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은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올해 초 UN군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영국군의 전투를 기록한 『마지막 총알 To The Last Round -임진강에서의 전설적인 저항』이 발간됐었다. 영국인으로 미국 워싱턴 타임스지 서울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는 앤드루 새먼이 참전용사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작성한 책이다. 최근 『마지막 총알』의 한국어판이 준비 중이다(출판사 시대정신, 2010년 1월 발간 예정).

책에는 1950년 11월 시변리 전투부터 1951년 4월 임진강 전투까지, 영국군의 치열했던 전투일지가 상세하게 담겨있다. 또 포로로 붙잡혀, 2년간 포로수용소에 수감됐던 포로들의 일상도 기록돼 있다.

영국군은 한국전쟁 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적과 전투를 치렀다. 1951년 4월 22일부터 나흘간 임진강에서 벌어진 전투는 영국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4천여 명의 영국군 제29 보병여단은 2만7천여 명의 중국군과 싸워 1천여 명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 그리고 포로로 붙잡혔다. 특히 임진강 전선 한가운데서 고립됐던 영국군 글로스터 연대는 전 부대가 괴멸당하는 혈전을 치렀다. 이들의 희생은 중국군의 서울 진입을 지연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마지막 총알』에는 영국군의 용감했던 전투장면과 함께, 한국전쟁에 대한 이들의 솔직한 심정도 담겨있다.

피란민들이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너는데 중국군의 도강을 막기 위해서 UN군은 얼음을 깨야했다. 남한의 준군사조직은 북한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민간인을 학살했다. 민간인으로 위장한 중국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UN군은 어쩔 수 없이 민간인을 향해 총구를 겨눌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은 참전용사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자신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자신들의 일이 그리고 한국에서 벌어진 참상이 민주주의와 멀어 보였기 때문이다. 또 자신들의 총에 죽어간 앳된 중국 병사들의 모습 역시 전쟁의 의미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다수의 영국군들은 전투의 치열함과 한국전쟁의 비참함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다시는 한국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데이비드 스트래천도 이들 중 한명이었다. 1951년 1월, 중국군에 밀려 남쪽으로 후퇴하던 스트래천은 자신의 참호에 불쑥 나타난 중국 병사를 향해 발포했다. 중국 병사의 몸이 스트래천 위로 떨어졌고, 꼬박 4시간이 걸려 그 적병의 목숨이 끊어졌다. 이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스트래천은 영국으로 돌아가서도 이 적병을 계속 만났다고 한다. 자택 침실에서 악몽을 꾸다 악의에 찬 인기척을 느끼고 깨어나면 그가 죽인 병사가 그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수년간 중국군 병사의 환영에 시달려야 했다.

스트래천은 정신과 의사의 충고에 따라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파괴된, 남은 것이라고는 고아와 시체 밖에 없던 한국이 눈부시게 발전해 있었던 것이다. 한국 방문도중 그는 고장 난 벨트 버클을 고치려고 수선집에 들어갔다. 그가 참전용사라는 이야기를 들은 수선집 주인이 그에게 인사를 하더니 한사코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스트래천은 감동을 받았고 이후 중국군의 환영을 두 번 다시 보지 않았다고 한다.

프레스톤 벨 역시 오늘날 한국을 보고 전쟁에 대한 관점을 영원히 바꿨다고 한다. 그는 새먼에게 “주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가 뭔지 압니까”하고 물었다고 한다.

“둘 사이엔 차이가 없어요. 50년 전 나는 내 일생 중 1년을 한국에서 바쳤어요. 나의 작은 공헌이 한국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이 됐는지 잘 모르고 살았습니다. 한국을 둘러보며 환대를 받았습니다. 한국은 모든 것이 최신식이고, 멋지고, 가운차고, 얼마나 상스러운(vulgar) 동시에 만물이 번영하는 국가였어요. 나는 한국 사람들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한테 감사하지 마세요. 내 인생을 가치 있는 인생으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아프간 재건팀 파견을 앞둔 우리에게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고백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죽고 죽이는 전투 현장에서 전쟁의 의미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역사가 쌓이면 그 의미가 서서히 들어날 것이다. 한국이 그랬듯이 말이다. 한국을 위해 싸워준 UN군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우리의 번영은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3대 세습과 심각한 경제난의 북한을 보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아프간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고 근대화를 부정하는 탈레반으로부터 아프간 주민들을 지키는 것은 매우 힘든 과정이다. 그러나 이를 지켜내야, 그곳에서 새로운 삶이 싹 틀수 있다. 우리는 그 바탕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59년전 UN군이 그랬듯이 말이다. 한국전 참전 영국군의 전투일지를 따라가며, 아프간과 우리의 역할을 생각해 본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


