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고등학교가 사교육의 주범이기 때문에 외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그러나 외고가 사교육의 주범이라는 주장은 인과 관계를 잘못 파악한 인지적 오류에 기인하고 있다. 사실 사교육의 기형적 팽창 원인은 외고 때문이 아니라 학교선택권과 학생선발권을 제한한 평준화정책 때문이다. 평준화 정책으로 인해 다양한 교육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으며, 그 보완책으로 외고 등 특목고가 설립되었다. 그러므로 정작 손을 봐야 할 근본적인 원인은 평준화 정책이다. 설령 외고를 폐지한다하더라도 다양한 교육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사교육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책입안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특수목적고등학교(이하 특목고)의 하나인 외국어고등학교(이하 외고)를 폐지하고 자율고로 전환하는 등 일련의 조치를 담은 법안을 상정하겠다고 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찬반 여론이 각각 비등하지만, 포퓰리즘에 편승하여 이를 지지하는 의견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하긴, 학부모의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현안이 현 정권이 인기를 얻고 있는 서민대책과 꼭 맞아떨어지는 형국이니 정당한 논거를 가지고 설득하고자 한들 그 지지세가 웬만해선 꺾이지 않을 듯하다. 게다가 보도에 따르면,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의원의 상당수가 이를 지지한다고 한다.

인지적 오류에서 비롯된 사교육 주범론

현재 외고에 들어가기 위하여 중학생들이 학원에 다녀야 하고, 또 웬만큼 우수한 성적을 내지 않고는 외고에 입학하기 어려운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편적인 사실이 외고가 사교육의 주범이기 때문에 외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리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이 논법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먼저 외고 폐지의 논거가 잘못되어 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하고, 사교육의 기형적 팽창의 '진짜 원인’이 어디에 있으며, 또 정두언 의원과 이를 지지하는 이들이 드러내고 있는 발상이 얼마나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는지를 검토하도록 하겠다.

정두언 의원과 외고 폐지를 지지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외고 폐지론, 즉 외고가 사교육의 주범이라는 논거가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를 살펴보기 위하여 '원인혼란’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소개된 자카리 쇼어(Zachary Shore)의 「생각의 함정」1) 에는 우리가 저지르는 인지함정(cognition trap)이라고 하는 일종의 인지적 오류가 몇 가지 소개되어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원제목 'blunder’는 사소한 실수를 가리키는 'mistake’와 달리 한 개인의 운명이나 국가사회의 진로를 바꿔놓을 만한 중대한 전기를 제공하는 실수를 일컫는다. 그 중 하나가 '원인혼란’이다. 이 원인혼란은 이번 외고 사태의 본질을 짚어내는 결정적인 개념이다.

원인혼란의 예로, 우울증의 원인이 뇌내 화학물질불균형이라고 보는 견해를 들 수 있다. 여기서 인과관계2) 를 화살표(→)로 표시할 경우,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원인혼란으로 그릇된 도식은 “뇌내 화학물질불균형 → 우울증”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분석하자면 우울증의 도식은 다음과 같이 되어야 옳다. “외부적인 사회경험 → 우울증 → 뇌내 화학물질불균형 현상”.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바와 달리 뇌내 화학물질불균형은 우울증의 원인이 아니라 우울증이 드러난 징후, 즉 우울증이 나타난 결과적 현상이다.

이와 같은 그릇된 원인혼란을 정두언 의원을 비롯한 외고 폐지론자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도식은 매우 단순하다.

“외고 입학 → 사교육조장(팽창)”

사교육이 기형적으로 팽창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외고 입학에 있다고 보는 단견은 우울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원인혼란에 빠져 있다. 이를 교정하여 올바른 인과관계를 보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은 도식이 되어야 한다.

①: “평준화 정책 → 다양한 교육욕구충족 실패 → 사교육 팽창(쏠림)현상”

위의 도식 ①에서 다양한 교육욕구 충족 실패는 현행 획일적인 평준화 정책에서 온 것이고, 그 돌파구가 사교육의 기형적인 의존 심화이다. 물론 도식 ①이 복잡한 요인을 모두 설명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다양한 교육욕구충족 실패의 또 다른 돌파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현행 평준화 정책의 '보완책’으로 나온 특목고의 설립이다. 그러니까 다양한 교육욕구충족 실패의 부분적인 '돌파구’가 외고를 비롯한 특목고 입학인 셈이다. 논의를 위하여 이와 관련한 경로를 표현하면 도식 ②가 된다.

②: “평준화 정책 → 다양한 교육욕구충족 실패 → 외고 등 특목고 설립”

도식 ①과 ②에서 다양한 교육욕구충족 실패가 원인이 되어 드러난 현상이 '사교육의 기형적인 팽창과 의존’, 그리고 '외고 등 특목고 설립’ 두 가지이다. 따라서 도식 ①과 ②를 통해서, '사교육의 기형적인 팽창과 의존’과 '외고 등 특목고 설립’이 인과관계에 있지 않다. 즉 그리고 '외고 등 특목고 입학’이 '사교육의 기형적인 팽창과 의존’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사교육의 기형적인 팽창과 의존’, 그리고 '외고 등 특목고 설립’) 사이에 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상관관계이다. 상관관계를 놓고 한쪽이 원인이 된다고 단정해놓고 그 원인을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제거하겠다는 것은 옳은 처사가 아니다.

사교육 근본적인 원인은 평준화 정책

오히려 '사교육의 기형적인 팽창과 의존’, 그리고 '외고 등 특목고 설립’이라는 두 가지 현상은 한 가지 원인인 '다양한 교육욕구충족 실패’에 의하여 야기된 점을 올바르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중요한 논점은 '다양한 교육욕구충족 실패’의 심인(沈因)이 바로 '평준화 정책’에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작 손을 보아야 할 근본적인 원인은 평준화 정책이다.

모르기는 해도 그릇되게 퍼져있는 좌파 포퓰리즘이 평준화 정책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여기기 때문에 압도적인 지지로 집권한 여당 실세조차도 평준화 정책에 대한 언급조차 못하는 모양이다. 필자가 줄곧 개진해 왔던 평준화 정책의 여러 가지 심각한 폐해를 고려할 때,3) 이제는 좌파 눈치 보지 말고 교육만악(萬惡)의 근원인 평준화 정책을 원인으로 보고 교육을 원상태로 돌려놓으려는 솔직한 자세가 요구된다.

평준화 정책은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선택권과 사립학교의 선발권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정책적으로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정의롭지 못한 정책이다. 이 지구상에 우리처럼 입학전형을 국가권력으로 강제 배정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세계 어느 나라도 '평준화’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1973년 우리가 평준화 정책을 도입할 당시 패러디 했던 일본도 그 폐해를 솔직히 인정하고 현재 단위학교별 전형을 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평준화 정책이라는 근원적인 원인보다는 엉뚱한 곳에서 원인을 찾아 엉뚱하게 자유민주주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방송은 물론 신문 등 여러 매체의 보도 양태가 매우 우려된다.

게다가 이 주장의 선봉에 선 정두언 의원은 지난 10월 20일 밤 KBS 11시 뉴스와 22일 밤 SBS의 나이트 라인(23일 0시 이후 방송)에 직접 출연하여 외고의 '왜곡된(?)’ 교육을 지적하면서 비장한 표정으로 사립학교인 외고의 선발권을 “뺏어 와야 한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대목에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의 선발권과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에 속하는 권리이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한 대한민국 헌법에 의하여 여러 가지 권한과 특권을 누리는 현역 국회의원이 여과 없이 전달되는 지상파 생방송에 나와서 전의에 찬 어투로 외고의 선발권을 박탈하겠다고 한 발언을 어떻게 해석해야 옳은 일인가.

다양한 교육욕구를 충족시키지 않는 한 사교육은 결코 줄지 않아

이 점을 보면, 정두언 의원이 우리나라 우파 정당이라고 하는 한나라당 소속 의원인지 의문이 갈 정도이다. 좌파정당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노동당이나 이념적으로 좌파를 지향하는 이들이 적지 않게 소속된 민주당 의원이라면 어느 정도 수긍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나라당 의원이 사립학교의 학생 선발권을 빼앗아 와야 한다는 말을 공영 방송을 통하여 서슴없이 하는 것을 보면, 집권 한나라당의 정책 이념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정두언 의원처럼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학교선택권과 학생선발권을, 그것도 교육폐해의 원인인 평준화 정책 아래서 그나마 몇몇 안 되는 학교가 행사하고 있는 제한된 선발권마저 박탈하겠다는 발상이 우리 사회에 먹히는 연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워낙 자유와 선택의 가치에 무감각해져서인가, 아니면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실세가 추진하는 '권력’의 위력 때문인가.

정 의원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외고를 '마녀사냥’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마녀’를 '마녀’라고 지칭했을 뿐이라는 단정도 하였다. '마녀사냥’은 성한 사람에게 죄를 덮어씌우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그것도 중세기에나 가능했던 말이다. 이 말은 평준화 체제에서 이런 저런 온갖 제약과 통제 속에서 그나마 우수 인력을 배출하는 외고 교육에 몸담고 있는 교육자를 모독하는 것이다.

교육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는 우수 인재를 육성하는 일이다. 이를 위하여 물건에 명품이 있고, 작품에 걸작이 있듯이, 학교도 명문학교가 있어야 한다. 현행 우리 평준화 체제에서 명문학교가 있기나 한가? 교육당국은 '명문학교’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서열화라는 애매한 말로 얼버무릴 일이 아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의원들은 교육당국이 이러한 역할을 격려하고 수행하지 못하면 질책해야 한다. 그러나 정 의원의 외고 폐지론은 이와 반대로 나가는 것 아닌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사교육의 주범은 외고가 아니다. 더군다나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외고 입학이 사교육의 결정적인 원인도 아니다. 사교육은 현행 평준화 체제가 유지되는 한, 즉 다양한 교육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는 한, 기형적으로 기승을 부릴 것이다. 그러니까 설사 외고를 폐지한다고 하더라도 사교육은 결코 줄지 않는다. 또 주말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정 의원은 아예 외고를 포함한 모든 특목고를 없앨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수 인재 육성, 다양한 교육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사교육은 결코 줄지 않는다. 교육당국과 현 정권 실세들은 이 점을 분명히 새겨야 할 것이다. ■

김정래 / 부산교육대학교 교수


1) 원제목: Blunder: Why Smart People Makes Bad Decisions, 2008(임옥희 역, 서울: 에코의 서재, 2009)
2) 여기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원인이 결정적인 원인이 작용하여 결과가 나타난다고 보는 결정론적 인과관계가 아니다. 원인은 결과로 보이는 현상(사실)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의미 또는 한 요인이 다른 요인을 드러내는 데 가장 영향력이 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예컨대, 사교육이 외고입학전형의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3) 필자의 근간 예정인 「고혹 평준화 해부」(한국경제연구원 간)에서 평준화 정책의 기원, 내력, 여러 폐해와 대책 및 방안이 종합적으로 소개되어 있으므로 이를 참고할 것.

저자소개: 김정래 교수는 영국 University of Keele 대학원에서 교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부산교육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전교조 비평’, '서양교육사절요’, '고혹 평준화 해부’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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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공개를 두고 찬반 의견이 팽팽하다. 하지만 교육의 소비자인 학부모 입장에서 보면 수능성적 공개는 선택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필수다. 정보를 공개하면 학교와 교사는 서로 경쟁을 하게 되고, 학부모들은 그 정보를 토대를 학교를 선택할 수 있으며 학생들은 더 좋은 품질의 교육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경쟁을 죄악시여기지만, 경쟁이야 말로 성장과 발전의 원천이다. 교육도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요즘 수능성적 공개를 맹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부 언론에서는 '드디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는 등 모든 고등학교의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들이 패닉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움직임의 배경에는 학생들의 학력관련 정보를 학교별로 공개하면 학교의 서열화가 고착되고, 과열경쟁이 심화되어 학생들의 심신이 황폐화며, 사교육비가 증대된다는 것을 기정사실처럼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제들은 결코 수능성적자료를 공개해서 벌어지는 문제들이 아니다. 수능성적 자료는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학교서열을 고착화 하는 것이 아니라, 서열의 활발한 변동을 유도하는 기제로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학생들의 심신 상태와 상관 분석함으로써 전인교육을 촉진하고 정당화하는 근거로도 활용할 수 있다.

수능성적 혹은 학업성취도 평가와 관련된 원자료나 정보는 교육의 현황과 학생들의 학습 실태를 보여주는 자료일 뿐이며, 그것 자체가 어떤 성향이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기능할 수 있다. 따라서 수능성적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말자는 얘기는 우리의 교육 현황과 학생들의 학습 실태를 파악하지 말고, 그대로 묻어둔 채 아무것도 하지말자는 것이다.

