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자유기업원은 활자대신 영상으로, 연구와 교육을 넘어 액티비즘을 지향하고, 적극적인 모금을 통해 풀뿌리 싱크탱크의 자생력을 기르려고 합니다. 그러한 사업의 일환으로 첫 번째, 방송 사업을 본격화해 작년 12월 1일 개국한 프리넷 뉴스를 통해 시장경제원리에 충실한 방송 콘텐츠의 제작과 보급에 힘쓰겠습니다. 그리고 본격적 방송국을 만들기 위한 전단계로 조직을 만들어 자유의 철학이 녹아있는 스토리 비즈니스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두 번째, 자유사회 유지를 위해 본격적인 모금활동을 전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풀뿌리 싱크탱크를 만들겠습니다. 올해 목표는 10억원이며, 모금 총액의 70%는 프리넷 방송 제작에 사용하고 30%는 자유를 지지하는 시민단체들과의 연대활동에 사용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유를 지지하는 시민단체와 연대를 통해 자유의 목소리를 높이겠습니다.

2010년 자유기업원의 새 모습을 기대해 주십시오

자유기업원의 임직원 일동이 자유기업원의 이메일 회원 여러분께 새해 인사 올립니다. 경인년 한 해 뜻 하시는 바 모두 이루시기 바랍니다.

저희도 여러분들이 기대하시는 만큼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2010년은 자유기업원에도 큰 변화의 시기가 될 것입니다. 1997년 설립 이후, 저희는 자유주의 지식인들의 허브에 서서 그분들의 사상과 글을 세상에 전파해 왔습니다. 정부와 여론을 비평하는 글이 주류를 이루어왔습니다. 또 대학생들에게 자유시장경제의 사상을 교육해 왔습니다.

이제 저희는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한다. 활자 대신 영상으로, 연구와 교육을 넘어 액티비즘(activism)을 지향하려고 합니다. 또 주어진 예산에 안주하기 보다는 적극적 모금을 통해 그야말로 풀뿌리 싱크탱크의 자생력을 기르려고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여러 가지의 새로운 사업과 활동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방송 사업을 본격화하는 일입니다. 시장경제원리에 충실한 방송 콘텐츠의 제작과 보급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겠습니다.

우리나라의 방송은 너무 좌편향 되었거나 인기영합주의에 물들어 있습니다. 신문 시장에서의 판도와 비교해 보신다면 그 실상을 알 수 있습니다. 신문시장에서는 소위 조·중·동이라고 불리는 3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좌파 매체인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소비자의 준엄한 선택일 것입니다. 그러나 방송 시장에는 전혀 판도가 다릅니다. 오히려 시장경제를 말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소비자들의 원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 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을 바꾸어야 합니다. 새로운 방송사들이 등장하면 판도가 꽤 달라질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그들 역시 인기영합주의로 흐르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저희가 방송 콘텐츠의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겠습니다. 예전에 신문사의 언론인들이 시장주의적 관점이 뭔지 궁금할 때는 자유기업원의 글을 참조하곤 했습니다.

이제 자유기업원은 방송에서도 그런 역할을 자임하겠습니다.

그럴 목적으로 2009년 12월 1일에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인 프리넷 뉴스(프리넷.kr 또는 fntv.kr)를 개국했습니다. 아직 방송국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콘텐츠가 부족하긴 하지만 차근차근 쌓아가겠습니다.

그와 더불어 본격적 방송국을 만들기 위한 전단계로서 스토리 비즈니스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영상물을 제작하다 보니 가장 어려운 것이 스토리를 만드는 일입니다. 재미도 있으면서 자유의 철학도 녹아 있는 스토리가 마련되어야 영상도 제대로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스토리 비즈니스를 위한 조직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곳에서는 프리넷을 위한 스토리도 만들겠지만 다른 방송사들을 대상으로 스토리를 제공하는 새로운 비즈니스도 시작할 계획입니다.

두 번째의 새로운 사업은 본격적인 모금 활동입니다. 자유 사회는 자유를 사랑하는 시민들의 노력으로만 이어져갈 수 있습니다. 이제 자유 시민들의 자유에 대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저희가 본격적인 모금활동에 나설 것이며,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이나 영국의 IEA, 캐나다의 프레이저 연구소처럼 기부금만으로 운영되는 풀뿌리 싱크탱크를 만들어내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저희가 내는 목소리도 더욱 힘이 있어질 것입니다. 올해의 모금 목표는 10억 원입니다. 모금 총액의 70%는 프리넷 방송의 영상을 만드는 데에 사용하고 30%는 자유를 지지하는 시민단체들과의 연대 활동에 사용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와 생각을 같이 하는 시민단체들과의 연대를 통해서 자유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겠습니다. 뿔뿔이는 보잘 것 없지만, 힘을 합친다면 큰 영향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모금 총액의 30%를 자유진영 시민단체들과의 활동에 사용하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하나하나가 모두 벅찬 도전들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시장경제를 튼튼히 만들기 위해서 누군가는 꼭 해내야 하는 일들입니다. 그 일을 올해 저희가 시작하겠습니다. 새롭고 낯선 것들인 만큼 시행착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서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가겠습니다.

2010년은 여러분과 저희가 모두 뜻하는 일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새해에 풍성한 복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자유기업원 임직원을 대표해서 원장 김정호가 씁니다.

김정호 /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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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소금융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했다. 이 제도는 이미 다른 나라에서 실행되던 것을 우리나라상황에 맞춰 접목하고 있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사실 이 제도가 방글라데시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금융제도 미발달로 인한 자금조달을 할 수 없어 사업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계층이 많았고, 또 책임감과 성실성을 가진 여성이 주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이 제도가 가진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여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저개발국이 아니므로 상당히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이 제도의 목적은 자활사업이므로 자선사업 위주의 운영은 안되며, 외국의 성공사례를 참고해 책임성 제고와 교육·컨설팅 제공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유지·운영할 수 있는 다양한 준비가 필요하다.

최근에 미소금융제도가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영어의 마이크로 크레딧을 어감이 좋도록 번역한 이 제도는 사실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 시작하여 실행되던 제도가 우리나라에도 접목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제도는 제도권 금융시스템의 지원을 받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 있는 서민 내지 빈민들에게 자금을 제공함으로써 자립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 제도이다.

이 제도의 시초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Yunus 교수가 1976년 방글라데시에서 시작한 그라민 은행이다. 현재 방글라데시에서는 794만 명(여성이 97%)에게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2,560개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후 중남미와 인도 등으로 확산이 되었고 UN은 2005년을 '세계 마이크로 크레딧의 해’ 로 선포하여 이 제도를 확산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우리의 미소금융제도와 저개발국 '그라민 은행’의 차이점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친서민 중도실용을 표방하는 현 정부가 이를 주도하면서 민간이 이에 동참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이크로 크레딧이 시작된 것은 대략 2000년 근처로 보면 된다. 신나는 조합, 사회연대은행 등이 주축이 되어 민간기부금으로 이러한 사업을 시작하여 약 30여개의 기관이 이를 취급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2008년 3월 휴면예금을 기반으로 한 소액서민금융재단이 설립되면서 서민소액대출의 재정지원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2008년 현재 6,800여명에 대해 470억 원 정도가 지원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마이크로 크레딧 제도의 잠재적 고객으로 간주되는 계층은 개인 신용등급이 7등급 이하의 계층이다. 이는 기존 금융기관에서 정상적인 금융서비스를 받기 힘든 계층인바 이 등급에 해당하는 계층의 숫자를 좀 더 자세히 보면 2007년 말 766만 6천 명에서 2008년 말 816만 천 명으로 1년 사이에 50여만 명이 늘어났다.

현재 미소금융제도는 민간차원에서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활동의 일환으로 이를 장려하여 시행하기 시작하였고 향후 10년간 약 2조원 규모로 이를 확대하여 운영하면서 취급 법인을 200개 내기 300개까지 늘여갈 것으로 보인다. 대출대상은 영세사업자 전통시장상인 프랜차이즈 창업자 등이며, 금리는 연 4.5% 대출한도는 무등록 사업자, 등록 사업자, 창업자 등으로 세분화되어 각각 한도가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이 제도는 엄격하게 집행되고 있는데, 신용등급이 7등급 이하여야 하며, 보유재산이 8,500만원 이하여야 하고, 소위 신용불량자 즉 금융채무불이행자는 제외된다. 창업자금의 경우 50%가 준비가 되어있어야 나머지 50%를 지원하는 소위 '매칭펀드’ 방식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

사실 이 제도가 저개발국에서 시작된 것은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저개발국의 경우 금융제도 자체가 잘 정립이 되어있지 못한 상태에서 나름대로 능력이 있는 잠재적 계층조차도 자금조달의 기회를 아예 부여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계층에게 약간의 자금지원은 펌프질을 할 때 처음 부어서 펌프물이 잘 나오도록 하는 '마중 물’의 역할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저개발국의 경우 상대적인 저개발로 인해 작은 사업기회가 의외로 많을 가능성이 높고 저개발로 인한 저물가로 인해 작은 돈이라도 구매력은 상당해서 간단한 자영업을 시작하는 데에 무리가 없을 정도의 자금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이 제도의 발상지인 방글라데시에서 주로 여성에게 지원이 되고 있는 부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개발국의 기혼여성의 경우 자녀양육 등에 대한 책임감과 성실성이 존재하므로 마이크로 크레딧 제도가 가진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클 수 있다.

미소금융제도, 매우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매우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다. 우선 우리나라의 경우 일단 저개발국이 아니라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개발도상국을 넘어 선진국을 넘보고 있다. 그리고 경제가 선진국에 진입할수록 사업기회는 점점 포화상태로 가면서 신규사업을 시작하기는 대단히 어려워진다.

또한 시작은 하더라고 사업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는 더 어려운 측면도 있다. 미소금융지원의 여러 가지 분야 중에서 '무등록사업자대출부문’이 있는데 이에 해당하는 계층에 대해서는 500만원 까지 신용대출이 된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500만원을 가지고 창업을 할 수 있는 대상이 과연 무엇이 있느냐는 것이다. 노점이나 포장마차를 염두에 두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요즘 밤거리에 포장마차는 포화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포장마차나 노점상은 세금을 내지 않고 영업을 하는 계층인데 이러한 계층을 정부가 주도하여 양산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최대 5,000만원까지 지원이 되는 프랜차이즈 창업자금 및 창업임차보증금 대출의 경우 사업등록증이 있어야 하고 창업자금의 50%가 미리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창업비용이 총 5,000만원이라면 2,500만원은 미리 준비해 놓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미소금융 신청자의 60% 정도가 이러한 창업자금을 원하는 계층이므로 '50%룰’이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제도는 자선이 아닌 자활사업이므로 이 제도가 빈곤층에 대한 현금지원을 하자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 제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운영해가려면 대출 받은 사람이 돈을 제대로 갚아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대출상환율을 높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이를 공돈처럼 여기면서 일단 쓰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하는 경우를 배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여러 가지 장벽을 만들어서 차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활능력이 있는 계층은 이미 기존금융기관과 거래가 가능한 계층인 셈이고 자활능력이 없는 계층은 거꾸로 이 제도 하에서마저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이 두 개의 극단에서 어디를 취하여 제도를 운영할 것인가 하는 것은 매우 고민스런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능력면에서도 소규모창업을 하여 이를 지속시킬 만한 능력이 있는 계층은 이미 이에 성공하여 사업을 잘 영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사업에 이미 실패하였거나 혹은 실패할 가능성이 큰 서민들이 이러한 자금지원을 받는 다고 할 때 성공의 가능성이 낮은 부분도 문제가 된다. 결국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능력이나 외부조건이 열악하여 사업성공이 안 되는 상황이라면 소액대출이 제 기능을 발휘할지 의심스런 측면도 존재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경제 내에서 마이크로 크레딧 제도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운영이 되어야 할 여지가 다분하다.

