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화폐개혁을 하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억제되고 통제된다. 최근에 터키와 가나가 화폐개혁을 단행했고, 이들 국가에서는 물가상승률을 한자리 수 이하로 잡았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화폐개혁이 단행된 이후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졌다. 화폐개혁이 발표된 이후 물가가 30배 이상 급등한 이상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북한에서의 화폐개혁이 이렇듯 엉뚱한 방향으로 진전된 데에는 크게 다음과 같은 원인이 있다. 첫째, 시장을 금지하고 신흥 기업가들로부터 돈을 강탈하여 공급을 급격히 축소시켰다. 둘째, 노동자와 농민에게는 돈을 마구 뿌려대 물가상승 압력을 더욱 부채질했다. 최근 시장에 대한 통제를 완화하면서 물가앙등은 그쳤지만, 이는 곧 시장에 대한 북한 당국의 항복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화폐 개혁 본연의 목적은 인플레 통제

북한이 화폐 개혁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일반적으로 화폐 개혁이란 숫자가 큰 화폐를 숫자가 작은 화폐로 교환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현재 한국의 화폐를 100:1의 가치로 환산하여 10000원은 100원으로 100원은 1원짜리로 일률적으로 바꿔주는 정책을 화폐 개혁이라고 한다.

이런 화폐 개혁의 목적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화폐의 액면 가치가 저하된다. 가령 인플레이션 때문에 20년 전에는 500원이면 밥 한끼 먹었는데 이제는 5000원은 있어야 한다. 즉 인플레이션은 화폐의 구매력을 저하시킨다. 그런데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일상 생활의 여러 불편함을 초래한다. 먼저 현금을 쓸 때 지폐를 항상 대량으로 보유해야 한다. 극단적인 사례가 짐바브웨이다. 2008년 짐바브웨에서 발생한 초인플레로 인해 시민들은 빵 한덩어리를 사는데 5억 짐바브웨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빵 한덩어리 사는데 1달러짜리 5억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100달러짜리라 해도 5백만장이 필요하다.

또 ATM 기계에서 돈을 뽑는다고 해도 불편한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령 짐바브웨에서 빵 한덩어리 사기 위해 ATM 기계 앞에서 100달러짜리 5백만장이 나오길 기다려야 한다고 상상해 보라.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은 숫자가 커지면 커질수록 계산하기도 힘들어진다.

인플레이션이 초래하는 이러한 불편들 때문에 정책 당국자들은 종종 화폐 개혁을 단행한다. 최근에 성공적인 화폐 개혁으로 인플레를 잡은 나라들로는 터키, 가나 등이 있다. 터키는 2005년에 1백만:1의 화폐 개혁을 실시했다. 그리고 가나는 2007년에 1만:1의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이 두 나라는 모두 물가상승률을 한자리 숫자 이하로 잡아 화폐 개혁의 목적인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데 성공했다.

북한 화폐 개혁 발표 후 물가 30배 인상

북한은 2009년 11월 30일 기습적인 화폐 개혁을 발표한다. 화폐 교환 비율은 100:1 이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달리 화폐 교환 가능한 금액을 10만원으로 한정했다. 10만원은 당시 시세로 30$ 정도 가치이다. 즉 30$ 이하의 금액만 화폐를 교환해주고 나머지 금액은 국가에 바쳐야 한다는 이상한 화폐 교환 조치를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화폐 개혁 발표 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화폐 개혁 조치를 발표한 후 물가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 오르는 정도가 아니라 초인플레인션을 경험했다.

북한에서 물가를 대표하는 것은 쌀값인데 두 달만에 30배 이상의 가격 인상을 보였다. 화폐 개혁 직전 북한의 쌀값은 구화폐 기준 1kg에 2000원 수준이었다. 그러니 100:1의 화폐교환 비율을 고려한다면 쌀값은 1kg에 20원 수준에서 안정화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북한의 쌀값은 화폐 개혁 발표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하여 12월 중순에는 50원, 1월초에는 150원, 1월 중순에는 300원 급기야 1월 말에는 600원 수준으로 폭등했다. 즉 화폐 개혁 두 달만에 30배의 물가 인상율을 기록한 것이다. (*주1)

왜 이런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 이유는 크게 공급과 수요 측면에서 분석될 수 있다. 초인플레이션, 즉 물가가 이상 급등하는 이유는 원리적으로 보면 아주 단순하다. 공급은 아주 적은데 돈이 많이 풀려 수요가 많아지면 물가는 오르기 마련이다.

시장 금지하고 신흥 기업가들 돈 강탈하여 물자 공급 급격히 축소

그럼 먼저,공급이 급격히 줄어든 이유를 살펴보자. 북한에서 화폐 개혁 이후 물자 공급이 급격히 줄어든 이유는 시장 거래를 사실상 금지했기 때문이다. 화폐 개혁 조치 발표 이후 북한은 12월 9일경 국방위원회의 지시로 시장 거래 품목들의 판매 상한가를 지정해 주면서 이를 어길시에는 철저히 단속하라고 하였다. 또 공산품의 경우에는 시장 거래를 금지시켰다.

당시 판매 상한가를 보면 옷, 신발(한 켤레), 식량(입쌀, 옥수수 포함 1kg), 기름(1l), 돼지 고기(1kg) 등 상대적으로 고가인 생필품은 각 단가별로 16원 이하에 판매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알(계란), 남새(채소) 등의 저가 생필품의 판매 상한가는 12원이다. 이밖에 털짐승 가죽, 자전거 수리 등의 상대적인 비생필품은 15원 이하로 판매하라는 지시가 전달되었다.