수능성적공개,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다

여당의 한 국회의원과 모 일간지가 수능정보를 분석하여 평균성적 및 1등급 학생 비율 상위 100개교를 등을 밝혀냈다. 그리고 평준화 지역과 비평준화 지역의 학교 성적을 비교하고, 평준화 학교 내 성적 격차 등도 짚었다. 지금까지 학생들의 학력관련 정보가 극비문서처럼 취급되어 연구조차 자유롭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100위까지의 순위를 갑자기 언론을 통해 밝히는 것을 참으로 충격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학력격차 문제와 평준화 문제 등에 대한 문제제기는 물론이고 수능성적 자료 공개 자체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체로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현재 다니거나 미래에 다닐 학교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그 실상을 알고 싶어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상위 100위까지의 순위 공개는 학부모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정보를 공개한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이번 수능시험 자료 공개로 고교 간 학력격차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현행 평준화 교육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 자료 공개를 통해 학생과 학부모는 학교선택을 할 때 참조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교육당국은 이러한 자료 공개와 평가를 통해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직시하고 교육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수능성적 공개는 지극히 당연하고 또 필요한 일을 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수능성적공개 파장이 큰 이유, 교과부가 해야 할 일을 안했기 때문

그런데 수능성적 공개의 사회적 반향은 냉정성은 간데없고, 감정적 대응을 넘어 법적 대응까지 번지고 있다. 왜 그럴까? 표면적으로는 사회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을 충격적인 방법으로 폭로한 것에 있다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교과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endif]>

교과부는 마지못해 수동적으로 학력정보를 제공했다. 교과부는 모름지기 수능관련 자료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자료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고 학습 실태와 문제점을 파악하여 국민에게 사실대로 보고했어야 했다. 그리고 국민들의 주된 관심사에 대해서는 심층 분석을 하여 국민들이 차분하고 냉정하게 종합적으로 우리나라의 교육문제를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끌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후에 관심 있는 학자들과 국회의원 그리고 언론기관 등에게도 제공하여 더 다양한 분석이 나올 수 있도록 했다면 학력정보 공개는 매우 생산적으로 기능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교육과 관련하여 정부가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다음 2가지다. 하나는 국민에 대한 책무 확인이다. 우리나라는 정부예산의 가장 큰 몫을 교육에 할애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민이 사교육에 지출하는 돈도 정부예산 못지않다. 따라서 교육 분야의 책무확인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것은 교육의 성과를 국민에게 보고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교육의 성과 중에서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중요시 하는 것이 학생들의 성적, 곧 학력이다.

다른 하나는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현재 세계가 추진하고 있는 국가차원 교육의 질 관리와 관련한 핵심적 내용은 학력의 체계적 향상과 학력 격차의 축소이다. 이러한 교육의 질 향상 없이는 교육경쟁력의 향상도 미래를 대비할 수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 주요국들은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학교 교육 활동의 주된 성과인 학력에 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생산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는 한편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가 교육과 관련하여 해야 할 '책무 확인’과 '질 향상’을 위해서는 각종 교육정보를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생산하고, 나아가 이를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여 교육 실태를 객관화하는 것이 요구된다. 따라서 교육정보공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한다.

정보공개, 경쟁을 유도해 교육의 질을 향상시킨다

우리나라의 교육 실태를 가장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주체는 교과부이다. 교육의 목표를 한마디로 학력 향상이라고 주장한다면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학력은 교육 활동의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차원에서 교육 책무를 확인하고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가장 큰 관심이 되는 것이 학생들의 성적이다.

대체로 학생들의 학력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것에 대해 학교와 교사 그리고 교육당국은 소극적이거나 거부적 태도를 보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이 힘들어 지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학부모와 지역사회 주민들은 대부분 찬성한다.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학교와 교사가 학생들을 위해 더 노력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는 원리는 간단하다. 학력정보를 공개하면 학교와 교사 그리고 교육당국이 서로 경쟁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미덕이다. 경쟁이야말로 성장과 발전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교육도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경쟁을 죄악시하는 세력도 있다. 교육계 내부에 그러한 세력이 특히 강하다. 물론 우리나라만의 사정은 아니고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있다. 아마도 교육이라는 사안의 특성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많은 나라에서는 교육에도 경쟁 원리를 도입하고 있으며, 또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과거의 틀을 엄격하게 고집하고 있다. 그 결과 학생과 학부모만 더욱 경쟁해야 하는 사회가 되었고, 그것은 사교육의 증대를 가져왔다.

학력정보 공개는 학생과 학부모뿐만 아니라 학교와 교사 그리고 교육당국도 경쟁하게 만든다. 학교가 사교육기관과 비교하여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학교도 서로 경쟁해야 한다. 경쟁이 있어야만 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학력정보 공개는 학교간의 경쟁을 유발하여, 학교교육의 질적 향상과 개선을 초래한다.

학력정보공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경쟁의 가치를 부정하거나 소극적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그들은 학력정보 공개의 폐해를 확실한 사실에 근거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측과 부분적 진실을 가지고 전체이고 본질인 것처럼 과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생산적인 논쟁이 되지 않는다. 감정이 생기고 갈등만 표출될 뿐이다. 학력정보가 공개되어 다양하게 분석되고 연구될 때, 우리사회의 교육 갈등도 합리적으로 조정될 수 있고, 교육의 정상화도 진전될 수 있다. ■

이명희/ 공주대 교수, 자유교육연합 상임대표

저자소개: 이명희 교수는 일본 츠쿠바대학(筑波大學)에서 교육학박사학위를 받았고, 자유교육연합 상임대표와 공주사대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자율과 책무의 학교개혁: 평준화의 논의를 넘어서’, '교과교육평가의 이론과 실제’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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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에서 시민단체에 대한 국조보조금 지급과 관련해 논쟁이 일고 있다. 시민단체는 시민들의 자발적, 능동적 참여 하에 공익을 추구하는 비정부적, 비정파적, 비영리적 결사체다. 그러나 한국의 많은 시민단체들은 이념적 편향과 체제를 부정하고 시민 전체가 아닌 특정 이익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하는 많은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정책결정에 참여하고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왔다.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단체의 활동은 허용되어야 하지만, 그 활동을 위해 국민들이 납부한 세금으로 정부가 보조금을 주어야 할 이유는 없다.

시민단체의 국고보조금 지원 논란

시민단체1)를 지원하는 국고 보조금이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되었다. 감사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한 야당 의원은 “감사원이 문화ㆍ시민단체에 대하여 가혹한 감사를 한다.”고 질책했다. 이들 단체에 대한 감사가 친야권 성향의 시민단체에 대한 '표적 감사’라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감사원장은 “(일부에서는) 마치 좌파 성향 단체를 핍박하기 위해 가혹한 감사를 한다는데, (감사원은) 좌우 (이념) 성향에는 관심이 없다. 시민단체에 지원된 국고보조금이 어떻게 횡령됐는지를 감사할 뿐”이라고 하였다.

감사원은 최근 3년간 연간 8000만 원 이상의 국고보조금을 받은 시민ㆍ사회ㆍ문화ㆍ환경 등 543개 민간단체에 대한 감사를 진행해 왔으며, 현재까지 감사 결과 시민단체 관계자 30-40명의 횡령 의혹이 적발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일부 단체는 1억 이상의 돈을 단체 간부들이 성과급 명목으로 나눠 갖거나 개인적으로 착복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의 보조금 횡령을 낱낱이 캐라고 질타하면서,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제12조에 따라 잘못 지급된 보조금이나 잘못 사용된 보조금을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국정감사에서는 지방정부들이 정부의 '녹색성장을 위한 지역공동체 활성화 사업’을 위한 예산을 특정 관변단체에만 집중적으로 지원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지방정부들의 편향된 지원 기준으로 전국 조직을 갖춘 대표적 관변단체들은 쉽게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부분의 지방정부는 시위를 주도하거나 시위로 처벌을 받은 경력이 있는 단체에는 신청 자격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 단체를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친정부 단체만을 지원할 목적으로 시위를 주최·주도하거나,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구성원이 시위에 참여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처벌받은 단체에는 신청 자격조차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이념성 편향성

정권이 바뀌면서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변화여 정부가 감사를 통해 현정부에 비판적인 시민단체들을 억압하거나 재정적으로 불이익을 주고 있다는 것이 야당 의원들의 주장이다. 정부가 일부 시민단체를 실제로 차별대우를 했는가에 관계없이 야당의원들은 시민단체의 정치적 편향성을 인정하고, 감사원장도 좌파 성향의 시민단체와 우파성향의 시민 단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의 시민단체들이 강한 이념적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시민단체들은 강한 이념 과잉ㆍ편향을 보이면서 과거에는 권력과 유착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단체들은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부정하고, 종북주의 및 친북(親北)통일론을 확산하고, 반(反)시장ㆍ반기업 정서를 조장하고, 반미(反美) 및 폐쇄적 자립경제 노선을 지지하고, 과격한 폭력을 조장하고, 사실의 왜곡과 선전선동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촛불 집회나 시위를 통해 정부 정책의 변경을 강요하고 국가를 조직적으로 반대하고 무력화하려는 반(反)헌법적 행동도 불사하였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시민단체가 갖는 강한 이념성과 정파성은 시민단체가 탄생한 역사적 특수성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의 본격적인 출현은 민주화 이후이다.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던 세력들이 직선 대통령 선거라는 형식적 민주화를 이룩하고 난 뒤에 시민단체로 모습을 바꾼 것이다. 1990년대 초 한 진보적 지식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하였다.

“우리 상황에서 진지적적인 시민운동은 아주 적합하고 필요하다. … 시민운동과 계급운동은 대립관계에 서지 않고 오히려 상호보완적 관계에 서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문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성공적으로 일어나기 지극히 어려운 현실에서 오늘의 한국 민중의 고통을 누가 더 현실적으로 효과 있게 제거해 줄 수 있느냐는 데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계급운동론의 입장에서 시민운동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계급운동과 공동의 목적을 가진 운동으로 시민운동이 설정되고 시민사회가 탄생되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많은 시민단체는 태생적으로 이념지향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상은 시민운동이나 시민 단체의 일반적인 성격과 많은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시민단체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언론사에 이어 제5의 권력이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정확하게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그 숫자도 막대하다. 2006년에 발간된 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의 시민단체는 2만 3천여 개에 이른다. 시민단체는 “시민들의 자발적ㆍ능동적 참여 하에 공익을 추구하는 비정부적ㆍ비정파적이고 비영리적인 결사체”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시민단체는 시민들의 자발성ㆍ자발주의에 입각한 단체로 공익을 추구하고 비정부적ㆍ비정파적이고 비영리적인 성격을 지녀야만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는 시민의 자발성에 기초한 것도 아니고, 공익을 추구하지도 않고, 탈정파적도 아니다. 더 황당한 것은 시민단체가 자신이 섬겨야 할 헌법과 국가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 시민단체의 문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체제를 부정하는 시민단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시민단체, 특수 집단이 의도적으로 조직한 시민단체, 정권의 외곽 단체로 전락하여 권력에 취한 시민단체 등 다양한 시민단체가 존재하였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특정 단체의 이익을 대변해 대표성 잃은 시민단체

일반적으로 시민단체의 출현 배경에는 정치ㆍ경제ㆍ사회와 같은 공적 영역을 국가나 시장에 맡길 때 침해당하는 공적 이익이 존재한다는 가정이 자리 잡고 있다. 국가와 시장이 유발하는 부작용을 시민단체가 드러내 보이거나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는 국가와 시장이 공적 이익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다는 전제 위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런 전제 때문에 시민단체는 다수 시민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시민단체가 시민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믿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시민단체가 시민들의 보편적인 이익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정책결정에 참여하고 사회적 발언권을 가지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시민들이 시민단체에게 자신들의 입장이나 이익을 대변하도록 대표성을 부여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가 사회적으로 일정한 공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부당하다는 관점이다.

시민단체가 공정하게 일반 시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공공의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시민단체가 시민들의 대리인으로 정치, 사회에 참여하는 것은 잘못이다. 시민단체는 공식적으로 시민의 대표 기관이 아니다. 일반 시민의 참여 수준이 높고 낮음이 시민 단체의 대표성을 보장하는 기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많은 시민들이 시민단체에 참여한다고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참여하는 시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지 시민 모두의 입장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념지향성이 강한 시민단체들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우리 사회의 시민단체를 고려하면 시민단체에 시민의 대표성을 부여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일부에서는 시민단체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시민단체 지도자들이 전향적인 의식 전환을 하여 환경ㆍ인권ㆍ부패ㆍ복지ㆍ지역공동체 등과 같이 최대한 이념을 초월하는 공익적 시민단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할지라도 시민단체가 시민의 대표성을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시민단체는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대표성을 부여한 단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시민단체는 정부단체와 구별되며, 말 그대로 비정부기구다.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보조금, 정당화 할 수 없다.

시민단체는 본원적으로 시민의 대표성을 획득할 수 없다. 시민단체는 참여하는 시민들의 자율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고, 규제와 지원을 받지 않는다. 시민단체의 책임성은 단체 자체가 부여하는 것이지 시민들이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책임성은 어디까지나 자율규제와 자율경쟁을 통해 달성되는 것이지 외부의 힘에 의해 이룩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많은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왔다.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현재 정부가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을 통해 시민단체의 경상비가 아닌 개별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고 해서 정부 지원의 정당성이 확보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시민단체들이 정부로부터 받은 보조금을 부당하게 사용하였다거나 정부가 자신과의 친화관계를 따져 보조금을 선별적으로 지급했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고 시민단체가 그 보조금을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이다. 설사 시민단체들이 자발적으로 결성되고, 공익을 실현하고 비정파적이라 하더라도 정부의 보조금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시민단체는 정부단체도 아니고, 정부로부터 규제를 받거나 보호를 받는 단체도 아니고, 그 단체의 존립과 활동을 국가 차원에서 재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보편적인 합의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기 정부 보조금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은 사상과 표현, 결사의 자유를 갖기 때문에 시민단체의 활동은 허용되어야 하지만 그것의 활동을 위해 국민들이 납부한 세금으로 정부가 보조금을 주어야 할 이유도 없고 주어서도 안 된다.

