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사정관제도는 대학이 자신이 원하는 인재를 독자적인 방식으로 자율적으로 선발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이다. 국가주도의 교육정책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마련한 입학사정관제를 다시 정부가 개입하여 관제 입학사정관제로 천편일률적으로 시행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관 주도의 정책은 교육 자율의 취지에도 맞지 않으며, 그 부작용으로 인해 늘 학생과 국민들만 피해를 입는다. 정부가 할 일은 자신이 세원 '자율’과 '경쟁’의 원칙을 지키고 학교에 실질적인 자율을 회복해 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집권 후 많은 국민들이 기대한 것과 정반대의 정책 지향과 정치 행보에 크게 실망하고 있다. 정치 분야, 노동 분야의 대응 방식에서부터 반(反)시장 경제정책에 걸쳐 국민들은 실망감과 배신감을 갖게 된다. 교육 분야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관제자율과 방임행정으로 가나?

원래 이 대통령의 교육 부문 대선 공약 사항의 핵심은 '자율’과 '경쟁’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반 동안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자신의 공약과는 정반대로, '자율’과 '경쟁’은 명분에 그치고 실제에 있어서는 '관제(官製) 자율’과 '방임(放任)행정’으로 가고 있다.

관제 자율이라고 하는 것은 '자율’을 앞세우지만, 정부 당국이 일일이 가이드라인을 정하여 개입하는 행태를 말하는 것이다. 아직도 대학입학 전형이나 중등학교의 선발권의 핵인 평준화 정책에 대하여 이전의 정부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대학입학전형은 주관 부서가 교육부에서 대교협으로 이관된 듯하고, 평준화 정책은 오히려 좌파 정부보다 더 강화하고 있는 듯하다. 특목고, 자율형 고등학교의 신입생 선발 전형에 대한 통제가 오히려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방임행정이라고 하는 것은 정작 법질서와 기강을 잡아야 할 경우에는 당국의 권한을 온당하게 사용하지 않고 방기(放棄)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학생들을 부당하게 동원한 작년 쇠고기 파동 불법시위 때 교육당국의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대응이 이에 해당한다.

최근에 대통령의 행보는 '중도’를 표방하면서 서민 대책에 치중하고 있다. 서민들의 민생을 해결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다만 그 맥락의 연장에서 교육정책이 애꿎게도 자율과는 반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민생투어의 일환으로 대통령은 한 지방의 학교에 들러서 학생들과 대화하며 면접만으로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고, 지난 7월에는 라디오 연설을 통하여 임기 말에는 대학입학사정관을 통하여 100% 신입생을 뽑을 수 있는 대학입학 전형을 교육개혁 드라이브 차원에서 추진하겠다고 한 바 있다.

대입사정관제도의 취지에 어긋난 국가 주도 입학사정관제

현 정부의 교육정책의 지향점을 보면 절대 왕정이나 군사독재 정권의 것과 너무나 닮아 있다. 교육정책 시행을 국가의 '시혜’로 보는 듯하다. 대통령이 시혜를 베풀듯이 순진한 학생들에게 면접만 가지고 대학 갈 수 있다고 하면, 그 아이들의 머리 속에는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는가. 공부 안 해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허황되고 그릇된 믿음을 심어준다. 뭐 하나만 똑 부러지게 잘 하면 누구나 원하는 대학 간다고 선동한 과거 '이해찬 세대’를 또 다시 만들려는가.

대입사정관제도야말로 대학자율의 백미인 전형제도이다. 각 대학이 자신이 원하는 인재를 독자적인 방식으로 선발하기 위하여 마련한 제도이다. 이 제도가 우리나라에서도 큰 매력을 갖는 것은 국가주도의 수능시험의 한계가 있고, 내신은 평준화 정책으로 신뢰성을 잃고 있는데다가 내신 성적 자체가 대학의 수학능력을 예견하기보다는 중등학교 학업의 기록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주도의 교육정책의 단점을 제거할 수 있는 입학사정관을 다시 국가가 개입하여 정부 주도로 하겠다는 것은 이 제도의 취지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처사이다. 대학이 신입생 선발 전형에 있어서 어떤 평가 준거를 사용할지, 평가 자료는 무엇으로 정하고, 어떤 비율로 할 것인지, 그리고 대입사정관을 존치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대학의 자율과 권한에 맡겨져야 한다. 면접 100%만으로 전형할 수도 있고, 수능시험과 내신을 혼합할 수도 있고, 본고사를 치를 수도 있고, 대입사정관이 전권을 가지고 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처럼 각 대학이 독자적 방식으로 선발해야 '자율’이라고 하는 것이다.

한편, 대학에 따라서 입학사정관을 두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분위기로는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으면 각종 교부금이나 지원금의 차등을 두는 것처럼 되어 있어서 너도나도 다 입학사정관을 두고자 한다고 한다.

이러한 방식은 5공화국 때 교육정책에 아주 닮아 있다. 당시 교복, 두발을 '자율화’한다고 하여 '전국적으로 폐지’한 경험이 있다. 그 결과 예기치 않게 당시 많은 부모들이 교복 대신 입게 될 아이들의 옷 걱정에 적잖은 부담을 떠안은 경험이 있다. 현재처럼 '관제’ 대입사정관제가 추진되면 어떤 부작용이 나올지 아무지 예견할 수 없다.

천편일률적 입학사정관제는 부작용만 나올 것

설사 이명박 대통령이나 교육 관료들의 발상대로 대입사정관제가 관 주도로 천편일률적으로 시행되었다고 치자. 우선 이를 수용토록 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보조금을 지급할 것이며, 이를 미끼로 대학학사업무에 또 얼마나 많은 개입과 간섭을 할 것인가. 구조조정과 민영화로 인한 효율적 정부 구상과 예산 절감하겠다는 대선 공약과도 배치된다.

둘째, 현재 추세로 모든 대학이 이 제도를 채택할 경우 입학사정관을 할 인력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은 상황은 또 어쩔 것인가. 혹시 전시에 병력을 동원하듯이 학식 있는 사람들을 '국가동원’ 형식으로 모조리 불러 모아 입학사정관에 앉힐 것인가.

셋째, 각 대학이 채용한 입학사정관의 전형결과에 대하여 신뢰성과 객관성 확보 방안은 무엇인가. 만약 조급하게 도입한 결과 대입사정관의 결정에 따라 낙방한 수험생과 학부모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 어떤 대책으로 사태를 해결할 것인가.

관 주도로 대입사정관제를 권장하는 것은 이 제도의 취지뿐만 아니라 교육 자율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늘 관이 주도했다가 문제가 생겨 피해 보는 것은 해당학교와 학생, 그리고 국민들이다.

과거 교원 정년을 무리하게 단축하여 교원 수급이 맞지 않아서 교육대학에 편입생 모집을 종용하고 사대 졸업생에게 초등교사 저격을 남발하여 교단과 학생들의 반발을 샀고, 또 교원 임용고사를 한 해에 7번 이상 치른 적도 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는 초등 교원 적체가 다시 발생하는 등 악순환은 모두 국가 개입으로 인한 것이다.

정부의 할 일은 '자율’과 '경쟁’의 원칙을 지키는 것

결론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할 일은 아주 단순하다. 자신이 세운 '자율’과 '경쟁’의 원칙만 지키면 된다. 대학에게, 그리고 초·중등 단위학교에 실질적인 자율을 회복해 주면 된다.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도록 학교선택권을 돌려주면 된다. 권력의 속성상 뭔가를 '규제’하고 싶다면, '규제의 패러독스’에 따라 규제하라. 규제를 없애기 위해 정부기구와 권력집행을 단속하는 '규제’만을 하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규제와 간섭으로 '자율’은 허울뿐이고, 실질적인 자율과 경쟁 체제가 확립되지 않는다면, '경쟁적 사회주의’처럼 된다. 사회주의자들이 어리석은 '꾀’를 내어 만들었다는 경쟁적 사회주의가 성공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자율’로 포장된 '관제’ 교육정책이 실패할 것이 분명한 것은 이 때문이다.

김정래/ 부산교대 유아교육과 교수

김정래 교수는 영국 University of Keele 대학원에서 교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부산교육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전교조 비평’, '서양교육사절요’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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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임금 관련 법 조항의 시행유예만료기간이 2009년 말로 다가옴 따라 또 다시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복수노조 문제는 노조의 계급지향적 노동투쟁방식을 폐기하지 않을 경우 기업의 위기의식은 더욱 커질 것이다. 또한 노동투쟁의 전리품으로 인식되는 노조전임자 문제는 귀족노조와 노동계급정치를 양산하고 있어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조합비로 전임자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정치지향적 계급투쟁 강령을 폐기하고, 노동운동이 영국과 미국 등 선진국처럼 근로조건 향상이라는 '일’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복수노조 문제와 노조전임자 임금문제가 또 다시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그 이유는 개정 노동법의 시행유보 기간이 2009년으로 만료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들을 시행유보 했던 이유는 노조전임자 임금보조를 중단했을 때 예상되는 반발과 복수노조 등장으로 산업이 곤경에 처하는 상황도 피하고 싶다는 단순한 사고 때문이었다.

그러나 복수노조 상황이 아니었어도, 쌍용자동차 분규는 민노총 상급조직과 정당⋅사회단체 개입으로 회사존립을 위협하는 단계까지 갔었다. 이것은 복수노조에 대한 우려를 왜소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밖에 반정부 정치투쟁에 조직력을 가동하는 민노총의 자금력이 입증되면서 노조전임자 임금문제도 새로운 조명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우리는 전투적 노사관계국가라는 외부세계의 혹평을 감수하면서 민노총의 투쟁노선이 문제라는 실상을 밝히지 않는 이중사고에 빠져있다. 만약, 계급지향적 노동투쟁을 노사관계 우산으로 감싸지 않았다면 노사관계 담론은 헌법정신을 존중하는 기조 위에서 실용적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이 글은 이런 시각에서 복수노조와 전임자문제 본질을 조명하고자 한다.

복수노조 선결과제는 민노총의 '계급지향적 투쟁’ 강령 폐기

복수노조에 대한 공포는 노조가 투쟁하는 단체라는 인식 때문이다. 노조를 계급투쟁 수단이라고 가르치는 마르크스 교시에 따르면 복수노조 상황은 계급투쟁 확산을 의미하므로 기업측에 위기의식을 일으킨다. 일본노조 총평이 전개한 계급투쟁 노동운동을 닮은 민노총의 일관된 투쟁노선은 기업측에 불안감을 주었고 그것이 복수노조 공포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노총의 투쟁노선은 권력과 자본을 분쇄대상으로 규정한 강령에서도 나오지만 노사분규 외관을 빌리고, 사회는 그것을 노사관계 이름으로 수용하는 척하면서 뒤에서 속앓이를 했다. 쌍용자동차 사태는 정부와 재계를 포함한 노사관계 당사자의 이중적 접근자세에 경고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민노총 투쟁노선의 원천인 강령을 용인하면서 법과 질서라는 빈말을 반복하고 애국심을 팔아 언론플레이하는 이중성이 문제를 키웠다. 노조 내면에서 투쟁하는 단체로 이끄는 이데올로기에는 눈을 감고, 외부에 나타나는 단편적 행동만 보는 이중사고가 노사관계 불신을 조장했다.

영국에서 나온 최초의 노조는 조합원의 일을 지키기 위한 단결이었으며 자연스럽게 직종별노조가 발달했다. '근로조건 향상을 위하여 근로자에’ 노동삼권을 준다는 한국헌법의 간결한 표현 속에는 영국형 노시관계 역사교훈을 수용하는 논리가 들어 있다.