외국 성공사례에서 배워야 할 점

실제로 다른 선진국의 예를 보면 마이크로 크레딧 제도를 운영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금과 함께 교육과 컨설팅이 제공된다는 것이다. 기회가 많고 물가가 낮아 소액자금의 구매력이 높은 저개발국이 아닌 경우 사업성공을 위해서는 자금이외에도 매우 다양한 요소가 갖추어져야 하므로 선진국의 경우에 부대적인 조건이 따라주어야 한다는 점이 이미 확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잘 감안하여 시민단체 혹은 비영리사단법인 등과 제휴를 하여 마이크로 크레딧의 수혜를 받는 계층에 대해 다양한 부대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러한 서비스가 민방위 훈련 식의 형식적 교육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강구해 나가야 한다. 돈을 버는 것만이 아닌 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 등장하거나 복귀하는 의미를 가진다는 면이 잘 참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지역에 기반을 둔 풀뿌리 시민단체와의 연계는 매우 중요하다고 보이는 바 이러한 고리를 잘 만들수록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미국의 경우 시티은행이나 BOA같은 유수한 제도권 은행도 마이크로 크레딧 분야에 진출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이들은 멕시코 같은 신흥시장국의 마이크로 크레딧 분야에 진출하여 이윤과 함께 브랜드이미지를 제고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향후 동남아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계획을 가진 우리나라 은행에게도 참고가 될 만한 부분이다.

세계적인 예를 볼 때 마이크로 크레딧 제도가 주로 여성들에게 제공이 되고 있는 측면을 감안해야 한다. MIX(Microfinance Institution Exchange)의 자료를 보면 2008년 현재 마이크로 크레딧 제도의 수혜자중 67%가 여성인데 이는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업규모가 작으면서 지속적으로 알차게 수익을 올리는 업종은 주로 요식업종에 분포되어 있고 이런 면에서 기혼여성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 또한 이들은 자녀양육을 병행하면서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이 이를 영위하는 것이 바람직한 부분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미소금융제도가 자금 대출 뿐 아니라 경영컨설팅까지 해 준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바 이 부분에 다양한 준비가 필요하다. 하나의 제도가 시행되어 정착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이 제도는 우리 경제 내에서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시행되기 시작한 셈이다. 이 제도가 금융소외계층의 목마름을 적실 수 있는 샘물 같은 역할을 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윤창현 /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

저자소개: 윤창현 교수는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경영학부 교수와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파생금융상품론’, '자본시장통합법시대 4천만의 이슈 경제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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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개방형병원 허용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투자개방형병원의 필요성을 인정한 반면, 보건복지가족부는 충분한 의견수렴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실 의료법은 의료인들만 병원을 설립할 수 있으며, 일반인이나 회사는 병원을 설립할 수 없도록 엄격한 진입규제를 하고 있다. 이러한 진입규제는 의료서비스 공급자간의 경쟁을 제한하고 투자재원 조달을 어렵게 하여 전반적인 의료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투자개방형병원 설립을 허용하면 투자 재원의 유입과 의료 공급자간 경쟁을 활성화함으로써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하고 의료산업의 경쟁력을 제고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다. 그러므로 포퓰리즘에 기댄 무소신으로 또 다시 투자개방형병원 설립이 무산된다면, 의료산업의 선진화는 요원할 뿐이다.

투자개방형병원의 허용을 둘러싸고 이해하기 힘든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반대하는 측은 물론이고 찬성하는 측까지 과장되거나 논리적이지 않은 주장을 쏟아내고 있고, 심지어는 연립정부도 아닌 다수당 단일 정부 내에서 상반된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국가 경제와 우리 보건의료체계의 특성을 총체적으로 조망하지 못하는 편협한 몰이해와 의료의 '비영리성’이라는 국민의 막연한 환상과 우려에 기대는 포퓰리즘이 합리적 정책결정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이다.

차별적 진입제한 규제하고 있는 의료서비스 시장

알다시피 우리 의료법은 의료인은 병원을 설립할 수 있는데 반하여, 일반 시민과 상법상 회사는 병원을 개설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의료서비스 시장에의 차별적 진입제한 규제를 부과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진입 규제는 과당경쟁을 방지하고, 상품이나 서비스의 질(quality) 저하를 예방하여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논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특히 의료법에서 진입규제를 부과하는 이유를 굳이 들자면 “의료의 비영리성 확보”를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쟁점은 과연 이러한 진입규제가 합리적인 규제목표를 갖고 있는가? 만약 규제목표가 합리적이라면 규제목표에 합목적적인 규제수단인가? 하는 점을 규명하는 일이 된다.

첫째, 과당경쟁을 이유로 일반인과 영리법인의 의료시장 진입을 제한하는 것은 규제의 목표와 수단 양 측면 모두 합리적이지 않다. 현재까지 우리나라 의료시장의 진입 총량을 규제할 필요성은 제기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국민의 의료서비스 요구가 양적, 질적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건강보장을 충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기반구조인 의료서비스 산업에의 참여자와 투하 자본이 더욱 증가되어야 한다. 의료서비스 공급이 크게 부족하던 수십 년 전부터 현재까지 동 규제가 지속되어 왔다는 것은 동 규제의 목표가 과당경쟁의 예방에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설혹 과당경쟁의 방지가 진입제한 규제의 합리적 목표인 경우에도, 설립 주체의 성격을 따질 것 없이 의료서비스 시장 진입의 전체 총량을 규제하는 것이 합목적적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진입제한 규제는 목적에 어긋나는 불필요한 규제일 수밖에 없다.

둘째, 동 규제가 “의료의 비영리성 확보” 목표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규제수단인가? 매우 회의적이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종합병원의 16.3%, 병원의 56.9%, 그리고 거의 모든 의원이 의료인 개인 소유의 영리(for-profit) 의료기관이다. 개인 의료기관의 경우 이익배당이나 재산 처분 등에 관한 아무런 제약이 없으므로 법적, 실체적 영리의료기관은 광범위하게 실존하는 셈이다. 이처럼 의료인 개인에게 영리 의료기관 개설이 허용되어 있는 상황에서 “의료의 비영리성 확보”를 이유로 일반인 및 영리법인의 진입을 금지하고 있는 것은 합리적 근거나 이유를 찾기 어려운 차별적 규제일 뿐이다.

진입규제는 의료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

민간 비영리법인 의료기관의 실제 행태에 비영리성이 실제로 발현되느냐 하는 것도 의문이다. 민간 비영리법인 의료기관의 경우 기본재산(자기자본)만으로 운영하는데 한계가 있어 대다수가 상당액의 차입(타인자본)을 통해 투자 및 운영 자본을 조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의료 활동에 의해 발생한 이익을 타인자본 조달의 비용인 이자를 갚는데 충당하여야만 한다. 그런데, 이익을 이자를 갚는데 충당하는 행위는 영리법인인 회사가 이익을 주주에게 배당하는데 사용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별다른 차이가 없다. 오히려 이자 상환의 부담은 이윤 배당의 부담에 비할 바가 아니므로 필요하다면 영리의료기관 이상의 영리행동을 통해 재정을 확보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민간 의료기관은 필연적으로 정부의 재정지원, 기부금 등 별도의 수입이 존재하지 않는 한, 비영리나 영리를 막론하고 이자 변제 또는 이윤 배당을 위해, 그리고 재투자 재원의 확보를 위해 이윤추구행위를 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업 활동의 내용에 있어서 영리, 비영리 의료기관 사이에 별다른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은 모든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예컨대, 일반적인 의료소비자가 동네 병원을 이용할 때 개설주체가 개인(영리)인지 의료법인(비영리)인지 분별해 가면서 이용하는가? 거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다.

민간이 90% 이상의 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 의료의 현실에서 “의료의 비영리성”을 진입제한 규제를 통해 확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허망하다. 진입제한 규제 보다는, 일반인 및 영리법인 개설 의료기관을 포함한 모든 의료기관에 대하여 공공성을 촉진하기 위한 각종 유인 및 방안을 어떻게 하면 더욱 정교하게 마련하고, 더욱 엄밀하게 집행할 수 있느냐에 “의료의 비영리성 확보”가 달려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처럼 현재의 의료기관 개설 주체 규제는 규제의 목표, 수단 모두 합리적이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불합리한 규제가 우리 의료, 그리고 의료소비자인 대다수 국민에게 주는 해악은 결코 작지 않다. 일반인과 영리법인의 참여를 부당하게 가로막아 소비자를 향한 의료공급자간의 경쟁을 제한하고, 투자재원 조달을 어렵게 하여 전반적인 의료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장되고 왜곡된 투자개방형병원 부작용

최근 발표된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공동 연구용역 결과를 보면, 의료서비스 시장의 진입규제를 개혁하여 투자개방형병원 설립을 허용하면 소비자 선택권이 확대되고, 부가가치 및 고용이 창출되는 등 산업적 측면에서 기대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 적극적으로 개혁해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갈등과 혼선을 빚는 것은 개혁이 빚을 부작용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부작용에 대한 지적은 잘못되었거나 과장되어 있다.