신중섭 /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저자소개: 신중섭 교수는 고려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논쟁과 철학’ (공저), '전교조의 이념과 운동 비판’ 외 다수가 있다.


1) 이 글에서는 관례에 따라 '시민단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시민단체’ 대신에 'NGO’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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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기를 앞두고 대풍으로 쌀값 폭락이 예상되자, 일부 농민들이 논을 갈아엎는 시위를 했다.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쌀값 안정정책을 내놓으며 잇달아 황당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쌀값 안정정책으로 혜택을 입는 농가는 빈농보다는 부농이나 대농이다. 빈농은 경작지가 작아 별로 혜택을 보지 못한 반면 대체로 시장에 쌀을 내다 파는 사람들은 부농이나 대농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가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한다면 농업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모든 사람이 피해를 입는다. 그러므로 쌀의 수요 공급은 시장에 맡겨야하며, 부득이 할 경우 쌀 수요촉진보다는 공급조절을 해야 하며 농업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쌀이 남는다고 아우성이다. 쌀값이 떨어진다고 본격적인 햅쌀 수확기를 앞두고 일부이긴 하나 농민들이 논을 갈아엎는 시위를 했다. 이에 기다렸다는 듯이 정부는 참으로 황당한 정책들을 쏟아 내고 있다. 정책당국은 쌀시장을 두고 시장경제질서를 근본적으로 교란시키는 정책을 앞장서 계속 쏟아내고 있다.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고 바람직하지 않는 것을 국민의 혈세를 사용하며 추구하려 한다.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정부

먼저 최근 정책당국자들의 쌀값 하락에 대한 인식과 정책방향을 살펴보자. “사상 최대의 풍년까지 들었습니다. 정부는 쌀 수매를 늘려서라도 농민들의 걱정을 덜어드리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사실 근본적인 대책은 쌀 소비를 늘리는 것입니다.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밀가루를 소비를 줄이고 쌀 소비를 늘린다면 국가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사실 건강에도 좋지 않겠습니까.”

이상은 이명박 대통령님이 대국민 추석인사 라디오 연설에서 쌀과 관련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산지 쌀값이 지난해 수확기에 높게 형성됐다가 계속 하락하고 있어 농업인이 체감하는 쌀값 하락폭이 매우 크다”며 "수확기 매입물량을 대풍작이었던 지난해의 247만 톤보다 23만 톤이 늘어난 270만 톤 이상을 매입해 산지 유통업체의 매입 심리를 살리고, 농가의 불안감을 불식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농가에서 출하하려는 쌀이 최대한 매입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10월 1일부터 시·군에 '벼 매입 지원센터'를 운영해 부당하게 매입을 기피하는 미곡종합처리장(RPC) 등에 매입자금 지원 중단 등의 조치를 취하고 1조원으로 확대하기로 한 정부의 벼 매입자금 지원 금리를 2%에서 무이자(0%)로 인하할 계획이라 한다. 이어 10월 1일 서울시내 설렁탕 전문음식점에서 「쌀 국수사리를 넣은 설렁탕 시식회」를 가졌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일을 자기의 책임아래 열심히 함으로써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간다. 근로자든 중소상인이든 수출업자든 내수업자든 모두 시장에서 생산자들은 소비자가 원하는 재화와 용역을 제공하고 경쟁이라는 과정을 거처 최후의 승리자가 결정된다. 물론 이 과정은 언제나 당사자들로서는 사활이 걸려있는 결전의 장이다. 시장에서의 승리와 패배는 전적으로 자신의 노력의 결과이지 행운도 아니고 더더욱 정부가 승자나 패자를 결정해서도 안 되며 할 수도 없다.

쌀값 안정정책은 빈농보다는 부농과 대농이 이익 향유

모든 재화의 가격은 수요·공급을 통해 시장에서 결정되며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면 당해가격은 떨어지는 것이 극히 자연스러우며 당연히 떨어져야만 초과공급에 따른 잉여가 해소된다. 지난해 같으면 벌써 소비됐어야할 재고 쌀이 창고에 쌓여있는바 전국적으로는 40만 톤이 넘는다고 한다. 여기에다 올해 수확되는 쌀까지 창고에 쌓이게 되면 그야말로 쌀이 넘쳐날 판이다. 쌀이라고 해서 수급과정에서 가격 등락이 있어서는 왜 안 된다는 것인가? 가격이 하락해야만 더 소비되어 쌀의 재고가 쌓이지 않게 된다. 그런데 정부는 막무가내로 쌀값을 높이 유지하려고만 한다.

정부가 시장과정에 인위적으로 개입하게 되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도움을 받는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피해를 입게 된다. 세상엔 공짜가 절대로 없다. 국민의 귀중한 혈세가 낭비되며, 관련 산업의 경쟁력이 더 저하되며, 국가 전체로 소득분배 형평성에 오히려 문제가 야기된다.

정부의 쌀 가격 지지정책은 빈농에게는 혜택이 없으며 부농과 대농만 혜택을 향유한다. 빈농은 경작면적이 작아 농사를 적게 짓기 때문에 수확량도 한정되어 있어 혜택을 별로 누리지 못한다. 반면 부농이나 대농은 경작 면적이 넓어 농사를 많이 짓기 때문에 시장에 공급하는 쌀의 대부분은 이들이 판 것이다. 그러므로 대농이므로 대부분의 혜택은 부농과 대농이 향유하고 빈농에서 부농으로 소득재분배가 이루어진다.

농민은 농업에 종사하는 사업자이다. 우선 쌀 생산자 농민에게 우리나라의 모든 다른 업종의 사업자 그리고 쌀 소비자가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다. 그것은 "왜 당신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소득을 창출하려 하기보다는 정치를 이용해 소득보장을 도모하려 하는가?"이다. 어느 일반 사업자가 자신의 제품이 과잉 생산되었다고 자신의 제품파기를 시위를 통해 과시하고 때론 걸핏하면 사업과는 무관한 고속도로와 도심거리를 마비시키는가? 자신의 생계의 어려움 때문에 모두가 시위를 한다고 하면 수많은 실업자, 도시의 빈민, 영세사업자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가가치세 납세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엔 법인사업자가 40만, 일반사업자가 215만, 간이사업자가 160만 하여 도합 415만의 사업자가 있다. 2007년 현재 쌀 전업농가는 78,808호이다. 2007년 농림어업 종사자는 130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5.8%이다. 산업구조상 전체 생산에서 농업생산이 점하는 비중은 2007년에 2.7%에 불과하다. 농림예산의 규모는 2008년도에 15조 9,240억 원으로 정부예산의 6.2%이다. 사실 농업과 농촌은 그 경제적 비중에 비해 정치적 힘이 지나치게 비대하며 그 결과 정부지원도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97.3%의 국민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려면 농업인들은 스스로 국민에게 그 정당성을 납득시켜야 하지 떼쓰고 정치권을 협박해서야 되겠는가?

수요촉진보다는 공급조절이 더 효과적

쌀을 남아돌게 하는 정책을 적극 추진한 정부는 남아도는 쌀 처분을 위해서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군장병들에게 쌀 케이크 전달, 밀가루에서 쌀로 대체가 손쉽게 가능한 품목인 고추장, 떡볶이 떡 등에 쌀 사용 확대 유도, 쌀자장면, 쌀국수, 쌀빵 등의 급식, 아침밥 먹기 운동, 북한 및 동남아 지원 등등이다. 쌀 소비 촉진책에서도 정부는 돈키호테식이다. 식단의 내용을 어떻게 짜느냐 하는 것은 개개인의 결정사항이지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쌀과 밀가루 중 어느 것을 재료로 사용할 것인가는 원료의 가격과 제품의 질을 기준으로 사업자가 결정할 일이지 정부가 지시하고 지원할 사항이 아니지 않는가?

2008년 현재 쌀의 1인당 연간 소비량은 농가의 경우 122.5kg, 비농가의 경우72.4kg, 전체로 평균 75.8kg이다. 1970년 1인당 쌀 소비량이 136.4kg 이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소비감소이다. 쌀 수매실적을 살펴보면 수매량이 생산량에서 점하는 비중이 2007년에 9.4%이었고 쌀 자급률은 95.8%이었다. 막걸리, 과자 등을 만드는 가공용 쌀 가격을 kg당 1,446원에서 950원으로 약 34% 인위적으로 내린단다. 이 과정에서도 결국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것이다.

농촌의 인구구조나 해외여건 등을 감안하면 정부의 정책은 수요측면보다는 공급측면에서 우선 접근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쌀 소비 감소 추세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쌀 소비 촉진책에 심혈을 기울이고 우리 사회 전반에 쌀 먹는 문화를 확산시키는 캠페인을 아무리 벌려봐야 왜곡만 초래되고 비용만 야기되고 그 결과는 미미할 것이다. 쌀 시장을 개방하고 수입쌀에 낮은 관세를 부과하여 쌀 가격이 크게 하락하는 경우에만 가계용 그리고 산업용 소비가 다소 상승할 것이다.

쌀의 수요에 맞추어 공급을 시장에 맡긴다면 쌀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쌀의 공급이 증가한다면, 쌀 가격은 하락하고 수요는 늘어날 것이다. 반면, 공급이 감소한다면 쌀 가격은 상승하고 소비는 줄어들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는 농민들의 비난을 정부와 정치인들이 감수해야만 한다.

이것이 어려울 경우 차선책으로 쌀 수요에 맞추어 적절한 공급 조절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출하량을 조절하는 것과 중기적으로 생산 규모를 조절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쌀 생산자들은 공동브랜드와 공동출하를 통해 시장교섭력을 높여나가고, 농협의 계약재배나 출하약정사업에 참여하여 출하량을 조절하도록 하며, 관습적으로 쌀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시장 상황을 예견하면서 생산계획을 수립하고 생산 규모와 출하량을 조절하는 합리적인 생산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2004년 WTO 쌀 협상 시 최소시장접근(MMA)물량 의무수입 합의에 따라 올해도 불합리하게 외국산 쌀을 수입해야 하는데 2005년 22.5만 톤에서 2009년 30.7만 톤으로 매년 약 2만 톤씩 증량된 물량을 수입하고 있다. 수입된 MMA 중 밥쌀용 쌀은 공매를 통해 판매되는바 2005~2007년도 분은 전량 판매되었으며 2008년도 분의 판매가 현재 진행 중이라 한다. 그동안 계속 논의만 되어온 쌀의 조기 관세화에 대해 이제는 결단을 내려 의무수입 부담이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농업정책과 농촌정책을 분리해서 접근해야

쌀은 생산에 긴 시간을 요하고 국민 모두가 소비하므로 국방과 관련하여서도 매우 중요하므로, 다른 상품과 다르게 특별히 취급되어야 한다는 소위 식량안보론이 쌀에 대한 합리적 논의를 계속 가로막고 있다. 쌀이 갖는 국방상 또는 국민소비형태상의 특수성 때문에 가격이 통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이는 우리가 소비하는 거의 모든 상품이 나름대로의 특수성을 갖고 있어 쌀과 같은 정도로 생활에 필요불가결하며 또한 국방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쌀이 다른 상품보다 우리 생활에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다른 상품보다 쌀에 대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겠다는 의지와 쌀값의 가격이 더 안정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반영하는 것이지, 쌀값이 정부에 의해 임의적으로 높이 규제되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농업정책과 농촌정책을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 한계농업인들을 국민의 세금으로 먹여 살려가는 한편 소비자들이 식품을 비싼 가격으로 구입하는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야 한다. 우리와 후손을 위해서 농촌을 살기 좋은 환경으로 가꾸는 것은 꼭 필요하다. 쌀이든 다른 농산물이든 생산성이나 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 우위가 있으면 지키되 그렇지 않으면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농민과 국민 모두에 좋다. 어느 산업에도 부침은 있게 마련이다. 농업이 진정한 산업으로서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려면 스스로 구조조정을 하고 식품산업과 연계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

최 광 / 한국외국어대 경제학부 교수

저자소개: 최 광 교수는 미국 메릴랜드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보건복지부 장관과 국회예산정책처 처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정부’, '국가 번영을 위한 근본적 세제개혁 방안’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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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3개 공무원노조가 통합공무원 노조를 출범시켰으며, 민주노총에 가입하기로 결정했다. KT, 영진약품, 울산 NCC 노조 등의 잇단 민주노총 탈퇴로 뿌리 채 흔들리던 민주노총이 다시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공무원의 노조 결성을 통해 단체 교섭을 하거나 민주노총에 가입하고 정당한 조합 활동을 하는 것은 노동기본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공무원들이 쟁의행위를 하거나 정치활동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며, 중장기적으로는 독일처럼 노조활동을 할 수 없는 공무원과 노조활동을 할 수 있는 공무근로자로 공무원 구조를 이원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민공노), 법원공무원노동조합(법원노조) 등 3개 공무원 노조가 지난 22일 통합공무원 노조를 출범시켰다. 이와 동시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에 가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들 세 공무원 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함으로써 내부의 비리와 성추문 사건, 그리고 KT 노조, 인천지하철 노조, 영진약품 노조, 울산 NCC 노조 등의 잇단 탈퇴로 인해 뿌리 채 흔들리던 민주노총은 모처럼만에 활기를 되찾고 있는 듯하다.

