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기업투자에 있어서 보수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부 기업이 최근 신성장동력 산업을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대부분의 기업들은 과거와 같은 과감한 투자를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기업의 투자의사 결정구조가 변화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실물투자나 R&D투자에 있어서 관련된 정책과 제도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기업규제를 지속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반기업정서를 완화하고 지배체제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창업규제 및 노동규제를 완화해야 할 것이다.

기업이 지속적인 성장을 하려면 투자확대를 통해 생산설비를 증대시켜야 한다. 기업의 설비투자 확대는 생산능력을 확충시킬 뿐만 아니라 자본스톡의 증가를 통해 한 나라의 성장잠재력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한국은행의 설비투자 증가율을 보면 2008년에 -2.0%였던 것이 2009년도에는 -8.9%로 크게 감소하였다. 우리나라는 왕성한 설비투자로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한 국가 중의 하나였다는 점에서 투자감소로 인한 장기 성장잠재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업투자를 살리기 위한 노력 필요

최근 기업투자가 저조한 이유는 수익성있는 사업을 선택하는데 어려움이 있거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은데 기인한다. 최근 일부 기업은 금융위기 기간에도 많은 이익을 실현함으로써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행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기업의 저축액은 지난해 보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고, 또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비해 높은 이익률을 실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익률 향상을 통해 내부유보를 증대시켜 왔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 기업들은 부채 등 외부에서 조달된 자금은 물론 내부유보를 이용하여 과감하게 투자하는 모습을 보였던 때도 있었다. 최근 들어 기업의 수익성 개선, 기업들의 차입경영 자제 등으로 부채비율은 대폭 낮아졌지만, 일부 기업이 최근 신성장동력 산업을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대부분의 기업들은 과거와 같은 과감한 투자를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투자가 비교적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기업의 투자를 어떻게 하면 늘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성장산업을 찾고 있는 기업이나 고성장을 추구하고 있는 정부나 마찬가지이다. 경제위기를 경험하면서 기업들은 투자에 따른 위험을 신중하게 고려하기 시작하였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기업들은 위험한 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했지만, 최근 들어 기업투자에 있어서 보수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있으니 투자하라는 식으로 투자를 재촉하는 것만으로 기업의 투자를 증대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기업들의 투자 의사결정 구조가 변화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특히 1998년도 외환위기와 2008년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기업들은 투자에 따른 위험, 불확실성을 더욱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현존하는 위험하에서 투자로부터 성장과 이익이 나는지를 보다 면밀하게 판단하는 투자패턴을 보이고 있다.

기업투자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투자에 따른 불확실성과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가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불확실성은 기업에 영향을 주는 경제정책, 제도변화, 기업 간 경쟁양태 등 다양한 경제환경에서 생성되기도 하지만, 정치․사회변화와 같은 경제외적 변화에 의해서도 나타난다. 설비투자는 일단 투자되면 다시 현금화하기 어려운 속성 때문에 기업들은 투자를 결정할 때 불확실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불확실성이 높은 경우에는 불확실성이 줄어들 때까지 투자를 연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더구나 투자규모가 큰 경우에 기업들은 불확실성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설비투자액은 전체 설비투자액 중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투자의 불확실성에 대한 민감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대규모 투자일수록 회수가 불가능한 비용이 커지고 한번 투자한 것은 되돌리기 쉽지 않기 때문에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고 투자위험이 커지는 경우 투자연기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기업의 경영환경 개선이 과제

기업들이 계획된 투자를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장기적인 시각에서 기업환경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 기업활동을 어렵게 하는 각종 제도,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발생하는 기업경영 상의 비용증가 요인 및 기업을 둘러싼 규제환경을 대폭 개선할 필요가 있다.

우선 과거와는 달리 기업이 투자를 결정하고 그에 대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투자확대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의 지배체제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일이다. 과거에는 대기업 간에 위험공유를 통해 투자위험을 분산하는 시스템이 작동하였다. 이 결과 투자규모가 크고 위험한 투자 프로젝트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는 체제가 작동하였다. 외환위기를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 제도들은 대기업 체제 및 기업 지배구조의 불안정성을 높임으로써 기업들이 과거처럼 과감한 투자정책을 펼치는 것을 어렵게 하였다.

투자를 위한 위험공유 체계가 무너지고 각 기업들은 투자에 따른 모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됨에 따라 오늘날 기업들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보수화된 투자정책을 실현하고 있다. 기업가의 투자의욕과 기업가정신 발현을 위해서는 팽배한 반기업정서를 완화하고 지배체제의 불확실성을 줄임으로써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가가 투자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투자자금을 공급하는 은행의 대출은 뚜렷하게 단기화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자본시장 역시 기업의 수익성과 주가 등 주주중시의 경영과 기관투자가의 영향력 증대로 인해 기업경영의 단기 업적주의가 더욱 강화되었다. 이같은 단기주의 역시 기업의 장기 대규모 투자를 더욱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둘째로 기업투자 확대를 위해 국내외 기업이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도록 기업환경을 개선하고 정책의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 세계 각국은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정책경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찾아 각지로 이동하고 있고, 각국은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세계 유수의 기업을 유치하려는 전략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업환경은 2009년 19위로 이전에 비해 많은 환경개선이 이루어졌으나 노동환경이나 창업환경은 여전히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투자 확대를 위해 기업들을 옭매고 있는 규제와 제도적인 제약들을 풀고 개방을 더욱 확대하여야 한다. 창업규제나 노동규제를 푸는 일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쉽도록 할 뿐만 아니라 규제완화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역할을 한다.

제조업뿐만 아니라 제조업을 뒷받침하는 서비스산업과 지식집약적인 서비스 산업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기존의 이익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른 진입장벽을 없애고 새로운 기업의 진입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글로벌 경제하에서 국내기업 뿐만 아니라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해 기업친화적인 기업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기업의 투자활동에 대한 높은 정부규제, 열악한 금융지원 체제, 높은 지가 및 노사분규, 인력난 등은 기업활동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현재 논란이 진행 중인 각종 혁신도시, 기업도시 및 수도권규제정책 등 투자관련 제도 및 정책은 기업의 투자 불확실성을 크게 하는 요인으로 보인다.

연구개발투자 확대방안 마련

셋째로 실물투자의 확대와 함께 차세대 성장엔진의 창출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하는 연구개발 투자의 확대가 필요하다. 우리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07년도 전(全)산업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투자비율은 2.43%로 2001년도의 2.30%보다 미미하나마 다소 증가하였다.

이미 IT 등 지식·기술집약적인 첨단산업의 성장속도가 전통산업에 비해 빠르고 또 이 부문의 고용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이 고수익과 높은 연구개발투자로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과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기술개발 투자를 더욱 활발히 하는 것이다.

향후 우리나라 기업이 중국과 선진국 가운데에서 샌드위치 상태에 빠지지 않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기업이 보유한 현금흐름이 실물투자뿐만 아니라 신성장동력 발굴을 뒷받침할 연구개발 투자로 이어지도록 조세감면 등 정책적인 유인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첨단 성장동력 산업의 창출 및 고급인력의 일자리를 만드는데 기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병기 /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저자소개: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경제학 박사)은 기업이론 및 기업 경영환경 개선에 관한 제도연구를 하고 있으며, 최근 저서로 “기업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의 영향분석(2004)”, “금융발전이 기업성장에 미치는 영향분석(2008)”, “사회적 자본의 축적과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과제: 신뢰의 정책적 함의(200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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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학교급식사고를 계기로 직영을 골자로 하는 학교급식법이 개정되었으며, 올해 6월 지방선거에서 정치인들이 무상학교급식 공약을 들고 나옴에 따라 또 다시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직영급식을 주장하는 측의 명분은 학생의 권리나 건강이라는 교육적 목적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목적이 짙다. 그리고 무상급식 시행은 상당한 예산이 소요되며, 그러한 예산은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조세부담을 가중시키고 재정낭비를 초래한다.

필자는 몇 해 전부터 학교급식이 직영화되는 정책방향의 문제점을 여러 차례 지적하고, 그것이 곧 무상급식 주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1) 이러한 지적과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부 좌파단체와 야당 정치인, 그리고 심지어 여당인 한나라당의 유력한 국회의원조차도 무상학교급식을 주장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모르긴 해도 다가올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해서인 듯하다. 사안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무상학교급식의 부당함을 조목조목 다시 거론하는 것은 매우 장황한 말을 다시 반복해야 하는 일이므로 상론은 피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지방선거 전략으로 대두된 야당 측이 주장하는 무상학교급식의 배경과 문제점, 그리고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의 논거가 갖는 허점을 중심으로 논의하기로 한다.

급식직영화 주장, 교육적 목적보다는 정치적 목적

무상학교급식은 학교급식 정책의 종착역과 같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학교급식 형태의 선택 여지를 없애고 직영급식을 의무화(정확하게, 강제화)한 것은 무상급식으로 가는 전초전인 셈이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의 전개과정은 이러하다. 2006년 CJ 푸드시스템의 학교급식 안전사고를 계기로 하여 당시 정강 정책의 좌우여부를 막론하고 여야가 합의하여 학교급식법을 개정한다고 하면서 3년 이내에 모든 초·중등학교의 학교급식을 직영으로 하는 '개악(改惡)’한 바 있다. 소수 정당이던 민노당과 열린우리당의 일부 의원이 주장하는 직영급식의무화를 몇몇 식품 안전사고를 빌미로 조성된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한나라당이 합세하여 학교급식법의 개악에 합의를 해 준 것이다. 이를 근거로 하여 현재 시점에서 서울과 부산의 일부 학교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학교가 직영화를 '완료(?)’한 상태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필자를 포함하여 적지 않은 이들이 우려한 바는 학교급식의 직영화는 무상급식으로 가는 가교(架橋)가 된다는 점이다.

무상학교급식의 폐해를 언급하기 전에 직영급식 전환에 관하여 곱씹을 필요가 있는 사항이 몇 가지가 있다.2) 첫째, 급식안전사고가 직영보다 위탁급식에 더 많다는 그릇된 상식이다. 안전사고의 규모나 질 면에서 그렇다고 할 근거가 전혀 없다. 둘째, 위탁급식에서 일어난 사고는 크게 보도되고, 직영급식에서 발생한 사고는 잘 보도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직영급식의 은폐 의혹이 항간에 불거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셋째, 직영급식이 학교급식 업무의 책무성을 강화한다고 알려진 점이다. 오히려 직영급식에서는 경쟁이 유발되지 않기 때문에 책무성이 결여된다고 보아야 옳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직영급식은 급식의 질이 만족스럽지 못 할 경우 위탁급식처럼 업체를 변경할 수 없게 된다. 넷째, 직영급식은 전교조와 그 외곽단체, 그리고 좌파성향의 정당과 단체들이 줄기차게 요구한 사항이라는 점이다.

이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우려한 것처럼 학교급식의 직영화가 곧 조합원 증가라는 자신들의 이익과 직결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직영급식을 주장하는 단체와 정당의 의도가 겉으로 드러난 명분은 학생의 권리나 건강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교육적 목적보다는 정치적 목적이 짙다고 비판받고 있다.

무상급식, 세금부담 증가시키는 포퓰리즘

그러면, 왜 학교급식의 직영화가 무상급식으로 가는 가교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직영화를 통하여 학교급식업무 종사자들의 신분이 위탁업체의 직원에서 공무원 신분이나 사립학교 교직원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며, 이는 다시 이들의 노조 가입이 훨씬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상급식의 전 단계로서 직영급식을 의무화하면, 자녀의 학교급식이 무상이라는 공약이 보다 실현하기 쉬워지게 된다. 여기에 학부모들은 당장 연간 수십 만 원대의 급식비가 절약되는 '이익’을 보는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이는 결국 다른 예산을 전용할 수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세금을 증가시키는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더욱이 학교급식의 직영화에 이은 무상급식은 문제점을 몇 가지만 적시하도록 한다. 첫째, 무상급식은 효율적이지 못한 정책이다. 급식 업무의 책무성을 물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학교급식 소요 재정의 낭비를 초래한다. 부유한 집 자녀가 무상으로 급식을 받는 것은 이들에게 기존처럼 유상으로 했을 경우에 비하여 재정 손실도 크기 때문이다.

둘째, 무상급식은 정의롭지 못한 정책이다. 특히 무상급식은 개인의 선택을 말살하는 시도이다. 마치 택시나 승용차를 탈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사람들에게도 지하철을 무임승차하게 해줄테니 자신이 선호하는 일체의 운송수단을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정작 무임승차에 소요되는 추가 비용은 기존 무임승차 대상자들이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무임승차할 필요가 없는 이들이 전액 부담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셋째, 학교급식의 질이 저하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과 수단이 강구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무상급식이 관료화와 공기업이 지니는 단점을 그대로 답습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새는 양동이(leaky bucket)’ 격이다.

