱 업그레이드된 공격이었다. 이번에는 날짜를 이전으로 바꾸거나 감염 시점을 기록한 'noise03.dat’ 파일을 삭제해도 하드 디스크와 파일이 손상되었던 것이다. 또한 호스트 파일을 변조해 백신 업데이트를 방해한 것도 큰 차이였다.   

김정은이 작년 9.28 북한 노동당 당대표자회에서 대장으로 전격 승진한 배경이 군 고위급들에게 사이버 테러와 전자전 능력에 기여한 공이 고려되었다는 보도처럼 이러한 대남 도발은 김정은의 후계체제 구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비용대비 효과도 아주 크다는 것을 김정은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는 김정은으로 하여금 사이버 테러를 이용한 대남 도발을 시도하게 하는 인센티브인 것이다. 7.7 때와 비교해 3.4 테러는 규모면에서 작았다는 것은 일종의 전초전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의 대응능력을 파악해 본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더 센 공격이 우리를 위협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내외 적으로 만반의 준비가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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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대중소기업 간의 동반성장에 주력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와 동반성장위원회의 최근 행보는 개발연대로의 회귀이며, '설계주의'의 '치명적 자만'의 발로이다. 동반성장지수 개발 및 순위 발표는 필연적으로 '지식의 문제’에 부딪쳐 작위적이고 무리한 평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익공유제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며, 그 속의 내용을 보면 황당하기까지 하다. 상생협력을 통한 동반성장은 기업들의 자율적인 선택과 경쟁에 맡겨야 한다. 정부가 시장을 대체하겠다는 '치명적 자만'을 부려서는 동반성장은커녕 '동반지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MB의 동반성장 접근, '개발연대’로의 회귀

이명박 정부는 최근 대․중소협력업체 간의 '동반성장’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사회적 양극화의 진원지가 기업 양극화이기 때문에, 기업 양극화를 풀면 사회적 양극화가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굳이 양극화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동반성장’은 당위적 명분을 갖는다. 글로벌 경제에서의 경쟁력의 요체는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의 '클러스터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대기업만으로는 그리고 협력업체만으로는 어떤 경쟁력도 가질 수 없다. 동반성장이 시장생태계의 기업문화로 정착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해서 정부의 역할은 명료하다. 동반성장이 서로에게 이득이 되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상생협력을 통한 동반성장은 서로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구체적 방법은 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하고, 정부는 울타리만 쳐주면 된다. '울타리’는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중소기업에 부당한 부담을 떠넘기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정거래정책이 사실은 '동반성장의 기반’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은 사전적 의도와는 달리 철저히 실패할 것으로 예견된다. 화근(禍根)은 동반성장에 대한 정부의 몰이해와 무리한 정책접근에 있다. 정부의 구상은 '동반성장위원회’라는 민간기구를 신설해 '동반성장지수’를 개발하고, 56개 대기업에 대해 동반성장 이행실적을 평가해 순위를 매기고 이를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우수 대기업에게는 유인제공 차원에서 조세감면과 더불어 공정거래조사를 일정부분 면제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업종과 업태(業態)가 천차만별인 기업을 획일적 잣대로 평가하고 순위를 공개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명박 정부는 정책의 시계(視界)를 '개발연대’로 되돌리고 있다.

동반성장지수는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동반성장 '이행노력’ 평가와 중소기업의 대기업의 노력에 대한 '체감도’ 평가로 이루어진다. '이행노력’에 대한 평가는 정량화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정성변수일 수밖에 없는 '체감도’를 정량화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채점표는 절대적으로 완벽하게 만들 수 없다. 시장의 평가가 아닌 인간의 이성에 의한 작위적 평가는 필히 '지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또한 56개 대기업에 걸쳐 평가하겠다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을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해 비교하는” '범주의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 평가결과를 공개하겠다는 것은 대기업을 한 줄로 세우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뒤에 서게 되는 기업은 동반성장에 별반 관심을 갖지 않은 '악덕기업’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반(反)기업정서를 다시 불러들일 것인가? '줄 세우기’는 동반성장위원회의 위상을 작위적으로 끌어올리려는 꼼수일 수도 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형식적으로는 '민간위원회’이다. 하지만 무늬만 민간위원회일 뿐이다. 진정 민간위원회가 되려면 위원장도 전(前)국무총리가 아니라 재계 또는 재계에서 추천한 인사가 맡아야 한다. 56개 대기업을 평가한 뒤 우수 기업에 대해 조세감면과 공정거래조사를 면제해주겠다는 것은 '민간위원회의 영역’을 넘는 것이다. 동반성장위는 정부에 건의만 할 뿐 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정부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수행이라는 본질은 그대로이다.

동반성장 전략, 기업 자율에 맡겨야

<그림-1>


<그림-1>은 30대 그룹의 2011년 협력사 지원규모를 나타낸 것이다. 30대 그룹은 올해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위해 1조808억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지난해 8652억원보다 24.9% 늘어난 액수이다.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에 호응하기 위해서라는 게 기업들의 설명이다. 분야별 비중에서는 판매·구매 지원이 32.9%로 가장 크다. 그 뒤로 R&D 지원, 생산성 향상 지원, 보증·대출 지원 등이 이어지고 있다. 지원내역을 보면, 협력업체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항목으로 보여진다.

상생협력을 통한 동반성장은 이해당사자의 자율에 맡겨져야 한다. 상생협력을 통한 기업의 성공은 그 자체가 성공사례로 시장에 확산될 것이다. 각양각색의 협력방안이 경합을 벌려야 승자가 시장에 안착된다. 국가개입은 '동반성장의 다양한 경로’를 차단할 수도 있다. 각 그룹별로 동반성장 성공사례를 공개하도록 해 확산을 돕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이익공유제는 사회주의적 발상

정운찬 위원장의 대기업과 협력사의 '이익 공유제’(profit sharing)는 황당하기까지 하다. 우선 주주의 동의는 차치하더라도 초과이윤을 어떻게 정하고 얼마를 '토해내라’는 건지 출발부터 불분명하다. 대기업의 이익 중 협력업체의 기여분을 산정하고, 개별업체들의 기여분을 다시 계산해 이익을 배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익공유제가 강제되면, 상당수 대기업은 부품업체를 수직계열화하거나 해외조달을 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협력업체가 설 땅은 좁아지게 된다.

