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북한방송개국 5주년 기념 북한전문언론인 국제회의가 22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사진: 북한전문언론인 국제회의 참가자들>

'북한의 미디어 통제와 김정은 시대의 전망’이란 주제로 진행된 이번 회의에서 북한언론전문가들은 미디어가 김정은 3대 세습 과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진단과 발전방향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최홍재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는 '북한문제에 대한 한국방송의 실태분석’이란 주제를 통해 북한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한국방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최이사는 “1953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납북자 수는 514명, 일본은 17명”이라며 하지만 “1999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 방송은 납북자 관련 방송을 방송사당 1.67편을, 일본은(2000년부터 2008년까지)14.8편을 다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방송이 북한 문제에 무관심한 이유에 대해 “햇볕정책과 같은 북한을 포용하는 정책이 방송 정책에 투영됐기 때문”이라며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기간 동안 선임된 KBS와 MBC 방송사의 사장들을 보면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을 공감하는 사람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조의 편집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또 다른 이유로 꼽았다. 그는 “방송 노조는 민주노총에 가입돼 있고, 민주노총은 종북세력이 주도하는 민노당에 당연직대의원을 갖고 있다”며 “친북적 성향의 노조가 편집권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 북한의 납치만행과 실상 보도에 대한 비상식적 침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사진: 최홍재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곰 세 마리’ 노래를 부르며 북한 내부에서조차 3대 세습에 대해 비웃음과 풍자가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방송이 침묵하는 것이 해괴할 뿐만 아니라 방송언론인이 과연 맞느냐는 근본적인 회의를 자초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박인호 Daily NK 편집국장은 북한 내 저널리스트가 발생하게 된 배경에 대해 “2005년 이후부터 북한 지도부와 간부들은 국제사회의 원조를 독점하는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개혁·개방을 선택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인식이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분위기에서 '북한 당국이 스스로 개혁을 선택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오직 남한이나 미국, 국제사회만이 북한당국의 정책 변화를 압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등장했다”며 “북한의 권력층에 속하지 않는 30-40대 인텔리 층에서 북한 내부의 상황과 주민들의 요구를 외부사회에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박 편집국장은 “북한 내 저널리스트를 육성하면 국제사회가 보다 실용적으로 대북정책을 세우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이 북한 내부에서 제대로 분배되고 있는지 실질적인 모니터링이 가능해지고, 북한 주민에게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보다 효과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무엇보다 “김정일 정권 이후 북한 사회가 새롭게 변화되는 시점에서 이들은 민주적인 저널리스트로서 북한 민주 언론의 풀뿌리가 될 수 있다”며 “비영리 저널리즘 집단이나 NGO들이 북한 내 민주적 언론인을 만들어 낸다는 목표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광백 자유조선방송대표는 “사회주의나 선군정치와 같은 구호로는 정권의 정치적 사상적 동력을 얻기 어려운 점이 북한의 후계체제 구축 작업이 안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보인다”며 “외부에서 유입되는 정보는 이러한 약점을 더 증강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 대표는 “외부 정보 유입량이 늘고 개혁개방에 대한 주민들의 요구가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면 새로 들어설 정권도 이를 전면 무시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질 것”이라며 “김정은 정권이 안착하려면 북한의 당면한 위기에 대한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재로서는 개혁개방이 그 유일한 해법이라는 메시지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북한 사회에 제공될 경우, 김정일과 후계자 김정은도 어떤 식으로든 북한 주민의 요구를 수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탈북대학생 백요셉씨는 “북한은 정부가 전국의 모든 세대 전자기기를 총 계수해 필수로 모든 방송수단의 채널 조절 기능을 분리하고 조선중앙방송 하나만 나올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 있다”며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TV와 라디오를 수리하다가 분리되어 안전부의 합격포가 붙여진 녹음기의 주파수 조절기능을 우연히 연결해 외부 방송을 접했다”고 말했다.

이어 “남한이 남아도는 쌀 때문에 농민들이 아우성이라는 남한 방송이 믿기지 않았다”며 하지만 “중국에 한류열풍이 불어 중국 팬들이 한국 가수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이 정말 잘 산다는 사실에 확신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북한 주민에게 쌀, 밥, 빵보다 진정 중요한 것은 자기들이 행복한 낙원이라 착각하고 있는 조국, 북한과 비교할 수 있는 외부 정보이고 소식”이라며 “그것은 그들이 스스로 자신들도 당과 수령의 노예가 아닌 인간임을 알게 하는 것이고 자신들에게도 평등과 자유, 인권과 생존에 대한 모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열린북한방송의 김명진 피디는 북한이 어떻게 미디어를 통제하는지 시연했다. 라디오의 경우 분해를 한 후 채널을 돌리 수 있는 튜너 부분을 완전히 제거한 후 채널을 돌리 수 없도록 딱지를 붙여 봉인한다. 딱지에는 '00시 보안서 확인’ '00시 당 위원회 선전부 확인’이라고 적혀 있고, 라디오에 두 개의 딱지가 모두 붙어 있어야 한다.

또 아날로그 텔레비전의 경우도 라디오와 마찬가지로 채널을 돌릴 수 있는 튜너를 제거하고 봉인하지만, 디지털 방식인 경우 리모컨 회수 및 채널 변경 부분을 완전히 봉인해 통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김명진 피디 북한 미디어 통제 시연>

이날 회의를 통해 대북방송이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전달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내 민간 대북방송이 지원받는 곳은 한국정부가 아닌 유럽이나 국제단체다. 이명박 정부는 민간 대북방송의 국내 송출을 허용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실행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방송 3사는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것에 대해 매우 소극적이다. 그들은 북한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이용하려 할 뿐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 3대 세습, 북한 우라늄 농축 시설 개발 등 북한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 정부와 미디어가 올바로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김지영 /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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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정치적 이익도 따르기 때문

최근 남북한의 경제관련 기사에서 공통되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중국에 대한 의존심화’라는 말이다. 관련 기사들을 살펴보자.