넷째, 무상급식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내용 중에 선진 각국이 모두 학교급식을 무상으로 하는 것처럼 홍보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북구(北歐) 몇 국가이외에는 모두 수익자 부담 원칙이고, 저소득층 자녀에게만 무상급식을 실시한다. 오히려 무상급식을 통하여 이상국가를 주장한 나라는 이미 몰락한 과거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다섯째, 무상학교급식을 주장하는 민주당, 민노당의 정강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에는 부합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무상급식이 포퓰리즘에 근거하는 한, 이를 원상으로 돌리기는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주지하는 사실이지만, 무상학교급식은 몰락한 공산주의 국가나 과거 사회주의 국가의 실패한 정책을 고스란히 다시 반복하겠다는 것이다. 역사를 거꾸로 거슬러 가자는 것이다.

선심성 공약 무상학교급식, 재정낭비 초래한다

좌파 정책 노선에서 비롯된 무상학교급식의 폐해를 지적하는 것은 이즈음에서 마무리하기로 하고, 집권여당의 원희룡 의원이 주장하는 내용을 검토하기로 하자.

무상학교급식을 주장하는 것만 보면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은 좌파정당 소속의원처럼 여겨지는 정치인이다. 과거 좌파정권처럼 그가 소속된 집권 한나라당이 좌파 정책이념을 표방한다면 원 의원의 무상학교급식주장은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또 우리나라 정치 여건 상 소속 정당의 당론으로 정해진 사안조차도 소속의원이 이견(異見)을 내는 상황도 가능하다. 그러나 원 의원 자신이 한나라당의 서울특별시장 후보 중 유력한 인사 중 하나라는 점에서 그의 주장을 면밀하게 검토해 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앞서 지적한 바 있듯이, 무상학교급식 공약은 매우 포퓰리즘적인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공약을 내는 근거를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유권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원 의원은 한 일간신문3)의 독자란을 통하여 무상학교급식의 '타당성(?)’을 개진한 바 있다. 그가 이 신문의 칼럼 란을 통하여 주장한 바를 살펴보자.

첫째, 원희룡 의원은 무상학교급식이 선심 공약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는 “예산 확보만 가능하다면 아이들의 건강을 챙기고 학부모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 무상급식은 직접적으로 가계의 부담을 덜어내 실질소득을 높여 주는 효과가 있다. 한 달에 두 자녀를 가진 가정의 급식비 부담은 약 8만 원 정도이다. 매월 들어가는 것이니만큼 적지 않은 돈이다.”라고 하면서 무상학교급식이 선심 공약이 아닌 것처럼 언급한다. 그러나 저소득층 자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상으로 하는 중식지원사업 등이 이미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있다. 극빈한 아이들이나 차상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하는 것 이외에 모든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무상급식은 아이들의 기호나 성향에 관계없이 실시하므로 '새는 양동이’처럼 재정 낭비를 가져온다. 즉 별 효과가 없는 선심공약에 불과하다.

둘째, 원의원은 무상학교급식을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다. 무상학교급식은 누가 보아도 좌파 정책이고 사회주의 정책이다. 대통령이 집권 2년차부터 '친서민’이니 '중도실용’을 주장하니 집권 여당의원이 이를 표방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다. 그러나 무상학교급식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의 '중도실용’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바로 이렇게 부당한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비효율적이고 공정하지 못한 무상학교급식으로 중산층 유권자에게 급식비 월 3∼8만 원을 절약하는 대신에 다른 세목으로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을 알려야 할 것이다.

셋째, 원의원은 재정 상태로 보아 경기도보다는 서울특별시가 무상급식을 실시하기 더 적합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이 주장도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4) 서울특별시는 직영급식을 실시하는 데에도 가장 어려움이 많은 지역이다. 당장 회계 상으로 예산이 다른 시·도에 비하여 재정 상태가 좋지만 조리장 확보 및 급식시설 설비 설치비용을 합산하면 서울특별시 재정만으로 실현 가능한 일이 아니다. 원 의원의 지역구가 서울 지역이니 이는 자신이 더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원의원이 전국 초·중등학교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데 필요한 소요예산을 추정한 금액은 1조 8,000억 원으로 잡고 있지만, 필자가 추정한 바로는 약 3조 원이 소요된다.5) 우리나라 전체 예산의 약 1%이다. 설사 그의 추정 소요액이 맞다 할지라도 약 2조 원의 금액은 항공모함 1척을 건설할 수 있는 천문학적 비용이다.

다섯째, 원의원의 주장은 자신의 정치적인 타산으로 나왔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재정 상태로 보아 경기도 교육감의 무상학교급식은 안 되고 서울시는 무상급식이 가능하다6)는 그의 주장 때문이다. 이 논법 때문에 야당 측 유력한 서울특별시장 예비후보로부터 맹공을 받기까지 하였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재정 상태가 가장 좋다고 서울 지역이 무상급식을 하기 좋은 지역이 아니라 거꾸로 가장 어려운 지역이다.

무엇보다도 원 의원의 주장은 정책 이념에 비추어 정당화되기 어려울 듯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원의원이 자신의 주장을 개진한 바로 그 날짜 그 신문의 바로 다음 면에 게재된 칼럼7)이 이를 확인해 준다는 점이다. 이 칼럼의 의도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돈 쓰는 방식 네 가지를 언급하면서, 공무원의 돈 씀씀이를 경계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칼럼의 내용을 목하 논의하고자 하는 무상학교급식에 적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남의 돈을 남을 위해 써야 할 공무원들의 공공행위가 암암리에 자신의 의도와 목적을 위해 쓰여 진다면, 그것은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온당하지 못한 것이라는 점은 그대로 무상학교급식 주장에도 적용된다. 앞서 예를 든 바와 같이, 무상급식 공약은 모든 이에게 지하철을 무임승차하게 하고 비용은 그러한 조치를 한 사람이 아니라 제3자가 고스란히 부담하게 하는 경우와 정확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무상학교급식의 폐해가 장기적 관점에서 명백하게 드러날 상황에서 공적인 용도(사실 공적인 용도가 아니라 당장의 가계비 절감이라는 인기영합이지만)처럼 포장된 무상학교급식 공약이 결국 선거를 의식해서 나온 것이라면, 남의 돈을 나 자신의 사적인 목적에 사용하는 셈이다. 이 점에서 무상학교급식을 주장하는 야당과 좌파 단체들이나 집권여당 의원의 처지는 상호간 크게 다르지 않다.

김정래 / 부산교육대 유아교육과 교수

저자소개: 김정래 교수는 영국 University of Keele 대학원에서 교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부산교육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전교조 비평’, '서양교육사절요’, '고혹 평준화 해부' 외 다수가 있다.

 


1) 보고서로는, 학교급식법 재개정을 위한 위탁급식의 합리적 운영 방안 연구(사단법인 한국급식협회, 2007년 6월, 한국급식협회 정책연구과제); 서울특별시 학교급식 운영 개선방안 연구(한국교육개발원, 2003년 12월, 한국교육개발원 수탁연구 CR 2003-21); 학교급식법 개악을 통해 본 국가의 교육독점: 학교급식법의 문제점과 재개정 방안(자유기업원 CFE Report 2007년 10월 10일, www.cfe.org); 학교급식 직영화 및 무상화 방안의 타당성 검토(경기개발연구원 CEO Report No. 25, 2009년 11월) 등이 있으며, 발표원고로는, 학교급식법 재개정을 위한 학교급식 정책의 방향, 부산의 학교급식 이대로 좋은가?(국회의원 권철현 주최 토론회 발표원고(2006년 11월 29일)와 “학교급식 직영화”의 문제점과 학교급식법 개정방향, “학교급식 직영화” 이대로 좋은가?: 현행 학교급식법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학교급식법 개정 공청회(2009년 11월 19일)가 있으며, 신문시론으로는, '위탁급식으로 돌아가라,’ 한국경제신문 시론(2008년 10월 10일, A43면); '학교급식 직영이 능사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시론(2006년 6월 30일, A46면) 등이 있다.
2) 위탁급식 대 직영급식의 장단점은 이미 여러 차례 논의되고 또 보도된 바도 있다. 동아일보 2009년 11월 23일 A1면(남윤서, 황규인 기자) 참조. 직영급식과 위탁급식의 장단점을 마치 양시론(兩是論)과 양비론(兩非論)의 입장에서 논의하는 것은 무상급식의 폐해를 온전하게 지적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비론과 양시론의 사이에서 정책이 방향을 못 잡는 것처럼 보도되기도 한다. 동아일보의 이 보도도 이에 해당한다. 특히 필자는 두 가지 방식이 지니는 양비론과 양시론이 현재 진행되는 학교급식 논의에 도움에 되지 않음을 지적했음에도, 이 보도는 필자의 발표내용을 소개하면서도 정작 이 논점을 생략하고 양비론과 양시론만을 보도한 바 있다.
3) 조선일보 2010년 2월 5일자 A29면, [편집자에게] '초등학교 무상급식 선심공약이 아니다.’
4) 각주1의 서울특별시 학교급식 운영 개선방안 연구 참조
5) 각주1의 학교급식 직영화 및 무상화 방안의 타당성 검토 참조.
6) 폴리뉴스 2010년 2월18일자.
7) 조선일보 2010년 2월 5일자 A30면, [송희영 칼럼] '남의 돈 자기를 위해 쓰는 직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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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연합회가 은행권 사외이사제도 모범규준을 발표했다. 거수기로 전락한 사외이사들을 실질적으로 경영진을 견제하는 사외이사로 교체하겠다는 취지의 개선안이지만, 그 효과는 회의적이다. 그 이유는 우선 사외이사제도 자체가 우리 기업지배구조에 긍정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이번 개선안이 은행경영의 효율성 제고보다는 사외이사들의 임기를 강제로 제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강제규정과 관치보다는 은행에 자율권을 주는 것이 금융기관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더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은행권 사외이사제 모범규준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

'그 나물에 그 밥' 평가받는 모범규준

은행연합회가 지난 25일 은행권 사외이사제도 모범규준을 확정해 발표했다. 모범규준은 법적 규제기관이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제성은 없다고 해석되고 있지만 자율규제기관인 은행연합회에서 작성한 것이기에 충분한 규범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향후 금융규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면에서는 관치금융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어 우리나라 은행규제의 현실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사건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은행에 대하여 은행법을 통해 동일인 주식소유한도를 설정해 놓아 주인없는 은행을 만들어 놓았다. 따라서 IMF외환위기 이전에는 재경부를 비롯한 은행감독원 등 금융감독기관이 은행임원들의 선임권을 행사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은행의 지배구조 개선 차원에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두어 사외이사를 비롯한 이사 및 은행장 선임에 여전히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최근에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은행들의 지배구조의 문제점들이 다시 제기되면서 사외이사의 임기제한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이번 모범규준을 마련하여 은행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자 하는 정부의지가 엿보인다.

그러나 이번 개선안 역시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평가를 비켜가기는 어려울 듯하다. 마치 공기업의 지배구조개선안을 보는 듯하다.

기업지배구조에 긍정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외이사제도

모름지기 기업의 지배구조란 경영효율성을 확보하는 수단을 의미한다. 즉, 최고의 경영성과를 보이는 기업의 지배구조가 가장 최선의 지배구조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은행연합회가 마련한 사외이사제도 개선안은 거수기로 전락한 사외이사들을 실질적으로 경영진을 견제하는 사외이사로 교체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즉, 경영효율성 보다는 견제기능에 초점을 맞추어 개선안이 마련된 것이다.

사실상 사외사제도 도입초기부터 그 기대효과에 대한 논란들이 많았다. 일부에서는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된 전문가가 사외이사를 담당하는 경우 경영투명성이 제고되는 것은 물론이고, 경영효율성도 보장된다는 예찬론이 대세를 이루었다. 반면에 사외이사가 중심을 이루는 미국의 경우에도 사외이사들이 여전히 경영진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거수기로 전락했기 때문에 오히려 실효성은 없고 고비용구조만 초래하는 기업지배구조개선안이라는 지적들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도입초기와 비교하여 볼 때 이번 은행연합회가 마련한 사외이사제 개선안은 당시의 논의로 되돌아 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즉, 경영진을 견제하고 감독해야 하는 사외이사들이 전문성도 부족하고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도 못하고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개선안은 이런 거수기로 전락한 사외이사들이 지속적으로 사외이사로 재임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것이 핵심골자로 되어 있다.