시대에 역행하는 공무원 노조의 민주노총 가입

2007년 68만2000명을 기록했던 민주노총의 조합원 수는 지난해인 2008년에는 65만800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또 올해 들어와서는 KT 노조 등의 도미노 탈퇴로 현재 조합원 수는 62만 여명까지 축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약 11만 여명의(이미 가입되어 있던 전공노 소속 5만 명을 제하면 신규 가입은 6만 여명) 조합원 수를 갖고 있는 통합공무원노조가 새로 가입함으로써 민주노총은 이제 한국노총의 72만 여명과 유사한 규모가 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가 구성하는 노동위원회나 최저임금위원회 등에 더 많은 근로자 위원을 참여시키고 공익위원을 선정하는 데에도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민주노총은 내심 기대하고 있다.

공무원 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정부는 대국민담화를 통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에 어긋나는 행위가 있을 때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했으며, 행정안전부는 민노총 가입 투/개표 과정에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뉴라이트전국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공무원 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이 '법률에 규정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 것인지 여부에 대해 판단해 달라며 검찰의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통합공무원 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이 우리 사회의 뜨거운 논란거리로 등장한 것이다.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3조에서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다. 즉 우리 헌법은 공무원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여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노동기본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헌법 제7조에서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며,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법률로써 보호하고 있다. 즉 공무원의 신분 및 직무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 헌법은 공무원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여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노동기본권은 인정하지만, 공무원이라고 하는 특수성으로 인해 노동기본권 행사에 일정한 제한을 가하도록 하고 있다.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 가입으로 인해 그 제한된 선을 넘었는가가 일차적인 논란이 될 수 있다.

공무원의 정치활동, 합법적인가

공무원노조의 특수성이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5조 단서 조항에 표현되어 있다. 즉 노조법 제5조는 “근로자는 자유로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있다. 다만, 공무원과 교원에 대하여는 따로 법률로 정한다.”고 하여 공무원과 교원에 대하여는 별도의 법에 위임하고 있다. 그 별도의 법이 곧 공무원노조법이다. 노조법의 특별법으로서의 성격을 갖는 공무원노조법에서는 공무원의 노동조합 결성, 단체교섭 인정, 정당한 조합 활동을 허용하지만, 공무원의 복무상 의무규정 준수, 쟁의행위 및 정치활동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결국 노조를 조직하고 단체교섭을 하며 정당한 조합 활동을 하는 것은 합법적인 활동이지만, 쟁의행위나 정치활동을 하는 것은 불법이 된다.

결국 공무원노조가 노조를 결성하고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것 자체로는 불법이 아니며, 문제시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공무원노조가 쟁의행위나 정치활동, 특히 정치활동을 했을 경우이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대목은 기자회견장에서의 통합공무원 노조 출범배경에 대한 설명 속에 들어 있다. 이 날 손영태 전공노 위원장은 “공무원 노조는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는 힘 있는 통합 노조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근로자이면서 동시에 직무 특수성을 갖는 공무원을 조합원으로 하는 공무원노조는 일체의 정치활동이 금지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현 정부를 심판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정치활동을 하겠다는 공식선언이나 다름없으며, 이미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 노조들은 이미 '살인정권 규탄대회’ '이명박 정권 심판 국민대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시위’ 등에도 참가한 이력이 있다. 즉 불법활동을 했다는 이야기이며, 이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이런 불법활동을 하는 공무원노조가 이제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강령으로 하면서 불법 폭력투쟁을 일삼는 민주노총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은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이미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도 격려사를 통해 “이명박 정권의 탄압에 맞선 민주노총의 투쟁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앞으로 민주노총의 활동 및 공무원 노조의 참여와 관련하여 불법성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고, 이는 또 다시 투쟁을 부추기고 선동하는 호재로 이용될 공산이 크다. 우리 사회에 커다란 투쟁의 불씨가 새롭게 던져지는 셈이다. 이에 대해 정부가 어떤 의지를 갖고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가 사태의 진전을 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손영태 위원장의 '정부 심판’ 발언은 또 다른 측면에서 문제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다. 정부를 선택하고 심판할 수 있는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국민은 그 권력을 공무원 노조에게 위임한 적이 없다. 그런데 무슨 권한으로 공무원 노조가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국민이 투표로써 선택한 정부를 그 국민의 의사를 충실히 섬겨야 할 공무원이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신들이 심판하겠다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위험한 발상은 아닌가. 아니면 무식한 국민을 똑똑한 자신들이 선도하겠다는 오만인가.

중장기적으로 공무원 구조 이원화를 검토해 볼 필요 있다

신분이 철저하게 보장되어 '철밥통’으로 불리는 공무원들이 결성한 공무원노조가 앞으로 어떤 요구를 할 것인지는 분명하다. 공공서비스 향상이나 정부의 비리 척결, 단체장 견제 등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 그들이 요구할 것은 일은 덜하고 돈은 더 받겠다는 것이다. 이미 그러한 요구들은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지난 22일의 기자회견에서 공무원 노조는 임금인상 등 생존권 보장, 공무원 연금 개정 저지, 구조조정 차단 등을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의 의미와 배경으로 언급했다.

한 마디로 임금 많이 받고 노후보장 확실히 받아내고 '철밥통’은 더 강력한 '강철밥통’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일반국민이 받는 국민연금보다도 공무원들이 받는 공무원연금이 훨씬 유리하다. 그런 공무원연금이 적자가 난 지가 옛날이지만, 이 적자를 매년 국민들의 혈세로 메워주고 있다. 그리고 그 규모는 2005년 6096억 원, 2007년 9892억 원, 올해에는 1조 9931억 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공무원이 국민을 위한 공복(公僕)이라는 단어는 교과서에서조차 사라져야 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관존민비(官尊民卑) 사회에 살고 있다. 국민은 여전히 봉이다.

공무원들의 봉이 된 국민으로서는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는 일이지만, 어쨌든 현재로서는 정부가 제대로 대처해 나가기만을 바라는 것 이외에 별 다른 도리가 없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공무원 노조와 유사한 교원노조, 즉 전교조의 선례를 잘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교조 역시 '교원노조법’의 규율을 받게 되어 있으며, 이에 따르면 모든 정치활동이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전교조는 대통령 탄핵 반대, 이라크 추가 파병 반대, 반미투쟁과 미군기지이전 문제, 한미FTA와 APEC 등 무역자유화와 시장개방 반대투쟁,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투쟁 등의 정치투쟁을 일삼아왔다. 반면 정부는 이러한 활동에 대해 대체로 묵인하고 그냥 넘어갔다. 그 결과가 현재의 전교조이며 교육계의 현실이다. 공무원 노조의 정치개입 및 정치활동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하는 길 밖에 없다. 정부도 공무원노조의 정치활동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그럴 경우 엄정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지만, 이번에야 말로 '말 잔치’로 끝나서는 곤란하다. 정부는 이번 일로 사회와 국가가 몰락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공무원의 구조를 이원화하는 방법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독일의 경우 공무를 담당하는 인사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져 있다. 하나는 공무원(Beamte)이고 다른 하나는 공무근로자(Angestellte im Oeffentlichen Dienst)이다. 공무원은 신분보장이 되는 대신 노조 등에 가입하여 활동할 수 없다. 반면 공무근로자들은 신분보장이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반면 노조를 조직하고 노조활동을 할 수 있다. 이렇게 공무담당자들을 두 부류로 구분하여 노조를 결성하고 노조활동을 하는 공무근로자들에 대해서는 해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전공노 게시판에 “당신들은 해고되었습니다”라는 분노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쓴 글이 현실이 되어야 한다. 국민은 공무원의 봉이 아니라 공무원의 주인임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

권혁철 / 자유기업원 법경제실장

저자소개: 권혁철 박사는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쾰른대학교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자유기업원에서 법경제실장을 맡고 있으며 경제정책분야를 연구 중이다. 주요 연구결과로는 '근로시간 단축의 경제적 효과’, '노사정위원회를 다시 생각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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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지 1년이 지났다. 금융위기의 원인은 미국 정부의 시장개입과 방만한 통화정책을 수행한 결과 나타난 정부의 실패 때문이었다. 정부의 실패로 발생한 위기를 또 다시 금리인하, 구제금융, 경기부양책 등 정부개입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중이다. 유동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유동성을 공급해 금융시장을 안정시킨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제는 금융시장도 안정되어 가고 있어 유동성 폐해가 나타나기 전에 적절한 출구전략을 통해 유동성과 기대인플레이션을 통제해야 한다. 아울러 향후 금융위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정부가 무분별하게 통화를 팽창할 수 있는 현행 화폐금융제도를 개혁해 화폐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도록 해야 한다.

1년 전 미국의 투자회사인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주가가 폭락하면서 미국의 금융시장은 패닉 상태에 들어갔다. 그것이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어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대되었다. 이를 두고 많은 지식인과 언론은 시장의 실패, 신자유주의의 종언, 금융자본주의의 종언이라는 주장을 쏟아 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금융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잘못 파악한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은 정부 개입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것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다. 미국 정부는 지역재투자법(Community Reinvestment Act)을 개정하여 은행들로 하여금 신용도가 낮은 서브프라임에 대출하도록 했고, 모기지 전문회사인 패니메이(Fenni Mae)와 프레디 맥(Freddie Mac)의 손실을 보증해 주었다.

이러한 조치로 시장 참가자들이 위험을 추구하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했다. 이것은 주택부문의 과잉투자로 이어졌으며,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이하 연준)가 2001년 이후 시행한 저금리 정책으로 인해 창출된 과잉 유동성이 주택시장으로 쏟아져 들어가며 주택시장을 더욱 과열시키면서 거품을 키웠다.

그러다가 과잉 유동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회피하기 위해 연준이 금리를 올렸다. 그러자 주택대출이 줄면서 주택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하고,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자들이 빚 갚는 걸 포기하는 사태가 일어나자 은행들의 부실채권이 증가하였다. 서브프라임 연체율이 올라갔고, 서브프라임을 기초로 한 모기지와 모기지유동화증권(MBS)의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하였다. 그러자 모기지유동화증권(MBS)에 투자한 베어스턴스, 리먼 브러더스 같은 투자은행들이 막대한 손해를 보고 파산하게 되었다. 한편 모기지유동화증권(MBS)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파생상품인 부채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CDO)에 투자한 외국은행들과 헤지펀드들이 대규모 손실을 보면서 금융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번 금융위기는 시장실패도 아니고 신자유주의 탓도 아니었다. 미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고 방만한 통화정책을 수행한 결과였다. 자유시장의 실패가 아니고 정부의 개입에 의한 시장의 실패였다.

정부 개입의 문제를 정부 개입으로 풀다

정부 개입이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세계 각국 정부들은 기준금리를 대폭 인하하고 구제금융과 유동성 확충, 경기부양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 돈을 풀었다. 미국은 연방금리를 5.75%에서 제로금리 가까이 인하하였으며, 부실 금융 자본을 구제하기 위해 7천억 달러와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 8,000여 억 달러를 투입하였다. 영국은 기준금리를 5%에서 0.5%로 인하하고, 금융시장구제와 경기부양을 위해 6,000억 파운드를 투입하였다. 일본역시 0.5%에서 0.1%로 기준금리를 낮추었고 약 130조엔 규모의 경기부양대책을 마련하였다.

한국도 기준금리를 5.25%에서 2%로 인하하였으며, 2008년 9월 이후 정부가 신규기금펀드 조성, 금융공기업지원, 한국은행특별지원금 등 총 151조원에 달하는 경제위기관련 지원 대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2009년 예산에 29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을 편성하였다.

이 정책들 중 금융위기 이후 금리를 대폭 인하하며 시장에 많은 유동성을 공급한 것은 옳았다고 본다. 주가가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면 안전한 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증가한다.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는 경우에 가장 안전한 자산은 현금이므로 사람들의 현금보유가 증가한다. 이때 현 금융제도 하에서 현금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중앙은행이 현금의 공급을 늘려 주지 않는다면 현금 부족으로 인한 신용경색이 발생하여 금융시장이 더욱 불안해지고 그것이 실물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작년 9월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중앙은행의 유동성 확대 정책은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의 은행들의 외화유동성 조달여건이 개선되는 등 국제자금시장의 신용경색이 완화되었다. 그리고 미 달러 화에 대해 큰 폭으로 절하되었던 주요국의 통화가치도 상당히 회복되었다.