정약용은 왕권 강화를 주장하였다. 강력한 왕권으로 민(民)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다시 왕의 소유로 전환하고 분배하여 정전제를 실시할 것과 관료들의 업무실적을 철저하게 평가할 것(考績制度)을 주장하였다. 이런 주장들은 그가 왕 중심의 전체주의나 폐도정치, 혹은 법가사상 같은 주장을 했다고 이해되곤 하는 이유가 된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왕권강화 주장과 모순되는 주장을 하였다. <탕론>에서 탕왕이 폭군이었던 걸왕을 폭력에 의해서 몰아낸 행위를 그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고대 중국에서 왕은 천(天)이 사람에게 부여한 것이 아니라 '아래서 위로’(下而上)의 선거제적 방식에 의해서 결정되었음을 주장한다.

또한 <원목>에서 그는 개인 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통치자가 출현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牧들은 “한 사람이 다툼이 있어 찾아와 판결을 요청하면 귀찮아하며 어찌해서 이처럼 시끄럽게 구느냐하고 곡물과 옷감을 내어 받들지 않으면 몽둥이질, 방망이질로 피를 보고서야 그만둔다.”고하며 비판한다.

정약용의 이러한 民중심의 사상은 흔히 좌파사상과 비슷한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루소의 일반의지(General Will), 혹은 이이의 公論과 같은 민중 중심의 정치사상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중이라는 '집단’의 정치 참여를 주장하는 루소와 이이의 사상이 각 개인의 권리 보호를 강조하는 정약용의 사상과 유사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왕권 강화와 민권 강화를 동시에 주장하는 그의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영국의 사례를 통해서 생각해 보자.

이종흡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와 자본주의적 사회 질서>라는 글에서 “영국 사회계약론의 전통은 자기 보존과 사유재산 같은 사적 요소를 공적 영역으로 편입시킴으로써 계몽주의의 중요한 목표를 실천한 주역이었다.”고 말한다. 즉 귀족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사적인’ 관계에 까지 법이 개입하여 적용됨으로써 개인의 사유재산권 등을 보장해주는 등의 자유주의적 과업이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영국의 사례에서 보았을 때 국가 권력 혹은 왕권 강화를 통한 엄격한 법의 적용이 사유재산제의 보장과 같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정약용이 살고 있던 조선 후기의 상황은 권력을 갖고 있던 양반 관료들이 백성들의 재산을 마음대로 착취하여도 아무런 정치적 견제를 받지 않고 있었다.

아일런드는 자신이 쓴 <일본의 한국통치에 관한 세밀한 보고서>에서 19세기 말 조선의 상황을 '사법부와 행정부의 분리는 오직 형식적으로만 존재하고 법 집행은 여전히 탐욕스러운 행정 관료들을 만족시키는 주요 수단이 되고 있다. -중략- 경찰서 역시 종종 법원의 일부 기능을 침해했고 군부와 궁내부는 때때로 임의로 사람들을 체포하거나 실제로 죄수들에 대한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한마디로 거의 모든 행정 부서가 상벌을 주었고 일반 대중을 희생하며 이 같은 권력을 항상 남용했다.’고 말한다.