영국기업은 다수노조와 공존하면서 단일테이블 교섭방식(single table bargaining)을 고안하고 단일노조 협정(single union contract)을 성사시키며 유연하게 대응했다. 중소기업 중심인 영국과 달리 대기업이 주류를 이루는 미국에서는 적절 교섭단위제도(appropriate bargaining unit)를 설계하여 경영안정과 능률을 도모했으며, 기업별노조를 선택한 일본에서는 종업원 분열을 의미하는 복수노조가 생소하다. 계급투쟁 이데올로기가 없는 환경에서 일을 두고 형성되는 복수노조는 기피대상이 아니라 관리대상임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역사적으로 복수노조에 직면한 나라들은 다양한 접근방법을 개발하여 노사가 공존해 왔으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민노총의 투쟁노선을 지적하지 못하고 속으로 두려워하는 환경이 실용적 토론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종업원의 자유로운 접근과 선택이 소외될 우려도 있다.

호주 하워드정부는 세계에서 최초로 개별근로계약을 단체협약 수준으로 보호하는 절차를 도입하였다. 이것은 단결권을 노조에 독점시키는 제도가 도전받고 있다는 증후라고 할 수 있으며 복수노조에 대비하는 한국에도 참고가 될 것이다.

노조전임자 문제의 본질은 정치적 노동투쟁

노조전임자 이슈 속에는 임금문제보다 훨씬 심각한 국면이 숨어있다. 먼저 전임자 지위가 노동투쟁의 전리품이라는 인식에 문제가 있다. 전임자가 되면 근로제공의무를 면제받지만 그것을 노동투쟁의 전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임자가 담당할 직능과 과업을 따지지 않고 몸집만 키우려는 나쁜 버릇이 생겼다. 전임자문제가 빗나가기 시작한 출발점이다.

노동투쟁의 강도가 커질수록 그 전리품인 전임자 수가 증가되어 지금은 전임자 계층을 형성하고 노동조직 안에 귀족반열이 군림한다. 노동 내부에 일하지 않는 귀족계층이 늘어나자 그 중간에 근로제공의무를 불이행하는 준귀족층이 파생했다. 노조에 이름을 걸어 두고 일하지 않는 종업원계층이 있지만 투쟁하면 주어야 할 자리이기 때문에 묵인되고 있으며, 그것이 생산에 미치는 영향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 환경이 된 것이다.

근로제공의무에서 해방된 전임자계층이 정치적 노동투쟁의 중추를 이루고, 정치적 노동투쟁은 다시 전임자계층의 일상적 직능으로 변하여 순환된다. 한국의 전임자계층이 19세기 혁명적 환경에서 마르크스가 개발한 '노동계급정치(working class politics)’ 전술을 21세기 환경에서 실천하고 있다.

귀족노조 타파위해 전임자 임금은 조합비로 지급해야

노조를 투쟁하는 단체로, 전임자를 노동투쟁의 전과라고 보면 임금은 패자인 사용자 부담이 되며, 이것이 한국의 관행이 되었다. 그러나 노조 목적을 조합원의 일 보호에 맞추면 전임자문제는 노조 내부관리문제로 바뀐다. 일을 지키기 위하여 단결한 영국노조는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관리비를 조합비로 충당했기 때문에 일하지 않는 귀족층이 생기지 않았다.

노조가 현장에서 일을 지키게 되면 조합원을 위한 봉사와 희생정신이 나오고, 활동범위가 확대되면 노조 힘으로 보상하는 시장원리가 작용될 것이다. 현장에서 보면, 조합원의 일을 지키는 노조활동과 기업의 생산 활동이 동행하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보상이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와 기업은 노동문제를 일과 분리하여 아웃소싱(outsourcing)시킨 결과 '일’이 빠진 이상한 노동문화가 나왔다. 노사분규는 정부 관계당국과 특정 단체의 존재이유가 되었으며 노사관계가 안정되면 존재이유도 없어진다는 아이러니가 성립된다. 노사관계 이슈가 터질 때마다 본질적 해법을 추구하지 않고 고식적 임기응변으로 일관하는 이유가 나타난다.

기업이 번영해야 임금을 더 요구할 수 있다며 노조를 이끈 영국 초기노조의 비즈니스 유니오니즘(unionism)이나, 조금이라도 더 받아내는 것이 노동운동의 목적이라는 미국의 비즈니스 유니오니즘 중심에는 일이 있었다. 노⋅사가 함께 일을 떠나 대결하면 거창한 계급차원의 이익이나 편협한 명분에 따라 행동하는 교조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일이 노사관계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말하는 것이며, 일에서 소외된 한국노사관계 상층구조의 한계를 암시한다. 영국이 노동부 역할을 산업관련부서에 이관한 이유가 나온다.

노조, 정치투쟁 폐기하고 근로조건 향상에 목적을 둬야

일이 노사관계 중심에 오면 노조가 단결권을 독점하는 제도에 의문이 생긴다. 영국에서 처음 나온 단결권 원형은 노동이 쟁취한 것이며 후발공업국에서 단결권을 노조에 독점시키는 법이 나왔다. 영국에서 단결권 독점현상(closed shop)은 대처정부에서 사라졌으며, 오바마정부가 추진 중인 종업원 선택권 확대(Employee Free Choice Act)나 호주의 하워드정부가 종업원단체에 교섭권을 인정한 것은 단결권 독점상황의 변화를 의미한다.

한국에서도 헌법상 근로조건 향상목적에 충실하면 종업원의견 수렴방식을 개방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노사협의회’에 종업원임금 대변기능을 부여해도 헌법상 이상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유럽에서 근로자평의회(works council)와 노조가 기능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은 단결권을 노조에 독점시키는 환경의 변화를 말하며, 현안인 복수노조문제 해법에도 중요한 활로를 제시한다.

계급투쟁 이데올로기를 포기한 영국노동은 기업의 파트너가 되어 생산성 향상운동을 전개한다. 일을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보면 근로계약은 파트너십계약과 유사하므로 노조가 생산성 향상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생산성향상운동에 동참하는 노조를 생각하면 복수노조 공포는 곧 투쟁노선 공포와 같은 것이다.

시장원리가 존중되는 영국에서 노조는 생활공동체 형태로 변하고 있다. 일을 촉매로 기업과 노조 그리고 지역사회가 공동체적 유대관계를 맺고 공존하는 면에서 보면, 단결권을 노조에 독점시킨 19세기 구도는 더 이상 성역이 될 수 없다. 노조기능이 지역공동체 안에서 재설계되는 21세기 변화방향을 코뮤니티 유니오니즘(community unionism)이라고 한다면, 쌍용자동차 사태는 이것을 한국에 알리는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을 종합할 때, 민노총의 정치지향적 투쟁노선이 그대로 있다면 노사를 만족시키는 묘안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민노총이 헌법정신을 존중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노조로 변해야 하며, 이것은 다시 투쟁정신의 원천인 강령을 수정해야 가능한 일이다. 결국 대안개발노력의 우선순위가 민노총 강령 수정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만약 이중적 접근자세가 이런 노력을 기피한다면 어떤 대안이 나와도 유사 쌍용사태는 이어질 것이다. ■

김영환 / 명지전문대 명예교수

저자소개:김영환 명예교수는 명지전문대학에서 정년퇴직 후 민노총의 투쟁 노선 등 좌파 노동이론에 대해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노동조합의 기원과 조직형태’, '불법폭력파업과 시민권리 보호’, '한국노사관계의 재인식-일 중심 노사관계와 계급투쟁 노동운동’ 등이 있다.



[언론기고] 노조전임자 임금은 노동조합이 부담해야
[리버테리안] 귀족노조'라는 표현에 숨겨진 독소
[Digest]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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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는 심야학원강습을 단속하기 위해 학원신고포상금제도(일명 학파라치제도)를 도입했다. 학파라치제도로 학원들이 몸을 사리겠지만, 심야학습금지가 사교육비 절감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그리고 이 제도는 국가가 동료시민의 고발을 부추기고, 정당한 교육행위를 범법행위로 단속하고, 헌법에서 보장하는 영업자유 원칙을 침해하는 등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 동안 사교육 대책은 수없이 시도돼 왔지만 매번 실패해 왔다. 이제 정부도 이 사실을 인정하고 사교육에 대해 손을 떼야 한다. 그리고 공교육의 질을 개선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7월 6일 교육과학부는 과다 수강료, 심야 학원 강습을 적발하기 위한 '학원신고포상금제’를 도입했다. 부산시 교육청은 15일 부산지역 학원들을 기습 단속하여 교습시간을 위반한 학원 11곳과 교습소 4곳을 적발했다. 교육청은 직원 210명을 투입하여 오후 10시 30분부터 다음날 1시까지 학원 밀집지역 1천 353곳의 학원과 교습소를 점검했다. 부산에서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오후 10까지, 고등학생은 오후 11시까지만 교습을 할 수 있다. 부산과 달리 서울은 초ㆍ중ㆍ고교생에 대해 '밤 10시 이후 심야수업 금지’ 규정을 지켜야 한다.

심야학습금지, 사교육비 감소 효과 불확실

시도 교육청들은 수강료 초과 징수, 교습시간 위반, 학원·교습소 신고의무 위반, 개인과외교습자 신고의무 위반을 단속하였다. 지금 시행되고 있는 '학파라치제(학원 불법 영업 신고 포상금제)’라는 듣기조차 민망한 어처구니없는 제도는 당분간 위력을 발휘할지 모른다. 학파라치가 활동하는 한 학원들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야학습 금지가 사교육비를 줄이는데 얼마나 기여할지는 불확실하다.

설사 학파라치제 덕분에 심야학습 금지가 실효를 거둔다고 할지라도 이 제도는 삼중으로 잘못되었다. 이 제도의 첫 번째 문제는 시민이 동료 시민의 행위를 고발하도록 국가가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교육 행위를 마치 범법 행위처럼 국가가 단속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세 번째 문제는 학원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있어 헌법에서 보장하는 영업의 자유 원칙을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원이 단속대상이라고 하지만 대상은 학원 건물이 아니라 공부하는 어린 학생과 학원 강사들이다. 배우는 행위를 장소와 시간이 어긋났다는 이유로 그것이 공권력의 단속 대상이라는 것을 어린 학생들에게 합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행위가 범법 행위를 조장하고 그로 말미암아 자신이 공부하고 있던 장소를 운영한 사람들이 처벌 받는다는 것을 납득시키기란 더더욱 어렵다.

더구나 밤 10시 이후에 이루어진 행위만 처벌 대상이라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던 행위를 어느 날부터 갑자기 위법으로 몰아 단속하는 국가를 누가 신뢰하겠는가. 동일 행위를 밤 10시라는 임의적인 시간을 기준으로 합법과 위법으로 나누는 법은 시민들에게 존중받을 수 없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패착 중의 패착이다.