그러나 경험측상 사외이사를 오래하는 것이 견제기능을 약화시키고 전문성 제고에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들은 많지 않으며, 이에 대한 연구결과도 나온 바 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사외이사제가 도입된지 12년이 경과하였지만, 사외이사제도 때문에 기업의 경쟁력이 제고되었다는 평가는 아직 발표된 바 없다. 오히려 사외이사제도 때문에 등기임원의 수가 감소하고, 이 때문에 집행임원들의 법적 지위가 불안해졌다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집행임원들을 등기하도록 법을 개정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입법안도 마련되는 등 제도적 보완을 위한 노력들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즉, 아직도 사외이사제도가 우리 기업지배구조에 긍정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외이사들의 임기 강제 제한에만 초점이 맞춰진 개선안

금번 은행연합회가 마련한 사외이사제 개선안의 핵심내용은 일부 금융CEO의 장기집권을 차단하는데 근본목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의도를 반영하듯이 사외이사의 임기와 연임 등을 제한하는 사외이사 임기상한제를 핵심내용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3년의 임기를 2년으로 단축하고, 현재 제한이 없는 사외이사의 연한을 5년으로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년 사외이사 중 5분의 1은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사외이사들이 은행의 경영효율성 제고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어도 5년이 경과되면 무조건 그만두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은행 사외이사제 개선안은 은행들의 경영효율성을 개선하는데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은행감독기관들의 밥그릇 챙기기를 위한 구세력 몰아내기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한 혐의들이 있다.

은행연합회가 이러한 의구심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는 보다 설득력 있는 개선안을 마련하였어야 한다. 즉, 사외이사선임에 대한 은행들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개선안을 마련하였었다면 보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을 것으로 이해된다.

우리나라 사외이사제의 문제점은 법이 사외이사의 선임을 강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은 물론이고, 전 금융기관, 그리고 상장회사는 반드시 사외이사를 선임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은행은 은행법상 현재는 50%를 사외이사로 선임할 것을 강제하고 있고 개선안에서도 50% +1을 사외이사로 선임할 것을 강제하고 있다. 오히려 모범규준은 과거 은행장이 겸임하던 이사회의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라는 것이다. 즉, 과거 짝수였던 이사회는 추가로 1명의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사외이사 중 이사회의장을 선임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금년 3월부터는 이사회 수가 짝수로 구성되어 있는 은행들은 추가로 1명의 사외이사를 선임해야 하며, 사외이사 중 이사회의장을 선임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개선안은 사외이사를 위한 자리를 추가로 만들고, 새로운 금융관련 인사들이 사외이사로 진입하는 계기를 만드는 개선안이라고 할 수 있다.

재논의 필요한 사외이사제 모범규준

은행의 동일인소유한도를 통한 주인없는 은행만들기의 주범은 관치금융이다. 이러한 관치금융은 우리나라 산업 중 가장 많은 국민의 혈세를 퍼붓고도 가장 세계적으로 경쟁력 없는 산업군으로 은행을 전락하게 만든 주범이라는 비판들이 많다.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공감이 가는 비판들이다. 그렇다고 어디부터 관치금융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지 해법을 제시하기도 어렵다. 아마도 “산업자본에 의한 금융자본의 지배”라는 금기가 깨지지 않는 한 영원히 관치금융은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관치금융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이번 은행연합회의 모범규준을 보면서 다시 부각되었다. 즉, 은행의 경영효율성 제고를 전제로 논의되어야 하는 기업의 지배구조개선작업이 사외이사들의 임기를 강제로 제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기업이란 경영의 창의성을 보장받을 때 비로소 수익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이번 개선안처럼 정부가 간접적으로 자율규제기관을 통하여 경영효율성과 무관한 지배구조개선을 강제하는 것은 우리나라 은행산업의 발전에 오히려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심지어 은행연합회의 모범규준안이 발표된 후 곧이어 국민연금관리공단도 이 규준을 준수하지 않은 은행에 대하여는 투자를 회수하겠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참으로 우리 은행들이 꼼짝 달싹 못하게 되었다. 현재 은행경영진들을 편드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은행들의 경영현실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최근 삼성전자가 세계최대기업에 등극하는 등 조선산업, 자동차산업, 심지어 피겨스케이팅, 골프 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기업과 국민이 세계최고의 반열에 오르는 쾌거들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우리금융기관들이 세계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쾌거는 들려오고 있지 않다. 오히려 부실화된 금융기관 소식과 이에 대한 공적자금투입논의만 그 동안 들어왔다. 미운오리새끼로 전락한 은행과 금융기관들의 미래는 정부에 달려있는 듯하다. 관치보다는 금융기관에게 자율권을 주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은행연합회의 사외이사제 모범규준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전삼현 / 숭실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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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KT와 SK텔레콤, LG텔레콤 대표이사들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의 간담회에서 마케팅비를 유선과 무선을 구분해 매출액 대비 20% 수준으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정부당국자가 나서 한국 통신시장을 삼분하고 있는 세 통신사들이 영업비를 제한하는 신사협정을 맺도록 유도한 이 결정은 정부가 기업의 담합을 유도한 카르텔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영업비 규제는 현 최대 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는데 기여함으로써 시장의 활력을 감소시킬 것이다. 그 결과 소비자에게 피해를 가져올 것이며, 정부의 의도와 달리 산업발전도 저해할 것이다.

최근 KT와 SK텔레콤, LG텔레콤 대표이사들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의 간담회에서 마케팅비를 유선과 무선을 구분해 매출액 대비 20% 수준으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단 올해는 스마트폰 활성화와 판매점·영업점 종사자들의 고용문제 등을 고려해 22%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이 합의로 기업의 마케팅비는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지난 해 통신사들은 매출액의 24.5%인 8조6천억원을 마케팅 비용으로 지출했다. 이 비용을 매출액의 22%로 감소할 경우 1조9천억원, 20%로 줄이면 2조4천500억원이 절약될 것이다. 정부는 이번 합의를 계기로 통신사들이 절약된 영업비용을 연구개발과 콘텐츠개발 및 설비투자에 사용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정부당국자가 나서 한국 통신시장을 삼분하고 있는 세 통신사들이 영업비를 제한하는 신사협정을 맺도록 유도한 이 결정은 정부가 기업의 담합을 유도한 카르텔을 조장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이 합의는 시장경쟁을 침해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가져올 것으로 우려된다. 또한 정부가 의도하고 있는 설비투자 증가를 통한 산업발전에 역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된다.

정부의 마케팅비 제한은 시장경쟁 침해와 산업발전 저해

이번 마케팅비 가이드라인은 통신사들의 시장경쟁을 위축시킬 것으로 보인다. 특히 후발 통신업체들의 경쟁력을 손상시킬 것이다. 유선 분야에서 연 매출 7조원에 이르는 KT와 연매출 2조원의 SK브로드밴드가 동일한 20%의 마케팅 비용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선 분야에서 연매출이 12조원인 SK텔레콤과 3조5천억원에 불과한 LG텔레콤의 마케팅비도 크게 차이가 날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초고속 인터넷 시장에서는 KT가, 이동전화 시장에서는 SK텔레콤이 가장 많은 마케팅 비용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지난 해 KT는 8천억원 정도, SK브로드밴드는 6천억원 정도의 마케팅 비용을 주로 유선시장의 초고속인터넷의 판촉에 사용했다. 그런데 매출 기준 20%로 계산하면 SK브로드밴드의 마케팅 비용은 4천억원으로 감소하지만, KT는 여전히 8천억원을 지출할 수 있다. 때문에 정부의 영업비 규제는 현재 최대 기업이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는데 기여함으로써 시장경쟁의 활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마케팅비 제한은 시장경쟁 축소로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킬 것

이번 협의와 더불어 통신사들은 소비자들에게 지급해오던 단말기 보조금이나 초고속인터넷 현금지급 등의 각종 혜택을 크게 축소시킬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 통신사들이 서비스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지급하는 이 인센티브는 통신사들이 거두고 있는 막대한 독과점 이익의 일부를 소비자에게 되돌려주는 한 방법으로 통신사간 경쟁으로 발생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따라서 통신사들이 절약하게 될 2조원 이상의 마케팅 비용은 같은 크기의 소비자 후생의 감소를 의미한다. 이제 정부의 통신시장에 관한 지나친 간섭이 소비자에게 피해를 줄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마케팅비를 제한하려는 의도는 통신사업자들이 설비투자와 연구개발투자에 등한시함으로써 산업의 전반적인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정부는 통신회사들이 소모적 경쟁을 지양하고 절약된 자금을 콘텐츠 개발이나 설비투자 등에 사용해야 한다고 이번 협정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 정부 당국자는 이번 협정으로 절약된 영업비를 콘텐츠 개발이나 설비 투자 등에 쓰지 않을 경우 통신요금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친절히 지도하기도 했다. 이를 어길 경우 언론에 투자와 마케팅비를 동시에 발표하면서 정책적 수단과 단속을 해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정부의 지나친 규제는 시장경쟁 축소로 산업발전을 저해

그러나 정부의 진단과 달리 시장경쟁의 도입이 서비스의 확산과 설비경쟁을 불러옴으로써 국내 통신산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한 연구는 이동통신 산업과 초고속인터넷 산업의 성공이 정부규제가 아닌 시장경쟁의 확산에 기인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한국경제연구원, 2005, “정보통신정책 현안분석 2004”).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독점체제로 운영되던 국내 이동전화시장에 경쟁을 도입하여 시장기능을 활성화한 것이 이 산업의 성공요인이라고 지적하였다. 또한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처음부터 부가서비스로 분류하여 진입 및 요금규제를 제거했으며, 그 결과 기간 통신사업자가 시장에 진입하여 치열한 경쟁을 벌임으로써 초고속 인터넷서비스가 급속히 확산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사업자들의 설비경쟁이 시장 확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부규제의 철폐와 시장경쟁의 도입이 통신산업 발전의 주요 요인

정부의 통신사 영업제한 정책은 이 산업에서 사업자간 자유경쟁을 지나치게 관리하려는 최근의 경향을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하는 관리경쟁 체제는 사업자간 담합을 조장하고 사업자의 진취적 경영을 억제함으로써 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것이다. 특히 정부의 영업규제는 현 사업자의 독점적 지위를 강화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가격상승과 품질저하라는 독점시장의 폐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인식하여 정부는 이 산업에서 규제완화를 통해 자유경쟁을 촉진하고 시장의 역동성을 증가시켜야 한다.

통신사업의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투자의 확대는 기술개발 사업자를 우대하고 원천기술을 보호하는 산업정책으로 풀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궁극적으로 이 사업에 대한 인허가제도를 철폐함으로써 기술선도자가 자연스럽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정책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즉 사업자 선정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시장의 선별기능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최근 한국 법무법인이 미주노선에 대한 가격담합을 이유로 국내 항공사들에 대해 미국 연방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집단소송을 제기해 국제적인 화제가 되고 있다. 이미 한국 항공사들은 유류할증료 등의 명목으로 요금을 담합했다는 이유로 지난 2007년 8월 대한항공이 3억 달러, 금년 4월 아시아나항공이 5,000만 달러의 벌금을 미 법무부로부터 부과 받은 바 있다. 이를 근거로 미국 승객들은 이미 2007년 하반기부터 국내 항공사를 대상으로 집단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카르텔에 대한 부족한 인식으로 국가이미지 손상과 기업비용의 증가

이러한 미 연방법무부 독점금지국의 한국 기업에 대한 담합행위 적발은 2005년 반도체 업체를 시작으로 항공사, LCD패널업체 등 해마다 거듭되고 있다. 2008년 12월 LG디스플레이가 미국 반독점법 집행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4억달러의 벌금을 내기로 합의했으며, 그 결과 LG디스플레이 부사장이 TFT-LCD 패널의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년과 3만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최근 수년간 한국의 대표 기업들이 미국시장에서 가격담합 행위로 받은 벌금의 액수를 살펴보면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2005년 하이닉스 1억8,500만 달러, 삼성전자 3억달러, 2007년 대한항공 3억달러, 2008년 LG디스플레이 4억달러, 2009년 아시아나항공 5,000만달러 등 총 12억달러로 현재 환율로 환산하면 1조4,000억원이 넘는 엄청난 액수이다(김형준, “연방법무부의 카르텔 수사와 기업윤리,” 법률신문, 2010.3.12).