먼저 북한의 경우 중국의 동해안 진출을 가능하게 하는 '나진항 1호 부두의 20년 사용권’ 보도는 우리를 놀라게 했다. 또한 '신압록강 대교’를 중국 자본으로 건설하고 태조 이성계가 조선 건국을 하게 되는 시발점이 되는 압록강의 '위화도’나 '황금평’ 개발권을 중국에 넘겼다는 기사들이 있었다. 마치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를 높이려는 중국에 대한 걱정은 '동북공정’ 등의 말과 결합되면서 불안감을 유발한다.

한국 역시 일부 언론들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고 쓰고 있다. 한중양국의 교역액이 92년 중국 수교 당시 64억여 달러에 불과했지만, 08년에는 1683억여 달러로 약 26.4배 성장했다고 한다. 03년에는 미국을 제치고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대상국, 2004년에는 최대교역국으로 부상하였으며 2007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최대 수입대상국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수록 중국 경제 상황의 변화에 따라 우리 경제의 취약성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이 미국의 압력으로 위안화를 절상하게 되면 중국의 수출입 규모가 줄고 대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교역조건과 무역수지도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세운다.

마치 미국과 함께 G2가 되어가는 중국의 블랙홀으로 한국과 북한 모두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을 더욱 진전시켜서는 안될 것 같다는 경각심을 우리에게 주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예측은 맞는 부분도 있지만 틀린 것도 있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긍정적인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점점 세계화 되어가는 상황에서 교역 비중이 높아진 중국의 위기는 한국에게도 영향을 주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에 대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것은 맞다. 또한 인도나 남미 등으로 교역 상대국을 다각화 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접근일 수 있다. 북한의 경우에도 점점 최악으로 치달아가는 경제상황 때문에 북한이 중국의 경제식민지가 될 것 같다는 우려도 일각 의미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이나 북한 모두 중국과의 교역을 강화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것은 경제적인 부문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영역에서도 그러하다. 먼저 경제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자.

북한이 최악의 경제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큰 힘은 중국과의 밀무역 때문이다. 공식이건 비공식이건 중국으로부터의 식량 수입은 식량난으로 굶주린 북한 주민들에게 큰 보탬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대북 투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어떻게든 다른 기회가 생겨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김정일 정권이 체제 유지차원에서 수위를 조정할 수 있겠지만, 또한 이러한 조치가 정권을 연장시킬 수도 있겠지만, 북한 경제 활성화의 최대 수혜자는 북한 주민들이기 때문에 중국의 대북 교역강화는 더욱 필요하다.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경제에서 중국과의 교역이 큰 부문을 차지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미국과 일본을 대체하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중국이 최대 교역국이 된 것이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우리에게도 큰 기회가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위기 요인은 최대한 주의해야겠지만, 더욱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중국경제와의 관계 밀착을 통해 한국 역시 경제 발전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는 정치적 관점에서 이로운 점을 이야기 해보자. 시한폭탄 같은 김정일 정권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상황은 늘 한국에게 안보불안의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 한반도 정세에서 가장 부각되는 것은 6자회담이 언제 개최되는가이다. 그런데 6자회담에서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는 국가가 중국이다. 또한 중국은 북한의 전통적인 우방이며,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으로 남북의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한국의 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경제발전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는 중국 공산당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피난민 등으로 동북3성의 혼란도 있을 수 있겠지만, 한반도의 현상유지가 중국의 국가발전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중 교역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의 한국 교역 비율도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이 대북 경제투자나 한국과의 무역을 더욱 강화하는 것은 자국의 발전에도 유리하겠지만, 한반도의 위기 상황이 오지 않을 가능성을 더욱 높게 만들 수 있다. 김정일 정권 단독으로 한국을 공격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이건 북한이건 중국과의 경제교류는 강화되어야 한다.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이나 북한 모두 경제적으로 이익이 있을 것이며, 중국과의 경제 교류가 커질수록 그만큼 한반도의 안정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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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국제 인권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는 북한을 '최악 중 최악’의 인권탄압국으로 분류했다. 프리덤하우스가 각국의 인권상황을 평가하기 시작한 1973년부터 북한은 38년간 최악의 인권 탄압국으로 꼽히고 있다.

10, 11일에는 로버트 킹 미국 국무부 대북인권 특사와 비팃 문타폰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한국을 방문, 북한인권 실태에 대한 자료수집 및 탈북자 조사사업 등을 벌였다.

북한인권문제의 실상을 알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세계의 노력이 분주하다. 하지만 한국은 이와 대조적이다.

보편적 권리인 '인권’이 북한과 결합되면 정파의 논리로 재단된다. 한국 사회 좌파들은 북한인권운동을 보수의 정치공세, 민족화해를 막는 장애물로 취급하고 있다. 민주당은 북한 주민의 인권개선을 우리 정부가 확인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의 북한인권법안을 'MB’악법으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왜, 한국은 북한인권에 이리도 야박한 걸까?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는 친북좌파들이 만들어낸 11가지의 궤변이 한국 사회에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난 20일 발간된 '북한인권실태와 북한인권운동의 쟁점 분석'(자유기업원 NGO 시리즈 25번째)은 북한인권운동에 대한 친북좌파들의 맹목적 인식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하 대표와 허선행 북한인권정보센터 사무국장이 함께 집필한 이 책은 우선 북한인권실태에 대해 서술한 뒤, 친북좌파 단체들이 어떤 논리로 북한인권운동을 폄훼하고 있는지 지적하고 있다.

