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에서 시민단체에 대한 국조보조금 지급과 관련해 논쟁이 일고 있다. 시민단체는 시민들의 자발적, 능동적 참여 하에 공익을 추구하는 비정부적, 비정파적, 비영리적 결사체다. 그러나 한국의 많은 시민단체들은 이념적 편향과 체제를 부정하고 시민 전체가 아닌 특정 이익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하는 많은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정책결정에 참여하고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왔다.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단체의 활동은 허용되어야 하지만, 그 활동을 위해 국민들이 납부한 세금으로 정부가 보조금을 주어야 할 이유는 없다. |
시민단체의 국고보조금 지원 논란
시민단체1)를 지원하는 국고 보조금이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되었다. 감사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한 야당 의원은 “감사원이 문화ㆍ시민단체에 대하여 가혹한 감사를 한다.”고 질책했다. 이들 단체에 대한 감사가 친야권 성향의 시민단체에 대한 '표적 감사’라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감사원장은 “(일부에서는) 마치 좌파 성향 단체를 핍박하기 위해 가혹한 감사를 한다는데, (감사원은) 좌우 (이념) 성향에는 관심이 없다. 시민단체에 지원된 국고보조금이 어떻게 횡령됐는지를 감사할 뿐”이라고 하였다.
감사원은 최근 3년간 연간 8000만 원 이상의 국고보조금을 받은 시민ㆍ사회ㆍ문화ㆍ환경 등 543개 민간단체에 대한 감사를 진행해 왔으며, 현재까지 감사 결과 시민단체 관계자 30-40명의 횡령 의혹이 적발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일부 단체는 1억 이상의 돈을 단체 간부들이 성과급 명목으로 나눠 갖거나 개인적으로 착복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의 보조금 횡령을 낱낱이 캐라고 질타하면서,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제12조에 따라 잘못 지급된 보조금이나 잘못 사용된 보조금을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국정감사에서는 지방정부들이 정부의 '녹색성장을 위한 지역공동체 활성화 사업’을 위한 예산을 특정 관변단체에만 집중적으로 지원하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지방정부들의 편향된 지원 기준으로 전국 조직을 갖춘 대표적 관변단체들은 쉽게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부분의 지방정부는 시위를 주도하거나 시위로 처벌을 받은 경력이 있는 단체에는 신청 자격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에 비판적인 시민 단체를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고 친정부 단체만을 지원할 목적으로 시위를 주최·주도하거나,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구성원이 시위에 참여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처벌받은 단체에는 신청 자격조차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이념성 편향성
정권이 바뀌면서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변화여 정부가 감사를 통해 현정부에 비판적인 시민단체들을 억압하거나 재정적으로 불이익을 주고 있다는 것이 야당 의원들의 주장이다. 정부가 일부 시민단체를 실제로 차별대우를 했는가에 관계없이 야당의원들은 시민단체의 정치적 편향성을 인정하고, 감사원장도 좌파 성향의 시민단체와 우파성향의 시민 단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의 시민단체들이 강한 이념적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시민단체들은 강한 이념 과잉ㆍ편향을 보이면서 과거에는 권력과 유착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단체들은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부정하고, 종북주의 및 친북(親北)통일론을 확산하고, 반(反)시장ㆍ반기업 정서를 조장하고, 반미(反美) 및 폐쇄적 자립경제 노선을 지지하고, 과격한 폭력을 조장하고, 사실의 왜곡과 선전선동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촛불 집회나 시위를 통해 정부 정책의 변경을 강요하고 국가를 조직적으로 반대하고 무력화하려는 반(反)헌법적 행동도 불사하였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시민단체가 갖는 강한 이념성과 정파성은 시민단체가 탄생한 역사적 특수성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의 본격적인 출현은 민주화 이후이다.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던 세력들이 직선 대통령 선거라는 형식적 민주화를 이룩하고 난 뒤에 시민단체로 모습을 바꾼 것이다. 1990년대 초 한 진보적 지식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하였다.
