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민군 합동조사단이 지난 3월 26일 서해 백령도 부근 해상에서 침몰한 천안함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정확한 원인 분석 내지 자기 진단은 대응의 방향 설정이나 구체적인 대처방안의 마련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북한이 천안함 사건을 일으킨 주모자라는 사실이 백일하에 밝혀진 이상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향후 천안함 사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가 작금 우리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국제적 차원(외교면), 대북 차원(남북관계면), 대내적 차원의 3가지로 나누어 대응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

5월 20일 민군 합동조사단이 지난 3월 26일 서해 백령도 부근 해상에서 침몰한 천안함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 내용의 골자는 “연어급 북한 잠수정이 북한제 어뢰(고성능 폭약 250kg 규모의 CHT-02D형 어뢰)에 의한 수중폭발로 천안함을 침몰시켰다”는 것과 “수거한 어뢰부품, 즉 스모킹 건은 북한무기 수출용 책자 설계도면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 등이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 민군 합동조사단은 6가지의 결정적 증거를 제시했다. 첫째, 어뢰 추진체 뒷부분 내부에 손으로 직접 쓴 '1번’이란 한글 표기는 북한의 훈련용 어뢰에 적힌 4호와 표기방법이 일치한다는 것, 둘째, 천안함의 34곳 이상에서 어뢰의 화약성분이 검출됐다는 것(RDX는 5곳, TNT는 2곳, 고농축 폭발물 HMX는 19곳, 알루미늄 산화물은 8곳 등), 셋째, 천안함 침몰 2,3일 전 북한의 상어급 잠수함 1척과 연어급 잠수정 1척이 북한 해군기지를 이탈한 뒤 2,3일 후에 기지로 복귀했다는 것, 넷째, 함체의 절단면은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한 충격파와 버블효과가 천안함의 침몰원인임을 확인시켜 준다는 것, 다섯째, 백령도 초병이 높이 100m, 폭 20~30m의 섬광기둥을 발견했고, 천안함 좌현 견시병이 폭발과 동시에 넘어지면서 얼굴에 물방울이 튀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는 것, 여섯째, 다양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입증작업을 거쳐 버블제트를 확인했다는 것, 즉 수심 6~9m,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위치에서 폭발량 200~300kg 규모의 폭발이 있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런 폭발의 결과로 천안함 절단면과 같은 형태가 나올 수 있었고, 북한 어뢰의 화약성분이 어떻게 연돌 등에 남게 되었는지도 확인하였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진상 조사결과의 신뢰성과 북한의 발뺌

필자는 이상의 증거는 북한의 소행을 입증하는 데 충분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 이유는 이번 조사결과 발표는 민과 군의 최고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50여일 가까이 조사한 끝에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합동조사단에는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의 전문가들(24명)도 참여하였는데, 이들도 조사결과에 전적으로 찬성하였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종발표에 아무런 이견도 없었다는 점은 물리적․과학적 증거의 충분성과 더불어 조사결과의 객관성․신빙성을 높여준다고 평가된다. 더불어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가 나온지 하루만에 15개국 이상이 북한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도 발표내용의 신뢰성 및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증좌라고 여겨진다.

이 밖에 천안함을 침몰시킨데 북한이 개입했다는 심정적․정황상의 증거도 적지 않다. 예컨대, 2009년 11월 10일 대청해전 패배 후부터 북한은 내부적으로 대남 군사적 보복을 다짐해 왔다. 특히 대청해전 직후 김정일이 남포에 있는 서해함대사령부를 찾아 '전투․기술․기재의 현대화’와 '바다의 결사대 준비’ 등을 언급한 사실이 있다. 이 같은 김정일의 발언은 조선중앙TV가 건군절인 4월 25일 기념으로 제작한 텔레비전 기념무대(5월 4일 재방영)에 출연한 해군 제587연합부대 소속 군관 김광일의 증언을 통해 확인됐다. 김정일이 말한 '바다의 결사대’는 십중팔구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또 조선중앙통신의 4월 14일자 보도에 따르면, 대청해전 패배의 책임을 지고 경질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던 정명도 해군사령관이 대장으로 승진했다고 하는데, 천안함 침몰과 때를 맞춘 승진 인사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고 하겠다.

하지만 북한은 남한의 날조극 운운하며, '검열단’을 파견하겠다고 나섰다. 강도가 분수를 모르고 현장검증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야말로 도적이 매를 드는 적반하장(賊反荷杖) 격이다. 또 “제재를 할 경우 전면전쟁을 포함해 강경조치로 대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금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대해 지금 많은 사람들이 분통해 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의 원인 분석: 자기반성의 입장에서

여기서 잠시 천안함 침몰과 함께 46명의 고귀한 장병이 희생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원인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정확한 원인 분석 내지 자기 진단은 대응의 방향 설정이나 구체적인 대처방안의 마련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 군의 대비태세에 문제점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북한 잠수함-잠수정에 의한 기습공격 가능성에 대한 대비가 불충분했다는 것이다. 서해연안 방어체제의 허점이 있었음에도 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안보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는 점은 군이 뼈를 깎는 아픔으로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할 것이다. 어쩌면 1999년 6월의 연평해전 승리와 2009년 11일의 대청해전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혹은 우리의 고도정밀 무기체계와 전함의 전투능력 등을 과신해 북한을 얕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 보면, 우리의 정신무장에 문제점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남북한은 엄연히 정전체제 하에 있는데, 마치 우리가 평화상태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던 게 아닌지, 또한 아직도 북한을 낭만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북한은 통일을 위한 화해․협력의 대상이지만, 엄연히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현실의 적’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난 시기의 햇볕정책은 북한의 이중적인 모습에서 안보위협세력이란 점을 의도적으로 축소시킨 반면, 화해․협력의 동반자라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것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천암함 사건에 대한 우리의 대책

이제 북한이 천안함 사건을 일으킨 주모자라는 사실이 백일하에 밝혀진 이상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향후 천안함 사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가 작금 우리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국제적 차원(외교면), 대북 차원(남북관계면), 대내적 차원의 3가지로 나누어 대응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국제적 차원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천안함사건의 조사결과를 6자회담 참가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것이다. 즉, 김정일 정권이 한반도 평화를 파괴하고 위협한 실상을 가감없이 홍보함으로써 국제사회가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도록 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다국적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의장에 공식문서로 제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불어 한․미 양국은 57년에 걸친 동맹의 전통과 정신을 발휘, 충분한 협의와 공동의 이해를 바탕으로 국제사회, 특히 유엔무대에서 일사분란하게 대처해야 한다. 물론 우리로서는 유엔 안보리가 천안함사건을 논의한 끝에 추가적인 대북제재 결의를 채택해 주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 및 러시아의 소극적인 태도로 이것이 여의치 않을 수 있다. 그럴 경우 안보리의 대북 규탄결의나 최소한 대북 비난․경고를 담은 안보리 의장성명이 채택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미 양국이 긴밀하게 외교적 협조를 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정부는 정치적․경제적․외교적 차원에서 대북 압박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2005년에 등장했던 BDA(방코델타 아시아은행) 금융봉쇄문제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한에 달러 등 현금이 들어가는 모든 루트를 재점검하여 경제적 봉쇄를 추진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 밖에도 2012년 4월로 예정되어 있는 전시 작전통제권 반환도 연기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의 양해와 협조를 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남북관계 차원에서는 북한으로 하여금 “무력도발에는 불이익이 돌아간다”는 점을 확실하게 깨닫게 해줘야 한다. 그런 방안에는 경제적 수단과 군사적 수단이 있을 수 있다. 전자의 예로는 제주해협에서의 북한선박 통항 금지, 남북교역 대폭 축소(개성공단 사업은 제외), 교역대금의 달러 결제 정지, 경제인의 방북 및 협력사업 논의 중단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 반출되는 물자도 전면 재검토하여, 군사용으로 전환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후자의 예로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의 교전수칙의 공세적 수정, 한미 합동군사훈련 강화, 2004년 6월 이후 중단된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대북 심리전 방송 재개 등을 들 수 있다.

이밖에도 김정일 위원장에게 천안함사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거나 북한의 태도 변화시까지 사회․문화교류를 유보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실행한 대북 햇볕정책의 문제점을 제대로 알리는 한편,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비핵․개방정책’ 내지 '상생․공영정책’의 타당성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와 지지를 제고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첨언할 것은 천안함사건과 관련된 증거를 모두 다 확보하여 통일이 된 후 관련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셋째, 국내적 차원에서는 우리의 대북 안보태세를 총체적으로 재점검하고 즉응태세를 완비하도록 해야 한다. 서해 연안방어 시스템을 강화하는 한편, 해군력 증강을 위한 예산도 대폭 증강해야 한다. 햇볕정책 하에서 입안된 '국방개혁 2020’도 북한의 핵무장 및 미사일 개발․확산 움직임에 맞게 전면 수정해야 한다. 더불어 그동안 해이해진 국민의 대북관, 안보관, 통일관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내실있는 안보통일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와 관련, 천안함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모아 기록물과 영상물(가칭 『천안함사건의 전말』)로 만들어 국민안보교육교재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천안함사건과 같은 국가안보위기상황에서도 의혹 부풀리기나 흑색선전들이 인터넷을 타고 번져나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책임한 안보포퓰리즘이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기승을 부리지 못하도록 철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제성호 /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저자소개: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센터 소장, 대한국제법학회 부회장,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 친북반국가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외교통산부 인권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남북경제교류의 법적 문제, 통일시대와 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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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는 경기변동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금융위기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위기의 재발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금융제도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금융제도의 모순점이 경기변동을 악화시키는 여러 가지 요인 중의 하나이거나 경기변동의 구조적인 원인들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의의가 클 것으로 여겨진다. 외화자금의 유출입으로 인한 환율의 변동성 증폭과 우리나라 은행의 건전성 위협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정부의 이자율 통제를 그만두게 하고 요구불 예금과 저축성 예금을 구분하여 지급준비율 기준을 다르게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폐 제도 하에서 금융위기를 내포하는 경기변동은 빈발하고 있다.1) 1980년대 미국의 저축대부조합의 위기로 인한 경제위기, 1990년대 아시아를 포함한 러시아 등의 경제위기와 미국의 닷컴 버블, 2000년대 미국의 부동산 버블 등이 전형적인 예이다.2) 금융위기는 경기변동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금융위기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위기의 재발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금융제도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금융제도의 모순점이 경기변동을 악화시키는 여러 가지 요인 중의 하나이거나 경기변동의 구조적인 원인들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의의가 클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이 글에서는 민간 은행의 만기 불일치(mismatch) 문제를 분석하고자 한다.

만기 불일치 문제가 일어나는 이유

모든 민간은행은 자금을 '단기’로 빌려서 '장기’로 대출하는 문제, 즉 만기 불일치 문제를 안고 있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만기 불일치 문제는 직접적으로는 이자율의 시간구조에서 발생한다. 정부가 간섭하지 않는 자유시장(특히 대부시장)에서는,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투자자의 재정(arbitrage)거래에 의해 시간에 따른 이자율이 동일화되는 경향을 가진다.3)설명을 위해서, 시간을 장기와 단기로만 이분하면 장기와 단기의 이자율이 같아지는 경향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자신이 설정한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단기 이자율을 결정하는데 그런 단기 이자율은 장기 이자율보다 언제나 낮다. 특히 경기를 부양한다거나 경제위기를 해결한다는 이유 등으로 중앙은행이 확장적 통화정책을 실시하기 위하여 기준 금리 또는 목표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출 때 장단기 이자율 차이는 어느 때보다 크게 벌어진다.4) 이러한 상황에서는 모든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재정거래에 나서게 된다. 이자율 차이가 큰 만큼 만기 불일치 문제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가장 크게 이윤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만기 불일치 문제는 금융 제도의 구조적 모순점 때문에도 발생한다. 민간은행이 예금자로부터 받는 예금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두 가지란 만기가 일정한 저축성 예금과 만기가 없는 요구불 예금을 말한다. 저축성 예금은 만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은행이 거기에 맞추어 대출을 하면 만기 불일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5) 문제는 요구불 예금이다. 요구불 예금은 근본적으로 만기가 없다. 은행은 언제나 예금자의 요구에 따라 예금을 상환해야 한다. 그리고 은행이 요구불 예금에 대하여 '100%지급준비’를 하고 있다면 만기 불일치 문제는 구조적으로 발생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19세기 전반 영국과 미국의 사법부는 요구불 예금과 저축성 예금을 혼동함으로써 요구불 예금에 대하여 부분지급준비를 허용했다. 그리고 현재 각국의 중앙은행은 어느 정도의 부분지급준비를 허용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있다.

