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자신의 힘으로 건강한 보수주의를 확립시킨 나라는 영국과 미국뿐이다. 두 나라 모두 거대한 위기, 거대한 과제에 부딪쳤을 때 보수주의 사상이 확립되었다. 영국의 경우 프랑스 혁명에 부화뇌동한 급진 운동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옛 전통에 바탕한 점진적 변화’를 핵심 컨셉으로 삼았다. 미국의 경우 흑인노예제도를 둘러싸고 남북전쟁을 치러낸 과정에서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우선하는 독립선언문 및 헌법 정신’(리퍼블리카니즘)을 핵심 컨셉으로 삼았다. 우리 사회는 한편으로는 북한의 민주화와 업그레이드를 이루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초고도 지식기반사회로 도약해야 한다는 엄청난 과제를 안고 있다. 우리 보수주의의 핵심 컨셉은 '개인’을 중심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얼마 전에 보수주의 운동을 한다는 대학생이 찾아 왔다. 나를 붙잡고, 우리 사회 안에 종북-친북 인사들이 득실대기 때문에 이대로 가다가는 적화(赤化) 위기에 빠질 것이라며 비분강개와 우국충정을 쏟아냈다. 전날 밤에 원고를 쓰느라 잠을 설친 덕에 비몽사몽 상태에서 그의 말을 듣던 나는 기어코 한마디 하고야 말았다.
“이민 가.”
“네?”
“이민 가라구. 적화될 나라에서 뭐 하러 살어?”
지구에서 볼셰비키, 마오이스트, 트로츠키주의자 같은 진짜 '빨갱이’들이 멸종한 시대에, 북한 지배집단이 더 이상 '빨갱이’가 아니라 부패한 반인도(anti-humanity) 범죄집단인 상황에서 적화 공포에 시달린 나머지 보수주의를 택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보수주의에는 마땅히 반(反)김정일을 훌쩍 뛰어넘는 숭고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 비전을 만들지 못한다면 보수주의는 설득력과 리더십을 가질 수 없다. 이미 참된 보수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주의는 위대한 통찰이었다
자신의 힘으로 건강한 보수주의를 확립시킨 나라는 영국과 미국뿐이다. 두 나라 모두 거대한 위기, 거대한 과제에 부딪쳤을 때 보수주의 사상이 확립되었다. 영국의 경우 프랑스 혁명에 부화뇌동한 급진 운동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보수주의가 나왔다. 1789년 프랑스에서 혁명이 시작되자 영국 안의 급진세력이 이를 찬양하면서 혁명 운동을 시작했다. 이에 에드먼드 버크는 1년 만에 '프랑스 혁명 및 런던의 일부 단체들의 움직임에 대한 고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 And on the Proceedings in Certain Societies in London)이라는 책을 낸다. 이 책에서 버크는 영국은 명예혁명(1688, Glorious Revolution)을 통하여 이미 의회민주주의를 달성했으며, 사회발전은 소중한 옛 전통과 새로운 변화를 조화시키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영국이 백 년 전에 '전통적 가치 위에서 변화를 성취함으로써’ 달성한 의회민주주의 모델이, 과거단절적이며 잔혹한 프랑스 혁명 모델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는 점을 최초로 명백하게 논증한 것이다. 이는 위대한 통찰이었다.
미국의 경우 흑인노예제도를 둘러싸고 남북전쟁을 치러낸 과정에서 보수주의가 확립되었다. 1850년대에 들면서 미국은 “흑인노예제를 준주(準州, territories, 서부 개척지)로 확장해야 한다”는 남부 노예주의 강력한 드라이브 때문에 거대한 위기로 빠져들어갔다. 마침내 민주당의 더글러스 상원의원이 “노예제를 채택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는, 주 별로 '인민주권’(popular sovereignty) 원칙에 따라 결정하자”라는 폭탄 주장을 한다. 한마디로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으로 결정하자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신생 공화당의 원외 활동가였던 링컨은 “다수결 민주주의에 우선하여 독립선언문과 헌법이 존재한다.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노예제를 '잠정적으로 존재하다가 소멸해야 할 필요악’으로 보았다”라고 주장했다. 링컨은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건국의 아버지들의 정치 활동 기록과 행적을 철저히 연구했다. '민주주의에 우선하는 원칙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바로 공화주의(Republicanism)이며 이 공화주의의 뿌리가 건국의 아버지들이라는 점을 논증했던 것이다. 링컨의 이 위대한 통찰이 오늘의 미국을 만들어냈다.
