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가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계좌추적권 등 조사권한을 강화하는 입법안을 예고했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가 벗어나고 있지 못한 '부패공화국’이라는 오명을 감안할 때 강력한 제재를 통해 부패를 없애겠다는 충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목적이 정당해도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정당한지는 의문이며, 의도가 좋다고 해서 결과까지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번 입법예고안은 국가권력의 판단에 따라 사적 영역에 간섭을 증가시켜 자유를 위협 할 수 있으며, 나아가 부패척결을 명분으로 국민권익위원회를 '봉사하는 권력’이 아닌 '군림하는 권력’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따라서 국민권익위원회는 공직자 부패척결에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원칙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공직자의 부패척결은 한 국가공동체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국가적 과제이다. 그러기에 일찍이 16세기 피렌체의 정치사상가였던 마키아벨리는 부정부패와 절연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부정한 공직자에 대해 10년에 한 번씩 뇌리에 남을 만큼 가혹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을 정도였다. 또한 세계의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21세기형 선진국의 비결이라면 '깨끗한 국가’를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점에 있다. 문제는 이처럼 깨끗한 국가가 될 수 있는데 특별한 왕도(王道)는 없다는 사실이다. 다수의 공직자들이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어야 한다는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의 준칙을 금과옥조로 삼고 살아가는 방법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직사회 투명도, 경제발전 수준과 비교해 현저히 떨어져

물론 정치인이나 공직자라고 해서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살아가야 할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이유는 없을는지 모른다. 공직자도 가정을 가진 사람인데,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살아가라는 주문은 너무 가혹한 요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반칙과 부정을 일삼는 '배부른 돼지’보다는 최소한 정직과 공정성을 좌우명으로 삼는 '배부른 소크라테스’로 살아간다는 점이 선진국가 공직자들의 일반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 공직사회의 투명도는 세계10위권의 경제발전 수준에 현저하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 증거는 많다. 국민국제투명성기구가 몇 주 전에 발표한 2009년 부패인식 지수를 보면 한국은 10점 만점에 5.5점으로 180개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39위였다. 작년에 비해 순위는 40위에서 한 단계 올랐지만 점수가 5.6점에서 0.1점 하락해 공무원과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부패인식 정도가 나아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의 평균이 7.04인데 비해 우리는 2005년에 겨우 4점대를 넘어 5점대에 진입한 이후 계속 정체상태다. OECD에서의 순위는 22위로 헝가리 폴란드 체코 등과 함께 하위 그룹에 속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나라로서 부끄러운 수준이다.

국내의 다른 조사결과도 국제투명성기구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작년 12월 국내 거주 외국인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한국 공무원이 부패했다'는 응답자가 50.5%, '부패로 인해 기업 활동이 심각하게 저해됐다'는 응답자가 58%에 이르렀다. 또한 작년 11월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기업인 10명 중 2명이 최근 1년 사이에 공무원에게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주된 이유는 '공무원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34.8%), '관행상 필요해서'(25.9%), '업무 처리에 따른 감사 표시'(15.6%)였다. 국가기관의 조사결과가 이 정도라면 실제로는 훨씬 더 심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한국의 공직자들에게 하나의 정체성처럼 따라다니는 요소가 있다면, 부정부패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부정부패를 오랫동안 하나의 '필요악’ 혹은 자연스러운 '관행’으로 치부해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사회가 금융실명제 실시이후 정보화 사회의 흐름과 더불어 비교적 투명해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또 선거도 비교적 깨끗한 풍토 속에서 치러지고 있다.

부패척결 의도는 좋지만...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일련의 의문들을 제기한다. 정치를 하는 데 왜 그렇게 돈이 많이 들며, 또 사업을 하는 데 사업비용 말고 공무원에게 암암리에 갖다 주는 돈은 왜 그렇게 많은가. 왜 대가성 뇌물이나 보험성 뇌물 없이 이 사회에서 사업을 할 수 없고 살아갈 수 없는가. 같은 공사를 같은 회사가 해도 국내에서 하기보다 해외에서 하는 것이 더 쉽고 더 튼튼한 공사를 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러한 의문점들 한 가운데 공직자의 부정부패가 자리 잡고 있음을 우리는 이심전심으로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민권익위원회가 공직부패 척결을 위해 팔뚝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에 대해 그 의도의 순수성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다. 실제로 국민권익위원회의 주요 기능중 하나라면 고위 공직자의 부패를 예방하고 차단하는 데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권익위는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부패조사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 하나의 이유라면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패 신고를 받고도 효과 있는 조사를 못하는 현실이라면, 어떻게 맡는바 역할을 적절하게 수행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최근 권익위가 조사권을 강화하겠다며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나섰다. 그 주요내용이라면 영장 없이 공직자의 계좌를 추적하고, 청렴도 평가를 위해 자료를 요구하며, 권익위의 위상도 총리실에서 대통령 산하로 높이는 방안 등이다. '백년하청(百年河淸)’처럼 오랫동안 우리사회가 벗어나고 있지 못한 '부패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감안할 때 강력한 수단과 제재를 통해 부패를 없애야하겠다는 충정은 충분히 이해가 갈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생각해야할 점이 있다. 아무리 목적이 정당해도 그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수단이 정당한지는 따져 보아야하는 것이 민주사회의 규범이다. 뿐만 아니라 의도가 좋다고 해서 결과까지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권한강화로 부정부패 없앨 수 있다는 생각은 치명적 자만