“우리 상황에서 진지적적인 시민운동은 아주 적합하고 필요하다. … 시민운동과 계급운동은 대립관계에 서지 않고 오히려 상호보완적 관계에 서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문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성공적으로 일어나기 지극히 어려운 현실에서 오늘의 한국 민중의 고통을 누가 더 현실적으로 효과 있게 제거해 줄 수 있느냐는 데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계급운동론의 입장에서 시민운동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계급운동과 공동의 목적을 가진 운동으로 시민운동이 설정되고 시민사회가 탄생되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많은 시민단체는 태생적으로 이념지향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상은 시민운동이나 시민 단체의 일반적인 성격과 많은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시민단체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언론사에 이어 제5의 권력이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정확하게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그 숫자도 막대하다. 2006년에 발간된 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의 시민단체는 2만 3천여 개에 이른다. 시민단체는 “시민들의 자발적ㆍ능동적 참여 하에 공익을 추구하는 비정부적ㆍ비정파적이고 비영리적인 결사체”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시민단체는 시민들의 자발성ㆍ자발주의에 입각한 단체로 공익을 추구하고 비정부적ㆍ비정파적이고 비영리적인 성격을 지녀야만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는 시민의 자발성에 기초한 것도 아니고, 공익을 추구하지도 않고, 탈정파적도 아니다. 더 황당한 것은 시민단체가 자신이 섬겨야 할 헌법과 국가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 시민단체의 문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체제를 부정하는 시민단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시민단체, 특수 집단이 의도적으로 조직한 시민단체, 정권의 외곽 단체로 전락하여 권력에 취한 시민단체 등 다양한 시민단체가 존재하였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특정 단체의 이익을 대변해 대표성 잃은 시민단체
일반적으로 시민단체의 출현 배경에는 정치ㆍ경제ㆍ사회와 같은 공적 영역을 국가나 시장에 맡길 때 침해당하는 공적 이익이 존재한다는 가정이 자리 잡고 있다. 국가와 시장이 유발하는 부작용을 시민단체가 드러내 보이거나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는 국가와 시장이 공적 이익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다는 전제 위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런 전제 때문에 시민단체는 다수 시민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시민단체가 시민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믿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시민단체가 시민들의 보편적인 이익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정책결정에 참여하고 사회적 발언권을 가지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시민들이 시민단체에게 자신들의 입장이나 이익을 대변하도록 대표성을 부여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가 사회적으로 일정한 공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부당하다는 관점이다.
시민단체가 공정하게 일반 시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공공의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 시민단체가 시민들의 대리인으로 정치, 사회에 참여하는 것은 잘못이다. 시민단체는 공식적으로 시민의 대표 기관이 아니다. 일반 시민의 참여 수준이 높고 낮음이 시민 단체의 대표성을 보장하는 기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많은 시민들이 시민단체에 참여한다고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참여하는 시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지 시민 모두의 입장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념지향성이 강한 시민단체들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우리 사회의 시민단체를 고려하면 시민단체에 시민의 대표성을 부여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일부에서는 시민단체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시민단체 지도자들이 전향적인 의식 전환을 하여 환경ㆍ인권ㆍ부패ㆍ복지ㆍ지역공동체 등과 같이 최대한 이념을 초월하는 공익적 시민단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할지라도 시민단체가 시민의 대표성을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시민단체는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대표성을 부여한 단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시민단체는 정부단체와 구별되며, 말 그대로 비정부기구다.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보조금, 정당화 할 수 없다.
시민단체는 본원적으로 시민의 대표성을 획득할 수 없다. 시민단체는 참여하는 시민들의 자율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고, 규제와 지원을 받지 않는다. 시민단체의 책임성은 단체 자체가 부여하는 것이지 시민들이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책임성은 어디까지나 자율규제와 자율경쟁을 통해 달성되는 것이지 외부의 힘에 의해 이룩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많은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왔다.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현재 정부가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을 통해 시민단체의 경상비가 아닌 개별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고 해서 정부 지원의 정당성이 확보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시민단체들이 정부로부터 받은 보조금을 부당하게 사용하였다거나 정부가 자신과의 친화관계를 따져 보조금을 선별적으로 지급했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고 시민단체가 그 보조금을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이다. 설사 시민단체들이 자발적으로 결성되고, 공익을 실현하고 비정파적이라 하더라도 정부의 보조금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시민단체는 정부단체도 아니고, 정부로부터 규제를 받거나 보호를 받는 단체도 아니고, 그 단체의 존립과 활동을 국가 차원에서 재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보편적인 합의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기 정부 보조금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은 사상과 표현, 결사의 자유를 갖기 때문에 시민단체의 활동은 허용되어야 하지만 그것의 활동을 위해 국민들이 납부한 세금으로 정부가 보조금을 주어야 할 이유도 없고 주어서도 안 된다.
신중섭 /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저자소개: 신중섭 교수는 고려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논쟁과 철학’ (공저), '전교조의 이념과 운동 비판’ 외 다수가 있다.
1) 이 글에서는 관례에 따라 '시민단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시민단체’ 대신에 'NGO’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