부분지급준비 제도가 만드는 구조적 문제점들

부분지급준비 제도는 두 가지 결정적인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6) 첫째는 민간은행이 통화를 팽창시킬 수 있음으로써 경기변동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부분지급준비 제도는 은행으로 하여금 예금의 뒷받침이 없는 신용수단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고 그런 신용수단은 진정한 저축이 아니기 때문에 경기변동을 초래한다. 이 글의 서두에서 열거한 모든 위기는 대부분 신용수단의 팽창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중앙은행에 의한 본원 통화의 증가가 통화 팽창을 가져오지만 민간은행에 의한 신용수단의 증가가 훨씬 크다. 이번 미국의 부동산 버블도 예외가 아니다. 경기변동은 과오투자를 초래하기 때문에 버스트(bust) 국면에 들어가면 많은 차용자들은 빌린 돈을 상환할 수 없다. 그런 차용자들이 많아지고 일시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금융위기일 뿐 아니라 경기변동의 일부분이다.

둘째는 만기가 없는 요구불 예금의 일부를 대출 가능하게 됨으로써 만기 불일치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예금자가 은행의 건전성에 의심을 품고 자신의 예금을 찾기 위하여 일제히 은행으로 질주하기 시작하는 순간에 은행은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부분지급준비를 하고 있는 은행으로서는 평소보다 많은 예금 인출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예금을 인출하는 정도가 상당히 일정하기 때문에 만기 불일치 문제가 위기로 치닫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요컨대 부분지급준비 제도 하에서 만기 불일치 문제는 구조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올바른 금융제도 개편을 위해서는 본질적인 접근이 필요

리먼브러더스를 포함한 미국의 투자은행들은 자금의 상당 부분을 만기가 초단기인 환매조건부 채권에 의존했다. 그리고 투자은행에 자금을 제공한 주체인 기관투자가들은 투자은행이 제공한 자산을 담보로 환매조건부 채권의 형태로 자금을 제공했다. 그런데 기관투자가들은 민간 상업은행 등이 대종을 이루고 있고 앞에서 지적했듯이 상업은행은 단기 대출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단기 이자율이 낮을 때 특히 그렇다. 그리고 앞에서 지적한 금융제도의 구조적 문제점이 그런 행위를 촉진한다. 그러므로 투자은행의 만기 불일치 문제는 상당 부분 상업은행의 만기 불일치 문제를 이전한 것일 뿐이다. 이번 위기에 많은 투자은행이 위기에 처함과 동시에 민간 상업은행(예를 들어, 뱅크오브아메리카)이 위기에 처하거나 파산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요컨대 단기 이자율이 낮을 때는 투자은행과 상업은행 모두가 그런 재정거래에 나선다는 것이다. 바로 그 점에서 투자은행이 예금보험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를 초래한다는 주장은 요점을 놓친 것이다. 그리고 현재 미국에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자는 의견이 논의되고 있다. 금융제도에 대한 이러한 개편은 금융위기에 대한 유효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거나 통합하는 것과 상관없이 부분지급준비 제도 하에서 이자율이 낮아지면 만기 불일치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물론 단기 금리가 상승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은행이 단기 자금을 지속적으로 갱신을 할 수 있다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앙은행은 낮은 금리를 지속할 수 없다. 통화량 증대로 인플레이션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7) 단기 금리가 상승하면 투자자는 자금을 예전 조건으로 더 이상 대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은행은 단기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만약 차용자의 자금 상환 능력이 의심될 때도 투자자는 최대한 빨리 자금을 회수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은행은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증대한다.

1997년 경제위기시에 달러 자금을 포함한 외화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간 것은 한국 경제와 기업들의 부채 상환 능력이 극도로 의심되었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에서 외화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간 것은 미국의 투자자들이 자신들의 현금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한국의 은행들을 통해 기업들에 대출된 자금을 대거 회수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두 경우 모두 외화 자금의 대량 유출로 환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 외화 자금은 단기로 빌려와서 장기로 대출하는 방법으로 만기가 극도로 불일치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의 투자은행과 한국의 자금 중개은행 모두,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추구하는 방법으로 자금 투자와 중개를 한 것이다. 두 경우 모두 투자은행의 도매자금이 예금보험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자금을 회수한 것이 아니라 앞에서 지적한 대부시장의 두 가지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상업은행을 포함한 투자은행이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8) 그리고 그런 구조적인 문제가 한꺼번에 표출되면서 금융 쪽에서는 금융위기가 되었다. 물론 실물 부문에서도 투자에 있어서 오류가 대량으로 드러남으로써 금융위기를 포함하는 경기변동이 발생했다.

정부의 규제위주의 접근방식이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어

특히 투자은행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외화자금은 저축성 예금을 포함한 모든 예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예금을 받을 수 있는 전통적인 은행에 비하면 앞에서 지적한 구조적인 문제에 더 취약하다. 그러므로 외화자금의 유출입, 즉 '달러-캐리 트레이드’, '엔-캐리 트레이드’ 등의 급격한 유출입으로 인한 환율의 변동성 증폭과 우리나라 은행의 건전성 위협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정부의 이자율 통제를 그만두게 하고 요구불 예금과 저축성 예금을 구분하여 지급준비율 기준을 다르게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다.9) 그런 해결책은 빈발하고 있는 경기변동도 거의 대부분을 해결해 줄 것이다. 그리고 금융제도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은행세를 부과하는 방법 등은 미봉책에 그치거나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10)

전용덕 / 대구대 교수

저자소개: 저자소개: 전용덕 대구대 무역학과 교수는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자유주의 철학과 시장경제원리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고 있다. 주요저서와 논문으로는 '헌법재판소 판례연구(공저)’, '오스트리아 학파의 경기변동이론과 화폐․금융제도’, '인간, 경제, 국가(역서)', Conglomerates and Economic Calculation, A Note on Cartels 외 다수가 있다.


1) 더 근본적으로는, 경기변동은 지폐 제도 자체의 구조적인 모순점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 점에 대한 논의는 생략한다. 지폐 제도의 구조적 모순점에 대해서는 전용덕, 『오스트리아학파의 경기변동이론과 화폐․ 금융 제도』, 한국경제연구원, 2009, 참조.
2)물론 여기에서 언급한 것은 1980년대 이후 국제적으로 발생했던 경기변동 중에서 큰 것만을 간추린 것일 뿐 아니라 지폐 제도로 인하여 각국에서 발생한 경기변동은 제외한 것이다.
3) 이 점에 대해서는 Murray Rothbard, Man, Economy, and State, The Ludwig von Mises Institute, 1993, 제6장 참조.
4) 중앙은행이 목표 금리나 기준 금리를 최대한 올리는 경우에 만기 불일치 문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장단기 이자율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기준 금리를 인하했다가 올리는 경우에 자금 차용자의 부담이 증대하여 은행들의 위험이 높아진다. 다시 말하면 장단기 금리 차이가 없어지는 경우에 은행은 만기 불일치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차용자는 원리금을 상환할 수 없는 경우가 높아지면서 은행이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5) 그러나 저축성 예금이라도 은행이 요구불 예금처럼 예금자의 요구가 있는 '즉시에’ 상환하는 경우에는 만기 불일치 문제가 발생한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 부분지급준비율의 완화 등의 이유로 이러한 경향은 최근 들어 강화되고 있다.
6)상품화폐 제도 하에서는 부분지급준비가 아래에서 지적하는 두 가지 문제를 거의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비록 부분지급준비가 법적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지폐 제도 하에서는 두 가지 문제는 구조적인 것임이 분명하다.
7) 통화량 증대가 경기변동을 초래하지만 케인즈경제학과 통화주의를 추종하는 연구자들은 그 점을 염려하지 않는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정밀한 경기변동이론이 없기 때문이다. 경기변동이론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전용덕(2009), 전게서 참조.
8) 1980년대 미국 저축대부 조합의 위기 시에는 예금보험 제도가 위기를 지연시키거나 누적시켰다. 예금보험 제도는 위험을 추구하게 하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촉진한다. 그 결과 예금보험은 단기적으로는 금융제도를 안정시키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불안정하게 만든다. 현행 강제성 예금보험이 가격고정의 일종이기 때문에 그렇다.
9) 엄밀히 말하면, 정부의 이자율 통제를 철폐하는 것을 한 국가만 시행하는 것은 불완전한 것이다. 외화자금의 관점에서, 국제 지폐 발행국들이 이자율 통제를 철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선의 선택은 모든 나라가 이자율 통제를 철폐할 뿐 아니라 요구불 예금에 대한 100%지급준비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다.
10) 은행세를 부과하는 방법 등이 은행의 만기 불일치 문제를 위한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런 방법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다른 곳에서 하고자 한다. 다만 금융제도의 구조적 문제점이 존속하는 상태에서 대부분의 해결책은 유효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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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만삭스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계증권 투자와 관련해 사기혐의로 피소되면서 탐욕에 가득 찬 프랑켄슈타인으로 전락했다. 무혐의 판결을 받는다 하더라도 탐욕스러운 금융기관이라는 비난은 피하지 못할 것이다. 골드만삭스 사태는 사실상 정치화되었다. 탐욕을 억누르는 것이 금융규제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골드만삭스 사태로 이성적 판단이 흐려져서는 안된다.

세계최대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계증권 투자와 관련해 사기혐의로 피소되면서 탐욕에 가득 찬 프랑켄슈타인으로 전락했다. 무혐의 판결을 받는다 하더라도 탐욕스러운 금융기관이라는 비난은 피하지 못할 것이다. 예상대로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서 골드만삭스의 부정거래가 주택시장 붕괴와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사태는 사실상 정치화되었다.

골드만삭스 사태는 그 파장에 비해 그 내용이 단순한 편이다. 혐의 내용은 골드만삭스가 서브프라임 주택 모기지와 연계된 금융상품을 설계, 판매하면서 이에 대해 숏포지션(하락에 투자)을 취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투자방식은 사실 탐욕보다는 위험에 대비한 행동에 가깝다. 설령 탐욕스럽다 하더라도 불법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현재 워싱턴 정계는 탐욕을 맹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탐욕 때문에 지난 20년간 해당 금융상품에 투자한 투자가들은 큰 돈을 벌어 행복했다. 탐욕을 억누르는 것이 금융규제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난 생각한다. 골드만삭스 사태로 이성적 판단이 흐려져서는 안된다.

금융개혁의 방향은 바람직한가?

그런데 골드만삭스 사태 이후 민주당의 개혁안이 힘을 얻어 공화당원들조차 동요하기 시작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예전에 은행을 더욱 지지했다. 4월 26일 월요일 상원회의에서 공화당은 민주당의 개혁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양당 모두 문제의 핵심을 다루고 있으며 그 어떤 법안도 현재의 것보다 나을 것이다. 공화당의 전략은 민주당안을 수정하는 것이다. 이 법안은 이미 1,400페이지에 달하며 여기엔 대통령이 제안한 88페이지 분량의 금융개혁안도 포함되어 있다. 이 법안은 크게 세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연방은행에 소비자 보호국을 신설하고, 은행의 대마불사 신화를 불식하고, 파생상품을 규제하는 내용이다.