'이익공유제’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퍼져 나가자, 정운찬 위원장과 청와대는 확대해석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진화에 나서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정위원장은 예상을 깨고 자신의 입장과 주장을 강화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일을 악화시킨 측면이 있다.

쟁점은 크게 3가지이다. 첫째는 초과이익을 협력업체와 나누자고 하는 데, 초과이익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정위원장은 예상이익에서 실제이익을 빼면 초과이익을 계산할 수 있다고 했다. 논리적으로 허술하기 짝이 없다. '초과이익’ 이라기보다 '예상외 이익’이 더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만약 정위원장식으로 초과이익을 협력사에 배분하라고 하면, 실제 배분액은 영(零)이 될 것이다. 예상이익을 높여 초과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이익이 예상이익을 넘을 것 같으면, 기업들은 더 이상 애써 이익을 올리지 않을 것이다. 초과이익은 그 기업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출액도 아니고 '이익의 예상치’를 발표하라는 것은 '무지’를 반영한 것이다. 이익은 '사후적 잔여’이다. 이익의 목표치를 사전에 설정하기에는 경제의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둘째는 협력업체에 대한 이익배분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정운찬 위원장은 애플을 예로 들면서, 애플은 아이폰 응용프로그램(App) 개발자에게 이익의 70%를 돌려준다면서, 마음만 먹으면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인식의 오류’이다. 사실 '애플’사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온라인 장터를 개설해 주고, 도리어 자릿세 명목으로 '응용프로그램 개발자’에게 이익의 30%를 요구한 것이다.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애플이 App 개발업자에게 이익을 나누어 준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개발자의 이익을 '갈취’한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이 같은 갈취에 분노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이익을 반분(半分)하는 것만이 동반성장이 아니다. 이해 당사자가 이윤을 나누는 방식에 동의하고 계약을 통해 서로의 경제적 처지를 개선했다면, 이것이 바로 동반성장인 것이다. 온라인 장터가 여기 저기 개설된다면 애플의 자릿세는 30%에서 내려 갈 것이다.

셋째는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동반성장기금으로 활용하는 것이 최선인가 하는 점이다. 기금은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을 부를 뿐이다. 기금을 관리하는 주체의 재량권만 높일 뿐이다. 동반성장은 말 그대로 대기업과 중소협력업체간의 상생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설령 초과이익을 나누더라도 협력업체에 바로 도움이 되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협력업체 간에 '기금’이라는 제3자가 낄 이유는 없다.

설계주의의 치명적 자만을 경계해야

동반성장 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철학빈곤과 정책능력 부재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웹 2.0 시대의 경제시계를 개발연대로 돌리고 있다. 동반성장이란 용어 자체가 그렇고 이윤을 공유하자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동반성장을 '2인 3각(脚)’경기로 착각하고 있다. 어떤 조(組)가 다리를 풀어지지 않게 잘 묶었나를 심사하겠단다. '2인 3각’ 경기식의 동반성장은 '동반지체’를 부를 뿐이다. 동반성장 정책은 '공정거래정책’의 기반 위에서 기업의 자율을 존중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동반성장은 '현장지식에 밝은’ 이해당사자의 몫이다. 동반성장위원회가 무슨 수로 동반성장의 내용까지 제시할 것인가? 그리고 동반성장은 결과이지 목적일 수는 없다. 동반성장은 시장 생태계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익공유제’는 '이익사유화’를 대척점에 놓고 있다. 이익을 '공동의 노력’으로 얻은 '같이 나누어야 할 공동재원’으로 왜곡시키고 있다. 이익은 혁신과 시장에서의 위험부담 행위에 대한 정당한 '대가’인 것이다. 정당한 대가를 갖지 못하게 하면 시장은 이내 질식된다. 기업은 이익이 아닌 성과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소비자에게 물건 값을 할인해 주고 협력업체와 공동으로 기술개발을 하는 것은 성과를 나누는 한 예이다. 성과를 나누는 것도 기업의 자율적인 판단에 기초해야 한다.

'동반성장지수’를 개발해 기업의 동반성장 노력을 정량화해 그 결과를 공표하고 이익을 협력사와 나누어야 한다는 것은, 시장을 '인간의 이성’으로 대체하겠다는 '설계주의’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치명적 자만의 끝은 사회주의의 길목이다. 친시장,국민성공,일류기업,선진국 진입을 주장하던 이명박 정부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조동근 / 명지대학교 교수, 경제학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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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 2011-02-28 | 조회수 : 458
[요약] 전세난에 대한 최근의 대책들은 미봉책일뿐만 아니라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원인이 될 뿐이다. DTI 규제 등으로 주택구입을 어렵게 만들고 이는 결국 주택의 공급부족으로 이어졌다. 신규 주택공급은 부족한 상황에서 거주에 대한 수요는 변함없거나 오히려 증가하고 있으므로 임대료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세대출확대 정책은 주택공급을 늘리지는 못하면서 전세가격만 상승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전월세 상한제는 셋집공급만 더욱 위축시켜 전세난을 가중시킬 것이다. 지금의 전세난은 각종 규제로 인한 공급부족에서 야기된 것으로 따라서 단기간에 효과를 나타낼 비책은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보유와 매매에 대한 규제를 풀어 시장을 정상화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전세 대책이라고 나오는 것들을 보면 속이 답답해진다. 문제의 거죽만 덮으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전세자금 대출 확대는 공급은 늘리지 못한 채, 전세에 대한 수요를 더욱 늘려서 전세 가격을 더 높여놓을 것이다. 전월세 상한제로 가격을 억지로 낮출 수는 있겠지만, 셋집의 공급을 더욱 줄여 새로 집을 구할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것이다.

주택에 대한 거주수요는 계속 증가

왜 그럴까. 이번 전세난의 배후에는 부동산 매매시장이 완전히 죽었다는 사실이 놓여있다. 주택을 사려는 사람이 없으니 집을 지어도 팔리지 않는 지경이 되었다. 빈 채로 버려진 미분양 아파트들이 그 증거다. 집은 집인데 소유하지 않으려 하니 집 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 나오는 아파트들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집을 구입하지 않는다고 해서 주택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더 넓은 집에, 더 쾌적하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는 지금도 끊임없이 커지고 있다. 24평에 살던 사람은 32평에 살고 싶어지고, 부모님 눈치 보며 살던 자식은 돈 좀 벌었다고 혼자 방 얻어 살겠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주택에 대한 '거주’수요는 계속 늘고 있는 것이다.

