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적대적 M&A 방어 장치 중 하나인 포이즌 필을 포함한 상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번 법무부가 마련한 포이즌 필 제도를 기업들이 도입하는 것은 쉽지 않아 실효성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기업들이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주주총회에서 특별결의를 거쳐 정관을 변경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제도 이외에 각종 견제장치와 규제를 강화해 의도된 지배구조로 바꾸려 하고 있어 기업의 경영활동에 상당한 장애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시장보다는 정부가 법을 통해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시각은 버려야 할 때이다. |
지난 10월 22일 법무부는 포이즌 필을 주요 골자로 하는 상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 위해 공청회와 관계부처 협의를 거치겠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포이즌 필의 도입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외환이기 직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외환위기 직후 외자유치를 위해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했으며, M&A 시장 활성화를 위해 의무공개매수제도를 폐지하고 외국인 주식소유제한 한도를 완화했다. 그러나 포이즌 필 등과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는 도입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어 국내자본의 역차별 규제라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그러므로 포이즌 필 등과 같은 적대적 M&A 방어제도 도입은 역차별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제도 도입
포이즌 필 등의 제도 도입은 역차별 규제를 개선한다는 점에서 이번 법무부의 노력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 면이나 방법 면에서 다소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다. 즉, 그 실효성과 숨은 의도에 대한 논란이 그것이다.
현재 법무부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포이즌 필 제도의 내용은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행사요건이 엄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포이즌 필을 발동하려면 회사 정관에 이에 관한 규정이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요건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찬찬히 따져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정관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주주총회에서 특별결의 요건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주주총회 출석 주주의결권의 3분의 2이상이 찬성해야 하고,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이상의 찬성이어야 한다.
특히 적대적 M&A 대상이 되는 기업은 일반적으로 대주주의 지분율이 낮은 기업들이다. 이러한 기업들은 주식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퍼져있고 대주주의 보유지분율이 낮은 상장기업들이기 때문에 정관변경은 실현 불가능하다.
따라서 법무부의 안대로 정관을 변경하여야 포이즌 필을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면, 정작 주주 수가 많은 대기업들의 경우에는 이를 전혀 활용할 수 없는 반면, 경영권위협이 없는 중소기업들에게만 적용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를 직설적으로 표현해 보면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도입 안이라고 할 수 있다.
포이즌 필 제도가 활성화 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 정관이나 법률에 별도 규정이 없더라도 이사회 결의만으로 언제든지 포이즌 필 부여가 가능하다. 일본의 포이즌 필 제도 또한 이사회를 둔 회사라면 이사회 결의만으로 신주예약권을 무상 배정할 수 있도록 정해 대부분 회사에서는 주주총회 특별결의가 필요치 않다. 따라서 현재 법무부가 준비한 포이즌 필 도입안은 사실상 필요한 기업들은 전혀 활용을 못하고, 필요하지 않은 기업들만 고려해 볼 만한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배구조 관련 규제가 다수 포함된 상법 개정안
다른 한편, 일각에서는 법무부가 2006년 마련한 상법개정안이 번번이 국회에 상정되지 못하자 이참에 포이즌 필 제도를 포함시켜 국면전환을 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법무부가 마련한 상법개정안에는 이중대표소송이나 회사기회유용 제한, 집행임원제도 등과 같은 기업지배구조와 관련된 규정들이 포함되어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규정들도 대부분 임의규정이므로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상법에 임의규정이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이는 다른 법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우리나라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전면적으로 변혁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사외이사와 감사위원회제도를 들 수 있다.
현행 상법상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문제나 감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은 기업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임의규정이 상법에 도입된 후, 아이러니 하게도 상장법인들 중 자산 2조원 이상 되는 기업들의 경우에는 이사회 구성원 중 과반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하여야 하며 감사위원회도 반드시 설치하도록 구 증권거래법이 개정된 바 있다.