금융개혁은 은행에게 반독점법에서 예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많은 대형 은행들이 여러 개로 분할되어 규모가 훨씬 줄어들 것이다. 내 생각에 대형은행은 자기자본비율도 높여야 한다. 이번 금융위기에서 정부는 “너무나 커서 망할 수 없는” 은행들을 구제하는 것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정부보다는 시장을 믿어야

대마불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야는 부실 금융기관의 처리를 담당할 새로운 정부당국의 신설에 동의했다. 한편 파생상품 규제와 소비자 보호 문제는 5월말까지 결정될 것이다. 나는 오바마 대통령의 개혁안을 규정과 자유재량의 원칙(rules vs. discretion), 그리고 "무해"의 원칙(no harms principle)에서 평가하고자 한다. 민주당 법안은 규제당국과 연방은행에 지나친 자유재량권을 허용하고 있다. 새로운 규제가 시스템의 위험을 측정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정부의 미시적인 규제가 소위 "무해" 테스트에 전혀 효과가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개혁안은 이번 금융위기가 대출기관과 대출자의 비이성적 결정, 불충분한 규제 때문에 발생했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는 문제가 있다. 내 생각에 주택시장 붕괴는 정치화된 대출로 인해 초래되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도 충분하다. 또 규제당국과 연방은행, 증권거래위원회 모두 자신의 권한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주지해야 한다. 어떤 경우든지 간에 상원은 결국 은행산업을 당분간 감독할 새로운 규제 당국의 신설에 동의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규정은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글은 윤용준 교수의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저자의 영어 원문도 아래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윤용준 / 조지메이슨대 교수

저자소개: 윤용준 박사는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펙스에 있는 조지메이슨대학교에서 경제학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또 같은 대학의 공공정책연구소에서 상임연구원으로 금융분야와 공공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Reforming Gold and Greed

By Yong J. Yoon

Goldman Sachs’s subprime trading led to a scandal that made Goldman a Frankenstein of greed. Even if the investment bank turns out not guilty against the accusation of Security and Exchange Commission, Goldman will be still considered as greedy. As expected, Democratic senators attempt to raise the implication that Goldman’s dishonest dealing in the subprime mortgage market led to housing market meltdown and financial crisis. The Goldman case is indeed a politicized scandal.

The Goldman Sachs case is simpler than the heat it generates. The essence is that Goldman made money by side betting against the product of subprime housing mortgages Goldman was dealing. It sounds more like protecting against risk, rather than greedy. Even if it is greed, it does not sound illegal. Greed is blamed a lot in Washington politics now. However, the same greed made people happy for two decades when investors were making money through the same financial investment products. My position is that curbing greed cannot and should not be part of the consideration in the regulatory reform. This scandal should not make us lose the perspective.

Yet, the scandal made democratic proposal more powerful by forcing republicans to join in passing the bill. Republicans were more supportive of the banks. Yet, the GOP(Great Old Party: Republican party) voted against the democratic bill in the senate vote on Monday, 4/26/10. Both parties deal with the essence of the problem and any bill would be better than the existing ones. The strategy of GOP is to modify the democratic bill. The bill is already 1400 pages long, starting from President’s financial reform package of 88 pages. The essence of the bill involves three major issues. One is the consumer protection bureau inside the Fed; the second is about banks that are too big to fail; and the third is restrictions on derivatives.

The reform will have a big impact to the big banks much as we can predict from antitrust laws. Many big banks will be broken into several smaller banks. Also, I believe large banks will be required to have high capital requirements. This is based on the experience of the current financial crisis in which the government had no choice but to bailout 'too big to fail’ banks.

About the issue of 'too big to fail’, the bipartisan agreement is the creation of new government authority to handle failing financial firms. The other two areas, derivatives regulation and consumer protection, remain to be debated by the end of May. However, I may evaluate the president’s reform package from the perspective of rules vs. discretion and the principle of 'do no harm’. The Democratic proposal leaves too much room for discretion to the regulators and the Fed. And it is not clear how new regulations will measure systemic risks. Government micromanagement is notorious for failing the test of 'do no harms.’

The proposal is based on the assumption that the financial crisis was caused by irrational decisions by lenders and borrowers and insufficient regulations. This seems very misleading to me. I believe, and there is enough evidence, that the housing market crisis was caused by politicized lending. We should also note that regulators, the Federal Reserve and the SEC, failed to exercise its authority properly. In any case, the Senate debate will result in a regulatory regime under which banking industry will have to operate for quite a while. The new rules will have implications for the global economy.

* Yong J. Yoon is a professor of economics at George Mason University, Fairfax, Virginia USA. He is also Senior Research Scholar at Public Choice Center, G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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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기업가적 비전의 성격이다. '기업가적 비전’은 혼자서 실현할 수가 없다. 이 실현을 위해서는 다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기업을 필요로 한다. 오스트리아학파가 기업을 “기업가적 비전의 실현”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자유시장경제에서 노동자 경영참여 제도의 기업들과 신제도주의의 기업들, 그리고 오스트리아학파의 기업들이 하나의 시장에서 경쟁을 한다면 오스트리아학파의 기업이 선택된다. 왜냐하면 이 기업의 내적 과정이 기업의 경쟁력을 가장 크게 높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친 자유 기업이 번창할 수 있는 질서는 자유경쟁을 확립하는 것이라는 점이 분명하다. 이것이 자유경쟁이 필요한 이유다.

오늘날 반(反)자유주의적 기업관(企業觀) 가운데 하나는 기업을 경제민주주의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사회주의 기업관으로서 그 전형이 노동자 경영참여 제도이다. 이 기업관은 아주 낡은 것으로 유럽경제를 어렵게 만든 장본인 중 하나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다른 하나는 신고전파의 정태적 균형이론적 기초에서 확립된 신제도주의의 기업이론이다. 이는 거래비용론과 계약의 넥서스(Nexus)론으로 구분되고, 흔히 자유주의적 기업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신제도주의의 기업이론은 기업 구성원들에 대한 기업가의 통제와 간섭을 중시하는 반(反)자유주의 기업관이다. 자유주의 기업관, 친(親)자유기업관은 오스트리아학파의 이론적 토대 위에 세워진 기업이론이다.

신제도주의의 반자유주의적 기업관

코스-알치안-윌리암 이래 기업을 거래비용이나 계약의 넥서스로 다루는 계약론적 접근법은 기업 구성원들이 기업을 희생시켜 기회주의적인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에이전시 문제(agency problem)를 강조한다. 그래서 알치안은 그들에 대한 기업가의 모니터링을, 윌리암슨은 가버넌스를 중시한다. 그러나 기업가의 그 같은 통제는 지식의 문제 때문에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것 이외에도 특히. 기업 내에 보수적인 분위기를 창출하여 기업 구성원들의 혁신과 창의성을 마비시켜 결국 기업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같은 딜레마의 해결책으로서 신제도주의는 인센티브에 부합하는 제도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도 지식의 문제 때문에 효과적인 제도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 이외에도, 그런 제도는 기업가와 구성원간의 이해관계의 갈등을 배제하거나 은폐하기 위한 규제일 뿐 해법은 아니다. 그런 규제도 기업 구성원들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창의력과 추진력을 훼손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그런 기업관을 '친자유주의’라고 해석하는 것은 경제교육을 지배하는 교과서인 『맨큐의 경제학』을 '친자유 경제학’이라고 보는 것과 똑같은 착각이다.

오스트리아학파의 기업가적 기업이론의 등장

오스트리아학파의 기업이론은 신제도주의보다 뒤늦게 등장하기는 했지만 '기업가적 기업이론(entrepreneurial theory of the firm)’이라고 부르는 고유한 기업이론을 개발해 왔다. 그 내용은 아직 통일된 것은 아니지만 공통된 몇 가지 고유 개념이 있다. 주관주의, 기업가적 비전(entrepreneurial vision), 인지적 리더십(cognitive leadership), 지식의 분산과 조정 등이다. 오스트리아학파는 이들을 바탕으로 기업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기업가적 비전과 인지적 리더십을 각별히 강조하는 비트(U. Witt) 교수의 기업이론을 재구성하여 오스트리아학파의 기업이론이 '자유주의적 기업관’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거래비용 대신에 인지 틀로서 기업가적 비전

오스트리아학파의 기업이론 출발은 '기업가적 비전’이다. 이것은 기업가의 주관적인 사업구상이다. 비트가 인지 이론적으로 해석하듯이 그것은 경제적 환경, 경험, 정보를 해석하고 분류하는 인지 틀이다. 복잡한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서 인간들은 누구나 나름대로 인지 틀을 갖고 있듯이 기업가도 인지 틀로서 기업가적 비전이 있는데 이것이 없다면 기업 설립도 기업경영도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가업가적 비전의 성격이다. 이것은 구체적이고 상세한 내용이 아니라 일반적이고 추상적이다. 그 이유도 인지 이론적이다. 하이에크(F. A. Hayek)가 말하는 '지식의 문제’ 때문이다. 기업가도 인지능력의 한계 때문에 장차 사업이 어떻게 전개되고, 구체적으로 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어떤 경험을 습득할 것인지 알 수 없다. 사업비전은 그래서 일반적이고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기업가적 비전’은 혼자서 실현할 수가 없다. 다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기업을 필요로 한다. 오스트리아학파가 기업을 “기업가적 비전의 실현”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그 비전이 자동적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 구성원들이 인지적 틀인 기업가의 비전과는 전적으로 상이한 인지적 틀을 가지고 있다면 이들과 기업은 성사될 수 없다. 기업의 이 같은 성격은 신제도주의의 순수한 거래비용 개념을 가지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기업가의 비전이 성공할 수 있기 위해서는 기업 구성원들이 그 비전을 자신들의 인지 틀로 수용해야 한다. 그럴 경우에 비로소 기업가적 비전을 중심으로 기업 내의 각 부문에서 활동하는 구성원들 사이에 분산되어 있는 분업적 행동들과 그리고 분산된 지식들이 조정될 수 있다. 이것이 오스트리아 학파의 기업이론에서 기업가적 비전을 중시하는 이유다.

가버넌스 대신에 기업가의 인지적 리더십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기업 구성원들이 기업가의 비전을 자신들의 공동의 인지 틀로 수용하느냐의 문제이다. 그들이 그 비전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기업을 희생하여 자기들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할 위험성이 생겨난다.

오스트리아학파는 이 같은 문제의 해법으로 신제도주의의 가버넌스를 중시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비트의 유명한 기업가의 '인지적 리더십’을 강조한다. 기업 내의 사회적-인지적 특수성 때문이다. 그 리더십을 소통력, 친화력, 신뢰감 같은 기업가의 품성 또는 사교적 기술로 이해한다. 이런 인품을 가진 기업가가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게 구성원들끼리의 소통에 영향을 미쳐 자신의 기업가적 비전과 철학을 그들에게 전파하는 것이다.

오스트리아학파의 친자유기업관

기업가의 비전과 인지적 리더십을 중시하는 오스트리아학파의 기업가적 기업이론으로부터 우리는 '자유주의적 기업관’을 도출할 수 있다. 기업가적 비전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이다. 그래서 기업 구성원들에게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는 여지가 넓다. 더구나 기업 구성원들의 사회적 인지 틀은 가버넌스를 통해서가 아니라 기업가의 비전과 인지적 리더십을 통해 형성된다. 그래서 기업의 수직적 관계가 느슨하다. 반면에 가버넌스를 중시하는 기업은 수직적 관계가 엄격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스트리아학파의 기업 구성원들은 폭넓은 자율적인 영역 내에서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발적으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학습한다. 기업 내에서 하이에크의 유명한 '발견의 절차(discovery procedure)’가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신제도주의의 기업에서도 물론 혁신과 창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외부에서 주는 물질적 보상에 의존하기 때문에 타율적이고 지속적이지 못하다.

오스트리아학파가 상정하는 기업에서 구성원들은 기업 활동 그 자체를 보상으로 여긴다. 그것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다. 그래서 보상이 내재적이다. 이에 반하여 신제도주의의 기업에서 구성원들의 행동동기는 외부에서 주는 물질적 보상이다.

기업 내부에서 '발견의 절차’를 통해 축적되는 암묵적 지식을 비롯하여 기업 고유한 지식이 대부분이다. 그 같은 지식의 축적은 그래서 신제도주의의 접근법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기업의 경쟁력 향상과 기업의 성장, 그리고 한나라의 경제발전은 기업들의 그 같은 지식의 축적과 활용의 결과이다.

