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8일 상공회의소에서 하이에크소사이어티의 주최로 한국 자유주의의 위기와 미래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의 자유주의가 위기에 처한 원인은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정부의 임무와 과제는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를 하였다.

개인숭배적 전체주의에 위협받는 자유주의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 원장은 “한국 사회는 북한 전체주의와 대치하는 사회”라며 대표적으로 “핵 문제나, NLL 문제, 천안함 사건 등의 문제가 공산 전체주의와 관련하여 영향받은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에 황수연 교수는 “북한 전체주의가 자유주의를 훼손하는 것을 차단하는데 자유주의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유주의와 보편적 복지, 양립할 수 있는가?

신중섭 교수는 “무상급식이 정치적으로 이슈화되고 있다”며 “정치가들이 사회 복지 혜택을 최저 빈곤층만이 아니라 중산층으로 확대시키는 선거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가들이 중산층까지 서민에 포함시켜 70%를 유권자를 포퓰리즘 정책으로 설득하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이념의 옳고 그름이 투표를 통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복지정책의 확장은 민주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추세”라고 하였다.

이에 정기화 교수는 “보편적 복지의 확대가 경제의 침체를 낳고 이러한 경기악화가 복지지출을 증가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사진:명지대 조동근 교수>

상생과 동반성장 정책은 시장경쟁을 침해해

조동근 교수는 “우리나라는 OECD에 비해 개인소득세 비중이 낮으나 법인세 비중은 상당히 높은 편인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사회보장관련 세 비중은 1980년 1.1%에서 2000년에 16.7%, 2005년 통계에서는 21%를 차지하여 OECD 복지지출 평균과의 격차를 좁혔다.”고 강조했다. 또한, 조 교수는 “중소기업의 보호육성 등 공정정책은 효율적인 기업의 참여를 제한하여 시장경쟁을 침해한다”고 지적하였다.

왜 작은 정부이어야 하나?

현진권 교수는 “정부팽창은 본질적으로 경제성장과 자유주의를 저해한다”며 “정부의 조세확충을 제한하는 법률을 헌법에 명시하여 정부팽창을 견제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현 교수는 “공기업을 통한 정부팽창을 차단하기 위해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대중들이 큰 정부의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대국민 교육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3부로 진행된 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은 대체적으로 현 정부에서 추진하는 친서민 정책, 공정사회정책을 반시장적이며, 포퓰리즘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한국 사회는 서독과 동독의 사회와는 달리 북한의 전체주의 영향력을 광범위하게 받았고 이는 자유주의를 훼손하는 원인이 되었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 '자유주의 위기’는 극복해야 할 사안인 것으로 보인다. 전체주의 포퓰리즘에 영합하는 정책은 경제 회복도, 공정사회 구현도 한낱 구호에 불과하게 된다.

김신영 /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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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5일 토요일 오전 9시 30분부터 송파문화원에서 [한국의 길:네 가지 기본 모델]를 주제로 한 전문가 토론이 열렸다. 원탁토론아카데미(원장, 강치원 강원대 교수)가 주최하는 이 토론회는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양동안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오세철 교수 (전 연세대학교 교수), 주대환 (사회민주주의 연구소)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으며, 아래와 같은 주제들을 중심으로 한국경제의 앞날에 대해 토론하였다.

 

1) 자본주의의 총체적 위기에 맞서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와 공산주의자의 과제 오세철 (전 연세대학교 교수)

2) 한국사회에 사회민주주의는 왜 필요한가?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3) 한국의 방어적 자유민주주의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4) 왜 자유주의인가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토론자들은 우리사회 진보와 보수의 대표적인 논객들이어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보수vs진보 맞짱토론] No.3 한국의 길:네 가지 기본 모델 1부 

[보수vs진보 맞짱토론] No.3 한국의 길:네 가지 기본 모델 2부 

 

 

 

진행자 : 강치원 (강원대학교 교수)

               토론자 : 오세철 (전 연세대학교 교수)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주최 : 원탁토론 아카데미

 제작 : 자유기업원 프리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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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와의 '까칠한'대화>  No.1 무상급식 논란의 자유주의적 해법은 무엇인가?
 

“차별없이 무료로 급식을 하자는게 포퓰리즘이라구요?”

 대학생들의 도발적 질문에 자유주의자들이 입을 열었다.

 무상급식은 의무교육의 연장으로 보는 게 옳다는 주장의 대학생들과

점심값을 부담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까지 밥값을 지원하는 건 비효율이라는 자유주의자! 

그들의  긴장감 넘치는 대화!



 

※ 자유기업원, 이데일리TV 공동제작 <자유주의자와의 "까칠한" 대화> 방송안내

      프리넷뉴스 : 매주 월요일 (www.fntv.kr > 시사포커스 > 자유주의자와의 까칠한대화)

      이데일리TV : 매주 금요일 오후 8:00 (스카이라이프 525번, 지역케이블은 지역 케이블사에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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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 운동에 앞장서다>




자유주의 진보연합은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소개 좀 해주시죠.

일단 저희는 각 시기마다 사회적으로 가장 크게 이슈가 되는 것을 논평이라든지 성명을 발빠르게 발표하고 있습니다. 많게는 한달에 20건 정도 올리고 있습니다.

왠만한 일에 대해서는 다 논평을 내시는 군요.

그렇습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참 자유주의진보연합이 모든 것에 발빠르다고 평가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다 보니까 좌파시민단체라든지 좌파성향의 시민들한테 뭇매도 많이 맞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요?