'중소병원 몇 곳이 폐쇄된다’가 중요한 부작용으로 거론되는 것을 보면 조금은 한가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투자개방형병원 허용은 필연적으로 의료공급자의 총량을 증가시키고, 동시에 공급자간 경쟁을 심화시킬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공급자는 경쟁에서 탈락하게 된다. 시장진출입이 자유로우면 공급의 공백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렇게 되는 것이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소비자의 편익을 증대시키는 지름길이다. 그런데 무엇을, 누구를 염려하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의료비 증가 우려 역시 매우 왜곡되어 있다. 현행 제도 하에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유지하면 정부에서 정한 건강보험 수가가 모든 의료기관에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개별 환자 진료비가 증가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 건강보험의 수가 규제로 현재 개인(영리)병원이나 의료법인(비영리)병원이나 환자 진료비에 있어 별 차이가 나지 않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물론 투자개방형병원 허용으로 의료공급자가 증가하게 되면 전체 의료비는 증가할 수 있다. 3분 진료에서 5분 진료, 10분 진료로 국민이 원하는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공급을 늘려야 하고, 그러자면 의료비가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정부가 세심하게 관리하고, 소비자의 현명한 선택이 가능하도록 정보 제공을 더욱 활성화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증가하는 의료비가 가치 있게 쓰여지도록 하면 현 단계에서 의료비 증가는 큰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의료비가 증가하는 이상으로 고용과 부가가치 창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큰 염려는 저소득계층의 의료이용이 부당하게 제약받지 않을까 하는 점인데, 이러한 염려 역시 상당부분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투자개방형병원이 '2배에서 4배까지 진료비를 올려 받을 수 있다’면 마땅히 우려할 만하다. 그러나 전제가 대단히 잘못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행 제도 하에서처럼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유지되는 한 투자개방형병원의 진료비도 현재의 개인(영리) 병원과 전혀 다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투자개방형병원 허용은 의료서비스 산업 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투자 재원의 유입과 의료 공급자간의 실효적 경쟁을 활성화함으로써 혁신 수준과 효율성을 제고하고, 이를 통하여 의료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으로 의료소비자 요구에 부응하여 더욱 큰 가치와 편익을 제공할 수 있는 튼튼한 기반을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영리”의 환상에 젖은 무모하고 대안 없는 비판과 정부에 대한 막연한 불신, 그리고 포퓰리즘에 기댄 무소신이 개혁의 발목을 잡는 상황을 돌파하지 못하는 한, 우리 의료의 선진화는 요원할 뿐이다. ■

이기효 _ 인제대 보건대학원장

저자소개: 이기효 교수는 성균관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한국병원경영학회 정책연구이사와 국무총리 산하 보건의료발전특별위원회 전문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인제대학교 보건대학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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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전임자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이 또 다시 유예될 것으로 보인다. 노사정은 노동계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타임오프제를 도입한 협의안을 만들었으며, 한나라당은 협의안 보다 더 나아간 노조관계법 개정안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두 개의 안 모두 노동계의 요구에 밀려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노사정합의안은 타임오프제를 통해 중소기업의 노조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고, 한나라당 안은 임금을 받는 노조활동 범위를 더 넓게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제고하기 위해서 노조전임자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은 더 이상 유예해서는 안되며, 현행 법 대로 시행되어야 된다.

노조에 발목이 잡혀 13년 동안이나 유예되어 온 노조전임자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이 2010년부터 실시될 예정이자 정치권과 노동계가 협상을 하느라 최근 바쁘게 움직여 왔다. 그런데 그 결과는 우려했던 대로 다시 '유예’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 친노정책을 편 이전의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유예가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지만 이명박 정부에서조차 '유예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 같아 국민들의 실망이 크다.

노조의 막강한 파워로 한국은 '노동시장 규제 관련 경제자유’ 순위가 2000년 김대중 정부에서 123개국 가운데 58위였다가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141개국 가운데 113위로 추락하여 국가의 위상이 말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에서조차 '유예의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면 앞으로 노동시장 유연성이 높아질 가능성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타임오프제가 포함된 노사정 합의안 문제있다

출발은 좋았다. 임태희 노동부장관은 지난 10월 1일 취임식을 갖고, '13년이나 미루고 있는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임금지급 금지를 올해는 꼭 시행한다’고 밝혔다. 그는 “복수노조와 전임자 문제가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후진적 노사관계 틀을 바로잡는 핵심 개혁과제”라고까지 말했다. 이를 놓고 노조측은 거부 반응을, 사용자측은 환영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노동부장관의 생각대로 과연 그렇게 될 것인가 우려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노조전임자 문제와 복수노조 문제는 원안대로 시행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는 계속해서 노조관계법 개정을 요구해 왔다. 2009년 12월에 들어와 정부와 노동계는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섰으며, 12월 4일에 노사정 합의안을 마련했다. 우여곡절 끝에 노조전임자임금지급 금지는 6개월이 유예되어 2010년 7월부터, 복수노조 허용은 2년 6개월이 유예되어 2012년 7월부터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노조전임자임금지급 금지 실시 조건으로 타임오프제가 도입되었다. 타임오프란 사측이 노조전임자의 임금 전액을 주는 것을 금지하되 노조 간부가 노사교섭, 근로자 고충처리, 산업안전 조사 등 노무업무를 위해 활동한 시간만큼은 임금을 주는 제도다. 300명 미만의 중소기업의 경우 노조전임자임금지급이 금지되면 조합비로 전임자임금을 전액 보전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해 1~2명의 전임자는 둘 수 있도록 시행령에 장치를 마련키로 합의되었다고 한다. 임태희 노동부장관도 간담회에서 이를 밝혔다.

정치적으로 변질된 한나라당 노조관계법 개정안

그런데 타임오프제를 통해 중소기업의 노조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것은 새로운 불씨를 남겨놓았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어느 시점에서 대기업이 파업을 통해 대기업의 경우에도 노조전임자임금지급 금지를 철폐해줄 것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복수노조 허용 유예와 관련해서는 실시 시점이 2년 6개월 연장된 2012년 7월부터인데, 이 무렵에는 대한민국 전체가 대선 열풍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그 때는 우파․좌파 가릴 것 없이 표를 얻기 위해 노동계를 끌어들이려고 할 것이고, 노동계는 복수노조 허용 유예 또는 철폐를 놓고 맞설 것이 뻔하다.

가관인 것은 민노총이 제외된 채 이루어진 노사정 합의안을 바탕으로 한나라당이 벌이고 있는 관련법 개정 내용이다. 한나라당은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임금지급 금지와 관련된 노사정 합의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관련법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개정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한나라당 개정안은 노사정 합의안에 담긴 타임오프제보다 임금을 받는 노조활동 범위를 더 허용하고 있다고 지적을 받고 있다. 즉, 한나라당의 노조법 개정안 24조3항은 '노조전임자는 시행령으로 정해진 통상적 노조 관리업무, 사용자와의 협의․교섭, 고충 처리, 산업 안전 등의 활동을 할 때는 임금을 받을 수 있다’고 명시한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대목은 '통상적 노조 관리업무’인데, 이대로라면 노조전임자에게 사실상 현재처럼 임금이 지급되리라는 것이다. 이 개정안이 국회에서 어떻게 처리될 것인가는 두고 볼 일이다.

13년 동안이나 유예되어온 '노조전임자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 2010년 실시를 앞두고 정치권과 노동계 사이에 전개되어온 내용을 평가할 때, 지금까지 '법과 원칙을 지키겠다’고 외치던 정부가 노동계의 요구에 밀려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법과 원칙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노조관계법, 현행 법대로 시행해야

철도파업이 2009년 12월 3일 8일 만에 '백기투항’한 것은 법과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이루어진 결과다. 철도파업을 주도한 40명 노조 간부 가운데 12명이 해고자였다고 한다. 철도공사 직원이 아닌 사람들이 자신들의 복직을 위해 노조를 앞장세워 국민과 국가경제를 볼모로 투쟁을 벌이자 이명박 대통령이 '적당히 타협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원칙은 지켜져야 하며 법이 준수돼야 한다’고 진두지휘했기 때문에 철도파업은 쉽게 끝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법과 원칙 고수를 통해 노조의 불법파업을 해결한 대표적인 경우가 아닐까 생각된다.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마거릿 대처가 집권한지 5년쯤 지난 1984년 3월 6일 석탄노조가 파업에 들어갔다. 같은 날 국영석탄공사가 대처의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1985년 중에 채산이 맞지 않은 탄광 약 20개소를 폐쇄․통합하고 직원 2만 명을 감원한다는 계획을 노조측에 제시한 것이 파업의 발단이었다. 노조위원장 스카길은 2회에 걸쳐 파업권 확립을 요구하는 노조원들의 투표를 실시했으나 실패하자 각 지부가 일제히 파업에 돌입하는 전국적 파업 전술을 채택했다. 파업은 363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대처는 석탄을 몰래 수입해놓고 석탄노조의 파업에 대처했다. 석탄노조가 363일 동안 끌어오던 파업은 스카길 위원장이 드디어 “여러분, 투쟁은 물론 계속합니다. 그러나 파업은 끝입니다”라는 선언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스카길은 1974년 전국탄광파업을 통해 당시 보수당 히스 정권을 무너뜨린 '제왕’ 같은 노조위원장이었다. 그러한 그가 '법과 원칙을 고수한 철의 여인’ 대처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뉴질랜드도 교훈을 준다. 영국인들은 '신이 내린 천국’을 건설할 목적으로 1800년대 초부터 뉴질랜드에 정착하기 시작하여 세워진 나라다. 영국인들은 출발부터 노동자를 특수상품으로 우대하면서 뉴질랜드를 '노동자 천국’으로 건설해 갔다. 뉴질랜드는 1894년 노동자 천국의 기반을 마련해 준 '산업평화와 중재에 관한 법’을 도입했고, 같은 해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했다. '산업평화와 중재에 관한 법’을 기반으로 뉴질랜드는 중앙집권적 노사관계를 도입했고, 1916년 노동당을 창설하여 1935년 집권에도 성공했다. 노동당은 모든 노동자를 의무적으로 노조에 가입케 했고, 이로 인해 뉴질랜드는 노조천국이 되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뉴질랜드는 노동시장 규제가 세계에서 가장 심한 나라였다. 그러다가 볼저 수상이 1991년 '고용계약법’을 도입하여 100여 년간 유지되어 온 중앙집권적 노사관계를 분권적 노사관계로 혁명적으로 바꿔버렸다. '합리적인 법 도입과 법 고수’로 뉴질랜드는 노동개혁에 성공하여 지금은 세계에서 노동시장이 가장 유연한 다섯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정치권은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 우리에게 잘못된 과거가 있다. 비정규직보호법 도입이 그렇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는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내건 최대 선거 이슈였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 후 가진 대국민 첫 TV성명에서조차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노사정위원회에서 비정규직보호법을 도입하려 했으나 노사정위원회가 파행만 거듭하자 법 도입을 국회로 떠넘겼다. 비정규직 법안은 뜨거운 감자가 되어 발의 후 1년 4개월 동안이나 표류하다가 급기야 지방선거와 대선 일정을 염두에 둔 당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야합하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2006년 2월 27일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그 후 이 법안은 2007년 7월부터 시행하기로 하고 2006년 11월 30일 국회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보호법이 가져올 문제점을 지적한 정치가는 별로 없었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으로 그동안 정규직은 감소한 채 비정규직만 증가했고, 2009년 7월 이후에는 비정규직 대란이 일어나 비정규직마저 감소했다는 사실을 정치가들은 기억해야 한다.