기업을 지식축적 과정의 맥락에서 보면 오스트리아학파의 기업이론은 기업을 지식의 저장고로 파악하는 펜로스(E.T.Penrose)나 넬슨(R. R. Nelson), 랭글로어(N. Langlois) 등의 '지식기반 접근법(knowledge-based approach)’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기업이론은 기업 내의 분산된 지식을 조정하는 기업가의 비전과 인지적 리더십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자유경쟁이 필요한 이유

자유시장경제에서 노동자 경영참여 제도의 기업들과 신제도주의의 기업들, 그리고 오스트리아학파의 기업들이 하나의 시장에서 경쟁을 한다면 오스트리아학파의 기업이 선택된다. 왜냐하면 이 기업의 내적 과정이 기업의 경쟁력을 가장 크게 높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자유 기업이 번창할 수 있는 질서는 자유경쟁을 확립하는 것이라는 점이 분명하다. 이것이 자유경쟁이 필요한 이유다.

민경국 / 강원대 교수

저자소개: 민경국 교수는 저자소개: 민경국 교수는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리고 한국제도경제학회 부회장 겸 편집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하이에크, 자유의 길’ 자유주의의 지혜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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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iPhone)의 한국출시와 더불어 시작된 스마트폰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특히 애플사(Apple Inc.)의 신제품인 아이패드(iPad)가 출시 전 부정적인 의견을 받았으나 판매개시 이후 그러한 불신을 잠재우고 소비자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받으며 성공적 출발을 보이고 있다. 왜 국내기업은 애플처럼 되지 못했나 또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따라가지 못한다며 비판을 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다. 어떠한 구조적 문제들이 전반적으로 대한민국 모바일산업의 발목을 잡아왔는지 알아보고, 또 어떻게 그런 오류를 다시 밟아가지 않도록 대책을 연구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이폰(iPhone)의 한국출시와 더불어 시작된 스마트폰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특히 애플사(Apple Inc.)의 신제품인 아이패드(iPad)가 출시 전 많은 부정적인 의견을 받았으나 한 달 전 판매개시 이후 그러한 불신을 잠재우고 소비자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받으며 성공적 출발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대한민국 IT산업의 위치와 미래전망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어쩌면 빠르게 변해가는 IT산업의 특성 속에서 국내 휴대전화기 제조업체의 약간은 뒤처져가는 모습과 현재 대한민국 전체경제규모에서 차지하는 IT 및 모바일산업의 위치를 고려할 때 그러한 관심은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단지 왜 국내기업은 애플처럼 되지 못했나 또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따라가지 못한다며 조건 없는 비판을 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다. 어떠한 구조적 문제들이 전반적으로 대한민국 모바일산업의 발목을 잡아 왔는지 알아보고 또 어떻게 그런 오류를 다시 밟아가지 않도록 대책을 연구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애플 아이폰의 수익구조

국내IT산업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후발주자로 뒤처지게 한 이유를 거론하기 전에 우선 어떠한 방식으로 애플이 현재의 수익구조를 만들었고 또 동종업체들이 그것을 따라가고 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학술적 관점에서 애플의 수익구조는 언론에서 많은 전문가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운운할 만큼 그리 새롭지는 않지만, 통상적으로 여겨진 모바일 에코시스템(mobile ecosystem)과는 먼 거리를 두고 있다. 통상적 통신시장은 통신사를 기점으로 핸드셋 제조업체와 앱소프트웨어 개발업체가 통신사에게 자사의 상품을 판매하는 구조였다. 이와 달리 애플의 수익구조는 자사의 운영체제로 만들어진 핸드셋에 앱시장을 개방하고 하나의 핸드셋에 소비자가 직접 다양한 앱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 보다 경쟁력 있는 앱개발자들과 수익을 나누어 갖는 것이다. 즉, 애플은 준 지대(quasi‐rent)를 창출하였고 자사의 수익과 제품 경쟁력이 함께 상승시키는 효과를 얻었다. 휴대전화제조사와 앱개발사가 상호협력하는 이러한 수익구조는 어느 정도의 이용자 숫자를 창출한 이후에는 서로 피드백이 강화됨에 따라 구조적으로 거의 완벽한 형태를 띄우게 된다.

이런 수익구조의 핵심은 앱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노력을 과연 어떻게 자사의 수익으로 전환하느냐에 있다. 즉, 앱소트프웨어로 창출되는 외부효과를 애플 자체의 이익으로 내부화하는 것인데, 애플은 제품의 모듈화(modularization)로 그것을 실현하고 있다. 즉, 자사의 모듈에만 맞추어져 만들어진 앱소프트웨어를 경쟁사의 기기와의 호환을 제한하여 그 외부효과들을 자사만이 실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현재 구글(Google)이 이끄는 Open Handset Alliance에게서도 추진되고 있으니 미래의 모바일 에코시스템은 각 업체가 얼마나 견고하게 이와 비슷한 수익구조를 만드느냐에 관건이 맞추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WIPI의 의도되지 않은 결과(Unintended Consequence)

애플의 아이폰이나 구글이 이끄는 Open Handset Alliance의 수익구조가 앱소프트웨어의 경쟁제품 간 호환성 제한에 기초를 두고 외부효과의 준 지대전환에 발판을 두고 있다는 것은 국내 IT 및 모바일산업의 현 위치 형성과정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지난 10년간의 국내모바일시장의 경험을 되돌아볼 때, 게임 등으로 대표되는 엡소프트웨어의 통신사 간 또는 기기 간 호환증진을 위해 추진되었던 WIPI(Wireless Internet Platform for Interoperability)의 역할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WIPI란 혼잡한 여러 모바일 플랫폼의 난립으로 초래되는 불필요한 앱소프트웨어의 개발비를 플랫폼 표준화를 통해 줄이고 또한 호환성 개선으로 소비자 편의를 증진시키기 위해 추진된 정책이었다. 즉, 게임 등의 앱소프트웨어가 가입된 통신사나 기기제조사에 관계없이 국내에서 출시되는 모든 핸드셋에서 가동되게 만드는 것이 WIPI의 주목적이었고, 앱소프트웨어 개발비용면에서 지난 10년간 분명히 긍정적 효과가 있었을 것이고 의도된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표준화 정책이 그러하듯 계속된 변화와 개선을 요구하는 산업들에 적용되었을 때 업체 간의 경쟁을 억압하고 개발의지를 후퇴시킨다. 특히 IT 및 모바일 산업에 적용된 WIPI의 표준화 정책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경제환경 속에서 제품혁신과 동반되는 모듈러화을 통한 수익구조개편이라는 모바일산업의 세계적 추세로부터 국내산업이 뒤처지게 하였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WIPI의 탑재가 강제됨으로 발생하는 대표적 부정적 영향을 살펴보면, 첫 번째로 삼성과 LG로 대표되는 기기제조업체들은 앱소프트웨어의 강제된 호환성으로 말미암아 국내시장에서 제품모듈화와 특성화를 통한 수익창출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었고, 두 번째로 통상적 모바일 에코시스템에서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요구되는 통신사와 기기업체 간의 관계재고를 통한 모바일산업구조개편을 막았고, 세 번째로 애플로 대표되는 국외업체들이 타사 기기와의 앱소프트웨어 호환성 강제를 요구하는 WIPI로 말미암아 자신들이 구축하는 수익구조가 불가능한 국내시장의 진출을 꺼리게 되었으며, 네 번째로는 국외업체의 국내시장 진출로 인해 만들어지는 업체 간의 경쟁으로 얻을 수 있는 소비자 잉여 창출 및 신장이 박탈되었다는 것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즉 WIPI의 표준화 정책은 표준화라는 목표를 달성하였을지는 모르나 항상 규제/정책추진과 동반이 되는 의도되지 않은 결과가 국내모바일시장의 발목을 잡는 부정적 효과를 동반했다고 말을 할 수 있다.

물론 소위 세계적 기업이라고 통칭이 되고 그것을 신조로 얘기해온 국내모바일업체들이 국외시장에서 왜 애플보다 앞서 더 혁신적인 기기를 출시하지 못하고 또한 모듈화를 통한 수익구조개편을 추진하는 능동적 기업가정신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 그리고 경쟁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국내시장을 계속해서 자신들만의 안방으로 치부하는 후진적 모습을 보인 점은 안타깝다. 하지만, 그에 앞서 또 다른 규제와 정책이 혹시 대한민국 모바일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진 않는지를 따져볼 때이다. WIPI의 실패경험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아무리 그 의도가 좋다고 하여도 정부의 정책/규제를 통해 문제해결을 추진하는 것은 언젠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부메랑이 되어 날아 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또 정책/규제의 작은 실패라도 모바일 등과 같은 중요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윤상호 박사, 이재승 박사

저자소개: 윤상호 박사는 현재 Orange, California에 위치한 Chapman University의 Argyros School of Business and Economics에서 재직중이다. 그리고 이재승 박사는 글로벌 컨설팅사인 ICF International에서 수석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중앙정부와 유럽연합을 대상으로 공공정책 및 환경경제에 관한 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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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산업은행을 지주회사 형태로 민영화한다고 해도 그 규모가 상당히 커서 이를 인수하겠다고 선뜻 나설 상대가 마땅하지 않다. 그런데 그런 규모의 은행에 외환은행까지 합쳐놓으면 이를 인수하겠다고 나설 경제주체가 있을 수 있겠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산업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하겠다는 의도에는 산업은행을 정부소유의 메가뱅크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국영 형태의 메가뱅크가 우리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메가뱅크를 설립해야한다는 말이 요즘 다시 떠오르고 있다. 원래 이 단어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초에 금융위원회의 대통령 앞 업무보고에서 처음 나왔던 낱말이다. 이 때 배석했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던 강만수 (국가경쟁력 강화위) 위원장이, 산업은행 민영화방안이 확정지어지려는 순간, “한국경제 규모는 동북아에서 3위인데 최대은행은 70위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하면서 산업은행의 민영화를 계기로 아시아에서 10위는 될 수 있는 대형은행(megabank)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즉 이 대통령의 공기업 민영화 공약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산업은행의 민영화가 불가피하지만, 이것만을 민영화하는 단세포적인 방법보다는 이 기회에 메가뱅크를 만들어 국가의 백년대계에도 걸맞은 금융 산업을 설계해보자는 제안을 강 위원장이 했고, 이를 그럴듯하게 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대통령이 규모면에서의 경쟁력을 포함한 산업은행 민영화문제를 그 다음 달에 다시 논의하기로 한 것이 그 시작이라고 생각된다.