이러한 한국기업들의 급증하는 독과점법 위법 판정은 미국 경제의 불황에 따른 자국 산업보호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본질적으로 기업들의 카르텔 행위를 엄격히 처단함으로써 소비자와 기업들을 보호하여야 한다는 미 정부의 인식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미국은 1890년 셔먼독점금지법(Sherman Antitrust Act) 이후 카르텔 행위를 중범죄로 처벌하고 있다. 유럽연합도 1957년 로마협약을 통해 카르텔 행위를 위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정부의 마케팅비 제한은 카르텔 조장하는 후진적인 행태

이러한 선진국들의 카르텔 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에 비해 한국은 카르텔에 대해 매우 관대하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기업들이 직·간접적인 담합행위를 거리낌 없이 실행하는 관행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간 각종 기업들의 영업 행태가 외국에서 카르텔 판정을 받아 크게 고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시사한다. 최근 정부도 이를 인식 국내기업의 카르텔을 엄격히 처벌하려 하고 있음을 공정거래위원회의 소주와 음원, LPG에 대한 가격담합 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카르텔에 대한 기준과 그 법 집행은 여전히 국제적인 기준에는 크게 못 미치는 실정이다.

이 상황에서 정부 당국자가 통신사 사장들과 만나 마케팅비 사용액에 대해 구체적으로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정부가 기업의 카르텔행위를 스스로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 행위는 향후 국내 통신사들이 외국시장에 진출할 때 처벌을 자초하는 위험천만한 비상식적인 것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마케팅 활동은 기업고유의 영역으로 정부규제는 위법

마케팅은 기업의 중요한 활동으로 그 과다여부는 소비자와 시장이 판단할 사항이다. 즉 마케팅의 방안과 그 비용의 결정은 중요한 기업고유의 경영활동 영역이다. 정부가 나서 그 지침을 제시해야 할 사항은 결코 아니다. 이는 기업의 자유를 저해하고 시장의 원리를 무시하는 극히 후진적인 발상이다. 그리고 통신산업의 발전은 규제완화와 경쟁도입을 통해 시장의 선별기능을 확대함으로써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의 마케팅비 규제는 기업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국제적인 카르텔 금지법을 위반하는 불필요한 행동이다.

김상호 / 호남대 무역학과 교수

저자소개: 김상호 교수는 미국 Michigan State University 대학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호남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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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들의 틈에 끼인 대한민국이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1인당 국민소득 6만 달러의 부자나라는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민 각자가 도전과 모험정신을 갖고 자신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의 분위기는 다르다. 가난에 대한 불평은 늘어만 가고, 실업률은 높은 한편 중소기업에서는 인력난을 호소하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 때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우리사회에서 대부분의 리더들은 입에 발린 말로서 대중에 영합하기를 즐겨한다. 수많은 복지정책의 개발과 확충 및 확대 약속들이 그렇다. 이명박 정부 역시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을 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비즈니스 프랜들리라고 하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성공의 길이다.

대한민국은 정말 큰 나라들 사이에 끼어 있다. 우리를 둘러싼 중국, 러시아, 일본 모두 세계 최강대국들이다. 그런 틈에서 기죽지 않고 살아가려면 답은 분명하다. 인구 규모가 작은 대신 재산이 많아야 한다. 스위스, 네덜란드, 베네룩스 3국 같은 나라들이 강대국들 틈에서 당당하게 사는 법이 바로 그렇다. 우리가 그들처럼 되어야 한다. 어느 전직 대기업 회장의 강연 내용대로 유엔 상임이사국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국력을 갖춰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의 소득이 조만간 최선진국을 넘어서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1인당 소득 6만 불 정도는 돼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길은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다. 이 정부가 출범하면서 호기롭게 내걸었던 747 공약, 즉 성장률 7%를 유지해서 10년 안에 소득 4만불을 달성하고 7대강국에 들어가겠다는 약속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그것을 위해 필요하다던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철학 대신 포퓰리즘적 냄새가 풍기는 '친서민 중도 실용’이 전면에 등장했다. 어찌 보면 성장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한다. 이렇게 갔을 때 10년, 20년 후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이 정도의 국력을 가지고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북한 정권의 붕괴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까. 무섭게 추격하는 중국과 러시아에 맞서서 당당한 삶을 펼쳐나갈 수 있을까. 아무래도 성장률 7%는 되어야 가능한 일들이다.

그 정도의 경제성장률을 만들어내려면 국민 각자가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해야 한다. 각자 가진 재주를 최대한 발휘하여 세계최고의 제품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또 열심히 팔아서 세계 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도 높여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비로소 기적으로까지 불렸던 1970~80년대의 성장세를 다시 찾아올 수 있다. 불평, 불만, 하소연이 아니라 어떻게든 더 낫게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쳐야 달성할 수 있는 것이 높은 성장률이다.

지난 세월 우리는 그랬었다. 1960년대부터 우리는 5천년간 우리를 붙들어 맸던 '한’으로부터 탈출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가진 것이 없기는 했지만, 뭔가를 이루어야 하고, 또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태어났고 비즈니스의 영웅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그 시절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가난에 대한 불평은 오히려 더 많아진 듯하다. 새로 무엇인가를 시작해서 성공을 해보겠다는 생각보다 이미 남이 만들어 놓은 터전 위에서 편히 살아보겠다는 풍조가 만연해있다.

일자리가 없다는 불평들도 그런 속성이 강하다. 일자리가 없다지만 중소기업들은 오히려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중소기업에 가기 보다는 차라리 실업자가 되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 들어가서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기 보다 이미 만들어진 좋은 봉급만을 쳐다보며 불평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생긴다.

물론 힘든 일자리보다는 집에서 노는 것이 낫다고 느끼는 것은 각자의 자유이다. 하지만 매우 안타까운 선택이다. 집에서 놀면서 부모의 돈을 축내는 것보다 영세기업에라도 들어가서 일을 한다면 무엇인가를 생산해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제품은 다른 사람들이 유용하게 사용하게 될 것이다. 즉 일하는 것은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다. 마찬가지 원리로 집에서 놀고 먹는 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썩히는 일이다. 세상을 위해 쓸 수 있는 능력을 썩히는 것이니 어찌 보면 세상에 죄를 짓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에 우리나라의 부모들도 크게 거들고 있다. 다 큰 자식이 집에서 놀고 먹을 수 있도록 재워주고 먹여주고 용돈까지 챙겨주는 것은 바로 부모들이다. 그러다 보니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모에게 기대는 것이 웬만한 직장에 취직하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 되는 것이다. 그런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일을 해서 세상에 기여하기보다 이미 만들어진 과거의 부를 까먹기만 하는 존재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럴 때에 리더의 역할이 필요하다. 정치지도자, 사상적 지도자들이 나서서 왜 일하지 않느냐고 꾸짖어야 한다. 집에서 놀지 말고 험한 일자리라도 잡아서 뭔가 세상에 보탬이 되라고 등을 떠밀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더 많은 사람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불행히도 실상은 그 반대다.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 사람을 꾸짖기보다, 오죽 했으면 일자리도 없겠느냐고 입에 발린 말만 하는 것이 요즈음의 세태이다. 많은 부모들이 지나친 너그러움으로 자식을 망치듯이 지도자들도 대중에게 영합해서 대한민국의 잠재력을 깎아 내리고 있다.

그런 입에 발린 말들은 말로만 그치지 않고 복지정책이라는 옷을 입는다. 실업했다고 돈 주고, 가난하다고 돈을 준다. 그러기 위해 세금을 거두고, 그러기 위해 국가부채가 쌓여간다. 그것이 심해지면 지금 남유럽의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라고 통칭되는 나라들이 겪고 있는 것과 같은 파국을 맞게 된다. 생산은 안하고 써대기만 하니 부도가 나는 것은 정해진 순서이다.

물론 복지정책은 좋은 뜻에서 시작된다. 돈이 없어서 굶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자는 것이 복지정책이다. 그 뜻은 좋고, 그럴 필요도 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다보면 일하지 않는 대가로 돈을 주고, 놀았다고 돈을 주는 정책으로 바뀌어 간다는 사실이다. 부모의 돈을 믿고 자식들이 실업자이기를 선택하듯이, 멀쩡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복지정책 때문에 집에서 놀기를 선택하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도 그런 현상이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의 숫자는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해서 이미 160만명을 넘어 섰다. 이러다가는 언제 그 숫자가 3백만이 되고 4백만으로 늘어날지 알 수 없다. 탈북자의 숫자가 급증할 것을 생각하면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런 일을 막으려면 정말로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만 복지정책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무의탁노인과 소년소녀가장, 중증장애우 같은 분들이다. 단순히 지금 돈을 벌지 못한다는 사실만을 복지의 대상으로 삼다보면, 결국 일하지 않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의 중도 실용, 친서민이라는 구호는 걱정스럽다. 이 구호가 최종적으로 어떤 정책으로 나타날지 아직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추측해보건대 복지성 정책들이 대종을 이룰 것 같아 보인다. 복지의 혜택을 최빈층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중산층에게까지 확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런 정책이 많아지고 깊어질수록 일하지 않고 국가의 정책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숫자도 늘어날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게 될 시기도 늦어질 것이다.

기회로만 따진다면 우리는 지금 대단히 좋은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미국은 경쟁력을 잃었고, 일본도 비틀거린다. PIIGS 국가들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의 나라들도 휘청거리고 있으니 우리가 조금만 정신을 차린다면 금방이라도 넘어설 수 있다.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될 수 있는 기막힌 기회가 눈 앞에 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일 수 있다. 우리는 과연 그 기회에 올라탈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도전과 모험이다. 실패를 각오하면서 새로운 수요처를 찾아 나서야 한다. 또 어떤 상품이 잘 팔리기 시작하면 그곳으로 자본과 인력이 이동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세계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구하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럴 때에 비로소 대한민국은 어떤 강대국에 대해서도 당당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의 풍경은 그것과는 무척 다르다. 온통 싸움뿐이다. 무엇을 생산할 것인지보다는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어떻게 나눠먹을 것인지에 대해서만 신경들이 곤두서있다. 일하지 않고 남의 덕으로 살아 보겠다는 목소리들이 너무 높다.

“보조금에 기대서 성공한 기업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죽을 각오로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사람만이 사업을 성공시키더군요.” 필자가 참석했던 어느 보고회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이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 각자가 정부에 기댈 마음을 먹지 않도록 정부의 규모가 작아야 한다. 그런데 이 정부의 구체적 정책들은 큰 정부를 향해서 첫발을 내디뎠다. 무엇보다도 씀씀이가 너무 커져가고 있다. 재정적자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친서민이라는 구호를 유지하는 한 그 규모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기업들의 숫자도 덩달아 늘어갈 것이다.

지금이라도 돌아봐야 한다. 자신들이 왜 747과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공약을 내걸었는지. 그렇게 해야만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고, 그 인과관계는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지금이라도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대한민국은 머지않아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 되는 또 한 번의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김정호 /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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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화폐개혁을 하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억제되고 통제된다. 최근에 터키와 가나가 화폐개혁을 단행했고, 이들 국가에서는 물가상승률을 한자리 수 이하로 잡았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화폐개혁이 단행된 이후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졌다. 화폐개혁이 발표된 이후 물가가 30배 이상 급등한 이상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북한에서의 화폐개혁이 이렇듯 엉뚱한 방향으로 진전된 데에는 크게 다음과 같은 원인이 있다. 첫째, 시장을 금지하고 신흥 기업가들로부터 돈을 강탈하여 공급을 급격히 축소시켰다. 둘째, 노동자와 농민에게는 돈을 마구 뿌려대 물가상승 압력을 더욱 부채질했다. 최근 시장에 대한 통제를 완화하면서 물가앙등은 그쳤지만, 이는 곧 시장에 대한 북한 당국의 항복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화폐 개혁 본연의 목적은 인플레 통제

북한이 화폐 개혁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일반적으로 화폐 개혁이란 숫자가 큰 화폐를 숫자가 작은 화폐로 교환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현재 한국의 화폐를 100:1의 가치로 환산하여 10000원은 100원으로 100원은 1원짜리로 일률적으로 바꿔주는 정책을 화폐 개혁이라고 한다.

이런 화폐 개혁의 목적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화폐의 액면 가치가 저하된다. 가령 인플레이션 때문에 20년 전에는 500원이면 밥 한끼 먹었는데 이제는 5000원은 있어야 한다. 즉 인플레이션은 화폐의 구매력을 저하시킨다. 그런데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일상 생활의 여러 불편함을 초래한다. 먼저 현금을 쓸 때 지폐를 항상 대량으로 보유해야 한다. 극단적인 사례가 짐바브웨이다. 2008년 짐바브웨에서 발생한 초인플레로 인해 시민들은 빵 한덩어리를 사는데 5억 짐바브웨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빵 한덩어리 사는데 1달러짜리 5억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100달러짜리라 해도 5백만장이 필요하다.