그러나 그 외 각국의 정부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취한 구제금융이나 경기부양책은 장기적으로 결코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구제금융은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의 높은 위험 행위, 즉 도덕적 해이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위기 이후 월가의 도덕적 해이는 더욱 심해졌다. 이로 인해 미래에 더 큰 금융위기가 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구제금융은 잘못된 투자를 교정하려는 시장의 자원배분을 방해하여 경제회복을 늦출 수 있다. 구제금융은 좀비 기업들을 존속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경제 내의 한정된 자원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건실한 기업들의 자원 사용비용을 증가시켜 투자를 위축시킨다. 실제로 각국에서 기업의 투자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가 재정지출을 계속 늘리고 저금리를 유지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왜냐하면 정부의 재정지출과 저금리로 경제가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세금을 더 걷든가 채권을 발행하여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그 재원은 궁극적으로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으로부터 거둔 재원을 관리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되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지출 증가는 자원의 비효율적인 사용을 초래하여 경제를 위축시킨다. 1930년대 대공황을 치유했다고 알고 있는 뉴딜 정책은 실은 생산 활동을 감소시켜 불황을 심화시켰다. 1930년대 대공황에서 미국의 경기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은 루스벨트 정부에 이은 투르만 정부의 감세와 규제완화로 민간투자가 살아나서부터이다.

출구전략 세우고 화폐금융제도를 개혁해야

저금리 정책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동성 수요가 증가하였을 때 그에 맞춰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중점을 두어야지 경기부양을 쓴다면 그 효과는 없고 오히려 자산 가격의 거품만을 야기한다. 금융시장이 안정되고 가격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화폐수요가 감소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시기가 오면 중앙은행은 매우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높은 인플레이션을 허용할 것인지 아니면 높은 인플레이션 피하기 위해 금리를 올릴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이다.

지금 각국의 금융시장이 상당히 안정되어 가고 있다. 한국만 해도 2009년 4월초부터 콜금리가 기준금리 이하로 거래되었으며, 그 이후 국내 금융회사들의 유동성 위험이 크게 감소하고 초단기 자금시장이 안정화되었다. 외환시장도 빠르게 안정됐다. 작년 11월에 1,500원대로 급등했던 환율이 올 5월 이후로는 넉 달가량 1,200원대에 머물고 있다. 외환보유액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작년 11월말 2천5억 달러로 급감하였으나 올해 8월말 2천455억 달러로 늘면서 작년 8월말 수준으로 회복했다.

한편 세계 곳곳에서 인플레이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와 곡물가격이 올 들어 50% 이상 뛰었다. 그리고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대부분의 국가에서 크게 올랐다. 한국만 해도 소비자물가지수는 올해 8월말에 지난해 8월말 대비 2.2%밖에 상승하였지만, 2008년 전국의 집값 상승률이 3.1%를 기록하였으며, 개발호재가 있는 인천 계양구와 경기 의정부는 20%에 가까이 올랐다. 올해 들어 지난 8월말 기준 전국 아파트 시세가 13주 연속 상승하고 있다. 서울 강남지역의 일부 재건축 아파트는 최근 5개월 사이에 최고 70% 올랐다. 또 연초에 1,100원대로 출발했던 코스피 지수가 현재 1,600원대로 약 40% 정도 올랐다. 기준금리가 2.0%임에도 불구하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달 31일 현재 4.38%에 달하고 있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나치게 풀린 유동성의 폐해가 나타나기 전에 적절한 출구전략을 통해 유동성과 기대 인플레를 관리해야 한다. 그동안 풀었던 유동성을 서서히 거두어들이면서 경제를 연착륙시켜야 한다. 먼저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그동안 사들였던 채권들을 다시 팔아 유동성을 회수하는 한편, 시장에 심한 충격을 가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기준금리를 소폭 인상해 가며 유동성을 거두어들여야 한다. 그렇게 하여 시장에 유동성을 회수한다는 신호를 주어 자산 가격 버블화 가능성과 기대 인플레이션을 통제해야 한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화폐금융제도의 개혁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비롯하여 미국의 1930년대 대공황, 그리고 19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근본적으로 모두 무분별한 통화팽창 정책으로 비롯되었다. 이러한 사태들에서 알 수 있듯이 통화팽창으로 거품 붕괴의 과정이 한번 발생하면 그로부터 오는 고통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그것을 수습하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향후 금융위기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정부에 의해 화폐가 무분별하게 팽창되는 화폐금융제도를 개혁하여 화폐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새로운 화폐금융제도를 만드는 일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

안재욱 / 경희대학교 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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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민주당이 54년 만에 제1당으로 집권해 정권교체를 실현했다. 민주당 집권이 미국이나 한국 등 주변국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민주당 집권으로 일본의 외교정책에 커다란 변혁이 나타날 것이라는 시각이 있으나, 커다란 변화는 없을 것이다. 민주당은 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하면서도 대미관계에서 일본의 위상을 제고시키기 위해 전략적 노력을 할 것이고, 상대적으로 유엔 중심 외교·아시아 외교에 비중을 높일 것이다. 또 민주당 정권 실세들이 한국에 우호적이기 때문에 한일 협력은 한층 더 원만하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8월 30일 일본 총선에서 민주당은 대승을 거두며 역사적인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 총의석 480석(소선거구 300석, 비례구 180석) 가운데, 민주당은 308석, 자민당 119석, 공명당 21석, 공산당 9석, 사민당 7석 등이다. 야당이 제1당으로 등장하며 정권교체를 실현한 것은 일본 전후 정치사에서 54년만이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 국가들은 향후 민주당 정권의 국내정치 운용 및 대외정책의 전개에 대해 매우 관심이 높다.

민주당은 총선 공약, 수뇌부의 기자회견 등을 통하여 대외정책을 밝혔는데, 특히 유엔 중심 외교의 표명에 따른 대미정책과 미·일 동맹,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한 아시아 중시 정책의 표명과 한국·중국과의 관계 등이 주목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향후 일본 국내정치의 전개와 관련, 민주당의 현실적 한계에 대해 주목하면서 냉철하고도 전략적 관점에서 대외정책의 전개를 전망하여야 할 것이다.

일 민주당 집권, 미·일 동맹을 악화시킬 것인가?

자민당 정권은 대미 중시외교와 더불어 미·일 동맹의 강화정책을 추구하였다. 이와 같은 자민당의 대미정책에 대해, 민주당은 8월 30일 총선 정국에서 '대미 추종외교’라고 비판하면서, 정책공약을 통하여 '긴밀하고도 대등한 미·일관계의 구축’의 주창과 함께 미·일간의 예민한 정책현안인 오키나마 기지이전의 수정, 미·일 지위협정의 개정 등을 제시하였다. 또,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는 8월 30일 총선 직전, 8월 27일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 전자판에 게재된 칼럼도 미·일 관계에서 미국의 과도한 영향력 행사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였다.

위와 같은 상황을 검토해 볼 때, 일본의 미·일 동맹 중시 정책의 기조에는 변함이 없지만, 일정 부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할 수 있다. 즉, 민주당 정권은 미·일 동맹 및 미국 중시의 정책기조를 견지하겠지만, 대미관계에서 일본의 위상을 전략적으로 제고시키는 노력을 전개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물론, 민주당이 야당에서 여당으로 전환하면서 현실노선에 따라 주요 현안 문제에 대해 정책공약대로 이행하지 않고 유연하게 전략적으로 대처할 것이다. 이미 민주당은 총선 과정에서 현실주의 입장에서 대미 정책노선에 수정을 가하기도 하였다. 민주당은 그동안 반대해 온 해상자위대의 인도양에서의 다국적군 함대에 대한 급유지원 활동의 문제도 8월 30일 총선 공약의 원안과는 달리, 2009년 7월 23일에 당분간 용인할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리고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는 2009년 8월 31일 기자회견에서 “나는 반미주의자가 아니며 아시아 지역의 미래에 대한 나의 비전은 미국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면서 동년 9월 3일 오바마 대통령과의 첫 전화 회담에서는 “미·일 동맹이 기축”임을 강조함과 더불어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미·일 관계의 구축”을 역설하였다.

요컨대, 야당의 여당의 정책에 대한 책임감이 다른 만큼, 민주당 정권도 야당시절에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현실주의 입장에서 미·일 동맹을 외교의 기축으로 하는 정책기조를 견지하면서, 대미관계에서 일본의 위상을 제고시키는 전략적 노력을 전개할 것이다. 아울러, 자민당 정권의 미·일 동맹의 강화에 역점을 둔 대미정책에 비해, 민주당 정권은 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유엔 중심 외교, 아시아 외교의 비중을 높일 것이다.

민주당 집권이 한·일 관계에 미치는 영향

한·일 관계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경제위기로 확산되면서 중요한 협력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중·일의 협력이 전개되는 가운데 한·일 협력은 양국 정상의 셔틀외교의 활성화에 힘입어 비교적 원만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국제정치경제환경의 변화 즉, 세계금융경제위기의 도래에 따른 미국 국력의 상대적 약화, 중국·인도의 부상, 미·중 경제·전략 협력의 강화 등 변화가 나타남에 따라 한·일 협력은 양국 정상의 셔틀외교를 중심으로 비교적 원만하게 전개되고 있다.

2009년 6월 28일의 도쿄 한·일정상회담에서는 과거사 문제, 독도문제 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고 갈등을 초래하기 쉬운 민감한 문제는 배제하고, 양국의 실질적 현안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 결과,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5자 협의의 필요성 공유, 첨단 분야에서 일본측 기술지원을 포함한 협력 강화, 한국 내 부품·소재산업 공단의 일본 기업 진출 지원 요청, 한·일 FTA 교섭 재개 등 양자 간 현안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되었을 뿐 아니라, 기후, 테러, 아프가니스탄 지원 등 글로벌 주요 현안에 대해서도 논의되었다.

이와 같은 실용주의적 한·일 협력은 민주당이 집권함에 따라, 한층 더 원만하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총선 정국에서 주일 외국 언론과의 회견을 통하여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를 존중하고 계승할 것’을 언급하면서, '총리 및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불참배’를 선언하였고,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민주당의 총선 공약에서도 ▲야스쿠니 산사를 대체할 국립추도시설 설립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처리 ▲영주 외국인의 지방참정권 실현 ▲북한에 의한 납치 및 핵·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양호한 한·일관계의 재구축 ▲한·일의 신뢰관계 강화 및 한·중·일의 강력한 신뢰협력관계 구축 등을 제시하면서 과거사 문제의 전향적 태도와 더불어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시사했다.

더욱이, 민주당 정권의 실세인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 오카다 가츠야 외무상, 간 나오토 국가전략국 담당상,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 등이 한국에 우호적인 지한파 또는 친한파 정치인이므로, 일본은 아시아 외교의 전개와 더불어 한·일 관계를 중시할 것이다.

일본 외교정책의 현실적 한계와 한국의 전략적 고려

민주당이 집권하면 외교정책에 커다란 변혁이 나타날 것이라는 시각이 있으나, 적지 않은 현실적 한계가 있다. 첫째, 현재 민주당은 참의원에서 과반수를 점하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안정된 정국운영을 위해 정치 전략적 차원에서 내년 7월의 참의원 선거를 고려하여야 한다. 즉, 정권의 안정적 기반의 강화를 위해 대외전략보다는 경지대책, 고용, 연금, 의료, 복지 등 국내 주요 현안들에 역점을 두고 정치적으로 접근하여야 한다. 즉, 민주당이 외교정책에 커다란 변화를 추구할 만큼 정치적 여유가 없다.

둘째, 민주당은 여러 정치적 성향의 계파가 있다. 즉, 자민당을 탈당한 보수 그룹에서 사회당 계열의 진보·좌파 그룹까지 여러 정치적 성향의 계파가 있다. 상황에 따라서 이들 계파 간에 정책노선 차이로 인한 갈등이 초래될 수도 있다. 즉, 민주당이 자민당과의 정치적 마찰을 일으키고, 내부적으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미·일 동맹 문제 등을 쟁점화하기에 한계가 있다.

셋째, 민주당의 압승이 국민들의 민주당의 대외 정책노선의 공감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고이즈미 정권의 개혁정책 후유증인 “격차사회”의 등장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불만, '귀족내각’으로 특징 지워진 아소정권의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정국 운용 등, 국민들의 '자민당의 비판의 고조’ 덕분으로 '반사이익’에 의한 '총선 승리 및 정권교체’이다. 즉, 8월 30일 총선에서 308석의 획득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국민적 지지기반은 견고하지 못하다.

넷째, 미·일 동맹은 미·영 동맹과 함께 미국의 세계전략의 핵심 대외축이다. 그러므로 미국은 미·일 동맹 및 대일 중시 외교를 지속할 것이고, 일본 역시 '미·일 관계의 관계 재조정’을 추구하더라도 대미 중시 및 미·일 동맹의 강화외교를 추구할 것이다.

일본의 대외전략은 정권의 특성에 따라 다소 질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대외전략의 기조는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그다지 차이가 없을 것이다. 대외전략의 기조는 '21세기 국제지도국’을 지향하여 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유엔 외교, 아시아 외교에 역점을 두고 전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은 민주당의 현실적 한계에 주목하면서 냉철하고도 전략적 관점에서 접근하여야 할 것이다. ■

배정호 / 통일연구원 국제관계연구센타 소장

저자소개: 배정호 소장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는 통일연구원 국제관계연구센타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일본의 안보전략과 국가전략’, '아베 정권의 국내정치와 대외전략’, '전환기 동북아국가들의 국내정치와 대외전략’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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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연구자문위원회가 그 동안 현행 헌법을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헌법개정안을 발표했다. 많은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보이지만, 유감스럽게도 개헌안은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먼저, 권력자들끼리 권력나누기를 목표로 하는 권력구조 개편에 치중하고 있을 뿐이다. 둘째, 분배와 복지 등 사회적 기본권 강화를 통해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셋째, 조항별로 정부개입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어 경제에 대한 정부간섭을 광범위하게 허용하고 있다. 넷째, 지방분권화를 추진하지 않고 기형적 지방자치를 강화하고 있다. 이번 개헌안은 비전도 철학도 없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보장하는 개헌안도 아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통치자들의 권력을 제한하고 시민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개헌이어야 한다.