우리의 보수주의는 개인에서 출발해야
초고도 지식기반사회의 문턱에 서 있는 우리는 모두, '글로벌 시장 경제 속의 개인’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우리가 일정한 정치사상과 가치체계를 선택한다면 그 선택은 개인의 실존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막연히 대한민국의 발전을 강조하거나 혹은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내세워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젊은이들은 “그래서 어쩌라구?”라는 반응을 보일 뿐이다. '그것이 나의 인생과 관련하여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문제가 절실하게 와 닿지 않으면 이념 혹은 가치에 대해 코웃음 친다. 보수주의가 뿌리를 박기 위해서는 개인의 실존적 차원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 선배세대들은 자기 자신의 존재 전체를 걸고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자기 자신의 존재 전체를 걸었기에 이미 실존적인, 너무나 실존적인 차원에서 살았던 것이다. 무엇을 위해? 사유재산, 자유, 시장, 개인됨을 위해 자신의 존재 전체를 걸었다. UN군의 지원 외에, 대한민국이 6.25를 이겨낼 수 있었던 두 개의 내부적 힘은 1950년 이전에 월남한 이북민들이 가졌던 철저한 반공의식과, 토지개혁에 의해 자작농이 된 농민이 신생 대한민국에 대해 간직했던 신뢰였다. 이 둘은 모두 사유재산, 자유, 시장, 개인됨(individuality)과 직결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선배세대의 절절한 경험을 보다 깊은 차원에서 다시 해석해서 승화시켜야 한다. 빨갱이는 멸종했고, 북한 지배집단은 부패한 반인도 범죄조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비전은 김정일이라 불리는 흉측한 종기덩어리의 처리문제를 훌쩍 뛰어넘어, 삶에 대한 숭고한 조망으로 치달아야 한다. “개인이란 무엇인가? 개인됨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로 진입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나의 자아와 삶을 이끌어가는 원칙이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추켜들어야 한다. 이 철학적이기만 한 듯이 들리는 고상한 주제가 정치 이념 및 정치적 가치체계의 근본이 될 때 비로소 우리 사회의 보수주의가 확립될 수 있다.
'진실을 존중하는 자아’는 무엇을 선택할까?
자아는 진실과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 진실을 외면하면 세상과 당당하게 마주 서는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긴장이 썩어 소멸하고 만다. 세상의 이미지가 거짓과 착각으로 이루어져 있는 상태에서는 세상과 당당하게 마주 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과 당당하게 마주 설 때에만 성립하는 이 긴장이 바로 자아이다. 우리가 진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진실만이 자아를 세우는 척추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냉전의 사생아 혹은 피해자’란 소리는 거짓이며 '냉전의 승리자’란 이야기가 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한민국과 그 성취를 인정한다. 시장은 '부자들의 천국, 서민의 지옥’이란 소리는 거짓이며 '시장 제도의 발전이 사회 운영의 중심축’이란 이야기가 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장 제도와 그 발전에 대해 신뢰한다. 북한의 지배집단이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키는 민족주의 그룹’이란 소리는 거짓이며 '홀로코스트보다 더 잔혹한 반인도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부패한 집단’이란 이야기가 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인권 상황에 대해 분노한다. 대한민국을 하나의 소중한 '삶의 기반’으로서 받아들이는 것, 시장제도 및 그 발전을 신뢰하는 것,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런 것들이 바로 한국 보수주의의 가치 아닌가!
우리는 '진실을 존중하기 때문에’ 일정한 가치평가를 내리게 된다. 이 가치평가의 결과물을 모아놓고 보니까, 그 적합한 이름이 '보수주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보수주의는 귀착점일 뿐 출발점이 아닌 것이다.
또한 진실은 우리로 하여금 선배 세대의 피와 땀과 고통을 고스란히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그리고 우리가 선택한 가치들이 바로 선배 세대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져 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우리의 삶과 가치가 선배 세대와 맞물려 있다는 점을 총체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과거를 인정하고 껴안는다는 점에서 그 적합한 이름 역시 '보수주의’이다. 우리의 보수주의는, '진실을 존중하는 자아’가 규정하고 선택한 것이다.
박성현 / 인터넷문화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