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전임자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이 또 다시 유예될 것으로 보인다. 노사정은 노동계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타임오프제를 도입한 협의안을 만들었으며, 한나라당은 협의안 보다 더 나아간 노조관계법 개정안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두 개의 안 모두 노동계의 요구에 밀려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노사정합의안은 타임오프제를 통해 중소기업의 노조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고, 한나라당 안은 임금을 받는 노조활동 범위를 더 넓게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제고하기 위해서 노조전임자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은 더 이상 유예해서는 안되며, 현행 법 대로 시행되어야 된다. |
노조에 발목이 잡혀 13년 동안이나 유예되어 온 노조전임자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이 2010년부터 실시될 예정이자 정치권과 노동계가 협상을 하느라 최근 바쁘게 움직여 왔다. 그런데 그 결과는 우려했던 대로 다시 '유예’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 친노정책을 편 이전의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유예가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지만 이명박 정부에서조차 '유예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 같아 국민들의 실망이 크다.
노조의 막강한 파워로 한국은 '노동시장 규제 관련 경제자유’ 순위가 2000년 김대중 정부에서 123개국 가운데 58위였다가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141개국 가운데 113위로 추락하여 국가의 위상이 말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에서조차 '유예의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면 앞으로 노동시장 유연성이 높아질 가능성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타임오프제가 포함된 노사정 합의안 문제있다
출발은 좋았다. 임태희 노동부장관은 지난 10월 1일 취임식을 갖고, '13년이나 미루고 있는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임금지급 금지를 올해는 꼭 시행한다’고 밝혔다. 그는 “복수노조와 전임자 문제가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후진적 노사관계 틀을 바로잡는 핵심 개혁과제”라고까지 말했다. 이를 놓고 노조측은 거부 반응을, 사용자측은 환영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노동부장관의 생각대로 과연 그렇게 될 것인가 우려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노조전임자 문제와 복수노조 문제는 원안대로 시행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는 계속해서 노조관계법 개정을 요구해 왔다. 2009년 12월에 들어와 정부와 노동계는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섰으며, 12월 4일에 노사정 합의안을 마련했다. 우여곡절 끝에 노조전임자임금지급 금지는 6개월이 유예되어 2010년 7월부터, 복수노조 허용은 2년 6개월이 유예되어 2012년 7월부터 시행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노조전임자임금지급 금지 실시 조건으로 타임오프제가 도입되었다. 타임오프란 사측이 노조전임자의 임금 전액을 주는 것을 금지하되 노조 간부가 노사교섭, 근로자 고충처리, 산업안전 조사 등 노무업무를 위해 활동한 시간만큼은 임금을 주는 제도다. 300명 미만의 중소기업의 경우 노조전임자임금지급이 금지되면 조합비로 전임자임금을 전액 보전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해 1~2명의 전임자는 둘 수 있도록 시행령에 장치를 마련키로 합의되었다고 한다. 임태희 노동부장관도 간담회에서 이를 밝혔다.
정치적으로 변질된 한나라당 노조관계법 개정안
그런데 타임오프제를 통해 중소기업의 노조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것은 새로운 불씨를 남겨놓았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어느 시점에서 대기업이 파업을 통해 대기업의 경우에도 노조전임자임금지급 금지를 철폐해줄 것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복수노조 허용 유예와 관련해서는 실시 시점이 2년 6개월 연장된 2012년 7월부터인데, 이 무렵에는 대한민국 전체가 대선 열풍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그 때는 우파․좌파 가릴 것 없이 표를 얻기 위해 노동계를 끌어들이려고 할 것이고, 노동계는 복수노조 허용 유예 또는 철폐를 놓고 맞설 것이 뻔하다.
가관인 것은 민노총이 제외된 채 이루어진 노사정 합의안을 바탕으로 한나라당이 벌이고 있는 관련법 개정 내용이다. 한나라당은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임금지급 금지와 관련된 노사정 합의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관련법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개정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한나라당 개정안은 노사정 합의안에 담긴 타임오프제보다 임금을 받는 노조활동 범위를 더 허용하고 있다고 지적을 받고 있다. 즉, 한나라당의 노조법 개정안 24조3항은 '노조전임자는 시행령으로 정해진 통상적 노조 관리업무, 사용자와의 협의․교섭, 고충 처리, 산업 안전 등의 활동을 할 때는 임금을 받을 수 있다’고 명시한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대목은 '통상적 노조 관리업무’인데, 이대로라면 노조전임자에게 사실상 현재처럼 임금이 지급되리라는 것이다. 이 개정안이 국회에서 어떻게 처리될 것인가는 두고 볼 일이다.
