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산업은행을 지주회사 형태로 민영화한다고 해도 그 규모가 상당히 커서 이를 인수하겠다고 선뜻 나설 상대가 마땅하지 않다. 그런데 그런 규모의 은행에 외환은행까지 합쳐놓으면 이를 인수하겠다고 나설 경제주체가 있을 수 있겠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산업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하겠다는 의도에는 산업은행을 정부소유의 메가뱅크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런 국영 형태의 메가뱅크가 우리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메가뱅크를 설립해야한다는 말이 요즘 다시 떠오르고 있다. 원래 이 단어는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초에 금융위원회의 대통령 앞 업무보고에서 처음 나왔던 낱말이다. 이 때 배석했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던 강만수 (국가경쟁력 강화위) 위원장이, 산업은행 민영화방안이 확정지어지려는 순간, “한국경제 규모는 동북아에서 3위인데 최대은행은 70위 정도밖에 안 된다.”고 말하면서 산업은행의 민영화를 계기로 아시아에서 10위는 될 수 있는 대형은행(megabank)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즉 이 대통령의 공기업 민영화 공약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산업은행의 민영화가 불가피하지만, 이것만을 민영화하는 단세포적인 방법보다는 이 기회에 메가뱅크를 만들어 국가의 백년대계에도 걸맞은 금융 산업을 설계해보자는 제안을 강 위원장이 했고, 이를 그럴듯하게 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대통령이 규모면에서의 경쟁력을 포함한 산업은행 민영화문제를 그 다음 달에 다시 논의하기로 한 것이 그 시작이라고 생각된다.

메가뱅크의 숨겨진 의도

요즘 국회에서 산업은행 민영화 문제가 재론되면서 메가뱅크 설립논의가 다시 활기를 띠는 것을 보면 이 논의는 강 위원장의 당초 제안과 연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강 위원장의 제안은 산업은행 직원들의 민영화 반대분위기의 뒷받침을 받아 더욱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논의는 민유성 산업은행 행장의 외환은행을 인수할 의향이 있다는 발언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산업은행을 지주회사 형태로 민영화한다고 해도 그 규모가 상당히 커서 이를 인수하겠다고 선뜻 나설 상대가 마땅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규모의 은행에 외환은행까지 합쳐놓으면 이를 감히 인수하겠다고 나설 경제주체가 있을 수 있겠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즉 산업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하겠다는 의도에는 산업은행을 정부소유의 메가뱅크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직 금융위기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은 현재로서는 외국에서도 감히 그런 규모의 인수를 하겠다고 선뜻 나설 기관이 없다고 볼 수 있으므로, 메가뱅크는 국영의 형태로만 설립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국영 형태의 메가뱅크가 우리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강 위원장의 말대로 우리나라에 아시아에서 10위는 되는 은행을 만들었을 때 그 은행이 국제무대에서 얼마나 경쟁력이 있겠으며, 국내 금융 산업과 경제의 발전에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산업은행은, 은행영업에 관한 한, 다른 시중은행에 비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할 것이다. 국영기업이 동종의 민간기업보다 경쟁력이 더 높을 수는 절대로 없는 것이므로 산업은행이 국영은행이라는 사실 하나로도 이를 입증한다고 하겠지만, 산업은행의 급여수준이 시중은행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사실, 산업은행 직원들이 산업은행의 민영화를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 등도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치금융을 지켜온 금융당국