허 국장이 집필한 <북한인권실태>편은 북한이 가입한 국제 인권 A, B규약에 근거해 인권실태를 개관하고 가장 심각한 인권탄압으로 꼽히는 정치범수용소, 공개처형, 강제송환 탈북자 처벌 실태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허 국장은 “공개처형의 발생빈도가 1990년대 중반에 비해 대폭 감소해, 부분적인 인권개선이 있지 않느냐는 추정도 있지만, 2007년 이후 에는 다시 공개처형이 빈발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며 “강제송환 된 탈북자에 대한 처벌의 강화, 정치범수용소의 운영, 종교박해, 강제유산, 강제이주 등 기존에 국내외에서 우려하던 북한인권 침해상황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한국 시민사회는 최악의 인권 상황에 놓인 북한 주민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확산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좌파단체들이 주를 이루는 한국 시민사회는 이와 정반대의 일을 하고 있다.

가장 영향력이 큰 시민단체로 뽑히는 참여연대의 경우 유엔의 대북인권결의안에 대해 “북한 인권문제가 국내외에서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되고 있는 것에 반해 인권 개선을 위한 진지하고 실효성 있는 방안 논의는 이뤄지지 않다”고 평했다.

하 대표는 “참여연대는 미국을 반대하는 운동에 아주 적극적이지만 북한을 비판하는 활동에는 소극적”이라며 “이는 반북보다 반미가 전략적으로 훨씬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하 대표는 <북한인권문제에 침묵하는 좌파(인권)단체의 문제점>편에서 북한인권운동에 대한 친북좌파 단체들의 행태와 그들의 논리를 비판하고 있다.

먼저 그는 북한 인권문제를 외면하는 사람들을 종북주의(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통일연대, 민노당 등), 사회주의 또는 사민주의적 좌파 세력(진보신당, 참여연대 등), 햇볕파(민주당, 국가인권위원회) 그리고 좌파 성향의 인도주의 지원 단체들(좋은벗들)로 구분, 특징을 설명한다.

이어 하 대표는 좌파 단체들의 북한인권 운동 비판을 11가지로 정리해 반박한다.

그가 뽑은 좌파단체들의 첫 번째 비판논리는 '우파들의 북한 인권 문제 제기는 정치적 공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좌파단체들은 북한인권문제 제기는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대표적으로 미국의 북한인권법안은 북한 정권 붕괴를 목적으로 한 법안이라고 주장한다고 하 대표는 설명한다.

그는 이 주장을 3가지 논거로 반박한다. 우선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의 북한인권법안에는 북한 정권교체에 대해 명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 버마의 민주화와 자유 증진에 대한 법안에는 정권 교체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 대표는 그러나 “북한인권법안에는 이들 법안과 달리 정권 교체는 물론 경제 제재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다”며 “법안의 목적이 정권에 대한 제재보다는 북한 인권 고양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다음으로는 북한인권법안은 오히려 북한 붕괴를 예방하는 운동이라고 반박한다.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다양한 정치 세력이 형성된다면 설령 김정일 정권이 물러나더라도 이를 다른 세력이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면서 “대체 세력이 형성된다면 북한 붕괴와 그에 따른 무질서의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 들 것”이라고 논박한다.

마지막으로는 한국의 좌파들은 북한인권법은 반대하면서도 2003년 미국이 제정한 버마 민주화법에는 반대하지 않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북한에 대해서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속성이 드러난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이보다 더 강경한 (정권교체가 명시된)버마민주화법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며, 똑같은 잣대를 버마와 북한에 서로 다르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 한국 좌파 단체들의 현주소라고 꼬집는다.

제2차 대전 후 스탈린 치하의 극악한 인권 유린과 독재의 실상이 알려지자 유럽 좌파들은 소련의 독재를 비판하는 민주적 좌파와 침묵하는 친독재 좌파로 나뉘었다. 이들의 명함은 분명했다. 소련 파시즘을 비판했던 프랑스의 사회당은 세력을 확장해 집권까지 하게 됐지만, 소련 편에 섰던 프랑스 공산당은 몰락하게 됐다.

하 대표는 이같은 사실을 언급하며, 정통 좌파들은 인권을 유린하는 독재 체제에 대해서는 국제적으로 어깨 걸고 싸웠던 전통이 있음을 강조한다.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북한인권문제의 심각성을 직시한 전 세계의 양심세력이 북한인권문제에 관심을 기우리고 있다”며 “이런 추세 속에서 한국의 좌파들은 시간이 갈수록 전 세계 양심 세력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정일의 건강 악화설 이후 북한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27살 밖에 안된 김정일의 아들이 후계자로 지명되는가 하며, 시장통제를 위해 단행된 화폐개혁은 북한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북한인권문제에 침묵했던 한국좌파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하 대표의 충고를 친북좌파들은 가슴 깊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역사에서 점차 소멸되는 운명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데일리NK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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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화폐개혁을 하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억제되고 통제된다. 최근에 터키와 가나가 화폐개혁을 단행했고, 이들 국가에서는 물가상승률을 한자리 수 이하로 잡았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화폐개혁이 단행된 이후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졌다. 화폐개혁이 발표된 이후 물가가 30배 이상 급등한 이상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북한에서의 화폐개혁이 이렇듯 엉뚱한 방향으로 진전된 데에는 크게 다음과 같은 원인이 있다. 첫째, 시장을 금지하고 신흥 기업가들로부터 돈을 강탈하여 공급을 급격히 축소시켰다. 둘째, 노동자와 농민에게는 돈을 마구 뿌려대 물가상승 압력을 더욱 부채질했다. 최근 시장에 대한 통제를 완화하면서 물가앙등은 그쳤지만, 이는 곧 시장에 대한 북한 당국의 항복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화폐 개혁 본연의 목적은 인플레 통제

북한이 화폐 개혁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일반적으로 화폐 개혁이란 숫자가 큰 화폐를 숫자가 작은 화폐로 교환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현재 한국의 화폐를 100:1의 가치로 환산하여 10000원은 100원으로 100원은 1원짜리로 일률적으로 바꿔주는 정책을 화폐 개혁이라고 한다.