'거주’수요라는 단어에 주목해주시기 바란다. 주택 보유에 대한 각종 중과세와 사회적 편견, 그리고 DTI, LTV 규제 등의 각종 금융 규제로 인해 주택에 대한 보유수요 및 구매 수요는 줄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주수단으로서의 주택에 대한 수요, 즉 거주수요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주택 구매에 대한 규제가 주택 공급 부족 초래

혹자들은 주택보유의 인기가 떨어지는 것을 대세의 변화로 보기도 한다. 필자가 보기엔 전혀 아니다. 특히 지금처럼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인플레 시대에는 주택처럼 가치보전하기 좋은 대상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지금처럼 주택 구입을 꺼리는 이유는 LTV, DTI 규제 같은 것으로 주택구입을 위한 자금줄을 끊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것들로 인해 거주수요가 보유수요로 연결되지 못하게 되었고, 그것은 공급의 부족으로 이어졌다.

거주수요는 중단 없이 늘고 있는데, 매매수요의 위축으로 들어가 살 수 있는 주택들의 공급량은 제대로 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거주수요와 매매․보유 수요의 불일치가 셋집의 공급부족을 초래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민간임대주택이란 1가구 다주택자가 자기가 직접 살지 않는 집을 세놓고 있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1가구 다주택을 엄격히 규제한다는 것은 민간임대주택의 공급을 옥죈다는 말이기도 하다. 결국 주택의 보유와 구입에 대한 규제가 신규 주택 공급의 부족을 불러왔고, 그것은 다시 전세 등 임대료의 상승을 불러왔다는 말이다.

전세대출 확대정책과 전월세 상한제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

이렇게 보면 지금 나와 있는 전세대책들의 문제도 분명히 드러난다. 전세대출 확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이 정책이 전세에 대한 수요를 늘린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전세든 월세든 이 정책이 주택의 공급을 늘리지는 못한다. 그 결과 가격만 올리는 결과가 초래된다. 요행히 대출을 받은 사람은 조금 처지가 나아지겠지만 그렇지 못한 보통의 세입자들은 더욱 큰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정말 실효성이 있으려면 미분양 주택에 사람이 들어가거나 새로운 주택이 공급될 수 있도록 매매자금을 대는 것이 더 낫다.

한편, 전월세 상한제는 부족한 셋집의 공급량을 더욱 줄일 것이다. 또 세입자 측면에서도 한번 세 들어 사는 사람은 웬만해선 그 집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셋집은 줄어들고 기존 세입자는 나오지 않으니 새로 셋집을 구할 사람은 막막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 집이 없어서 결혼을 미루는 사람도 나올 것이고 여관에 살아야 하는 지경이 될 수도 있다.

주택시장 정상화만이 유일한 대책

지금의 전세난은 주택 보유를 지속적으로 억제해서 나타난 결과다. 공급이 부족해서 나타난 문제인 만큼 당장의 비책도 없다. 주택의 보유와 매매에 대한 규제를 없애면서 서서히 문제가 해결되도록 기다리는 것만이 유일한 대책이다.

김정호 /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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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정치권에서의 개헌논의는 항상 권력구조 개편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헌법규정이다. 우리 헌법에는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장치가 아주 미흡한 실정이다. 현재 개헌 관련 논의는 정부의 자의적인 개입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정부의 개입을 강화하는 것이 아닌 자유와 번영을 약속하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

 

정치권, 권력구조 개편에만 관심

정치권에서 개헌논의가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18대 국회 전반기에는 국회의장 주도로 `국회헌법연구자문위원회`가 구성되고, 여야 의원 180여 명이 참여한 `미래한국헌법연구회`가 개헌논의의 불씨를 지폈다. 하지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개헌논의가 시큰둥하다가 여당 일각에서 이를 열정적으로 재개하고 있다.

정치권의 개헌논의에서 늘 중심에 있는 것은 권력구조 개편을 추구하는 개헌론이다. 논의의 출발은 장기집권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한 대통령 5년 단임제이다. 제왕적 권력집중, 막강한 권좌를 차지하기 위한 정치적 경쟁, 퇴임 후의 직간접 보복 등의 폐해를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이 부작용을 막을 권력구조의 대안으로 분권형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등이 정치권에서 제시되고 있다.

대통령 단임제에서는 장기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없다는 이유로 4년 중임제를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권력 집중 등 그 폐단이 장기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때문에 대통령의 권력 분산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 '부통령제’를 둘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중요한 것은 국가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규정

권력구조를 개편하여 이상적인 '민주헌법’을 만들겠다는 정치권의 개헌론 그 자체는 나무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권력구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부의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규정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헌법경제학이 보여주고 있듯이, 아무리 권력구조가 이상적이라고 해도 정부권력을 제한하는 헌법규정이 없으면, 지지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경쟁은 필연적으로 정부의 개입과 규제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정부지출이나 적자예산의 헌법적 제한이 없으면 정치적 논리에 따라 정부부채의 증가도 필연적이다. “적자 속의 민주주의”라는 뷰캐넌(J. M. Buchanan)의 유명한 말은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이 없는 민주정치의 치명적 결함을 가장 적절히 표현한 것이다.

현행 한국헌법의 치명적인 결함은 경제에 대한 정부의 자의적인 규제와 간섭을 효과적으로 제한하는 헌법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헌법 제119조 2항이 보여주는 것처럼 헌법은 정부에게 간섭권한을 거의 무제한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같은 헌정질서로 중앙집권의 강도가 점차 심화되어 지방자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정부지출과 부채도 급증하고 있다. 규제는 우리 경제를 겹겹이 포위하고 있다. 헌법을 통해서 국가권력을 효과적으로 제한하지 못하면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는 입법과 경제정책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정치권의 개헌론이 이 같은 사실을 간과하고 권력구조에만 치중하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개헌론이 주장하는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병폐도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규칙이 없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4년 중임 대통령제가 장기적인 '원칙의 정치’를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헌법을 통해서 보장할 경우에만이 가능하다.