지난해 9월 국회의장 자문기구로 설립된 헌법연구 자문위원회(이하 헌자위)는 그동안 현행헌법을 연구하여 그 연구결과로서 헌법개정안을 최근에 발표했다. 헌자위는 1987년 개정된 현행헌법이 세계적 정치․경제 환경의 급변에 따른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에서 헌정운영으로부터 축적된 경험과 이론을 바탕으로 “국가의 미래를 담아 낼” 개헌안을 작성했다고 한다.

그 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엿보이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개헌안은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권력자들끼리 권력나누기를 목표로 하는 권력구조에 치중하고 있을 뿐, 국가균형발전과 분배와 복지를 확대․강화하고 경제 간섭을 광범위하게 허용하고 있으며, 더구나 중앙집권적 지방자치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개헌안은 철학도 없고, 비전도 없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보장하는 개헌안도 아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어떠한 방향으로 개헌을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통치자들이 시민들의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의 권력을 제한하여 자유와 재산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개헌이어야 한다.

사회적 기본권 확대를 통해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개헌안

개헌할 때마다 항상 부각되는 당위론적 주장이 있다. 국민의 실질적 권리 보장을 위해 사회권적 기본권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 결과가 인간다운 생활권, 교육을 받을 권리, 근로의 권리, 근로3권, 환경권, 건강권과 모성을 보호받을 권리 등등 현행헌법의 사회권적 기본권이다. 그러나 사회권적 기본권을 확대하면 자유권이 제한된다는 사실, 그 확대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부지출의 증가가 요구되고 경제활동도 심각하게 위축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유감스럽게도 헌자위가 고려하지 못한 것도 바로 그 점이다. 현행헌법에서 사회권적 기본권의 확대가 시민들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그 확대와 실행의 당위론만을 고집하고 있다.

헌자위는 형식적 평등이나 기회의 평등과 같은 개념은 낡은 것이고 사회적 경제적 약자 및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통한 실질적 평등 개념이 현대적이라고 믿는다. 이런 믿음에 따라 헌법에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는 것을 국가의 의무라는 새로운 조항의 도입, 소외계층의 정보 접근권, 출산․양육에서 남녀평등권과 같은 새로운 사회권적 기본권 도입을 강조한다.

흥미로운 것은 독일의 사회주의자 울리히 베크(U. Beck)의 위험사회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안전에 대한 권리”의 새로운 도입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험사회론은 현대사회를 이른바 “위험사회”라고 규정하고 위험발생의 장본인이 자본주의라고 터무니없이 비판하면서 국가의 영역을 확대할 것을 정당화하는 이론이다.

유감스럽게도 헌자위는 현행헌법의 사회권적 기본권과 새로이 도입한 안전에 대한 권리가 어떤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이런 권리 확대가 자유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하여 진지한 논의가 없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위험사회론이 주장하는 대로 안전에 대한 권리를 확대할 때는 정부가 시민들의 삶의 영역을 속속들이 개입할 위험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경제에 대한 정부간섭의 필요성을 강화한 개헌안

개헌할 때마다 항상 증가한 것이 또 있다.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규제와 특정한 산업이나 집단의 활동을 지원․ 육성하는 등, 현행 헌법 119조에서 127조까지의 규정에 따른 정부간섭이다. 개헌 때마다 정부개입범위를 확대하기만 했을 뿐, 자의적인 정부개입은 경제자유를 제한하여 경제침체와 빈곤을 야기한다는 것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개헌할 때에는 규제조항들을 폐지하거나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자위의 개정안은 수많은 경제학자들을 실망시키고 말았다. 과거의 사회주의 국가 헌법에 가까울 정도로 정부개입이 광범위한 경제관련 현행헌법 규정을 전부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조항별로 정부간섭의 당위론을 제시하여 간섭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조항만을 본다고 해도 당위론이 틀렸다는 것이 대번 드러난다.

먼저 대표적인 경제 규제 조항인 헌법 제119조 2항이다. 이 조항은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개헌안은 이를 폐지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국가경제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 둘째, 현재의 금융위기로 볼 때 경제활동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타당한가? 헌자위가 말하는 국가경제의 이익이란 무엇인지 불확실하다. 우리가 주지해야 할 것은 시장경제는 특정한 국가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용할 경제질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것은 조직(Organization)과는 달리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달성할 공동의 목적이 없는 질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미국 발 금융위기는 자유시장의 탓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시장의 원칙을 배반한 방만한 통화정책과 무모한 주택정책의 탓이라는 것이다. 1929년대 세계대공황도 시장경제의 탓이 아니라 방만한 통화정책의 탓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더구나 공황이 장기적이고 심화되었던 이유도 루스벨트의 반(反)시장적인 뉴딜정책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이 두 가지 위기만을 놓고도 번영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정부의 간섭이 아니라 자유와 재산 그리고 책임원칙과 건전한 통화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시장이라는 것이 입증된다.

금융위기로부터 우리가 얻는 교훈 중 각별히 중요한 것은 경기변동이나 경제성장을 위한 중앙은행의 재량적인 통화공급을 제한해야 할 "통화헌법(monetary constitution)"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뷰캐넌이 자신의 1978년 저서 『적자속의 민주주의』에서 제안했던 통화공급의 준칙주의 같은 것이다.

다음은 헌법 제123조 2항의 지역 균형발전을 포함한 국가 균형발전 목표의 강화이다. 이 목표를 헌법 전문에 도입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현행헌법 전문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목표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이 목표를 헌법전문에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균형발전목표는 혁신적이고 역동적인 경제활동을 억압하고 따라서 경제활동의 자유를 대폭 제한한다. 균형발전 목표를 없애고 수도권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균형발전을 강조하는 것은 정말로 어처구니없다.

기형적 지방자치를 강화한 개헌안

지방자치와 관련하여 현행헌법은 자치입법권, 자주재정권 그리고 자치단체의 종류를 중앙정부와 의회의 재량에 맡겼다. 그래서 현행헌법에 따른 지방자치는 기형적이다. 헌자위의 헌법개정안이 기형성을 어떻게 개선하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현행헌법의 “법령의 범위 내에서”를 “법령에 저촉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로 바꾼 것 이외에 변화가 없다. 이것도 좋은 변화라고 볼 수 없다. 왜냐 하면 중앙은 언제라도 지방보다 먼저 그리고 더 신속하게 권한 선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헌자위는 자주재정권도 조세법률주의 때문에 유보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종류를 헌법에 정하는 것도 유보하고 있다.

따라서 헌자위의 개헌안은 지방자치 강화도 아니고 기형적 지방자치만을 강화하고 있을 뿐이다. 진정한 지방자치를 위한 헌법은 “보완원칙(subsidiary principle)”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 원칙은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우선하여 권한을 정하는 권한 추정원칙이다. 중앙정부가 자신의 권한이라고 주장하는 경우 그 입증책임은 중앙정부에 있다. 유감스럽게도 헌자위는 이런 원칙마저도 유보하고 있다.

통치자들끼리 권력나누기에 치중한 개헌안

헌자위가 가장 큰 야심을 갖고 연구한 헌법부분이 “민주주의 원리에 충실한” 권력구조를 제안하는 것이다. 이원정부제, 또는 4년 중임 정·부통령제, 양원제 국회 등, 그 제안이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가 염두에 둘 것은 권력구조는 통치자들끼리 권력을 나누는 방법을 말해줄 뿐이지, 시민들에 대한 그들의 권력 행사의 내용이나 방향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권력구조가 무엇이든 변하지 않는 것은 입법부의 구성이나 정·부통령의 선출. 이원정부의 구성 등이 민주적 선거를 통해서 정해진다는 사실이다. 입법이나 경제정책결정도 마찬가지로 다수결 원칙을 통해 결정된다.

그러나 공공선택론이 민주주의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또렷하게 밝혀냈다. 민주주의의 정치적 과정은 그 내적 논리 때문에 정부가 사적영역과 시민들의 자유와 재산을 지속적으로 침범하는 필연적 성향이 있다, 더구나 장기정책 보다는 단기정책을, “원칙의 정치”보다는 특정한 산업이나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거나 지원하는 “이익의 정치”를, 보편적 정책보다는 차별적인 우대정책을 선호한다. 선호된 정책들은 개인의 자유와 재산의 침해를 야기한다.

이 같은 “민주주의의 실패”를 막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통치자의 권력행사를 제한하여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헌법규정이다. 이런 헌법이야 말로 통치권력의 내용과 방향을 정하는 헌법이다.

헌자위는 이런 사실을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가? 재정(財政)과 관련한 헌법의 개정부분에는 균형예산원칙과 적자 또는 부채비율(유럽연합의 헌법처럼)을 헌법에 정할 것을 제안하고는 있다. 이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재정(財政)권력을 제한하려는 의도는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사회적 기본권이나 경제관련 개헌안에서는 통치자의 권력행사를 효과적으로 제한하는 헌법규정이 매우 부실하다. 따라서 헌자위의 개헌안은 통치자들에게 걸러지지 않은 권력을 허용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특히 헌자위는 의회중심주의를 강조하지만 의회의 입법권력을 제한할 효과적인 장치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공공선택론에서 흔히 비유하는 것처럼 이것은 고양이를 풀어놓고 생선가계를 맡기는 것과 전혀 다름이 없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통치자들의 자의적인 권력을 제한하여 그들이 시민들의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는 것을 막아내는 헌법규칙이다. 권리장전이나 권리청원 같은 근대헌법이래 통치자들의 자의적인 권력행사로부터 시민들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것을 헌법의 목적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런 헌법정신은 '정부는 이상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회주의와 케인스주의와 복지국가 이념의 득세로 소멸되고 말았다.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의 역할을 강조한 가장 최근의 학자는 하이에크와 뷰캐넌이다. 하이에크는 그의 1978년 저서『법, 입법 그리고 자유』의 제3권 『자유인을 위한 정치질서』에서 의회의 입법권을 제한할 헌법이 없기 때문에 자유를 보호할 목적으로 도입한 삼권분립은 실패했다고 선언하면서 의회제도를 개혁할 헌법의 도입을 주장한다. 뷰캐넌은 1980년 저서 『규칙의 존재이유』에서 정부사람들이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것을 통제하기 위해 헌법규칙을 확립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런 제안은 모두 개인의 자유와 재산의 보호를 위해서다.

개헌방향은 권력을 제한하고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어야

권력제한 대신에 권력구조에 초점을 맞춘 것은 9차례나 걸친 개헌의 특징이었다. 특히 1987년 헌법개정은 “대통령은 우리 손으로”를 실현했다. 이것은 전적으로 권력구조와 관련된 헌법개정이었다. 민주화가 이루어지면 만사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허사였다. 그 같은 헌법아래에서 법답지 못한 법과 포퓰리즘 정책이 지배했고, 심지어 자유시장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세력의 집권까지 이르게 되었다. 1987년 이래 경제성장의 추세가 일관되게 하락했다. 오늘날 성장잠재력도 약화되었다. 경제도 침체되었다. 왜 이런 결과가 생겨났는가? 권력 구조가 잘못되었기 때문인가? 그것은 아니다. 1987년 헌법개정당시 당시 우리가 간과했던 것이 있었다.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우리의 경제적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그의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규정이 그것이었다. 이 헌법규정을 도입하는 대신에 현행헌법 제119조 제2항의 확대에서부터 수많은 정부간섭을 허용하는 헌법규정과 그리고 사회권적 기본권 확대를 위한 헌법규정을 도입했다.

흔히 민주화의 “87년 체제”를 실패한 체제라고 한다. 그 실패의 책임이 권력구조의 잘못이 아니라 통치자들의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이 부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맥락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헌자위는 개헌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점이다. 올바른 개헌방향은 권력구조보다는 권력제한을 중시하는, 따라서 현행헌법을 집권자들이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의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으로 개정하는 것이다.

이런 헌법이 헌자위가 말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길이다, 발터 오이켄이 그의 1952년 유명한 저서 『경제정책의 기본원칙』에서 강조하듯이 사유재산과 계약의 자유, 열린시장 그리고 책임원칙, 건전한 통화 등 “시장경제를 구성하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사유재산을 안정적으로 보호하는 나라는 그렇지 못한 나라보다도 훨씬 더 많은 부를 창출했다는 것을 입증했다. 경제자유와 경제성장의 상관관계가 매우 크다는 것도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재분배와 복지를 강조하고 정부개입을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헌법아래에서는 결코 경제발전이 지속가능하지 못하다. 이것은 유럽의 복지국가의 구조적인 문제가 저성장-고실업이라는 사실이 입증한다.

경제적 번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벤자민 프리드먼이 자신의 저서 『경제성장의 도덕적 귀결』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듯이 “성장하는 경제에서만이 다양성에 대한 관용과 사회적 이동성의 존중, 그리고 공공성에 대한 헌신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촉진시켜준다”는 것이다. 파이프스(R. Pipes)는 자신의 저서 『소유와 자유』에서 러시아와 영국의 역사연구를 통하여 사유재산은 경제자유는 물론 정치적 시민적 자유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사유재산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준다.

