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정치권에서의 개헌논의는 항상 권력구조 개편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헌법규정이다. 우리 헌법에는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장치가 아주 미흡한 실정이다. 현재 개헌 관련 논의는 정부의 자의적인 개입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정부의 개입을 강화하는 것이 아닌 자유와 번영을 약속하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

 

정치권, 권력구조 개편에만 관심

정치권에서 개헌논의가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18대 국회 전반기에는 국회의장 주도로 `국회헌법연구자문위원회`가 구성되고, 여야 의원 180여 명이 참여한 `미래한국헌법연구회`가 개헌논의의 불씨를 지폈다. 하지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개헌논의가 시큰둥하다가 여당 일각에서 이를 열정적으로 재개하고 있다.

정치권의 개헌논의에서 늘 중심에 있는 것은 권력구조 개편을 추구하는 개헌론이다. 논의의 출발은 장기집권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한 대통령 5년 단임제이다. 제왕적 권력집중, 막강한 권좌를 차지하기 위한 정치적 경쟁, 퇴임 후의 직간접 보복 등의 폐해를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이 부작용을 막을 권력구조의 대안으로 분권형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등이 정치권에서 제시되고 있다.

대통령 단임제에서는 장기적인 정책을 추진할 수 없다는 이유로 4년 중임제를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권력 집중 등 그 폐단이 장기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때문에 대통령의 권력 분산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 '부통령제’를 둘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중요한 것은 국가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규정

권력구조를 개편하여 이상적인 '민주헌법’을 만들겠다는 정치권의 개헌론 그 자체는 나무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권력구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부의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규정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헌법경제학이 보여주고 있듯이, 아무리 권력구조가 이상적이라고 해도 정부권력을 제한하는 헌법규정이 없으면, 지지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경쟁은 필연적으로 정부의 개입과 규제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정부지출이나 적자예산의 헌법적 제한이 없으면 정치적 논리에 따라 정부부채의 증가도 필연적이다. “적자 속의 민주주의”라는 뷰캐넌(J. M. Buchanan)의 유명한 말은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이 없는 민주정치의 치명적 결함을 가장 적절히 표현한 것이다.

현행 한국헌법의 치명적인 결함은 경제에 대한 정부의 자의적인 규제와 간섭을 효과적으로 제한하는 헌법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헌법 제119조 2항이 보여주는 것처럼 헌법은 정부에게 간섭권한을 거의 무제한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같은 헌정질서로 중앙집권의 강도가 점차 심화되어 지방자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정부지출과 부채도 급증하고 있다. 규제는 우리 경제를 겹겹이 포위하고 있다. 헌법을 통해서 국가권력을 효과적으로 제한하지 못하면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는 입법과 경제정책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정치권의 개헌론이 이 같은 사실을 간과하고 권력구조에만 치중하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개헌론이 주장하는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병폐도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규칙이 없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4년 중임 대통령제가 장기적인 '원칙의 정치’를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헌법을 통해서 보장할 경우에만이 가능하다.

우리 헌법, 민주헌법이지만 자유헌법은 아니다

우리헌법은 '민주헌법’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떤 정책도 다수의 지지가 없으면 그 실행이 헌법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자유헌법’은 아니다. 국가권력의 자의적인 행사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헌법적 장치가 아주 미흡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세계 상위권이지만 경제자유 지수는 중위권이라는 '프레이저 연구소’나 미국의 '헤리티지재단’의 보고서는 우리의 헌정질서를 또렷하게 반영하고 있다. 우리가 일인당 소득 3만 달러, 4만 달러의 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으려면 헌법을 자유헌법으로 고쳐야 한다.

독일 기본법 개정의 의미

헌법개정과 관련하여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독일이다. 두 가지 오랜 질병에 시달리는 '병든 연방국가(der kranke Bundesstaat)’라고 불려진다. 질병 하나는 주(州)정부의 자율성과 독립성의 상실에서 비롯된 '경쟁적인’ 연방주의의 실종이다. 다른 하나는 고질적인 적자예산과 부채의 증가이다. 이 질병의 뿌리는 중앙집권화와 적자예산의 증가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헌법장치의 부재이다.

그러나 독일 정치권은 여러 해의 길고 긴 진지한 논쟁을 거처 2007년에는 주정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독일 기본법을 개정했다. 이어서 2009년에는 늘어나는 중앙정부의 부채증가를 막기 위하여 '구조적’ 예산적자를 GDP 대비 0.35%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조항을 기본법에 새로이 도입했다. 헌법을 통해서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려는 이같은 노력은 경제사적으로나 헌법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자유와 번영을 약속하는 개헌이 되어야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나라 정치권의 개헌론은 말이 좋아 권력 분산이지 사실상 '권력 나누어먹기’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여당의 유력 대선후보 측이나 야당, 그리고 특히 시민들이 개헌론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 같은 인상때문인 듯이 보인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새로운 인권, 기후변화, 정보화 사회 등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는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이것도 정부의 개입주의를 억제하기 위한 개헌이라기보다는 경제사회의 '자생력’을 의심한 나머지 그 개입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개헌이라는 것을 우리가 유의할 필요가 있다.

권력구조 개편을 밀어붙이기 식으로 접근하는 대신에 '정부는 문제이지 해법이 아니다’라는 하이에크(F. A. Hayek)의 명언을 되새기면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자유와 번영을 약속하는 개헌에 진지하고 겸허한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민경국 / 강원대학교 교수, 경제학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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