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들의 틈에 끼인 대한민국이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1인당 국민소득 6만 달러의 부자나라는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민 각자가 도전과 모험정신을 갖고 자신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의 분위기는 다르다. 가난에 대한 불평은 늘어만 가고, 실업률은 높은 한편 중소기업에서는 인력난을 호소하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 때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우리사회에서 대부분의 리더들은 입에 발린 말로서 대중에 영합하기를 즐겨한다. 수많은 복지정책의 개발과 확충 및 확대 약속들이 그렇다. 이명박 정부 역시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을 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비즈니스 프랜들리라고 하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 성공의 길이다.
대한민국은 정말 큰 나라들 사이에 끼어 있다. 우리를 둘러싼 중국, 러시아, 일본 모두 세계 최강대국들이다. 그런 틈에서 기죽지 않고 살아가려면 답은 분명하다. 인구 규모가 작은 대신 재산이 많아야 한다. 스위스, 네덜란드, 베네룩스 3국 같은 나라들이 강대국들 틈에서 당당하게 사는 법이 바로 그렇다. 우리가 그들처럼 되어야 한다. 어느 전직 대기업 회장의 강연 내용대로 유엔 상임이사국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국력을 갖춰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의 소득이 조만간 최선진국을 넘어서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1인당 소득 6만 불 정도는 돼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길은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다. 이 정부가 출범하면서 호기롭게 내걸었던 747 공약, 즉 성장률 7%를 유지해서 10년 안에 소득 4만불을 달성하고 7대강국에 들어가겠다는 약속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그것을 위해 필요하다던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철학 대신 포퓰리즘적 냄새가 풍기는 '친서민 중도 실용’이 전면에 등장했다. 어찌 보면 성장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한다. 이렇게 갔을 때 10년, 20년 후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이 정도의 국력을 가지고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북한 정권의 붕괴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까. 무섭게 추격하는 중국과 러시아에 맞서서 당당한 삶을 펼쳐나갈 수 있을까. 아무래도 성장률 7%는 되어야 가능한 일들이다.
그 정도의 경제성장률을 만들어내려면 국민 각자가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해야 한다. 각자 가진 재주를 최대한 발휘하여 세계최고의 제품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또 열심히 팔아서 세계 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도 높여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비로소 기적으로까지 불렸던 1970~80년대의 성장세를 다시 찾아올 수 있다. 불평, 불만, 하소연이 아니라 어떻게든 더 낫게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쳐야 달성할 수 있는 것이 높은 성장률이다.
지난 세월 우리는 그랬었다. 1960년대부터 우리는 5천년간 우리를 붙들어 맸던 '한’으로부터 탈출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가진 것이 없기는 했지만, 뭔가를 이루어야 하고, 또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수많은 기업들이 태어났고 비즈니스의 영웅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그 시절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가난에 대한 불평은 오히려 더 많아진 듯하다. 새로 무엇인가를 시작해서 성공을 해보겠다는 생각보다 이미 남이 만들어 놓은 터전 위에서 편히 살아보겠다는 풍조가 만연해있다.
일자리가 없다는 불평들도 그런 속성이 강하다. 일자리가 없다지만 중소기업들은 오히려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중소기업에 가기 보다는 차라리 실업자가 되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 들어가서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기 보다 이미 만들어진 좋은 봉급만을 쳐다보며 불평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생긴다.
물론 힘든 일자리보다는 집에서 노는 것이 낫다고 느끼는 것은 각자의 자유이다. 하지만 매우 안타까운 선택이다. 집에서 놀면서 부모의 돈을 축내는 것보다 영세기업에라도 들어가서 일을 한다면 무엇인가를 생산해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제품은 다른 사람들이 유용하게 사용하게 될 것이다. 즉 일하는 것은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다. 마찬가지 원리로 집에서 놀고 먹는 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썩히는 일이다. 세상을 위해 쓸 수 있는 능력을 썩히는 것이니 어찌 보면 세상에 죄를 짓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에 우리나라의 부모들도 크게 거들고 있다. 다 큰 자식이 집에서 놀고 먹을 수 있도록 재워주고 먹여주고 용돈까지 챙겨주는 것은 바로 부모들이다. 그러다 보니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모에게 기대는 것이 웬만한 직장에 취직하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 되는 것이다. 그런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일을 해서 세상에 기여하기보다 이미 만들어진 과거의 부를 까먹기만 하는 존재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럴 때에 리더의 역할이 필요하다. 정치지도자, 사상적 지도자들이 나서서 왜 일하지 않느냐고 꾸짖어야 한다. 집에서 놀지 말고 험한 일자리라도 잡아서 뭔가 세상에 보탬이 되라고 등을 떠밀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더 많은 사람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불행히도 실상은 그 반대다.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 사람을 꾸짖기보다, 오죽 했으면 일자리도 없겠느냐고 입에 발린 말만 하는 것이 요즈음의 세태이다. 많은 부모들이 지나친 너그러움으로 자식을 망치듯이 지도자들도 대중에게 영합해서 대한민국의 잠재력을 깎아 내리고 있다.