가장 심했던 게 김대중 대통령 서거했을 때 입니다. 그때 저희가 논평을 한줄 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고인의 성과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을 하지만 지역정치를 이용해 한국을 분할시켜 놓은 것이나 반 헌법적인 면들, 북한 문제 등은 역사에서 정당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논평을 냈습니다. 그때 아주 홈피가 다운되도록 욕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날 KBS 9시 뉴스에서 저희 논평이 화면에 잡혀서 나갔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에 관해서 사회적으로 표가 엇갈린다는 보도를 이끌어 낸 것입니다.

최근 논평 내신것 들 중 소개해 주실 만한게 있으시다면요?

저희 논평이나 활동에서 가장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것이 사법개혁 문제인데요. 저희가 지난 8월에 우리법 연구회 회원들의 명단을 발표했었어요. 그 명단을 발표하면서 우리법연구회의 즉각적인 해체와 이를 묵인하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반성촉구 등을 유도했습니다. 끊임없이 작업한 결과 한나라당에서 사법부 개혁에 대해서 세게 밀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저희활동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만 사법부 개혁 문제가 사회적으로 공론화 되어 있었는데 저희가 꾸준히 싸워왔던 것들이 밀알이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속해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강금실 전 장관이라든지 노무현 정권과 실질적으로 인맥이 닿아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었구요. 이용훈 대법원장 같은 경우도 우리법 연구회의 지지를 받고 취임을 했거든요. 때문에 우리법연구회 사건이 터져도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겁니다.

실제로 저희는 연일 이어지는 좌편향 판결들의 배후에 우리법 연구회가 포진해 있다고 보고있습니다. 판사 개인들의 개인적 신념에 의한 판결이라든지 이런것은 우리법 연구회가 끊임없이 주장한 것들이지 않습니까.

저는 참 납득이 안되는 것이 판사가 법에 따른 판결을 해야지, 신념에 따라서 판결을 하는지 이해가되지 않습니다.

그게 어떻게 보면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이 모든걸 과학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양심보다 법이앞이죠? 그렇습니다.

작년 7월에 만들어 졌는데 벌써 상당한 이름을 얻으셨어요. 축하드립니다. 진작 나와야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보수라든가 자유진영이 옛날부터 흐름은 있었지만 그게 명확하지가 않았잖아요. 그런데 자유주의 진보연합이 그걸 분명하게 정제된 원칙 같은걸 들고 나오시는 거죠. 그런 면에서 민노동하고 상당히 많이 부딪칠 거 같아요. 요즘 민노당 퇴출운동도 하고 계시던데.

민노당 문제는 참 답답한데요. 저같은 경우도 85학번이거든요. 그래서 소위 386세대에 속해있고, 당시에 운동권에 속해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까지 하면서 대한민국에 몹쓸 짓을 많이 했습니다. 당시의 학생운동 노동운동이 제가 경험한 바로도 사회주의 운동이었고 공산주의 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소련이 망하고,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면서 그때 많은 갈등을 했었습니다. 그 결론은 우리가 갈길은 사회주의가 아니고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맞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간 우파운동을 하면서 빚갚음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구요.

아무튼 저희도 그당시 활동을 하면서 학습을 많이 했지않습니까. 그런데 민노당 홈페이지의 강령들을 살펴보면, 그때 당시 학습했던 내용이 그대로 들어가있습니다. 제국주의, 착취, 민족, 노동 이런 것들은 마르크스 레닌의 제국주의론이나 자본론에 입각한 표현들입니다. 사실 말로써 혁명을 얘기하지 않을 뿐이지 사회주의 혁명과 같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식으로 운영한 나라들은 거의다 망했죠?

네 그렇습니다. 망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는 과거의 마르크스 레닌주의자들이 아직도 진보라는 가면을 쓰고서활동하고 있는데 상당히 안타깝죠.

그래서 민노당 퇴출운동을 하고 계신건가요?

민노당은 사실 위헌정당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얘기합니다. 이는 자유주의 시장주의를 부정하겠다는 것이거든요. 대한민국 헌법에는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를 명백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반 헙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민노당이나 진보당은 사회적으로 위헌정당으로 판단해야 한다고생각합니다.

위헌정당으로 소송을 내실 생각은요?

네 사실 그럴 생각도 있습니다. 독일에서도 그런 사례가 있습니다. 





<'진보’를 되찾아 오다
>



저는 자유주의 진보연합이 만들어 졌을때, 참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진보'라는 말이 좌파에서 많이 쓰이는 단어잖아요. 그런데 우파에서 진보라는 말을 가져오신거잖아요. 어떤 의도이셨는지, 그 효과는 어땠는지 말씀해 주십시요.