공직자의 부정부패는 시스템이론가들의 용어를 빌리자면 '단순계(simple system)’가 아니라 '복잡계(complex system)’이다. '단순계’란 하나의 원인이 하나의 결과로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에 비하여 '복잡계’란 하나의 원인이 하나의 결과로 이어지기보다는 하나의 원인이 여러 개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는가하면, 또 하나의 결과는 여러 가지의 원인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는 단순히 공직자들이 가지고 있는 '탐욕', 즉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레오넥시아(pleonexia)'라고 불렀던 현상만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공직자들이 가지고 있는 광범위한 인·허가권과 더불어 권력의지, 또한 그들의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속을 차리려는 일반 사업자들의 탐욕까지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이루어지는 현상이 부정부패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직자의 부정부패에 관한 문제는 '정체적인 개념’보다는 '순환적인 개념’으로 접근해야한다. '순환(circle)’이란 하나의 현상이 그 자체로 하나의 원인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결과로도 존재하여 다른 현상과 고리의 관계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순환에는 '선순환(virtuous circle)’과 '악순환(vicious circle)’이 있다. '선순환’은 그 순환자체가 좋은 결과를 강화하는 효과를 갖는다면, 악순환은 그 고리가 나쁜 쪽으로 강화되는 경우를 말한다.

부정부패의 악순환을 생각해보자. 공직자가 부패하면 인·허가권을 가진 자신의 권한을 빌미로 금품과 향응을 요구하며 이에 순응하거나 부화뇌동한 사업자는 돈을 바쳐 자신의 목적을 이룬다. 그러면 공직자는 점점 그 액수를 높여 요구하게 되고 사업자는 아무리 그 액수가 높아도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많다고 생각하여 응하게 된다. 한편 사업자는 더욱 능동적으로 금품을 이용한 로비력으로 공직자들을 유혹하게 된다.

이러한 두터운 부정부패의 고리는 단순한 제재와 감시체계로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순환’의 개념이나 '복잡계’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단순히 국민권익위위원회의 권한강화로 부정부패를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치명적 자만'이 아닐 수 없다.

권익위 개정안, 무소불위 권력기관을 꿈꾸는가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번 개정안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개정안은 권익위가 당사자를 대면조사하고, 청렴도 평가를 이유로 공공기관에 개인의 사소한 정보까지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위원장에게는 필요한 경우 국무회의에 출석해 발언하고, 소관 사무에 관해 국무총리에게 의안 제출을 건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대로 되면 권익위는 검찰과 경찰은 물론 헌법상 대통령 직속 감찰기관인 감사원조차 갖지 못한 권력을 쥐게 되고, 또한 과거 노무현 정권 때 한나라당이 무산시킨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권한을 능가하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셈이다. 더구나 권위를 높이고, 국민권익 보호와 부패방지 및 행정심판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소속을 국무총리실에서 대통령 직속으로 바꾸겠다는 것이기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가 말한 '리바이어던’에 버금갈만한 권부가 될 공산이 크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사회의 틀을 깨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유혹에 약하다. 그래서 민주주의론자들이 아무리 선의의 군주에 대해서도 권력의 오남용을 경계해 마지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권력통합보다 권력분립을 강력하게 주장해온 논리도 여기에 있다. 당연히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하여 만든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도 오․남용의 유혹에서 예외가 아니다. “절대권력이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말은 여기서도 통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권한을 가진 권익위가 부정부패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역설적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가장 큰 문제는 고위공직자 부패 행위 조사 시 법원의 영장 없이 금융기관에 금융거래 정보 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금융기관은 이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한 조항이다. 계좌추적 범위도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으로 매우 포괄적으로 규정해놓았다. 이를 다른 목적에 사용하거나 누설했을 때 처벌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하지 않았다.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면서 그에 따른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도덕적 해이’의 발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영장 없이 금융 계좌를 추적하겠다는 발상은 특히 매우 위험하다. 국민의 프라이버시권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고, 헌법이 정한 영장주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공직자의 부패를 척결하겠다는 목적 하나만으로 개인의 사적 영역을 크게 위축시키는 것은 우리가 이상(理想)으로 삼아온 자유의 비전에도 맞지 않고 법의 지배를 지향하는 법치국가의 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국가권력이 개인의 사적 생활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역할을 자제해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은 일부 독립심이 강한 시민들이나 특권층, 심지어 잠재적인 부정부패세력의 자기중심적인 하소연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에 대한 권리와 개인의 행복추구권은 천부인권이라고 믿고 있는 사상가들이 전통적으로 주장해왔던 하나의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상’(political ideal)으로서 정부는 질서유지나 사회간접자본의 제공 등, 일정한 공적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데 최선을 다하며 국민개개인은 각자의 판단에 따라 외부의 간섭과 보호를 받지 않고 자신들의 생활을 자율적으로 설계해 나가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명제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아무리 부정부패의 척결을 명분으로 한다고 해도 개인의 사적 영역을 자신의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간섭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국가권력은 그러한 개인의 자율적 영역을 위험에 빠뜨릴 수밖에 없다. 이것은 다시 말해 국가권력이 '봉사하는 권력’이 아니라 '군림하는 권력’이 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국민들의 사생활을 마음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국가권력은 시민들에 대하여 소중한 이상이 아니라 은근한 위협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사실을 국민권익위원회는 주의 깊게 명심하며,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척결하는데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원칙이 요구된다는 점을 알아야할 것이다. ■

박효종 / 서울대학교 교수

저자소개: 미국 인디애나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와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민주주의와 권위’, '한국민주정치와 삼권분립’,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역서)’ 외 다수가 있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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