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공개를 두고 찬반 의견이 팽팽하다. 하지만 교육의 소비자인 학부모 입장에서 보면 수능성적 공개는 선택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필수다. 정보를 공개하면 학교와 교사는 서로 경쟁을 하게 되고, 학부모들은 그 정보를 토대를 학교를 선택할 수 있으며 학생들은 더 좋은 품질의 교육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경쟁을 죄악시여기지만, 경쟁이야 말로 성장과 발전의 원천이다. 교육도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
요즘 수능성적 공개를 맹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부 언론에서는 '드디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는 등 모든 고등학교의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들이 패닉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움직임의 배경에는 학생들의 학력관련 정보를 학교별로 공개하면 학교의 서열화가 고착되고, 과열경쟁이 심화되어 학생들의 심신이 황폐화며, 사교육비가 증대된다는 것을 기정사실처럼 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제들은 결코 수능성적자료를 공개해서 벌어지는 문제들이 아니다. 수능성적 자료는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학교서열을 고착화 하는 것이 아니라, 서열의 활발한 변동을 유도하는 기제로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학생들의 심신 상태와 상관 분석함으로써 전인교육을 촉진하고 정당화하는 근거로도 활용할 수 있다.
수능성적 혹은 학업성취도 평가와 관련된 원자료나 정보는 교육의 현황과 학생들의 학습 실태를 보여주는 자료일 뿐이며, 그것 자체가 어떤 성향이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기능할 수 있다. 따라서 수능성적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말자는 얘기는 우리의 교육 현황과 학생들의 학습 실태를 파악하지 말고, 그대로 묻어둔 채 아무것도 하지말자는 것이다.
수능성적공개,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다
여당의 한 국회의원과 모 일간지가 수능정보를 분석하여 평균성적 및 1등급 학생 비율 상위 100개교를 등을 밝혀냈다. 그리고 평준화 지역과 비평준화 지역의 학교 성적을 비교하고, 평준화 학교 내 성적 격차 등도 짚었다. 지금까지 학생들의 학력관련 정보가 극비문서처럼 취급되어 연구조차 자유롭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100위까지의 순위를 갑자기 언론을 통해 밝히는 것을 참으로 충격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학력격차 문제와 평준화 문제 등에 대한 문제제기는 물론이고 수능성적 자료 공개 자체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체로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현재 다니거나 미래에 다닐 학교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그 실상을 알고 싶어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상위 100위까지의 순위 공개는 학부모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정보를 공개한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이번 수능시험 자료 공개로 고교 간 학력격차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현행 평준화 교육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 자료 공개를 통해 학생과 학부모는 학교선택을 할 때 참조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교육당국은 이러한 자료 공개와 평가를 통해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직시하고 교육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수능성적 공개는 지극히 당연하고 또 필요한 일을 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수능성적공개 파장이 큰 이유, 교과부가 해야 할 일을 안했기 때문
그런데 수능성적 공개의 사회적 반향은 냉정성은 간데없고, 감정적 대응을 넘어 법적 대응까지 번지고 있다. 왜 그럴까? 표면적으로는 사회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안을 충격적인 방법으로 폭로한 것에 있다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교과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endif]>
교과부는 마지못해 수동적으로 학력정보를 제공했다. 교과부는 모름지기 수능관련 자료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자료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고 학습 실태와 문제점을 파악하여 국민에게 사실대로 보고했어야 했다. 그리고 국민들의 주된 관심사에 대해서는 심층 분석을 하여 국민들이 차분하고 냉정하게 종합적으로 우리나라의 교육문제를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끌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후에 관심 있는 학자들과 국회의원 그리고 언론기관 등에게도 제공하여 더 다양한 분석이 나올 수 있도록 했다면 학력정보 공개는 매우 생산적으로 기능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교육과 관련하여 정부가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다음 2가지다. 하나는 국민에 대한 책무 확인이다. 우리나라는 정부예산의 가장 큰 몫을 교육에 할애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민이 사교육에 지출하는 돈도 정부예산 못지않다. 따라서 교육 분야의 책무확인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것은 교육의 성과를 국민에게 보고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교육의 성과 중에서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중요시 하는 것이 학생들의 성적, 곧 학력이다.
다른 하나는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현재 세계가 추진하고 있는 국가차원 교육의 질 관리와 관련한 핵심적 내용은 학력의 체계적 향상과 학력 격차의 축소이다. 이러한 교육의 질 향상 없이는 교육경쟁력의 향상도 미래를 대비할 수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 주요국들은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학교 교육 활동의 주된 성과인 학력에 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생산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는 한편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가 교육과 관련하여 해야 할 '책무 확인’과 '질 향상’을 위해서는 각종 교육정보를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생산하고, 나아가 이를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여 교육 실태를 객관화하는 것이 요구된다. 따라서 교육정보공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한다.
정보공개, 경쟁을 유도해 교육의 질을 향상시킨다
우리나라의 교육 실태를 가장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주체는 교과부이다. 교육의 목표를 한마디로 학력 향상이라고 주장한다면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학력은 교육 활동의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차원에서 교육 책무를 확인하고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가장 큰 관심이 되는 것이 학생들의 성적이다.
대체로 학생들의 학력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것에 대해 학교와 교사 그리고 교육당국은 소극적이거나 거부적 태도를 보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이 힘들어 지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학부모와 지역사회 주민들은 대부분 찬성한다.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학교와 교사가 학생들을 위해 더 노력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는 원리는 간단하다. 학력정보를 공개하면 학교와 교사 그리고 교육당국이 서로 경쟁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미덕이다. 경쟁이야말로 성장과 발전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교육도 여기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경쟁을 죄악시하는 세력도 있다. 교육계 내부에 그러한 세력이 특히 강하다. 물론 우리나라만의 사정은 아니고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있다. 아마도 교육이라는 사안의 특성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많은 나라에서는 교육에도 경쟁 원리를 도입하고 있으며, 또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과거의 틀을 엄격하게 고집하고 있다. 그 결과 학생과 학부모만 더욱 경쟁해야 하는 사회가 되었고, 그것은 사교육의 증대를 가져왔다.
학력정보 공개는 학생과 학부모뿐만 아니라 학교와 교사 그리고 교육당국도 경쟁하게 만든다. 학교가 사교육기관과 비교하여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학교도 서로 경쟁해야 한다. 경쟁이 있어야만 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학력정보 공개는 학교간의 경쟁을 유발하여, 학교교육의 질적 향상과 개선을 초래한다.
학력정보공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경쟁의 가치를 부정하거나 소극적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그들은 학력정보 공개의 폐해를 확실한 사실에 근거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측과 부분적 진실을 가지고 전체이고 본질인 것처럼 과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생산적인 논쟁이 되지 않는다. 감정이 생기고 갈등만 표출될 뿐이다. 학력정보가 공개되어 다양하게 분석되고 연구될 때, 우리사회의 교육 갈등도 합리적으로 조정될 수 있고, 교육의 정상화도 진전될 수 있다. ■
이명희/ 공주대 교수, 자유교육연합 상임대표
저자소개: 이명희 교수는 일본 츠쿠바대학(筑波大學)에서 교육학박사학위를 받았고, 자유교육연합 상임대표와 공주사대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자율과 책무의 학교개혁: 평준화의 논의를 넘어서’, '교과교육평가의 이론과 실제’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