일단 진보라는 개념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예를 들어 생명체의 경우도 시대적 환경에 부응하면 성장하고 발전하고 진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퇴보합니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듯이, 철학이라든지 사상 이념같은 경우도 시대적 환경에 부응하면 그것이 진보가 되는 것이고, 시대적 환경에 부응하지 못하고 뒤쳐지면 그것이 좌익이든 우익이든 퇴보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에 진정으로 적응하는 철학은 분명코 자유주의라고 생각하고 있구요. 그런 의미에서 자유주의만이 진정한 진보인데, 어떻게 좌파들이 우파들을 비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들이 수구이고 꼴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20세기의 낡은 정치사상을 그것도 1990년도에 사회적으로 틀렸다고 판명된 사상을 고수하면서 활개를 치고 있는 거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진보는 분명히 자유주의자들이 가져와야 되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잘못 가있던 진보라는 이름의 잘못된 주인에게서 그것을 가져오신거죠. 아주 당연한 이름을 가져오신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사실 이것은 역사적으로도 드러난 사실이지 않습니까. 혁신이든 보수든 자유주의와 함께 할 때는 진보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보수든 혁신이든 자유주의와 멀어졌을때는 엄청난 멍에를 뒤집어 썼습니다. 그 큰 예가 러시아 혁명입니다. 과거 우리 대한민국 같은 경우도 주체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을 진보라고칭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이해하기로는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이 역사발전 단계를 세웠었고, 궁극적으로는 공산주의로 발전을 해나간다는 것인데, 그래서 그 방향대로 가는 사람들은 역사의 흐름대로 가고 있다 이래서 '진보'라는 말을 쓴 것 같아요.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그렇게 갔던 나라들은 퇴보를 하고, 오히려 역사를 원시사회로 되돌려 놨죠. 그렇기 때문에 자유주의가 '진보'라는 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원래부터 진보라는 말을 쓰던 좌파쪽에서 뭐라고 하지 않던가요?

그때 대단했었습니다. 창립 이후 좌파 언론들같은 경우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보도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들이 저희를 많이 키워줬습니다. 그들을 방어하고 공격하는 과정에서 저희 스스로도 자리를 잡아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많은 어르신들이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내가 여태동안 살아왔던 사회가 진보인데, 저들한테 꼴통소리를 들으며 살아왔었다. 그런데 이제야 시원하다"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최대표님은 운동권에 계셨다고 하셨는데 개인적으로 자유주의 진보연합을 만들게 된 경위가 어떻게 되세요?

뉴라이트전국연합에서 초창기 멤버로 활동했고, 2005년 6월 3일 김진홍 목사님과 임헌조 사무처장 이렇게 세 명이 발기인 대회를 치루고, 뉴라이트전국연합을 계속 해오다가 덩치가 너무 커지다 보니까 변화무쌍한 좌파단체들의 전술에 대해서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슬림한 조직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저하고 임헌조 사무처장 등 몇 명이 모여 청장년층 위주의 단체를 만들어 목소리를 내보자라고 생각해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회원은 어느정도 되세요?

50분 정도 계십니다.

다들 적극적으로활동하시나요?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계신분들도 계시고, 뒤에서 암묵적으로 물질적 후원을 해주시는 분들도 있고 저희같이 앞에 나가서 싸우는 분들도 있고 그렇습니다. 주로 논평과 성명서 배포를 위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근데 지금 우파 또는 자유주의 단체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따로 만드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속하다는 점 때문인가요.

우파 시민단체들은 더더욱 많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파이는 정해져 있는게 아닙니다. 자꾸 많이 만들어서 우파적 가치를 사회에 계속적으로 확산시켜 나가야 하고 사실 좌파 시민단체에 비해서 우파 시민단체의 활동은 미약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가치를 국민들에게 많이 심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활동을 해야 정치권력획득의 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습니다. 사실 좌파 단체들이 잘한다고 생각하는 점은, 대한민국 사회에는 우파적 사고가 지배적이지만 지난 10년간 두 번의 선거에서 졌거든요. 다른데서 진것이 아니라 활동에서 진 것이라고 봅니다. 무언가 강렬하게 쟁취하고자 하는 활동가 집단이 많아야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 말로 직업적 혁명가, 우리 말로는 직업적 활동가들이 많아야 겠네요.

저희가 지난 2번의 선거에서 얻은 교훈이 그거잖아요. 또 저희단체에서 제가 가장 나이가 많은데요. 주로 30대 40대 초반의 친구들을 타겟으로 한 단체가 필요하지 않겠나 하는 의미에서 차별성을 두었습니다.

굉장히 기민하게 젊은 사람들의 기호에 맞는 구호라든가 성명들을 내실 수 있겠어요. 그런 만큼 살림은 어려우시겠어요.

물론 어렵긴 하지만, 회원분들 중에 기업가분들도 많이 계시고, 저희가 한 달에 한번씩 신문광고를 내보내는데요 이때도 돌아가면서 한분씩 책임을 져주십니다. 그래서 매달 대응할 수 있는 여건이 되고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참여연대가 많이 부러웠던 것이 회비로 자금 충당이 많이 된 점입니다. 자유주의 진보연합이 그런 형태인가봐요. 참 부러워요. 참여연대 등의 단체를 보면서 우리 보수단체들도 저걸 좀 배워야 한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활동가들이 사실 살림적으로 안정이 되어야 합니다. 참여연대 같은 경우는 월 수익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희 같은 경우는 빠듯하게 살아가다 보니까 좀 어렵죠.

최대표님이 이제 그런 역할을 하셔야 되는 거죠. 그쪽 진영보면 박원순 변호사라고 하는 아주 걸출한 좌파운동 사업가가 있더라구요. 그분이 자금을 조달하시고 조직을 꾸려나가고 계시죠.

사실은 박원순 변호사 혼자 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경우는 사실 그런 것들을 조직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마인드가 되어 있던거죠. 어떠한 사상이라든지 이념, 마인드에 입각해서 지원한 것입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어떠한 경우를 통해서라도 지원을 해 줄 수 있거든요.