메가뱅크의 숨겨진 의도

요즘 국회에서 산업은행 민영화 문제가 재론되면서 메가뱅크 설립논의가 다시 활기를 띠는 것을 보면 이 논의는 강 위원장의 당초 제안과 연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강 위원장의 제안은 산업은행 직원들의 민영화 반대분위기의 뒷받침을 받아 더욱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논의는 민유성 산업은행 행장의 외환은행을 인수할 의향이 있다는 발언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산업은행을 지주회사 형태로 민영화한다고 해도 그 규모가 상당히 커서 이를 인수하겠다고 선뜻 나설 상대가 마땅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규모의 은행에 외환은행까지 합쳐놓으면 이를 감히 인수하겠다고 나설 경제주체가 있을 수 있겠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즉 산업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하겠다는 의도에는 산업은행을 정부소유의 메가뱅크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직 금융위기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은 현재로서는 외국에서도 감히 그런 규모의 인수를 하겠다고 선뜻 나설 기관이 없다고 볼 수 있으므로, 메가뱅크는 국영의 형태로만 설립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국영 형태의 메가뱅크가 우리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강 위원장의 말대로 우리나라에 아시아에서 10위는 되는 은행을 만들었을 때 그 은행이 국제무대에서 얼마나 경쟁력이 있겠으며, 국내 금융 산업과 경제의 발전에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산업은행은, 은행영업에 관한 한, 다른 시중은행에 비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할 것이다. 국영기업이 동종의 민간기업보다 경쟁력이 더 높을 수는 절대로 없는 것이므로 산업은행이 국영은행이라는 사실 하나로도 이를 입증한다고 하겠지만, 산업은행의 급여수준이 시중은행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사실, 산업은행 직원들이 산업은행의 민영화를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 등도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치금융을 지켜온 금융당국

이렇게 경쟁력이 약한 산업은행의 안이한 영업 분위기가 인수된 외환은행에까지 전달되었을 때 그 메가뱅크의 경쟁력은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메가뱅크 설립논의는 산업은행을 국영은행의 형태로 잡아두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며, 우리 경제와 금융 산업에는 부정적 효과를 미칠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핑계로 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기획재정부(과거의 재경부)가 이런 수법을 과거에도 한두 번 사용해서 재미를 본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민정부 때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자”는 운동이 한차례 크게 일어난 일이 있었다.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은행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이라고 보고 이를 위해 금산분리도 철폐하자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었다. 이 때 재경부는 그 대안으로 “은행장추천위원회제도”와 “금융전업인제도”를 만들어, 은행 주인 찾아 주기 운동과 금산분리원칙 철폐 운동을 무산시키고 금융 산업 장악을 유지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통령의 지시로 재경부가 그렇게도 끈질기게 지키고 있었던 금산분리 원칙이 철폐되고 재경부가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로 분리되었기 때문에, 이때부터 우리 금융 산업에 커다란 변혁과 발전이 올 줄로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었다. 그런데 기획재정부는 이때를 위기로 보고 은밀히 그러나 온힘을 대해 이를 막을 수단을 마련해왔었음이 이제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산업은행의 민영화문제가 강 위원장의 제안으로 메가뱅크 문제로 변질되면서 모든 일이 기획재정부가 옛날부터 지키려 했던 방향으로 되돌려지고 있다는 사실로써 증명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메가뱅크 논의 이후, 국민은행지주회사 회장 선출을 국민은행이 뜻대로 할 수 없게 한 사외이사제도의 개혁, 은행들의 부동산담보대출금리의 결정에 더 제한을 가할 수 있는 길을 연 일(COFIX) 등은 모두 관치금융을 강화하는 방향 즉 기재부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것으로써, 산업은행 민영화로 흔들릴 뻔했던 일들이었다.

이렇게 메가뱅크까지 관치금융의 틀에 들어가게 되면, 금융시장과 금융 산업은 거의 완전하게 기재부, 금융위원회 및 금융감독원의 지배 아래 들어갈 공산이 크다. 즉 이로써 관치금융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우리 경제에 도움을 줄 것인가?

이렇게 되어도 우리 금융 산업이 잘 발전하게 되고 우리 경제에도 도움을 줄 수 있게 된다면 문제가 없겠으나, 일본의 경험을 보면 절대로 그렇게 될 수가 없다. 일본에는 세계적인 규모의 은행들이 많이 있지만, 이들이 세계금융시장에서도 별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일본경제의 빈혈상태에도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런 은행들보다 몇 배나 큰 금융기관이 있어, 이들 은행이 제대로 활동을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금융기관은 예금과 보험을 겸영하고 있는 국영우체국이다. 일본 금융 회사들이 개별적으로는 규모가 작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내금융시장을 거의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국영우체국의 중력에 눌려 이들이 제대로 활동을 못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는 오래전부터 지지를 받아왔었고 이를 개혁하겠다고 선언한 고이즈미 수상의 인기는 대단히 높았었다. 고이즈미 수상이 이런 인기를 등에 업고 이 국영우체국 민영화안의 국회통과 등 만반의 준비를 끝내놓고 퇴임했음에도, 이 국영우체국과 관련된 이해관계가 너무도 복잡해서 최근에 권력을 잡은 하도야마 내각은 이 개혁을 없었던 일로 하고 말았다. 그래서 일본 경제의 전망이 밝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메가뱅크를 국영의 형태로 설립하는 것은 금융 산업의 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절대로 소망스럽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은행도 국력에 걸맞게 대규모화할 필요성이 있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은행은 규모에 앞서서 국가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경쟁력과 효율성을 우선 고려해야

그것은 금융위기를 예방하는 측면에서 특히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지금 선진국에서는 은행이 너무 커서 실패하는 것을 그대로 놓아둘 수 없는(Too Big To Fail) 큰 은행을 될 수 있는 대로 억제하자는 안이 금융위기를 예방하는 방안으로 논의되고 있음은 주지되는 일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우리나라처럼 아직 은행규모가 작은 경우에는 이런 은행들이 커지는 것을 억지로 막을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경쟁력이나 효율성을 고려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덩치만 큰 은행 즉 메가뱅크를 만드는 것은 금융위기의 예방차원에서 볼 때 잘하는 일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산은지주회사 전체를 통째로 한 상대에 매각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으며, 더욱이 산업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하게 해서 국영 지주회사로 남겨두는 것은 또 다른 금융위기를 부르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할 것이다. 최선의 방향은 산업은행, 대우증권, 산은캐피탈 등을 개별적으로 매각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경제가 일본이 경험한 것과 같은 “잃어버린 10년”을 답습하지 않게 하겠다는 시각에서 보면 관치금융으로 갈 소지가 있는 모든 음모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할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메가뱅크 설립 안임은 이미 논의한 바와 같다. 이런 문제들은 모두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의 관료들이 철밥통을 지키려는 욕심을 포기하면 저절로 해결될 일들임을 지적하고 싶다.

김한응 /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

저자소개: 김한응 대표는 한국은행 조사부장,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소장, 한국금융연수원 부원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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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임명되면서 한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OECD 대사 출신의 김중수 신임 총재에 대한 다양한 평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한은이 매가 아닌 비둘기로 채워진다는 지적이다. 최근 글로벌 경제 위기 국면 이후 각국의 중앙은행은 위기극복과 관련하여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은이 정부조직 내에서 최대한 독립성을 확보하되 광범위한 정부조직의 일부라는 인식을 통해 물가안정을 포함한 다양한 정책목표를 추구하는 글로벌 시대의 중앙은행의 역할을 완수하기를 기대한다.

최근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임명되면서 한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OECD 대사 출신의 김중수 신임 총재에 대한 다양한 평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한은이 매가 아닌 비둘기로 채워진다는 지적이다. 물가안정을 중시하면 매이고 성장을 고려하면 비둘기라는 식의 분류에 근거한 평가이다. 이해가 가기는 하나 대단히 자의적인 평가가 아닐 수 없다. 글로벌 시대에 자본이동이 자유화가 되면서 전세계를 무대로 활발하게 자본이 돌아다니는 시점에서 한 국가의 통화정책이 이러한 다양한 움직임을 다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자본이동 자유화, 고정환율, 그리고 통화정책 독립성은 동시에 추구될 수 없는 목표라는 불가능한 삼위일체의 명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중앙은행이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고려해야할 변수는 너무도 다양해져 버렸다.

예를 들어 물가안정만을 고려하여 유동성을 줄이고 금리를 높인다면 외국자본이 유입되면서 환율이 절상되고 수출의 하락과 수입의 감소로 경상수지적자로 이어지면서 외환부문에 적신호가 켜질 수도 있다. 우리나라 같은 중간 규모의 개방경제는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통해 자체적으로 물가안정을 확보하기가 매우 어려워진 상황이 도래한 것이고 중앙은행도 이러한 부분을 감안하여 좀 더 적극적이고 시장친화적인 자세로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금리인상을 하더라도 그 정책효과는 대단히 미미할 수가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비둘기와 매 식의 양분법적 비유는 지양될 필요가 있다.

한은 정책도 시장친화적으로

1929년 대공황 이후 각국은 공조체제를 등한시 한 채 각국이 각자도생(各自圖生) 식의 위기극복전략을 추진하면서 국제적으로 극복의 편차도 커지고 국가간의 관계도 악화되는 등 후유증이 상당했었다. 대표적인 것이 수출증대+수입감소 전략을 사용한 부분이다. 주지하다시피 나의 수출은 상대방의 수입이고 나의 수입은 상대방의 수출이므로 한 나라가 수출증대+수입감소 전략을 시행하면 상대국은 수입증대+수출감소가 발생하면서 상대방 국가가 어려워지고 결국은 자국도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근린궁핍화 정책인데 대공황직후 많은 국가들이 이러한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위기극복이 더디어지고 문제가 심화된 바가 있었다. 이로부터 얻은 교훈은 위기극복을 위해서는 정책공조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인바 최근 위기 국면이 아직도 진행중인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정책도 국가간 공조체제에 대해 상당 부분 신경을 써야할 시점에 와 있다.

또한 금융시장의 중요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한은의 정책에 시장친화적인 요소를 더욱 가미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자금의 공급자가 은행에 예금을 하고 자금의 수요자는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음으로써 자금이 공급자로부터 수요자로 흘러가는 간접금융체제 내지 기관중심금융에서는 중앙은행이 은행들을 잘 통제하면서 자금흐름이 원활해지고 유동성이 적정하게 공급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주식과 채권이 시장에 발행되고 자금의 공급자내지는 투자자가 이를 사들임으로써 자금의 흐름이 형성되는 직접금융체제 내지 시장중심금융이 발달한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의 일거수일투족은 매우 중요한 시그널효과를 금융시장에 전달하게 되고 투자자들의 수익과 투자전략에 대해 중앙은행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한은의 움직임은 채권시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바 현재 채권시장에는 채권선물시장까지 형성되어 있어서 한은의 금융시장에의 영향력은 그 어느 때 보다 제고된 상황이다.

따라서 한은의 정책이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시장의 반응과 움직임이 한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피드백 메커니즘이 형성되어 있는 상황이므로 이러한 상호적 영향을 십분 고려하고 시장의 반응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피드백 효과까지를 총체적으로 고려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특수한 예이기는 하나 과거 채권선물시장이 끝나기 직전에 한은이 채권시장에 영향을 줄만한 정보를 시장에 전달함으로써 채권선물시장과 채권시장이 일시적으로 혼란에 빠지는 상황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이런 식으로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증대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한은은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통화금융정책이 추진될 때 금융시장을 교란시키지 않고 오히려 안정화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이 되도록 노력을 해야 하며 시장친화적 요소를 정책에 지속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

금융시장 안정을 고려해야

최근 글로벌 경제 위기 국면 이후 각국의 중앙은행은 위기극복과 관련하여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에 있어서 중앙은행은 주로 물가안정을 주요한 목표로 하여 움직이면서 자국의 물가안정과 통화가치 안정에 힘쓰고 있다. 그런데 위기국면에서는 통화금융정책이 위기극복의 수단으로 작동하면서 유동성이 고갈된 기관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금리하락을 통해 부채가 많은 기업들의 부담을 줄여서 파산위험을 감소시키는 등 위기극복을 위한 중앙은행의 전략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결국 최근에는 거시건전성(macro-prudential) 감독정책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고 이러한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서 중앙은행은 상당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고를 담당하는 재무부와 중앙은행과 금융감독당국이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최악의 상태에 대비하되 거시건전성과 관련된 부분을 감독당국과 중앙은행이 적절하게 역할을 배분하여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시행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은행파산시 지원을 직접 담당하는 예금보험기구까지 편입시킨다면 이러한 기구들의 상시적 정책공조체제는 매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은과 함께 기획재정부 금융위 금감원 예보까지 포함한 5개 기관이 적정한 수준의 감독체계를 구축하되 사각지대가 형성된 부분은 없는지 지속적으로 점검을 하면서 공조체제를 공고하게 구축한다면 위기의 예방 내지는 극복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각국 중앙은행끼리의 국제간 공조와 아울러 국내에서의 기관간 공조가 매우 중요한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중앙은행에게는 이제 '독립’이라는 단어보다는 '공조’내지는 '소통’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시대가 온 것이다.