정약용의 당시 현실인식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주희에 의해서 처음 시행된 후 우리나라에 도입된 사창법(社倉法)을 '지배하는 자’가 官을 끼고 私를 부린 결과 국왕의 德義가 중간에서 소멸되어 버린 것이라고 비판한다. 또 “불가에서 이르는 아비지옥이란, 지옥 속에 또 무수한 지옥이 있다는 말인데 지금 사창이 이와 같은 것이 아닌가. 아, 슬프다! 누가 이 법을 만들었는가? 간사한 자이든지, 어리석은 자이든지 반드시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정약용의 왕권강화 주장은 결국 민권의 강화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본적인 사유재산도 지켜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선해야 할 것은 왕권 강화를 통해서 관료를 엄격하게 평가하고, 이를 통해서 관료들의 착취를 억제함으로써 민권 강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정약용이 민권과 왕권을 동시에 강조하는 것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영국처럼 기본적인 사유재산제의 보장이 이루어 진 후에 왕권의 견제와 국가 권력 제한의 필요성이 제기 되는 것인데, 조선의 현실은 왕권 강화에 의한 사유재산제의 보장이 급선무였던 사회였다.

탕왕에 의한 폭력적 정권 교체를 옹호한 정약용이 만약 당시의 조선 상황이 오히려 강력한 왕에 의한 착취가 발생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면 결코 폭력적 정권 교체에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


성리학은 초월적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내재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우주를 상정하였다. 이러한 내재론(內在論)이 우리의 삶에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내재론의 입장에서 철학을 전개한 하이데거와 스피노자의 사상을 통해서 성리학의 내재론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자.

하이데거를 흔히 존재의 철학자라고 부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가 말하는 '존재’라는 단어는 우리가 오감을 통해서 접하는 감각적 대상이 '실제로 존재한다.’(實存)는 의미를 갖고 있다. 플라톤은 감각적 대상이 실존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오직 초월적 이데아만이 실존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하이데거는 모든 존재가 실존한다고 함으로써 플라톤의 철학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하이데거는 “신을 최상의 가치로서 추앙할 경우, 이러한 태도는 세인들에게는 마치 신을 극진히 섬기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은 이러한 태도야말로 신에 대한 가장 심한 모욕이며 신을 살해하는 최후의 일격이다”라는 말을 통해 초월론을 비판한다.

그는 진리의 성스러운 빛은 언제나 인간존재의 때 묻지 않은 단순 소박한 삶의 심연 혹은 청정한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밝히려는 노력으로 신이 새롭게 도래할 가능성이 간직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면서 내재론을 옹호한다.

그렇다면 그의 내재론은 어떤 방식으로 집단주의를 강화하는 논리가 될까?

그는 모든 존재자들이 하나의 존재 전체를 이루어 빛을 발하면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존재의 경험’이란 하늘을 위로 하고 대지의 품안에서 태어난 인간이 하늘과 대지 사이에 존재하는 산하(山河)와 다른 인간들과 동물, 식물 그리고 돌과의 친교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하이데거의 '존재’라는 개념은 개인과 개인이 분리된 상태를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이 연결되어 있는 상태,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된 상태, 즉 공동체적이고 집단주의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긍정적으로 보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처럼 내재론이 집단주의로 확장되는 경우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는 모든 개별적인 존재들 속에는 동일한 본성, 혹은 존재가 들어가 있고 동일한 존재를 통해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실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주장하고, 인간도 하나의 개인이 아닌 집단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성리학의 핵심적인 주장인 氣(물질)속에 理(신적인 법칙)이 있다고 하는 주장은 하이데거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존재가 실존한다.’는 주장과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이와 한 스님이 금강산에서 나눈 대화에서 스님이 '이 세상에 실존(實存)하는 것은 없다’고 주장하자 이이는 '새가 날아가고, 물고기가 해엄 친다.’고 말하면서 존재가 실존(實存)함을 주장한다.

이렇게 동일한 입장에 있음을 보았을 때 성리학 또한 하이데거,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이 집단주의를 긍정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한형조는 성리학이 공동체주의를 함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주 안에 신적인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자연 현상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신적인 관계와 연결’이 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재론이 집단주의로 연결되는 또 다른 논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스피노자는 철학자 중 대표적인 내재론자이다. 그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과정을 신과 인간의 자유의지적 행위의 결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이고 필연적인 법칙의 결과라고 재해석한다. 스피노자는 절대 존재(신)를 인간 존재 안에 용해시켰고, 절대 존재를 인간에 내재적이게 만듦으로써, 기독교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스피노자는 내재론의 입장에서 논의를 진행시키면서 최고 권력은 각각의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정신’으로 인도되는 다중(多衆)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즉 각 개인에게는 동일한 지적인 본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의 정신에 의해 인도되는 다중에 의한 지배가 가능하다고 그는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스피노자의 입장은 성리학에서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동일한 도덕적 판단 기준(理)이 존재한다는 가정과 일치한다. 성리학에서 보기에 집단의 여론은 일치할 수 있고, 이러한 일치된 의견(公論)에 따라 통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성리학은 보았던 것이다.