노무현 정권의 경우는 자기 옆에 있는 측근들을 대거 청와대나 정권 기관에 데려갔구요, 데려가지 못한 사람들은 시민단체를 만들어 지원했습니다. 즉, 좌파 운동을 했던 모든 사람들에게는 혜택을 준 것이죠. 어떻게 보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단결력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것을 보면 참 역설적이에요. 어쩌면 주장하고 있는 논리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되기도 하는데, 좌파 같은 경우는 국가를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고 뭔가를 해야 되는 것으로 이야기를 하니까 그 정권이 집권을 하면 국가가 할일이 많아지는 거고 그 말을 했던 사람들에게 보상도 해주는 거고 그렇게 되는 거죠, 그런데 보수집단들은 국가에 많은 요구를 안하거든요. 따라서 집권을 해도 얻어지는 것도 별로 없구요.

사실 정권에 별로 요구하는 것은 없습니다. 사실 저도 시민단체에 몸담고 있지만 사실 시민단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시민단체 활동하는 이유는 좌파 시민단체에 자유자재로 대응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고요. 시민단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얘기하는 이유는 국가에서 지원받는 시민단체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가에서 지원을 받으면 공무원에 불과한거죠. 저희가 안받아야 좌파단체들도 안받습니다. 시민들의 인정을 받아 지원을 받아 살아남는 단체들만 살아남아야 한다고생각합니다. 




<젊은 보수, 자유진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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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진보연합이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말씀하시는 자유는 어떤 의미인가요? 자유주의나 자유지상주의 중 어떤 쪽이십니까.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자유주의라면 사회구성원 개개인들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 사회적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신념이잖아요. 그리고 그것은 자유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향하구요. 저희가 말하는 자유주의는 이정도의 자유주의입니다. 구체적이고 학문적 자유주의 내용은 원장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저희는 자유시장경제주의, 법치주의의 확립을 추구합니다.

법치주의 같은 경우도 전교조나 민노총등의 불법적활동으로 법치를 능멸하고 있지않습니까. 일단 자유주의자들이라면 이런 것들과 1차적으로 맞서 싸워야한다고 생각하고 이런 의미에서 자유주의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정말 모든 분야에 있어서 성명을 내놓으시더라구요. 정말 대단하시고 부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깊이는 조금 부족하구요. 저희 같은 경우는 사회주의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지 사회전반 속에서 어떤 것이 이슈가 되고 어떻게 대응될 것인가에 대해 나름대로 좌파한테 배운 것들이 있는 거죠. 사실 정치적 기술이라는 것은 가치중립적인 것이고,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또한 정치라는 것은 옳고 그름의 싸움이 아니고, 기술의 문제입니다. 옳고 그름의 싸움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될 수가 없었죠. 러시아 혁명을 봐도 알지 않습니까. 그때 당시의 러시아 혁명은 성공했습니다. 장미빛 환상에 넘어간 실험이었던 거죠. 그 결과는 참담했잖습니까.

지금은 거짓말로 다 판명이 되었는데, 아직까지도 그것을 주장하는 걸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한명숙 총리 재판의 경우도, 만약에 한명숙 전 총리가 아니라 정운찬 총리가 저자리에 있었다면 인터넷에 난리가 났을 겁니다. 지금 인터넷 여론은 조용합니다. 우파들이 이렇게 아무 일도 안하고 있다는 겁니다. 바꿔생각하면 좌파들이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진짜 그래요? 조직적인 뭔가가 뒤에 있습니까?

저는 많다고 보고요. 지역적으로 좌파들은 많은 조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파들은 서울에 몇 군데에 불과하지만 인천같은 경우는 어떻게 정리가되냐면, 지역적 상황이 벌어지면, 언론사에서 취재를 나갑니다. 그때 유일하게 현장에 있는 단체는 좌파입니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면 좌파의 이야기만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시민단체는 좌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거죠.

이것이 지금 386 세대들이 굉장히 죄를 짓고 있는 건데요. 그들 대부분은 자신이 사회에 빚을 졌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기업에 취직을 하고 자리를 잡았어도, 죄책감에 시달려서 밤마다 인터넷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나왔지 않습니까. 이아이들 대부분이 386세대 사람들의 아이들이거든요.

그게 훌륭한 일이고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하겠죠. 근데 그게 잘못된 건데.

참 걱정이 많습니다. 문제는 이들 자녀들도 나름대로 좌파적인 반 대한민국적인 사고를 많이 받았거든요.

대학생들은 좀 괜찮지 않나요?

아닙니다. 대학생들도 386세대들의 자녀들입니다.

하시고 싶은일이 많을거같은데요 예산이 없어서 못하는일, 돈이 많다면 우리나라를 위해서 꼭해야한다는 일이 무엇인가요?

저희는 지역조직을 많이 만들고 싶어요. 풀뿌리시민운동이라고 좌파들 같은 경우에 1985년도 지방자치가 다시 부활하면서 풀뿌리운동을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역에서 끊임없이 운동하면서 지역시민들과 결합하고 힘을 발휘하고 있는데 우파들 같은 경우는 전혀 그렇게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돈이 많다면 각 지역마다 특히 좌파성향시민단체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지역에 지역조직을 만들어서 대항할 시민단체를 키우고 싶어요.