헌자위는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를 말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발전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시장경제라는 것이다. 산업화로 표현되는 경제적 번영도 때때로 제한을 받기는 했다고 해도 경제자유와 사유재산을 존중하는 제도의 덕택이었다. 민주화도 시장경제와 그리고 경제적 번영의 덕택이다. 선진화도 시장경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헌법개정의 올바른 방향은 하이에크가 자신의 저서 『치명적 자만』에서 강조하고 있는 사유재산, 자유 그리고 정의의 삼위일체를 보호하는 헌법이다. 이것이 헌법연구 자문위원회가 말하는 세계화와 분권화 그리고 정보화에 따른 시대적 요구에도 부합한다. ■

민경국 /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

저자소개: 민경국 교수는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하이에크, 자유의 길’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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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가 민생안정·미래도약을 위한 다는 명목으로 2009년 세제개편안을 내놓았다. 저소득 근로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세제지원을 강화하고, 고소득 전문직 등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는 것이 그 요지다. 그러나 이번 세제개편안은 증세를 하겠다는 것으로 그 동안 감세를 내세웠던 정부정책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물론 재정건전성도 중요하지만 증세를 통한 재원조달은 국민의 조세부담을 가중시키는 하책 중의 하책이다. 증세보다는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연계해 공기업과 그 출자회사를 민간에 매각해 재원을 조달하고 불요불급한 재정지출을 줄이는 재정합리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지난 25일 기획재정부는 “민생안정․미래도약을 위한 2009년 세제개편안”을 내놨다. '민생안정’을 위해 영세자영업자 저소득 근로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세제지원을 대폭 강화하고, '미래도약’을 위해 원천기술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R&D) 세액공제 등을 신설하며, '재정건전성’ 제고를 위해 고소득자의 근로세액 공제 축소, 고소득 전문직의 과표 양성화 등을 통해 세금을 더 걷겠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2009년 세제개편안 내용

세제개편안에 따른 세수효과는 <표-1>에 정리되어 있다. 세수감면 요인이 1.1조원이며 세수증가 요인이 11.6조원으로 '순세수증가액’은 10.5조원으로 나타나있다. 세제개편에 따른 세목별 및 연도별 세수증가 효과는 <표-2>에 정리되어 있다. 세수증가 중 법인세 증세 효과가 6.4조원으로 전체 세수증가의 3분의 2를 차지하며, 연도별로는 2010년에 7.7조원의 세수증세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돼있다.

<표-1> 세제개편안에 따른 세수효과

 

지원항목

지원효과

세수감면

(1.1조원)

신성장동력산업 및 원천기술 분야 R&D세액공제 신설

△8,000억원

월세 소득공제 신설

△900억원

녹색금융지원

△430억원

에너지 신기술기업 세액감면

△400억원

주택청약종합저축 소득공제

△300억원

소액시민금융재단 출연금 손금산입

△240억원

기타

△730억원

세수증가

(11.6조원)

임시투자세액공제 폐지

1조 5,000억원

대(大)법인 최저한세 강화

3,200억원

금융기관 채권이자소득 원천징수 환원

5조 2,000억원

고소득자 근로세액 공제 등 축소

2,800억

양도소득세 예정신고 세액공제 폐지

1조원

해외펀드 소득세 비과세 일몰 종료

5,000억원

공모펀드 증권거래세 비과세 일몰 종료

4,800억원

에너지 다소비 품목 개별소비세 부과

1,000억원

관광호텔 등 외국인 음식숙박 영세율 적용 폐지

1,000억원

기타

2조 1,000억원

순세수증가액 10조 5,000억원

자료: 기획재정부

세제개편에 따른 순세수 증가를 누가 부담하는가를 분석한 '세부담 귀착효과’는 <표-3>에 나와 있다. OECD 기준에 따르면 고소득자와 대기업이 약 80~90%를 부담함으로써 중산층과 중소기업의 부담률은 매우 적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세제개편안을 보면 부제(副題)가 시사하듯이, '친(親)서민’과 '신(新)성장동력 확충’ 사이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2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할 곳이 많다.

<표-2> 세제개편에 따른 세목별 및 연도별 세수 효과 (단위: 조원)

 

세수효과 총계

2010년

2011년

2012년

소득세

2.5

1.3

0.9

0.3

법인세

6.4

5.2

1.1

0.1

부가가치세

0.4

0.1

0.2

0.1

증권거래세

0.3

0.3

-

-

기타

0.9

0.8

0.1

-

합계

10.5

7.7

2.3

0.5

자료: 기획재정부

 

<표-3> 세제개편에 따른 세부담 귀착효과

 

OECD 기준 1)

지난해 분류방식 2)

고소득자․대기업 부담

9.5조원

(90.6%)

8.4조원

(79.6%)

중산층․중소기업 부담

1.0조원

(9.4%)

2.1조원

(20.4%)

총 세부담

10.5조원

10.5조원

1) OECD 기준 : 근로소득이 상용근로자 평균소득의 150%(4,800만원) 이하
2) 지난해 분류 기준 : 소득세 최고세율 비적용자(과표 8,800만원 이하)
자료: 기획재정부

 

세제개편안의 숨겨진 '불편한 진실’

근자에 이르러 '친(親)서민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정책 브랜드(brand)가 되었다. 정부는 8월 20일 열린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2조원 규모의 '친(親)서민 세제지원’ 방안을 확정했다. 경제위기를 맞아 대처 능력이 취약한 서민 계층의 고통을 덜어주고 재기를 지원하겠다는 것이 그 명분이다. '2009년 세제개편안’도 이 같은 지원방안을 정책으로 담아내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친서민정책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의미한다. 친서민정책을 탓할 이유는 없다. 친서민 세제지원은 위기상황에서의 '한시적 대증요법’이기 때문에 시의성(時宜性)이 중요하다. 따라서 미국 발(發) 금융위기 이후 당국의 확장적 재정 및 금융정책으로 최근 경기가 바닥에서 빠져나오는 것으로 조심스럽게 점쳐지는 상황에서 제기된 '친서민 세제지원’의 시의성을 냉철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정부는 올 초 “경제위기 극복과 경기침체로 인한 민생안정”을 위해 총 28.5조원의 대규모(수퍼) 추경을 편성한 바 있다. 올 추경은 절대 규모는 물론 GDP에 대비한 '상대적 규모’ 면에서 외환위기 당시의 1998년의 추경보다도 큰, 명실 공히 초유의 대규모 추경으로 기록되고 있다. 추경이 집행되는 상황에서 친서민 세제지원을 거론하는 것은 그리 설득적이지 못하다.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가 작동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낮은 지지도는 이명박 정부의 '아킬레스건’이다. 취임 초기 70%가 넘던 지지율은 촛불시위로 출범 3개월 만에 20% 이하로 주저앉았다. 그 후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내수침체, 소통부족에 따른 갈등 증폭, 연이은 조문정국 등으로 지지율은 정체상태에 머물렀다. 그러던 중 '친서민 행보’로 지지도가 반등했다. 친서민 행보에 따른 지지도 상승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하지만 지지도 상승에는 '한계’가 있다. 지지도 상승에 고무된 이명박 정부는 친서민 행보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친서민 세제지원도 그 일환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친서민 행보는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광복절 '생계형 사면’ 152만명에는 생계형 음주운전자도 들어있다. 여기에 폐업 자영업자의 세금 체납액을 면제하는 '세금 사면’이 더해지고, 서민에게 과태료를 깎아주는 '과태료 부분사면’까지 나왔다. 납세유예가 아닌 세금면제는 도덕적 해이를 부르게 된다. 그리고 준법과 위법을 가르는 데 있어 '부(富)의 잣대’를 대는 것은 빗나간 관용이다. 준법의식은 경제력과 무관해야 하기 때문이다.

친기업, 친시장, 탈규제, 법치는 이명박 정부가 내걸었던 핵심 가치다. 하지만 핵심가치에 대한 믿음이 밑동부터 흔들리고 있다. 그 기저에는 '친서민 코드’가 꽈리를 틀고 있다. 지지도 상승에 취해 그 기조를 뒤집는다면,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친서민과 친시장은 서로 상충되는 개념이 아니다. 규제를 합리화해 투자를 이끌고 일자리를 늘리면 그 혜택은 결국 서민층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가장 '친시장적’인 것이 가장 지속가능한 '친서민적’인 것이다.

시장과 서민의 접점은 '자립’이다. 자조(自助)하는 자를 국가가 돕는 것이 '보수의 가치’이다.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의 '자구노력’과 '국가지원’의 맞교환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국가지원은 보조금 지급이 아닌 정부의 대출보증 형태가 바람직하다. 일정한 돈을 저축하면 후원기관이 같은 액수를 보태고 이자까지 붙여 돌려주는 서울시의 '희망 플러스 통장’은 좋은 시도다.

국정지지도는 정책수행에 대한 사후적 보상이지 쫓을 대상은 아니다. 국정지지도를 위해 정책기조를 바꾸면 지지도는 이내 터지는 '거품’으로 변하고 만다. 친서민정책이 국정지지도를 끌어 올리는 '정치상품’이 돼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현실은 그길로 가고 있다. 들어내지 않은 세제개편안의 '불편한 진실’이 바로 그것이다.

정책일관성 훼손하는 세제개편안

2009년 세제개편안의 키워드(key word)는 대기업과 소득 상위계층에 대한 '증세’(增稅)이다.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정합성’과 '일관성’이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정책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21조원의 감세를 내세웠던 정부가 10.5조원을 증세하겠다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의 폐지는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기획재정부는 투자세액공제 중단을 발표하면서 투자유도 효과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신 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세제지원이 신설된 만큼 기업에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2008년 말 임시투자세액 공제율을 7%에서 10%로 높이고, 5월에는 추가 공제 안을 발표한 재정부다. 2008년 세제개편 때 대기업 감세에 대한 비판을 “윗물이 아래로 흘러 경제 전체가 살아날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이제 스스로 자신의 논리를 부정한 것이다. 임시투자세액공제가 '임시’라고는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상시화’해 왔기 때문에 많은 기업이 이를 전제로 투자계획을 수립해 왔다.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의 폐지는 당면 과제인 투자 촉진에도 상당한 차질을 줄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임시투자세액공제의 혜택이 일부 대기업에 집중됐기 때문에 전체 투자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인식오류이다. 정부가 말하는 '일부 대기업’은 종업원 규모 5천명 이상의 대기업으로 우리나라 전체 설비투자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투자는 전후방 연관효과를 통해 일자리 창출과 중소기업 투자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고소득 근로자에 대한 과다한 조세부과는 근로 유인을 저상(沮喪)시켜 중장기적으로 정부의 조세수입을 줄어들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증세는 '손쉬운 정책수단’이다. 현재 조세체계는 이미 일부 고소득층에게 과다한 조세를 부담시키고 있다. 2007년의 국세통계에 따르면 8천만원 초과 2억원 이하의 근로소득자들은 납세근로자의 2.2%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전체 근로소득세의 21.3%를 납부하고 있다. 10배를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번 세제 개편이 가져올 향후 3년간의 10.5조 원의 세수증대 효과 중 법인세가 6.4조원을 차지하고 있다. 기업투자 위축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교통세, 교육세, 농특세 등 3대 목적세를 다시 3년간이나 연장키로 한 것도 정책의 일관성을 해친다. 목적세 폐지 방침이 정해진 마당에 '일괄적’인 3년 연장은 목적세를 조세행정 편의를 위해 존치시키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교육세법과 농특세법이 이해단체의 반발에 부딪쳐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목적세 폐지는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세제개편안의 부메랑, 서민 조세부담 가중

먼저 서민층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 서민층은 학술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구분이 일의적이지 않다. 정부는 연소득 3천만원 이하의 무주택자인 경우 서민․근로자 전세 대출을 해주고 있는 바, 이를 토대로 연소득 3천만원 이하를 서민층으로 볼 수 있다. 연소득 3천만원 이하는 가구소득 하위 40% 이하에 해당한다.

가구소득 하위 40%로 서민층을 잡으면, '친서민 세제지원’으로 포장된 2009년 세제개편안은 역설적으로 '서민증세’도 적지 않다. 서민의 세부담 가중은 '부자증세의 부메랑’이 아닐 수 없다. 증세를 위해 각종 금융상품의 비과세감면이 사라지면서, 그동안 서민층들이 누려온 세금감면이 크게 줄어들게 됐기 때문이다. 장기주택마련 저축에 대한 소득공제 폐지, 공모펀드에 대한 증권거래세 면제 폐지, 상가에 대한 임대소득 과세 확대 등은 서민의 부담을 가중시키게 된다. 부자증세의 일환으로 상가 임대소득에 대해 과세를 확대하면 영세자영업자인 세입자에게 세부담이 전가될 여지가 그만큼 높아진다. 공모펀드의 경우 연간 평균 회전율이 300%인 점을 감안하면, 거래세는 0.3%의 3배인 0.9%에 이르게 된다. 그만큼 수익률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냉장고, TV 등 4대 가전제품에 대한 개별소비세 부과도 서민의 부담을 증가시킬 수 있다. 개별소비세는 사실상 가전제품에 대한 특별소비세 부활로 해석될 수 있다. 대용량 에너지 제품에만 개별소비세를 부과한다고는 하나, 개별소비세가 부담이 돼 가전제품의 구매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개별소비세만큼 가격이 올라가게 된다.