이렇듯 내재론은 각각의 개인에게 동일한 도덕 판단 기준이 존재한다고 가정함으로써 집단의 판단이 일치할 수 있다고 보았고, 결국 집단주의에 의한 정치를 정당화하였다.

성리학의 내재론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강조하고, 인간의 '동일한 판단 기준’을 가정함으로써 집단주의를 정당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



화제가 되고 있는 MBC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 열연의 아역이 연발하는 '빵꾸똥꾸'라는 신종비난이 화제다. '꼬마가 너무 하는 거 아니냐'는 논란도 있지만 극중 해리의 말 중에서 요즘 아이들의 실태를 정확히 보여주는 대사, 그래서 더 무서운 말은 사실 따로 있다."내 꺼야 내 꺼! 우리 집에 있는 건 다 내 꺼야!"

흔히 '인간으로서 배워야 할 건 유치원 때 다 배운다.'고 말하는데 알고 보면 그건 '다른 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을 습득한다는 뜻, 인간이 人間임을 배운다는 뜻이다. 빨간 불일 땐 건너면 안 돼. 왜일까? 사고가 날 수도 있고 교통질서가 교란돼선 안 되니까. 아무리 화가 나도 다른 아이를 때리면 안 돼. 왜일까? 그러면 그 아이가 아파하니까.

그런데 모르는 사이에 유치원의 커리큘럼이 변한 걸까. 아니면 인류의 두뇌가 그새 진보해서 미성년자들의 습득능력이 향상된 걸까. 요즘 학생들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점에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기' 진도를 떼고 자기중심의 명명백백한 권리와 자유를 쟁취하려 분연히 일어선다.

'두발 자유', '체벌 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원안대로 통과시키려 애쓰는 학생들에게 <한겨레21>을 포함한 각종 언론도 초미의 관심을 표명한 최근, 학생들의 사고가 이 정도로 성숙된 거라면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주고 투표권도 줘도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지만, 잠깐만. 사회의 다른 한 구석에서는 또 다른 의미의 조숙함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손목을 긋는 학생들. 왜 손목을 긋느냐 하면 그래서 나온 피로 혈서를 써야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피로 쓴 대사조차도 자의식과잉의 극치다. '넌 나 없인 안 돼', '무조건 돌아와' 류의 메시지. 결국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야 직성이 풀리는 것뿐이다. "우리 집에 있는 건 다 내 꺼야!"의 중고딩버전에 해당하는 것임을 생각하면 새로운 세대의 시대정신이 보이는 듯도 하다.

다시 학생인권의 문제로 돌아가면 2009년 5월 광주의 한 여고생이 자살을 했다. 이유는 자율학습을 빼먹었다는 이유로 발바닥을 110대 맞았기 때문이다. 이걸 가지고 자살한 학생도 문제라고 보는 시선 따위는 이미 이 나라에 없다. 여학생의 발바닥은 여학생 것이니 누구도 110대를 때릴 순 없는 것이고, 결국 그녀가 자살을 하게 만든 건 체벌 때문이니 교사를 제재해야 한다고 보는 1차원적 의견뿐이다. 연예인들도 지나치게 매력적이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손목을 긋도록 만들고 있는데 어느 정도라도 규제를 해야 하는 건 아닌가?

