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강기갑의원 국회폭력, 전교조 시국선언, MBC 광우병 PD수첩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를 계기로 사법부의 이념화, 정치화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대법원 수장은 사법부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법부의 독립은 잘못된 재판을 정당화해주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사법부의 권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며, 부당한 권력의 사법부 침해로부터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법원의 판결은 논의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판결은 존중되어야 한다. 하급심의 판결이 최종 판결은 아니므로 상급심의 판결을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사법부의 독립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서다.
정권이 교체되고 2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과거 좌파 정권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철저하게 정치논리에서 시작된 세종시 문제로 온 나라가 양분되어 시끄럽고, 최근에는 법원의 이념 편향 판결로 재판의 정당성과 공정성이 훼손되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크게 손상되었다. 특히 사법부의 이념화, 정치화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높다.
법치주의를 외면하는 사법부 판결
법원은 지난 1월 14일에 강기갑 의원의 국회 폭력, 19일 전교조 시국선언, 20일 MBC 광우병 PD 수첩에 대해 무죄로 판결하였다. 이 사건들은 한결같이 우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들이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러한 불법 행위들에 대한 정죄가 확실하게 내려져 다시는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정반대로 내려졌다.
PD 수첩 무죄와 같은 최근의 법원 판결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사법부에까지 좌파의 영향력이 강하게 침투되었다고 걱정하고 있다. 사법부의 판결이 좌파 이념의 영향을 받는다면 건강한 사회의 기초로서 '법의 지배’는 무너진다. 판사가 법이 아니라 자신의 이념에 따라 재판한다면 '법의 지배’는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사법부가 독재 정권에 종속되었듯이 이제 좌파 이념에 종속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의 이동연 판사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공중 부양’으로 잘 알려진 강기갑 대표는 국회 폭력과 관련해 공무집행방해로 기소되었다. 이 판사는 검찰은 강 대표를 공무집행방해가 아니라 폭행 혐의로 기소했어야 했으며, 피해 당사자인 국회의장과 사무총장의 증언이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했다. 강 대표가 국회의장실 문에 발길질을 하고 국회 경위의 멱살을 잡고 폭행한 행위를 공무집행방해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동연 판사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강 대표의 폭력이 아니라 폭력을 행사했을 당시 국회 안에서의 질서 유지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국회에서 발동된 질서유지권이 적법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으며, 강 대표의 행위는 적법하지 못한 질서유지권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강 대표의 국회 폭력을 국회의 질서유지권 발동의 적법성과 연결시켜 그에게 무죄를 판결하는 것이 우리가 숙지하고 있지 못한 법 해석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강 대표의 폭력 행위를 TV 화면을 통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보통사람들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발생한 그의 행위가 무죄라는 법원 판결에 충격을 받고 놀라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국민은 놀람과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연이어 나온, 전교조 시국선언과 MBC 광우병 PD 수첩에 대한 무죄 판결에 더욱 놀라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주요 시국 관련 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이 연이어 나오자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판결을 내린 판사에 이목을 집중하였다. 이들 판사의 판결이 시민들의 건전한 법 감정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 판결이 젊은 판사들의 정치적 성향과 이념적 편향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표시하면서 건전한 상식과 보편적인 가치 기준과 합치하지 않는 판단들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조성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였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세상 경험이 많지 않은 판사들이 중요한 사건을 단독으로 판결할 수 있도록 한 현행 제도와 현행 법관 양성 과정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여러 개선책이 제안되기도 하였다.
법보다 사법부 독립성이 우선?
이러한 우려에 대해 사법부의 수장인 이용훈 대법원장은 “법원이 사법부의 독립을 굳건히 지켜낼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른 독립된 재판”이 잘못된 재판을 정당화해주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법권의 독립을 위한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른 독립된 재판”은 부당한 권력의 사법부 침해로부터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사법부의 권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더구나 이것은 법관의 임의적이고 주관적인 법 해석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주관적인 법 해석, 특히 자신의 이념으로 편향된 해석은 법치를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하는 것이다.