또 ATM 기계에서 돈을 뽑는다고 해도 불편한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령 짐바브웨에서 빵 한덩어리 사기 위해 ATM 기계 앞에서 100달러짜리 5백만장이 나오길 기다려야 한다고 상상해 보라.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은 숫자가 커지면 커질수록 계산하기도 힘들어진다.

인플레이션이 초래하는 이러한 불편들 때문에 정책 당국자들은 종종 화폐 개혁을 단행한다. 최근에 성공적인 화폐 개혁으로 인플레를 잡은 나라들로는 터키, 가나 등이 있다. 터키는 2005년에 1백만:1의 화폐 개혁을 실시했다. 그리고 가나는 2007년에 1만:1의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이 두 나라는 모두 물가상승률을 한자리 숫자 이하로 잡아 화폐 개혁의 목적인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데 성공했다.

북한 화폐 개혁 발표 후 물가 30배 인상

북한은 2009년 11월 30일 기습적인 화폐 개혁을 발표한다. 화폐 교환 비율은 100:1 이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달리 화폐 교환 가능한 금액을 10만원으로 한정했다. 10만원은 당시 시세로 30$ 정도 가치이다. 즉 30$ 이하의 금액만 화폐를 교환해주고 나머지 금액은 국가에 바쳐야 한다는 이상한 화폐 교환 조치를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화폐 개혁 발표 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화폐 개혁 조치를 발표한 후 물가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 오르는 정도가 아니라 초인플레인션을 경험했다.

북한에서 물가를 대표하는 것은 쌀값인데 두 달만에 30배 이상의 가격 인상을 보였다. 화폐 개혁 직전 북한의 쌀값은 구화폐 기준 1kg에 2000원 수준이었다. 그러니 100:1의 화폐교환 비율을 고려한다면 쌀값은 1kg에 20원 수준에서 안정화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북한의 쌀값은 화폐 개혁 발표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하여 12월 중순에는 50원, 1월초에는 150원, 1월 중순에는 300원 급기야 1월 말에는 600원 수준으로 폭등했다. 즉 화폐 개혁 두 달만에 30배의 물가 인상율을 기록한 것이다. (*주1)

왜 이런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 이유는 크게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분석될 수 있다. 초인플레이션, 즉 물가가 이상 급등하는 이유는 원리적으로 보면 아주 단순하다. 공급은 아주 적은데 돈이 많이 풀려 수요가 많아지면 물가는 오르기 마련이다.

시장 금지하고 신흥 기업가들 돈 강탈하여 물자 공급 급격히 축소

그럼 먼저,공급이 급격히 줄어든 이유를 살펴보자. 북한에서 화폐 개혁 이후 물자 공급이 급격히 줄어든 이유는 시장 거래를 사실상 금지했기 때문이다. 화폐 개혁 조치 발표 이후 북한은 12월 9일경 국방위원회의 지시로 시장 거래 품목들의 판매 상한가를 지정해 주면서 이를 어길시에는 철저히 단속하라고 하였다. 또 공산품의 경우에는 시장 거래를 금지시켰다.

당시 판매 상한가를 보면 옷, 신발(한 켤레), 식량(입쌀, 옥수수 포함 1kg), 기름(1l), 돼지 고기(1kg) 등 상대적으로 고가인 생필품은 각 단가별로 16원 이하에 판매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알(계란), 남새(채소) 등의 저가 생필품의 판매 상한가는 12원이다. 이밖에 털짐승 가죽, 자전거 수리 등의 상대적인 비생필품은 15원 이하로 판매하라는 지시가 전달되었다.

여기서 쌀만 보면 1kg에 16원 이하로 판매하라고 한 것인데 12월 9일 당시 쌀의 실제 시장 가격은 50원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처럼 시장 가격은 50원 수준인데 16원 이하로 팔아야 한다는 강제 조치가 발표되니 쌀 장사꾼들은 손해 볼 장사를 왜 하냐며 시장에 나오지 않았다. 시장에서 쌀 공급이 줄어드니 쌀 가격은 당연히 더 오를 수밖에 없다. 쌀값이 계속 오르고 시장에서 단속은 중단되지 않으니 쌀값은 멈추지 않고 계속 상승하여 1월말 kg당 600원 이상으로 치솟은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번 화폐 개혁은 북한의 주요 물품 공급자들인 신흥기업가들(북한에서는 돈주라고 부름)에 치명적 타격을 주었다. 북한은 화폐 개혁 발표 시 1인당 북한돈 10만원(당시 환율로는 30$ 수준)까지만 바꿀 수 있다고 공표했다. 이는 세계 화폐 개혁 역사에 전례가 없는 것이다. 10만원 이상 가진 사람들의 돈은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된 것이다. 즉 북한의 화폐 개혁은 단순 화폐 교환 조치가 아니라 기업가들의 돈을 강제로 빼앗는 조치였던 것이다.

기업가들은 북한 국내에서 대량의 물건을 항상 사고 팔고하기 때문에 항상 어느 정도의 국내 화폐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신흥 기업가들에게 화폐 개혁은 심대한 자산 잠식의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처럼 신흥 기업가들의 경제 기반이 축소된 결과 시장에서의 물자 공급 능력은 더욱 축소되었다.

노동자․농민에게는 현금 마구 뿌려대

북한에서 화폐 개혁이 실패하여 초인플레가 나타난 또 다른 이유는 북한 당국이 일반 북한 주민들에게 마구잡이로 돈을 뿌려댔기 때문이다. 북한은 화폐 교환 10만원 상한선을 정한 뒤 이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가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노동자, 농민, 노인들에게 마구잡이로 돈을 뿌렸다.

일례로 노동자의 월급과 노인들에게 주는 연금을 100:1 화폐 교환 조치 발표 이전과 똑같은 액면 금액을 주었다. 즉 화폐 개혁 이전 2000원 주던 월급을 100:1로 화폐 개혁을 했는데도 그대로 2000원 월급 수준을 유지한 것이다. 노인 연금도 마찬가지였다. 즉 노동자 월급과 노인 연금이 100배 상승한 것이다. 농민들에게도 한 가구당 신화폐로 14,000원 상당의 장려금을 하사했다. 이 금액은 당시 가치로 농민들이 50년 일해야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다. 농민들은 단 한 번에 거액의 목돈을 받은 것이다.

이처럼 북한 당국이 노동자, 농민들에게는 무차별적으로 현금을 뿌려 시중에 현금이 많이 풀리자 물가 상승 압력은 더욱 강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공급은 줄어들고 있는데 시중에 현금은 무자비하게 풀려나가니 초인플레이션이 생기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북한 당국, 결국 시장에 항복하다

북한의 노동자가 100배 인상된 임금을 받고 농민들이 50년 벌어야 되는 돈을 한 번에 받아서 얻은 기쁨도 잠시에 불과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물가가 30배 이상 폭등하고 그나마 폭등된 가격에도 쌀을 구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1월 중순부터 북한 주민들은 북한 당국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김정일 이름에 존칭을 붙이지 않으면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가하면 북한의 경찰인 보안원들에 대한 테러가 가해지고 아사자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북한 사회가 아비규환으로 빠지기 직전의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런 심상치 않은 조짐을 파악한 북한 당국은 1월 20일 경 이번 화폐 개혁에 대한 책임을 물어 노동당 재정경제부장 박남기를 전격 해임했다. 그리고 1월 말 시장에 대한 가격 통제를 해제했다. 거래를 금지했던 공산품의 거래도 재허용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시장에 대한 통제를 완화하기 시작하자 시장에서의 쌀값은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1월 말 kg당 600원 정도하던 쌀값이 지난 2월 4일경 300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주일만에 가격이 절반 정도 뚝 떨어진 것이다. 시장의 힘을 다시 확인하게 된 순간이었다.

종합해보면 북한 당국의 이번 화폐 개혁은 성장해가는 신흥 기업가들에게 타격을 주고 시장을 약화시킨 뒤 계획 경제로 복귀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북한은 신흥 기업가들의 경제적 기반을 어느 정도 약화시켰을 수는 있으나 시장을 약화시키는 데는 완전히 실패했다. 시장 통제로 인해 발생하는 초인플레이션을 도저히 막지 못해 화폐 개혁 발표 2개월만에 완전히 시장에 백기투항한 것이다. 김정일과 시장으로 대변되는 북한 주민들 사이의 전쟁에서 북한 주민들이 완전 KO 승을 거둔 것이다.

하태경 / 열린북한 대표

 

* 이 글에 나와 있는 북한 내부 소식들은 열린북한통신, DailyNK, 좋은벗들, NK 지식인연대 등에서 발행하는 소식지들을 참고한 것임을 밝힙니다.

 

저자소개: 하태경 대표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길림대학교에서 국제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북 라디오 방송인 '열린북한방송’과 사단법인 '열린 북한’의 대표를 맡고 있다. '동북아 IT 공동체 전략 연구’ '북한 인권실태와 북한 인권운동의 쟁점 분석’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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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강기갑의원 국회폭력, 전교조 시국선언, MBC 광우병 PD수첩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를 계기로 사법부의 이념화, 정치화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대법원 수장은 사법부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법부의 독립은 잘못된 재판을 정당화해주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사법부의 권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며, 부당한 권력의 사법부 침해로부터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법원의 판결은 논의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판결은 존중되어야 한다. 하급심의 판결이 최종 판결은 아니므로 상급심의 판결을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사법부의 독립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서다.

정권이 교체되고 2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과거 좌파 정권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철저하게 정치논리에서 시작된 세종시 문제로 온 나라가 양분되어 시끄럽고, 최근에는 법원의 이념 편향 판결로 재판의 정당성과 공정성이 훼손되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크게 손상되었다. 특히 사법부의 이념화, 정치화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높다.

법치주의를 외면하는 사법부 판결

법원은 지난 1월 14일에 강기갑 의원의 국회 폭력, 19일 전교조 시국선언, 20일 MBC 광우병 PD 수첩에 대해 무죄로 판결하였다. 이 사건들은 한결같이 우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들이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러한 불법 행위들에 대한 정죄가 확실하게 내려져 다시는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정반대로 내려졌다.

PD 수첩 무죄와 같은 최근의 법원 판결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사법부에까지 좌파의 영향력이 강하게 침투되었다고 걱정하고 있다. 사법부의 판결이 좌파 이념의 영향을 받는다면 건강한 사회의 기초로서 '법의 지배’는 무너진다. 판사가 법이 아니라 자신의 이념에 따라 재판한다면 '법의 지배’는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사법부가 독재 정권에 종속되었듯이 이제 좌파 이념에 종속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의 이동연 판사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공중 부양’으로 잘 알려진 강기갑 대표는 국회 폭력과 관련해 공무집행방해로 기소되었다. 이 판사는 검찰은 강 대표를 공무집행방해가 아니라 폭행 혐의로 기소했어야 했으며, 피해 당사자인 국회의장과 사무총장의 증언이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했다. 강 대표가 국회의장실 문에 발길질을 하고 국회 경위의 멱살을 잡고 폭행한 행위를 공무집행방해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동연 판사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강 대표의 폭력이 아니라 폭력을 행사했을 당시 국회 안에서의 질서 유지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국회에서 발동된 질서유지권이 적법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으며, 강 대표의 행위는 적법하지 못한 질서유지권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강 대표의 국회 폭력을 국회의 질서유지권 발동의 적법성과 연결시켜 그에게 무죄를 판결하는 것이 우리가 숙지하고 있지 못한 법 해석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강 대표의 폭력 행위를 TV 화면을 통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보통사람들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발생한 그의 행위가 무죄라는 법원 판결에 충격을 받고 놀라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국민은 놀람과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연이어 나온, 전교조 시국선언과 MBC 광우병 PD 수첩에 대한 무죄 판결에 더욱 놀라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주요 시국 관련 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이 연이어 나오자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판결을 내린 판사에 이목을 집중하였다. 이들 판사의 판결이 시민들의 건전한 법 감정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 판결이 젊은 판사들의 정치적 성향과 이념적 편향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표시하면서 건전한 상식과 보편적인 가치 기준과 합치하지 않는 판단들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조성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였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세상 경험이 많지 않은 판사들이 중요한 사건을 단독으로 판결할 수 있도록 한 현행 제도와 현행 법관 양성 과정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여러 개선책이 제안되기도 하였다.

법보다 사법부 독립성이 우선?

이러한 우려에 대해 사법부의 수장인 이용훈 대법원장은 “법원이 사법부의 독립을 굳건히 지켜낼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른 독립된 재판”이 잘못된 재판을 정당화해주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법권의 독립을 위한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른 독립된 재판”은 부당한 권력의 사법부 침해로부터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사법부의 권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이것은 법관의 임의적이고 주관적인 법 해석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주관적인 법 해석, 특히 자신의 이념으로 편향된 해석은 법치를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하는 것이다.