우리 헌법, 민주헌법이지만 자유헌법은 아니다

우리헌법은 '민주헌법’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떤 정책도 다수의 지지가 없으면 그 실행이 헌법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자유헌법’은 아니다. 국가권력의 자의적인 행사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헌법적 장치가 아주 미흡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세계 상위권이지만 경제자유 지수는 중위권이라는 '프레이저 연구소’나 미국의 '헤리티지재단’의 보고서는 우리의 헌정질서를 또렷하게 반영하고 있다. 우리가 일인당 소득 3만 달러, 4만 달러의 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으려면 헌법을 자유헌법으로 고쳐야 한다.

독일 기본법 개정의 의미

헌법개정과 관련하여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독일이다. 두 가지 오랜 질병에 시달리는 '병든 연방국가(der kranke Bundesstaat)’라고 불려진다. 질병 하나는 주(州)정부의 자율성과 독립성의 상실에서 비롯된 '경쟁적인’ 연방주의의 실종이다. 다른 하나는 고질적인 적자예산과 부채의 증가이다. 이 질병의 뿌리는 중앙집권화와 적자예산의 증가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헌법장치의 부재이다.

그러나 독일 정치권은 여러 해의 길고 긴 진지한 논쟁을 거처 2007년에는 주정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독일 기본법을 개정했다. 이어서 2009년에는 늘어나는 중앙정부의 부채증가를 막기 위하여 '구조적’ 예산적자를 GDP 대비 0.35%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조항을 기본법에 새로이 도입했다. 헌법을 통해서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려는 이같은 노력은 경제사적으로나 헌법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자유와 번영을 약속하는 개헌이 되어야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나라 정치권의 개헌론은 말이 좋아 권력 분산이지 사실상 '권력 나누어먹기’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여당의 유력 대선후보 측이나 야당, 그리고 특히 시민들이 개헌론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 같은 인상때문인 듯이 보인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새로운 인권, 기후변화, 정보화 사회 등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는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이것도 정부의 개입주의를 억제하기 위한 개헌이라기보다는 경제사회의 '자생력’을 의심한 나머지 그 개입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개헌이라는 것을 우리가 유의할 필요가 있다.

권력구조 개편을 밀어붙이기 식으로 접근하는 대신에 '정부는 문제이지 해법이 아니다’라는 하이에크(F. A. Hayek)의 명언을 되새기면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자유와 번영을 약속하는 개헌에 진지하고 겸허한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민경국 / 강원대학교 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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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이다. 배출권거래제는 시장메커니즘을 이용한 효율적인 감축수단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재 배출권거래제를 위한 인프라 구축도 마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도입을 서두르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또한 다른 경쟁국들보다 앞서 도입을 한다면 국제경쟁력에도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배출권거래제 도입에 따른 국민경제 및 각 산업별 파급효과 분석, 기후변화 국제협약의 가시적 진전 등 전제조건이 충분히 성숙된 후 도입하는 신중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론적으로 시장 메커니즘을 이용한 배출권거래제가 직접규제 형식의 목표관리제보다 효율적인 감축수단으로 인정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는 배출상한을 설정한 후 배출원 간 거래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목표를 최소의 비용으로 달성하는 제도이다. 배출권거래제 하에서는 감축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배출원이 주어진 목표보다 더 많이 감축을 한 후 감축비용이 상대적으로 비싼 배출원에게 판매함으로써 거래에 참여한 배출원 전체의 감축비용을 최소화하게 된다. 따라서 배출권을 더 판매하거나 덜 구매하기 위해서 기업은 비용 최소화 원리에 따라 신기술 도입, 에너지원 간 대체, 생산량을 결정하기 때문에 배출권거래제를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한 제도라 부른다. 반면 목표관리제는 배출원에게 주어진 감축목표를 각자 달성해야 하기 때문에 전체의 감축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배출권거래제보다 비용이 많이 들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산업계가 배출권거래제에 참여하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배출권거래제 도입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

첫째는 배출권거래제 도입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배출권거래제를 추진하던 주요국이 자국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여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철회하거나 보류하는 상황에서 의무감축국이 아닌 우리나라가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을 제외하면 미국, 일본, 호주 등의 선진국이 도입을 포기 또는 보류하고 있는 상태이고, 우리의 주요 경쟁 상대인 중국, 인도 등은 온실가스 감축 자체를 고려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둘째 이유는 배출권거래제가 효율적인 제도인지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출권거래제가 시장 친화적인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적용에서는 다양한 부작용을 유발하고 있다. 우선 배출권의 할당 과정에서 정부와 산업계의 대립이 불가피해 보인다. EU의 경우 EU위원회와 각국 정부, 각국 정부와 기업 간 소송이 빈번히 발생하고, 독일의 경우 2005~2007년 동안 1천여 건의 법률 소송이 제기된 적이 있다. 또한 예상치 못한 경기변동에 따른 배출권 가격변동성이 심화되어 시장의 안전성이 우려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시장참여자 수가 500여 개 업체로 전망되고, 이 중 50개 사업장이 배출량의 48%를 차지하고 있어 시장성립 여건이 매우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EU의 경우 배출권거래제에 참여하는 사업장의 수가 1만2천개에도 불구, 톤당 가격변동폭이 5~30유로에 달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 시행할 인프라 구축 미비

셋째 이유는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할 인프라 구축이 미비하다는 점이다. 산정·보고·검증(MRV) 시스템 구축이 미비하고, 사후적 조정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배출권이 할당되고 거래될 경우 과도한 소송 및 이행비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기업이 기본적인 온실가스 DB조차 구축하지 못한 상황이며, 기존에 구축한 기업의 경우도 일반적 지침이 없이 자체적으로 작성한 상태이다.

넷째 이유는 기업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점이다. 유상분배의 비중이 증가할 것이므로 기업의 생산비용 상승이 불가피하여 국제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주로 철강, 석유화학 등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사업장을 대상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므로 이들 업종에 배출권거래제 도입에 따른 부담이 집중될 전망이다. 포스코(연간 7천만tCO2 배출)의 경우 100% 유상 할당되면 매년 1조~2조 원의 부담(약 2만 원/tCO2)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에너지집약적인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어, 이들 제조업의 원가 상승으로 인한 경쟁력 약화가 심각한 수준에 달할 것이다.