그런 입에 발린 말들은 말로만 그치지 않고 복지정책이라는 옷을 입는다. 실업했다고 돈 주고, 가난하다고 돈을 준다. 그러기 위해 세금을 거두고, 그러기 위해 국가부채가 쌓여간다. 그것이 심해지면 지금 남유럽의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라고 통칭되는 나라들이 겪고 있는 것과 같은 파국을 맞게 된다. 생산은 안하고 써대기만 하니 부도가 나는 것은 정해진 순서이다.
물론 복지정책은 좋은 뜻에서 시작된다. 돈이 없어서 굶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자는 것이 복지정책이다. 그 뜻은 좋고, 그럴 필요도 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다보면 일하지 않는 대가로 돈을 주고, 놀았다고 돈을 주는 정책으로 바뀌어 간다는 사실이다. 부모의 돈을 믿고 자식들이 실업자이기를 선택하듯이, 멀쩡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복지정책 때문에 집에서 놀기를 선택하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도 그런 현상이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의 숫자는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해서 이미 160만명을 넘어 섰다. 이러다가는 언제 그 숫자가 3백만이 되고 4백만으로 늘어날지 알 수 없다. 탈북자의 숫자가 급증할 것을 생각하면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런 일을 막으려면 정말로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만 복지정책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무의탁노인과 소년소녀가장, 중증장애우 같은 분들이다. 단순히 지금 돈을 벌지 못한다는 사실만을 복지의 대상으로 삼다보면, 결국 일하지 않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의 중도 실용, 친서민이라는 구호는 걱정스럽다. 이 구호가 최종적으로 어떤 정책으로 나타날지 아직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추측해보건대 복지성 정책들이 대종을 이룰 것 같아 보인다. 복지의 혜택을 최빈층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중산층에게까지 확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런 정책이 많아지고 깊어질수록 일하지 않고 국가의 정책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숫자도 늘어날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게 될 시기도 늦어질 것이다.
기회로만 따진다면 우리는 지금 대단히 좋은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미국은 경쟁력을 잃었고, 일본도 비틀거린다. PIIGS 국가들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의 나라들도 휘청거리고 있으니 우리가 조금만 정신을 차린다면 금방이라도 넘어설 수 있다.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될 수 있는 기막힌 기회가 눈 앞에 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일 수 있다. 우리는 과연 그 기회에 올라탈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도전과 모험이다. 실패를 각오하면서 새로운 수요처를 찾아 나서야 한다. 또 어떤 상품이 잘 팔리기 시작하면 그곳으로 자본과 인력이 이동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세계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구하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럴 때에 비로소 대한민국은 어떤 강대국에 대해서도 당당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의 풍경은 그것과는 무척 다르다. 온통 싸움뿐이다. 무엇을 생산할 것인지보다는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어떻게 나눠먹을 것인지에 대해서만 신경들이 곤두서있다. 일하지 않고 남의 덕으로 살아 보겠다는 목소리들이 너무 높다.
“보조금에 기대서 성공한 기업인을 본 적이 없습니다. 죽을 각오로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사람만이 사업을 성공시키더군요.” 필자가 참석했던 어느 보고회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이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 각자가 정부에 기댈 마음을 먹지 않도록 정부의 규모가 작아야 한다. 그런데 이 정부의 구체적 정책들은 큰 정부를 향해서 첫발을 내디뎠다. 무엇보다도 씀씀이가 너무 커져가고 있다. 재정적자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친서민이라는 구호를 유지하는 한 그 규모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기업들의 숫자도 덩달아 늘어갈 것이다.
지금이라도 돌아봐야 한다. 자신들이 왜 747과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공약을 내걸었는지. 그렇게 해야만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고, 그 인과관계는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지금이라도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대한민국은 머지않아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 되는 또 한 번의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김정호 / 자유기업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