증세를 통한 재정건전성 제고는 하책 중의 하책

국가재정의 건전성도 따지고 보면 기업의 재무건전성과 별로 다르지 않다. 재정수입 이상의 재정지출은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정지출은 한번 늘리면 쉽게 줄이기 어려운 '하방경직성’을 갖기 때문에 재정건정성은 더욱 중요하다.

2009년 추경을 통한 재정지출확대는 이미 '재정건전성’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 연말까지 '통합재정수지적자’ 규모는 22조원,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기금 수지 흑자를 제외한 '관리대상수지’ 적자규모는 51조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GDP 대비 관리대상수지 적자는 '-5.0%’를 기록할 전망이어서,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관리대상수지 적자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2009년 대규모 추경편성의 영향으로 2009년 말 중앙정부 채무는 전년대비 57조원 증가한 355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건전성 제고를 위해 증세만이 능사가 아니다. 즉 증세 이외의 추가적인 재원조달 방안과 재정지출 합리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추가적인 재원조달과 관련해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 공기업 선진화 추진계획에 따르면(5차 2009년 1월) 공공기관 출자 대상 273개사(출자액 5.8조원) 가운데, 130개 공공기관 출자회사 지분을 정리하게끔 되어 있다. 그 중 111개 회사는 민간에 매각하고, 17개 회사는 폐지 또는 청산하고, 2개 회사는 모 기업에 흡수 통합한다는 것이다. 143개 출자회사는 존치시키되 관리를 강화해 투자성과를 제고한 뒤 조기매각 한다는 것이다. 공기업 선진화 계획에 따르면 증시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출자회사의 지분 매각으로 약 4.6조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공기업의 출자지분 정리는 일회에 그치겠지만 증세의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세금을 올리기 전에 세출에 낭비적 요인은 없는지에 대한 검토가 충분히 이뤄졌어야 했다. 사회안전망 확보를 위한 복지지출은 유지돼야 하겠지만 불요불급한 지출은 합리화되어야 한다.

세율인하가 예정된 법인․소득세의 세율인하를 유예하는 방안이 야권은 물론 여권 일각에서 검토되고 있다. 여당 당직자의 “감세기조의 큰 틀은 유지하되 내년부터 적용될 법인․소득세의 추가 인하를 2년간 유예하자는 의견이 있고, 그것을 검토할 수 있다”는 발언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세수 감소분의 70%가량을 차지하는 법인․소득세 감세를 연기시키면 급한 불을 끌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부자와 대기업 감세’라는 야당의 공격으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그러나 안이한 대응은 반드시 포퓰리즘으로 가게 되어 있다. <표-3>에 의하면 서민층과 중소기업의 세부담 귀착은 무시해도 좋은 정도이다. '부자의 샘’에서 '빈자의 샘’으로 물을 끝없이 옮기면, 2곳의 샘 모두 물이 마를 수밖에 없다.

정책에서 가장 하책은 '증오’를 제어하지 못하는 것이다. '친서민’을 정책의 중심에 놓는 순간 포률리즘의 색채를 띨 수밖에 없다. 세수확보도, 친서민 중도정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정책이 제자리를 찾는 것이다. 감세정책이 투자와 소비 확대로 이어지면서 경제 성장을 촉진, 오히려 세수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저자소개: 조동근 교수는 신시내티(Cincinnati)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겸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경제개혁연대의 경제관 비판’, '기업의 소유지배구조와 기업가치 간의 관계’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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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자유주의에 입각했던 이 대통령의 정책이 근자에 들어 민중주의적 정책으로 바뀌었다. 이 대통령이 정책 방향을 돌린 까닭은 그에 대한 낮은 지지 때문이다. 민중주의적 정책들은 시민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궁극적 효과는 거의 언제나 해롭다. 이러한 정책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적어도 부분적으로 부정하기 때문이다. 민중주의적 정책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정치적 자산을 늘리는 것일 뿐 세상을 보다 더 좋게 만들기 위한 좋은 정책과는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이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을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근자에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이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정치 분야에선 '중도강화론’을 내세워 이념적 이동을 했다. 경제 분야에선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는 구호 아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강조한다.

이런 변화는 그저 정책의 내용이 부분적으로 수정된 것이 아니라 그가 추구하는 정책의 방향 자체가 크게 바뀌었음을 뜻한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한나라당 후보로 대통령이 되었다. 따라서 중도적 입장으로의 이동은 근본적인 변화다. 그의 경제 정책은 '기업 프렌들리’라는 구호가 상징하듯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체로 충실했었다.

민중주의 정책을 내건 이유는?

이제 그가 내놓는 경제와 사회 분야의 정책들은 모두 민중주의(populism)의 빛깔을 짙게 띠었다. 오후 10시 이후의 과외 학습 금지, 대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의 조건 완화, 기숙형 고교의 기숙사비 경감, 교통범칙금의 소득에 따른 차등 부과, 음주 운전 초범자의 사면과 같은 조치들은 모두 민중주의적 정책들이다.

이 대통령이 그렇게 방향을 돌린 까닭은 그에 대한 낮은 지지이다. 그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비율과 강도는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현저히 낮다. 특히,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나온 '촛불 시위’는 그가 이끄는 정권을 거의 마비시켰다. 그는 정책의 방향을 바꿈으로써 이런 상황에서 탈출하려 한다. 대통령 선거에서 그에게 투표했으나 뒤에 그를 떠난 중도적 시민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서민들을 위한다는 정책들도 너른 지지층을 얻겠다는 계산이다.

아직까지는 상황이 대통령의 계산대로 돌아간다. 그가 내놓은 민중주의적 정책들은 대체로 시민들의 긍정적 반응을 얻었다. 그런 정책들은 좌파인 제일야당이 설 땅을 좁히는 효과도 지녔다. 문제는 민중주의적 정책들의 궁극적 효과가 거의 언제나 해롭다는 사실이다. 이번 경우도 예외가 아닐 터이다.

이 대통령의 '중도강화론’은 부정적 함의들을 여럿 품었다. 근본적 문제는 그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적어도 부분적으로 부정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중도에 이끌리는 심리적 원인은 물질세계와 지적세계를 혼동한 유추다. 중력이 작용하는 물질세계에선 어떤 물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늘 가운데다. 가운데가 약하면, 물체는 부서지므로, 가운데를 강화하는 것은 늘 좋은 처방이다. 그러나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지적 세계에선 사정이 전혀 다르다. 개념이나 아이디어를 다른 것들과 섞어서 묽게 하는 것은 흔히 일을 그르치는 처방이다.

또 하나의 원인은 우리 사회에서 좌파 이념과 우파 이념이 대칭적이라는 가정이다. 이념을 논의할 때, 우리는 이념들을 하나의 스펙트럼에 배열하고 양쪽의 이념들이 대체로 대칭적이라고 여긴다. 이것은 자연스럽고 나름으로 타당성을 지닌 관행이다.

중도는 뚜렷한 이념이 아니라 이념의 결핍

그러나 특정 사회의 맥락에서 이념을 다루게 되면, 이런 대칭은 무너진다. 어떤 사회든 특정 이념을 자신의 구성 원리로 삼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성 원리가 된 이념은 정설의 지위를 차지하고 다른 이념들은 모두 이단이 된다. 대한민국의 경우, 헌법은 “자유민주적 질서”를 지향했다. 자연히, 우파라 불리는 자유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의 정설이다. 다른 이념들은, 좋게 얘기해서, 잠재적 대안들일 따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도란 말은 일상적 의미를 잃는다. 정설과 이단의 중간이라는 자리는 존재할 수 없다. 정설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헌법의 규정들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당연히, 대한민국 대통령은 자신의 이념적 좌표를 중도에 둘 수 없다.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할 책무가 있다.

현실적 차원에서도 사회의 중심인 자유민주주의에서 벗어나 중도라는 변두리로 옮겨가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요즈음 자신이 본래 지녔던 이념에서 벗어나 중도적 정책을 펴서 성공한 정치 지도자들이 자주 거론된다.

그러나 그들의 이념적 이동에서 중요한 것은 중도라는 자리보다는 움직이는 방향이다. 그들은 원래 정통적 사회주의자들이었는데 집권한 뒤에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호의적인 정책들을 펴서 성공한 것이다. 중국의 덩샤오핑, 영국의 토니 블레어, 인도의 '국민회의당’, 그리고 브라질의 룰라 다 시우바는 익숙한 예들이다.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가 다른 체제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므로, 그들의 성공은 당연하다.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이 대통령이 내비친 중도 세력에 대한 기대가 환상이라는 점이다. 중도는 뚜렷한 이념이 아니라 이념의 결핍이다. '제3의 길’은 없다. 자연히, 중도에 속한 사람들은 이념적 동질성을 지니지 못하고 응집력을 지닌 집단을 이루지 못한다.

실은 그들의 대부분은 이념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적은 사람들이고 체제의 유지에 마음을 쓰지 않는 무임승차자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뚜렷한 정체성과 정치적 일정을 지닌 집단으로 만들어 정치 기반으로 삼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안팎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온 열정적 자유주의자들을 외면하고 중도 세력이라는 허상을 좇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되기 어렵다.

민중주의적 정책들은 거의 언제나 해롭다

민중주의적 경제정책들도 궁극적으로는 큰 폐해를 낳을 것이다. 실제적 손실도 크겠지만, 자유주의를 약화시키고 사회주의적 경향을 강화시키리라는 점은 훨씬 큰 문제다. 이 점은 현 정권이 “사교육과의 전쟁”이라 부른 사교육 억제 정책에서 잘 드러난다.

현재 “사교육과의 전쟁”에서 핵심적 조치는 학원들이 오후 10시 이후엔 교습을 할 수 없도록 한 조치다. 먼저 우리를 실망스럽게 만드는 것은 교육 개혁을 위한 조치가 규제의 모습을 하고 나왔다는 점이다. 모두 동의하는 것처럼, 우리 교육은 더할 나위 없이 엄격히 규제된 산업이다. 따라서 규제를 푸는 조치가 먼저 나오는 것이 순리다.

사교육을 나쁜 것으로 보는 견해는 교육과 지식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나온 단견이다. 똑 같은 지식인데, 학교에서 교사들이 가르치면 좋고 학교 밖에서 다른 사람들이 가르치면 나쁘다는 생각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지식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므로, 사교육은 폄하가 아니라 권장되어야 한다.

오후 10시라는 기준도 참으로 자의적이다. 가르치는 사람들과 배우는 사람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일에서, 관리들이 자의적으로 설정한 특정 시간이 지나면 그 일이 불법이 되도록 하는 것은 자유주의의 원칙에 명백히 어긋난다.

사교육은 본질적으로 공교육을 보완하므로, 공교육이 잘 이루어지면, 사교육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당연히, 교육 개혁은 공교육의 문제들을 푸는 조치들이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공교육은 교사들에겐 직무의 어려움보다 보수가 훨씬 높은 천국이지만 학생들은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연옥이다.

지금 우리 공교육은 너무 엄격한 규제 때문에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런 규제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이 개혁의 요체지만, 규제 완화나 철폐는 무척 힘들다. 정부 관리들도 교사들도 규제에서 혜택을 입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들이 교육 개혁을 부르짖었지만 모두 실패한 까닭이 거기 있다.

당연히, 학원 교습을 규제하는 이번 조치는 적잖은 사회적 비용을 늘리고 실패할 것이다. “사교육과의 전쟁”이란 표현도 적절하지 못하지만, 그 “전쟁”은 정부가 이길 수 없는 것이다. 공교육이 개혁되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아득한 세월이 걸릴 터인데, 사교육이 어떻게 쉽게 없어지겠는가?

세상을 좋게 만드는 정책은 민중주의와 관련이 없다

이 대통령의 민중주의적 행보는 이미 그의 취임사에서 징후를 드러냈다. 그는 “이념을 넘어선 실용”을 내세웠다. 실용이 워낙 빈약하고 모호한 개념이므로, 이념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그것은 표류하게 마련이고 결국엔 정권에 이익이 되는 것들을 뜻하게 된다. 그래서 당장 현 정권의 지지도를 높이는 도움이 되는 민중주의적 정책들이 '실용’이 되었다.

비스마르크는 “정치는 가능한 것들의 예술이다”고 말했다. 성공하려면, 정책은 일단 시민들에게 인기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정책을 되도록 시민들의 입맛에 맞게 포장하는 일은 현명하다. 이런 사정은 현실적이고 성공적인 정책들이 때로는 민중주의적 빛깔을 띠도록 한다.

그러나 좋은 정책은 본질적으로 민중주의와는 관련이 없다. 좋은 정책은 세상을 보다 낫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민중주의적 정책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정치적 자산을 늘리는 것이 목적이다. 바로 그것이 예술과 외설물을 가르는 기준이다. 예술은 감상자들에게 예술가가 본 진실을 보여준다. 외설물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감상자들의 성욕을 의도적으로 조종한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이 “가능한 것들의 예술”에서 “정권을 위한 외설물”로 바뀌지 않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

복거일 / 소설가

저자소개: 소설가 복거일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작가, 경제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비명을 찾아서’. '진단과 처방’, '이념의 힘’, '자유주의의 시련’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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