국제협약의 가시적 진전 등 전제조건 충족돼야

이와 같은 이유를 들어 배출권거래제 도입은 시기상조이며, 도입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조건이 먼저 충족되어야 한다고 산업계는 주장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 도입에 따른 국민경제 및 각 산업별 파급효과 분석, 이에 근거한 배출권거래제 도입관련 컨센서스 확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목표관리제를 통해 신뢰할 수 있는 MRV 체계 등 인프라 구축과 업종별·기업별 온실가스 정보 축적이 이루어진 후에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국제협약의 가시적 진전, 즉 주요 경쟁국(G20)의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또는 유사 제도 도입이 이루어진 이후 도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목표관리제와 배출권거래제를 연계하는 방안으로 배출권거래제를 위한 별도의 거래소를 설립할 필요 없이 정부가 이미 설치한 온실가스정보센터에서 관리업체의 목표 감축량 잉여분과 부족분을 거래상쇄할 수 있는 비공개시장(closed market) 형태로 운영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조경엽 /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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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새해의 화두로 작년에 이어 공정(公正)을 제시했다. 공정한 사회는 우리가 만들어 내야하는 이상적인 사회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공정(公正)’보다는 '신뢰(信賴)’가 보다 더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신뢰가 없다면 그 어느 것도 완성할 수 없다. 공정 또한 신뢰라는 밑바탕이 두텁게 깔려 있어야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절대적으로 신뢰부족의 상태이다. 정부나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신뢰, 기업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 단체와 단체 간의 신뢰는 물론 개인 간의 신뢰 또한 매우 부족한 상태이다. 조금 신랄하게 말하자면, 직업군 신뢰도 조사에서 신뢰도가 가장 낮은 직업이 정치인이다. 국민들은 정부나 정치인의 말을 '국민을 위한’ 혹은 '국가를 위한’으로 포장된 '자신을 위한’으로만 보거나 인기를 위한, 그래서 지켜지지 않을 단편적 요소로 보는 등 탈정치적 상태에 놓여있다. 또 우리나라 기업신뢰지수는 100점 만점에 54.2점으로 투명하고 믿을 수 있는 기업을 말하라하면 대답을 하기 굉장히 어려워한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단 3명만이 타인을 신뢰한다고 한다. 단체 간의 관계, 개인 간의 관계에서는 신뢰로 연결된 인간 대 인간의 교류가 아닌 단순한 이해관계로만 여기는 일이 다분한 게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이다.

신뢰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무슨 말이든 부정적으로 비쳐질 것이고, 기대감 또한 만들지 못해 긍정적 기대효과는 물론 만들지 못할 것이다. 정치인들의 말은 포퓰리즘적 요소로만 보일 뿐이고, 기업의 행동들은 자기들의 잇속만을 챙기기 위한 것, 서로 간의 관계는 위선으로 덮여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발전을 위해서는 이런 낮은 신뢰단계에서 시급히 벗어나야 한다. 우선 정치인들은 당선을 위해서만이 아닌, 정말 지킬 수 있는 공약을 내걸어야 하며, 메니페스토(Menifesto : 선거에서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따져보고 당선 후에도 공약을 지켜나가도록 한다는 의미의 시민운동)의 활성화 또한 필요하다. 또 더 이상의 국회 폭력, 날치기 국회는 있어서는 안 되고, 사익을 위한 불법적인 행동 또한 철저히 근절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모습들을 바라보며 국민들은 불신만 늘고 신뢰는 점점 더 멀어져 간다.

기업은 투명한 경영을 하고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상품을 내보여야 한다. 비자금 조성이나 주가조작, 담합 등의 비윤리적 행동은 절대 신뢰를 살 수 없다. 경영적 요소에 제조과정부터 깨끗한 혹은 안전한 상품까지 겸비해야 완전한 신뢰를 살 수 있을 것이다.

단체 간의 관계, 개인 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더 이상 이해관계의 눈으로만 상대를 바라보지 말고 정(情)적이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봐야 한다. 이용의 대상이 아닌 교류의 대상으로 보면 되지 않나 싶다.

세계은행은 사회적 신뢰도가 10%오르면 경제 성장률은 0.8% 증가한다고 분석하였다. 새해에는 부디 마음 놓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가 되어, 경제 성장률을 증가시키는 것은 물론 그 신뢰와 신뢰로부터 오는 기대감으로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 :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 일상의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 의사가 환자에게 가짜 약을 투여하면서 진짜 약이라고 하면 환자의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믿음 때문에 병이 낫는 효과)까지 만들어 낼 수 있는 행복한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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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자신의 힘으로 건강한 보수주의를 확립시킨 나라는 영국과 미국뿐이다. 두 나라 모두 거대한 위기, 거대한 과제에 부딪쳤을 때 보수주의 사상이 확립되었다. 영국의 경우 프랑스 혁명에 부화뇌동한 급진 운동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옛 전통에 바탕한 점진적 변화’를 핵심 컨셉으로 삼았다. 미국의 경우 흑인노예제도를 둘러싸고 남북전쟁을 치러낸 과정에서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우선하는 독립선언문 및 헌법 정신’(리퍼블리카니즘)을 핵심 컨셉으로 삼았다. 우리 사회는 한편으로는 북한의 민주화와 업그레이드를 이루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초고도 지식기반사회로 도약해야 한다는 엄청난 과제를 안고 있다. 우리 보수주의의 핵심 컨셉은 '개인’을 중심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얼마 전에 보수주의 운동을 한다는 대학생이 찾아 왔다. 나를 붙잡고, 우리 사회 안에 종북-친북 인사들이 득실대기 때문에 이대로 가다가는 적화(赤化) 위기에 빠질 것이라며 비분강개와 우국충정을 쏟아냈다. 전날 밤에 원고를 쓰느라 잠을 설친 덕에 비몽사몽 상태에서 그의 말을 듣던 나는 기어코 한마디 하고야 말았다.

“이민 가.”

“네?”

“이민 가라구. 적화될 나라에서 뭐 하러 살어?”