입법을 담당하는 정치가들이여! 법과 원칙을 지켜야만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 '노조전임자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이 또 유예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는 독일만큼이나 노동시장이 경직된 나라다. 법과 원칙을 적용해야만 노동시장 유연성이 높아질 수 있다.■

박동운 / 단국대학교 명예교수

저자소개: 박동운 교수는 미국 하와이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단국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서로는「CEO 정신을 발휘한 사람들」,「시장경제이야기 Q&A」,「자유시장경제의 위대한 승리 대처리즘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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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개혁에 맞서 이를 저지하기 위한 철도공사 노조의 파업이 노조의 일방적인 파업 철회로 8일 만에 막을 내렸다. 철도공사 출범 이후 영업손실은 2373억원에서 2008년까지 누적 영업적자가 2조 4천억원으로 증가했으며, 공사의 경영 상태는 개선되지 않고 계속 악화되고 있다. 이 정도 적자 상태의 민간기업이었다면 이미 파산했을 것이지만, 100% 정부출자기업이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경영안정지원을 받거나 자산매각으로 적자를 메우고 있다. 철도공사의 영업 손실은 과다한 인력과 조직규모, 가격규제 같은 정부 정책 등 다양한 요인들 때문이다. 따라서 철도공사의 경영혁신은 불가피하며, 철도공사 노조도 경영혁신의 노력에 동참해야 일자리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지난 달 26일부터 시작한 철도공사 노조의 파업은 노조의 일방적인 파업철회로 8일 만에 막을 내렸다. 이번 파업은 공기업을 개혁하려는 정부에 맞서 철도공사 노조가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정부는 예전부터 낮은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과다한 임금 복지비용을 지불하는 공기업의 경영 혁신을 위해 노력하여왔다.

철도공사 경영상태, 민간 기업이라면 파산했을 것

국영철도의 비효율성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2001년에 철도의 민영화를 전제로 철도산업발전 및 구조개혁을 위한 법률안을 제출하였다. 하지만 철도노조의 반대에 직면하여 정부는 민영화를 포기하고 철도운영의 공사화로 타협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한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는 경영효율화의 근본적인 해결대안으로 미흡하므로 중장기적으로 민영화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실 2005년 철도공사가 출범 한 이후 경영 상태는 개선되지 않고 더욱 악화되었다. 2005년 영업 손실은 5천 373억 원이었는데, 작년에는 7천 374억 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그래서 2008년까지 누적 영업적자가 2조 4천억 원에 이른다.

이 정도로 적자가 누적된 민간기업이라면 파산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100% 정부출자기업인 철도공사는 정부로부터 경영안정지원을 받거나 자산을 매각하여 이를 메우고 있다. 형식상으로 철도공사는 작년에 5천억 원이 넘는 당기순익을 냈는데, 이것은 용산 역사의 매각 등 대부분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자산의 매각에 기인한 것이다.

철도공사, 영업 손실의 원인은

철도공사의 영업 손실을 초래한 요인은 여러 가지 일 것이다. 철도공사는 공기업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가격규제를 받고 있다. 또한 정부 정책에 따라 적자노선을 운행하거나 공익서비스를 제공하여야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요인으로만 영업 손실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다른 나라의 철도회사도 우리 철도공사만큼 규제를 받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철도공사와 외국의 철도회사를 비교하면 가장 눈에 띄는 게 고용 인력이다. 영업거리 당 인력을 비교하면 인력이 너무 과다하다. 2007년 미국에서 운행하는 10개의 철도회사의 영업 거리 당 고용인원은 1Km에 약 0.75명이다. 프랑스 국영철도도 1Km에 약 5.6명이다. 이에 비하여 작년 말 기준으로 철도공사는 9.7명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철도공사에서 영업비용에서 차지하는 인건비의 비중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05년에는 35.9%에서 2008년에는 44.1%로 크게 증가하였다. 이에 비하여 일본이나 독일 등 국가에서 철도운영사의 인건비 비중은 낮아지고 있다. 철도공사가 제출한 국정조사 자료에 따르면 동 일본 철도회사는 2005년 38.1%에서 2008년 34%로 낮아졌으며, 같은 기간 독일의 경우는 33.2%에서 29.6%로 낮아졌고 국영철도인 프랑스는 47.6%에서 43.6%로 낮아졌다.

철도공사의 경영 악화는 근본적으로 경영진이 책임을 져야할 사항이다. 하지만 그동안 경영진들은 경영을 개선하기보다 오히려 이를 어렵게 하였다. 작년에 영업적자가 확대되었지만 이를 자산 매각으로 충당하여 당기순이익이 늘어나자 성과급을 거의 500% 가까이 지급하였던 것이다. 물론 노조의 요구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일 수 도 있다. 하지만 철도공사의 경영진이 정치적으로 결정된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철도노조도 경영혁신에 동참해야

철도 공사의 경영혁신은 불가피하다. 인력과 조직을 감축하는 것만이 경영혁신의 유일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16조 원을 넘어서는 자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도입되어야 하고 철도운임에 대한 규제도 합리적 수준에서 조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과다한 인력과 조직의 정비를 제외하고 경영 개선을 이룰 수는 없다.

철도 노조도 이러한 경영 혁신의 노력에 동참해야 자신의 일자리가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경영혁신으로 당장의 일자리는 줄더라도, 장기적으로 영업이익이 증가하면 새로운 일자리가 늘어난다. 더욱이 국민들도 이제는 자신의 세금으로 일자리가 유지되는 것을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이번의 철도노조의 파업을 경영 혁신의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그것이 납세자뿐 아니라 철도공사의 노사에게도 도움을 주는 길이다. ■

정기화 / 전남대학교 교수

저자소개: 정기화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전남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사회정의와 사회발전』, 『한국법의 경제학(공저)』, 역서로는 『법경제학(Richard Posner)』 등이 있다. 연구 분야는 공정거래법, 법경제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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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원회가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계좌추적권 등 조사권한을 강화하는 입법안을 예고했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가 벗어나고 있지 못한 '부패공화국’이라는 오명을 감안할 때 강력한 제재를 통해 부패를 없애겠다는 충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목적이 정당해도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정당한지는 의문이며, 의도가 좋다고 해서 결과까지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번 입법예고안은 국가권력의 판단에 따라 사적 영역에 간섭을 증가시켜 자유를 위협 할 수 있으며, 나아가 부패척결을 명분으로 국민권익위원회를 '봉사하는 권력’이 아닌 '군림하는 권력’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따라서 국민권익위원회는 공직자 부패척결에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원칙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공직자의 부패척결은 한 국가공동체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국가적 과제이다. 그러기에 일찍이 16세기 피렌체의 정치사상가였던 마키아벨리는 부정부패와 절연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부정한 공직자에 대해 10년에 한 번씩 뇌리에 남을 만큼 가혹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을 정도였다. 또한 세계의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21세기형 선진국의 비결이라면 '깨끗한 국가’를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점에 있다. 문제는 이처럼 깨끗한 국가가 될 수 있는데 특별한 왕도(王道)는 없다는 사실이다. 다수의 공직자들이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어야 한다는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의 준칙을 금과옥조로 삼고 살아가는 방법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직사회 투명도, 경제발전 수준과 비교해 현저히 떨어져

물론 정치인이나 공직자라고 해서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살아가야 할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이유는 없을는지 모른다. 공직자도 가정을 가진 사람인데,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살아가라는 주문은 너무 가혹한 요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반칙과 부정을 일삼는 '배부른 돼지’보다는 최소한 정직과 공정성을 좌우명으로 삼는 '배부른 소크라테스’로 살아간다는 점이 선진국가 공직자들의 일반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 공직사회의 투명도는 세계10위권의 경제발전 수준에 현저하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 증거는 많다. 국민국제투명성기구가 몇 주 전에 발표한 2009년 부패인식 지수를 보면 한국은 10점 만점에 5.5점으로 180개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39위였다. 작년에 비해 순위는 40위에서 한 단계 올랐지만 점수가 5.6점에서 0.1점 하락해 공무원과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부패인식 정도가 나아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의 평균이 7.04인데 비해 우리는 2005년에 겨우 4점대를 넘어 5점대에 진입한 이후 계속 정체상태다. OECD에서의 순위는 22위로 헝가리 폴란드 체코 등과 함께 하위 그룹에 속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나라로서 부끄러운 수준이다.

국내의 다른 조사결과도 국제투명성기구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작년 12월 국내 거주 외국인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한국 공무원이 부패했다'는 응답자가 50.5%, '부패로 인해 기업 활동이 심각하게 저해됐다'는 응답자가 58%에 이르렀다. 또한 작년 11월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기업인 10명 중 2명이 최근 1년 사이에 공무원에게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주된 이유는 '공무원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34.8%), '관행상 필요해서'(25.9%), '업무 처리에 따른 감사 표시'(15.6%)였다. 국가기관의 조사결과가 이 정도라면 실제로는 훨씬 더 심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한국의 공직자들에게 하나의 정체성처럼 따라다니는 요소가 있다면, 부정부패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부정부패를 오랫동안 하나의 '필요악’ 혹은 자연스러운 '관행’으로 치부해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사회가 금융실명제 실시이후 정보화 사회의 흐름과 더불어 비교적 투명해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또 선거도 비교적 깨끗한 풍토 속에서 치러지고 있다.

부패척결 의도는 좋지만...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일련의 의문들을 제기한다. 정치를 하는 데 왜 그렇게 돈이 많이 들며, 또 사업을 하는 데 사업비용 말고 공무원에게 암암리에 갖다 주는 돈은 왜 그렇게 많은가. 왜 대가성 뇌물이나 보험성 뇌물 없이 이 사회에서 사업을 할 수 없고 살아갈 수 없는가. 같은 공사를 같은 회사가 해도 국내에서 하기보다 해외에서 하는 것이 더 쉽고 더 튼튼한 공사를 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러한 의문점들 한 가운데 공직자의 부정부패가 자리 잡고 있음을 우리는 이심전심으로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민권익위원회가 공직부패 척결을 위해 팔뚝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에 대해 그 의도의 순수성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국민권익위원회의 주요 기능중 하나라면 고위 공직자의 부패를 예방하고 차단하는 데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권익위는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부패조사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 하나의 이유라면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패 신고를 받고도 효과 있는 조사를 못하는 현실이라면, 어떻게 맡는바 역할을 적절하게 수행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최근 권익위가 조사권을 강화하겠다며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나섰다. 그 주요내용이라면 영장 없이 공직자의 계좌를 추적하고, 청렴도 평가를 위해 자료를 요구하며, 권익위의 위상도 총리실에서 대통령 산하로 높이는 방안 등이다. '백년하청(百年河淸)’처럼 오랫동안 우리사회가 벗어나고 있지 못한 '부패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감안할 때 강력한 수단과 제재를 통해 부패를 없애야하겠다는 충정은 충분히 이해가 갈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생각해야할 점이 있다. 아무리 목적이 정당해도 그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수단이 정당한지는 따져 보아야하는 것이 민주사회의 규범이다. 뿐만 아니라 의도가 좋다고 해서 결과까지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권한강화로 부정부패 없앨 수 있다는 생각은 치명적 자만

공직자의 부정부패는 시스템이론가들의 용어를 빌리자면 '단순계(simple system)’가 아니라 '복잡계(complex system)’이다. '단순계’란 하나의 원인이 하나의 결과로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에 비하여 '복잡계’란 하나의 원인이 하나의 결과로 이어지기보다는 하나의 원인이 여러 개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는가하면, 또 하나의 결과는 여러 가지의 원인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는 단순히 공직자들이 가지고 있는 '탐욕',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레오넥시아(pleonexia)'라고 불렀던 현상만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공직자들이 가지고 있는 광범위한 인·허가권과 더불어 권력의지, 또한 그들의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속을 차리려는 일반 사업자들의 탐욕까지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이루어지는 현상이 부정부패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직자의 부정부패에 관한 문제는 '정체적인 개념’보다는 '순환적인 개념’으로 접근해야한다. '순환(circle)’이란 하나의 현상이 그 자체로 하나의 원인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결과로도 존재하여 다른 현상과 고리의 관계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순환에는 '선순환(virtuous circle)’과 '악순환(vicious circle)’이 있다. '선순환’은 그 순환자체가 좋은 결과를 강화하는 효과를 갖는다면, 악순환은 그 고리가 나쁜 쪽으로 강화되는 경우를 말한다.