파퓰리즘에서 나온 학파라치제도

이런 난대 없는 패착이 왜 나왔을까? 이것은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시장의 역할을 늘리며, 급격하게 증가한 세금을 내리고 부당한 기업에 대한 규제를 줄여 경제 성장의 기반을 다지겠다던 현 정부가 초심을 버리고 거리의 인파와 함성에 놀라 '근원적 처방’은 고려하지 않고 '중도 강화’를 표방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정부여당은 연속적으로 '사교육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어떤 대책은 실제로 시행되었거나 시행될 예정이고 어떤 대책은 논의 단계에서 사라지기도 하였다. 지난 6월 26일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 연구소가 주최한 '중산층과 서민경제를 위협하는 사교육과의 전쟁에서 어떻게 이길 것인가’란 토론회에서 사교육비 경감 7대 대책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대책에는 고입·대입 학원 교습 시간제한, 교원평가 제도화, 예체능 특성화 학교 확대, 방과 후 영어 무상교육 추진, EBSi 초ㆍ중학교 학습 지원 전면 확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은 여러 가지 비판에 직면해 있으며 그 비판을 뚫고 살아남아 실제 시행될지는 지금 상황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이 가운데 학원 교습 시간제한은 정치권에서 강하게 주장하고 나왔다. 사실상 이 토론회를 주도한 한나라당 한 의원은 “이명박 정부가 자율을 주장하는데 왜 (학원) 규제를 하려고 하느냐고 하는데 그건 도그마”라며 “필요하면 규제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학원 교습 시간은 그간 시ㆍ도 조례로 규제해 왔는데 그게 허울뿐인 규제였다”고 하면서, “시ㆍ도에 맡겨선 안 되니 중앙정부에 맡겨 더 강하게 (규제)하겠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심야학원 금지 입법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대두되면서 입법을 통한 금지는 주춤하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지금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의 기조가 바뀌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 기조는 '자율과 경쟁’이었다. '자율과 경쟁’을 교육 정책 기조로 채택한 이유는 공교육을 살리고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사교육비 절감이 교육정책 목적이 되어서는 안돼

그러나 최근에는 교육을 서민 경제생활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자율과 경쟁’은 퇴색되고 말았다. 서민계층의 허리를 휘게 하는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는 방책을 모색하는 것에 정부가 무관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방책은 실효성이 있고, 그것보다 더 소중한 사회적 가치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정부의 정책이나 제도가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윤리적 정당성과 그 제도가 실제로 성공하여 원했던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가를 검토해야 한다.

사교육비 절감이 교육 정책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좋은 교육 정책이 시행되어 사교육비가 절감된다면 그보다 더 다행스러운 일은 없겠지만, 사교육비 절감 자체가 교육 정책의 일차적인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이 올바르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학교의 다양화와 수월성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자율과 경쟁이다. 자율은 그것 자체로서 도덕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수단으로서도 유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이유를 내세워 교육에서 자율을 유보하고 규제와 통제로 돌아섰다.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교육 정책 변경과 규제와 통제는 과거 10년의 정부뿐만 아니라 이념적 성향에 관계없이 그 이전의 정부도 무수히 수행해 왔다. 가장 강력한 공권력을 가졌던 80년대 초반에는 과외 금지를 단행하기도 하였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사교육을 줄이고 교육 평등화를 실현하기 위해 온갖 정책과 통제를 도입한 이전 정부 가운데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다.


정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연도별 사교육비 지출 규모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문화일보 월 24일자에 의하면 사교육비 지출은 2001년에 10조 6,634억원이던 것이 2008년에는 20조 9,095억원으로 늘어났다. 공식적인 조사 과정에 포함되지 않은 '음성적’ 교육비를 합치면 사교육비 규모는 2배 이상이 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전국 입시ㆍ보습학원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공교육 질을 개선하는 것

이제 우리는 “어떤 대책으로도 사교육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정부의 대책도 사교육의 끈질긴 생명력을 약화시킬 수 없다. 사교육 번성의 원인은 정부의 잘못된 제도 설계가 아니라 자유주의 사회에서 정부의 힘으로 절대로 통제할 수 없는 다른 어떤 요소에서 나온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남보다 좋은 교육, 더 많은 교육을 받아 좋은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남보다 성공하려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열망이다. 이외에도 우리 사회에만 존재하는 고유한 문화적 특성 때문에 사교육이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이런 문화와 사교육에 대해서 정부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사교육에 대해 백전백패를 거듭해온 정부는 이제 사교육의 특성을 인정하고 그것과 전쟁을 멈출 때가 되었다. 모든 전쟁이 수많은 사상자를 남기듯이 정부의 사교육과의 전쟁도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수많은 수험생들을 혼란으로 몰고 갈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정신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뿐만 아니라 교육 영역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만을 초래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잠식한다.

사교육에 대한 대책은 없다. 사교육을 일거에 퇴치할 수 있는 백신은 없다. 다만 교육에 대한 시민의 열망이 잦아들고, 올바른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져 시민들이 스스로 사교육에서 물러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사교육은 단순히 교육의 문제를 넘어 우리 문화와 사회의 특성에서 나온 것이다. 교육이 터 잡고 있는 사회적 환경과 시민의 의식이 변하지 않는 한 사교육은 퇴치될 수 없다.

사교육에 대해 정부가 손을 놓은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이는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우선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사교육의 원인에 대한 사실적 관계를 좀 더 선명하게 밝혀 사교육의 근본 원인이 정부의 정책적 오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시민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사교육의 원인이 교육제도의 구조적 모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욕구와 심성에서 나왔다는 것을 밝혀주어야 한다.

나아가 여력이 있다면 사교육으로부터 소외된 교육부분에서의 약자들에게 기회를 찾아주기 위해 정부가 담당하고 있는 공교육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사교육과 경쟁하여 공교육의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교육 자체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공교육을 운영하고 감독하는 정부는 주어진 자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시민들이 조금이라도 더 만족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공직자들의 책무이다.

신중섭 /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저자소개: 신중섭 교수는 고려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논쟁과 철학’, '전교조의 이념과 운동 비판’ 외 다수가 있다.



[주간포커스] 정부사교육 정책에 쓴소리
[다산칼럼] `연아엄마`가 일깨운 사교육 다시보기
[리버테리안] 대학 변해야 사교육비 줄일 수 있다
[시민논객] 정부의 학원 규제정책
[시민논객] 학원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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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중소 자영업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기업형 수퍼 즉, 대형마트의 동네 수퍼마켓 진출 제한을 추진하고 있다. 대형마트의 동네 수퍼마켓 진출로 인해 중소상인들이 어려워질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기업형 수퍼를 규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유통시장이 개방된 이후 대형할인점 등은 내수부진, 성장률 둔화, 외환위기 등 경제위기 속에서도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성장에 기여했으며, 소비자들도 그로인해 다양하고 보다 싼 가격에 제품을 구매하는 등 많은 혜택을 누려왔다. 따라서 현재 입법예고된 유통산업발전법 시행령을 폐기하고, 소비자 이익을 위해서는 진입규제 완화를 통해 경쟁을 촉진하고 유통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동법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

최근 지식경제부는 대형 유통업체들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을 신고제에서 등록제로 바꾸는 유통산업발전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개정안은 3천㎡ 이상의 대규모 점포에만 적용되던 개설 등록제를 규모와 상관없이 대형업체의 모든 직영점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즉, 중소 자영업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할인점의 동네 슈퍼마켓 진출을 제한하려는 정책이다.

대형할인점 고용효과는 매우 커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기업형 슈퍼마켓(Super SuperMarket: SSM) 입점으로 인해 동네상권이 피해를 입는다며 이를 막아 달라는 전국 상인단체들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SSM 주변 300개 소매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SSM 입점으로 중소유통업의 79%가 경영이 악화됐으며, SSM 입점 이후 소매업체의 평균 매출액이 34% 정도 감소됐다고 응답하였다. 2009년 4월 자영업자 수는 576만 5천명으로 작년 동월 대비 26만 7천명이 줄어들었다는 통계청의 발표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위의 통계는 WTO 체재 출범과 더불어 1996년 국내 유통산업이 개방된 이후 지속되어 온 유통산업 발전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유통시장 개방 후 국내 유통산업의 구조는 급격히 변해 슈퍼마켓과 구멍가게 등 중·소규모 점포의 위상은 급락한 반면 대형할인점, 편의점, 온라인쇼핑몰 등의 판매는 급성장해왔다.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가 2005년에 발표한 '통계로 보는 유통개방 10년’ 보고서에 따르면, 대형할인점의 판매액이 1996년부터 2004년 동안 약 780% 증가했으나 슈퍼마켓과 구멍가게의 매출액은 각각 19.4%, 12.0% 줄었다. 그 동안 대형할인점은 28개에서 275개로 10배 정도 늘어났으나 약 70만6천 개였던 종업원 4인 이하 영세 소매상은 약 8만 개가 사라졌다.

그러나 대형할인점의 증가로 인한 고용효과는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경제신문의 지난 6월 '유통, 신성장 동력이다’라는 기획취재에 의하면, 대형할인점이 한 곳 오픈할 때마다 점포직원 500∼600명 정도가 고용되며, 협력사 직원을 포함할 경우 평균 총 2,500개 정도의 일자리가 생겨난다고 한다. 2008년 말 기준 현재 국내 대형할인점 수는 385개임을 고려할 때, 유통시장 개방 이후 대형할인점이 상당히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동안 소비자들의 소비행태도 크게 변했다. 과거 근처 슈퍼마켓에서 주로 사던 식료품은 대형할인점에서 구매하게 됐고, 전자상가나 가구단지 등에서 구입하던 내구재 역시 대형할인점에서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났다.

경제의 신성장 동력은 유통산업

한편 유통시장 개방과 더불어 유통산업의 성장기여도는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2006년 발간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총생산에 대한 유통산업의 성장기여도는 유통시장 개방 이전의 7년 평균 성장기여율은 5.8%였다. 그러나 개방 이후 성장기여율은 7.5%로 약 1.7%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외환위기나 내수부진 등에 따른 경제성장률 둔화에도 불구하고, 유통시장의 개방이 국내총생산에 대한 유통산업의 성장기여율을 높인 것이다.

이는 시장개방 이후 규모의 경제 실현, 선진 유통기법의 도입, IT기술의 적용 확대, 업태 간 경쟁 심화, 경영 합리화 등으로 유통산업의 총요소생산성이 향상했기 때문이다. 생산성이 높은 새로운 업태의 등장과 아울러 시장개방에 따른 국내외 업체 간 치열한 경쟁이 이러한 효율성 향상의 원동력이었다. 요컨대, 유통시장 진입규제의 철폐로 인한 경쟁의 심화가 유통산업의 구조개편과 경제성장을 촉진시켰다.

이처럼 국내 유통산업이 개방 이후 크게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유통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은 국내 다른 산업과 비교해 여전히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 대한상의가 발간한 '유통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규제개선 방안연구’에 따르면, 유통업의 노동생산성은 농림어업에 비해서는 높으나 전산업 평균의 54%, 제조업의 30% 수준에 지나지 않으며, 그 향상 속도도 다른 산업에 비해 늦어 생산성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추세이다.

특히 국내 유통산업의 노동생산성은 구매력 평가지수 기준으로 일본의 34%, 미국의 29%, 프랑스의 34% 수준으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대한상의의 2009년 '소비활성화 방향과 기업의 역할’이라는 보고서도 한국유통산업의 생산성 수준을 미국의 25.4%, 일본의 36.6%로 비슷하게 보고해 유통산업이 전반적인 경제의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음을 재확인하고 있다.


이러한 국내 유통산업의 저생산성과 저효율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통시장의 건전한 경쟁과 영업활동 등을 제한하는 규제에 대한 개혁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때문에 유통산업에 새로운 진입장벽을 가져와 경쟁을 억제할 수 있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겠다.

유통서비스산업은 생산과 소비를 연결시켜주는 경제의 중요한 산업이다. 이 산업은 2005년 현재 국내총생산의 6.2%를 차지하고 일자리의 약 17%에 해당하는 248만 명이 종사하는 대표적인 서비스산업이다. 한국경제는 제조업 중심의 성장전략만으로는 고용과 소득 창출에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서 유통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유통산업 발달, 최대 수혜자는 소비자

유통산업은 과거의 단순한 내수 장치산업이기 보다는 글로벌 지식서비스업으로 변화되고 있으며 그 성장 잠재력도 매우 큰 산업이다. 미래에도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Total Solution 또는 Total Care를 제공하기 위해 유통업의 발전이 급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유통산업 발전의 최대 수혜자들은 소비자들이다. 소비자들은 종전보다 훨씬 더 다양한 제품을 보다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물가하락은 소비자들의 소득이 증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소득이 증가한 효과가 있다. 주어진 소득에서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의 수가 종전보다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질소득 증가는 임금인상 압력을 억제함으로써 제조업 경쟁력의 향상으로 연결될 것이다. 규제완화로 인한 유통산업 발전이 가져올 이러한 경제 전체적인 편익은 중소상인들이 입게 될 폐해에 비해 클 것임을 유통개방의 경험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정부는 유통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규제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함과 동시에 기존 중소상인들의 경쟁력을 강화시킴으로써 이들이 입게 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유통시장에 새로운 진입 규제를 신설하기 보다는 기존 상권의 활성화를 통해 중소업체와 대형마트 및 다양한 상점가들이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

김상호 / 호남대 호텔경영학과 교수

저자소개: 김상호 교수는 Michigan State University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호남대학교 호텔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제경제학, 계량경제학, 지역경제학, 문화경제학 등이며, 역서로는 '공공문제의 경제학(D. C. North, R. L. Miller 공저)’이 있다.