지구에서 볼셰비키, 마오이스트, 트로츠키주의자 같은 진짜 '빨갱이’들이 멸종한 시대에, 북한 지배집단이 더 이상 '빨갱이’가 아니라 부패한 반인도(anti-humanity) 범죄집단인 상황에서 적화 공포에 시달린 나머지 보수주의를 택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보수주의에는 마땅히 반(反)김정일을 훌쩍 뛰어넘는 숭고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 비전을 만들지 못한다면 보수주의는 설득력과 리더십을 가질 수 없다. 이미 참된 보수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주의는 위대한 통찰이었다

자신의 힘으로 건강한 보수주의를 확립시킨 나라는 영국과 미국뿐이다. 두 나라 모두 거대한 위기, 거대한 과제에 부딪쳤을 때 보수주의 사상이 확립되었다. 영국의 경우 프랑스 혁명에 부화뇌동한 급진 운동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보수주의가 나왔다. 1789년 프랑스에서 혁명이 시작되자 영국 안의 급진세력이 이를 찬양하면서 혁명 운동을 시작했다. 이에 에드먼드 버크는 1년 만에 '프랑스 혁명 및 런던의 일부 단체들의 움직임에 대한 고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 And on the Proceedings in Certain Societies in London)이라는 책을 낸다. 이 책에서 버크는 영국은 명예혁명(1688, Glorious Revolution)을 통하여 이미 의회민주주의를 달성했으며, 사회발전은 소중한 옛 전통과 새로운 변화를 조화시키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영국이 백 년 전에 '전통적 가치 위에서 변화를 성취함으로써’ 달성한 의회민주주의 모델이, 과거단절적이며 잔혹한 프랑스 혁명 모델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는 점을 최초로 명백하게 논증한 것이다. 이는 위대한 통찰이었다.

미국의 경우 흑인노예제도를 둘러싸고 남북전쟁을 치러낸 과정에서 보수주의가 확립되었다. 1850년대에 들면서 미국은 “흑인노예제를 준주(準州, territories, 서부 개척지)로 확장해야 한다”는 남부 노예주의 강력한 드라이브 때문에 거대한 위기로 빠져들어갔다. 마침내 민주당의 더글러스 상원의원이 “노예제를 채택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는, 주 별로 '인민주권’(popular sovereignty) 원칙에 따라 결정하자”라는 폭탄 주장을 한다. 한마디로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으로 결정하자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신생 공화당의 원외 활동가였던 링컨은 “다수결 민주주의에 우선하여 독립선언문과 헌법이 존재한다.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노예제를 '잠정적으로 존재하다가 소멸해야 할 필요악’으로 보았다”라고 주장했다. 링컨은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건국의 아버지들의 정치 활동 기록과 행적을 철저히 연구했다. '민주주의에 우선하는 원칙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바로 공화주의(Republicanism)이며 이 공화주의의 뿌리가 건국의 아버지들이라는 점을 논증했던 것이다. 링컨의 이 위대한 통찰이 오늘의 미국을 만들어냈다.

우리의 보수주의는 개인에서 출발해야

초고도 지식기반사회의 문턱에 서 있는 우리는 모두, '글로벌 시장 경제 속의 개인’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우리가 일정한 정치사상과 가치체계를 선택한다면 그 선택은 개인의 실존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막연히 대한민국의 발전을 강조하거나 혹은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내세워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젊은이들은 “그래서 어쩌라구?”라는 반응을 보일 뿐이다. '그것이 나의 인생과 관련하여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문제가 절실하게 와 닿지 않으면 이념 혹은 가치에 대해 코웃음 친다. 보수주의가 뿌리를 박기 위해서는 개인의 실존적 차원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 선배세대들은 자기 자신의 존재 전체를 걸고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자기 자신의 존재 전체를 걸었기에 이미 실존적인, 너무나 실존적인 차원에서 살았던 것이다. 무엇을 위해? 사유재산, 자유, 시장, 개인됨을 위해 자신의 존재 전체를 걸었다. UN군의 지원 외에, 대한민국이 6.25를 이겨낼 수 있었던 두 개의 내부적 힘은 1950년 이전에 월남한 이북민들이 가졌던 철저한 반공의식과, 토지개혁에 의해 자작농이 된 농민이 신생 대한민국에 대해 간직했던 신뢰였다. 이 둘은 모두 사유재산, 자유, 시장, 개인됨(individuality)과 직결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선배세대의 절절한 경험을 보다 깊은 차원에서 다시 해석해서 승화시켜야 한다. 빨갱이는 멸종했고, 북한 지배집단은 부패한 반인도 범죄조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비전은 김정일이라 불리는 흉측한 종기덩어리의 처리문제를 훌쩍 뛰어넘어, 삶에 대한 숭고한 조망으로 치달아야 한다. “개인이란 무엇인가? 개인됨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로 진입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나의 자아와 삶을 이끌어가는 원칙이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추켜들어야 한다. 이 철학적이기만 한 듯이 들리는 고상한 주제가 정치 이념 및 정치적 가치체계의 근본이 될 때 비로소 우리 사회의 보수주의가 확립될 수 있다.

'진실을 존중하는 자아’는 무엇을 선택할까?

자아는 진실과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 진실을 외면하면 세상과 당당하게 마주 서는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긴장이 썩어 소멸하고 만다. 세상의 이미지가 거짓과 착각으로 이루어져 있는 상태에서는 세상과 당당하게 마주 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과 당당하게 마주 설 때에만 성립하는 이 긴장이 바로 자아이다. 우리가 진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진실만이 자아를 세우는 척추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냉전의 사생아 혹은 피해자’란 소리는 거짓이며 '냉전의 승리자’란 이야기가 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한민국과 그 성취를 인정한다. 시장은 '부자들의 천국, 서민의 지옥’이란 소리는 거짓이며 '시장 제도의 발전이 사회 운영의 중심축’이란 이야기가 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장 제도와 그 발전에 대해 신뢰한다. 북한의 지배집단이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키는 민족주의 그룹’이란 소리는 거짓이며 '홀로코스트보다 더 잔혹한 반인도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부패한 집단’이란 이야기가 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인권 상황에 대해 분노한다. 대한민국을 하나의 소중한 '삶의 기반’으로서 받아들이는 것, 시장제도 및 그 발전을 신뢰하는 것,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런 것들이 바로 한국 보수주의의 가치 아닌가!

우리는 '진실을 존중하기 때문에’ 일정한 가치평가를 내리게 된다. 이 가치평가의 결과물을 모아놓고 보니까, 그 적합한 이름이 '보수주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보수주의는 귀착점일 뿐 출발점이 아닌 것이다.

또한 진실은 우리로 하여금 선배 세대의 피와 땀과 고통을 고스란히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그리고 우리가 선택한 가치들이 바로 선배 세대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져 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우리의 삶과 가치가 선배 세대와 맞물려 있다는 점을 총체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과거를 인정하고 껴안는다는 점에서 그 적합한 이름 역시 '보수주의’이다. 우리의 보수주의는, '진실을 존중하는 자아’가 규정하고 선택한 것이다.