13년 동안이나 유예되어온 '노조전임자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 2010년 실시를 앞두고 정치권과 노동계 사이에 전개되어온 내용을 평가할 때, 지금까지 '법과 원칙을 지키겠다’고 외치던 정부가 노동계의 요구에 밀려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법과 원칙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노조관계법, 현행 법대로 시행해야
철도파업이 2009년 12월 3일 8일 만에 '백기투항’한 것은 법과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이루어진 결과다. 철도파업을 주도한 40명 노조 간부 가운데 12명이 해고자였다고 한다. 철도공사 직원이 아닌 사람들이 자신들의 복직을 위해 노조를 앞장세워 국민과 국가경제를 볼모로 투쟁을 벌이자 이명박 대통령이 '적당히 타협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원칙은 지켜져야 하며 법이 준수돼야 한다’고 진두지휘했기 때문에 철도파업은 쉽게 끝날 수 있었다. 한국에서 법과 원칙 고수를 통해 노조의 불법파업을 해결한 대표적인 경우가 아닐까 생각된다.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마거릿 대처가 집권한지 5년쯤 지난 1984년 3월 6일 석탄노조가 파업에 들어갔다. 같은 날 국영석탄공사가 대처의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1985년 중에 채산이 맞지 않은 탄광 약 20개소를 폐쇄․통합하고 직원 2만 명을 감원한다는 계획을 노조측에 제시한 것이 파업의 발단이었다. 노조위원장 스카길은 2회에 걸쳐 파업권 확립을 요구하는 노조원들의 투표를 실시했으나 실패하자 각 지부가 일제히 파업에 돌입하는 전국적 파업 전술을 채택했다. 파업은 363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대처는 석탄을 몰래 수입해놓고 석탄노조의 파업에 대처했다. 석탄노조가 363일 동안 끌어오던 파업은 스카길 위원장이 드디어 “여러분, 투쟁은 물론 계속합니다. 그러나 파업은 끝입니다”라는 선언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스카길은 1974년 전국탄광파업을 통해 당시 보수당 히스 정권을 무너뜨린 '제왕’ 같은 노조위원장이었다. 그러한 그가 '법과 원칙을 고수한 철의 여인’ 대처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뉴질랜드도 교훈을 준다. 영국인들은 '신이 내린 천국’을 건설할 목적으로 1800년대 초부터 뉴질랜드에 정착하기 시작하여 세워진 나라다. 영국인들은 출발부터 노동자를 특수상품으로 우대하면서 뉴질랜드를 '노동자 천국’으로 건설해 갔다. 뉴질랜드는 1894년 노동자 천국의 기반을 마련해 준 '산업평화와 중재에 관한 법’을 도입했고, 같은 해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했다. '산업평화와 중재에 관한 법’을 기반으로 뉴질랜드는 중앙집권적 노사관계를 도입했고, 1916년 노동당을 창설하여 1935년 집권에도 성공했다. 노동당은 모든 노동자를 의무적으로 노조에 가입케 했고, 이로 인해 뉴질랜드는 노조천국이 되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 뉴질랜드는 노동시장 규제가 세계에서 가장 심한 나라였다. 그러다가 볼저 수상이 1991년 '고용계약법’을 도입하여 100여 년간 유지되어 온 중앙집권적 노사관계를 분권적 노사관계로 혁명적으로 바꿔버렸다. '합리적인 법 도입과 법 고수’로 뉴질랜드는 노동개혁에 성공하여 지금은 세계에서 노동시장이 가장 유연한 다섯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정치권은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 우리에게 잘못된 과거가 있다. 비정규직보호법 도입이 그렇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는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내건 최대 선거 이슈였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 후 가진 대국민 첫 TV성명에서조차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노사정위원회에서 비정규직보호법을 도입하려 했으나 노사정위원회가 파행만 거듭하자 법 도입을 국회로 떠넘겼다. 비정규직 법안은 뜨거운 감자가 되어 발의 후 1년 4개월 동안이나 표류하다가 급기야 지방선거와 대선 일정을 염두에 둔 당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야합하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2006년 2월 27일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그 후 이 법안은 2007년 7월부터 시행하기로 하고 2006년 11월 30일 국회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보호법이 가져올 문제점을 지적한 정치가는 별로 없었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으로 그동안 정규직은 감소한 채 비정규직만 증가했고, 2009년 7월 이후에는 비정규직 대란이 일어나 비정규직마저 감소했다는 사실을 정치가들은 기억해야 한다.
입법을 담당하는 정치가들이여! 법과 원칙을 지켜야만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 '노조전임자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이 또 유예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는 독일만큼이나 노동시장이 경직된 나라다. 법과 원칙을 적용해야만 노동시장 유연성이 높아질 수 있다.■
박동운 / 단국대학교 명예교수
저자소개: 박동운 교수는 미국 하와이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단국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서로는「CEO 정신을 발휘한 사람들」,「시장경제이야기 Q&A」,「자유시장경제의 위대한 승리 대처리즘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