부정부패의 악순환을 생각해보자. 공직자가 부패하면 인·허가권을 가진 자신의 권한을 빌미로 금품과 향응을 요구하며 이에 순응하거나 부화뇌동한 사업자는 돈을 바쳐 자신의 목적을 이룬다. 그러면 공직자는 점점 그 액수를 높여 요구하게 되고 사업자는 아무리 그 액수가 높아도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많다고 생각하여 응하게 된다. 한편 사업자는 더욱 능동적으로 금품을 이용한 로비력으로 공직자들을 유혹하게 된다.

이러한 두터운 부정부패의 고리는 단순한 제재와 감시체계로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순환’의 개념이나 '복잡계’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단순히 국민권익위위원회의 권한강화로 부정부패를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치명적 자만'이 아닐 수 없다.

권익위 개정안, 무소불위 권력기관을 꿈꾸는가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개정안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개정안은 권익위가 당사자를 대면조사하고, 청렴도 평가를 이유로 공공기관에 개인의 사소한 정보까지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위원장에게는 필요한 경우 국무회의에 출석해 발언하고, 소관 사무에 관해 국무총리에게 의안 제출을 건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대로 되면 권익위는 검찰과 경찰은 물론 헌법상 대통령 직속 감찰기관인 감사원조차 갖지 못한 권력을 쥐게 되고, 또한 과거 노무현 정권 때 한나라당이 무산시킨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권한을 능가하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셈이다. 더구나 권위를 높이고, 국민권익 보호와 부패방지 및 행정심판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소속을 국무총리실에서 대통령 직속으로 바꾸겠다는 것이기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가 말한 '리바이어던’에 버금갈만한 권부가 될 공산이 크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사회의 틀을 깨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유혹에 약하다. 그래서 민주주의론자들이 아무리 선의의 군주에 대해서도 권력의 오남용을 경계해 마지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권력통합보다 권력분립을 강력하게 주장해온 논리도 여기에 있다. 당연히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하여 만든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도 오․남용의 유혹에서 예외가 아니다. “절대권력이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말은 여기서도 통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권한을 가진 권익위가 부정부패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역설적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가장 큰 문제는 고위공직자 부패 행위 조사 시 법원의 영장 없이 금융기관에 금융거래 정보 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금융기관은 이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한 조항이다. 계좌추적 범위도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으로 매우 포괄적으로 규정해놓았다. 이를 다른 목적에 사용하거나 누설했을 때 처벌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하지 않았다.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면서 그에 따른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도덕적 해이’의 발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영장 없이 금융 계좌를 추적하겠다는 발상은 특히 매우 위험하다. 국민의 프라이버시권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고, 헌법이 정한 영장주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공직자의 부패를 척결하겠다는 목적 하나만으로 개인의 사적 영역을 크게 위축시키는 것은 우리가 이상(理想)으로 삼아온 자유의 비전에도 맞지 않고 법의 지배를 지향하는 법치국가의 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국가권력이 개인의 사적 생활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역할을 자제해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은 일부 독립심이 강한 시민들이나 특권층, 심지어 잠재적인 부정부패세력의 자기중심적인 하소연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에 대한 권리와 개인의 행복추구권은 천부인권이라고 믿고 있는 사상가들이 전통적으로 주장해왔던 하나의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상’(political ideal)으로서 정부는 질서유지나 사회간접자본의 제공 등, 일정한 공적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데 최선을 다하며 국민개개인은 각자의 판단에 따라 외부의 간섭과 보호를 받지 않고 자신들의 생활을 자율적으로 설계해 나가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명제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아무리 부정부패의 척결을 명분으로 한다고 해도 개인의 사적 영역을 자신의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간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국가권력은 그러한 개인의 자율적 영역을 위험에 빠뜨릴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다시 말해 국가권력이 '봉사하는 권력’이 아니라 '군림하는 권력’이 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국민들의 사생활을 마음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국가권력은 시민들에 대하여 소중한 이상이 아니라 은근한 위협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사실을 국민권익위원회는 주의 깊게 명심하며,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척결하는데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원칙이 요구된다는 점을 알아야할 것이다. ■

박효종 / 서울대학교 교수

저자소개: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와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민주주의와 권위’, '한국민주정치와 삼권분립’,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역서)’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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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선언한데 이어 온실효과가스 배출량을 4% 정도 감축하겠다고 발표 했다. 이번 온실효과가스 감축정책은 한국 기업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구온도와 이산화탄소 농도 간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사실이 아니며, 지구온도는 이산화탄소 농도와 상관없이 차가워졌다 뜨거워졌다 하는 자연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감축 문제는 과학적 진실을 떠나 정치적 수치놀음에 들어섰으며 그 결과 정부 간섭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 위기에 처한 것은, 기후가 아니라 자유다”라는 체코 대통령 클라우스 바츨라프의 말을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정부는 2008년 광복절에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을 선언한 데 이어, 2009년 11월 16일에는 온실효과가스 연간 배출량을 2020년까지 5억 6,900만 톤(탄소 환산)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2005년 대비 4% 감축량으로, 2020년의 예상 배출량보다는 30%를 적은 양이다.

한국의 온실효과가스 배출량은 2% 미만

12월 7일부터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릴 예정인 유엔기후변화협약 제15차 당사국 총회(COP15)를 앞두고,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이 교토의정서 당사국이 아닌 비선진국에 권고한 감축 범위(15∼30%)의 상한선을 목표로 정했음을 국제사회에 공언한 것이다.

“선진국의 탄소 무역장벽에 대비하고 유가변동에 취약한 에너지 패러다임을 바꿔 국가 에너지 안보를 제고하면서 급팽창하고 있는 세계 녹색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면서, “세계와 더불어 살아가는 글로벌 시대에 한국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한국 제품에 대한 인식까지 개선시키는 효과를 가져 올 것” 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온실효과가스의 강제적 삭감이, '가장 경제적인 것이 가장 친환경적’이라는 현실적 원리에 부합되는가?

한국의 온실효과가스 배출량은 세계 13위라고도 하고 6위라고도 하지만, 세계 총배출량의 2%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도 미미할 뿐 아니라, 감축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지구온난화 방지에 대한 실질적 기여도 역시 극히 사소한 수준이다.

2006년 현재 우리의 인위적 온실효과가스는 50.1%가 산업부문에서, 17.6%가 수송부문에서 발생한다. 가정은 12.6%, 상업ㆍ공공부문도 12.6%이다. 온실효과가스의 정책적 삭감은 먼저 산업과 수송 부문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 과연 이런 부담을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잠재력이 우리 산업계에 있을까?

지구온난화는 자연현상이다

지금의 지구온난화는 기본적으로, 화석연료 연소에 의한 이산화탄소 방출이 증가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 자연현상이다. 기온이 지금보다 5도 이상 낮았던 약 1만8천년 전부터의 온난화 추세가 시작되었다.

일률적으로 온난화가된 것이 아니라 추위와 더위가 반복되었다. 약 1만 1천년 전에는 한차례 혹한기(Younger Dryas Cold Episode)를 거치면서 새로운 빙원(氷原)과 툰드라가 형성되었다. 약 1만년 전에는 다시 현재와 같은 기온으로 온난화되면서 수렵-채집에 의존하던 인류가 한 곳에 정착하여 농경을 시작하면서 4대 문명이 개화했다.

세월은 흘러서 중세 온난기 초기(982년)에 새로운 섬을 발견한 노르웨이인 에리크는 그곳을 '초록의 땅’(Greenland)으로 명명했다. 중세 온난기가 지나자, 이번에는 태양의 흑점 활동이 크게 줄어든 먼더 극소기(Maunder Minimum; 1645∼1715년)에는 소빙하기가 도래했고, 다시 온난화되면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당시의 과학자 아레니우스는 “우리 자손들은, 우리가 겪은 잔혹한 환경이 아니라, 쾌적한 하늘 아래서 잘 살게 될 것이다”(1896년)라고 했다. 지구온난화 덕분에 인류 문명이 개화하고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림1]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와 기온 변화 사이의 인과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C. D. 킬링(1928-2005)의 측정치.

지구 온도와 이산화탄소 농도, 인과관계 있나

지구 생태계 생명활동의 필수요소인 이산화탄소가 기후변화의 원흉으로 지목된 것은 과학적 진실을 무시한 불행이라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지금의 인공적 지구온난화(man-made global warming) 이슈를 과학의 영역을 벗어난 정치적 이슈로 평가한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면서, 1940년경까지는 지구 기온도 상승했다. 실제로 1942년 대구 기온은 40도를 기록했다. 하지만,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와 관계없이 1940∼1970년의 약 30년 동안은 지구 기온이 다시 내려갔다. 1981년 1월 5일, 양평의 기온은 영하 36.2도를 기록했다. 그때까지 지구온난화를 주장하던 사람들은 지구한랭화 주장으로 돌변했다.

20세기 말에는 북반구 평균 기온이 1970년보다 0.6도 낮아질 것으로 예측했지만, 이 예측은 곧 빗나가고, 지구 기온은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한랭화를 주장하던 사람들은 다시 온난화로 주장을 바꿨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인공적 지구온난화 주장 자체가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기온 변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세말부터는 지구 기온이 다시 하강하는 추세에 있다. "온난화 현상은 현재 휴지기에 있다"는 것이, 라이프니츠 해양과학연구소 연구원 모지브 라티프의 진단이다. 지구한랭화 주장까지 되살아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지도자들’은 오는 12월 7일에도 코펜하겐에 모여서 인공적 지구온난화 이슈에 매달릴 것이고, 유례가 없는 '세계 정부’ 구상에 골몰할 것이다.