최근 이러한 목표를 위해서 한은법을 개정하여 금융안정을 정식 목표로 채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바 물가안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금융시장의 안정도 당연히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도 음미할 필요가 있으며 한은법에 금융안정이라는 목표가 써있든지 안써있든지 위기국면에서 한은은 당연히 시장안정과 시스템의 복원 및 위기극복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금융안정목표를 법안에 명시화하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장기적으로 검토해나가되 다른 기관의 입장과 금융시장 및 시스템 전체를 고려하여 차분하게 추진되어야 할 것을 보인다. 즉 이 문제로 인해 국내에서의 기관간 공조체제를 훼손하지 않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G20의 출구전략 논의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

최근 신임총재가 언론을 통해 '한은의 독립은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은 아니다’라고 지적 것이 상당 부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한은의 독립성과 관련한 논의가 뜨거웠던 시절 정운찬 교수(현 총리)는 그의 저서 '금융개혁론’에서 한은의 독립은 정부조직 내에서의 독립이라고 지적한 일이 있다. 이는 마치 금융기관의 리스크 관리부서의 위상과 역할과 비슷하다. 리스크 관리부서는 독립된 CRO(Chief Risk Officer)의 지휘를 받으면서 자금을 직접 운용하는 부서와 독립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리스크관리의 독립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리스크 관리부서도 회사내의 한 부서로서 궁극적으로는 CEO의 통제 하에 놓인다는 점에서는 리스크관리의 독립성은 회사조직 내에서의 독립인 것이다. 물론 이때 CEO가 리스크관리 부서의 조치나 지적을 중시하면서 상당한 자율성을 보장해줄 수는 있지만 독립성이 보장된다고 해서 회사전체 상황을 무시하면서까지 독립성이 보장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한은총재의 임명권자인바 일단 임명을 하고나서 일일이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지만 물가안정이라는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은 희생시켜도 좋다는 식의 접근을 통해 정부와 각을 세우면서 독불장군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은 시대적인 흐름과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은조직의 위상을 제고하고 독립성을 확보하되 국가경제의 흐름을 모니터링하면서 다른 기관과의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전반적인 경제의 안정 성장 균형을 달성하는 광범위한 시각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한은은 더 이상 고고한 이미지를 가지고 속세에서 독립된 절간같은 곳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사람 사는 냄새가 풀풀나는 시장으로 내려와 시장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시장과 함께 호흡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은이 위치한 곳이 시장이 발달한 남대문이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한은은 국제적인 공조체제를 통해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과 긴밀히 협조하면서 지구촌 시대의 통화정책을 주도해 나갈 필요가 있다. G20 회담이 서울에서 열리고 각국 정상이 서울로 집결하면서 우리나라가 의장국의 역할을 하게 되어 있는 상황에서 G20의 출구전략 논의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국가간의 다양성을 인정하되 최대한 공조를 한다는 출구전략에 있어서의 '따로 또 같이’ 원칙이 G20 회담을 통해 지속적으로 논의된 부분을 한은도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은이 정부조직 내에서 최대한 독립성을 확보하되 광범위한 정부조직의 일부라는 인식을 통해 물가안정을 포함한 다양한 정책목표를 추구하는 글로벌 시대의 중앙은행의 역할을 완수하기를 기대해본다.

윤창현 /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저자소개: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시카고대에서 경제학박사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금융연수원 연구위원, 고려대 객원교수, 명지대 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주요 저서로 “금융선물옵션거래”, “파생금융상품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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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정부는 '세계적 중견기업 육성전략’을 발표하면서 중견기업 육성을 위한 각종 세제혜택 및 중소기업졸업 유예기간 연장 등의 전략을 내 놓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기업규모별 차별규제라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중견기업 역시 더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규제의 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처방으로 기업의 규모가 크든 작든 기업하기 좋은 환경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업의 크기가 크든 작든 기업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호응해 주는 것이 시장의 힘이다. 기업은 더 좋은 상품을 만들려고 애쓰고 인지도를 쌓아가면서 매출을 늘린다. 많은 소비자로부터 선택받은 기업은 매출규모도 커지고 기업의 자산이나 종업원 수도 많아진다. 이러한 시장경쟁의 결과로 나타나는 기업의 규모는 규제의 대상일 이유가 없다. 시장원리를 무시한 채 정부가 강제로 기업 규모를 조정하고 통제하려 하면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중견기업이 나타나지 않고 중소기업과 대기업으로 양극화하는 현상 역시 정부의 인위적인 규제에 따른 부작용의 하나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영환경은 중소기업이 일정 규모를 벗어나는 순간 대기업으로 분류되어 각종 규제를 받는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중소기업이 그 규모를 키워 성장하더라도 종업원 수나 자본금 규모를 조정하여 중소기업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렇기에 소위 중견기업이라 불리는 규모의 기업 층이 매우 빈약한 상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얼마 전 정부는 '세계적 전문 중견기업 육성전략’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정책을 발표하였다. 과연 바람직한 정책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중견기업 부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히든챔피언 찾기

먼저 정부는 중견기업을 지원함에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고 중소기업 졸업시 가해지는 각종 규제에 어느 정도 유예기간을 두는 등의 특혜를 마련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중소기업 졸업시 받게 되는 규제의 유예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고 최저한세율을 연차별로 단계적으로 올리는 것이 정부의 전략이다.

중소기업은 중소기업을 졸업할 경우 대기업이 받는 규제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없어 졸업을 되도록 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중소기업에게 몇 년의 혜택을 부여하면서 '중견기업’으로 따로 분류함이 중소기업에게 얼마나 큰 인센티브로 작용할 지 의문이다.

설사 이런 혜택을 제공하여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유도한다고 하더라도 그 한계는 분명히 있으며, 근본적으로 기업규모에 따른 중층적인 규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정책효과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중소기업 졸업시 떠안게 되는 대기업 규제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더 큰 기업으로의 성장을 피하는 근본적 원인은 기업 규모에 따른 심각한 차별규제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급속한 산업발전을 이룩하면서 삼성, 현대 등 세계적인 기업들을 배출했지만 경제력 집중억제라는 한국 특유의 반기업정서에 기반한 정책방향은 그동안 소위 재벌해체라 불리며 대기업 규제를 강화해 왔다. 그 결과로 1980년 이후 새롭게 등장한 대기업을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며, 기존의 대기업들도 상당수 해체되거나 좌초하였다. 새롭게 등장한 기업들이 있다고 하여도 주로 공기업, 민영화기업 또는 외국계기업뿐이다.

대기업에 대한 억제정책과 차별 규제가 지나치게 강하다 보니, 중소기업은 대기업으로 더 이상 크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럽다. 중소기업을 졸업하면 10%였던 법인세율이 대기업 적용 기준인 22%로 급증한다. 또한 투자세액 공제, 창업중소기업 법인세 감면 등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 시 포기하여야하는 혜택은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혜택을 포기하고 중소기업을 졸업해 대기업으로 성장하면서 감당해야할 규제 비용은 막대하다. 자산규모, 종업원 수, 매출액, 상장유무 등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각종 지표에 따라 가해지는 대기업 규제는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그 강도가 커지고 특별한 규제가 추가된다. 또한 기업이 성장하면 할수록 부담해야할 비용이 점증된다. 가령 500인 이상의 종업원을 둔 사업장의 경우 5인 이상부터 규정되는 근로기준법 등의 관계법 상의 모든 의무 규정을 이행하여야 하고 자산총액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내부회계관리 규정 운용의무, 기업결합 신고의무 등 의무가 추가된다. 이렇게 규모가 커질수록 증가하는 규제는 기업들로 하여금 종업원 수를 늘리지 않거나 회사를 나누어 자산 총액을 묶어 놓게끔 유인한다.

중첩적으로 쌓여가는 차별규제는 기업이 대기업의 문턱에 들어선다 하여도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할 의욕을 꺾어버리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기업 규모에 따른 차등 규제가 과연 필요한가

기업규모가 클수록 기업에 많은 규제를 부여하고 제한을 가함이 과연 필요한가?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을 키우려는 기업가의 의욕을 빼앗는 효과만 있을 것이다. 더욱이 기업들은 규제망을 피하고 벗어나기 위해 큰 기업을 나누어 버린다. 중소기업이 누리는 각종 혜택을 누리기 위해 회사를 분리하거나 매출액이 증가해도 종업원 수를 고정해 중소기업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또한 대기업에 주어지는 의무조항을 따를 때 발생하는 규제 비용 대신 불응시 받게 되는 과징금을 선택하기도 한다.

결국 각종 차별규제조항들이 중소기업에게는 대기업으로 성장할 의욕을 저하시키고 대기업에게는 무의미한 추가비용을 발생시킨다. 누구도 이익을 얻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폐해만 큰 셈이다.

성장을 통해 뭐하나 새롭게 시작하려면 각종 규제가 따르는데 누가 기업을 키우려 하겠는가? 각종 규제 탓에 대기업은 새로운 기술개발이나 투자처 물색에 치중할 의욕을 상실하고 만다. 또한 규제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고스란히 상품의 가격, 서비스 비용에 포함되게 되어 소비자 역시 큰 비용을 지불 할 수밖에 없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어떤 규모의 기업이든 '기업하기 좋은 환경’ 마련되어야

기업의 세계에서 중소기업과 중견기업 그리고 대기업 모두 필요한 존재이며, 그 역할 또한 다르다. 시장의 규모, 특화정도, 기술에 따라 기업의 규모는 계속 변화한다. 우리나라 역시 특수 분야에 작지만 강한 기업이 필요하다. 그와 함께 기업이 성장해 더 큰 기업 또한 계속 나올 수 있어야 한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때 감당하여할 부담을 완화하고자 그 중간 단계로 졸업 유예기간 연장 등의 조치를 취한 점은 현실적으로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면이 있지만, 본질적인 해법이 아니며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근본적으로 중견기업, 대기업에 대한 차별 규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임시적으로 중견기업으로의 유도정책이 실행된다 하여도 그 효과는 제한적이다. 설명 이들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한다고 하더라도 그 수준에 머무를 뿐 대기업으로 성장하기엔 대기업의 규제 비용이 여전히 막대하다.

기업의 규모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각종 제한과 규제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중소기업이든 중견기업 또는 대기업이든 모든 기업이 더 크고 강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일 것이다.

김시정 / 자유기업원 연구원

저자소개: 김시정 자유기업원 연구원은 시장친화적인 정책구현을 위한 정부모니터사업을 맡고 있다. 주요 관심분야는 정부역할론, 행정규제이다. 특히 정부규제 개혁과 정책 타당성 분석에 대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연구로는 '주요 법률에 나타난 규모별 기업규제 현황과 과제’, '이명박정부와 노문현정부의 정책비교와 시사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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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인기가 국내외에 걸쳐 대단하다. 그런데 이러한 막걸리 인기에 편승해서 정부가 등급을 정한다고 한다. 품질인증제라고 하는데, 한식 세계화를 위해 고추장도 등급을 정하는 품질인증제를 정하려고 한다. 이런 규제 차원의 품질인증제 발상이 과연 한식 세계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의문이다. 품질인증제는 본질적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도와주어야 하는데 문제는 이것이 잘못되면 품질인증제로 인하여 일종의 진입 규제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품질인증제를 도입할 경우, 문자 그대로 품질에 대한 인증만을 해야 할텐데 우선 시설규제가 따르고 그 외의 품질과 관계없는 제반 행정적인 규제가 따른 연후에 품질인증을 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규제는 결국 소규모 사업자들을 시장에서 제외시키는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아질까 우려된다. 막걸리 품질인증은 시장에서 소비자의 기호에 의해 선택되게 하여야 할 것이다. 정부는 제품의 안전성 여부에만 관심을 갖기 바란다.

요즈음 막걸리 인기가 대단하다. 한 편의점 체인 전체에서(GS25 편의점에서) 일본 사케와 막걸리가 같이 팔리고 있는데, 막걸리가 6배나 더 팔린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도 막걸리에 열광을 하고 있다. 막걸리 열풍으로 인해 와인수입업체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막걸리 열풍은 어디서부터 시작한 것일까? 왜 갑자기 이런 일들이 생겨나는 것일까?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막걸리산업을 크게 성장하지 못하게 한 규제가 풀렸기 때문이다. 2000년까지 막걸리 양조장이 위치한 시, 군 바깥지역으로 막걸리 반출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풀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 군을 뛰어 넘어 자연스럽게 경쟁이 일어났고, 다양한 막걸리들이 전국 시장을 누비게 된 것이다. 결국 일본에 까지 진출하게 되어 오히려 한류바람을 타고 일본사람들이 막걸리의 참 맛을 먼저 알게 된 것이 막걸리 열풍의 근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다시 개입에 나서면

그런데 막걸리가 한참 잘 나간다고 하니까 등급을 정한다고 한다. 품질인증제라고 하는데, 한식 세계화를 위해 고추장도 등급을 정하는 품질인증제를 정하려고 한다. 이런 규제 차원의 품질인증제 발상이 과연 한식 세계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고개가 갸우뚱거린다.