[논평]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소비자 선택권 해치는 반시장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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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비정규직법 시행 된지 2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비정규직보호법’이 아닌 '비정규직해고촉진법’이 돼 버렸다. 지난 10일까지 비정규직 전환자 5,260명 중 3,827명이 해고되었다. 비정규직법을 그대로 둘 경우 더 많은 사람들이 해고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는 않고 정쟁만을 일삼고 있다. 사실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 보호라는 의도로 만들어졌지만, 해고를 촉진하는 법으로 태생부터 잘못 되었다. 그리고 비정규직 기간제한을 유예하는 것은 해고를 잠시 유예하는 것으로 한시적 처방에 불과할 뿐이며, 근본적인 처방을 위해서는 폐지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법 개정안이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의 '선방'에 막혀 진전이 없다. 추 위원장은 “정부·여당이 비정규직 100만 해고 대란설을 유포하면서 시행유예를 압박했지만, 이 법이 시행된 5일간 대량해고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피할 수 없는 해고대란

정말 그럴까? 노동부가 7월 10일에 발표한 바에 의하면, 법 적용 9일 동안 기간제 근로자 3,827명이 해고되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이들은 불과 1,433명이니 전체 대상자 5,260명 중 27.2%가 정규직으로 전환된 셈이다. 해고비율은 매우 높지만 해고된 비정규직이 4,000명도 안 되니 이를 가리켜 해고대란이라고 부를 수 없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비정규직법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그러면 당초 우려되었던 해고대란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 이유가 무엇일까? 비정규직법은 2007년 7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그리고 기간제법 시행일인 2007년 7월 1일로부터 근속기간이 2년을 초과하였다고 자동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2007년 7월 1일 이후 체결․갱신․연장되는 계약에 따라 2년을 초과하여 근로한 기간제 근로자에 한하여 정규직으로 간주된다.

예를 들어, 어느 근로자가 계약기간이 2007년 1월 1일부터 2007년 12월 31일인 근로계약을 체결한 뒤 2008년 1월 1일 기간제 근로계약을 갱신한 경우에는 기간제 사용기간의 기산일은 2008년 1월 1일이 되므로 그로부터 2년이 초과된 2010년 1월 1일이 지나야 정규직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그 이전에 기간제로 몇 년을 근무하였든 그 점은 무관하다.

그렇다면, 2007년 7월 1일부터 9일간 계약기간 2년이 초과되는 기간제 근로자가 5,000명 정도에 불과하였기에 지금까지는 해고대란이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이제 이대로 시일이 흘러 2011년 7월 1일이 되면 모든 비정규직 근로자의 근속기간 2년이 초과될 것이고, 따라서 모든 비정규직 근로자가 해고 또는 정규직 전환이라는 분기점을 통과하게 될 것이다. 과연 몇 명의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고, 몇 명이 해고될까. 7월 1일부터 7월 9일까지의 정규직 전환율이 27.2%였다니 전환율을 30%라 보고, 비정규직이 600만 명으로 추산할 경우 420만 명이 해고될 수 있다는 단순계산이 가능하다. 이것은 분명 해고대란이고, 대란을 넘어 재앙이다.

이러한 재앙은 애초부터 비정규직법에 내재되어 있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세계경쟁력 랭킹에서 한국은 고등교육훈련 등에서 134개국 중 12-13위 수준이다. 그러나 해고비용에서는 108위, 노사협력에서 95위, 고용경직성에서 65위로 발표되었다.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한국 노조의 강경투쟁성향은 세계적으로도 정평이 나 있는데,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태생부터 문제가 있었던 비정규직법

이런 상황에서 고용경직성을 대폭 강화하는 비정규직법은 애초부터 문제가 많았다. 사실, 법으로 경제현상을 규율하려는 유혹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존재했지만 그런 노력은 대부분 실패했다.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르는 정책은 흔히 의도하지 않은 결과(unintended consequences)로 귀결된다. 전시에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면 예외 없이 암시장이 형성되어 오히려 가격이 앙등하였듯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화시키려는 '선한’ 의도와 달리 해고와 실업으로 귀결되는 것 역시 의도하지 않은 결과다.

기업으로서도 같은 조건이라면 비정규직보다는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 더 낫다는 사실을 물론 잘 알고 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하여 이직률이 훨씬 높고 생산성도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이유는 비정규직의 단점을 보상하고도 남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용유연성과 비용절감이다. 외환위기 이후 자본과 노동력이 국경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하는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행됨에 따라 기업들은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 구조조정을 일상화하였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높은 고용유연성이 필요했다. 또한, 전세계 기업을 상대로 무한경쟁을 하려다보니 부수적인 업무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아웃소싱 등으로 대처하여 인건비를 최대한 줄여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방법으로도 부족한 기업은 중국이나 베트남 등으로 작업장을 옮겼는데, 주로 인건비를 줄이려는 목적이었음은 물론이다. 심지어 북한에 있는 개성공단으로 작업장을 옮긴 기업이 적지 않다. 지구상에서 가장 불확실하다는 북한정권의 약속을 믿고 인건비를 줄이겠다고 공장이전을 감행하는 기업들을 보면 한 푼의 비용이라도 줄여야 하는 처절한 몸부림을 느낄 수 있다. 기업들이 이러한 상황에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친 결과 비정규직은 2001년 360만 명에서 2007년 548만 명(전체 근로자의 36.6%)으로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기간제 2년 제한은 세계적으로도 드물어

그런데 비정규직법은 이러한 경제여건을 부정하고, 2년이 지나면 일률적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의제하는 안이한 방법을 취했다. 비정규직, 나아가 실업을 해소하는 더 간단하고도 근원적인 처방이 있긴 하다. 국가가 모든 비정규직과 실업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이다. 일자리가 모자란다면 1명이면 충분한 작업장에 3명을 고용하여 일을 시키면 된다.

다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으로 임금을 주는 것은 아니므로 1명에게 줄 임금을 3명에게 나누어 줄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이렇게 하면, 완전고용과 평등을 실현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를 공산주의라고 부른다. 이런 사회에서는 일을 열심히 하든 말든 고용과 임금이 보장되니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어서 생산성은 날로 떨어지고, 결국은 그 3명에게 주어진 1/3짜리 일자리도 보장할 수 없어서 붕괴되고 마는 현장을 우리는 20세기 말에 목격했다. 법으로는 단 하나의 일자리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채택한 기간제 2년 제한은 세계적으로도 그 예가 드물다. 기간제 고용을 2년으로 제한한 것은 독일 정도를 들 수 있다(다만, 창업시에는 4년이 가능하다).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3년, 영국과 아일랜드가 4년, 헝가리가 5년임이다. 이와 달리 미국, 호주, 캐나다, 스위스, 체코, 덴마크, 폴란드, 오스트리아 등은 기간제 제한이 없다. 기간제 제한은 주로 사회주의적 전통이 강한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 도입하고 있고, 자유시장경제에 투철한 나라 중에는 그 예가 드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기간제 제한에 관한 한 세계 '최첨단'을 걷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 근로자 중 소수의 정규직화, 다수의 실업자화라는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기업에게도 손실일 뿐만 아니라 해고되는 비정규직에게는 치명적이다. 그러니 비정규직을 위한다는 법이 “비정규직을 잡는 법”이라는 말이 나온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바와 같이 유예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현재와 같은 정규직을 의제하는 형태의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 잡을 수밖에 없으니 유예기간으로 땜질처방을 할 것이 아니라 폐지해야 한다.

기간 유예는 땜질식 처방일 뿐, 폐지해야

그리고 비정규직 형태의 고용을 마냥 부정적으로 볼 것도 아니다. 기술과 산업구조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산업구조에서 비정규직은 자연스러운 고용형태일 수도 있다. 기업뿐만 아니라 근로자 개인에게도 때로는 비정규직이 바람직한 형태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규직 근로자 중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선택한 사람이 51.5%나 차지하고 있고, 이들의 임금수준이 정규직의 90%에 육박하는 현상이 일어났을 터이다.

근로자 개인도 비정규직을 선택함으로써 고용기회가 확대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가 비정규직을 합리적으로 활용하면서 동시에 불합리한 비정규직의 억제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비정규직에 대한 불법적인 차별을 방치하거나 비정규직의 증가를 방임할 일은 아니다.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을 완화하고, 정규직과의 차별을 축소하고, 나아가 비정규직을 감소시키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다만, 지금의 비정규직법과 같이 법률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의제하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

비정규직 해법은 우선,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직업능력을 개발시키는 것이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스스로 직업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부가 직업훈련, 정규직 전환 보조금 지원 등 재정지출을 통해 지원하는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이왕 지원하려면 직업훈련기회와 비용을 제공해 비정규직의 직업전환을 위한 개발에 지원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러한 해법은 한계가 있다. 정규직 일자리 자체가 증가하지 않는다면 정규직의 감소분을 비정규직이 보충하는 수준에 그치므로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우 격차를 줄여서 기업으로 정규직으로 채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기업으로서도 이직률이 높고 생산성이 낮은 비정규직 고용이 바람직하지는 않으므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비용차이가 적을수록 비정규직 대신 정규직을 채용할 유인이 크다.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를 높이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니 정규직의 처우를 낮추는 수밖에 없다. 좋은 처우를 받는 대기업 정규직 위주로 구성된 민주노총이 입으로 비정규직 보호를 외치지만 스스로 기간제와 파견제 근로자에게 양보하는 연대의식을 발휘하지 않는 이상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는 이유다. ■

이재교/ 법무법인 충정 변호사

저자소개: 이재교 교수는 광주지방법원, 대구지방법원, 인천지방법원 판사, 인하대학교 법대 교수를 역임했다. 미국 인디에나주립대학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법무법인 충정 변호사로 재직 중이다.



> 언론기고 | 비정규직 법안 문제 많다
> 리버테리안 최근의 비정규직 사태를 바라보며
> 언론기고 | 비정규직법 '2+2년 연장’은 미봉일 뿐
> 언론기고 비정규직법은 포퓰리즘에 빠진 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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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미디어법 개정 문제로 여야 공방이 치열하다. 여당은 방송 현대화와 경제적 효과를 거론하고, 야당은 여론 독점화와 공공성을 훼손을 우려하고 있다. 미디어법 관련 규제는 경쟁과 소비자권익을 위해서 완화해야 하지만, 여당의 미디어법 규제완화에 따른 경제적 효과의 산술적 계산은 틀렸다. 불확실한 미래를 현재의 지식만을 가지고 사전적으로 산술적으로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야당의 막무가내식 미디어 법 개정 반대는 기득권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현행 규제는 방송산업에 진입을 제한하며, 한정된 상품만을 구매하도록 소비자들에게 강요하고 있어 소비자선택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비자들의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미디어법 관련 경영규제와 진입규제는 폐지돼야 한다.