자기중심으로 돌아가야 만족하는 아이들과 거기에 맞장구 쳐 주는 어른들. 허울 좋은 핑계를 내세우고는 있으나 결국엔 '싫은 건 죽어도 안 한다.’는 단순한 사고방식일 뿐이다. 학교는 학생들의 것이니 뜻대로 하게 해 달라고 드라마틱한 대사를 내뱉지만 학교가 어째서 학생들의 것인가? 학생은 학교의 주인이 아니다. 다만 주인공일 뿐이다. 배우가 감독과 협조를 할 수는 있겠지만 메가폰에 대한 권리까지 주장한다면 더 이상은 배우도 감독도 아닌 것이다.

자유를 확장시킨다면 그 시선엔 편협한 자기중심주의를 넘어선 균형 감각이 동반돼야 한다. 약자(弱者)로 이름이 났을 뿐 사실은 별로 약자가 아닌 학생들의 시선에서만 문제를 해석해선 결론도 빵꾸똥꾸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학생이 어른들을 평가하고 고르는 만큼 어른들도 학생들을 평가하고 고를 수 있는 시스템, 즉 양방향의 선택(자유) 확장만이 현재 한국의 교육문제를 완화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학교를 만든다면 거기에도 다양한 개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못지않게 다양한 학생들이 자신에게 맞는 학교를 찾아나간다. 세상에는 누가 머리에 손만 대도 뜨악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 미래를 향상시켜줄 수 있는 학교라면 3년 동안 헤어스타일 포기하고 몇 대 맞더라도 기꺼이 선택하는 학생도 있다. '선택의 자유'라는 보다 큰 관점에서 교육문제를 바라보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

당사자들끼리 각자 활발하게 교류하고 입장을 맞춰가며 해결할 수도 있는 문제를, 단지 지고 있는 농구팀을 응원하는 기분으로 학생편파적인 입장에서만 고려한다면 그것도 그 나름의 획일화가 아닐지. 그런다고 아이들이 만족한다는 보장조차도 없다. 해리라고 초장부터 '우리 집에 있는 건 다 내 꺼'라고 말한 건 아니지 않았을까?

Posted by 자유기업원
,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기 전과 그 후를 함께 바라봐야

기획 단계부터 논란이 많았던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명단사전’이 발간되었다. 그리고 그 논란의 중심에는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있다. 그가 24세의 늦은 나이 때문에 불가능했던 만주군관학교에 가기 위하여 쓴 혈서는 친일 행적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되었다. '좌파’ 또는 '진보'진영에서는 그가 한국에서 존경받는 것에 대해 우려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를 친일파로 매도하는 것이 역사 바로 세우기의 첫걸음인 것처럼 주장한다. 물론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박 대통령의 공적으로 평가받는 경제발전 역시 그가 아니라도 다른 누군가가 했을 것이라는 폄훼도 당하고 있다.

우리의 시각으로 한국 대통령을 했던 사람이 젊은 시절에 일제의 장교였다는 것을 달가워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의 바람일 뿐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 나는 인류 역사에서 많은 위인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 하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위인이라고 하더라도 대부분은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령 한계를 극복하였다 해도 그 이전까지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살았다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가 을사오적을 친일파라고 비판하는 이유는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자리에 있음에도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 나라를 팔아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을사오적이 활동하던 시기와 박정희의 청년기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친일'이라는 용어자체도 굉장히 모호하다. 일제에 나라를 뺐긴지 7년이 지난 1917년 박정희는 태어났다. 그리고 1932년부터 5년간 대구사범학교를 다녔다. 아쉽지만 그가 세상을 인식할 때쯤에는 한반도의 많은 사람들이 일제의 식민통치를 어쩔 수 없이 여기고 일본 제국의 국민으로 살 것이라고 생각할 확률이 높다. 나는 박정희 역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점에서 40년대에도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의 선견지명과 노고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도 동의한다. 그들은 반드시 역사적으로 평가받고 존경받아야 한다. 그러나 독립운동가의 삶과 박정희의 선택을 비교해가면서 꼬투리를 잡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마음 같아서는 40년대에 한반도에서 살던 우리 조상들의 생각이 현재의 우리와 똑같기를 바라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현실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정희라는 한 인간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시기는 61년 5.16부터 79년 10.26까지라고 생각한다. 최고 권력자로서 한국이라는 최빈국을 선진국 문턱까지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박정희를 만주군 장교로 기억함에도 그를 존경하는 대통령 1위로 자리 매김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의 업적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은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장면(장면 전 총리의 이름 역시 이번 친일명단사전에 등재되었다) 정부가 경제를 발전시켰을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박정희가 아니었더라도 한국은 발전했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편다.