법조계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국민들의 건강한 상식과도 부합하지 않는 판결에 대해 사회적으로 거센 반발과 비판이 쏟아질 때, 진지하게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고 '사법권의 독립’을 내세우고 '법관의 양심’을 들먹이는 것은 스스로 사법부의 명예와 독립을 훼손하는 일이다. 사법적 판단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이 있다면 먼저 왜 이런 저항이 나왔는가를 스스로 반성적으로 숙고해야 한다. 판결과 국민 정서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왜 발생하게 되었는가를 법의 논리로 설명해야 한다.

사법부의 권위와 신뢰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가 스스로 창출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법부 비판에 대한 대법원장의 대응 방식은 적절하지 못하다. 국민이 사법부의 판결을 믿지 못하면 사법부의 권위는 무너지고, 법원은 법치를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자로 낙인찍히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판사들의 부당한 판결들이 담당 판사들의 특정한 정치적·이념적 편향에서 나왔으며, 그것의 진원지로 '우리법연구회’라는 단체를 지목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단체는 법조계에 좌파논리를 생산하고 유도하는 사법계의 '전교조’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이내 과녁은 '우리법연구회’를 넘어 이 대법원장에게로 향했다. 이 대법원장은 사법부에 대한 정당한 비판에 겸손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고 '사법부의 독립’을 내세움으로써 사법부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는 성급한 단죄(斷罪)까지 나왔다.

사법부 독립성 존중,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받기 위한 것

법의 해석자인 판사에게 법에 대한 제약 없이 자유로운 해석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며, 법관의 사실 인정과 법리 판단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판사에 따라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판결이 달라진다면 '법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기대에 어긋나는 판결이 나왔다고 하여 그 판결이 잘못된 판결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오래된 관습과 고정관념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관습과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질서와 관념을 형성해야 한다. 새로움이 없으면 사회나 역사도 발전하지 못한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법 해석과 판결도 항상 새로움에 열려있어야 한다. 사건에 대한 법의 적용은 수학 공식의 적용과 같이 기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큰 혼란에 빠지게 하였던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을 제작한 PD와 작가에 대한 최근의 무죄 판결이 몇 달 전의 판결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이번 판결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비판은 성급하다. 이번 판결은 형사 재판으로, 이 프로그램의 방송 내용이 허위가 아니라고 판결하여 무죄를 선고하였고, 서울고등법원의 민사 판결에서는 방송내용이 허위라고 판단하였는데 이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보면 명백히 잘못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을 정당화하는 다른 법리적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서울대 법대 이상원 교수에 따르면 (“다름과 틀림”, <동아일보> 2010년 1월 28일) 형사 사건과 민사 사건의 경우 다른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 이 교수는 O J 심슨 사건을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전처 살인범의 확실한 용의자로 의심을 받았던 심슨이 형사재판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민사재판에서는 법원이 전처의 살해 혐의를 인정하여 거액의 손해배상을 명령했다는 것이다.

살인여부의 판단은 증거에 따라 해야 하지만, 형사와 민사는 서로 다른 정도의 증명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민사소송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우월한 증명을 내세우는 쪽의 손을 들어주지만 형사소송의 경우에는 합리적인 의심의 소지가 남아있는 한 피고인에게 불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의 형벌권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MBC PD 무죄 판결도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형벌권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민사 판결과 달리 형사 판결에서는 무죄를 선고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무죄 판결을 보고 사법부를 불신하는 데까지 나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쟁점이 된 무죄 판결은 모두 1심 판결이고 아직 상급심이 남아 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최종심은 대법원 판결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1심 판결이 이념적으로 편향된 판결이기 때문에 반드시 상급심에서 바로 잡아질 것이라고 믿지만, 우리의 기대와 다른 판결이 나온다고 할지라도 그 판결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사법부의 최종 판단에 대한 존중은 바로 법으로부터 나의 권리를 보호받고, 법치를 확립하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최근 사법부가 내린 이념 편향적 판결의 정당성을 문제 삼는 논의와 비판은 지금까지 나온 것으로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이제 격앙된 마음을 뒤로하고 남아 있는 사법부의 판결을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 사법부의 독립을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

신중섭 / 윤리교육과교수

 

저자소개: 신중섭 교수는 고려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논쟁과 철학’ (공저), '전교조의 이념과 운동 비판’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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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금은 교육서비스에 대한 가격이며, 이의 인상한도를 법으로 제한하는 등록금 상한제는 가격통제이다. 등록금 상한제와 같은 인위적인 통제는 비록 그 의도가 훌륭할지라도 실현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소규모사회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대규모 열린사회 모두에서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과 이를 위한 수단이다. 대규모 열린사회에서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시장질서와 이로부터 자생적으로 형성되는 가격이다. 그리고 이 가격은 가격이 없다면 사람들이 알 수 없었을 수많은 지식들을 전달하고 알 수 있게 한다. 이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정치적 권력의 남용이자 지식의 자만일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치명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역사적 진실이다. 고등교육에서도 자유의 원칙이 실현되어야 하며, 그것이 곧 대학경쟁력을 높이고 번영하는 길이기도 하다.

부활하는 등록금 상한제

대학의 자율화가 이렇게도 어려운가! 1989년에 폐지됐던 등록금 상한제가 여야 합의로 부활했다. 도입과정부터가 씁쓸하다. 정치적 결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학자금 상환제’를 반대해 온 민주당이 이를 찬성하는 조건으로 등록금 상한제 찬성을 요구하자 한나라당이 전격 합의해주었다. 인상한도를 법으로 제한하는 등록금 상한제는 가격통제이다. 물가인상률의 1.5배 이상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어기는 대학은 정부로부터 행ㆍ재정적 제재 등 불이익을 받는다.

교육비를 부담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을 보살피려는 정치권의 마음이 참으로 갸륵하게 보인다. 그러나 세상사는 의도가 좋다고 해서 결과도 좋은 것이 아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자기 나름의 원리가 있고 그 원리를 위반하면 의도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등록금 상한제도 의도는 좋지만 실현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교육서비스 가격과 의사소통수단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오늘날의 고등교육질서는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들로 구성된 소규모 사회가 아니라 대부분 서로 알지 못하는 익명의 사람들로 구성된 거대한 열린사회라는 점이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과 이를 위한 수단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서로 소통한다. 그런데 인류문화의 진화과정을 보면 흥미롭다. 문화적 진화는 언어 이외에도 또 하나의 소통수단을 생성시켰다. 시장질서와 이로부터 자생적으로 형성되는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이 그것이다.

서로 알지도 못하고, 귀로 들을 수도 눈으로 볼 수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의 소통수단으로서 언어만으로는 불충분했을 터이다. 그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 이것이 가격이다. 가격은 각처에 분산되어 있는, 그래서 그 어떤 정신도 전부 알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지식들을 수집하고 간추려서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이런 가격이 없으면 거대한 열린사회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문화적 진화의 탁월한 묘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른 재화나 서비스 가격보다 역사적으로 훨씬 뒤에 등장하기는 했지만 등록금은 교육서비스의 가격이다. 이것도 상품가격처럼 열린 교육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 사이에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불가결한 수단이다. 교육서비스의 가격도 이 서비스의 수급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다양한 사정(事情)에 관한 수많은 사람들의 지식들, 심지어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는 암묵적 지식(implicit knowledge)까지도 수집하고 간추려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등록금 상한제의 지적 자만

오스트리아 학파의 거목, 하이에크(F. A. Hayek)가 자신의 저서 『개인주의와 경제질서』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가격은 사람들에게 이들이 알 수 있는 능력의 범위를 넘어서까지 알 수 있게 한다. 가격은 가격이 없으면 사람들이 알 수 없었을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다. 등록금과 같은 가격이 없으면 거대한 열린 고등교육 질서가 생성 발전할 수가 없다. 그래서 모든 가격과 마찬가지로 등록금도 교육질서의 중추신경과도 같다.

그런데 입법부는 상한선을 정하여 법으로 교육서비스 가격을 규제하려고 한다. 이 같은 규제가 가능하고 또한 바람직스러운가? 모든 대학들에 적용되는 '적정한’ 등록금 인상률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정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온당한 일도 아니다. 그것을 정하기 위해서는 교육서비스의 수요와 공급과 관련하여 사회의 각처에 분산되어 존재하거나 새로이 생겨나는 지식들을 전부 수집 가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이에크의 1952년 유명한 저서『감각적 질서』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그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개인들의 '암묵적 지식’은 개인 자신은 물론 그 어떤 정신에게도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지식의 문제’ 때문에 적정 가격인상 한도를 정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더구나 가격은 인간의 인지능력의 범위를 넘어서 존재하거나 새로이 생겨나는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인간들은 이런 가격을 통해서 비로소 배우고 학습한다. 따라서 인간정신이 이 같은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온당하지도 않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염두에 둘 것은 등록금 인상 한도를 법으로 정한 등록금 상한제는 그 내용이 무엇이든 정치적 권력의 남용이자 지식의 자만이라는 것이다.

등록금 상한제의 치명적 결과

그럼에도 등록금 상한제를 실행할 경우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일반상품도 가격통제를 하면 질이 떨어지거나 양이 줄고 암거래가 성행하는 부작용이 생긴다. 교육서비스 가격통제도 마찬가지이다. 당장은 권력에 눌려서 등록금인상을 억제하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장기적으로 교육서비스와 연구의 질이 떨어질 것은 분명하다. 우수 교수 확보나 시설 확충을 통해 연구·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투자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대학의 양질의 인력 공급 능력과 대학의 연구역량은 줄어들어 대학의 경쟁력이 위축되는 것도 불 보듯 훤하다. 이것은 경제적 번영에도 치명적이다.

정부는 이 같은 위험성을 막기 위해서 대학의 정부지원을 늘릴 것이다. 그러나 정부지원의 증가가 능사가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납세자 부담의 증가뿐이 아니다. 대학 미진학 취업자가 납부한 세금이 대학 진학자를 위해, 심지어 재학중인 고소득층 학생들의 학비보조금으로 사용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우리의 정의감에도 맞지 않는다. 이것은 정부의 모든 대학교육지원금이 야기하는 고질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다.

정말로 가격통제는 치명적이다. 폭탄 없이도 도시를 황폐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가격통제이다. 이와 같은 치명적인 결과 때문에 가격통제는 기껏해야 후진된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야만적이고 후진적인 정책이다. 미성숙된 정신만이 생각할 수 있는 정책이다.

미제스(L. v. Mises)가 1949년 자신의 유명한 저서 『인간행동』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로마 제국의 쇠락의 근본 원인은 외부의 침략자들 때문이 아니었다. 가격통제로 상업과 무역의 자유를 제한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대학 등록금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큰 부담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법으로 등록금 인상을 억제하는 것은 포퓰리즘에 불과하지 전혀 해법이 아니다. 가격은 정부로부터 불가침 영역이다. 빈곤층 자녀의 문제는 각 대학의 다양한 장학제도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대학교육에도 자유의 원칙을 !

우리 대학교육체제는 자율성이 매우 열악하다. 신입생선발이나 대학운영, 대학의 증설 등 모든 부분에서 겹겹이 규제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한 가지 자율이 있었다. 등록금 책정의 자율이 그것이다. 대학이 독자적인 발전 계획과 경영 방향에 맞춰 재원을 조달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제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스럽지도 못한 상한제의 도입으로 그 같은 자율권까지도 빼앗기고 말았다.

대학이 정부의 손에 들어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 현대의 대표적인 사례는 독일의 대학이다. 20세기 초 만해도 독일 대학은 세계가 부러워했다. 예를 들면 독일 의과대학 학생들의 절반이 외국인이었을 만큼 독일의 의대는 세계적이었다. 노벨상 수상자의 45%는 독일과학자들이었다. 약학, 물리학, 화학 분야 등의 독보적인 발전은 독일 대학의 우수성을 입증했다.

그러나 독일대학의 명성은 20세기 후반 쇠락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세계적 수준의 대학은 고사하고 세계 50위권에 속한 대학의 수도 아주 극소수이다. 유감스럽게도 과거의 명성이 완전히 소멸한 것이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즉, 교육의 평등주의, 공공성, 온정주의 등 온갖 이념적 명분으로 대학에 대한 정부의 첩첩규제 때문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갈 길은 고등교육에도 자유의 원칙을 실현하는 일이다. 자유의 원칙 하에서만이 대학들은 비용을 덜 들이고서도 교육 수요자들의 욕구를 효과적으로 충족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지식을 찾아내고 테스트 하고 학습하는 “발견의 절차(discovery procedure)”가 역동적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대학경쟁력을 높이는 절차이다. 이것이 번영의 길이다

우리 경제가 일인당 소득 3만 달러의 벽을 넘어야 할 중요한 시기에 대학의 경쟁력을 위축시키는 일만 골라서 하는 정치권이 야속하기만 하다.