통상 미디어법으로 칭해지는 방송 산업의 규제완화를 둘러싸고 국회에서 여야 간의 공방이 치열하다. 여당인 한나라당에서는 이 미디어법이 새로운 자본투입을 유인해 방송 산업의 현대화가 이루어지고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간과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는 반면, 제1야당인 민주당측에서는 미디어산업의 독점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그에 따른 피해, 즉 국민의식과 여론의 독점화와 방송의 공공성 훼손를 우려한다는 인식론적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어렵다. 아니 양쪽의 주장은 모두 틀려 보인다.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추진은 그 취지에 동의 할 수 있지만, 그 경제적 효과논리에는 쉽게 찬성 할 수가 없다. 또 민주당의 주장은 이전에 그리 철폐하자던 기득권의 또 다른 보호이기 때문이다.

취지는 바람직하나 경제적 효과의 사전적 계산은 불가능

한나라당의 주장하는 경제적 효과를 산술적으로 예측하는 것은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미래에는 수많은 불확실한 변수들이 존재하는데 현재의 정보만을 가지고 사전적으로 정확히 예측해 그 효과를 산술적으로 계산한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경제학자들이 여러 요구에 의해 많은 경우의 경제적 효과를 산술적으로 계산해왔지만, 변화의 뚜껑을 열어보기 이전에 그 효과를 금전적으로 따지는 것은 자신들의 주장을 위해 숫자를 가공해내는 편의주의로 무장한 치명적인 자만의 오류다.

역사적으로 계획과 규제의 경제체제가 끊임없이 실패하며 우리에게 말해주었듯이, 오스카 랑게(O. Lange)가 주장했던 경제계산(economic calculation)이 오묘한 시장의 법칙에서 발생하는 지식문제(knowledge problem)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교훈은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경제효과 산출이 얼마나 허망하다는 것을 잘 말해준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경제적 아니 금전적 효과란 그리 되면 좋겠다는 희망의 표현이지 그것이 미디어법이 추구하는 목표의 논리적 바탕이 될 수는 없다. 단지 한나라당이 할 수 있는 일은 추진하고 있는 규제완화가 있을 때 그에 따른 변화의 방향성을 논리적으로 따지고 그것의 정당성을 국민들에게 알려 줄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이 어떤 구체적 경제효과로 돌아온다며 규제변화를 정당화하는 주장은 마치 국민들에게 영화 스타워즈에서 제다이기사가 손을 한 바꿔 저으며 동의를 요구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미디어법 반대 논리는 기득권을 보호하자는 것

한나라당의 주장과는 달리 미디어법과 관련된 경제적 논쟁의 핵심은 민주당을 포함한 현 방송규제체제의 옹호자들이 그 주장의 기반으로 삼고 미디어 다양성과 공공성의 최후의 보루로 칭하는 방송산업에 가해지는 경영규제와 진입규제에 대한 논의이다. 하지만 논제의 선점이 그에 따른 모든 주장을 정당화하진 않는다. 현 방송규제를 옹호하고 변화에 반대하며 이 두 가지 규제가 국민을 위한 조치라고 외치는 것은 그 실제적 의미를 호도하는 것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반대로 현 방송산업 규제란 시청자가 다양한 의견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며 방송의 공공성이란 방송운영의 주체가 누구냐에 위해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디어법을 둘러싼 의견의 대립은 두 가지 규제로 인해 암묵적으로 인정되는 현 체제(status quo)의, 즉 현 방송산업규제를 통하여 독점권을 행사하는 공중파방송사들의 기득권을 계속해서 인정해 줄 것이냐, 아니면 그것을 철폐할 것이냐에 대한 경제적 문제로 함축해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 규제들을 정의해 보면 경영규제란 방송사들의 프로그램 편성권을 정부가 지정함으로 제한적 편성을 허가해주는 조치이고, 진입규제란 공중파방송사 소유대상을 제한함으로서 방송산업으로의 자율적 투자를 제한하는 조치이다.

그러나 실제로 시청자로서 경영규제와 진입규제가 방송산업에 어떠한 해악을 가져오는지 인식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통상적인 소비 형태와는 달리 시청자는 직접적으로 방송사로부터 금전적 구매를 하지 않고 광고주가 그 지출의 역할을 대신하는 방송산업 구조상 마치 시청자 자신은 방송에 대한 비용을 지출하지 않는다고 인식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송프로그램과 그에 따른 광고의 시청이라는 행위로서 그 대가를 지불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소비자가 직접적으로 대금을 지불하는 거래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 인식된다면, 결국 똑같은 구매활동이라는 것은 분명해진다. 즉 방송산업에 존재하는 두 가지 규제의 의미는 통상적 경제활동에 적용되는 그 의미와 같다는 뜻이다.

다양한 소비자 선택을 위해 규제를 폐지해야

그것이 어떤 효과로 작용하는지는 흔히 접할 수 있는 동네 앞의 수퍼마켓을 예로서 알아 볼 수 있다. 경영규제란 수퍼마켓에서 진열 할 수 있는 물건종류에 제한을 둔다는 조치이다. 예를들어 ㅇㅇ라면은 소비자의 몸에 좋지가 않으니, 아니면 ㅇㅇ라면이 식품을 다양하게 섭취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으니 ㅇㅇ라면은 수퍼마켓에서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경영규제의 본질이다. 라면을 수퍼마켓에서 구매할 수 없을 때 오는 소비자 선택권 침해와 마찬가지로 제한적으로 편성된 방송의 불이익이 시청자에게도 부과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진입규제란 한동네의 주민은 수퍼마켓이 하나 있어도 되니 다른 수퍼마켓은 들어올 수 없게 하는 것, 또는 옆에서 청과물점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아저씨에게 수퍼마켓 운영이 본업이 아니니 옆에 붙어있는 수퍼마켓의 인수는 불허하겠다는 조치다. 그 주민들 수준에는 딱 수퍼마켓 하나만 있어도 괜찮으니 다른 수퍼마켓이 필요가 없다는, 또는 제한된 숫자의 수퍼마켓 허가증에 인위적으로 무한 가격표를 부치는 것이 진입규제의 본질이다.

제한되거나 강요된 종류의 물건을 구비한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고르는 것보다 많은 종류의 물건이 진열되어 있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구비한 수퍼마켓에서의 구매활동이 소비자 권익을 증진한다. 각종 규제로 인해 고를 수 있는 즐거움이 박탈된 시청자에게 과연 다양성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동네에 수퍼마켓이 하나만 있을 때와 그와 경쟁하는 수퍼마켓이 존재할 때 어느 쪽이 소비자의 욕구를 더욱 충족시킬 수 있을까?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두 가지의 규제가 어떻게 방송시청자들에게는 그와는 반대로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방송의 공공성은 운영이 주체가 바뀜으로 훼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누구도 현 운영진의 순수성이 그 이후에 들어올 수 있는 운영진보다 더하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만약에 미디어법에 반대하는 의견처럼 신문이나 대기업집단의 방송사 운영 진출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편이라면, 똑같은 가정이 현 방송사운영진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현 방송규제안이 공공성을 답보하는 조치라는 주장은 속칭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말과 다를 게 없다. 방송의 공공성이란 운영의 주체를 제한하거나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정하는 것보다 내가 잘못하면 다른 잠재적 경쟁자가 추월 할 수 있다는 위기감과 긴장감으로 감시하는 진입과 퇴출이 자유로운 시장의 원칙으로만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한번 집어보는 것은 어떨까?

물을 한곳에 머무르게만 하면 썩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시장의 역동성으로부터 분리되고 규제에 발목 잡힌 산업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는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그것은 아무리 특별한 존재감을 가진 방송산업이라도 다를 게 없다. 인위적 조정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보다는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환경의 조성만이 시청자와 국민을 위한 방안이라고 인식하고 행동하는 위정자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바램일까?

윤상호 / Center for the Economic Study of Religion 연구원

저자소개: 윤상호 박사는 미국 조지메이슨대학교에서 “Essays on Addiction, Myopia, and Inconsistency”라는 논문으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오는 8월부터 Chapman University의 Center for the Economic Study of Religion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할 예정이다. 관심 있게 연구하는 분야는 Intertemporal Choice와 관련한 Anomaly 현상들, 특히 addictive behavior와 이와 관련한 Industrial Organization과 Economics of Religion에 대해서이다.




> CFE Viewpoint - 방송법 개정 반대, 왜 정치투쟁인가
> 정책제안 - 방송의 공정성과 발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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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릴레이식 시국선언이 한창이다. 과연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인가?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사회제도를 말한다. 그러나 시국선언자들은 좌파적 정책이 좋다고 여기는 거의 모든 것을 민주주의로 표현하고 그들이 나쁘다고 여기는 모든 것을 민주주의 위기로 기술하고 있다. 이들은 민주주의 진의를 변질시켜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위기는 평화적으로 선거에 의해 창출된 정당한 정권을 불법적으로 밀어내고 권력을 차지하고자 하는 직설적 선동에 있다. 이러한 선동은 민주주의를 훼손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릴레이식 시국선언이 한창이다. 시국선언문의 공통된 내용은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진단과 그리고 그런 위기를 말해주는 근거이다. 민주주의라는 말을 그토록 수없이 반복적으로 이용하는 시국선언문도 드물 것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참뜻에 비추어 민주주의 위기론에서 사용하고 있는 민주주의 개념의 문제점을 찾으면서 위기론의 허와 실을 밝히는 일이다. 그래서 우선 그 참뜻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참뜻은 무엇인가?


언어는 생각이나 느낌을 음성이나 문자 등으로 전달하는 수단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우리가 본 사물이나 주변 환경 등을 표시한다. 그러므로 언어는 세상에 대한 해석이다. 그래서 언어는 우리의 행동을 안내하여 불확실한 세상에서 우리의 삶의 개척을 용이하게 한다.

그리고 언어는 그 의미가 분명해야 한다. 특히 언어는 중요한 정치적 귀결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이에크(F.A. Hayek)가 그의 유명한 『치명적 자만』에서 공자(孔子)의 "만일 말이 옳지 않으면 … 국민은 손발 둘 곳이 없어진다"라는 말을 인용하여 어휘의 정확한 의미의 중요성을 강조하듯이, 말이 의미를 잃게 되면 우리는 손과 발을 움직일 여지가 없고 그래서 자유를 상실하게 된다.

민주주의의 진의(眞意)는 무엇인가? 민주주의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폴리스에서 유래했는데, 고대 그리스어의 데모스(Demos, 시민)와 크라티아(Kratia, 권력 또는 지배)의 합성어, 데모크라티아(democratia, 시민에 의한 지배)가 그 어원이다. 전통적으로 다수결에 의해서 지배자를 정하고 바꾸는 절차, 집행할 정책이나 법을 결정하거나 바꾸는 절차나 방법을 기술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지배의 내용이나 법, 그리고 정책의 내용을 기술하는 어휘가 아니다. 하이에크가 『법, 입법 그리고 자유』의 제3권 「자유인을 위한 정치질서」에서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지에 따라 정부의 의사결정을 위한 방법이나 절차를 지칭하는 말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미제스(Mises)도 자신의 저서 『인간행위(Human Action)』에서 민주주의란 다수의 의지에 맞추어 정치를 평화적으로 조절하는 절차를 기술하는 어휘라고 말하고 있다. 칼 포퍼(K. R. Popper)도 『열린사회와 그 적들』제2권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 피지배자에 의해서 지배자를 교체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사회제도가 민주주의라는 것을 강조한다. 투표에 의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민주주의 제도야말로 인류역사의 소중한 성취이다.