일반적으로 품질인증제라고 하는 것이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이후 농어촌구조개선대책 및 농어촌발전대책의 일환으로 농산물의 품질향상과 대외경쟁력 제고를 위하여 도입하였다. 우리 농산물의 품질경쟁력 제고, 농산물 안전성기준과 축산물 생산조건에 따른 인증으로 소비자 신뢰구축, 품질을 보증하는 농산물 공급체계 확립을 목적으로 실시되어 온 것이다.

1992년 7월 처음으로 일반재배농산물에 대한 품질인증을 실시한 이후, 수차례 개선을 거친 다음, 작년에 농수산식품부는 농정 여건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52개 규제에 대한 개선의 한 일환으로 우수농산물관리제도(GAP) 시행에 따라 농산물품질인증제를 폐지하기로 하였다. 여기서 명칭의 변화가 일어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농산물우수관리제도(Good Agricultural Practices)로 칭하는데, 농산물우수관리제도는 농장에서 식탁까지 농산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생산단계부터 수확 후 포장단계까지 토양·수질 등 농업환경 및 농산물에 잔류할 수 있는 농약, 중금속 또는 유해생물 등의 위해요소를 관리하고 그 관리사항을 소비자가 알 수 있게 하는 체계를 말한다. 원래 농산물우수관리제도는 우수농산물관리제도(GAP)로 시작했는데 '우수농산물관리인증’이라는 명칭이 품질 및 등급이 최고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여 성격을 명확히 하는 차원에서 '우수농산물관리인증’을 '농산물우수관리인증’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규제개혁을 실시한지가 불과 한 해도 가기 전에 이번에는 막걸리에 대해, 그것도 기호식품인 주류에 대해서 다시 품질인증제를 실시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품질인증제 실시 방안을 살펴보기로 하자.

정부는 오는 8월5일 '전통주 등의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에 맞춰 막걸리와 청주에 대한 품질인증제를 도입한다고 한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그들의 표현을 빌면, 질 좋은 막걸리에는 정부 인증 마크가 부착되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은 품질인증 막걸리를 우선적으로 구매하게 된다. 더욱 의문이 가는 것은 정부가 왜 구매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품질인증제가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것이다. 품질인증제는 본질적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도와주어야 하는데 문제는 이것이 잘못되면 품질인증제로 인하여 소규모 업체들이 타격을 받게 되는 일종의 진입 규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오히려 시설 등의 규제로 말이다.

정부보다 소비자가 품질에 대해서는 더 잘 알아

현재 농식품부 관계자는 “500여개의 막걸리 업체가 난립하는 등 막걸리 인기를 타고 활개를 치는 업계에 대한 단속과 소비자에게 질 좋은 막걸리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 이 같은 제도를 마련했다”며 “현재 하위법령을 만들고 있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증을 거쳐 품질 좋은 막걸리가 유통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는데, 우선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무엇이 난립인가? 막걸리 제조업체의 숫자가 많아지면, 아니 정부의 한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으면 난립인가? 이들을 일일이 감시하기가 어려우면 난립이라는 재갈을 물리는 것인지 궁금하다.

500여개의 막걸리 업체가 존재하는 것은 아직 1000개 보다는 작은 것 아닌가. 각 고을마다 막걸리 제조업체가 존재한다면 1000개도 모자랄 판이다. 500여개의 막걸리 업체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히 맥주업체나 소주업체 보다는 많은 숫자이나 도무지 무엇을 근거로 해서 이것이 난립이라고 규정짓는지는 매우 궁금하기도 할뿐더러 기본적으로 숫자가 적지 않아 일일이 감시, 검색하기가 쉽지 않을 때는 난립이라는 단어를 쉽게 사용한다라는 생각이 든다.

내 주위에 이런 친구가 있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막걸리란 막걸리는 다 마셔보고 막걸리를 품평한 책을 쓰고 싶단다. 이 친구 덕분에 산행할 때마다 산행 후 막걸리를 한 잔씩 하고 있다. 가는 곳마다 그 곳의 막걸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을마다 맛이 조금씩 달랐고 아침에 일어나도 거뜬했다. 일본에 까지 진출했다고 해서 유명한 브랜드를 가진 포천 이동막걸리는 6개월간 유통기한이 적혀 있는데 반해서 그 고을에서 생산되는 막걸리는 브랜드는 생소했지만 매우 신선하게 생각되어 구입해서 숙소에 돌아와서 마셔보니 아주 훌륭한 맛이었다. 그 때 확실히 알았다. 막걸리라는 것이 굳이 전국을 커버하는 막걸리 브랜드의 경우 오히려 막걸리 고유의 맛을 잃어버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전국을 커버하려면 자본금도 많이 들어갈 테지만 막걸리 고유의 살아 숨 쉬는 유산균을 마시지 못할 것 아니겠는가. 오히려 각 고을, 지방마다 막걸리업체가 세워지는 것을 장려할 판이다.

정부 개입은 혼선만 불러

결국 막걸리 고유의 맛을 지키려면 쉽게 제조될 수 있는 막걸리를 등급제 메긴답시고 품질인증제를 도입할 경우 그것은 공연히 막걸리의 고유한 맛을 사라지게 하고 대신 전국을 커버하는 자본 많이 가진 사업자에게 유리한 시설인증제에 머물게 할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든다.

과거 다른 제품에서도 마찬가지로 품질인증제 도입 시 품질 그 자체만 검사의 대상으로 삼기 보다는 이 제품이 어떤 시설에서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되어 결국 품질인증제는 선 시설인증제로 흐르는 경향을 종종 보아 왔던 터라 결국 이러한 시설인증제는 소규모 제조업자에게는 진입장벽으로 존재할 것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 막걸리업체는 객관적이고 투명한 인증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중견사업자인 배상면주가 관계자 역시 “품질인증제 도입으로 국산 쌀을 이용한 막걸리가 제대로 인정받아야 제도가 긍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고 그 같은 제도 도입엔 환영한다”며 “국산쌀 이용 등 개관적이고도 합리적인 기준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소규모 업체들은 오직 막걸리 품질로만 인증하여 소비자들이 선택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으로 얘기하고 있다.

문제는 농산물우수관리제도(GAP: Good Agricultural Practices)가 이미 존재하는 상태라 굳이 가능하지도 않고 실효성도 적은 품질인증제를 실시하기보다 안전한 품질의 막걸리를 굳이 인증하고자 한다면 농산물우수관리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더 나은 대안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즉, 농산물의 식품안전성 확보를 위한 생산단계부터 최종소비단계까지 관리체계에 있어 생산단계 관리가 농산물우수관리제도의 핵심사항인 만큼 이 제도를 통하여 안전제품인지만 알려주면 사회적 편익이 클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품질 인증 부문은 소비자가 정할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소비자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사료된다. 단, 이러한 농산물우수관리제도도 질적이 아닌 양적인 시설규제에 치우치게 되면 소규모 영세사업자에게 진입규제가 될 것이 확실한 만큼 경계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많은 업체가 진입해야 더욱 맛나는 막걸리를 우리 모두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품질인증제를 도입할 경우 문자 그대로 품질에 대한 인증만을 해야 할텐데 우선 시설규제가 따르고 그 외의 품질과 관계없는 제반 행정적인 규제가 따른 연후에 품질인증을 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규제는 결국 소규모 업체들을 시장에서 제외시키는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 현재의 전통식품품질인증제에 필요한 서류를 보면(농수산물가공산업육성 및 품질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7조 제1항 및 동법시행규칙 제37조의 규정에 의한 전통식품품질인증신청서 에 필요한 서류) 그러한 사항을 바로 볼 수 있다.1)

결국 정부의 품질인증제가 막걸리의 품질을 높일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500여개 업체가 난립(?)하는 것을 막기 위함인지의 차원일 것으로 생각된다. 왜 500여개가 넘으면 안되는 것인가, 왜 그것을 난립으로 보는가의 차원일 것이다. 처음에 여러 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다가도 시장에서 선택받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들, 특히 인터넷에서 정보를 쉽게 주고받을 수 있는 현재의 시장상황에서는는 품질 좋지 않은 막걸리가 쉽게 유통되기는 어려운 세상이다. 정부는 막걸리 소비자를 위한 길인지 아니면 규모가 큰 업체를 키우려고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김진국 / 배재대 아펜젤러국제학부 교수

저자소개: 김진국 교수는 뉴욕주립대(스토니부룩)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배재대 아펜젤러국제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규제개혁, 공정거래정책, 자동차산업 등에 연구 활동과 관련 논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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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간 갈등의 중심에는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이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 중의 하나라는 견해가 자리잡고 있다. 글로벌 불균형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미국을 제외한 다수 국가의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중국을 제외하고도 대미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있는 나라는 일본·태국·한국·러시아·베네수엘라 등 상당수 국가가 있다. 이 글에서는 미국과 중국 간의 불균형이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검토하고자 한다.

최근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의 중심에는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이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 중의 하나라는 견해가 자리잡고 있다.1) 원론적 의미에서 글로벌 불균형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미국을 제외한 다수 국가의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중국을 제외하고도 대미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있는 나라는 일본·태국·한국·러시아·베네수엘라 등 상당수 국가가 있다. 그러나 미국 정치권, 일부 경제학자들, 국제통화기금 등에서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대미 주요 수출국인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해소되지 않고 계속되는 현상을 '문제가 있는’ 글로벌 불균형으로 지적하고, 이러한 불균형의 해소야말로 이번 경제위기 해결을 위한 열쇠 중의 하나가 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2)이 글에서는 미국과 중국 간의 불균형이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검토하고자 한다.

경기변동과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

먼저 미국발 경기변동의 원인을 간략히 요약해본다. 이번 경제위기는 엄밀히 말해 미국 연방준비이사회(이하 '연준’)와 민간은행이 창출한 화폐공급의 증가가 대부시장의 이자율을 인위적으로 인하시킴으로써 초래된 경기변동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달러공급을 증가시킴으로써 1990년대는 닷컴 버블, 2000년대는 부동산 버블로 지칭되는 경기변동을 겪었거나 겪고 있다. 3)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추가해야 할 것은 각국은 화폐 공급량을 증가시켜 이자율을 통제함으로써 각국 자체가 만들어낸 경기변동도 중첩되어 있다. 나라마다 경기변동의 정도는 모두 다르지만 말이다.