이렇게 경쟁력이 약한 산업은행의 안이한 영업 분위기가 인수된 외환은행에까지 전달되었을 때 그 메가뱅크의 경쟁력은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메가뱅크 설립논의는 산업은행을 국영은행의 형태로 잡아두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며, 우리 경제와 금융 산업에는 부정적 효과를 미칠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핑계로 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기획재정부(과거의 재경부)가 이런 수법을 과거에도 한두 번 사용해서 재미를 본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민정부 때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자”는 운동이 한차례 크게 일어난 일이 있었다.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은행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이라고 보고 이를 위해 금산분리도 철폐하자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었다. 이 때 재경부는 그 대안으로 “은행장추천위원회제도”와 “금융전업인제도”를 만들어, 은행 주인 찾아 주기 운동과 금산분리원칙 철폐 운동을 무산시키고 금융 산업 장악을 유지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통령의 지시로 재경부가 그렇게도 끈질기게 지키고 있었던 금산분리 원칙이 철폐되고 재경부가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로 분리되었기 때문에, 이때부터 우리 금융 산업에 커다란 변혁과 발전이 올 줄로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었다. 그런데 기획재정부는 이때를 위기로 보고 은밀히 그러나 온힘을 대해 이를 막을 수단을 마련해왔었음이 이제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산업은행의 민영화문제가 강 위원장의 제안으로 메가뱅크 문제로 변질되면서 모든 일이 기획재정부가 옛날부터 지키려 했던 방향으로 되돌려지고 있다는 사실로써 증명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메가뱅크 논의 이후, 국민은행지주회사 회장 선출을 국민은행이 뜻대로 할 수 없게 한 사외이사제도의 개혁, 은행들의 부동산담보대출금리의 결정에 더 제한을 가할 수 있는 길을 연 일(COFIX) 등은 모두 관치금융을 강화하는 방향 즉 기재부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것으로써, 산업은행 민영화로 흔들릴 뻔했던 일들이었다.

이렇게 메가뱅크까지 관치금융의 틀에 들어가게 되면, 금융시장과 금융 산업은 거의 완전하게 기재부, 금융위원회 및 금융감독원의 지배 아래 들어갈 공산이 크다. 즉 이로써 관치금융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우리 경제에 도움을 줄 것인가?

이렇게 되어도 우리 금융 산업이 잘 발전하게 되고 우리 경제에도 도움을 줄 수 있게 된다면 문제가 없겠으나, 일본의 경험을 보면 절대로 그렇게 될 수가 없다. 일본에는 세계적인 규모의 은행들이 많이 있지만, 이들이 세계금융시장에서도 별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일본경제의 빈혈상태에도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런 은행들보다 몇 배나 큰 금융기관이 있어, 이들 은행이 제대로 활동을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금융기관은 예금과 보험을 겸영하고 있는 국영우체국이다. 일본 금융 회사들이 개별적으로는 규모가 작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내금융시장을 거의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국영우체국의 중력에 눌려 이들이 제대로 활동을 못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는 오래전부터 지지를 받아왔었고 이를 개혁하겠다고 선언한 고이즈미 수상의 인기는 대단히 높았었다. 고이즈미 수상이 이런 인기를 등에 업고 이 국영우체국 민영화안의 국회통과 등 만반의 준비를 끝내놓고 퇴임했음에도, 이 국영우체국과 관련된 이해관계가 너무도 복잡해서 최근에 권력을 잡은 하도야마 내각은 이 개혁을 없었던 일로 하고 말았다. 그래서 일본 경제의 전망이 밝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메가뱅크를 국영의 형태로 설립하는 것은 금융 산업의 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절대로 소망스럽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은행도 국력에 걸맞게 대규모화할 필요성이 있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은행은 규모에 앞서서 국가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경쟁력과 효율성을 우선 고려해야

그것은 금융위기를 예방하는 측면에서 특히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지금 선진국에서는 은행이 너무 커서 실패하는 것을 그대로 놓아둘 수 없는(Too Big To Fail) 큰 은행을 될 수 있는 대로 억제하자는 안이 금융위기를 예방하는 방안으로 논의되고 있음은 주지되는 일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우리나라처럼 아직 은행규모가 작은 경우에는 이런 은행들이 커지는 것을 억지로 막을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경쟁력이나 효율성을 고려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덩치만 큰 은행 즉 메가뱅크를 만드는 것은 금융위기의 예방차원에서 볼 때 잘하는 일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산은지주회사 전체를 통째로 한 상대에 매각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으며, 더욱이 산업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하게 해서 국영 지주회사로 남겨두는 것은 또 다른 금융위기를 부르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할 것이다. 최선의 방향은 산업은행, 대우증권, 산은캐피탈 등을 개별적으로 매각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경제가 일본이 경험한 것과 같은 “잃어버린 10년”을 답습하지 않게 하겠다는 시각에서 보면 관치금융으로 갈 소지가 있는 모든 음모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할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메가뱅크 설립 안임은 이미 논의한 바와 같다. 이런 문제들은 모두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의 관료들이 철밥통을 지키려는 욕심을 포기하면 저절로 해결될 일들임을 지적하고 싶다.

김한응 /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

저자소개: 김한응 대표는 한국은행 조사부장,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소장, 한국금융연수원 부원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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