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개방형병원 허용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투자개방형병원의 필요성을 인정한 반면, 보건복지가족부는 충분한 의견수렴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사실 의료법은 의료인들만 병원을 설립할 수 있으며, 일반인이나 회사는 병원을 설립할 수 없도록 엄격한 진입규제를 하고 있다. 이러한 진입규제는 의료서비스 공급자간의 경쟁을 제한하고 투자재원 조달을 어렵게 하여 전반적인 의료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투자개방형병원 설립을 허용하면 투자 재원의 유입과 의료 공급자간 경쟁을 활성화함으로써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하고 의료산업의 경쟁력을 제고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다. 그러므로 포퓰리즘에 기댄 무소신으로 또 다시 투자개방형병원 설립이 무산된다면, 의료산업의 선진화는 요원할 뿐이다. |
투자개방형병원의 허용을 둘러싸고 이해하기 힘든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반대하는 측은 물론이고 찬성하는 측까지 과장되거나 논리적이지 않은 주장을 쏟아내고 있고, 심지어는 연립정부도 아닌 다수당 단일 정부 내에서 상반된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국가 경제와 우리 보건의료체계의 특성을 총체적으로 조망하지 못하는 편협한 몰이해와 의료의 '비영리성’이라는 국민의 막연한 환상과 우려에 기대는 포퓰리즘이 합리적 정책결정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이다.
차별적 진입제한 규제하고 있는 의료서비스 시장
알다시피 우리 의료법은 의료인은 병원을 설립할 수 있는데 반하여, 일반 시민과 상법상 회사는 병원을 개설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의료서비스 시장에의 차별적 진입제한 규제를 부과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진입 규제는 과당경쟁을 방지하고, 상품이나 서비스의 질(quality) 저하를 예방하여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논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특히 의료법에서 진입규제를 부과하는 이유를 굳이 들자면 “의료의 비영리성 확보”를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쟁점은 과연 이러한 진입규제가 합리적인 규제목표를 갖고 있는가? 만약 규제목표가 합리적이라면 규제목표에 합목적적인 규제수단인가? 하는 점을 규명하는 일이 된다.
첫째, 과당경쟁을 이유로 일반인과 영리법인의 의료시장 진입을 제한하는 것은 규제의 목표와 수단 양 측면 모두 합리적이지 않다. 현재까지 우리나라 의료시장의 진입 총량을 규제할 필요성은 제기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국민의 의료서비스 요구가 양적, 질적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건강보장을 충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기반구조인 의료서비스 산업에의 참여자와 투하 자본이 더욱 증가되어야 한다. 의료서비스 공급이 크게 부족하던 수십 년 전부터 현재까지 동 규제가 지속되어 왔다는 것은 동 규제의 목표가 과당경쟁의 예방에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설혹 과당경쟁의 방지가 진입제한 규제의 합리적 목표인 경우에도, 설립 주체의 성격을 따질 것 없이 의료서비스 시장 진입의 전체 총량을 규제하는 것이 합목적적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진입제한 규제는 목적에 어긋나는 불필요한 규제일 수밖에 없다.
둘째, 동 규제가 “의료의 비영리성 확보” 목표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규제수단인가? 매우 회의적이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종합병원의 16.3%, 병원의 56.9%, 그리고 거의 모든 의원이 의료인 개인 소유의 영리(for-profit) 의료기관이다. 개인 의료기관의 경우 이익배당이나 재산 처분 등에 관한 아무런 제약이 없으므로 법적, 실체적 영리의료기관은 광범위하게 실존하는 셈이다. 이처럼 의료인 개인에게 영리 의료기관 개설이 허용되어 있는 상황에서 “의료의 비영리성 확보”를 이유로 일반인 및 영리법인의 진입을 금지하고 있는 것은 합리적 근거나 이유를 찾기 어려운 차별적 규제일 뿐이다.
진입규제는 의료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
민간 비영리법인 의료기관의 실제 행태에 비영리성이 실제로 발현되느냐 하는 것도 의문이다. 민간 비영리법인 의료기관의 경우 기본재산(자기자본)만으로 운영하는데 한계가 있어 대다수가 상당액의 차입(타인자본)을 통해 투자 및 운영 자본을 조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의료 활동에 의해 발생한 이익을 타인자본 조달의 비용인 이자를 갚는데 충당하여야만 한다. 그런데, 이익을 이자를 갚는데 충당하는 행위는 영리법인인 회사가 이익을 주주에게 배당하는데 사용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별다른 차이가 없다. 오히려 이자 상환의 부담은 이윤 배당의 부담에 비할 바가 아니므로 필요하다면 영리의료기관 이상의 영리행동을 통해 재정을 확보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민간 의료기관은 필연적으로 정부의 재정지원, 기부금 등 별도의 수입이 존재하지 않는 한, 비영리나 영리를 막론하고 이자 변제 또는 이윤 배당을 위해, 그리고 재투자 재원의 확보를 위해 이윤추구행위를 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업 활동의 내용에 있어서 영리, 비영리 의료기관 사이에 별다른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은 모든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예컨대, 일반적인 의료소비자가 동네 병원을 이용할 때 개설주체가 개인(영리)인지 의료법인(비영리)인지 분별해 가면서 이용하는가? 거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다.
