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이다. 배출권거래제는 시장메커니즘을 이용한 효율적인 감축수단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재 배출권거래제를 위한 인프라 구축도 마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도입을 서두르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또한 다른 경쟁국들보다 앞서 도입을 한다면 국제경쟁력에도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배출권거래제 도입에 따른 국민경제 및 각 산업별 파급효과 분석, 기후변화 국제협약의 가시적 진전 등 전제조건이 충분히 성숙된 후 도입하는 신중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론적으로 시장 메커니즘을 이용한 배출권거래제가 직접규제 형식의 목표관리제보다 효율적인 감축수단으로 인정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는 배출상한을 설정한 후 배출원 간 거래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목표를 최소의 비용으로 달성하는 제도이다. 배출권거래제 하에서는 감축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배출원이 주어진 목표보다 더 많이 감축을 한 후 감축비용이 상대적으로 비싼 배출원에게 판매함으로써 거래에 참여한 배출원 전체의 감축비용을 최소화하게 된다. 따라서 배출권을 더 판매하거나 덜 구매하기 위해서 기업은 비용 최소화 원리에 따라 신기술 도입, 에너지원 간 대체, 생산량을 결정하기 때문에 배출권거래제를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한 제도라 부른다. 반면 목표관리제는 배출원에게 주어진 감축목표를 각자 달성해야 하기 때문에 전체의 감축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배출권거래제보다 비용이 많이 들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산업계가 배출권거래제에 참여하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배출권거래제 도입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

첫째는 배출권거래제 도입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배출권거래제를 추진하던 주요국이 자국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여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철회하거나 보류하는 상황에서 의무감축국이 아닌 우리나라가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을 제외하면 미국, 일본, 호주 등의 선진국이 도입을 포기 또는 보류하고 있는 상태이고, 우리의 주요 경쟁 상대인 중국, 인도 등은 온실가스 감축 자체를 고려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둘째 이유는 배출권거래제가 효율적인 제도인지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출권거래제가 시장 친화적인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적용에서는 다양한 부작용을 유발하고 있다. 우선 배출권의 할당 과정에서 정부와 산업계의 대립이 불가피해 보인다. EU의 경우 EU위원회와 각국 정부, 각국 정부와 기업 간 소송이 빈번히 발생하고, 독일의 경우 2005~2007년 동안 1천여 건의 법률 소송이 제기된 적이 있다. 또한 예상치 못한 경기변동에 따른 배출권 가격변동성이 심화되어 시장의 안전성이 우려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시장참여자 수가 500여 개 업체로 전망되고, 이 중 50개 사업장이 배출량의 48%를 차지하고 있어 시장성립 여건이 매우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EU의 경우 배출권거래제에 참여하는 사업장의 수가 1만2천개에도 불구, 톤당 가격변동폭이 5~30유로에 달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 시행할 인프라 구축 미비

셋째 이유는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할 인프라 구축이 미비하다는 점이다. 산정·보고·검증(MRV) 시스템 구축이 미비하고, 사후적 조정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배출권이 할당되고 거래될 경우 과도한 소송 및 이행비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기업이 기본적인 온실가스 DB조차 구축하지 못한 상황이며, 기존에 구축한 기업의 경우도 일반적 지침이 없이 자체적으로 작성한 상태이다.

넷째 이유는 기업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점이다. 유상분배의 비중이 증가할 것이므로 기업의 생산비용 상승이 불가피하여 국제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주로 철강, 석유화학 등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사업장을 대상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므로 이들 업종에 배출권거래제 도입에 따른 부담이 집중될 전망이다. 포스코(연간 7천만tCO2 배출)의 경우 100% 유상 할당되면 매년 1조~2조 원의 부담(약 2만 원/tCO2)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에너지집약적인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어, 이들 제조업의 원가 상승으로 인한 경쟁력 약화가 심각한 수준에 달할 것이다.

국제협약의 가시적 진전 등 전제조건 충족돼야

이와 같은 이유를 들어 배출권거래제 도입은 시기상조이며, 도입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조건이 먼저 충족되어야 한다고 산업계는 주장하고 있다. 배출권거래제 도입에 따른 국민경제 및 각 산업별 파급효과 분석, 이에 근거한 배출권거래제 도입관련 컨센서스 확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목표관리제를 통해 신뢰할 수 있는 MRV 체계 등 인프라 구축과 업종별·기업별 온실가스 정보 축적이 이루어진 후에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국제협약의 가시적 진전, 즉 주요 경쟁국(G20)의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또는 유사 제도 도입이 이루어진 이후 도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목표관리제와 배출권거래제를 연계하는 방안으로 배출권거래제를 위한 별도의 거래소를 설립할 필요 없이 정부가 이미 설치한 온실가스정보센터에서 관리업체의 목표 감축량 잉여분과 부족분을 거래상쇄할 수 있는 비공개시장(closed market) 형태로 운영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조경엽 /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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