민경국 /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저자소개: 민경국 교수는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하이에크, 자유의 길’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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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정치권에서 공휴일이 주말과 겹칠 때에는 그 다음 월요일을 공휴일로 하는 대체공휴일 제도를 도입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 제도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첫째, 기업은 늘어나는 공휴일로 인해 늘어나는 원가부담을 전가시키게 되는데, 대부분은 현실적으로 후방의 중소기업이 그 부담을 짊어지게 된다. 중소기업과 근로자를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에 역행하는 정책이 될 것이다. 둘째, 부담이 늘어난 기업들은 원가를 줄이고 생존하기 위해서 해외로 진출하거나 훨씬 더 집약도가 높은 설비투자를 하거나, 그도 아니면 사업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결국 새로운 일자리가 늘어나기는 어렵다. 여론의 향배에 따라 좌우될 것이 아니라 국민의 미래에 혜택이 되는 방향으로 신중한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제안이유 및 주요내용

의안번호 1802922 공휴일에 관한 법률안이 2008년 12월 9일자로 16인의 국회의원에 의하여 제안되었다. 의안요약에 의하면;『현재 우리나라는「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통하여 공휴일을 규정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휴무에 관하여는 개별 기업에 맡겨놓고 있는 까닭에,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근로자의 경우 공휴일을 주장하기가 쉽지 않고 기업 방침에 일방적으로 따르는 것이 일반적임.

또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르더라도 일정한 공휴일 일수가 확보되지 못하고 해마다 공휴일 일수에 있어서 편차가 나타나고 있어서, 안정적인 삶의 질을 추구하고 휴식을 통한 에너지 재충전으로 생산성을 높이자는 공휴일의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임.

따라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내용을 법률로 제정하고, 공휴일이 다른 공휴일과 겹칠 때에는 공휴일 다음의 첫 번째 비공휴일 하루를 공휴일로 하는 대체공휴일 제도를 신설하려는 것임.』으로 되어 있다.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고 논의해서 제안한 것인가?

그런데 과연 그 제안대로 일정한 공휴일 일수가 확보되지 못하고 또 공휴일 일수에 편차가 나타나서 안정적인 삶의 질이 확보되지 못하는지, 그리고 공휴일이 확보되면 생산성이 높아지는 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제안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공휴일 제도와 관련해 신문을 통해 조사해 본 자료에 의하면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총 5건이다. 대체공휴일을 도입하자는 주장은 짧은 휴일로 인해 차량정체가 생기는 등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의원에 따라 근로자의 날·어버이날·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의견이 곁들여졌다.

의원들이 제시한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연합뉴스 ’10. 01. 04.)에 따르면 대체공휴일제를 도입해 4일을 추가로 쉴 경우 관광소비 지출액이 4조6천억 원 증가하고 생산유발효과 8조 원, 부가가치창출효과 3조5천억 원, 고용창출 효과도 14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 자료를 직접 읽어 보지 못해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하루씩 놀고 소비지출과 생산유발 효과, 고용효과가 그렇게 크다면 공휴일을 줄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더 늘리자는 주장이 타당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반대로 남들은 연장 휴가로 쉬고 있는데 그들을 위해서 덤으로 반드시 근무해야 할 공공 서비스기관 사람들의 입장은 어떠할 것인가. 기업이 추가로 지불해야할 인건비는 어떠한가. 평일 수당의 1.5배를 지급해야하기 때문에 석유화학·철강·유통·숙박업 등 4개 분야에서만 휴일 근로수당으로 1조4000억 원의 추가 부담을 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철강·석유산업의 경우 총인건비 대비 휴일 근로수당이 5.26%, 백화점 등 서비스업의 경우 2.94%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박수찬, 조선일보, '09, 11. 20).

그러므로 적어도 현장에서 책임 있게 일을 해본 지도자라면 그런 주장을 쉽사리 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국경일마다 의미를 부여해서 너도나도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주장만 내세우면 일은 언제하고, 공부는 언제 한단 말인가.

1988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24회 하계 올림픽 경기대회는 우리나라의 국력을 세계에 알린 큰 행사였다. 그렇지만 올림픽을 전후해서 국내외로부터 여러 가지 경고가 제시되었다. 공통점은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린다.’라는 것이었다. 사회 기강을 통제할 리더십의 부재 속에서 수년을 헤매다가 드디어 IMF 구조조정기간을 맞이했던 것이 불과 10년 전의 일이다. 올림픽 이후 10년, IMF 이후 10년, 우리는 무슨 교훈을 얻었는지 지도자들은 벌써 잊어버린 것 같다.

지구상에서 우리나라가 이만큼 살 수 있게 된 바탕은 제조업에서 솟아났고, 앞으로도 산업의 경쟁력은 십 수 년 동안은 제조업에 기반을 둘 것임에는 분명하다. 대체공휴일 제도가 도입되면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또다시 변신해야 하는 데, 이 때 예측되는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더구나 IMF는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산업의 부실 때문에 초래된 것이었다.

첫째, 기업은 공휴일의 추가로 어떻게든 그 공백을 메워야 하는데, 이는 곧 원가부담이 된다. 부담되는 원가를 어떻게든 줄여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줄일 수가 없으므로 전가(轉嫁)시킬 수밖에 없게 된다. 왜 원가를 줄일 수 없고, 또는 그만큼 생산성을 더 높일 수 없는지를 설명하기에는 이 지면이 너무 좁고 또 논란의 주제와는 벗어나기 때문에 다른 기회로 넘긴다.

다만 전가시키는 메커니즘을 설명하고자 한다. 기업은 개별기업 혼자 독립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수급관계에 의하여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원가와 품질과 시간이 네트워크의 고리로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원가와 시간에서 불균형이 발생하면 파워가 약한 어느 한 쪽이 짐을 지게 되어있다. 대부분 후방의 중소기업이 짊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전방의 대기업 또는 강한 기업이 대신 부담을 줄여주면 좋지 않겠느냐고 인도적인 반문을 할 수도 있다. 이는 사업을 안 해 본 사람들의 말이다. 이들 대기업은 나름대로 세계의 더 큰 대기업들과 경쟁하므로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기업은 생존을 위해 더 몸부림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여기에 생사를 건 여러 중소 협력기업들이 줄 서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 대규모 중화학제조 기업이 국제 경쟁력을 얻고 힘을 얻기 시작할 즈음, 왜 대체공휴일을 만들어 원가와 시간에 부담을 주려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결과는 이들 기업의 받침목이 되는 다수의 후방 중소기업이 떠안을 것이 분명한데 국회의원은 중소기업과 근로자를 위한다고 하면서 정책은 역행하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둘째,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시간의 갭이 있겠지만 IMF 이후와 같은 전철을 밟아야 할 것이다. 원가를 줄이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해외에 생산기지를 찾아 나서든가, 훨씬 더 집약도가 높은 설비투자를 하던가, 그도 아니면 사업을 접어야 할 것이다. 올림픽과 IMF 이후의 유행어였던 '아직도 제조업을 하십니까?’라는 말을 벌써 잊어버린 모양이다.

’90년대 많은 기업이 중국과 동남아 등 해외로 진출했지만 그 성공 사례가 많지 않고 그나마 국내에서 설비자동화로 버틴 기업이 더 성공적이었다. 설비투자는 추가로 자금압박이라는 부담을 져야 하고, 그 결과 새로운 일자리는 늘어나기가 어렵다.

현장에서 지도자로 일 해본 경험이 있는가?

공휴일 확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휴일은 법률로 정하되 기업이 노사 합의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는 부칙 조항을 넣자는 것이다. 또 고속도로의 정체라든지 한국의 연(年) 근로시간이 선진 외국에 비하여 가장 길다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노동생산성이 낮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만약 대학에서 법적 공휴일에 강의를 하겠다고 선언하면 매년 총학생회장의 선거 이슈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에 대해 교수의 권위가 살아 있는 대학은 그나마 학생들을 설득하려고 노력은 해 보겠지만, 공휴일 강의문제와 같은 이슈는 학생회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많은 총장들은 아예 처음부터 공휴일에 강의를 한다는 '문제꺼리’를 만들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하물며 중소기업이 노사와 합의해서 1.5배의 보수를 더 주면서까지 공휴일 날 일한다는 것은 참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일이다. 고속도로의 정체는 명절 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미 평소에도 정체는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꼭 공휴일의 기간을 길게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평소에도 공휴일만 되면 정체는 심해진다.

나는 미국의 대학들이 어떻게 학사를 진행시키고, 또 기업에서 어떻게 일하는지를 짧게나마 볼 기회가 있었는데, 왜 우리나라 대학이 세계의 대학 평가에서 100위안에 들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교수의 연구나 학생의 공부에서 그 질(質)을 지적하는 데, 그에 앞서 시간이라는 분량(分量)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학사 집중도의 시간의 분량을 미국 대학과 비교하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 기업들의 근무시간 중 작업의 집중도는 사무직이든 노동직이든 너무나 철저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해진 쉬는 시간 외에는 전혀 낭비가 없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대학이나 기업이나 너무나 느슨하고 방만하다는 생각이다. 발표되는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의 노동생산성 자료를 비교해볼 때 우리나라가 평균보다 낮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생산성 본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그 격차가 점점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OECD국가(30개국, 08년 기준)중 22위로 나타나고 있다. 취업자 1인당 년 부가가치생산액이 우리나라는 1위 국가인 룩셈부르크의 111,742달러에 비해 51.2%인 57,204달러이고, 이는 미국의 61.5%에 지나지 않는다. 서비스업 노동생산성도 3만3233달러로 조사 대상 25개 OECD 국가 중 22위에 머문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미국 대비 44.8% 수준이고 일본의 59.9%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간 휴일은 일요일과 공휴일을 포함해서 총 118일인데, 이는 일본의 119일보다 하루가 짧지만, 미국 유럽 등의 선진국보다는 4〜5일이 길다. 더구나 일본보다는 연차휴가가 5일이나 길고, 유럽 국가와 동일한 수준이다(박수찬, 조선일보,’09. 11. 20).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노동시간이 길기 때문에 공휴일 수를 늘려야 된다고 한다면 국회의원들의 안목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국민에게 혜택으로만 돌아오지 않을 대체공휴일

지도자들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여론에 핑계 대는 것이다. '내 생각은 그게 아닌데 여론이 그래서 할 수 없다.’라는 말이다. 다수를 의식하는 인기 발언은 훌륭한 지도자가 아니라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존경받는 지도자는 아무리 여론이 압박을 한다고 하더라도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국민 전체와 후세 자손들에게 가장 덕이 되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다.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날이 어디 있겠는가. 어버이날도, 제헌절도, 한글날도, 다 중요하다. 중요하다고 다 공휴일로 정하면 이제 막 새로 싹 피기 시작한 대한민국의 자랑인 근면과 검소 그리고 열정을 누가 언제 어떻게 다시 회복시키겠는가? 주40시간 근무제도가 실시 된지 이제 5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중과세의 병폐를 개선시키기 위하여 명절날 3일씩 쉬기로 하였는데 거기에다 다시 공휴일을 연장시킨다면 공휴일 공화국이 되란 말인가. 공휴일이 길어지면 기업이나 학교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IMF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고, 가정이 파괴되고 눈물을 흘렸던가. 구조조정은 불과 수년전 그리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대체공휴일 제도와 같은 이유 때문에 단 1%의 원가라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면 기업은 부담을 안게 되고, 그 대가는 누군가 치르게 되어있다. 경험적으로 보건대 언제나 약자에게 되돌아간다.

사회적 약자와 근로자를 위한 대체공휴일 정책이 그 의도대로 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 결과가 어떻게 미칠지 시장경제의 원리를 진지하게 알아야 하겠고, 또 국민 다수와 그리고 미래에 혜택이 되는 방향으로 정책 결정이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규상 / 목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저자소개 : 이규상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목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우리나라 제조기업의 생산전략', '열정적인 지도자의 경영학원론', '가치창조를 위한 현대생산관리'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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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금융지주회사사태가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회장 선임 문제와 금융당국의 압박, 그리고 일련의 사건들은 또 다시 '관치금융’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 KB금융지주 사태는 단순한 금융 감독만의 문제가 아니다. KB금융지주회사가 사기업이므로, 사기업에 대한 금융당국의 개입은 한국 금융시스템과 금융기관에 대한 해외 신뢰도 추락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금융기관의 경영상의 문제는 시장과 주주들의 판단에 맡겨야 하며, 금융당국은 감독을 이유로 금융기관의 경영에 개입하는 타성을 버리고 규제를 하더라도 사전규제가 아닌 사후규제여야 한다.