그러나 이것 역시 '흠집 내기'에 불과하다. 우선 이승만정부나 장면정부의 경제 정책과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책에는 상당히 많은 차이가 있다. 이전 정부들이 수입대체공업화 정책을 폈다면 박정희 정부는 수출주도공업화와 중화학공업의 건설을 추진했다는 특징이 있다. 지금 한국경제는 수출로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중화학공업이 수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 역시 무시할 수는 없다.

다른 인물들이 박정희를 대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 또한 그렇다. 쿠데타와 독재를 통해 정권을 창출하고 유지시킨 한계가 있지만, 한국의 경제발전은 최대 공헌자는 박정희 대통령이다.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집현전 학자들이 있었기에 세종이 아니더라도 한글이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주장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조직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리더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다. 하물며 한 국가가 돌아가는데 있어 대통령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시스템이 잘 정착된 미국 같은 나라는 대통령 개인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지만, 60년대 한국은 현재의 미국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역사에서의 기회주의자들을 단죄하는 것에 나도 동의한다. 그런 면에서 '친일명단사전'이 갖는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제 45년을 똑같이 바라보는 것은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삼성전자가 소니를 뛰어넘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흔치 않았듯이 일제 강점기 말기에 우리가 독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적었을 것이다. 그것이 강제에 의해서건 자발적이건 그 시대의 분위기를 감안해야 그 시대의 사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청년 박정희의 행동을 '친일'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친일'을 했다고 비난받는 그의 대통령으로서의 업적을 바탕으로 '가까운 미래에 한국이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

영화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주인공 한나 슈미츠는 아우슈비츠 학살범죄로 재판장에 서게 된다. 수용소에 들어간 것이 본인의 선택이었느냐는 재판관의 질문에 그녀는 경비원을 뽑는다기에 들어갔을 뿐이라고 진술한다. 수용소 경비원으로 취직한 그녀는 폭격에도 유대인 수감자들을 좁은 공간 속에 가둔 채 통제했고, 이는 참사로 이어졌다. 왜 풀어주지 않았느냐는 재판관의 물음에 그녀는 답한다. “온 마을이 불탔고 모두가 뛰쳐나오는 상황에서 수감자들을 쉽게 풀어줄 수가 없었어요. 우리가 수감자들을 책임졌어야 했으니까요.”

나치전범재판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몇 가지 물음들과 마주하게 된다. 아우슈비츠에서 일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를 유죄라고 할 수 있나, 그녀의 행위가 의도적인 것이었는지 아닌지 어떻게 판별할 수 있나, 당시엔 합법적으로 이뤄진 행위에 대해 현재의 관점에서 판결하는 것은 정당한 것인가 등의 물음이다.

지난 8일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또한 이러한 혼란스런 질문들과 무관하지 않다. 공개된 4389명의 친일 명단을 둘러싸고 선정기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친일인명사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장면 부총리, 부통령을 지낸 김성수 등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친 고위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그동안 친일 행적이 알려지지 않았던 독립유공자와 사회지도층 인사들도 명단에 포함됐다.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장지연 씨도 이 책에선 친일행위자로 기록됐다.