그렇다고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을 의미하는 민주의의가 문제가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나 법의 원천을 규정할 뿐 그 권력이 행사할 내용은 규정하지는 못한다. 뷰캐넌(J. M. Buchanan) 등이 지적하듯이 민주주의에 내재한 문제는 두 가지이다. 체계적으로 큰 정부를 야기한다는 의미의 '레바이어던(Leviathan) 문제’와 대표자들이 자신들을 뽑아준 시민들의 열망과는 관계없이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주인·대리인 문제’가 그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제도로서 헌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헌법은 효과적으로 민주주의를 제한하여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헌법의 문제가 아니라, 원래의 민주주의 의미와 시국선언에 등장하는 민주주의 의미 사이의 괴리를 찾는 일이다. 민주주의라는 어휘만큼 원래의 참뜻을 무시하고 다양한 의미로 변질된 정치적 어휘는 없는 것 같다. 민주주의의 진의를 변질시켜 이를 더럽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좌파의 지식인들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들은 좌파적 정치에서 평등과 같이 좋은 것이라고 여기는 거의 모든 것을 기술하기 위해 민주주의라는 어휘를 사용했다.

그렇게 더럽혀진 민주주의 개념은 사회구성원들이 정치를 해석하고 또 행동하기 위한 가이드 역할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거나 그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했다.

민주주의 참뜻을 오용한 시국선언문

대학 교수, 시민단체, 종교계, 전교조 등의 릴레이식 시국선언문도 바로 그 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그들은 민주주의라는 말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여 올바른 정치적 길잡이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고 사회구성원들을 황당하게 만들거나 잘못된 길로 안내하여 결국 자유를 잃게 만들고 있다.

시국선언문에 따르면 실업증가, 양극화는 민주주의의 위기의 근거라고 한다. 타인의 자유를 빼앗는 평등실현과 같은 국가의 목적은 민주적이고 감세나 규제완화 등 자유를 증진하는 것을 비민주라고 부르는 듯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때문에 양극화 또는 실업의 증가가 야기했다는 진단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정부가 추구하는 실체적 목적과 관련하여 민주 또는 비민주라는 말의 사용은 말의 악용일 뿐이다. 왜 민주적이고 비민주적인지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反)자유 또는 친(親)자유의 정책이냐로 기술하는 것이 적합하다.

남북관계가 표면적으로 악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를 민주주의 위기의 근거로 보고 있다. 이 개념의 악용 또한 또렷하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이라고 부르는 유화정책을 통하여 북한 핵무기 개발을 결정적으로 도왔던 것은 사실이다. 핵무기를 포기하면 북한이 경제성장을 이루도록 돕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남북한 모두 이득을 볼 수 있는 정책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전자를 민주적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비민주적이라고 부르는 것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유화정책이냐 상호주의이냐에 민주 개념을 이용하는 것도 말의 남용일 뿐이다.

민주주의라는 말을 악용하는 절정은 시국선언문의 폭력과 불법을 두둔하는 경우이다. 시위 가담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폭력과 불법시위로 제3의 불특정 시민들의 재산권과 자유를 침해하고 경찰 차량을 파괴하고 심지어 많은 경찰관을 다치게 했다. 이런 폭력 불법시위 가담자들을 처벌하는 것이 법치주의 원칙에 비추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그 처벌이 민주주의 위기의 근거라는 것이다. 폭력이나 불법도 묵인하여, 법이 지배하는 사회를 포기하는 것이 민주적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도 문제이지만 그런 것을 기술하기 위해 민주주의 어휘를 사용하는 것은 정말로 어처구니없다.

불법과 폭력시위를 관대하게 대하든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그 같은 시위를 막든, 이런 공권력의 행사에 민주 또는 비민주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공권력의 행사내용을 기술하기 위한 적합한 어휘는 법의 지배 또는 법치주의 개념이다.

또 무조건적으로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요구는 불법집회 폭력집회를 단속하지 말라는 것인데, 폭력과 불법을 허용하는 것이 민주적이라고 보는 것,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그런 일에 민주라는 개념의 적용은 말의 악용이다. 왜 민주인지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국선언문에서 전직 대통령의 자살, 대운하의 변칙 추진도 민주주의 위기의 근거라고 보는데, 그것이 왜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 개념을 잘못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우리가 시국선언과 관련하여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좌파적 정책에 좋다고 여기는 거의 모든 것을 민주주의로 표현하고 그들이 나쁘다고 여기는 거의 모든 것을 반(反)민주 또는 민주주의 위기로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민주주의 개념은 내용 없는 유령(幽靈)과도 같다. 민주주의 위기라는 진단도 실체적 내용이 없는 말이다.

진정한 위기는 불법적 정권 교체의 선동

오히려 민주주의 위기는 다른데 있다. 릴레이식 시국선언을 보면 합법적인 정권을 불법적으로 밀어내고 정권을 차지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식’에서 좌파의 궐기를 촉구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이 그런 의구심을 더욱 강화하는 듯하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현재와 같은 길로 간다면 국민도 불행, 정부도 불행하다는 것을 확실히 말한다.”고 얘기하면서 “4,700만 국민이........ 행동하는 양심이 돼 자유, 서민경제, 평화로운 남북관계를 지키는데 우리 모두 들고 일어나서 희망이 있는 나라를 만들자”고 역설했다.

복거일이 지적하듯이 이런 발언은 정당한 정권을 불법적으로 밀어내고 권력을 차지하자는 직설적 선동으로 보인다. 그런 선동은 보통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의미하는 민주주의를 훼손한 것이다. 민주주의 위기라고 선동하여 정권을 몰아내려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진정한 위기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원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을 뽑아준 시민들의 작은 정부 요구를 망각하고 내용 없는 '실용’을 외처 왔던 탓이다. 이념적 지향을 상실한 채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다가 자유주의 정책의 일관된 실천도 실패하고 그 정책을 지지할 세력도 잃어버린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제는 '중도의 길’을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중도의 길이란 존재할 수 없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념이란 수평선을 그어 좌우를 정하는 식으로 일차원적으로 기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의 중간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어느 한 분야의 평등주의 실현은 다른 분야의 자유주의 실현을 방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중간도 없다. 그리고 특정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거나 지원한다는 의미의 “이해관계의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그래서 정책에는 원칙만이 있을 뿐이다. 시장경제의 원칙 또는 자유의 원칙의 실현이 그런 정책이다.

그럼에도 촛불집회에 놀랐던 이명박 정부는 이제는 불법적으로 몰아내겠다고 선동하면서 똘똘 뭉친 좌파의 릴레이식 시국선언에 굴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자기를 뽑아준 시민들의 요구인 '자유의 길’을 영원히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문제인 주인·대리인 문제만 더욱 더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사회의 심각한 위기는 바로 여기에 도사리고 있다. ■

저자소개: 민경국 교수는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하이에크, 자유의 길’ 외 다수가 있다.

민경국 /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


> 리버테리안 정기화 No.39 민주주의의 비극
> CFE Viewpoint No.73 '광장 민주주의’의 허와 실
> 리버테리안 신중섭 No.70 민주주의와 선거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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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소주가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에 광고를 하는 광고주들을 대상으로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불매운동은 소비자들의 권리로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헌법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또 다른 권리인 기업의 영업의 자유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리는 아니다. 언소주의 광고주 불매운동은 기업의 영업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으며, 그리고 광고주를 고용한 회사의 주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며, 특정 언론사를 폐간시켜 소비자들의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것으로 소비자들의 이익에 반하는 반소비자적인 행동이다.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이하 언소주)이 조선․중앙․동아일보에 광고를 하는 광고주를 대상으로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불매운동 목적은 독자들이 많이 보는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을 폐간시키기 위함이다. 과연 이들의 광고주 불매운동이 정당한 소비자 운동인가? 아니면 불법행위인가? 그리고 운동 대상 기업의 주주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또 진정 소비자를 위한 운동인가? 이 글에서는 이 문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언소주의 광고주 불매운동 현황

언소주의 모태는 '조중동 폐간 국민캠페인'이다. 이 단체는 지난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중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의 폐간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 당시 '조중동 폐간 국민캠페인'은 촛불집회 등에 대한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의 보도태도에 항의하여 이 언론사의 광고주들에게 전화로 항의․욕설․협박 등을 했으며, 광고를 중단하지 않으면 불매운동을 하겠다고 압박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이 단체 관계자 24명을 업무방해와 정보통신망 침해 혐의로 기소하였다. 2009년 2월 19일 서울중앙지법은 피고 24명 전원에게 업무방해 혐의를 인정하여 유죄판결을 내렸다.

일반적으로 불매운동은 다른 사람에게 개인이나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지 말라고 자발적으로 설득을 벌이는 행동을 말한다. 예를 들어 특정 신문사의 신문을 구독하지 말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행위가 통상적인 불매운동이다.

언소주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8월이다. 언소주는 촛불집회가 끝난 이후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다시 활동에 들어간다. 2009년 6월 8일 '불매운동 선언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조선·중앙·동아일보에 집중적으로 광고한 광동제약을 대상으로 불매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광동제약은 9일 "특정언론사에 편중되지 않게 동등하게 광고를 집행하겠다"고 발표하고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에도 광고를 게재했다.

광동제약이 항복 선언을 하자 언소주는 2번째 불매운동 대상으로 삼성계열사 5개사를 선정하고, 인터넷에 발표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형사처벌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표현의 자유인가? 재산권 침해인가?

일반적으로 불매운동은 다른 사람에게 개인이나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지 말라고 자발적으로 설득을 벌이는 행동을 말한다. 예를 들어 특정 신문사의 신문을 구독하지 말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행위가 통상적인 불매운동이다.

그런데 언소주의 이번 불매운동은 통상적인 불매운동과는 다르다. 이들은 조선․중앙․동아일보의 불매운동을 하기 위해 이들 언론사와 거래하는 광고주들을 대상으로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매운동을 2차 불매운동(secondary boycott)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불매운동이 성공할 경우 소비자들은 대상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그로인해 그 기업의 매출은 감소하게 되고, 해당 기업의 자산 가치는 하락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이러한 손해는 불매운동가들이 직접적인 공격이나 폭력 등에 의한 것이 아닌, 소비자들의 구매가 감소한 결과 발생한 간접적인 손해이다. 그러므로 불매운동가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전달하는 불매운동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헌법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업의 영업활동의 자유나 재산권 등 다른 권리를 침해해도 되는 절대적인 권리는 아니다.

그러나 영업방해나 재산권 침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과연 표현의 자유라는 이유로 이러한 권리를 무시해야 할 것인가? 예를 들면 전화를 걸어 해당 기업의 업무를 방해하고 욕설이나 협박 등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실제로 언소주는 광동제약 본사 앞에서 1인 시위와 종로약국 거리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또한 광동제약은 조선․중앙․동아일보에 대한 광고 중단 및 타 언론사로의 광고전환을 요구하는 전화공세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먼저 시위의 경우는 시위장소의 소유자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소유자가 민간이라면 그 장소의 사용은 소유자가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왜냐하면 소유자는 재산에 대한 사용, 보유, 처분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가지고 잇기 때문이다. 만약 소유자가 시위를 허가하지 않는다면 이곳에서의 시위는 불법이며 사유재산권 침해에 해당한다.

그리고 전화공세 등의 활동은 기업의 영업활동을 방해하고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동이다. 기업이 가지고 있는 자원은 유한하며, 자원을 어떤 곳에 투자하게 되면 다른 곳에는 투자할 수 없다. 그리고 인적자원과 시간 또한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의 일종이다. 전화 공세에 시달린 기업은 이 부분에 인적자원을 투입해야 하고 투입된 사람은 전화통화에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기업은 인적자원을 해당 기업이 이용하고자 하는 곳에 투입할 수 없으며, 피고용자 또한 다른 업무에 자신의 시간을 투자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전화공세 등을 통한 광고중단 요청 등은 기업의 영업을 방해하고, 회사가 소유한 자원을 낭비하게 만들어 재산권을 침해한다.

물론 헌법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업의 영업활동의 자유나 재산권 등 다른 권리를 침해해도 되는 절대적인 권리는 아니다. 시민단체 등 일각에서는 언소주의 불매운동을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지만, 광고주의 영업활동을 방해하고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광고주 압박은 주주들에게도 손해

광고주 입장에서 보면 광고는 돈과 자원을 투자해야 하는 비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광고를 하는 이유는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알리고 또 광고를 통해 제품 판매 증가, 다른 업체와의 경쟁, 기업 이미지 제고 등을 위함이다. 광고비용과 광고효과 중 어느 것이 더 큰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광고로 인해 제품 판매가 증가할 경우 규모의 경제에서는 생산원가를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이다.