박성현 / 인터넷문화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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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수 | 2011-02-09 | 조회수 : 65

최근 대북 단파라디오 방송인 '열린북한방송’의 북한 내부 기사에는 북한 경제상황의 심각함이 실감나게 잘 나와 있다. 1월 7일 기사에는 평양에서 새해 첫 날부터 전기와 물 공급이 끊겨 주민들이 북한 정부를 비난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한 달이 지난 2월 7일 기사에도 전기가 안 나와 평양 주민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아파트 방안에 비닐하우스까지 만든다는 기사가 나온 것이다.

평양 대부분의 아파트는 전기로 물을 끓여 난방을 하는 시스템인데, 한 달 이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주민들이 난방이라는 개념을 모를 지경이라고 한다. 주민들이 찬바람을 막기 위해 텐트 비슷한 것을 방안에 세우거나 낮에는 상대적으로 춥지 않은 지하철역으로 피한다는 것이다.      

2월 8일 조선일보의 '북 주민 2000만 명 지하경제로 연명’이라는 기사도 비슷한 사정을 전한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배급체제가 무너져 전체 인구의 약 83%인 2000만 명이 지하시장 경제에 의존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북한 인구 2400만 명 중 평양 주민 등 400만 명을 제외하고는 북한 정부의 배급을 못 받고 있다”는 정부 고위 당국자의 말도 있다.

이런 기사들을 보고 혹자는 북한 정권의 붕괴를 점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붕괴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당장에 북한이 붕괴될 것처럼 생각하고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이라고 스스로 부를 만한 어려운 상황을 겪었다. 작년에 돌아가신 황장엽씨의 증언처럼 약 300만 명의 북한 주민이 아사 또는 굶주림과 관련된 질병으로 죽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김정일 정권은 버텨냈으며 이후 10년이 넘도록 북한 주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

현 식량 상황 등 경제 사정을 당시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만은 변했다. 바로 북한 주민들이 더 이상 국가에 기대지 않고 사는 경험을 배웠다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위에서 표현한 지하시장 경제인 장마당 등을 통하여 북한 주민들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거래하게 되었다. 고난의 행군 시기처럼 지금도 배급은 받지 못하지만, 버티는 법을 체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좋다, 나쁘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주민들 스스로 사는 법을 배웠지만, 그래서 존엄한 생명은 유지될 수 있지만, 그 만큼 독재 정권의 생명도 더 유지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김정일 정권이 맘에 들어 하지 않지만, 장마당을 허용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북한 주민들은 갖는 김정일 정권에 대한 두려움은 아직도 굉장히 크다. 물론 이것은 어려서부터 받은 '세뇌교육’이나 '정치에 대한 비판을 했던 누군가가 발각되어 공개처형 등의 가혹한 처벌을 받은 것’을 목격한 후유증 때문이다.          

사회주의권 국가가 붕괴할 때와 90년대 말 '고난의 행군’ 당시처럼 현재의 북한이 위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북한 정권은 대외 관계에서 스스로 게임의 방식을 만들어 판을 유리하게 이끌고 있다. 가까운 예로 중국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공격에서 북한의 손을 들어주었다. 또한 90년대 위기를 자기 방식대로 극복한 일종의 경험(?)도 가지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대북 정책이 북한 독재정권을 어렵게 만든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다. 더 원칙적으로 북한 정권에 맞서야 한다. 또한 북한 주민들이 더 많이 바깥세상의 물정을 알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용기를 갖도록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먼저 온 미래’인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아직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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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수 | 2011-02-07 | 조회수 : 76

민주당이 과연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이길 수 있을까?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박근혜라는 부동의 1위가 있는 대선은 여러 가지 변수가 있지만,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이길 가능성도 굉장히 높다. 하지만 가능성이 아닌 자격의 측면에서 볼 때 민주당이 대안정당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표적인 것이 복지문제이다. 1월 30일 민주당은 '증세 없는 무상복지를 추진한다’고 발표하였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1월 한 달이 다 가도록 무상복지를 강조하던 것이 민주당의 모습이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대표가 자신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을 출범시키고 복지를 화두로 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 그 시작이었다. 또한 박 전 대표보다 더 급진적으로 무상복지를 주장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차별화와 함께 작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김상곤 후보가 무상 급식으로 승리했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정책이 아닌 포퓰리즘은 내부에서부터 역풍을 맞았다. 당장 김대중, 노무현 전 정부의 경제관료 출신 국회의원들로부터 비판을 당한 것이다. 물론 그 요지는 재원마련이었다. “세금을 올려야 무상복지가 가능한데, 그게 과연 현실성이 있느냐”가 그들의 주장이었다.

숱한 내부 논란 속에 한발을 뺀 민주당이 결국 '증세 없는 무상복지’라는 슬로건을 들고 나온 이유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현재로서는 실현이 어렵다. 또한 이번에는 한나라당은 물론 진보신당으로부터도 비판을 받고 있다.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는 31일 보도자료를 통해 "민주당의 재원 대책은 구체적인 재원조달 방안이나 산출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는 졸속적이고, 오로지 증세만 피하겠다는 의도라는 점에서 비겁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심재철 정책위원장 역시 "민주당은 '증세가 없다'고 하면서 2007년도 21%에서 지난해 19%까지 내려간 국민 세금 부담률을 다시 원위치 시키겠다고 한다"면서 "증세가 없다고 얘기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평가했다.
    
각 당의 입장에서 자유롭게 민주당의 복지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겠고 민주당도 여기에 대해서 할 말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에게는 한 달여가 넘는 시간동안 정책은 없고 정치만 있었다는 것에 반박할 사람은 많을까? '무상’과 '복지’라는 말로 국민들을 우롱한 것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복지’라는 말은 이 글을 쓰는 나에게도 달콤한 말이다. 그리고 이 사회에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성 없는 말로 국민을 기만해서는 안된다. 현재의 달콤함은 미래의 씁쓸함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뿐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경제 발전 수준에 맞는 복지 정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60년간 한국과 한국인이 경험하고 획득한 경제사회적 토대에 걸 맞는 개혁이어야 개혁은 비로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의 무상 복지시리즈는 현재 우리사회의 시스템과는 전혀 맞지 않다. 그래서 큰 문제를 남길 가능성이 높다.