미국의 연준과 민간은행만이 화폐 공급을 증가시키는 것은 아니다.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는 달러공급을 늘리는 데 기여한다. 미국 정부는 재정적자를 충당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고 연준이 국채를 담보로 달러를 발행하여 미국 정부에게 제공한다. 미국의 재정적자가 매년 대규모이고 오랫동안 동안 지속되어 왔다는 점에서 미국의 달러 공급 확대에 미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도 보유한 달러를 이용하여 미국 국채를 구입함으로써 미국은 상대적으로(중국이 국채를 매입하지 않는 경우와 비교하여) 낮은 이자를 주고 중국으로부터 자본, 즉 돈을 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재정적자를 미국인 투자자의 자금으로 충당하는 것보다 중국 정부의 달러 자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재정적자를 위한 국채 발행에 따른 저항을 덜 받게 하는 이점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미국 정부와 중국 정부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 환율을 놓고 갈등하는 현재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소유한 엄청난 미국 국채는 미국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화폐공급의 증가는 경기변동과 함께 인플레이션도 가져온다. 인플레이션은 자국 수출재화의 가격을 비싸게 만들기 때문에 외국으로의 수출을 어렵게 만든다. 또 인플레이션은 자국 내 재화가격 상승으로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상대적으로 쉬워진다. 다시 말해 어떤 나라의 화폐공급이 증가하여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그 나라의 수출은 어려워지고 수입은 쉬워진다. 그 결과 그 나라의 수출은 감소되고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은 증가한다. 결국 화폐공급의 증가에 의한 인플레이션은 대외관계에 있어서 국제수지 또는 경상수지의 적자를 초래한다.4)미국이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대외 관계에 있어서 경상수지의 적자가 발생했던 것은 정부가 화폐공급을 크게 늘리면서 미국 재화들의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된 여러 원인 중 미국 국내 요인의 하나이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 국내 요인 중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경상수지 흑자와 환율 제도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198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증가 일로에 있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실제로 중국의 대미 경상수지 흑자가 본격적으로 증대하기 시작한 결정적인 시기는 1994년부터이다. 그 이전에도 경상수지 흑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994년에 큰 폭의 평가절하를 한 것이 그 이후의 경상수지 흑자의 누적에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시장에서의 평가절상 압력을 무시하고 오히려 과감한 평가절하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은 큰 폭으로 평가절하한 '위안/달러’ 환율을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중국이 위안화를 인위적으로 평가절하한 것은 수출을 통해 국내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5)6)그리고 경상수지 흑자를 지속해서 달러를 축적함으로써 예상되는 핫머니의 공격을 어느 정도 차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즉 중국 정부는 국제 교환수단인 달러를 적당히 쌓아둘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7) 이 점은 1990년대 아시아 국가들, 러시아 등이 위기에 빠지면서 무역 비중이 큰 국가들이 국제 교환수단으로서의 달러의 중요성을 인식해서 달러를 축적하고 있는 현실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위안/달러’ 환율을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약 8.6위안에서 8.2위안 수준으로 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상수지 흑자는 매년 큰 폭으로 증가했다. 만약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경상수지 흑자는 그렇게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를 증대시킨 다른 요인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아마도 중국 재화의 인플레이션과 앞에서 지적한 미국 재화의 인플레이션을 비교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직관적으로 볼 때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중국의 인플레이션보다 클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의 통화 팽창이 중국의 통화 팽창보다 클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인이 환율을 고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대미 수출을 쉽게 만들고 중국의 대미 수입을 어렵게 만들었을 것이다. 즉 그 점이 경상수지 흑자의 지속적인 증가를 초래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것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미국 재화의 수출이 어려워지고 다른 나라 재화의 미국으로의 수입이 쉬워진다는 점과 논리적으로 일치한다. 물론 이 점은 좀 더 정밀한 실증분석이 필요하다.

미국 경상수지의 적자와 중국 경상수지의 흑자가 지속된 이유를 사건의 순서대로-물론 동시에 진행된 것도 있지만-요약해 본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와 민간은행이 화폐공급을 늘림으로써 대부시장의 이자율이 낮아진다. 화폐공급의 증가는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 미국 재화의 가격상승은 수출을 어렵게 하고 수입을 쉽게 만든다. 여기에 중국은 인위적으로 평가절하한 고정환율을 유지함으로써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로부터 유출되는 달러를 자국 내에 누적할 수 있다. 미국의 대규모 재정적자는 달러공급 증가의 한 통로이고 중국이 미국의 국채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자율로 구입함으로써 미국 정부의 확장 욕구와 중국정부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다. 그리고 중국 경상수지 흑자의 일정 부분은 중국과 미국의 인플레이션 차이에 의해 중국 화폐에 비해 미국 달러의 구매력이 하락함으로써 발생해왔다.

한국과 같은 변동환율제 국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한국은 1997년 이후에 '원/달러’ 환율이 급격히 상승했고 경상수지 흑자가 크게 증가했다. 경제 이론에 의하면 경상수지 흑자의 지속은 그 만큼 원/달러 환율을 하락하게, 즉 원화의 가치를 상승하게 만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경상수지 흑자는 사라지고 거의 균형수준에 도달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년 이상 경상수지 흑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말은 경상수지 흑자가 없어져서 균형이 되는 수준까지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 1997년 한국의 경제위기로 원화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공급이 감소하여 미국 재화와 비교하여 한국 재화가 저렴해진 결과 미국으로의 수출은 쉬워졌고 미극으로부터의 수입은 어려워졌다. 요컨대 한국산 제품이 저렴해진 것과 원/달러 환율의 하락을 정부가 어느 정도 억제한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여 지난 10년 이상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국 정부가 원/달러 환율의 하락을 억제한 것은 한국 수출업자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주고 그와 함께 1997년 경제위기 이후에 완충장치로서 적정 규모의 달러를 보관할 필요성을 충족하기 위해서 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누적된 달러는 상당부분 미국 국채에 투자된다는 점에서 중국의 경우와 매우 유사하다. 누적된 달러로 인하여 미국에게 시뇨리지를 징수당하는 것도 중국과 차이가 없다.8)

글로벌 불균형은 미국 통화공급의 결과일뿐

이번 경기변동은 미국이 달러공급을 늘려 시장이자율을 인위적으로 인하했기 때문에 발생했음을 앞에서 지적했다. 9) 미국에서 증가된 달러공급은 환율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다른 나라로 전파된다. 달러는 다른 화폐와 달리 국제 교환수단,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교환수단이기 때문에 각국은 달러를 사용하여 국제거래를 할 뿐 아니라 필요에 따라 자국내에 달러를 쌓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미국 연방준비은행과 민간은행과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에 의해 팽창된 달러의 일부는 다른 나라로 이전된다. 그런데 중국을 포함한 상당수 나라가 엄청난 액수의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글로벌 불균형이란 미국에서 증가된 달러의 일부를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것이고 바로 그 이유로 미국에서 증가된 화폐공급의 일부는 미국 내에서 경기변동을 일으키지 않고 다른 나라에 이전되어 그 나라에서 경기변동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었다. 물론 각국의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시행하여 어느 정도 그 효과를 제거할 수 있으나 정책의 시차, 발행한 채권의 이자 등으로 인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화폐공급은 증가하지 않을 수 없다.

경기변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시간선호에 의해 결정되는 자연이자율과 중앙은행에 의해 인위적으로 낮아진 대부시장 이자율 간의 격차이다. 그 격차가 커질수록 화폐공급은 증가하고 증가된 통화량에 비례하여 경기변동의 규모와 지속 여부가 결정된다. 달리 표현하면 화폐수요가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화폐의 총재고(total stock)가 화폐의 구매력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하고 경기변동에 결정적이다. 글로벌 불균형은 달러의 총재고의 크기를 변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불균형은 달러의 총재고가 지역적으로 분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사실 글로벌 불균형으로 인하여 국제 지폐 발행 국가인 미국은 그 만큼 경기변동을 적게 겪고 있고 그 만큼 외국인으로부터 시뇨리지를 마치 조세처럼, 그러나 눈치를 채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징수해왔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 즉 국제 지폐 '피발행국’은 글로벌 불균형만큼 경기변동을 떠안게 되었고 시뇨리지를 징수당한 것이다. 만약 달러의 총재고가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글로벌 불균형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미국은 지금보다 더 규모가 크고 영향이 오래가는 경기변동을 겪을 것이다. 10)11)

요컨대 글로벌 불균형은 미국이 증대시킨 화폐공급의 결과일 뿐 아니라 미국이 달러를 보유한 국가에서 시뇨리지를 징수해 왔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12)그러므로 글로벌 불균형이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이라는 주장이나 견해는 틀린 것이기 때문에 불균형의 해소가 경제위기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그리고 비록 부분적일지 모르지만 미국은 이를 통하여 자신의 잘못을 다른 나라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전용덕 / 대구대 무역학과 교수

저자소개: 전용덕 대구대 무역학과 교수는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자유주의 철학과 시장경제원리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고 있다. 주요저서와 논문으로 는 '공정거래법의 모순', '헌법재판소 판례연구(공저)’, '시장경제의 이해(공저)’, Conglomerates and Economic Calculation 외 다수가 있다.

 


1)Allen and Hong(2010)은 미국 연방준비이사회의 확장적 통화정책과 글로벌 불균형을 이번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Allen, Franklin and Joo Yun Hong, “Why Are There Global Imbalances?: The Case of South Korea”, 2010 참조. 국제통화기금의 올리버 블랜차드(Olivier Blanchard), 미국의 정치인들, 일부 경제학자 등도 글로벌 불균형을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2)이 점에서 글로벌 불균형 이슈는 이미 순수한 경제 문제라기보다는 정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경상수지 흑자를 거의 문제 삼지 않고 있는 것이 그 점을 암묵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3) 1990년대 닷컴 버블을 실중 분석한 문헌으로는 Callahan, Gene and Roger Garrison, “Does Austrian Business Cycle Theory Help Explain the Dot-Com Boom and Bust?,” Quarterly Journal of Austrian Economics Vol.6, No.2, Summer 2003, pp.67-98이 있고. 2000년대 부동산 버블에 대한 이론과 실증을 분석한 문헌으로는 전용덕․김학수, <정책실패와 국제금융위기>, 한국경제연구원, 2009. 12 등이 있다.
4)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약 미국이 달러공급을 크게 늘리지 않아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았다면 수출은 쉬워졌고 수입이 어려워졌을 것이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미국은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화폐발행에 따르는 시뇨리지(seigniorage)를 획득하기 위하여 국제 교환수단인 달러를 언제나 과다 발행할 유인이 있고 1971년 이후에는 거의 언제나 그렇게 한 결과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5)위안화의 인위적인 평가절하는 중상주의 정책의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이다. 중상주의는 일차적으로는 국내외 경제주체 간에 소득을 재분배하게 만든다. 궁극적으로 중상주의는 중국과 미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를 가난하게 만든다. 여기에서 가난하게 만든다는 것은 중상주의를 채택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하여 그렇다는 것이다. 중국의 중상주의가 가져올 폐해와 해결책에 대해서는 전용덕, 「미국과 중국의 환율 논쟁: 위안화 절상이 중국과 미국에 미치는 영향」, 2010, 미발표 원고 참조
6)중국 위안화의 인위적인 평가절하는 대미 수출 재화의 가격을 저렴하게 만든다. 미국 시장에서 중국과 경쟁하는 재화도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두 가지 요인이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7)일본의 '엔’과 유럽의 '유로’도 국제 교환수단이다. 미국의 달러만큼 광범위한 지역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 점에서 엔과 유로의 팽창도 자국뿐 아니라 외국에 달러와 같은 영향을 미친다.
8)시뇨리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전용덕(2009, 2010) 참조
9)각국은 스스로 화폐공급을 증대시켜 경기변동을 겪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미국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화폐공급을 증가시켜 경기변동을 초래했다. 이에 대해서는 전용덕, 「이중고를 겪고 있는 한국경제」, 자유경제스쿨 홈페이지, 2009, 참조
10)이렇게 실제로 일어난 일과 현실적으로 채택하지 않았지만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을 비교하는 것을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고실험이야말로 경제학과 같은 사회과학에서 매우 유용한 방법론이다.
11)아마도 이것이 1920년대 대공황보다 이번 경제위기가 상대적으로 영향이 적을 것으로 짐작되는 한 가지 이유이다. 1920년대와 비교하여 지금 달러를 쓰는 인구가 거의 무한대로 증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달러화의 공급 증가가 미국 국내에 미칠 영향은 작아지고 그 반대로 미국을 제외한 외국에 미칠 영향은 크고 외국인이 지불해야 하는 시뇨리지는 적지 않다. 글로벌 불균형은 그 점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이다.
12)이 글의 목적은 글로벌 불균형이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이 아님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위기에 대한 처방을 간략하게 제안하고자 한다. 경제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팽창된 달러의 공급을 줄이거나 자유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 화폐․금융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달러 공급량을 어느 때보다 크게 증가시킴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 통화팽창은 다음 경기변동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그런 통화팽창은 글로벌 불균형의 해소를 오히려 어렵게 만들 것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개혁 프로그램에는 화폐제도와 금융제도를 자유시장 원리에 맞게 개혁하는 내용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점 때문에 앞으로 언젠가 또다시 경기변동이 재발할 것이다. 자유시장 원리에 맞는 화폐제도와 금융제도의 개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전용덕, <오스트리아학파의 경기변동이론과 화폐․금융제도>, 한국경제연구원, 2009를 참조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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