이런 화폐 개혁의 목적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화폐의 액면 가치가 저하된다. 가령 인플레이션 때문에 20년 전에는 500원이면 밥 한끼 먹었는데 이제는 5000원은 있어야 한다. 즉 인플레이션은 화폐의 구매력을 저하시킨다. 그런데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일상 생활의 여러 불편함을 초래한다. 먼저 현금을 쓸 때 지폐를 항상 대량으로 보유해야 한다. 극단적인 사례가 짐바브웨이다. 2008년 짐바브웨에서 발생한 초인플레로 인해 시민들은 빵 한덩어리를 사는데 5억 짐바브웨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빵 한덩어리 사는데 1달러짜리 5억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100달러짜리라 해도 5백만장이 필요하다.

또 ATM 기계에서 돈을 뽑는다고 해도 불편한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령 짐바브웨에서 빵 한덩어리 사기 위해 ATM 기계 앞에서 100달러짜리 5백만장이 나오길 기다려야 한다고 상상해 보라.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은 숫자가 커지면 커질수록 계산하기도 힘들어진다.

인플레이션이 초래하는 이러한 불편들 때문에 정책 당국자들은 종종 화폐 개혁을 단행한다. 최근에 성공적인 화폐 개혁으로 인플레를 잡은 나라들로는 터키, 가나 등이 있다. 터키는 2005년에 1백만:1의 화폐 개혁을 실시했다. 그리고 가나는 2007년에 1만:1의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이 두 나라는 모두 물가상승률을 한자리 숫자 이하로 잡아 화폐 개혁의 목적인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데 성공했다.

북한 화폐 개혁 발표 후 물가 30배 인상

북한은 2009년 11월 30일 기습적인 화폐 개혁을 발표한다. 화폐 교환 비율은 100:1 이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달리 화폐 교환 가능한 금액을 10만원으로 한정했다. 10만원은 당시 시세로 30$ 정도 가치이다. 즉 30$ 이하의 금액만 화폐를 교환해주고 나머지 금액은 국가에 바쳐야 한다는 이상한 화폐 교환 조치를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화폐 개혁 발표 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화폐 개혁 조치를 발표한 후 물가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 오르는 정도가 아니라 초인플레인션을 경험했다.

북한에서 물가를 대표하는 것은 쌀값인데 두 달만에 30배 이상의 가격 인상을 보였다. 화폐 개혁 직전 북한의 쌀값은 구화폐 기준 1kg에 2000원 수준이었다. 그러니 100:1의 화폐교환 비율을 고려한다면 쌀값은 1kg에 20원 수준에서 안정화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북한의 쌀값은 화폐 개혁 발표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하여 12월 중순에는 50원, 1월초에는 150원, 1월 중순에는 300원 급기야 1월 말에는 600원 수준으로 폭등했다. 즉 화폐 개혁 두 달만에 30배의 물가 인상율을 기록한 것이다. (*주1)

왜 이런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 이유는 크게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분석될 수 있다. 초인플레이션, 즉 물가가 이상 급등하는 이유는 원리적으로 보면 아주 단순하다. 공급은 아주 적은데 돈이 많이 풀려 수요가 많아지면 물가는 오르기 마련이다.

시장 금지하고 신흥 기업가들 돈 강탈하여 물자 공급 급격히 축소

그럼 먼저,공급이 급격히 줄어든 이유를 살펴보자. 북한에서 화폐 개혁 이후 물자 공급이 급격히 줄어든 이유는 시장 거래를 사실상 금지했기 때문이다. 화폐 개혁 조치 발표 이후 북한은 12월 9일경 국방위원회의 지시로 시장 거래 품목들의 판매 상한가를 지정해 주면서 이를 어길시에는 철저히 단속하라고 하였다. 또 공산품의 경우에는 시장 거래를 금지시켰다.

당시 판매 상한가를 보면 옷, 신발(한 켤레), 식량(입쌀, 옥수수 포함 1kg), 기름(1l), 돼지 고기(1kg) 등 상대적으로 고가인 생필품은 각 단가별로 16원 이하에 판매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알(계란), 남새(채소) 등의 저가 생필품의 판매 상한가는 12원이다. 이밖에 털짐승 가죽, 자전거 수리 등의 상대적인 비생필품은 15원 이하로 판매하라는 지시가 전달되었다.

여기서 쌀만 보면 1kg에 16원 이하로 판매하라고 한 것인데 12월 9일 당시 쌀의 실제 시장 가격은 50원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처럼 시장 가격은 50원 수준인데 16원 이하로 팔아야 한다는 강제 조치가 발표되니 쌀 장사꾼들은 손해 볼 장사를 왜 하냐며 시장에 나오지 않았다. 시장에서 쌀 공급이 줄어드니 쌀 가격은 당연히 더 오를 수밖에 없다. 쌀값이 계속 오르고 시장에서 단속은 중단되지 않으니 쌀값은 멈추지 않고 계속 상승하여 1월말 kg당 600원 이상으로 치솟은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번 화폐 개혁은 북한의 주요 물품 공급자들인 신흥기업가들(북한에서는 돈주라고 부름)에 치명적 타격을 주었다. 북한은 화폐 개혁 발표 시 1인당 북한돈 10만원(당시 환율로는 30$ 수준)까지만 바꿀 수 있다고 공표했다. 이는 세계 화폐 개혁 역사에 전례가 없는 것이다. 10만원 이상 가진 사람들의 돈은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된 것이다. 즉 북한의 화폐 개혁은 단순 화폐 교환 조치가 아니라 기업가들의 돈을 강제로 빼앗는 조치였던 것이다.