해외조직건설도 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2012년이 다가오고 있지 않습니까. 제외동포에게 선거권이 주어지는데 미국에만 120만동포가 거주하고 있고 그중 80%가 투표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90만 동포중 80%가 투표권을 가지고 있고요. 아시다시피 2000년 노무현 정부 표차이가 40만정도 박빙이었는데 재외동포가 가지고 있는 투표성향은 엄청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근데 저희가 알기로 좌파단체는 이미 이 작업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러니 저희도 빨리 여기에 대응하는 해외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재원이 없어서 힘든 실정입니다.

기부와 모금에서 신용을 쌓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최대표님처럼 젊은 나이에 시작했으니 조금만 하시만 신용이 쌓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청취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대한민국은 심각한 이념내전에 휩싸였다고 생각합니다. 북한동포를 굶겨죽이면서 핵무기 개발에 연연하는 김정일 집단, 그리고 합법적으로 선출된 현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좌파세력들. 이들이 이념내전을 부추기는 세력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진보라고 자처하고 있고, 언론인,지식인들조차 이들을 진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은 진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해방 이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태어난 대한민국이었지만 잘살아보자는 의지로 자유롭고 번영된 대한민국을 이뤄낸 부모님, 선배님들이 진정한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30,40대가 부모님들이 만들어낸 첫번째 수혜자들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에게 무거운 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들이 만든 부강한 대한민국을 후배들에게 전해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따라서 더욱더 열심히 해서 자유적 가치를 확산시켜서 대한민국이 일류국가로 가는데 나름대로 하나의 디딤돌이 되고 싶습니다.

자유주의진보연합이야 말로 제대로 된 진보라고 생각되네요. 젊은 조직이다 보니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각 지역과 해외마다 지부가 있는 큰 시민단체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진짜 진보가 무엇인지, 그리고 자유주의가 진짜 우리나라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는 생각에 모두가 동의하는 그런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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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릴레이식 시국선언이 한창이다. 과연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인가?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사회제도를 말한다. 그러나 시국선언자들은 좌파적 정책이 좋다고 여기는 거의 모든 것을 민주주의로 표현하고 그들이 나쁘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민주주의 위기로 기술하고 있다. 이들은 민주주의 진의를 변질시켜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위기는 평화적으로 선거에 의해 창출된 정당한 정권을 불법적으로 밀어내고 권력을 차지하고자 하는 직설적 선동에 있다. 이러한 선동은 민주주의를 훼손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릴레이식 시국선언이 한창이다. 시국선언문의 공통된 내용은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진단과 그리고 그런 위기를 말해주는 근거이다. 민주주의라는 말을 그토록 수없이 반복적으로 이용하는 시국선언문도 드물 것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참뜻에 비추어 민주주의 위기론에서 사용하고 있는 민주주의 개념의 문제점을 찾으면서 위기론의 허와 실을 밝히는 일이다. 그래서 우선 그 참뜻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참뜻은 무엇인가?


언어는 생각이나 느낌을 음성이나 문자 등으로 전달하는 수단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우리가 본 사물이나 주변 환경 등을 표시한다. 그러므로 언어는 세상에 대한 해석이다. 그래서 언어는 우리의 행동을 안내하여 불확실한 세상에서 우리의 삶의 개척을 용이하게 한다.

그리고 언어는 그 의미가 분명해야 한다. 특히 언어는 중요한 정치적 귀결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이에크(F.A. Hayek)가 그의 유명한 『치명적 자만』에서 공자(孔子)의 "만일 말이 옳지 않으면 … 국민은 손발 둘 곳이 없어진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어휘의 정확한 의미의 중요성을 강조하듯이, 말이 의미를 잃게 되면 우리는 손과 발을 움직일 여지가 없고 그래서 자유를 상실하게 된다.

민주주의의 진의(眞意)는 무엇인가? 민주주의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폴리스에서 유래했는데, 고대 그리스어의 데모스(Demos, 시민)와 크라티아(Kratia, 권력 또는 지배)의 합성어, 데모크라티아(democratia, 시민에 의한 지배)가 그 어원이다. 전통적으로 다수결에 의해서 지배자를 정하고 바꾸는 절차, 집행할 정책이나 법을 결정하거나 바꾸는 절차나 방법을 기술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지배의 내용이나 법, 그리고 정책의 내용을 기술하는 어휘가 아니다. 하이에크가 『법, 입법 그리고 자유』의 제3권 「자유인을 위한 정치질서」에서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지에 따라 정부의 의사결정을 위한 방법이나 절차를 지칭하는 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미제스(Mises)도 자신의 저서 『인간행위(Human Action)』에서 민주주의란 다수의 의지에 맞추어 정치를 평화적으로 조절하는 절차를 기술하는 어휘라고 말하고 있다. 칼 포퍼(K. R. Popper)도 『열린사회와 그 적들』제2권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 피지배자에 의해서 지배자를 교체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사회제도가 민주주의라는 것을 강조한다. 투표에 의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민주주의 제도야말로 인류역사의 소중한 성취이다.

그렇다고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을 의미하는 민주의의가 문제가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나 법의 원천을 규정할 뿐 그 권력이 행사할 내용은 규정하지는 못한다. 뷰캐넌(J. M. Buchanan) 등이 지적하듯이 민주주의에 내재한 문제는 두 가지이다. 체계적으로 큰 정부를 야기한다는 의미의 '레바이어던(Leviathan) 문제’와 대표자들이 자신들을 뽑아준 시민들의 열망과는 관계없이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주인·대리인 문제’가 그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제도로서 헌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헌법은 효과적으로 민주주의를 제한하여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헌법의 문제가 아니라, 원래의 민주주의 의미와 시국선언에 등장하는 민주주의 의미 사이의 괴리를 찾는 일이다. 민주주의라는 어휘만큼 원래의 참뜻을 무시하고 다양한 의미로 변질된 정치적 어휘는 없는 것 같다. 민주주의의 진의를 변질시켜 이를 더럽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좌파의 지식인들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들은 좌파적 정치에서 평등과 같이 좋은 것이라고 여기는 거의 모든 것을 기술하기 위해 민주주의라는 어휘를 사용했다.