인공적 지구온난화 이슈는 정치적 산물

인공적 지구온난화 이슈는 태생적으로 정치적이다. 세계 대전 중 국방 목적의 기후 연구에 종사하던 전문가들의 새로운 연구 테마 탐색, 미국의 스리마일 섬과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의 사고 이후 침체된 원전 산업의 로비 활동, 미소 냉전 종결 이후 새로운 정치적 의제 개발, 구소련 붕괴 이후 대체 세력으로 등장한 유럽연합과 미국의 경쟁, 개발도상국에 대한 선진국의 견제 등 복잡한 맥락이 결합된 정치적 이슈가 인공적 지구온난화인 것이다.

신예 기상학자 킬링은 1960년부터 하와이 마우나 로아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최초의 공식 회의는 1985년 오스트리아 빌라흐(Villach)에서 열렸다. UNEP/WMO/ICSU(유엔환경개발/세계기상기구/국제과학회의)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 회의의 주제는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효과가스가 기후변동 등에 미치는 역할 평가’였다.

1988년 6월 23일 J. E. 핸슨은 미국 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다음 (21)세기에 예상되는 지구온난화는 거의 전례 없는 규모로서 … 남극의 얼음이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여 세계의 많은 도시가 수몰되고 내륙은 사막화될 우려가 있다.” 이것이 인공적 지구온난화 주장의 원조인 셈이다. (공교롭게도 당시 증언장소는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아 찜질방과 다름없었다고 한다.)

같은 해 선진국 정상들은 런던 G7 정상회의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까지 1988년 대비 20% 삭감할 것을 결의한 바 있지만, 공수표로 끝났다. 같은 해, UNEP와 WMO가 공동으로 IPCC를 발족했다. 자체 연구원은 없고, 세계 각국의 정부가 지정한 관련 연구자, 집필자, 기고자, 심사자로 구성하므로, 태생적으로 정부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IPCC는 1990년 제1차 평가보고서에 이어 2007년에는 제4차 평가보고서를 발표하면서, 100년 후를 예측했다.

또 UN은 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그전에는 리오데자네이로)에서 환경과 개발에 관한 회의(UNCED)를 개최하고 기후변화조약(UNFCCC)을 채택했다.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당시 부통령 알 고어)는 1993년 10월, 온실효과가스를 2000년까지 1990년 수준으로 삭감할 것을 공언했지만, 역시 공수표로 끝났다.

1997년에는 일본 교토에서 기후변화조약 제3차 체결국총회(COP3)를 열고, '교토의정서’를 채택했다. 주로 선진국이 당사국이었는데 이들은 이산화탄소, 메탄 등을 비롯한 온실효과가스를 2008∼2012년 중에 1990년 대비 5.2% 감축할 것을 의무화했다.(기후변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수증기는 온실효과가스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교토의정서는 우여곡절 끝에 2005년 발효됐지만, 미국은 아예 탈퇴하고, 캐나다는 준수를 거부한 상태이다.

미국의 교토의정서 탈퇴에 영향을 미친 것은 전문가 3만 여명이 서명한 프레데릭 사이츠의 청원서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증가는 환경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증거’가 있으며, '교토의정서는 불완전한 아이디어에 기초한 것’으로, '세계 각국의 기술 발전, 특히 개발도상국 40억 명 이상이 빈곤에서 탈출할 기회를 제공할 기술 발전에 아주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영국 런던대학 생물지릭학 필립 스토트 명예교수는 “교토의정서의 큰 모순점은, 기후가 가장 복잡한 시스템의 하나라면서 온실가스와 같은 몇  가지 요인을 통제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 불확실성의 문제가 아니라 거짓말이다.” 라고 지적했다.

IPCC는 지금의 기후변화가 인공적 영향이 거의 확실하다고 하지만, 롬보르그와 같은 전문가들은 인공적 영향이 4%에 불과하다고 한다. 교토의정서를 철저하게 준수하더라도 2050년까지의 기온 하강효과는 0.07도에 불과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무엇보다도, 며칠 뒤의 가상조차 예측하기 어려운 현 상황에서, 100년 후의 기후에 관한 IPCC의 예측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을까?

현실을 떠나 정치적 수치놀음에 들어선 온실가스 감축

교토의정서 개최국인 일본조차도 감축목표 달성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두 번에 걸친 오일 쇼크를 경험하면서 일본의 에너지 효율은 크게 향상되었다. 1990년까지는 경제가 발전하면서도 이산화탄소 발생량은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에너지 효율이 거의 정점에 이른 1990년 경 부터는 경제발전에 비례하여 이산화탄소 발생량도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일본이 교토의정서를 준수하려면, 주로 외국으로부터 탄소배출권을 구입하기 위해 엄청난 헛돈을 낭비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지구온난화 이슈는 여전히 세계의 의제를 지배한다. 선진국들의 온실효과가스 감축에 관한 교토의정서 준수가 불투명해지는 동시에,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과 함께 온실효과가스 배출량이 선진국을 능가하면서, 교토의정서 이후를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이 대결하고, 또 나라마다 온실가스 감축 기준연도와 감축 목표가 들쭉날쭉이다. 목표년도를 한국처럼 2020년으로 하기도 하고, 2050년을 제시하기도 한다. 기준연도는 불분명한 채, 50% 감축, 심지어 80% 감축목표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미 현실을 떠나 정치적 수치놀음에 들어섰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기후변화 이슈 자체가 과학적으로 불확실하기 때문에, 오히려 정치적으로는 이현령비현령으로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의제인 셈이다. 세계 수뇌들은 지구온난화를 정치적으로 잘 활용한다. 마침내 '저탄소 녹색성장’이 작금의 세계적 불황의 타개책으로 등장해 '그린 뉴딜“이라는 용어가 유행한다.

하지만 2009년 11월 17일 미국 민주당 지도부는 상원에 계류 중인 기후변화법안에 대한 심사를 내년 봄으로 연기했다. 이틀 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참석한 싱가포르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주요국 정상들도 교토의정서를 대신할 새 기후변화협약을 내년으로 미루기로 합의했다.

4% 감축 목표를 어떻게 달성하나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용어는 새로 등장했지만, 내용은 새로운 것이 거의 없다. 화석연료의 대체에너지 개발과 에너지 절약 내지는 에너지 효율화의 두 가지의 기존 주제로 요약할 수 있다.

현재 태양광 발전에서 연료전지에 이르는 신재생에너지는 모두 경제성이 전혀 없다. 정책적으로 이런 시설을 권장하려면, 국민의 세금을 사용해 보조해야 한다. 보조금 제도는 경제적이 아닐 뿐더러, 에너지 효율화과도 거리가 멀다. 단지 세금의 낭비일 뿐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에너지 효율화’이다. GDP 기준의 에너지 사용량을 보면, 한국은 OECD 국가 평균의 2배, 일본의 3배 수준이나 된다. 한국의 에너지 효율은 OECD 국가 평균의 2분의 1, 일본의 3분의 1에 불과한 것이다. 과거에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에너지 효율의 향상에 의해 경제를 발전시키면서도 이산화탄소 발생을 증가시키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일반적으로 경제가 어느 수준 이상, 대체적으로 1인당 GDP가 3만 달러 이상으로 성장하여 선진국이 되어야 비로소 에너지 효율이 향상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국제적 체면을 고려한 억지 탄소 감축보다는, 경제 발전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온실효과가스 감축연도를 2020년의 단기 목표연도보다는 2050년의 중기목표연도를 천명한 편이 더욱 현명한 정책이 아니었을까? 10년 후 우리가 과연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인 선진국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다행한 것은, 우리도 K-스타를 사용하여 한참 연구 중인 핵융합식 원전이, 앞으로 40년쯤 뒤, 즉 2050년 경에는 실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때가 되면, 에너지 자원이나 온실효과가스 문제 자체가 옛이야기로 묻히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PCC가 2100년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위기에 처한 것은 기후가 아니라 자유

'저탄소 녹색성장’ 목표는 자칫 정부에 의한 간섭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도 승용차 요일제, 백열전구 사용 금지 등의 간섭이 심하지만, 앞으로 더욱 간섭이 심해지면 녹색지옥(green hell)이 도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사실상 12월 7일 이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게 될 기후변화조약 제15차 당사국 총회COP15)에서는 UN에 의한 '세계정부’(World Government) 구상이 논의될 예정이다. 강력한 권한을 가진 '세계정부’는 '모든 조약국의 재정, 경제, 세제, 환경 문제에 대해 직접 간섭하게 될 것’이다.

“지금 위기에 처한 것은, 기후가 아니라, 자유다.”

체코 대통령 클라우스 바츨라프의 말이다. 인간이 창의성을 십분 발휘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곳은 자유사회다. 창의성을 손상시키는 간섭사회는 환경 문제 역시 해결하기보다는 더욱 악화시키기만 할 뿐이다.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명분이 간섭의 수단이 되지 않기를 바랄 수 있을까? ■

조영일 /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저자소개: 조영일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화학공학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지구가 정말 열 받았나’, '시민운동바로보기’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근본자원(1,2)’, '과학연구의 경제법칙’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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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가 시군 자율통합 건의서를 접수하고 6개 지역 16개 시군을 통합추진 대상으로 결정했다. 행정구역 통합이 어떤 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행정구역 통합에 대한 미국의 경험적 연구결과들은 우리에게 상당한 시사점을 가져다준다. 미국의 선행연구 결과들은 통합론자들이 주장한 비용 절감효과나 규모의 경제의 효과에 대해 지지하지 않거나 정반대되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행정구역 통합의 가정은 시민들의 선호나 제공되는 공공서비스가 비슷하다고 가정하지만, 시민선호나 공공서비스는 서로 다르며 통합된 정부가 이를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공공서비스와 시민선호의 다양성을 고려하여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고, 크고 작은 다양한 정부 단위가 필요하다.

행정안전부는 전국 18개 지역 46개 시·군이 제출한 시·군 자율 통합 건의서를 접수하고 그 중 6개 지역 16개 시·군을 통합 추진 대상으로 결정했다. 후에 경남 진주·산청과 경기 안양·군포·의왕은 국회의원 선거구 변경을 이유로 제외됐기 때문에, 최종적인 통합 추진 대상 지역은 경기 수원·화성·오산, 성남·하남·광주, 충북 청주·청원, 경남 창원·마산·진해가 되었다.

도시 통합의 찬반 논거

시·군을 통합하면 나타나는 효과로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공무원 수가 줄어들고 서비스 제공 비용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도시 통합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관할의 중첩은 기능의 중복을 초래하고 권한의 분산은 규모의 경제의 이점을 누리지 못하게 하므로 공공 서비스 제공 비용이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또 시·군이 통합되어 큰 조직이 되면 행정이 더욱 전문화될 수 있어 공공 서비스 제공에서의 효율성이 증가한다고 생각한다.

도시 통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더 큰 도시 지역의 일반적인 “공익”을 강조한다. 이들은 지역 안의 상이한 현장들의 지방적 혹은 특수적 이익은 사익일 뿐, “진정한” 공익이 아니라고 본다. 이들의 시각으로는 진정한 공익은 통합된 도시의 이익이고, 기존 시·군의 이익은 억제되어야 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익이다.