그 후 대기업들은 불가피하게 사외이사 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사내등기이사 수를 대폭 줄이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과거 대기업의 등기이사들 중 상당수가 집행임원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들의 법적 지위를 보호하고, 이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과시키기 위하여 상법 개정안에서 집행임원제도의 도입안을 마련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상법개정안에 포함되어 있는 집행임원제도는 현행 이사회의 업무집행권을 배제하고, 이를 집행임원들이 감당하도록 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만약, 집행임원제도가 임의규정으로 상법에 도입되는 경우 불가피하게 현행 통합자본시장법에 다시 일정규모 이상의 대기업들의 경우에는 집행임원제도를 강제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중대표소송제도는 기업집단들의 순환출자구조를 개선하는 방안으로 도입이 추진된 바 있다. 그러나 법리상의 문제점과 이 제도가 도입되는 경우 오히려 자회사 주주들의 법익을 심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는 등의 문제점으로 반대에 부딪혀 왔다. 특히, 이를 입법화한 나라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도입의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명무실화의 위험성을 안고 있는 포이즌 필 제도를 개정안에 포함시켜 국회를 통과하겠다고 하는 법무부의 의지는 현실적으로 볼 때 실현성이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주고받기 식 제도 도입 안된다
심지어 법무부는 포이즌 필 제도 도입에 대한 반대 의견이 높아지자, 그 대안으로 포이즌 필 행사를 경제하는 여러 장치를 추가로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지난 6일 매일경제신문이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포이즌 필 제도에 지배주주 견제장치를 추가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 내용으로는 포이즌 필을 행사하기 위하여 신주발행 절차, 행사 방식 등이 위법ㆍ부당하면 주주가 회사를 상대로 법원에 금지 가처분신청을 할 수 있고 제3자 또는 특정주주에 대해서만 신주인수선택권을 부여하는 제3자 배정 방식은 배제하는 것 등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는 포이즌 필 제도가 도입되는 경우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해 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들만을 수용한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 법무부가 마련한 포이즌 필 도입안 자체가 현실적으로 유명무실한 규정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있는데다, 종전의 상법개정안에 추가로 포이즌 필의 도입을 이유로 추가로 지배주주를 견제하는 추가 장치를 상법개정안에 도입하는 경우 또다시 참여정부처럼 소수 지분을 갖고 있는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깨는데 목적을 두는 상법 개정안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2006년 상법 개정안 작성 당시부터 논란이 컸던 것은 소수지분을 갖는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장악하는 것은 기업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여야 하며, 그 구체적인 장치를 상법을 비롯한 공정거래법, 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금융지주회사법 등에 마련하여야 한다는 주장들이었다.
그러나 사실 소수지분을 갖는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장악하는 것이 비효율적인지 여부는 아무리 학자들이나 정책입안자들이 이론적으로 분석을 해도 그 답을 얻기는 쉽지 않다. 그 평가는 정책입안자들이 판단할 일이 아니라 바로 그 회사에 투자한 주주들이 평가할 일이다. 즉, 가장 좋은 기업지배구조란 경영성과를 통하여 입증되는 것이지, 정책입안자가 그려내는 그림이 아니다.
따라서 현재 적은 지분으로 지배권을 장악하고 있다 할지라도 당해 경영진이 해당 기업에 큰 손실을 가져 온다면 당연히 주주들로부터 견제를 받을 수 있는 각종의 법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어 크게 걱정할 일들이 아니다. 즉, 소수지분을 갖고 지배력을 행사하는 경영진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견제는 법이 아니라 주주,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시장이 감당하는 것이 타당한 일이다.
이번 포이즌 필 도입 여부도 이러한 시각에서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주식시장에서는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면 즉각 주가에 반영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과거보다는 시장에 의한 견제가 한층 성숙되어 있다. 시장보다는 정부가 법을 통해 직접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시각은 과거 20년 전에는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적합성을 갖지 못한 주장이다.
따라서 법무부가 마련한 포이즌 필 도입안은 현재 법무부가 마련한 상법 개정안과는 별개로 입법논의가 이뤄져야 하며, 포이즌 필의 본래의 모습대로 입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이 제도의 부작용을 우려하여 우리만의 독특한 추가 견제장치는 마련하여 포이즌 필 제도를 도입하는 경우 오히려 부작용만 초래할 수 있다. 부디 현실을 고려한 효율적인 포이즌 필 도입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
전삼현 /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
저자소개: 전삼현 교수는 독일 Frankfurt 대학교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와 기업법률포럼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회사법의 쟁점’, '사외이사와 감사위원회’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