광고주의 입장에서는 광고가 들어가야 하는 비용이기 때문에 최대한 광고효과를 거두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독자가 적은 신문보다는 독자가 많은 신문에 광고할 경우 그 광고효과가 클 것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독자가 많은 신문에 광고하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언소주의 불매운동은 오히려 경쟁을 저해하고 소비자들의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 결과적으로 언소주의 불매운동은 소비자들의 이익에 반하는 반소비자적 행동이다.

그런데 언소주는 광동제약의 불매운동에서 "조중동에 광고를 철회하거나 경향이나 한겨레 등에 같은 횟수와 금액으로 광고를 게재하면 불매운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이 신문사들은 조선․중앙․동아에 비해 구독률이 떨어지는 신문사들이다. 광고효과가 적은 기업에 광고를 요구하는 것은 시장경제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신문사에 얼마에 몇 번 광고할 것인지는 기업이 신문사와 계약을 통해 결정해야 하는 기업의 고유 권한이다.

언소주의 광고주 불매운동이 과연 주주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주주들은 기업들이 최대한 이익을 많이 내서 주가를 높여주고 그리고 배당을 많이 해서 돌려주는 것을 원한다. 이러한 주주들의 입장에서 보면 독자들이 보지 않는 신문에 광고하는 경영자는  비즈니스 마인드가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런 신문에 광고할 경우 이 기업의 광고는 비용대비 효과가 없으며, 회사의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배분해 낭비하는 것이 된다. 결과적으로 구독률이 낮은 특정신문사에 광고를 하라는 언소주의 요구는 회사의 자원을 낭비하게 만들어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히는 행동임을 알 수 있다.

소비자들의 이익에 반하는 반소비자적 행동

언소주는 조선․중앙․동아일보의 불매운동이 소비자를 위한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얼핏 보면 이들의 불매운동이 소비자를 위한 운동인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본다면 이들의 운동은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반소비자적 행동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신문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 논조가 마음에 들어서, 아니면 지인이 언론사를 다녀서 등 수많은 요인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신문을 보면서 정보와 지식을 습득한다.

그런데 언소주가 원하는 데로 조선․중앙․동아일보가 폐간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이 언론사들을 선택했던 소비자들은 더 이상 자신이 원하는 신문을 볼 수 없으며, 그 신문으로부터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의 자유는 조선․중앙․동아일보가 폐간되기 전보다 작아지게 되고 소비자들은  마음에 들지 않은 신문을 보게 될 것이다. 물론 아예 신문을 보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경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 이유는 경쟁이 치열해야 기업들이 소비자를 위해 싸고 좋은 제품과 좋은 서비스를 공급하려 노력하고, 소비자들의 선택의 자유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소주의 불매운동은 오히려 경쟁을 저해하고 소비자들의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 결과적으로 언소주의 불매운동은 소비자들의 이익에 반하는 반소비자적 행동이다.■

저자소개: 박양균 시장경제팀장의 주요 관심 분야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이다. 특히 기업지배구조, 회사법, 공정거래법, 공적연금 등의 분야에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근로자 경영참여와 지배구조', '증권집단소송제도의 경제학', '차등의결권제도의 경제학적 분석' 외 다수가 있다.

박양균 / 자유기업원 시장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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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방송에 편파방송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편파방송은 지배적 가치, 정치적 신화나 의식, 제도적 관행 등이 특정 집단의 위장된 이익을 보호하는 반면, 대립되는 사상이나 문제들이 의사결정의 장에 접근하기도 전에 은폐·상쇄시키는 수단이다. 일반 대중은 이러한 편파방송을 심층적인 분석 없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거짓을 진실로 받아들여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편파방송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편파방송을 경계해야 하며, 방송은 정보전달에 진실성과 공정성을 목표로 삼으면서 정확성, 간결성, 명료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방송은 오락 제공과 정보 전달을 주로 하는 현대의 전자매체들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생활필수품이다. 오락을 제공할 때는 시청자들의 취향(taste)을 고려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정보 전달에서의 직업윤리는 진실성과 공정성을 목표로 삼으면서 정확성, 간결성, 명료성을 극대화하도록 노력할 것을 요구한다. 신문은 오랜 역사로 볼 때도 사상 경향성 매체임을 인정받고 있고, 이데올로기를 명시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 대중들이 쉽게 편파성 여부를 알 수 있어서 어렵지 않게 특정 신문에 대한 호오(好惡)가 확실히 파악될 수 있다. 하지만 방송 특히 KBS, MBC, SBS 등 방송3사는 그렇지 않아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편향과 왜곡으로 얼룩진 방송

그 동안 KBS, MBC, SBS 등의 편파방송 사례는 많지만, 그 대표적인 사례는 2008년 4월 29일과 5월 13일 방영된 MBC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관련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지난 해 7월 16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내용의 몇 부분이 방송심의규정 상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반한 것’으로 보았고, 오보를 지체 없이 정정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시청자에 대한 사과’를 명령했다.

편파 보도란 보도종사자들이 뉴스와 해설 또는 논평의 선택과 관련하여 어떤 개인이나 단체에 대해 불균형하고 불공평하게 취급함으로써 사실을 왜곡하거나 특정 가치를 확대 또는 축소하는 행위를 말한다. 흔히 편파 보도는 사실의 전달에서 보도 기관이나 보도자 자신의 주관적인 의견을 개입시켜 특정 방향이나 의견을 두둔하거나 비방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편파성은 지배적 가치, 정치적 신화나 의식, 제도적 관행 등이 특정 집단의 위장된 이익을 보호하는 반면, 대립되는 사상이나 문제들이 의사결정의 장에 접근하기도 전에 은폐·상쇄시키는 수단이다.

편파보도의 키워드는 편향과 왜곡이다. 전파 자원의 공공성은 편파적인 방송이 현실을 잘못 규정하고 유사 의제를 설정하여 개인적 편견과 잘못된 여론을 조성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한다.

캐나다 커뮤니케이션 철학자인 이니스(Harold A. Innis)는 편파적인 전달이 수용자의 반응 양상에 일종의 체계적인 무분별(systematic thoughtlessness)을 만들어 낸다고 주장한다. 바흐라츠(Peter Bachrach)와 바라츠(M. S. Baratz)의 지적과 같이 편파성은 지배적 가치, 정치적 신화나 의식, 제도적 관행 등이 특정 집단의 위장된 이익을 보호하는 반면, 대립되는 사상이나 문제들이 의사결정의 장에 접근하기도 전에 은폐·상쇄시키는 수단이다.

우리나라 방송의 편파성은 언제나 구시대의 기득권 집단을 보호하는 낡은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공개된 토론에서 상식적으로 발생하여 마침내 지배이데올로기가 되면 그것이 아무리 편파적이라고 하더라도 가장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마력이 있다.

권력을 위해 투쟁하는 조직은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자신들이 지향하는 사회의 모습과 유사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정치적 조직들은 그들의 의견을 방송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일단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다음에는 이 지배이데올로기를 대체하려는 정치적 조직이 권력을 잡았더라도 이를 자신들의 것으로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편파 방송 시비는 정치권력의 교체 과정에서 늘 인구(人口)에 회자되는 단골 메뉴이다.

편파방송의 가장 대표적인 최근 사례로는 시위 보도에서 카메라를 시위대 쪽에서 경찰 쪽으로 고정하거나 경찰 쪽에서 시위대 쪽으로 고정하여 한쪽 편만 찍는 경우인데, 과거에는 후자가 문제되었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전자가 문제되고 있다. TV 영상촬영은 위치를 이동하거나 2대 이상의 카메라로 언제나 다양한 움직임을 다각도로 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무척 많아졌다.

편파방송이 발생하는 이유는?

이렇듯 많은 편파가 발생하는 원인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일찍이 영국의 미디어 사회학자인 앤더슨(Anderson)과 새록(Sarrock)은 편파성이 보도에 편재(ubiquitous)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원천을 보도제작 실무, 보도제작업체(보도기관)의 사회적 배경, 보도의 내용, 내용의 독해 속에서 찾아질 수 있다고 보았다.

첫째, 보도제작 실무 속에 편파성의 원천을 찾을 수 있는 것으로 PD 저널리즘을 꼽을 수 있겠다. PD 저널리즘은 주로 방송 기자들의 출입처 중심 편제와 도식적이고 객관적인 보도 한계를 뛰어 넘어 좀 더 심층적이고 파격적으로 진실을 찾아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기자들의 뉴스 생산능력과 관계 및 뉴스 생산 양식과 달리 전문성이 뒤떨어지고 방송 작가들에게 취재의 일부를 맡김으로서 부분적 진실을 모았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진실에 이르기까지 결합의 오류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는 아주 큰 단점이 있다. 맥락과 상황이 다른 진실한 부분들이 보도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조직지향성에 힘입어 자신도 모르게 직·간접으로 보도를 편향되게 하거나 전체적으로 진실하지 못한 전달을 하게 할 수 있다.

둘째, 보도제작기관의 사회적 배경을 보면 우리나라 주류 공영방송은 사실상 노동조합의 소집단 이기주의에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회적 상황과 방송 보도 사이에 쉽게 규명되지 않는 인과적 사슬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방송사 노동조합은 비인간적인 압제로부터 진정한 노동 해방을 지향한다고 주장하며, 그들과 제휴한 시민운동 진영으로부터 더 많은 동정심을 얻어 내려는 것에 더 큰 관심을 쏟는다. 하지만 이들은 '모든 운동은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고려하되 이기적이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보도제작기관이 특정정파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경우에도 편향된 의도가 들어 있다는 의심이 들면 곧 바로 보도제작기관 자체의 사회적 배경을 살펴 볼 수 있어야 공정한 방송이 어떤 것인지를 판별할 수 있다. 하지만 다수의 공중은 그렇지 못하다.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대중

셋째, 보도내용(the produced text)을 볼 때 방송의 표현 양식은 어떤 경험이나 정보를 그에 상응하는 기호로 표시하는 일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많은 공중은 심층적인 상황 분석 없이 표피적으로 이를 시청함으로써 그 배후에 깔린 이데올로기조차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4대강 개발이나 내륙 운하 문제를 놓고 방송 보도와 환경관련 프로그램은 환경 파괴를 염려하는 환경 이데올로기를 다투어 쏟아내고 있다. 환경 문제의 배후에는 자연을 개조하는 힘든 노동으로 인류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온 개발의 가치를 목가적 자연의 가치 아래에 두고 싶어 하는 로맨틱한 정서도 깔려 있다.

많은 공중은 심층적인 상황 분석 없이 표피적으로 이를 시청함으로써 그 배후에 깔린 이데올로기조차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 정서는 선진국이 후진국의 개발을 억제하는 이데올로기로 쉽게 전환된다. 미국 오리건 주의 유진에 진출한 현대그룹의 하이닉스는 미국의 국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진보세력인 환경보호주의자들의 운동에 밀려 철수해야 했다. 하지만 텍사스 주의 보수주의적 미국인들은 환경보호보다 경제 발전을 우선시하여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유치함으로써 자국의 경제에 오히려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이처럼 환경 보호와 경제 개발은 흑백이 아니라 수많은 회색의 가운데 하나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환경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그 가치가 언제나 최우선순위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방송보도가 이를 제1순위에 놓으면 시청자 대부분은 다수에 동조하는 현상인 악대차(band wagon) 효과에 농락당하여 경제 개발이 화급하다고 하면서도 환경 보호도 제일 중요하다는 논리적 모순에 대중적인 지지를 보내게 된다.