반면에 도시 통합을 반대하는 공공선택 접근은 반응성을 중시한다. 일반 이익이 대도시 지역에만 존재한다는 가정에 반대하며, 다양한 이익들의 존재와 이것들의 충족을 강조한다.

또한, 공공선택 접근은 권한의 분산과 중첩 관할을 가진 정부 체제는 크고 작은 다양한 규모의 경제를 이용할 기회를 가지므로 도시 지역을 통합하는 체제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외부 효과도 중첩 정부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또 공공 서비스의 전문 직업화로 효율성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대규모 관료 구조에서는 정보 상실, 통제 상실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행정통합에 대한 미국의 경험적 연구

이 두 가지 시각 중 어느 쪽이 옳은지는 경험적 증거에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시·군 통합과 관련된 경험적 연구가 없어서 어느 쪽 주장이 맞을지 파악하기 힘들다. 하지만, 미국에는 경험적 연구가 많이 축적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연구 결과로부터 우리나라의 시·군 통합의 효과에 대해 다소의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통합론자의 주장이 옳다면, 시·군의 통합으로 관할 규모가 커지면 공공 서비스 제공 비용이 낮아질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많은 연구들에 따르면 도시 규모가 증가하면 도시 서비스에 대한 1인당 지출 비용이 증가한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E. 오스트롬과 R. 파크스는 도시 규모와 1인당 경찰 지출 사이에 음의 관계를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까지 주장한다.

통합론자의 주장이 옳다면, 시·군이 통합되어 관할의 수가 줄어들면 공공 서비스 제공 비용이 내려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경험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관할의 수와 지출 사이에는 별로 관계가 없거나, 오히려 관할의 수가 줄어들 때 1인당 비용이 올라간다. 어떤 연구에서 정부 수와 경찰 비용 사이에는 미약하나마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양의 관계가 있었다. 그러나 만약 정부 수와 10만 명당 경찰 비용 사이의 관계를 보면 음의 관계가 존재하였다.

이상의 지출 연구는 산출물의 수준이나 질을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소 불완전한 연구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규모의 경제에 관한 연구는 정부 효율에 더욱 가깝게 다가간 것이다. 많은 연구는 규모의 경제가 정부 서비스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고 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는 경우도 일정 도시 규모를 넘어서면 규모의 경제가 사라진다고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2만 5천-25만 사이의 인구의 경우에는 규모의 경제도 규모의 불경제도 없다. 그러나 25만 이상의 인구를 가진 도시들에는 현저한 규모의 불경제가 있다.

행정의 전문 직업화와 관련해서는, 경찰, 교육, 사회 복지에 대한 최근의 연구는 프로페셔널리즘이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전문 직업화한 경찰대는 소비자 만족이라는 면에서 성과를 향상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교육, 사회 복지 프로그램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혁신과 생산성 증가도 마찬가지다. 교육 제도 혁신은 교육구의 크기와 음의 관계가 있다는 경험적 연구가 있다. 시민들이 자기들의 선호를 표현할 수 있게 소규모 정부 단위를 유지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얻도록 정부 간 계약을 이용하는 레이크우드 계획(Lakewood plan)을 따르는 도시들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산자들 사이에 혁신이 많이 관찰되었다. 반면, 혁신, 생산성 향상, 효율 제고는 경쟁적 압력을 덜 받는 대규모 공공 조직에서는 별로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단순한 비용 연구도 규모의 경제를 식별하려는 시도도 모두 통합론자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거나 정반대되는 증거를 제공한다. 공공 조직에서의 전문 직업화라든지 혁신 및 생산성 향상에 관해서도 비슷한 결론이다.

통합 접근의 가정, 타당성 있나

경험적 증거는 통합 접근의 가설을 지지하지 않지만, 통합 접근의 가정도 타당성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통합 접근은 대규모 조직이 공중의 욕구, 자원 이용 가능성, 효율적인 생산 기법, 시민들에 대한 효율적이고 형평에 맞는 서비스 전달과 관련하여 대량의 정보를 획득, 처리, 사용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조직의 각 수준에서의 정보 상실과 왜곡이 아주 크다. 따라서 통합된 도시 정부는 심각한 지식의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통합 접근은 시민 선호가 유사하다고 본다. 따라서 공공 서비스들이 통일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속도로 이용, 자동차 운전 규칙 등에서와 같이 시민 선호가 유사성을 보이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시민들은 민간 서비스에 대해 서로 상이한 선호를 가지듯이 공공 서비스에 대해서도 서로 상이한 선호를 지닌다. 따라서 단일의 통합된 정부만 서비스를 제공하면 시민들의 선호 충족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통합 접근은 공공 서비스가 동일한 조직에 의해 아주 효율적으로 제공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비슷하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도시 지역에서 제공되는 공공 서비스들은 서로 매우 다르다. 단일의 통합된 정부가 이들 상이한 서비스들을 모두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는 없다.

작은 정부 단위를 이용할 수 있어야

이상의 경험적 증거와 가정의 검토로부터 나오는 결론은 분명하다. 통합 대신 크고 작은 정부 단위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과, 작은 정부 단위를 이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작은 정부 단위를 없애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상하수도, 공항, 기타 운송 시설과 같은 자본 집약적 서비스나 대기 오염 통제와 같이 넓은 지역에 걸쳐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서비스는 대규모 관할이 필요하다. 그러나 교육, 경찰과 소방, 도서관, 공공 주택, 복지, 공원과 오락, 쓰레기 수거, 가로 정비 등과 같은 것은 소규모 관할이 적합하다. 특히 대면 관계가 서비스의 질에 현저한 영향을 미치는 노동 집약적 공공 서비스는 소규모 정부 단위가 유리하다.

공공 서비스의 다양성과 시민 선호의 다양성을 고려하여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고, 이를 위해서는 크고 작은 다양한 정부 단위가 필요하다. 작은 정부 단위는 시민의 선호를 더 잘 충족시킬 수 있고,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할 때는, 비용이 덜 든다. 작은 정부 단위는 이러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시·군을 통합하면 작은 정부의 이러한 장점을 활용하지 못한다. ■

황수연 / 경성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저자소개: 황수연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조지메이슨 대학교 공공선택연구소 교환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경성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관심분야는 공공선택론과 오스트리아학파 이론 연구이며, 역서로는 '득표동기론’, '국민합의의 분석’, '합리적 투표자에 대한 미신’, '관료제’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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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적대적 M&A 방어 장치 중 하나인 포이즌 필을 포함한 상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번 법무부가 마련한 포이즌 필 제도를 기업들이 도입하는 것은 쉽지 않아 실효성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기업들이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주주총회에서 특별결의를 거쳐 정관을 변경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제도 이외에 각종 견제장치와 규제를 강화해 의도된 지배구조로 바꾸려 하고 있어 기업의 경영활동에 상당한 장애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시장보다는 정부가 법을 통해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시각은 버려야 할 때이다.

지난 10월 22일 법무부는 포이즌 필을 주요 골자로 하는 상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 위해 공청회와 관계부처 협의를 거치겠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포이즌 필의 도입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외환이기 직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외환위기 직후 외자유치를 위해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했으며, M&A 시장 활성화를 위해 의무공개매수제도를 폐지하고 외국인 주식소유제한 한도를 완화했다. 그러나 포이즌 필 등과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는 도입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어 국내자본의 역차별 규제라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그러므로 포이즌 필 등과 같은 적대적 M&A 방어제도 도입은 역차별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제도 도입

포이즌 필 등의 제도 도입은 역차별 규제를 개선한다는 점에서 이번 법무부의 노력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 면이나 방법 면에서 다소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다. 즉, 그 실효성과 숨은 의도에 대한 논란이 그것이다.

현재 법무부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포이즌 필 제도의 내용은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행사요건이 엄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포이즌 필을 발동하려면 회사 정관에 이에 관한 규정이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요건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찬찬히 따져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정관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주주총회에서 특별결의 요건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주주총회 출석 주주의결권의 3분의 2이상이 찬성해야 하고,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이상의 찬성이어야 한다.

특히 적대적 M&A 대상이 되는 기업은 일반적으로 대주주의 지분율이 낮은 기업들이다. 이러한 기업들은 주식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퍼져있고 대주주의 보유지분율이 낮은 상장기업들이기 때문에 정관변경은 실현 불가능하다.

따라서 법무부의 안대로 정관을 변경하여야 포이즌 필을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면, 정작 주주 수가 많은 대기업들의 경우에는 이를 전혀 활용할 수 없는 반면, 경영권위협이 없는 중소기업들에게만 적용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를 직설적으로 표현해 보면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도입 안이라고 할 수 있다.

포이즌 필 제도가 활성화 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 정관이나 법률에 별도 규정이 없더라도 이사회 결의만으로 언제든지 포이즌 필 부여가 가능하다. 일본의 포이즌 필 제도 또한 이사회를 둔 회사라면 이사회 결의만으로 신주예약권을 무상 배정할 수 있도록 정해 대부분 회사에서는 주주총회 특별결의가 필요치 않다. 따라서 현재 법무부가 준비한 포이즌 필 도입안은 사실상 필요한 기업들은 전혀 활용을 못하고, 필요하지 않은 기업들만 고려해 볼 만한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배구조 관련 규제가 다수 포함된 상법 개정안

다른 한편, 일각에서는 법무부가 2006년 마련한 상법개정안이 번번이 국회에 상정되지 못하자 이참에 포이즌 필 제도를 포함시켜 국면전환을 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법무부가 마련한 상법개정안에는 이중대표소송이나 회사기회유용 제한, 집행임원제도 등과 같은 기업지배구조와 관련된 규정들이 포함되어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규정들도 대부분 임의규정이므로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상법에 임의규정이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이는 다른 법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우리나라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전면적으로 변혁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사외이사와 감사위원회제도를 들 수 있다.

현행 상법상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문제나 감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은 기업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임의규정이 상법에 도입된 후, 아이러니 하게도 상장법인들 중 자산 2조원 이상 되는 기업들의 경우에는 이사회 구성원 중 과반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하여야 하며 감사위원회도 반드시 설치하도록 구 증권거래법이 개정된 바 있다.