법조계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국민들의 건강한 상식과도 부합하지 않는 판결에 대해 사회적으로 거센 반발과 비판이 쏟아질 때, 진지하게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고 '사법권의 독립’을 내세우고 '법관의 양심’을 들먹이는 것은 스스로 사법부의 명예와 독립을 훼손하는 일이다. 사법적 판단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이 있다면 먼저 왜 이런 저항이 나왔는가를 스스로 반성적으로 숙고해야 한다. 판결과 국민 정서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왜 발생하게 되었는가를 법의 논리로 설명해야 한다.
사법부의 권위와 신뢰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가 스스로 창출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법부 비판에 대한 대법원장의 대응 방식은 적절하지 못하다. 국민이 사법부의 판결을 믿지 못하면 사법부의 권위는 무너지고, 법원은 법치를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자로 낙인찍히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판사들의 부당한 판결들이 담당 판사들의 특정한 정치적·이념적 편향에서 나왔으며, 그것의 진원지로 '우리법연구회’라는 단체를 지목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단체는 법조계에 좌파논리를 생산하고 유도하는 사법계의 '전교조’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이내 과녁은 '우리법연구회’를 넘어 이 대법원장에게로 향했다. 이 대법원장은 사법부에 대한 정당한 비판에 겸손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고 '사법부의 독립’을 내세움으로써 사법부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는 성급한 단죄(斷罪)까지 나왔다.
사법부 독립성 존중,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받기 위한 것
법의 해석자인 판사에게 법에 대한 제약 없이 자유로운 해석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며, 법관의 사실 인정과 법리 판단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판사에 따라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판결이 달라진다면 '법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기대에 어긋나는 판결이 나왔다고 하여 그 판결이 잘못된 판결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오래된 관습과 고정관념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관습과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질서와 관념을 형성해야 한다. 새로움이 없으면 사회나 역사도 발전하지 못한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법 해석과 판결도 항상 새로움에 열려있어야 한다. 사건에 대한 법의 적용은 수학 공식의 적용과 같이 기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큰 혼란에 빠지게 하였던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을 제작한 PD와 작가에 대한 최근의 무죄 판결이 몇 달 전의 판결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이번 판결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비판은 성급하다. 이번 판결은 형사 재판으로, 이 프로그램의 방송 내용이 허위가 아니라고 판결하여 무죄를 선고하였고, 서울고등법원의 민사 판결에서는 방송내용이 허위라고 판단하였는데 이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보면 명백히 잘못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을 정당화하는 다른 법리적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서울대 법대 이상원 교수에 따르면 (“다름과 틀림”, <동아일보> 2010년 1월 28일) 형사 사건과 민사 사건의 경우 다른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 이 교수는 O J 심슨 사건을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전처 살인범의 확실한 용의자로 의심을 받았던 심슨이 형사재판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민사재판에서는 법원이 전처의 살해 혐의를 인정하여 거액의 손해배상을 명령했다는 것이다.
살인여부의 판단은 증거에 따라 해야 하지만, 형사와 민사는 서로 다른 정도의 증명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민사소송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우월한 증명을 내세우는 쪽의 손을 들어주지만 형사소송의 경우에는 합리적인 의심의 소지가 남아있는 한 피고인에게 불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의 형벌권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MBC PD 무죄 판결도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형벌권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민사 판결과 달리 형사 판결에서는 무죄를 선고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무죄 판결을 보고 사법부를 불신하는 데까지 나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쟁점이 된 무죄 판결은 모두 1심 판결이고 아직 상급심이 남아 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최종심은 대법원 판결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1심 판결이 이념적으로 편향된 판결이기 때문에 반드시 상급심에서 바로 잡아질 것이라고 믿지만, 우리의 기대와 다른 판결이 나온다고 할지라도 그 판결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사법부의 최종 판단에 대한 존중은 바로 법으로부터 나의 권리를 보호받고, 법치를 확립하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최근 사법부가 내린 이념 편향적 판결의 정당성을 문제 삼는 논의와 비판은 지금까지 나온 것으로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이제 격앙된 마음을 뒤로하고 남아 있는 사법부의 판결을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 사법부의 독립을 존중하고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
신중섭 / 윤리교육과교수
저자소개: 신중섭 교수는 고려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논쟁과 철학’ (공저), '전교조의 이념과 운동 비판’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