금융당국의 '의중’을 살피지 않은 괘씸죄

2009년 세밑 KB금융지주의 회장후보로 내정된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돌연 사퇴함으로써 파장을 일으켰다. 회장추천위원회에 의해 2009. 12. 3. KB금융지주 회장후보로 선정된 그는 2010. 1. 7. 열릴 임시주주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임될 예정이었다. 강 내정자는 '자진 사퇴’로 말하지만, 정부 압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시장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정황적인 증거도 이 같은 시각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KB금융지주 회장공모에 참여했던 여타 경쟁자들이 "회장 선출이 불공정하다"며 KB금융에 직격탄을 날리고 후보를 사퇴하면서 일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경쟁자들이 후보 사퇴한 가운데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단독으로 면접에 참여해 만장일치로 차기 회장 후보에 추천됐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마뜩하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KB금융지주 회장 선임을 오는 3월 정기 주총 이후로 미루어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사회는 이를 거절했다. 이렇게 해서 괘씸죄를 사게 된 것이다. 그러나 KB금융지주 입장에서 볼 때, 황영기 전(前)회장이 물러난 이후 최고경영자(CEO)의 공백을 최소화하려 한 것은 당연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금융당국의 KB금융지주에 대한 압박은 금융감독원의 '사전검사’를 통해 노골화되었다. 작년 12월16일부터 23일까지 평소보다 3배가 넘는 인원이 투입된 '이례적’인 사전검사가 그 방증이다. 그 과정에서 일부 임원은 동의형식을 취했지만 검사반에 전산자료를 넘겨주었으며, 강 내정자의 운전기사까지 조사를 받았다. 일부 사외이사 주변도 내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전방위 압박으로 결국 강 내정자가 사퇴한 것이다.

이번 KB금융지주 회장후보 사퇴로 정부가 지분을 갖지 않은 민간 금융기관이라 할지라도 “관(官)의 눈 밖에 나면 끝”이라는 세간의 인식이 재차 확인됐다. '관치금융’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이다. 물론 정부와 금융당국의 입장은 다르다. KB금융 사외이사들이 '견제 받지 않는 권력’으로 부상한 것이 문제를 일으킨 연원(淵源)이라는 것이다. 사외이사들끼리만 모여서 회장 내정자를 선출하고, 사외이사들끼리 모여 자기 후임을 뽑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 반론(反論)의 요지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판단의 기준’일 수는 없다. 금융지주회사의 회장 선임에 절차상의 하자가 있다면 합당한 절차에 따라 당국이 시정을 요구하면 된다. 하지만 당국은 시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의중을 내비침으로써” 피(被)규제기관이 이에 따르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KB금융지주는 '사(私)기업’이며 그 주인은 '주주’이다. 따라서 감독당국이 또는 그 어떤 권력기관이라 하더라도, KB금융지주 이사회가 관계 법령과 회사 정관에서 정한 적법 절차에 따라 선출한 회장 후보를 사퇴시킬 수는 없다. 현행 법령을 보자. 은행법(제22조)과 금융지주회사법(제40조)에 의하면, 은행 및 금융지주회사의 이사회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그 구성원의 1/2 이상을 사외이사로 해야 한다. 그리고 은행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등은 '정관’에서 자율적으로 정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강정원 행장의 내정은 절차상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일부 사외이사에게 잘못이 있다면 문책하면 된다. '회장추전위원회’라는 시스템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금융 당국이 규제와 감독을 강화하는 것과 경영에 개입하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절차와 규정에 따라 정상적으로 선임된 내정자를 낙마시킨 것은 그 자체가 경영에 개입한 것이다. 소유만 민간일 뿐, 즉 민유(民有)일뿐 경영은 관(官)이 한 것이다. '관치금융’ 부활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KB 금융지주에 대한 '보복성’ 종합검사

KB금융지주 회장 선임을 놓고 촉발된 금융당국과 KB금융지주 간의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KB금융 이사회가 금융당국의 뜻을 거스르고 강정원 행장을 회장으로 내정한 것이 1라운드, 금융당국이 고강도 '사전검사’를 통해 강 회장 내정자를 낙마시킨 것이 2라운드라면, 14일부터 시작될 금융감독원의 KB금융에 대한 '종합검사’가 3라운드인 셈이다. 이번 종합검사에는 금감원의 최정예 조사인력 35∼40명이 투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강정원 국민은행장과 일부 사외이사를 '정조준’함으로써 '낙마’에 대한 명분을 쌓으려 한다. 이번 종합검사 대상은 크게 4가지로 압축된다.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딧뱅크(BCC) 인수건, 커버드(covered bond) 본드 관련 손실, 부적절한 영화 투자에 따른 손실, 금전적 지원을 통한 사외이사 장악 의혹 등이 그것이다.

BCC 인수건은, 2008년 8천억원을 투자해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 지분 30.5%를 인수했지만 경영권을 확보하지 못했고, 주가 폭락으로 2천500억원의 평가손실을 입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합검사를 통해 국민은행이 해외 중소은행에 불리한 조건으로 무리하게 대규모 투자를 했는지 여부를 가리겠다는 것이다. 또한 '커버드 본드’ 관련 손실건은, 2009년 5월 10억 달러 규모의 커버드본드(주택담보대출채권 등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하는 채권)를 높은 프리미엄(비싼 수수료)을 주고 발행해 은행에 손실을 끼쳤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종합검사를 통해, 당시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가 회복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낮아져 추가담보 없이 국민은행 신용만으로 발행해도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을 비싼 발행비용을 지불했는지 여부를 가리겠다는 것이다.

나머지 2개의 조사대상은 사적(私的)인 것으로 판단된다. 강 행장은 2007년 국민은행 자회사를 동원해 지인이 감독을 맡은 영화에 15억 원을 투자하도록 했고, 흥행부진으로 은행에 손실을 끼쳤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리고 KB금융지주 일부 사외이사의 취임 직전 또는 직후에 용역 의뢰 등의 방식으로 지원해 이사회를 장악하려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의문점에 대해서는 물론 엄정한 검사가 요구된다.

그러나 조사대상 중 투자관련 손실에 대한 검사는 대단히 신중해야 한다. '보복검사’ 논란이 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투자 사례를 복기(復棋)해 그 책임을 묻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현재는 과거의 미래로써 투자 당시에는 불확실성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경영상의 판단’(managerial judgement)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BCC 투자는 차익(差益) 목적의 투자가 아닌 '해외 진출 차원’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커버드본드 발행건도 유사한 해석이 가능하다. 지금의 잣대가 아닌 당시의 잣대로 보면, 가장 적절한 발행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책임은 주주들이 주주총회에서 판단해야 할 문제이지 금융당국이 판단해야할 문제가 아니다.

금융당국은 또 다른 이유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이미 금융당국은 금융감독과 관련해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황영기 전(前)KB 금융지주회장이 우리금융 회장으로 재직할 당시(2005~2007년)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것을, 사후적(2009년 9월)으로 문제 삼아 황 회장을 물러나게 했다. 2008년 예금보험공사와 금융감독원이 검사했을 당시 문제없다고 결론 낸 것을 다시 문제 삼은 것은 큰 실책이 아닐 수 없다.

금융기관의 경영실태 내지 임원의 적격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권의 발동은 감독당국의 고유권한이다. 하지만 금융 감독의 본연의 업무는 금융기관의 건전성 유지와 금융시장의 안정성 제고이다. 따라서 금융 감독이 상대를 혼내 주거나 자신의 의중을 실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종합검사 대상으로 지목된 항목들은 '보복검사’의 여운을 짙게 드리고 있다. 2007∼2008년도의 일을 새삼 지금 문제 삼는 것이 타당한 지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금융 감독 시스템이 투명하고 일관되지 않으면, 그 자체가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게 된다.

역작용을 부를 수 있는 회장 선출과정

금융감독 당국은 금융지주회사의 사외이사제도 개선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사외이사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총 재임기간을 제한하고 자격요건을 엄격히 하는 등 현행 제도를 대폭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금융지주회사의 사외이사후보 및 회장후보 선출 과정에 '주주대표’의 참여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외이사제도는 주지하다시피 IMF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목표로 도입되었다. 따라서 사외이사제도의 '큰 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미조정(微調整)의 경우, 금융당국이 나설 것이 아니라 이를 해당 기관들이 정관에 반영하도록 하면 된다.

'회장 선출과정’에의 주주대표의 참여는 오히려 역기능을 발휘할 공산이 크다. 민간 금융지주회사의 주주 분포 상 주주대표로 선임될 만한 주주는 국민연금 등 국내 기관투자자이다. 따라서 이들 주주대표가 감독당국의 의사에 반(反)하는 후보를 추천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주주대표 참여는 주주대표성을 강화하기는커녕 사외이사 및 회장 선출 과정에서 감독당국의 영향력이 전달되는 통로로 전락할 소지가 있다.

감독을 이유로 경영에 개입하려는 타성을 버려야

KB 금융지주사태의 근저에는 정책당국의 민간 금융기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놓여져 있다. “금융은 자유방임으로 두기엔 너무 중요하다”는 것이다. “멋대로 경영하다 공적자금을 받는 작태를 용납할 수 없다”는 식이다. 따라서 아무리 민간 금융기관이라 하더러도 회장이 친정체제를 쌓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인식은 옳지 않다. 금융기관의 자산 건선성이 위협받는 것은, 정치논리와 경제논리가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IMF 외환위기가 그랬고, 최근 미국 발(發) 금융위기의 진앙지인 미국의 금융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정치적인 이유에서 대출부적격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이 권장되었기 때문이다. '월가의 탐욕’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그리고 경영권은 정치권력이 아니기 때문에, 친정체제 구축의 시각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 경영은 성과로서 평가를 받는다. 주주와 금융시장이 이를 평가한다.

2004년부터 2008년 중 인구가 '1천만 이상’이면서 일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는 국가들을 추출해, 이들의 '헤리티지 경제자유도’를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면 중요한 정책적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표-1> 고(高)소득국과 한국의 '경제자유도’(score) 비교 (2004∼2008년)

지 표

내 용

선진국

한 국

인구(백만명)

인구 1천만명 이상

74,849.6

48,307.4

일인당 GDP

일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38,455

18,611

경제자유도
하위지표

금융산업자유도

금융산업 국가소유 및 중앙은행 독립성

72.0

54.8

반(反)부패지수

국제투명성기구(TI)의 CPI에서 인용

76.0

48.0

노동시장자유도

노동보호 법제 및 노동시장 유연성 정도

72.7

54.8

자료: 헤리티지 재단 '경제자유도’ 보고서 각년도 및 세계은행 data base

<표-1>에 나와 있듯이 고소득국의 평균 인구는 약 7천4백만명으로 우리의 1.5배이며, 일인당 국민소득은 약 3.8만 달러로 우리의 2배를 넘는다. 사전적 예측대로 고(高)소득국과 우리나라 헤리티지 경제자유도 는 “금융산업자유도, 반(反)부패지수, 노동시장자유도”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중 '금융산업자유도’는 금융산업의 국가소유 및 중앙은행 독립성을 기준으로 평가된다. 정책당국이 민유관영(民有官營)의 구시대적 사고를 지우지 않는 한, 금융산업자유도는 개선될 수 없다. “금융 당국의 의중”이라는 속어가 사라지지 않는 한 금융산업의 질적 발전을 기할 수는 없다. 더 나아가 이들 하위 경제자유도가 개선되지 않으면, 고소득국으로의 진입은 불가능하다.

이번 KB 금융지주 사태는 한국 금융시스템과 금융기관에 대한 해외의 신뢰도 추락을 가져오기에 충분하다. KB금융은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회사인 바, 당국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CEO를 낙마시키고 이미 공시한 주주총회 일정을 취소한다면 어떤 투자자가 한국 금융기관과 기업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를 자문해 봐야 한다. 금융 감독을 지렛대로 경영에 개입하는 타성을 버려야 한다. 시장의 몫으로 돌려야 할 것은 시장으로 돌려야 한다. 금융 감독 당국의 힘은 단호하되 절제되고 정제된 사후 규제여야 한다. 힘이 남용되면 시장의 분노를 초래할 수 있다. 소리 없는 강물이 더 무서운 법이다. ■

조동근 / 명지대학교 경제학과교수

저자소개: 조동근 교수는 신시내티(Cincinnati)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겸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경제개혁연대의 경제관 비판’, '기업의 소유지배구조와 기업가치 간의 관계’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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