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연구자문위원회가 그 동안 현행 헌법을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헌법개정안을 발표했다. 많은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보이지만, 유감스럽게도 개헌안은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먼저, 권력자들끼리 권력나누기를 목표로 하는 권력구조 개편에 치중하고 있을 뿐이다. 둘째, 분배와 복지 등 사회적 기본권 강화를 통해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셋째, 조항별로 정부개입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어 경제에 대한 정부간섭을 광범위하게 허용하고 있다. 넷째, 지방분권화를 추진하지 않고 기형적 지방자치를 강화하고 있다. 이번 개헌안은 비전도 철학도 없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보장하는 개헌안도 아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통치자들의 권력을 제한하고 시민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개헌이어야 한다.

지난해 9월 국회의장 자문기구로 설립된 헌법연구 자문위원회(이하 헌자위)는 그동안 현행헌법을 연구하여 그 연구결과로서 헌법개정안을 최근에 발표했다. 헌자위는 1987년 개정된 현행헌법이 세계적 정치․경제 환경의 급변에 따른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에서 헌정운영으로부터 축적된 경험과 이론을 바탕으로 “국가의 미래를 담아 낼” 개헌안을 작성했다고 한다.

그 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엿보이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개헌안은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권력자들끼리 권력나누기를 목표로 하는 권력구조에 치중하고 있을 뿐, 국가균형발전과 분배와 복지를 확대․강화하고 경제 간섭을 광범위하게 허용하고 있으며, 더구나 중앙집권적 지방자치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개헌안은 철학도 없고, 비전도 없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보장하는 개헌안도 아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어떠한 방향으로 개헌을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통치자들이 시민들의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의 권력을 제한하여 자유와 재산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개헌이어야 한다.

사회적 기본권 확대를 통해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개헌안

개헌할 때마다 항상 부각되는 당위론적 주장이 있다. 국민의 실질적 권리 보장을 위해 사회권적 기본권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 결과가 인간다운 생활권, 교육을 받을 권리, 근로의 권리, 근로3권, 환경권, 건강권과 모성을 보호받을 권리 등등 현행헌법의 사회권적 기본권이다. 그러나 사회권적 기본권을 확대하면 자유권이 제한된다는 사실, 그 확대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부지출의 증가가 요구되고 경제활동도 심각하게 위축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유감스럽게도 헌자위가 고려하지 못한 것도 바로 그 점이다. 현행헌법에서 사회권적 기본권의 확대가 시민들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그 확대와 실행의 당위론만을 고집하고 있다.

헌자위는 형식적 평등이나 기회의 평등과 같은 개념은 낡은 것이고 사회적 경제적 약자 및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통한 실질적 평등 개념이 현대적이라고 믿는다. 이런 믿음에 따라 헌법에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는 것을 국가의 의무라는 새로운 조항의 도입, 소외계층의 정보 접근권, 출산․양육에서 남녀평등권과 같은 새로운 사회권적 기본권 도입을 강조한다.

흥미로운 것은 독일의 사회주의자 울리히 베크(U. Beck)의 위험사회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안전에 대한 권리”의 새로운 도입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험사회론은 현대사회를 이른바 “위험사회”라고 규정하고 위험발생의 장본인이 자본주의라고 터무니없이 비판하면서 국가의 영역을 확대할 것을 정당화하는 이론이다.

유감스럽게도 헌자위는 현행헌법의 사회권적 기본권과 새로이 도입한 안전에 대한 권리가 어떤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이런 권리 확대가 자유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하여 진지한 논의가 없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위험사회론이 주장하는 대로 안전에 대한 권리를 확대할 때는 정부가 시민들의 삶의 영역을 속속들이 개입할 위험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경제에 대한 정부간섭의 필요성을 강화한 개헌안

개헌할 때마다 항상 증가한 것이 또 있다.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규제와 특정한 산업이나 집단의 활동을 지원․ 육성하는 등, 현행 헌법 119조에서 127조까지의 규정에 따른 정부간섭이다. 개헌 때마다 정부개입범위를 확대하기만 했을 뿐, 자의적인 정부개입은 경제자유를 제한하여 경제침체와 빈곤을 야기한다는 것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개헌할 때에는 규제조항들을 폐지하거나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자위의 개정안은 수많은 경제학자들을 실망시키고 말았다. 과거의 사회주의 국가 헌법에 가까울 정도로 정부개입이 광범위한 경제관련 현행헌법 규정을 전부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조항별로 정부간섭의 당위론을 제시하여 간섭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조항만을 본다고 해도 당위론이 틀렸다는 것이 대번 드러난다.