달콤한 주장이 결국은 국민들의 실망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민주당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표만 의식한 정치로서는 국민들의 마음을 살 수가 없다. 아니 국민들을 더 힘들게만 만들 것이다. 민주당의 수권정당으로서의 능력에 대해 깊게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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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금급식 반대 시민연대' 결성 기자회견

1월 24일 (월) 오후2시 서울 시의회 별관 2층 대회의실에서 '세금급식 반대 시민연대' 결성 기자회견이 열렸다.


< 사진: 기자회견 모습 >

“민주당 등은 '의무교육이니 의무급식을 해야 한다’며 친환경 무상급식 전면 실시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의무교육, 의무급식이라면 국가 수준에서 해야 할 일 아닙니까. 그런데 그걸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하자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죠.

게다가 서울시교육청에서 1년에 가용할 수 있는 예산이 8000억에 불과한데, 학교시설 개선이나 방과후학교 등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 대신 절반인 4000억원을 '먹는 것’에 투입하겠다니 이 얼마나 배짱 좋은 주장입니까?”

서울시의회 정책연구위원장을 지낸 김진성 교육선진화운동 상임대표의 비판에 청중들 사이에선 '옳소’라는 소리와 함께 박수가 이어졌다.

김 상임대표가 몇 년 전 '직영급식과 위탁급식을 둘러싼 논쟁이 무상급식 공세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했을 했을 때만 해도 무상급식이 최대 현안으로 떠오를 줄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터.

그는 “영국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버나드쇼의 묘비에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말이 새겨져 있는데 오늘날의 현실이 아니냐”며 “여러 번 경고도 하고 얘기도 했는데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오늘의 비극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24일 서울시의회 별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선 친환경 무상급식에 대한 보수우파 성향의 시민사회단체의 우려가 드러났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쟁은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민투표를 제안하면서 찬반논쟁은 거세졌다.

'6.2지방선거 승리가 무상급식 전면 실시에 대한 지지’라는 민주당 등 야당에 맞서 오 시장은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동안 사태를 낙관 혹은 관망하던 시민사회진영에서는 민주당이 이른바 '공짜시리즈’를 내놓고 전면 무상급식 강행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자 이에 맞대응하기 위해 결집하는 상황이다. 전면 무상급식에 대한 민심을 보여주고, 저지하기 위해 주민투표 발의를 위한 서명에 적극 나서기로 한 것이다.

교육재정을 고려하지 않은 무상급식 전면 실시는 '세금급식’이자 '빚 급식’이라는게 세반연의 지적.

세반연은 “빚을 내서 복지 혜택을 주는 것은 당장은 쉽고 편할지 모르지만 우리 세대의 지갑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지갑까지 열게 하는 것”이라며 “전면 세금급식이자 앞으로 다가올 망국의 전조일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세반연은 민주당의 “'무상급식’은 달콤한 사탕발림이자 무책임의 극치”로써 용납할 수 없다면서 서울시 투표권자의 5%인 41만8000여명 이상 서명을 받아 주민투표를 성사시키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서는 “반듯한 밥상 안전한 밥상이야말로 학부모들의 바람” “납세자가 동의하지 않는데도 무상급식을 하겠다는 건 오만한 발상”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아예 세금급식이라고 말해야 시민들이 헷갈리지 않는다”는 제안도 나왔다.


< 사진: 무상급식 찬반 동영상 >

일단 세반연은 보수우파 진영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한편, 추후 주민투표 서명운동에 나서는 단체들과 연대해 공론화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이와 관련, 세반연은 영화 '300’을 패러디한 무상급식 찬반 동영상을 공개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한 데 대해 김진성 상임대표는 격려와 함께 반대논리를 정교히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좌파의 '무상급식’이라는 용어 선동에 밀리고 있는 만큼, 허상을 여실히 보여주려면 '친환경’과 '무상’이 현실과 동떨어진 선전문구임을 알려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 상임대표는 “친환경 무상급식이 민주당 등의 주장처럼 제대로 시행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현재 급식비는 3000원 내외 수준인 데 반해 2470원으로 낮게 책정됨으로써 친환경 국산 농산물을 공급하기는 여러모로 부담이 가중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률도, 5% 내외인 우리나라 식량자급도도 생각하지 않는 계산”이라고 꼬집은 김 상임대표는 “결국 혜택을 보는 건 현재 3~5%정도만 무상급식을 받는 강남의 학생들 뿐”이라고 비판했다.


< 사진: 김진성 교육선진화운동 상임대표 >

김 상임대표는 “중국은 수출 증대를 위해 최근 상하이에서 중경까지 양자강에 1500km의 뱃길을 열었는데, 우리는 고작 15km의 서해뱃길 예산을 싹둑 잘랐다”면서 “소모성 예산과 투자성 예산의 비교할 수 없는데도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부분의 예산을 전부 깎았으니 개탄할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무상급식 전면 실시는 우회적으로 교육계를 정치화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학생인권조례와 서울광장 조례 등과 맞물려 진행되는 만큼, 진보좌파단체들의 '전략’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김 상임대표는 “학생들에게 민주시민의 책임과 의무를 가르치기에 앞서 정치집회를 허용하고, 서울광장에서 정치집회가 가능토록 했으니,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처럼 학생들이 거리에서 집회를 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여기에 조리종사원들이 노조를 결성해 파업을 물론, 정치활동을 할 가능성도 높다. 이미 전교조 등이 그런 의도를 갖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안전한 밥을 먹겠나”라고 반문했다.

김 상임대표는 “정치인이 나랏돈으로 개인 표를 사는 이와 같은 파렴치한 행위를 근절시켜야 한다”며 “이 예산으로 차라리 추운 겨울에 고생하는 국군장병들을 잘 먹어야 하지 않느냐. 각자의 체질도, 기호도 다르니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주는 급식은 시대착오적인 동시에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세반연은 본격적인 주민투표 서명이 시작되면 한나라당과 정책적 차원에서 연대할 가능성도 열어뒀다. 민주당의 무상 복지 공세가 거세기 때문에 주민투표 발의에 그치지 않고 표를 통해 막기 위한 '협력’이라는 설명이다. 세반연은 한나라당의 입장을 지켜본 뒤 향후 무상급식 등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촉구할 예정이다.

변윤재 / 객원기자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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