기업가들은 북한 국내에서 대량의 물건을 항상 사고 팔고하기 때문에 항상 어느 정도의 국내 화폐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신흥 기업가들에게 화폐 개혁은 심대한 자산 잠식의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처럼 신흥 기업가들의 경제 기반이 축소된 결과 시장에서의 물자 공급 능력은 더욱 축소되었다.

노동자․농민에게는 현금 마구 뿌려대

북한에서 화폐 개혁이 실패하여 초인플레가 나타난 또 다른 이유는 북한 당국이 일반 북한 주민들에게 마구잡이로 돈을 뿌려댔기 때문이다. 북한은 화폐 교환 10만원 상한선을 정한 뒤 이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가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노동자, 농민, 노인들에게 마구잡이로 돈을 뿌렸다.

일례로 노동자의 월급과 노인들에게 주는 연금을 100:1 화폐 교환 조치 발표 이전과 똑같은 액면 금액을 주었다. 즉 화폐 개혁 이전 2000원 주던 월급을 100:1로 화폐 개혁을 했는데도 그대로 2000원 월급 수준을 유지한 것이다. 노인 연금도 마찬가지였다. 즉 노동자 월급과 노인 연금이 100배 상승한 것이다. 농민들에게도 한 가구당 신화폐로 14,000원 상당의 장려금을 하사했다. 이 금액은 당시 가치로 농민들이 50년 일해야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다. 농민들은 단 한 번에 거액의 목돈을 받은 것이다.

이처럼 북한 당국이 노동자, 농민들에게는 무차별적으로 현금을 뿌려 시중에 현금이 많이 풀리자 물가 상승 압력은 더욱 강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공급은 줄어들고 있는데 시중에 현금은 무자비하게 풀려나가니 초인플레이션이 생기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북한 당국, 결국 시장에 항복하다

북한의 노동자가 100배 인상된 임금을 받고 농민들이 50년 벌어야 되는 돈을 한 번에 받아서 얻은 기쁨도 잠시에 불과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물가가 30배 이상 폭등하고 그나마 폭등된 가격에도 쌀을 구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1월 중순부터 북한 주민들은 북한 당국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김정일 이름에 존칭을 붙이지 않으면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가하면 북한의 경찰인 보안원들에 대한 테러가 가해지고 아사자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북한 사회가 아비규환으로 빠지기 직전의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런 심상치 않은 조짐을 파악한 북한 당국은 1월 20일 경 이번 화폐 개혁에 대한 책임을 물어 노동당 재정경제부장 박남기를 전격 해임했다. 그리고 1월 말 시장에 대한 가격 통제를 해제했다. 거래를 금지했던 공산품의 거래도 재허용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시장에 대한 통제를 완화하기 시작하자 시장에서의 쌀값은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1월 말 kg당 600원 정도하던 쌀값이 지난 2월 4일경 300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주일만에 가격이 절반 정도 뚝 떨어진 것이다. 시장의 힘을 다시 확인하게 된 순간이었다.

종합해보면 북한 당국의 이번 화폐 개혁은 성장해가는 신흥 기업가들에게 타격을 주고 시장을 약화시킨 뒤 계획 경제로 복귀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북한은 신흥 기업가들의 경제적 기반을 어느 정도 약화시켰을 수는 있으나 시장을 약화시키는 데는 완전히 실패했다. 시장 통제로 인해 발생하는 초인플레이션을 도저히 막지 못해 화폐 개혁 발표 2개월만에 완전히 시장에 백기투항한 것이다. 김정일과 시장으로 대변되는 북한 주민들 사이의 전쟁에서 북한 주민들이 완전 KO 승을 거둔 것이다.

하태경 / 열린북한 대표

 

* 이 글에 나와 있는 북한 내부 소식들은 열린북한통신, DailyNK, 좋은벗들, NK 지식인연대 등에서 발행하는 소식지들을 참고한 것임을 밝힙니다.

 

저자소개: 하태경 대표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길림대학교에서 국제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북 라디오 방송인 '열린북한방송’과 사단법인 '열린 북한’의 대표를 맡고 있다. '동북아 IT 공동체 전략 연구’ '북한 인권실태와 북한 인권운동의 쟁점 분석’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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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폐쇄적 속성으로 국제사회의 관심과 개입 필요해
북한 후계 실패할 가능성 높아 급변 사태 대비 한미동맹 강화해야
과거 정권이 외면한 북한인권 관련사업 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지원


지난 9월 24, 25일 이틀에 걸쳐 '2009 북한인권국제회의’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사)북한민주화네트워크가 주최한 이번 '북한인권국제회의’에 40여 명의 국내외 대북전문가들이 참여, 북한인권 개선방향과 전략에 대해 논의했다. 2005년부터 매년 서울, 워싱턴, 로마, 브뤼셀 등지에서 개최된 '북한인권국제회의’는 각국이 북한 인권문제를 정부 정책에 반영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국제회의에서는 북한인권운동 10년에 대한 성과와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실천적 접근 방안, 포스트 김정일 시대에 대한 전망 등이 다뤄졌다. 24일 '북한인권 전문가워크숍’과 '북한인권대학생국제회의’, 25일 '북한인권국제회의’ 등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 현장을 스케치 했다.

북한인권 전문가 워크숍, UN결의로 김정일 ICC 제소 추진해야

행사 첫날인 24일에는 '북한인권운동 10년에 대한 평가와 향후 전망’ 그리고 '북한 인권 개선 전략과 실천적 접근 방안’ 이라는 주제로 전문가 워크샵이 진행됐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북한인권문제 해결은 북한 내부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관심과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수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의 폐쇄적 속성으로 인해 북한 당국의 자발적 개선과 북한 주민의 아래로부터의 개선활동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하며, 유엔 회원국이자 4대 국제인권조약에 가입한 북한을 유엔인권기구를 통해 공개적으로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명박 정부는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유엔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으며, 미국과 협력을 강화해간다는 개선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며 “2008년 8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북한인권문제가 명시된 것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인권정책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 설명했다.