먼저 대표적인 경제 규제 조항인 헌법 제119조 2항이다. 이 조항은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개헌안은 이를 폐지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국가경제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 둘째, 현재의 금융위기로 볼 때 경제활동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타당한가? 헌자위가 말하는 국가경제의 이익이란 무엇인지 불확실하다. 우리가 주지해야 할 것은 시장경제는 특정한 국가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용할 경제질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것은 조직(Organization)과는 달리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달성할 공동의 목적이 없는 질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미국 발 금융위기는 자유시장의 탓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시장의 원칙을 배반한 방만한 통화정책과 무모한 주택정책의 탓이라는 것이다. 1929년대 세계대공황도 시장경제의 탓이 아니라 방만한 통화정책의 탓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더구나 공황이 장기적이고 심화되었던 이유도 루스벨트의 반(反)시장적인 뉴딜정책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이 두 가지 위기만을 놓고도 번영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정부의 간섭이 아니라 자유와 재산 그리고 책임원칙과 건전한 통화를 기반으로 하는 자유시장이라는 것이 입증된다.

금융위기로부터 우리가 얻는 교훈 중 각별히 중요한 것은 경기변동이나 경제성장을 위한 중앙은행의 재량적인 통화공급을 제한해야 할 "통화헌법(monetary constitution)"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뷰캐넌이 자신의 1978년 저서 『적자속의 민주주의』에서 제안했던 통화공급의 준칙주의 같은 것이다.

다음은 헌법 제123조 2항의 지역 균형발전을 포함한 국가 균형발전 목표의 강화이다. 이 목표를 헌법 전문에 도입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현행헌법 전문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목표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이 목표를 헌법전문에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균형발전목표는 혁신적이고 역동적인 경제활동을 억압하고 따라서 경제활동의 자유를 대폭 제한한다. 균형발전 목표를 없애고 수도권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균형발전을 강조하는 것은 정말로 어처구니없다.

기형적 지방자치를 강화한 개헌안

지방자치와 관련하여 현행헌법은 자치입법권, 자주재정권 그리고 자치단체의 종류를 중앙정부와 의회의 재량에 맡겼다. 그래서 현행헌법에 따른 지방자치는 기형적이다. 헌자위의 헌법개정안이 기형성을 어떻게 개선하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현행헌법의 “법령의 범위 내에서”를 “법령에 저촉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로 바꾼 것 이외에 변화가 없다. 이것도 좋은 변화라고 볼 수 없다. 왜냐 하면 중앙은 언제라도 지방보다 먼저 그리고 더 신속하게 권한 선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헌자위는 자주재정권도 조세법률주의 때문에 유보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종류를 헌법에 정하는 것도 유보하고 있다.

따라서 헌자위의 개헌안은 지방자치 강화도 아니고 기형적 지방자치만을 강화하고 있을 뿐이다. 진정한 지방자치를 위한 헌법은 “보완원칙(subsidiary principle)”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 원칙은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우선하여 권한을 정하는 권한 추정원칙이다. 중앙정부가 자신의 권한이라고 주장하는 경우 그 입증책임은 중앙정부에 있다. 유감스럽게도 헌자위는 이런 원칙마저도 유보하고 있다.

통치자들끼리 권력나누기에 치중한 개헌안

헌자위가 가장 큰 야심을 갖고 연구한 헌법부분이 “민주주의 원리에 충실한” 권력구조를 제안하는 것이다. 이원정부제, 또는 4년 중임 정·부통령제, 양원제 국회 등, 그 제안이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가 염두에 둘 것은 권력구조는 통치자들끼리 권력을 나누는 방법을 말해줄 뿐이지, 시민들에 대한 그들의 권력 행사의 내용이나 방향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권력구조가 무엇이든 변하지 않는 것은 입법부의 구성이나 정·부통령의 선출. 이원정부의 구성 등이 민주적 선거를 통해서 정해진다는 사실이다. 입법이나 경제정책결정도 마찬가지로 다수결 원칙을 통해 결정된다.

그러나 공공선택론이 민주주의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또렷하게 밝혀냈다. 민주주의의 정치적 과정은 그 내적 논리 때문에 정부가 사적영역과 시민들의 자유와 재산을 지속적으로 침범하는 필연적 성향이 있다, 더구나 장기정책 보다는 단기정책을, “원칙의 정치”보다는 특정한 산업이나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거나 지원하는 “이익의 정치”를, 보편적 정책보다는 차별적인 우대정책을 선호한다. 선호된 정책들은 개인의 자유와 재산의 침해를 야기한다.

이 같은 “민주주의의 실패”를 막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통치자의 권력행사를 제한하여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헌법규정이다. 이런 헌법이야 말로 통치권력의 내용과 방향을 정하는 헌법이다.