민족민제연구소측은 “민족 반역자 전부와 부일(附日) 협력자 중 일정한 직위 이상인 자와 친일행위가 뚜렷한 자에 대해 역사적 실증적 검증을 거쳐 친일행위자 명단을 선정했다”며 평가의 정당함을 밝혔다. 하지만 한일합방 때까지 거슬러 가면 거의 100여 년 전에 이뤄진 행위들에 대해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명확하고 객관적으로 친일행각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것이 가능할까. 복거일 씨의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21세기 친일문제』는 친일행위를 판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친일행위는 정의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식민통치 시기의 어떤 행위가 친일행위로 비판되려면 그것은 불법적이고, 자발적이고, 조선인들에게 해로웠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을 때에만, 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흔히 친일행위로 규정되는 행위들은 대부분 위의 세 가지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우선 친일행위라 여겨지는 것들의 대부분은 당시엔 합법적이었다. 징집, 천황숭배 등은 조선인들이 이행해야 할 의무였고, 이에 응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불법이었다. 또한 일본의 식민통치는 공식적이었고, 혹독했고 길었다. 따라서 조선 사람들은 그저 연명하기 위해서라도 자발적인 친일 행위를 해야만 했다. 이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은 어쩌다 한두 명일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정복된 나라의 관료조직은 정복자를 위해 봉사함으로써 실제로는 피정복민의 삶을 덜 어렵게 만든다. 이 점에서 식민통치 조직에 조선인들이 충당되었다고 해서 이 사실이 조선인들에게 해로웠다는 주장도 성립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친일행위에 대해 어디까지가 강제된 것이고, 어디서부터 자발적인 것인지 규정하기가 모호해진다. 때문에 일제에 협력한 친일행위는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주장과 국가가 없었을 때의 친일은 기본적으로 생존 수단이었다는 주장 등이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러한 갈등 또한 본질적으로 친일행위를 정의하기 어렵다는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다음으로, 지금 실제로 사람들에게 난해한 친일행위에 대한 개념을 적용해 친일파를 가려낸다는 것은 여러 사정들 때문에 훨씬 더 어렵다. 먼저 친일 행위를 했다고 비난받는 사람들은 이제 거의 모두 죽었다. 따라서 자신이 처했던 상황과 이에 대한 판단을 밝힐 수 없고, 잘못된 비난에도 자신을 변호할 수가 없다. 또한 행위들이 일어난 뒤로 너무 긴 시간이 지나 증거들은 대부분 없고, 증언을 얻기 힘들다. 따라서 친일행적을 밝히려는 사람들은 주로 문헌, 신문과 같은 기록된 것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들은 후대 사람들이 선대 사람들의 삶을 재구성해 평가하는 데 큰 제약이나 갖가지 편향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록된 것들이 증거로 많이 채택되기 때문에 친일파 명단에 문인들이 유난히 많이 오른다는 사실은 이 편향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이번에 편찬된 친일인명사전에도 음악가 안익태, 홍난파와 무용가 최승희, 소설가 김동인과 시인 서정주 등 일제시절 활동한 여러 문화, 예술인들이 수록됐다. 평가에 활용된 증거들은 대부분 음악 작품이나 신문에 실린 글 등이다.

마지막으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반세기 전에 일어난 행적들에 대해 도덕적으로 비판하고 평가할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지 못하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은 혹독하고 무자비했던 식민통치를 겪어보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일제강점기 조선엔 정치적 자유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조선인들은 조선총독부로부터 반체제적이라는 판정을 받고도 살아남기는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인 모두가 조선총독부의 권력에 항거해야 마땅했었다는 주장을 펼 수는 없는 것이다. 자유로운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살아야 했던 이들을 단죄하고 평가할 만큼 도덕적 권위를 갖고 있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이처럼 친일행적에 대한 현 사회의 평가는 많은 문제점과 어려움을 동반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친일파 청산이야말로 과거를 올바로 보는 길이자 발전적인 미래를 위한 과업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가 이제는 친일 문제를 올바르게 평가할 만큼 성숙됐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친일논란은 그것의 객관적 사실 여부를 떠나 사람들의 격정적 반응을 불러 일으켜왔다. 영화 <청연>에 대한 친일 논쟁이 대표적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선 최초의 여류비행사였던 박경원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친일 경력이 의심되는 인물의 삶을 담았다는 이유로 관객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해야만 했다. 인터넷을 통한 불매운동까지 벌어져 영화는 거의 사장되다시피 했다.