김태훈 대한변협 북한인권소위원회 위원은 북한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ICC(국제형사재판소) 제소 실효성에 대해 "미국이 ICC 활동에 소극적이고, 설사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가 북한 사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한다고 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는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며 실현 가능성을 낮게 봤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ICC에 제소하는 과정에서 “수사와 소추 및 재판과정에서 북한의 인권 참상이 드러나 전 세계인이 참혹한 북한의 인권상황을 깨닫고, 그 개선을 위한 방안 마련에 더욱 노력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ICC 제소의 의미를 설명했다.

북한인권대학생국제회의, 북한인권의 실상을 정확히 알리도록 노력해야

같은 시간 프레스센터에서는 북한인권개선을 위한 세계 대학생들의 논의의 장이 벌어졌다. '2009 북한인권국제회의’ 부대행사로 진행된 대학생 국제회의는 미국, 중국, 일본, 우크라이나 등 세계 각국의 대학생들이 참여, 자국민의 입장에서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는 장소였다. 또한 북한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생의 역할에 대한 의견도 교환했다.

현재 이화여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케빈 리처드슨(미시간 주립대) 씨는 미국 학생들이 북한인권개선을 위해 “북한의 실정을 담은 지식들을 널리 확산시키고, 김정일 정권에게 더욱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하도록 미국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북한은 핵개발을 중단하고 세계 공동체의 일환으로 평화로운 국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탈북대학생인 김금주(숭실대) 씨는 “친구 어머니가 소를 잡아먹었다는 이유로 교화소에 끌려간 뒤 그 친구를 멀리했다”고 고백하며 “(북한의) 일반 인민들은 인권유린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세뇌교육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북한인권탈북청년연합 회원으로 활동 중인 그녀는 “북한의 실상을 정확히 알리고 북한 땅에도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탈북청년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청소년 대표로 참석한 임하연(과천여고) 학생은 한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지금까지의 북한 교육이 북한 사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거나 통일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의식구조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보다는 북한 사회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갖도록 하거나 통일 문제에 대해 피동적인 인식을 가지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북한인권국제회의, 실효성 있는 북한 인권정책 수립과 법제도 마련해야

25일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2009 북한인권국제회의 본대회에서는 북한의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방안과 포스트 김정일 시대의 한반도 미래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라지브 나라얀 국제사면위원회 동북아 조사관은 북한의 전반적 인권 개선을 위해서 식량위기 해소 등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을 우선시하는 비정부기구(NGO)들과 시민, 정치적 권리를 우선시하는 NGO들이 서로 배척하지 말고 협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홍성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 차원에서 실효성 있는 북한 인권정책을 수립하고, 이에 맞춘 법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북한인권법에는 북한 내에서의 인권침해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해) 전반적인 명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급변 사태시 한국 단독개입 힘들어, 한미동맹 강화해야

오후 2시 국제회의는 포스트 김정일 시대의 한반도 미래라는 주제로 회의가 이어졌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위원회 연구원, 브루스 클링너 미국 헤리티지 재단 선임연구원,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주용식 존스홉킨스대 한국학연구소 부소장, 다케사다 히데시 일 방위청 방위연구소 주임연구관 등이 참석한 오후 회의에서는 북한 후계 성공가능성과 북한 급변사태 발생시 국제사회의 대응 방안이 토론됐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김정운이 후계자로 지명됐음을 시사하는 정보들이 많이 나왔지만, 2009년 여름부터 후계 계획에 문제가 있음이 감지되고 있다”며 “북한 후계체제의 진상은 어느 때보다 불분명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김정일의 건강 악화는 미국이 북한의 지도자 교체의 필요성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며 “오바마 행정부는 한․일정부와 삼자 협력을 강화하고 북한 위기시 중국 정부의 오판을 방지하도록 중국과의 대화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토론자로 나선 김영환 시대정신 연구위원은 “김정일은 후계자와 권력을 나눠 갖지 않을 것”이라며, 김일성-김정일과 같은 공존 시스템이 김정일-김정운 사이에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그는 이어 “권력승계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상황에서 김정일이 죽게 되면 김정운은 북한을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며 “북한의 권력 승계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다.

이상현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갑작스러운 사태로 북한 지역이 권력적 공백상태에 놓인다면, 핏줄이 같고 역사, 언어, 문화를 공유하는 남쪽 형제들이 통치권한을 행사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1991년 남북한 UN동시가입으로 남북은 실질적으로 두 국가로 인정된다며 한국의 개입은 국제법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장 높은 가능성으로 중국의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일본 방위청의 다케사다 씨는 조․중우호조약의 근거 불충분, 외교원칙 위배, 한․중관계의 발전 등을 들어 중국의 개입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북한 급변사태 발생시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는 형식적․법기술적으로 UN의 승인을 받아 다자적인 개입을 하되,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이 주도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상현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북한의 동향에 대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분석, 각종 돌발사태에 대한 우발계획의 수립, 정부의 통치 및 행정능력의 증진 및 이를 통한 국제사회의 신인도 제고, 주변 4대 강국 및 국제사회에 대한 외교력의 지속적인 함양 등이 절실하다”고 지적하며 “최선의 대안은 한․미․중 3자가 북한 급변사태 논의를 즉시 시작하는 것”이라 말했다.