헌자위는 이런 사실을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가? 재정(財政)과 관련한 헌법의 개정부분에는 균형예산원칙과 적자 또는 부채비율(유럽연합의 헌법처럼)을 헌법에 정할 것을 제안하고는 있다. 이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재정(財政)권력을 제한하려는 의도는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사회적 기본권이나 경제관련 개헌안에서는 통치자의 권력행사를 효과적으로 제한하는 헌법규정이 매우 부실하다. 따라서 헌자위의 개헌안은 통치자들에게 걸러지지 않은 권력을 허용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특히 헌자위는 의회중심주의를 강조하지만 의회의 입법권력을 제한할 효과적인 장치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공공선택론에서 흔히 비유하는 것처럼 이것은 고양이를 풀어놓고 생선가계를 맡기는 것과 전혀 다름이 없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통치자들의 자의적인 권력을 제한하여 그들이 시민들의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는 것을 막아내는 헌법규칙이다. 권리장전이나 권리청원 같은 근대헌법이래 통치자들의 자의적인 권력행사로부터 시민들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것을 헌법의 목적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런 헌법정신은 '정부는 이상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회주의와 케인스주의와 복지국가 이념의 득세로 소멸되고 말았다.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의 역할을 강조한 가장 최근의 학자는 하이에크와 뷰캐넌이다. 하이에크는 그의 1978년 저서『법, 입법 그리고 자유』의 제3권 『자유인을 위한 정치질서』에서 의회의 입법권을 제한할 헌법이 없기 때문에 자유를 보호할 목적으로 도입한 삼권분립은 실패했다고 선언하면서 의회제도를 개혁할 헌법의 도입을 주장한다. 뷰캐넌은 1980년 저서 『규칙의 존재이유』에서 정부사람들이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것을 통제하기 위해 헌법규칙을 확립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런 제안은 모두 개인의 자유와 재산의 보호를 위해서다.

개헌방향은 권력을 제한하고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어야

권력제한 대신에 권력구조에 초점을 맞춘 것은 9차례나 걸친 개헌의 특징이었다. 특히 1987년 헌법개정은 “대통령은 우리 손으로”를 실현했다. 이것은 전적으로 권력구조와 관련된 헌법개정이었다. 민주화가 이루어지면 만사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허사였다. 그 같은 헌법아래에서 법답지 못한 법과 포퓰리즘 정책이 지배했고, 심지어 자유시장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세력의 집권까지 이르게 되었다. 1987년 이래 경제성장의 추세가 일관되게 하락했다. 오늘날 성장잠재력도 약화되었다. 경제도 침체되었다. 왜 이런 결과가 생겨났는가? 권력 구조가 잘못되었기 때문인가? 그것은 아니다. 1987년 헌법개정당시 당시 우리가 간과했던 것이 있었다.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우리의 경제적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그의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규정이 그것이었다. 이 헌법규정을 도입하는 대신에 현행헌법 제119조 제2항의 확대에서부터 수많은 정부간섭을 허용하는 헌법규정과 그리고 사회권적 기본권 확대를 위한 헌법규정을 도입했다.

흔히 민주화의 “87년 체제”를 실패한 체제라고 한다. 그 실패의 책임이 권력구조의 잘못이 아니라 통치자들의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이 부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맥락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헌자위는 개헌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점이다. 올바른 개헌방향은 권력구조보다는 권력제한을 중시하는, 따라서 현행헌법을 집권자들이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의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으로 개정하는 것이다.

이런 헌법이 헌자위가 말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길이다, 발터 오이켄이 그의 1952년 유명한 저서 『경제정책의 기본원칙』에서 강조하듯이 사유재산과 계약의 자유, 열린시장 그리고 책임원칙, 건전한 통화 등 “시장경제를 구성하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사유재산을 안정적으로 보호하는 나라는 그렇지 못한 나라보다도 훨씬 더 많은 부를 창출했다는 것을 입증했다. 경제자유와 경제성장의 상관관계가 매우 크다는 것도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재분배와 복지를 강조하고 정부개입을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헌법아래에서는 결코 경제발전이 지속가능하지 못하다. 이것은 유럽의 복지국가의 구조적인 문제가 저성장-고실업이라는 사실이 입증한다.

경제적 번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벤자민 프리드먼이 자신의 저서 『경제성장의 도덕적 귀결』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듯이 “성장하는 경제에서만이 다양성에 대한 관용과 사회적 이동성의 존중, 그리고 공공성에 대한 헌신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촉진시켜준다”는 것이다. 파이프스(R. Pipes)는 자신의 저서 『소유와 자유』에서 러시아와 영국의 역사연구를 통하여 사유재산은 경제자유는 물론 정치적 시민적 자유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사유재산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준다.

헌자위는 산업화, 민주화, 선진화를 말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발전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시장경제라는 것이다. 산업화로 표현되는 경제적 번영도 때때로 제한을 받기는 했다고 해도 경제자유와 사유재산을 존중하는 제도의 덕택이었다. 민주화도 시장경제와 그리고 경제적 번영의 덕택이다. 선진화도 시장경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헌법개정의 올바른 방향은 하이에크가 자신의 저서 『치명적 자만』에서 강조하고 있는 사유재산, 자유 그리고 정의의 삼위일체를 보호하는 헌법이다. 이것이 헌법연구 자문위원회가 말하는 세계화와 분권화 그리고 정보화에 따른 시대적 요구에도 부합한다. ■

민경국 /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

저자소개: 민경국 교수는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하이에크, 자유의 길’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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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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