그렇게 더럽혀진 민주주의 개념은 사회구성원들이 정치를 해석하고 또 행동하기 위한 가이드 역할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거나 그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했다.

민주주의 참뜻을 오용한 시국선언문

대학 교수, 시민단체, 종교계, 전교조 등의 릴레이식 시국선언문도 바로 그 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그들은 민주주의라는 말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여 올바른 정치적 길잡이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고 사회구성원들을 황당하게 만들거나 잘못된 길로 안내하여 결국 자유를 잃게 만들고 있다.

시국선언문에 따르면 실업증가, 양극화는 민주주의의 위기의 근거라고 한다. 타인의 자유를 빼앗는 평등실현과 같은 국가의 목적은 민주적이고 감세나 규제완화 등 자유를 증진하는 것을 비민주라고 부르는 듯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때문에 양극화 또는 실업의 증가가 야기했다는 진단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정부가 추구하는 실체적 목적과 관련하여 민주 또는 비민주라는 말의 사용은 말의 악용일 뿐이다. 왜 민주적이고 비민주적인지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反)자유 또는 친(親)자유의 정책이냐로 기술하는 것이 적합하다.

남북관계가 표면적으로 악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를 민주주의 위기의 근거로 보고 있다. 이 개념의 악용 또한 또렷하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이라고 부르는 유화정책을 통하여 북한 핵무기 개발을 결정적으로 도왔던 것은 사실이다. 핵무기를 포기하면 북한이 경제성장을 이루도록 돕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남북한 모두 이득을 볼 수 있는 정책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전자를 민주적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비민주적이라고 부르는 것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유화정책이냐 상호주의이냐에 민주 개념을 이용하는 것도 말의 남용일 뿐이다.

민주주의라는 말을 악용하는 절정은 시국선언문의 폭력과 불법을 두둔하는 경우이다. 시위 가담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폭력과 불법시위로 제3의 불특정 시민들의 재산권과 자유를 침해하고 경찰 차량을 파괴하고 심지어 많은 경찰관을 다치게 했다. 이런 폭력 불법시위 가담자들을 처벌하는 것이 법치주의 원칙에 비추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그 처벌이 민주주의 위기의 근거라는 것이다. 폭력이나 불법도 묵인하여, 법이 지배하는 사회를 포기하는 것이 민주적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도 문제이지만 그런 것을 기술하기 위해 민주주의 어휘를 사용하는 것은 정말로 어처구니없다.

불법과 폭력시위를 관대하게 대하든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그 같은 시위를 막든, 이런 공권력의 행사에 민주 또는 비민주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공권력의 행사내용을 기술하기 위한 적합한 어휘는 법의 지배 또는 법치주의 개념이다.

또 무조건적으로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요구는 불법집회 폭력집회를 단속하지 말라는 것인데, 폭력과 불법을 허용하는 것이 민주적이라고 보는 것,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그런 일에 민주라는 개념의 적용은 말의 악용이다. 왜 민주인지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국선언문에서 전직 대통령의 자살, 대운하의 변칙 추진도 민주주의 위기의 근거라고 보는데, 그것이 왜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 개념을 잘못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우리가 시국선언과 관련하여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좌파적 정책에 좋다고 여기는 거의 모든 것을 민주주의로 표현하고 그들이 나쁘다고 여기는 거의 모든 것을 반(反)민주 또는 민주주의 위기로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민주주의 개념은 내용 없는 유령(幽靈)과도 같다. 민주주의 위기라는 진단도 실체적 내용이 없는 말이다.

진정한 위기는 불법적 정권 교체의 선동

오히려 민주주의 위기는 다른데 있다. 릴레이식 시국선언을 보면 합법적인 정권을 불법적으로 밀어내고 정권을 차지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식’에서 좌파의 궐기를 촉구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이 그런 의구심을 더욱 강화하는 듯하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현재와 같은 길로 간다면 국민도 불행, 정부도 불행하다는 것을 확실히 말한다.”고 얘기하면서 “4,700만 국민이........ 행동하는 양심이 돼 자유, 서민경제, 평화로운 남북관계를 지키는데 우리 모두 들고 일어나서 희망이 있는 나라를 만들자”고 역설했다.

복거일이 지적하듯이 이런 발언은 정당한 정권을 불법적으로 밀어내고 권력을 차지하자는 직설적 선동으로 보인다. 그런 선동은 보통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의미하는 민주주의를 훼손한 것이다. 민주주의 위기라고 선동하여 정권을 몰아내려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진정한 위기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원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을 뽑아준 시민들의 작은 정부 요구를 망각하고 내용 없는 '실용’을 외처 왔던 탓이다. 이념적 지향을 상실한 채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다가 자유주의 정책의 일관된 실천도 실패하고 그 정책을 지지할 세력도 잃어버린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제는 '중도의 길’을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중도의 길이란 존재할 수 없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념이란 수평선을 그어 좌우를 정하는 식으로 일차원적으로 기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의 중간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어느 한 분야의 평등주의 실현은 다른 분야의 자유주의 실현을 방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중간도 없다. 그리고 특정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거나 지원한다는 의미의 “이해관계의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그래서 정책에는 원칙만이 있을 뿐이다. 시장경제의 원칙 또는 자유의 원칙의 실현이 그런 정책이다.