북한인권문제, 남북관계의 특수성으로 접근할 문제 아니다

이번 국제회의는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에 근거해 보조금을 지원 받아 진행됐다. 이는 정부가 북한 인권 관련 사업에 보조금을 지원한 첫 사례로, 과거 정권이 외면했던 북한 인권문제에 비로소 정부가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이날 축사로 참여한 홍양호 통일부 차관은 “남북관계가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성을 안고 있지만, 북한 인권문제는 남북관계 특수성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며 북한인권개선을 위해 한국정부도 적극 동참할 것을 시사했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도 이날 축사를 통해 “북한 내 인권상황, 재외 탈북자 인권실태, 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 문제와 새터민 인권증진에 대한 실태조사와 정책 연구 등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북한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민간단체, 대북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진행된 이번 회의는 북한인권개선이 시대적 사명임을 제시한 자리였다.

김방현 /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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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강행했으며, 연이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러한 북한의 무력시위로 인해 한반도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한과 협상을 통해 핵무기 개발을 저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임을 알 수 있다. 북핵은 협상용이 아니라 북한의 오래된 꿈이며, 핵보유를 통해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남한을 위협하고 협박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안전을 위해 한미동맹체제를 강화하고, 지금까지 남북교류․협력의 행태를 종합적으로 재검토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북한은 지난달 25일 오전 9시 54분 함북 길주군 풍대계리 인근에서 핵실험을 했다. 이날 아침 북한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한다면서 조문(弔文)을 전달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처음부터 북한이 예의를 갖출 것이라는 것은 기대난망(期待難望)이었지만, 조전(弔電)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또 다시 그들의 기만성과 폭력성을 무엇으로 형언할 수 있겠는가? 이어서 핵실험을 자축하듯 미사일 축포를 그들의 시간표에 따라 쏘아 올렸다. 북한은 4월5일에도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뿌리치고 장거리미사일을 태평양 상공으로 날려 보낸 전력도 있다.

북한의 협상전략은 상대방제압하기

북한의 핵개발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일성은 남한의 무력통일은 오직 핵무기 밖에 없다는 복심을 숨기고 구소련을 귀찮게 했다. 김일성의 핵무기에 대한 오랜 집착은 1985년 소련으로부터 5MW 실험용 원자로를 도입하는데 성공했다. 이때 북한은 핵무기비확산방지조약(NPT)에 가입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그러나 북한은 핵개발 의혹이 불거지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해 1992년 NPT를 탈퇴했다. 이때부터 북한은 핵개발이라는 히든카드를 가지고 국제사회를 농락하면서 시간벌기와 보상의 크기를 조절했다.

북한은 1992년에 체결한 '한반도비핵화선언’을 휴지 처리했고, 1994년 체결한 제네바합의는 전리품을 챙기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북한은 1991년 1차 핵 위기 이후 46억불 상당의 200MW경수로를 전리품으로 챙겼고, 남한과 일본으로부터 식량도 지원받았다. 이런 경제적 보상은 체제유지와 경제난 극복에 사용되었고 핵무기 개발자금으로 활용했다. 다시 말해 핵개발을 포기하겠다는 명분으로 국제사회의 지원금은 핵개발 자금으로 둔갑했다. 이런 북한의 행태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신행위’와 다름이 없지만 핵개발 열차는 발진했다. 바로 북한의 교묘한 협상전략에 말려들어 국제사회가 사기를 당한 꼴이 됐다.

북한의 협상전략은 스스로 벼랑 끝에 서서 상대방을 위협하거나, 과격한 발언을 통해 상대의 심리를 압박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국의 이익에 유리하도록 협상의제를 조작하거나,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상대 국가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1991년 구소련의 붕괴는 핵개발을 가속시킨 또 다른 요인이다. 북한은 구소련의 붕괴로 생계가 곤란한 소련의 핵개발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평양으로 대거 유치했다. 바로 구소련의 붕괴가 북한의 핵무기의 기술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북한의 협상전략은 상대방제압하기(outmaneuvering)이다. 이 전략은 스스로 벼랑 끝에 서서 상대방을 위협하거나, 과격한 발언을 통해 상대의 심리를 압박하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자국의 이익에 유리하도록 협상의제를 조작하거나,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상대 국가를 지치게 만들었다. 이러한 협상전략에서 북한체제나 정책은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고 상대방의 변화만을 가져왔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북한은 지속적 요구와 상대국가의 더 큰 양보를 통해 보상과 시간을 버는 성과(?)를 얻었다.

이런 북한의 협상전략은 드디어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이이서 지난 5월 2차 핵실험이라는 핵개발 프로그램을 진행시켜 왔다. 꿈을 현실로 바꾸는 계획은 지속되고 있다.

북한 핵은 대남용이다

북한이 핵개발을 본격화한 시기는 1990년대 초반부터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한다. 이 시기 북한은 남북한 간의 엄청난 경제력 격차라는 체제내적 충격과 사회주의권의 몰락이라는 세계사적 충격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남북한 경제력 격차의 확대는 재래식 무기경쟁으로 영원히 군사적 우위를 차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자각은 자연히 핵무기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핵무장이 재래식 무기개발 비용보다 저렴할 뿐만 아니라 단순에 군사적 열세를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매력 때문에 김일성․김정일 부자는 핵개발에 집착했고 무기체계의 본격적 전환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과 소련이 수교할 당시 세바르드나제 소련외상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영남 당시 외상은 '한소 수교를 하면 우리는 핵보유국으로 간다’라고 공언했다. 이는 북한이 세계사적 격변의 시기에 개혁과 개방이라는 순방향으로 전진보다는 핵개발이라는 역주행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증거 중의 하나이다.

