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의 방북, 큰 의미 있을까?
지난 25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다시 한번 한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6일 평양을 방문한 후 28일 한국으로 올 예정이기 때문에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으로 동결된 남북관계를 회복시킬 메신저가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카터를 단장으로 한 '디 엘더스’(The Elders)가 방북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연합뉴스와의 단독 인터뷰를 한 것 역시 이러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들의 방북이 성과 없이 김정일 정권에 이용만 당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1994년 한반도의 전쟁 위기 속에서 카터가 한 역할은 인정할 수도 있지만, 그 이후의 수차례 방북에서 그가 이룬 것은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의 행동이 오히려 우리의 인식을 흐리게 한 측면도 있었다.
예를 들어 작년 8월 그의 방북이 그랬다. 당시에도 많은 언론은 카터의 방북 의미에 대해서 많은 가능성을 점쳤었다. '개인적 인도적 목적’이라는 내용도 있었지만, '카터의 방북은 미국의 대화의지 표현’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미국 정부는 그의 방북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김정일 면담 가능성’운운 하며 북한과 미국의 관계 변화 가능성도 점쳐졌었다.
그러나 결론은 어떠하였는가? 카터가 방북 했을 당시 김정일은 북한에 없었다. 그는 별 힘도 없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면담을 하고 억류되었던 미국인 곰즈씨를 귀환시키는 것 이외에 한 일이 없었다. 하다 못해 그가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는 비아냥 섞인 기사도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작년 9월 13일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카터센터 웹사이트에 직접 올린 방중 보고서 역시 문제가 많았다. 그는 자신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9월 6일 베이징 회동에서 “원 총리가 김정일 위원장이 삼남 정은에게 권력을 물려줄 것이라는 관측은 '서방의 뜬소문’이라고 말했다”(He surprised us by quoting the DPRK leader regarding the prospective promotion of his son, Kim Jong Un, as "a false rumor from the West.")라고 전한 것이 그것이다.
잘 알고 있듯이 당시 상황은 김정은의 등장이 확실하지 않았던 시점이다. 북한의 3대 세습에 관해 사람들이 반신반의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말을 믿고 김정은이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보름 후 김정은은 당대표자회를 통해 화려하게 등장한다. 카터가 북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거나 원자바오 총리한테 사기 당한 것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정황을 볼 때 필자는 왜 지금 다시 카터 등의 방북에 큰 의미를 두는지 이해할 수 없다. 지난해에 이어 북한의 초청을 받아 가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김정일과의 면담 여부 역시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북한은 그를 정치적으로 최대한 이용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벌써부터 카터는 북한 정권의 이익에 도움을 주고 있다.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이 대북 식량 원조를 중단한 상태에서 북한의 어린이와 임산부 등이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고 한 부분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발언은 두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째, '현재 북한의 식량이 부족한가’의 진실이 가려지지 않았다. 물론 한국이 식량원조를 하지 않는 만큼 북한 주민들이 못 먹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데일리NK나 열린북한방송 등 북한 내부 정보를 다루는 언론에서는 다수의 북한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식량 부족이 실제로는 크게 부풀려져 있음을 밝힌 바 있다.
둘째, 한국이 대북 식량 원조를 중단한 것 때문에 북한 어린이와 임산부 등이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 것도 문제가 있다. 지원된 쌀의 전용 문제나 국제사회의 분배의 투명성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북한 당국의 문제가 더 크다. 그것만 잘 된다면 반대할 한국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천안함과 연평도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있으면 더 빨리, 더 많은 지원이 북으로 갈 것임이 분명하다.
최근 들어 카터가 한 한반도에서의 역할은 미미했다. 이번이라고 다를까. 그에게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