그럼에도 촛불집회에 놀랐던 이명박 정부는 이제는 불법적으로 몰아내겠다고 선동하면서 똘똘 뭉친 좌파의 릴레이식 시국선언에 굴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자기를 뽑아준 시민들의 요구인 '자유의 길’을 영원히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문제인 주인·대리인 문제만 더욱 더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사회의 심각한 위기는 바로 여기에 도사리고 있다. ■

저자소개: 민경국 교수는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하이에크, 자유의 길’ 외 다수가 있다.

민경국 /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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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교육에 관한 문제가 붉어져 나올 때마다 나타나는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특히 요즘 이슈가 되는 학원심야교습금지와 같은 사교육에 관련된 문제일 경우 더욱 명확히 나타난다. 그것은 좌파, 우파를 가릴 것 없이 공교육 강화를 대책으로 내세운다는 점이다. 심지어 소위 자유주의자라고 일컬어지는 사람 중의 일부도 이러한 주장을 펴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인간은 다양하다. 배우고 싶은 욕구도, 배움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도,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교육도 모두 다르다. 이것은 좋고 나쁨을 떠나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다. 따라서 이러한 본성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교육도 다양해야 한다.

공교육은 본질적으로 천편일률적인 교육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다양성과는 거리가 멀다. 정의상으로도 공교육이 다양성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이미 '公’이라는 말 속에 담겨있는 의미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더구나 공교육은 기술적으로도 다양성을 띠기가 힘들다. 초등교육을 예로 들어보자. 모든 초등학교의 교사들은 교대에 입학하여 똑같은 교육과정을 통해 양성된다. 졸업 후에는 같은 교실에서 같은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게다가 교육청에서는 교사들의 일탈을 항상 감시 ․ 감독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한다고 해도 공교육에서 다양성을 얻기 힘든 본질적인 장애가 여전히 남는다. 그것은 교사들이 그렇게 해야 할 유인이 없다는 점이다. 남보다 더 열심히 교재를 연구하고 열성적으로 수업을 한다고 교사 개개인에게 돌아올 이익은 별로 없다. 게다가 집단에서 남과는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 소위 튀는 것은 그다지 이로울 것이 없다. 승진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집단의 기존 질서에 순응하고 상사에게 잘 보이는 것이 훨씬 유리할 것이다. 교사의 사명감을 가볍게 보지 말라고 순진하게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교사에게 그러한 사명감을 기대할 수 있으며, 과연 우리가 교사들에게 사명감을 요구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결국 공교육을 강화하여 다양성을 얻으려는 시도는 소중한 세금을 낭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공교육이 이처럼 태생적 문제를 안고 있다면 그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첫째, 공교육이 담당하는 영역을 축소하고 공교육의 존재 이유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

인간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이상 숙지해야할 최소한의 규칙과 가치들이 있다. 특히 법을 준수하고 재산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명제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바로 이것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정부와 공교육이 담당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지금 공교육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많은 것들까지도 담당하려고 한다. 다양성, 수월성이 공교육에서는 본질적으로 달성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룰 수 없는 목표에 집착함으로써 정작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근래에 법을 어기고 재산권을 부정하는 현상이 이토록 팽배하는 것도 근본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더구나 그 책임을 입시위주의 사교육이 팽배한 탓으로 돌리는 것도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책임이 있다면 가정교육에 실패한 부모와 공교육에 있다. 공교육이 본연의 역할은 망각한 채 다른 것에 치중하지 않았다면 학생들이 지금처럼 사회적 가치와 규범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사교육 시장에 정부가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

사교육에 그토록 많은 비용이 지출되고 있다는 것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아실현을 위해 각자가 필요로 하는 교육이 얼마나 다양하고 절실한가를 보여준다. 공교육은 그 절실함을 결코 충족시킬 수 없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사교육을 얽어맨 각종 규제를 제거함으로써 누구나 자유롭게 사교육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되어 다양한 교육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교육이 지금보다 더 많은 부분을 담당하게 해야 한다. 더 커진 교육 시장 안에서 공급자들 간에 치열해진 경쟁은 궁극적으로 교육비는 낮추고 교육의 질은 올리도록 할 것이다. 학원심야교습금지나 학파라치 같은 반시장적인 정책은 공급을 제한함으로써 오히려 비용을 높이고 교육의 질은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공교육이 담당해왔고 앞으로도 담당하고 싶어 하는 다양성, 수월성 교육은 원래 사교육이 담당해야 할 영역이다. 사교육이 활성화 된 것은 공교육이 무너졌기 때문이 아니라 소득증가와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그만큼 우리의 욕구가 크고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교육이 선이고 사교육이 악이라는 이분법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못 먹고, 못 살았기 때문에 공교육이 담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이제 사교육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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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는 퇴장하는가? 미국 발(發) 금융위기 이후 좌파 시민단체들의 자유주의 비판이 격렬해간다. 민주노총은 9월26일 성명에서 『新자유주의 금융세계화는 실물경제와 괴리된 자체모순에 의해 붕괴해가고 있다』며 장문의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우리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쟁체제에 대해 심각하게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위기상황에 봉착해있다』『신자유주의 주주자본주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대안(代案)경제시스템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경제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충실히 따라온 결과, 중소기업은 일상적인 파산위기에 직면해있고, 노동자들이 생산한 이익의 대부분은 주주들에게 고율로 배당되어 해외로 유출되고 있으며 자본들의 단기이익 창출의 희생양이 된 저임금비정규노동자는 갈수록 확대되어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생존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맹신하면서 무분별한 재벌규제완화 및 공기업사유화, 한미FTA비준 등을 독선적으로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결국 친 재벌 시장화정책으로 한국경제를 재앙으로 몰고 가겠다는 것이냐』며 『이명박 정부는 기어이 민생경제를 파탄내고 말겠다는 심산이냐』고 비난했다.