공공이 소유주체인 방송사의 보도에서는 사영 방송보다 공익에 대해 더욱 심사숙고해야 마땅하다. 이렇게 볼 때, 우리 방송은 공·사영 모두 공익성을 경시하고 시청자를 환경 문제에 끌어 모으는 고도의 상업적 편성 전술을 공통적으로 구사하면서 편파 방송을 계속하는 셈이다.

넷째, 보도의 독해 과정에서 볼 때, 사실을 정확하게 다루지 않고 불명확한 내용을 방송하면 시청자를 혼란에 빠트리므로 그것이 편파성 발생의 원천이 된다. TV 화면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가정(假定)이나 소견을 현실로 착각하고 진실을 오해하게 하거나, 시청자가 은연중에 각각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이 특수한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왜곡 보도가 된다.

화면만이 아니다. TV가 쏟아내는 수많은 어휘도 이미 편파성을 갖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원인은 자살이었고 그의 사망은 평등한 시민의 입장에서의 높임말이라면 별세가 가장 중립적인 어휘이다. 그러나 그의 별세는 '서거’로 격상되고 박연차 게이트의 진실을 밝히려는 검찰의 노력은 폄훼(貶毁)되고 상식과 여론에 의해 중단 또는 비공개 상태에 빠져 버리게 되었다.

편파방송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편파 보도는 일단 방송 전파를 탄 이상 걷잡을 수 없는 후속 영향을 낳는다. 편파 보도는 때때로 북한 핵 보도가 전쟁에 대한 공포감을 고조시키듯,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도 공포감을 갖게 하는 위협적 소구(fear appeal)에 이르게 한다. 결국, 이는 대미 관계를 둘러싸고 여야 정당으로 하여금 현격한 입장차를 이끌어 내고 소모적인 정치 논쟁의 기폭제가 될 뿐이다.

TV방송은 여러 미디어 가운데 가장 강력한 확성기로 그 전파력이 매우 신속하고 효과가 급격하게 발생하며 파급범위가 매우 넓다. 송·수신자간 쌍방향성을 특징으로 하는 최신 매체인 인터넷과 비교해 보더라도, TV는 오랫동안 일방적인 세뇌 장치로서 가장 대량적이고 대중적인 영향력을 가진 미디어이다. 따라서 TV가 편파보도나 왜곡 보도를 할 경우에는 적절한 수준에서 규제되고, 여론에 미치는 후유증이 최소화되어야 진정한 다수 시청자가 지지하고 후원하는 가운데 방송의 자유를 더욱 굳건히 지켜 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자소개: 유일상 건국대 교수는 고려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한국언론법학회장, 유선방송위원회 보도‧교양심의위원, 방송위원회 방송평가위원, 언론홍보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언론법제론」, 「매스미디어입문」, 「취재보도입문」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유일상 /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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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일 미국의 GM자동차가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그로 인해 법원이 특별히 허가하지 않는 한 GM자동차의 모든 채권자는 신청시점부터 권리행사를 할 수 없고, 상거래채권자, 금융채권자, 회사채보유자, 주주의 모든 권리는 유예 또는 감축의 대상이 된다. GM자동차가 파산 신청을 한 이유는 주주,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자율적인 채무조정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GM 파산신청이 우리나라 기업구조조정에 주는 시사점은 첫째, 기업구조조정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말아야 하며 둘째, 채무를 과감히 감축시킬 수 있어야 하며 셋째, 정부가 자금을 지원할 때는 시장원리에 입각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미국의 파산법 제11장 절차

2009년 6월 1일 오전 7시 57분 51초 General Motors가 뉴욕 남부 파산법원에 파산법 제11장(Chapter 11) 절차를 신청하였다(전자방식에 의한 입력). 미국 파산법 역사상 최대 제조기업의 파산신청치고는 좀 싱거울 정도로 신청서는 24페이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전 세계가 주목할 만큼 대단한 것이다. 법원이 특별히 허가하지 않는 한 모든 채권자는 신청시점부터 권리행사를 할 수 없고, 상거래채권자, 금융채권자, 회사채보유자, 주주의 모든 권리는 유예 또는 감축의 대상이 된다. 결국 GM의 소유구조와 재무구조가 모두 바뀌게 되어 새 회사가 만들어지게 된다.

우리말로는 '파산신청’이라는 의미가 회사를 청산하는 절차의 시작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우선 영어의 'bankruptcy’라는 말 속에는 청산(liquidation)과 재건(reorganization)이 모두 포함되어 있고 GM이 신청한 11장 절차는 바로 기업재건절차이다. 제11장 절차를 신청하는 그 순간부터 채권자들은 권리행사를 할 수 없고 채무재조정에 들어가기 때문에 파산신청을 파산보호(bankruptcy relief) 신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채무를 재조정(rescheduling)하는 방법에는 이해관계인 사이의 자율적인 조정도 있는데 왜 파산절차를 신청했을까? 이것은 자율적인 조정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회사가 재건하려면 부채를 대폭 삭감해야 하는데 채권자들이 양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채권자의 권리감축을 위해서는 주주의 권리를 더 삭감하여야 하는데 주주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여하튼 회사가 원하는 수준의 채무재조정을 위해서는 법정절차에서 강제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GM 파산신청으로] 법원이 특별히 허가하지 않는 한 모든 채권자는 신청시점부터 권리행사를 할 수 없고, 상거래채권자, 금융채권자, 회사채보유자, 주주의 모든 권리는 유예 또는 감축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회사재건절차는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여러 나라가 갖고 있지만 그 실질을 보면 미국처럼 강력하지 않다. 우선 우리나라에서는 회생절차 신청만으로는 채권자의 권리행사를 막지 못한다. 보전처분이나 포괄적 금지명령을 별도로 받아야 한다. 따라서 미국처럼 채권자의 권리행사 금지시점을 채무자가 선택할 수 없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신청시 신청인이 채무변제가 곤란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즉 지금은 변제를 제대로 하고 있지만 장래를 위해서 채무재조정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신청할 수 있는 것이 미국의 11장 절차이다.

나아가 채무재조정안(공식적으로는 '재건계획’)을 작성하여 제출할 권한이 일정 기간 동안은 채무자에게만 주어져 있기 때문에 채무재조정의 주도권을 채무자가 갖게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미국의 11장 절차는 채무기업의 회생을 위해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고, 동시에 그 때문에 11장 절차를 신청하기 전에 자율적인 채무재조정도 가능하게 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법정절차를 선택한 이유는?

GM의 파산신청과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선택이다. 자동차 산업은 미국 산업의 중심이고 상징이다. 또 자동차노조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는 직접 지원을 택하지 않고 법정절차로 유도했다. 그것 자체가 정치적 모험일 수 있는데도 미국 여론은 오바마 대통령의 선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이유는 기업의 재건과정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를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채무재조정은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채무재조정은 상대의 양보를 받아냄으로써 내가 더 이익을 보게 되는 치열한 협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 정부가 개입하면 공권력을 과도하게 사용했다는 비난을 받거나 아니면 정치적 압력에 굴복하여 채무를 과감하게 변경하지 못하게 된다.

[GM은] 왜 파산신청을 했을까? 이것은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자율적인 조정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회사가 재건하려면 부채를 대폭 삭감해야 하는데 채권자들이 양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채권자의 권리감축을 위해서는 주주의 권리를 더 삭감하여야 하는데 주주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둘째, 기업재건을 위해서는 채무감축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업계획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이 역시 정부가 개입해서 제대로 될 일이 아니다. 시장에서 어떤 수요가 있고 기업이 그런 수요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여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민간전문가의 일일뿐만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해서도 기업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정부는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미국 최대기업이 도산하는 경제상황에서는 어떤 기업도 도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는 앞으로도 다른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요청받을 것인데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수습하기 어렵게 된다. 미국 정부는 법정절차를 통해서만이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한국의 기업구조조정에 주는 시사점

서브 프라임 사태로 인한 국제금융시장의 위기와 같은 외부요인이 아니더라도 기업은 언제든지 망할 수 있다.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며, 좋은 제품과 서비스 등을 제공해 끊임없이 소비자들을 만족시켜야 하며, 그렇지 못한 기업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 받고 망하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지지 않고 시장에서 자기 몫을 계속 유지하려면 평소에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안다. 그래서 효율적인 도산절차를 정비하여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년 하반기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실제로 건설이나 해운업종에서 구조조정이 시행되었다. 또 기업집단에 대한 구조조정 역시 진행 중이다. GM의 파산신청을 보면서 우리나라 기업구조조정에 주는 몇 가지 시사점을 정리해 본다.

GM 파산신청이 우리나라 기업구조조정에 주는 시사점은 첫째, 기업구조조정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말아야 하며 둘째, 채무를 과감히 감축시킬 수 있어야 하며 셋째, 정부가 자금을 지원할 때는 시장원리에 입각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첫째, 기업구조조정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부실기업 처리에 정부가 직접 개입해 온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969년 시작된 부실기업정리 이래로 산업합리화정책이 그것이다(1972년의 8·3조치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정부개입 사례다). 정부의 개입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도 계속되어 부도유예협약, 빅딜, 워크아웃으로 이어졌다.

워크아웃이 채권금융기관의 자율적 협약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선전했으나 실제로 금융감독기관이 주도한 것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러면 워크아웃이 효율적인 구조조정 수단이었을까?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한 실증연구에 따르면 워크아웃은 구 회사정리법에 따른 절차보다 절차 종료 후 기업의 수익률 변화나 소요한 시간 면에서 효율적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채권자가 스스로 채무를 감축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개입은 불가피하게 부패를 가져온다. 정부의 의사결정권자에게 접근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어내려는 이해관계인의 필사적인 노력을 막을 재간이 없다. 그래서 불황은 부패의 온상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실무에서 기업구조조정 업무를 금융감독기구가 맡고 있는데 이를 조속히 정리하여야 한다. 그 판단을 민간에 넘기든지 공적 판단이 수반되는 일이면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공적 기구를 만들어서 수행하게 하여야 한다. 기업구조조정 업무는 금융감독기구 안에 있는 위원회가 맡을 일이 아니다.

둘째, 채무를 과감히 감축할 수 있어야 한다. 부실기업은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빚을 줄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신규자금을 얻는 일이다. 이 중 어느 하나도 덜 중요한 것이 없지만 과거 우리나라 기업구조조정에서 미흡했던 것은 채무를 과감히 삭감하지 못한 것이었다. 채권자는 장부상 채권을 줄이기를 꺼리고 주주는 주식이 소각되는 것을 싫어한 결과이다. 아무리 자금을 많이 투입해도 채무의 과감한 감축 없이는 회생할 수 없다. 과거 여러 구제금융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바로 신규지원자금이 부채상환에 사용되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데 기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셋째, 정부가 자금을 지원할 때는 시장원리에 입각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특히 정부가 기업에 자금을 직접 지원할 때는 GM의 경우처럼 공정하게 평가된 지분을 인수하여 회생 후 계속기업의 가치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또는 민간과 공동으로 자금을 조성하여 민간이 판단한 내용으로 신규자금을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최근 이런 형식의 구조조정기금이 조성된다고 하는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법정절차를 통해서 또는 법정절차를 바탕에 둔 사적 채무재조정을 통해서 구조조정이 된다면 다행이다. 그런데 지금 외국의 도산 전문가들은 그런 기존의 제도가 처리할 수 없는 위험이 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구조조정을 수행할 공적기구를 설립하는 것이 그 내용인데 귀추가 주목된다. 우리도 더 나쁜 상황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저자소개: 오수근 이화여대 교수는 도산법 전문가로 1998년부터 우리나라 도산법 개정작업을 맡고 있고 유엔상거래법위원회(UNCITRAL)에서 한국 정부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도산법 개혁 1998-2007」, 「도산법의 이해」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오수근 /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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