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자 한국에 통일 기대감이 고조되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개혁과 개방을 거부할 경우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인해 북한체제는 장기간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북한체제 붕괴와 통일을 위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통독의 역사적 경험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첫째, 대북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북한정권과 주민은 철저하게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하고 열악한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북핵 폐기를 위해 노력하면서 남북한 경제협력을 꾸준히 추진해 통일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독일이 통일되고 유럽 냉전이 종식된 지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당시 붕괴된 장벽 주변으로 모여든 수많은 인파들을 보면서 우리는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았다.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는 사실에서 충격을 받았다. 자유를 위한 투쟁은 반드시 성공하고 말 것이라는 믿음 하에 전체주의체제에 저항한 동구의 수많은 지식인들의 노력에 인류는 감동을 받았다. 이제 냉전의 종식과 함께 인류에게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부푼 기대감을 갖게 했다.
대북정책, 북한 정권과 주민은 철저하게 분리해야
독일의 통일과 함께 당시 우리 사회에도 곧 우리 민족의 통일이 멀지 않았다는 기대감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 붕괴 20년이 지난 한반도의 상황은 당시의 기대감을 무색케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어 있다. 이미 북한은 2차에 걸친 핵 실험을 통하여 사실상 핵 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도 핵무기를 먹고 살 수는 없다. 북한이 개혁과 개방을 거부할 경우 악화일로를 걷는 경제상황과 식량난으로 인하여 북한체제는 장기간 지속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면서 동시에 북한체제 붕괴와 통일을 위한 대비책을 차분하게 마련해 두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를 바탕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미리 형성해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독일통일의 역사적 경험에서 한반도 분단 관리와 통일을 위한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경제발전에 있어서도 후발 주자들이 때로 이점을 갖는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독일의 지도자들은 역사적 전례가 없는 상황에서 동서독 통합 작업에 착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 결과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게 되었다.
독일을 보면 통합 과정은 다차원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치, 군사, 사회, 통화, 경제, 문화 통합 등 그야말로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다차원적 통합 과정과 관련된 결정이 극도로 짧은 시간적 압력 하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모든 위기 상황의 결정이 시간에 떠밀려 가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독일 통일의 경우는 국제적 압력과 맞물리면서 정책결정이 매우 빨리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되었다.
정치적 통합의 경우 독일은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흡수통일을 민주적 절차를 거쳐서 결정함으로써 비교적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서 동독 주민의 일반의지가 확인되었기 때문에 국제사회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1970년대 초반부터 서독은 동방정책을 통해서 동독에 대한 꾸준한 지원과 교류, 협력을 강화시켜 왔다. 그 결과 동독인들은 서독 체제의 우월성을 인정하게 되었고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을 때 큰 어려움 없이 서독을 통일 독일의 중심으로 인정하여 정치적 통일이 이루어졌다.
여기서 보는 것처럼 우리의 경우도 북한 정권과 주민을 철저하게 분리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한국 주도의 통일에 도움이 된다는 교훈을 쉽게 도출해 낼 수 있다. 대북한 인도적 지원의 경우 조건 없이 지원하되 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혜택이 갈 수 있도록 지원의 투명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지난 10년간처럼 국내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북한에게 수억 불의 현찰을 지원하는 햇볕정책식의 무조건 포용정책은 지양되어야 한다.
북한 주민 인권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서독은 동독 주민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하고 열악한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통일의 그날까지 노력해 왔다. 1978년 11월 서독 주 문교부장관회의가 채택한 “독일문제에 대한 서독 문교부의 교육 지침”을 보면 서독이 이 문제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 지침은 서독은 “동독에 있는 독일인들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권리이며 인도주의적 의무이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이 지침에 따라 서독의 학생들은 이를 강조하는 교과서를 통해서 배웠고 모든 언론과 지식인들도 동독의 인권 개선에 노력했던 것이다.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열악한 인권 상황을 호도하는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우리의 상황은 서독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해서 강 건너 불 보듯이 하는 것은 북한 주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통일이 당장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한다면 더더욱 우리는 북한 주민들이 통일의 그날까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해서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같은 동포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의무이다.
서독은 1975년 이미 미국과 서유럽, 소련과 동구권을 포함한 35개국이 참여한 '헬싱키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베를린붕괴와 유럽의 냉전 종식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 핵심은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의 인권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었다. 과거처럼 안보와 경제협력 문제를 연계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안보, 경협, 인권 문제를 동시적으로 고려한 새로운 유럽 질서의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었다. 1978년 인권을 강조한 서독의 교육 지침도 '헬싱키협정’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우리도 북핵과 경협 문제만을 연계시키는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서 북핵, 경협, 인권 문제를 삼위일체로 묶는 '한반도형 헬싱키 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통일의 기반 조성을 위해 필요하다. 이러한 패러다임적 전환의 필요성은 독일 통일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일 것이다.
남북경협, 통일비용을 줄이기 위해 필요
6자회담 재개를 통해서 북핵 폐기를 위해 노력하면서 우리의 장기적 통일 전략에 맞게 남북한 경제협력을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일인당 소득 기준으로 볼 때 통일 당시 동독은 서독의 33%였던 반면 북한은 한국의 6%에 불과하다. 이것은 독일보다 한반도 통일의 경제적 부담이 더욱 클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비용 부담 때문에 통일을 포기할 수는 없다. 어떻게 하면 분단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 독일과 같은 고비용의 통일을 피해갈 수 있느냐 하는 데 문제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독일의 경우 '통화통합’(monetary union)이 가장 중요한 실수의 하나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동서독 통화의 통합과 교환은 서독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다. 서독은 동독에 우리의 '개성공단 모델’을 갖고 있지 못했다. 이 점에서 우리는 개성공단을 자유시장경제의 원리 하에서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갑작스러운 통화통합이 가져올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고용 창출을 통한 통합의 모델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독일의 경우처럼 한반도 통일은 우리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상황과 요인들에 의해 촉발될 수밖에 없다. 점진적이고 평화적 방식이면 좋겠지만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상태라든지 최근 '선군주의’를 내세운 개정 헌법인 '선군헌법’ 채택에 비추어볼 때 통일은 언제든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개정헌법에서는 공산주의를 삭제하고 '선군사상’을 주체사상과 함께 핵심적 이념으로 채택했다. 선군사상은 군부를 체제 유지의 근간으로 삼고 모든 자원을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함하여 군사력 증강에 집중하겠다는 노선이다. 또한 '선군헌법’은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3대 세습을 추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선군주의는 개혁과 개방을 거부하고 오로지 폐쇄적 자주노선을 견지하면서 정권 유지에만 집착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정권의 새로운 노선은 북한 사회 내부의 문제점들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악화와 권력 승계를 둘러싼 내부 투쟁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베를린 장벽과 통일 통일의 교훈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한반도 통일 과정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최근 발표된 골드만삭스의 통일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적절한 통일 정책에 의해 뒷받침될 경우 통일 한국의 GDP는 30-40년 이내에 프랑스, 독일,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통일 한국은 2050년에는 G-8의 일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통일 한국에 대한 이러한 예측이 실현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분단 관리와 통일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서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어야 할 것이다. ■
김영호 / 성신여자대학교 교수
저자소개: 김영호 교수는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외교사와 국제정치학’, '변화하는 세계 바로보기’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