소위 보수언론 역시 자유주의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숨기지 않는다. 9월22일 조선일보는 『「신자유주의」막 내리나』라는 제하의 기사를 올렸다. 『작금의 금융공황이 1980년대 미국 레이건 행정부 이후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의 실질적인 종언을 뜻한다』는 요지였다. 투자은행(IB)들이 복잡한 구조의 파생상품을 이용, 최소한의 자금만 가지고 수십, 수백 배나 되는 큰돈을 거래하는데도, 이에 마땅한 규제가 없었다는 것이 금융공황을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했다.

규제와 간섭이 만들어 낸 금융위기

「월가의 탐욕」, 「시장의 실패」등 최근 언론에서 회자되는 용어들도 자유주의의 치명적 약점을 웅변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의 분석은 세간의 평가와 사뭇 다르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규제와 간섭 없이 방종해 온 시장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규제와 간섭이 만들어 낸 결과라는 지적이다.
자유기업원 최승노 박사는 『금융위기는 「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시장의 왜곡이 만들어 낸 실패」이며, 이를 가지고 신자유주의가 몰락했다고 지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최박사의 분석이다.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어 온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닷컴경제(IT산업)」붕괴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저리의 이자율을 고수했다. 이것은 시장 기능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었고, 부동산 버블을 만들어 냈다. 그린스펀은 2006년 이후 의장직을 떠났지만, 2년 후 경제호황이 끝나면서 부작용이 터져 나온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작은 정부와 큰 시장, 세계화와 민영화, 규제 완화와 경쟁 촉진, 금융자유화와 자유무역 등을 핵심 개념으로 하는 경제 이념이다. 정부의 시장개입을 중시하는 케인즈 이론이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을 계기로 후퇴하면서 경제학의 신주류로 등장했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의 레이거노믹스, 영국의 대처리즘이 모두 이에 기초한다.

그러나 좌파 시민단체들은 미국의 금융위기가 터지자마자, 이제 사회주의의 시대가 온 것인 양 큰소리친다. 그러나 위기의 원인이 과연 「월가의 탐욕」과 같은 소위 자본주의의 구조적 맹점에 있는지 불분명하다. 오히려 그린스펀 사례와 같이 「시장의 실패」가 아닌 「시장의 왜곡이 만들어 낸 실패」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자유주의는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속의 「탐욕」을 본질로 한다. 그린스펀이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왜곡한 채 저리의 이자를 고수해 부동산 버블을 만들고 월가의 배를 불렸다면, 이는 자유주의를 벗어난 이단이다. 따라서 비판받아야 할 것은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무시한 그린스펀의 경제정책이지, 「자생적 질서」나 「탐욕」그 자체가 될 수 없다. 미국 발 금융위기를 통해 오히려 자유주의의 원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법(法)의 지배로 통제되는 탐욕

설령 「월가의 탐욕」에서 모든 원인을 찾는다 해도, 그것이 소위 신자유주의의 몰락을 의미하진 않는다. 자유주의는 또 다른 본질은 「법의 지배(Rule of Law)」로 통제되는「탐욕」이다.

자유주의의 비조격인 하이에크의 질서관은 결코 자유방임(Laissez Faire)의 원리주의가 아니었다. 그의 자유방임는 엄중하게 법의 지배(Rule of Law)에 의해 운영되는 정의로운 게임의 시스템이다.

하이에크는 토지, 주식의 폭등으로 큰돈을 벌겠다는 무제한·무절제의 탐욕을 옹호하진 않았다. 공정한 룰을 일탈해서 폭주하는 시장은 오히려 자유의 기초를 허무는 「노예의 길」이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개인소유권과 계약의 룰을 서로 지키며 공정한 교환시장에서 경제번영이 약속된다는 하이에크의 시장에서는 결코 약육강식의 법칙이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금융시장 원동력은 탐욕과 공포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는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두 개의 원동력은 탐욕과 공포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욕심이 있기에 고수익을 추구하고 두려움이 있기에 위험을 기피한다. 양자를 어우르며 상품이 제조되고 기관이 설립된다. 정부는 시장이 원활히 돌아가도록 감독하고, 경기규칙에 따라 경쟁하도록 심판하는 구실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자유주의 아래서 금융 감독의 요체는 경쟁을 부추겨 「시장효율성」을 제고하는 동시에 「시장안정성」을 도모하는 균형이다. 여기서도「시장안정성」을 무시한 미국 당국의 문제를 자유주의의 「시장효율성」의 기초인 탐욕에서 찾아선 안 된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불성실하게 운용한 정책 당국의 책임을 자유주의 시장경제에 전가시켜선 안 된다는 것이다.●

김성욱 /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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