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시민사회·지식인선언’
“여야 정치권이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정치자금법은 그렇게 잘 합의해서 신속히 처리하면서 정작 시급한 법안인 북한인권법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에 답답함을 넘어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사진 : 홍순경 위원장 >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의 말투는 결연했다. “야당의 의도적인 방해와 여당의 무관심, 적극성 부족으로 6년째 본회의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이 잠자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 홍 위원장의 말은 북한인권법에 대해 의지가 없는 정치권에 대한 일침이었다.
북한이 3대 세습을 강행하며 2012년 강성대국 완성을 위한 후계체제 확립에 박차를 가하는 것과 동시에 북한 급변사태의 가능성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최근 북중 국경지대에 잠복 전문 특수부대를 투입하고, 남한 방송이 나오는 TV와 라디오, 휴대전화를 색출, 압수조치 하는 등 북한 당국이 내부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체제의 작은 틈을 통해 탈북은 이어지고 있다.
북한의 인권유린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민심이반을 두려워 한 북한 당국이 체제단속의 고삐를 쥐면서 인권상황이 더욱 열악해졌다는 증언들이 나오면서 북한인권법의 당위성이 부각되고 있다.
북한인권법은 현재 북한의 실질적인 인권을 개선시킬 수 있는 압박의 수단으로써, 그리고 통일 이후 북한 주민들과의 국민통합의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그러나 정치권은 각기 정략적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하거나 외면하고 있다.
< 사진: 선언 및 기자회견 모습 >
3월 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는 이 같은 정치권에 실망한 탈북자와 지식인, 시민사회 대표 등이 모여 “북한인권법 상반기 통과를 위해 적극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더 이상 정치권에만 맡겨두지 않겠다는 뜻과 함께 구체적 행동에 돌입, 북한인권법 통과를 관철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들은 '북한인권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시민사회·지식인선언’을 결성하고 여야 정당 측과의 면담은 물론, 공개질의서 및 항의서한 발송, 입법청원을 위한 가두캠페인 등,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인권법은 지난 2005년 발의됐다가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반대로 자동 폐기된 후 지난 2008년 재발의 됐지만,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에서 법사위원회로 넘어간 지 1년이 지나도록 계류 중이다. 여야의 입장차가 워낙 큰 탓이다. 한나라당은 이번 임시국회 중 법안 처리를 목표로 한다는 입장. 하지만 민주당은 '북한을 자극해 남북관계를 경색시킬 수 있다’며 법안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특히 북한인권법 제 14조, '정부는 북한주민지원과 북한주민인권증진 관련 민간단체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민간단체에 대하여 그 활동에 필요한 경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조할 수 있다’는 조항은 민주당 등이 가장 반대하고 있다. 대북전단이나 대북 라디오방송 등 북한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업들은 민간 주도로 이뤄져 왔다. 북한은 이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7일에는 남북장성급군사회담 북측 단장 명의의 통지문을 통해 '대북전단의 발원지인 임진각 등을 조준사격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시민사회·지식인선언은 “북한의 참혹한 인권상황에 눈 감는다면 어떻게 한국이 인권선진국이라 불릴 수 있겠느냐”며 국회의 자성을 촉구하는 한편, 다양한 통로로 압박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시민사회·지식인선언은 북한인권법이 표류하는 일차적 책임은 민주당 등 야당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지난 2월 임시국회의 문을 열고도 국회 법사위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까닭은 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발목잡기 때문이며 민주당과 민노당이 '북한인권법이 통과되면 남북관계가 파탄난다’고 반대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권세력, 민주화세력을 자청하는 야당과 제야 인사들이 북한 인권에는 유독 반민주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문제를, 더욱이 통일 이후 중요해질 북한 인권문제를 정치적으로만 바라봐선 안 된다”는 거센 질타가 쏟아졌다.
이재교 시대정신 상임이사는 “남북관계 경색 주장은 희안한 논리”라며 “북한 당국자들 편하자고, (반발하는 북한 당국에 시달릴) 남한 당국이 덜 피곤하자고 당장 북한 주민들이 죽어나가자는 걸 눈감자는 얘기냐. 이렇게 이기적이고 편의주의적인, 안일한 생각이 어디 있느냐”고 통렬히 비판했다.
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도 “인권의 사각지대에 빛을 비추자는 이 법안을 외면하고 당리당략에 따라 미루는 건 창피한 일”이라며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인들이 정반대의 행동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여당인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입으로만 북한인권법을 외치거나 '야당이 반대하니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게 시민사회·지식인선언의 지적이다. 다수의석을 차지한 한나라당이 법안에 대한 여론을 모으고 야당을 설득해 초당적 협조를 구하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드러낸 것.
제성호 중앙대 교수는 “북한인권을 개선하고 원칙있는 대북정책을 펼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의지, 무능력,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NGO에서 알아서 하란 식의 태도를 보이니 너무 무책임하다. 왜 북한 인권을 이념 대결의 구도에서 다루느냐”고 되물었다.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역시 “팔짱끼고 앉아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훗날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겠느냐”며 “이 법안이 통과하지 못한다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지식인선언은 “아랍의 민주화 도미노를 통해 그 어떤 철권 통치자도, 그 어떤 폭압적 독재자도 민주화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음을 확인했다. 북한인권법 제정이 이러한 흐름의 물고를 트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리비아에 이어 인류의 시선이 북한에 쏠리고 있는 지금, 국회는 북한 동포들의 생명과 인권을 위해 북한인권법 제정에 앞장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는 “외부 세계뿐만 아니라 내부 주민들 간의 정보가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는 북한주민들에게 한국에서 송출하는 대북 라디오 방송, USB, DVD, 대북전단 등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희망인데, 북한인권법이 이같은 북한 내 정보자유화를 확산시키고 김정일의 인권탄압을 억제할 수 있다”며 “북한인권법을 반대한다면 역사의 법정에 '북한 동포들의 처절한 외침을 외면한 죄인’으로 서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시민사회·지식인선언은 이날 기자회견 직후 여권의 고위관계자와 북한인권법안 통과와 관련된 비공개 면담을 가졌으며, 민주당 등 야당 관계자와도 면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 공개질의서 및 항의서한 발송, 북한인권법 입법 청원 가두 캠페인을 진행하고, 법사위, 특히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지역구를 찾아가 법안 통과를 요청하는 한편, 오는 11일 민주당사 앞에서 집회를 열 계획이다.
< 사진 : 시민사회·지식인선언 참여자들 >
한편, '북한인권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시민사회·지식인선언’에는 김석우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장, 김정호 자유기업원장, 박범진 미래정책연구소 이사장,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 유세희 한양대 명예교수, 이재교 시대정신 상임이사, 이하우 88올림픽위원회 사무총장, 전인영 서울대 명예교수, 제성호 중앙대 교수, 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최승노 자유기업원 대외협력실장, 최홍재 자유주의포럼 공동대표,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등이 범보수우파 성향의 지식인 및 탈북자, 북한인권 관련 단체 대표 등이 참여했다.
변윤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