그 후 대기업들은 불가피하게 사외이사 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사내등기이사 수를 대폭 줄이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과거 대기업의 등기이사들 중 상당수가 집행임원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들의 법적 지위를 보호하고, 이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과시키기 위하여 상법 개정안에서 집행임원제도의 도입안을 마련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상법개정안에 포함되어 있는 집행임원제도는 현행 이사회의 업무집행권을 배제하고, 이를 집행임원들이 감당하도록 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만약, 집행임원제도가 임의규정으로 상법에 도입되는 경우 불가피하게 현행 통합자본시장법에 다시 일정규모 이상의 대기업들의 경우에는 집행임원제도를 강제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중대표소송제도는 기업집단들의 순환출자구조를 개선하는 방안으로 도입이 추진된 바 있다. 그러나 법리상의 문제점과 이 제도가 도입되는 경우 오히려 자회사 주주들의 법익을 심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는 등의 문제점으로 반대에 부딪혀 왔다. 특히, 이를 입법화한 나라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도입의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명무실화의 위험성을 안고 있는 포이즌 필 제도를 개정안에 포함시켜 국회를 통과하겠다고 하는 법무부의 의지는 현실적으로 볼 때 실현성이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주고받기 식 제도 도입 안된다

심지어 법무부는 포이즌 필 제도 도입에 대한 반대 의견이 높아지자, 그 대안으로 포이즌 필 행사를 경제하는 여러 장치를 추가로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지난 6일 매일경제신문이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포이즌 필 제도에 지배주주 견제장치를 추가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 내용으로는 포이즌 필을 행사하기 위하여 신주발행 절차, 행사 방식 등이 위법ㆍ부당하면 주주가 회사를 상대로 법원에 금지 가처분신청을 할 수 있고 제3자 또는 특정주주에 대해서만 신주인수선택권을 부여하는 제3자 배정 방식은 배제하는 것 등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는 포이즌 필 제도가 도입되는 경우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해 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들만을 수용한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 법무부가 마련한 포이즌 필 도입안 자체가 현실적으로 유명무실한 규정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는데다, 종전의 상법개정안에 추가로 포이즌 필의 도입을 이유로 추가로 지배주주를 견제하는 추가 장치를 상법개정안에 도입하는 경우 또다시 참여정부처럼 소수 지분을 갖고 있는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깨는데 목적을 두는 상법 개정안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2006년 상법 개정안 작성 당시부터 논란이 컸던 것은 소수지분을 갖는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장악하는 것은 기업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여야 하며, 그 구체적인 장치를 상법을 비롯한 공정거래법, 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금융지주회사법 등에 마련하여야 한다는 주장들이었다.

그러나 사실 소수지분을 갖는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장악하는 것이 비효율적인지 여부는 아무리 학자들이나 정책입안자들이 이론적으로 분석을 해도 그 답을 얻기는 쉽지 않다. 그 평가는 정책입안자들이 판단할 일이 아니라 바로 그 회사에 투자한 주주들이 평가할 일이다. 즉, 가장 좋은 기업지배구조란 경영성과를 통하여 입증되는 것이지, 정책입안자가 그려내는 그림이 아니다.

따라서 현재 적은 지분으로 지배권을 장악하고 있다 할지라도 당해 경영진이 해당 기업에 큰 손실을 가져 온다면 당연히 주주들로부터 견제를 받을 수 있는 각종의 법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어 크게 걱정할 일들이 아니다. 즉, 소수지분을 갖고 지배력을 행사하는 경영진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견제는 법이 아니라 주주,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시장이 감당하는 것이 타당한 일이다.

이번 포이즌 필 도입 여부도 이러한 시각에서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주식시장에서는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면 즉각 주가에 반영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과거보다는 시장에 의한 견제가 한층 성숙되어 있다. 시장보다는 정부가 법을 통해 직접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시각은 과거 20년 전에는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적합성을 갖지 못한 주장이다.

따라서 법무부가 마련한 포이즌 필 도입안은 현재 법무부가 마련한 상법 개정안과는 별개로 입법논의가 이뤄져야 하며, 포이즌 필의 본래의 모습대로 입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이 제도의 부작용을 우려하여 우리만의 독특한 추가 견제장치는 마련하여 포이즌 필 제도를 도입하는 경우 오히려 부작용만 초래할 수 있다. 부디 현실을 고려한 효율적인 포이즌 필 도입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

전삼현 /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

저자소개: 전삼현 교수는 독일 Frankfurt 대학교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와 기업법률포럼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회사법의 쟁점’, '사외이사와 감사위원회’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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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자 한국에 통일 기대감이 고조되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개혁과 개방을 거부할 경우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인해 북한체제는 장기간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북한체제 붕괴와 통일을 위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통독의 역사적 경험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첫째, 대북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북한정권과 주민은 철저하게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하고 열악한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북핵 폐기를 위해 노력하면서 남북한 경제협력을 꾸준히 추진해 통일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독일이 통일되고 유럽 냉전이 종식된 지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당시 붕괴된 장벽 주변으로 모여든 수많은 인파들을 보면서 우리는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았다.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는 사실에서 충격을 받았다. 자유를 위한 투쟁은 반드시 성공하고 말 것이라는 믿음 하에 전체주의체제에 저항한 동구의 수많은 지식인들의 노력에 인류는 감동을 받았다. 이제 냉전의 종식과 함께 인류에게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부푼 기대감을 갖게 했다.

대북정책, 북한 정권과 주민은 철저하게 분리해야

독일의 통일과 함께 당시 우리 사회에도 곧 우리 민족의 통일이 멀지 않았다는 기대감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 붕괴 20년이 지난 한반도의 상황은 당시의 기대감을 무색케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어 있다. 이미 북한은 2차에 걸친 핵 실험을 통하여 사실상 핵 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도 핵무기를 먹고 살 수는 없다. 북한이 개혁과 개방을 거부할 경우 악화일로를 걷는 경제상황과 식량난으로 인하여 북한체제는 장기간 지속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면서 동시에 북한체제 붕괴와 통일을 위한 대비책을 차분하게 마련해 두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를 바탕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미리 형성해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독일통일의 역사적 경험에서 한반도 분단 관리와 통일을 위한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경제발전에 있어서도 후발 주자들이 때로 이점을 갖는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독일의 지도자들은 역사적 전례가 없는 상황에서 동서독 통합 작업에 착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결과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게 되었다.

독일을 보면 통합 과정은 다차원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치, 군사, 사회, 통화, 경제, 문화 통합 등 그야말로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다차원적 통합 과정과 관련된 결정이 극도로 짧은 시간적 압력 하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모든 위기 상황의 결정이 시간에 떠밀려 가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독일 통일의 경우는 국제적 압력과 맞물리면서 정책결정이 매우 빨리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되었다.

정치적 통합의 경우 독일은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흡수통일을 민주적 절차를 거쳐서 결정함으로써 비교적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서 동독 주민의 일반의지가 확인되었기 때문에 국제사회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1970년대 초반부터 서독은 동방정책을 통해서 동독에 대한 꾸준한 지원과 교류, 협력을 강화시켜 왔다. 그 결과 동독인들은 서독 체제의 우월성을 인정하게 되었고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을 때 큰 어려움 없이 서독을 통일 독일의 중심으로 인정하여 정치적 통일이 이루어졌다.

여기서 보는 것처럼 우리의 경우도 북한 정권과 주민을 철저하게 분리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한국 주도의 통일에 도움이 된다는 교훈을 쉽게 도출해 낼 수 있다. 대북한 인도적 지원의 경우 조건 없이 지원하되 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혜택이 갈 수 있도록 지원의 투명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지난 10년간처럼 국내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북한에게 수억 불의 현찰을 지원하는 햇볕정책식의 무조건 포용정책은 지양되어야 한다.

북한 주민 인권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서독은 동독 주민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하고 열악한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통일의 그날까지 노력해 왔다. 1978년 11월 서독 주 문교부장관회의가 채택한 “독일문제에 대한 서독 문교부의 교육 지침”을 보면 서독이 이 문제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 지침은 서독은 “동독에 있는 독일인들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권리이며 인도주의적 의무이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이 지침에 따라 서독의 학생들은 이를 강조하는 교과서를 통해서 배웠고 모든 언론과 지식인들도 동독의 인권 개선에 노력했던 것이다.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열악한 인권 상황을 호도하는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우리의 상황은 서독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해서 강 건너 불 보듯이 하는 것은 북한 주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통일이 당장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한다면 더더욱 우리는 북한 주민들이 통일의 그날까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해서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같은 동포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의무이다.

서독은 1975년 이미 미국과 서유럽, 소련과 동구권을 포함한 35개국이 참여한 '헬싱키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베를린붕괴와 유럽의 냉전 종식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 핵심은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의 인권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었다. 과거처럼 안보와 경제협력 문제를 연계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안보, 경협, 인권 문제를 동시적으로 고려한 새로운 유럽 질서의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었다. 1978년 인권을 강조한 서독의 교육 지침도 '헬싱키협정’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우리도 북핵과 경협 문제만을 연계시키는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서 북핵, 경협, 인권 문제를 삼위일체로 묶는 '한반도형 헬싱키 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통일의 기반 조성을 위해 필요하다. 이러한 패러다임적 전환의 필요성은 독일 통일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일 것이다.

남북경협, 통일비용을 줄이기 위해 필요

6자회담 재개를 통해서 북핵 폐기를 위해 노력하면서 우리의 장기적 통일 전략에 맞게 남북한 경제협력을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일인당 소득 기준으로 볼 때 통일 당시 동독은 서독의 33%였던 반면 북한은 한국의 6%에 불과하다. 이것은 독일보다 한반도 통일의 경제적 부담이 더욱 클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비용 부담 때문에 통일을 포기할 수는 없다. 어떻게 하면 분단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 독일과 같은 고비용의 통일을 피해갈 수 있느냐 하는 데 문제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독일의 경우 '통화통합’(monetary union)이 가장 중요한 실수의 하나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동서독 통화의 통합과 교환은 서독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다. 서독은 동독에 우리의 '개성공단 모델’을 갖고 있지 못했다. 이 점에서 우리는 개성공단을 자유시장경제의 원리 하에서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갑작스러운 통화통합이 가져올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고용 창출을 통한 통합의 모델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독일의 경우처럼 한반도 통일은 우리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상황과 요인들에 의해 촉발될 수밖에 없다. 점진적이고 평화적 방식이면 좋겠지만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상태라든지 최근 '선군주의’를 내세운 개정 헌법인 '선군헌법’ 채택에 비추어볼 때 통일은 언제든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개정헌법에서는 공산주의를 삭제하고 '선군사상’을 주체사상과 함께 핵심적 이념으로 채택했다. 선군사상은 군부를 체제 유지의 근간으로 삼고 모든 자원을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함하여 군사력 증강에 집중하겠다는 노선이다. 또한 '선군헌법’은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3대 세습을 추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선군주의는 개혁과 개방을 거부하고 오로지 폐쇄적 자주노선을 견지하면서 정권 유지에만 집착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정권의 새로운 노선은 북한 사회 내부의 문제점들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악화와 권력 승계를 둘러싼 내부 투쟁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베를린 장벽과 통일 통일의 교훈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한반도 통일 과정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최근 발표된 골드만삭스의 통일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적절한 통일 정책에 의해 뒷받침될 경우 통일 한국의 GDP는 30-40년 이내에 프랑스, 독일,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통일 한국은 2050년에는 G-8의 일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통일 한국에 대한 이러한 예측이 실현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분단 관리와 통일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서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어야 할 것이다. ■

김영호 / 성신여자대학교 교수

저자소개: 김영호 교수는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외교사와 국제정치학’, '변화하는 세계 바로보기’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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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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