여기서 쌀만 보면 1kg에 16원 이하로 판매하라고 한 것인데 12월 9일 당시 쌀의 실제 시장 가격은 50원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처럼 시장 가격은 50원 수준인데 16원 이하로 팔아야 한다는 강제 조치가 발표되니 쌀 장사꾼들은 손해 볼 장사를 왜 하냐며 시장에 나오지 않았다. 시장에서 쌀 공급이 줄어드니 쌀 가격은 당연히 더 오를 수밖에 없다. 쌀값이 계속 오르고 시장에서 단속은 중단되지 않으니 쌀값은 멈추지 않고 계속 상승하여 1월말 kg당 600원 이상으로 치솟은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번 화폐 개혁은 북한의 주요 물품 공급자들인 신흥기업가들(북한에서는 돈주라고 부름)에 치명적 타격을 주었다. 북한은 화폐 개혁 발표 시 1인당 북한돈 10만원(당시 환율로는 30$ 수준)까지만 바꿀 수 있다고 공표했다. 이는 세계 화폐 개혁 역사에 전례가 없는 것이다. 10만원 이상 가진 사람들의 돈은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된 것이다. 즉 북한의 화폐 개혁은 단순 화폐 교환 조치가 아니라 기업가들의 돈을 강제로 빼앗는 조치였던 것이다.

기업가들은 북한 국내에서 대량의 물건을 항상 사고 팔고하기 때문에 항상 어느 정도의 국내 화폐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신흥 기업가들에게 화폐 개혁은 심대한 자산 잠식의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처럼 신흥 기업가들의 경제 기반이 축소된 결과 시장에서의 물자 공급 능력은 더욱 축소되었다.

노동자․농민에게는 현금 마구 뿌려대

북한에서 화폐 개혁이 실패하여 초인플레가 나타난 또 다른 이유는 북한 당국이 일반 북한 주민들에게 마구잡이로 돈을 뿌려댔기 때문이다. 북한은 화폐 교환 10만원 상한선을 정한 뒤 이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가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노동자, 농민, 노인들에게 마구잡이로 돈을 뿌렸다.

일례로 노동자의 월급과 노인들에게 주는 연금을 100:1 화폐 교환 조치 발표 이전과 똑같은 액면 금액을 주었다. 즉 화폐 개혁 이전 2000원 주던 월급을 100:1로 화폐 개혁을 했는데도 그대로 2000원 월급 수준을 유지한 것이다. 노인 연금도 마찬가지였다. 즉 노동자 월급과 노인 연금이 100배 상승한 것이다. 농민들에게도 한 가구당 신화폐로 14,000원 상당의 장려금을 하사했다. 이 금액은 당시 가치로 농민들이 50년 일해야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다. 농민들은 단 한 번에 거액의 목돈을 받은 것이다.

이처럼 북한 당국이 노동자, 농민들에게는 무차별적으로 현금을 뿌려 시중에 현금이 많이 풀리자 물가 상승 압력은 더욱 강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공급은 줄어들고 있는데 시중에 현금은 무자비하게 풀려나가니 초인플레이션이 생기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북한 당국, 결국 시장에 항복하다

북한의 노동자가 100배 인상된 임금을 받고 농민들이 50년 벌어야 되는 돈을 한 번에 받아서 얻은 기쁨도 잠시에 불과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물가가 30배 이상 폭등하고 그나마 폭등된 가격에도 쌀을 구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1월 중순부터 북한 주민들은 북한 당국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하였다. 김정일 이름에 존칭을 붙이지 않으면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하는가하면 북한의 경찰인 보안원들에 대한 테러가 가해지고 아사자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북한 사회가 아비규환으로 빠지기 직전의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런 심상치 않은 조짐을 파악한 북한 당국은 1월 20일 경 이번 화폐 개혁에 대한 책임을 물어 노동당 재정경제부장 박남기를 전격 해임했다. 그리고 1월 말 시장에 대한 가격 통제를 해제했다. 거래를 금지했던 공산품의 거래도 재허용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시장에 대한 통제를 완화하기 시작하자 시장에서의 쌀값은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1월 말 kg당 600원 정도하던 쌀값이 지난 2월 4일경 300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주일만에 가격이 절반 정도 뚝 떨어진 것이다. 시장의 힘을 다시 확인하게 된 순간이었다.

종합해보면 북한 당국의 이번 화폐 개혁은 성장해가는 신흥 기업가들에게 타격을 주고 시장을 약화시킨 뒤 계획 경제로 복귀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북한은 신흥 기업가들의 경제적 기반을 어느 정도 약화시켰을 수는 있으나 시장을 약화시키는 데는 완전히 실패했다. 시장 통제로 인해 발생하는 초인플레이션을 도저히 막지 못해 화폐 개혁 발표 2개월만에 완전히 시장에 백기투항한 것이다. 김정일과 시장으로 대변되는 북한 주민들 사이의 전쟁에서 북한 주민들이 완전 KO 승을 거둔 것이다.

하태경 / 열린북한 대표

 

* 이 글에 나와 있는 북한 내부 소식들은 열린북한통신, DailyNK, 좋은벗들, NK 지식인연대 등에서 발행하는 소식지들을 참고한 것임을 밝힙니다.

 

저자소개: 하태경 대표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길림대학교에서 국제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북 라디오 방송인 '열린북한방송’과 사단법인 '열린 북한’의 대표를 맡고 있다. '동북아 IT 공동체 전략 연구’ '북한 인권실태와 북한 인권운동의 쟁점 분석’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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