민간이 90% 이상의 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 의료의 현실에서 “의료의 비영리성”을 진입제한 규제를 통해 확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허망하다. 진입제한 규제 보다는, 일반인 및 영리법인 개설 의료기관을 포함한 모든 의료기관에 대하여 공공성을 촉진하기 위한 각종 유인 및 방안을 어떻게 하면 더욱 정교하게 마련하고, 더욱 엄밀하게 집행할 수 있느냐에 “의료의 비영리성 확보”가 달려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처럼 현재의 의료기관 개설 주체 규제는 규제의 목표, 수단 모두 합리적이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불합리한 규제가 우리 의료, 그리고 의료소비자인 대다수 국민에게 주는 해악은 결코 작지 않다. 일반인과 영리법인의 참여를 부당하게 가로막아 소비자를 향한 의료공급자간의 경쟁을 제한하고, 투자재원 조달을 어렵게 하여 전반적인 의료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장되고 왜곡된 투자개방형병원 부작용
최근 발표된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공동 연구용역 결과를 보면, 의료서비스 시장의 진입규제를 개혁하여 투자개방형병원 설립을 허용하면 소비자 선택권이 확대되고, 부가가치 및 고용이 창출되는 등 산업적 측면에서 기대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 적극적으로 개혁해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갈등과 혼선을 빚는 것은 개혁이 빚을 부작용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부작용에 대한 지적은 잘못되었거나 과장되어 있다.
'중소병원 몇 곳이 폐쇄된다’가 중요한 부작용으로 거론되는 것을 보면 조금은 한가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투자개방형병원 허용은 필연적으로 의료공급자의 총량을 증가시키고, 동시에 공급자간 경쟁을 심화시킬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공급자는 경쟁에서 탈락하게 된다. 시장진출입이 자유로우면 공급의 공백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렇게 되는 것이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소비자의 편익을 증대시키는 지름길이다. 그런데 무엇을, 누구를 염려하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의료비 증가 우려 역시 매우 왜곡되어 있다. 현행 제도 하에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유지하면 정부에서 정한 건강보험 수가가 모든 의료기관에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개별 환자 진료비가 증가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 건강보험의 수가 규제로 현재 개인(영리)병원이나 의료법인(비영리)병원이나 환자 진료비에 있어 별 차이가 나지 않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물론 투자개방형병원 허용으로 의료공급자가 증가하게 되면 전체 의료비는 증가할 수 있다. 3분 진료에서 5분 진료, 10분 진료로 국민이 원하는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공급을 늘려야 하고, 그러자면 의료비가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정부가 세심하게 관리하고, 소비자의 현명한 선택이 가능하도록 정보 제공을 더욱 활성화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증가하는 의료비가 가치 있게 쓰여지도록 하면 현 단계에서 의료비 증가는 큰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의료비가 증가하는 이상으로 고용과 부가가치 창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큰 염려는 저소득계층의 의료이용이 부당하게 제약받지 않을까 하는 점인데, 이러한 염려 역시 상당부분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투자개방형병원이 '2배에서 4배까지 진료비를 올려 받을 수 있다’면 마땅히 우려할 만하다. 그러나 전제가 대단히 잘못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행 제도 하에서처럼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유지되는 한 투자개방형병원의 진료비도 현재의 개인(영리) 병원과 전혀 다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투자개방형병원 허용은 의료서비스 산업 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투자 재원의 유입과 의료 공급자간의 실효적 경쟁을 활성화함으로써 혁신 수준과 효율성을 제고하고, 이를 통하여 의료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으로 의료소비자 요구에 부응하여 더욱 큰 가치와 편익을 제공할 수 있는 튼튼한 기반을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영리”의 환상에 젖은 무모하고 대안 없는 비판과 정부에 대한 막연한 불신, 그리고 포퓰리즘에 기댄 무소신이 개혁의 발목을 잡는 상황을 돌파하지 못하는 한, 우리 의료의 선진화는 요원할 뿐이다. ■
이기효 _ 인제대 보건대학원장
저자소개: 이기효 교수는 성균관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한국병원경영학회 정책연구이사와 국무총리 산하 보건의료발전특별위원회 전문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인제대학교 보건대학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