북핵은 협상용이 아니라 오래된 꿈이며, 핵보유를 통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남한을 위협하고 협박하기 위한 무기라는 사실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처럼 북한은 핵개발에 일관되고 지속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그런데 북핵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은 매우 위험하기 짝이 없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의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은 오히려 북핵을 옹호하는 어이없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북한의 핵개발은 '미군 군산복합체의 음모론이다’, '북한 핵은 미국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협상용이다’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1차 북핵 위기가 발생되자 남한의 친북세력들은 '북한은 핵을 개발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2002년 이후 제2차 북핵 위기가 발생되자 이들은 '북한은 미국의 핵공격에 대비하여 자위력을 제고한 것이다’라고 북한을 적극 옹호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는 2006년 제1차 핵실험 이후 김대중 전대통령도 '북한 핵은 미국책임이다’라면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고 나섰다. 북한은 핵개발과 관련해서 국제사회와 약속을 수차례 위반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주장을 동의 반복하는 친북세력들의 행태를 어떻게 설명하여야 하는가?

북한이 자위력을 높이기 위해 핵개발을 하였다면 북한의 핵개발로 남한의 자위력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자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도 북핵문제의 심각성을 경시해 온 측면이 있었다. 우리가 최대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핵문제는 국제적 사안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우리 스스로 북핵의 위험성을 무시했고, 남북관계 개선 내지 발전이라는 명분 때문에 북핵문제는 늘 뒷전이었다. 또한 북핵에 대한 북한의 의지와 능력은 과소평가하고 미국 때문에 핵을 만든다는 북한의 선전선동전략에 속아 북핵의 심각성을 무시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북핵의 최대 피해자는 남한이다. 북한은 1998년 9월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한 후 동년 12월 5일 노동신문을 통해 미사일의 표적이 '서울, 동경, 워싱턴’임을 천명했다. 이 기사는 북한 핵이 근본적으로 남한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미사일이 핵무기의 이동수단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대미협상론은 북핵의 본질적 문제가 아니다.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집착은 가희 광적이었다. 1990년대 초반 수백만 명이 기아선상에서 허덕일 때에도 핵보유라는 절대절명의 목표를 향해 달려왔고, 북한은 어떤 보상으로도 핵 집착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협상론은 어떤 명분도 실리도 없다. 그리고 역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북핵은 협상용이 아니라 오래된 꿈이며, 핵보유를 통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남한을 위협하고 협박하기 위한 무기라는 사실은 명백한 사실이다.

대북정책 기조 바꿔야

지난 10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기조는 '교역을 통한 평화’ (peace through trade)였다. 정부의 교역을 통한 평화정책은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으로 파탄 났음에도 협상의 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반면 북한의 핵전략은 한미를 철저히 분리하는 양면전략을 추진해 왔다. 미국과의 협상에서는 시간을 버는 지연전술이었다. 북한은 2007년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2.13합의를 도출하였지만 합의문에는 핵무기를 폐기한다는 조항을 빼는데 성공함으로써 '현재의 핵’에 대한 면죄부를 얻고,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보너스도 챙겼다.

한편 남한과의 협상에서는 '민족은 평화다’라는 슬로건을 통해 남한의 대북지원을 민족적 의무로 인식시킴으로써 핵개발 재원을 마련하는 전술을 구사하고 남남갈등을 유발시켰다. 이런 북한의 핵전략은 평화라는 명목으로 핵개발 자금을 조달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그러나 남한정부는 어떤 정책기조의 변화도 강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화정책을 유지하는데 급급해서 안보정책을 포기하는 우를 범했다.

오마바 정부 출범과 함께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그 강도를 높여가면서 북핵문제가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다. 북한은 지난 4월 5일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고 곧바로 5월 25일에는 2차 핵실험이라는 강수를 던졌다. 북한은 핵기술을 국제사회에 과시하고 핵보유 국가라는 것을 국제사회에 자랑이라도 하듯이 계획된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있다.

1차 핵실험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교류․협력정책의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 … 우리는 생존을 위해 한미동맹체제를 강화하고, 지금까지 남북교류․협력의 행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이런 북한의 행태에 대해 우리정부는 그저 우물쭈물 하고 어떤 과단성도 없었다. 만약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한다면 대량살상무기방지구상(PSI)에 참여하겠다고 천명했지만 막상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수많은 핑계거리로 뒤로 미루는 안보전략의 부재를 보여주더니, 2차 핵실험 이후 마지못해 PSI에 참여하는 실망스런 모습을 연출했다.

물론 PSI 참여카드를 만지작거린 이유는 개성공단에 억류근로자가 걸림돌로 작용했지만 종합적 전략․전술은 분명히 존재하지 않았다. 바로 남북간의 급격하게 변화된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북한의 핵보유가 수면아래 가시화되지 않은 상태의 1998년 패러다임을 핵보유가 현실화된 2008년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이 정석인데도 계속 악수만 두었다.

우선 북한의 핵위협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한다.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교류․협력정책의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 북한은 1992년 한반도 비핵화선언 이후 17년 동안 국제사회와 남한을 철저하게 무시했고 앞으로도 비핵화라는 약속을 지킬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사실과 함께, 3-4년 내 핵무기를 실전배치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문제의 심각성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북한 핵의 실전배치는 한반도 파멸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핵무기에는 핵무기밖에 대처방법이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존을 위해 미군의 핵우산이 언제 어디서나 항상 가동될 수 있는 한미동맹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6월중에 개최되는 한미정상회담을 잘 활용하여 한미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북교류․협력의 행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북한은 개혁과 개방의 전초기지로 활용할 목적에서 개성공단을 건설한 것이 아니라 황색바람의 차단막으로서 공단을 개발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 그리고 개성공단은 북한이 배타적으로 행정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남한근로자를 인질로 삼을 수 있다는 사실도 직시하여야 한다.

따라서 공단개발은 남한 단독개발에서 국제공동 컨소시엄으로 개발방식을 전환하던지, 아니면 남북한의 행정력이 공동으로 미칠 수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개발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입주기업과 노동자들이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다.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은 폐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저자소개: 조영기 교수는 건국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와 한반도선진화재단 교육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현대북한경제론’ 외 다수가 있다.

조영기 /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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