이 점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은 그 자체에 의의를 두기에는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에 기재됐다는 이유만으로도 그 당사자는 물론이고 남겨진 가족까지 사회적으로 '친일’의 낙인을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것이 편찬단체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기재였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친일인명사전은 현재의 관점에서 식민지 시대 사람들을 '친일협력행위 대 독립운동’, '친일 대 반일’, '애국 대 매국’ 등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눠 평가할 수 있다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엄혹했던 시기의 많은 사람들을 두 가지 행태로만 분류할 수도 없을뿐더러, 과거에 살았던 사람의 복합적 삶의 단편적 내용만 골라 친일의 낙인을 찍는 것은 결정적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선 일본식민지 시대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성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 점에서 “친일 행위들은 역사학자들이 과학적 방법론에 따라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통치’라는 큰 주제의 한 부분으로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복거일 씨의 주장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친일 행위는 반세기 전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이므로, 이제 이런 일들은 역사학의 영역 속에 자리 잡는 것이 온당하다는 것이다. 친일 청산이 한국사회의 해묵은 과제라는 구호에 얽매이기보다, 식민지 시대 자체를 과학적으로 성찰할 수 있어야만 과거를 올바로 보고 발전적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인식이 전적으로 요구되는 때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


지난달 10월 '부동산정책의 변화와 발전방향 모색’이라는 정책세미나를 한국주택학회와 한국부동산분석학회에서 공동 주최했었다. 현재 핫이슈가 되고 있는 3가지 주제(이명박 정부의 주택정책 전환과 보금자리주택, 도시개발정책의 평가와 개선방안, 통합 한국토지주택공사의 과제와 발전방향)에 관한 주제발표와 패널들이 모여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필자가 지난달부터 연속해서 기고한 보금자리주택은 주로 개발이익기제 측면에서 접근하였다. 이에 보다 발전적으로 분석한 한성대 부동산학과 이용만 교수님의 정책세미나 발제원고를 기초로 보금자리주택에 대한 논의를 정리하고자 한다. 따라서 본고는 이용만 교수님의 발제원고를 바탕으로 필자가 주된 내용을 요약 정리하여 일부 부연을 첨가하여 작성한 점을 밝혀둔다.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하여 지난 참여정부와 비교하면 공급규제나 세제규제를 통한 정책에서 규제완화와 금융규제 바탕의 시장기구를 이용한 정책수단의 변경을 들 수 있다. 아울러 금융규제는 개인의 행동을 바꾸는 인센티브 구조를 갖고 있기에 다른 수단들보다 훨씬 효과적이면서 부작용도 크지 않다. 현 정부의 이러한 정책의 특징과 함께 또 하나의 주택정책이 바로 보금자리주택 공급이다.

보금자리주택에 대한 정부의 기본정책방향은 2008년 9.19대책과 2009년 8.27대책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지난 참여정부와 현 정부의 공급총량에서는 큰 변화가 없으나 차이라고 한다면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의 비율에 있다. 참여정부의 경우 분양과 임대의 비율이 1:2 정도였으면, 현 정부는 1:1의 비율로 바뀐 것이다. 즉, 현 정부의 공공주택정책은 공공임대 공급에서 자가보유촉진으로 선회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하나 이전 공공주택과 다른 것은 입주자 부담을 고려하여 저렴한 주택공급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는 강남세곡지구와 서초우면지구의 시범단지에서 보듯이 현 시세의 50% 선에 공급을 확정지었다. 이 두 가지 측면(자가보유촉진과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공급)에서 보금자리 주택은 큰 논란을 가져왔다. 먼저 공공임대주택 공급 위주에서 분양과 임대를 병행하는 것으로 변경되면서 공공주택정책의 본질을 잃었다는 점과 분양형 보금자리주택을 시세의 50% 정도에 공급한다는 점에서 사행심 조장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전매제한 기간의 연장을 들어 이러한 비판을 막고자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미실현수익을 좀 더 오래 유지할 뿐이지 근원적인 처방이 될 수는 없다. 여기에 환경론적인 측면에서 그린벨트해제에 대한 사회적 손실 부분도 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의 그린벨트해제는 더 이상 그린(Green)으로서 가치가 떨어진 지역을 주된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여기서는 환경적인 면을 별도로 하겠다. 그럼 지금부터 구체적으로 2개의 논란꺼리를 중심으로 알아보자.

첫 번째 논란꺼리,

공공임대주택공급(유럽형)과 자가보유촉진(미국형)에 대한 선택의 문제이다. 주거안정을 위해 공공이 장기임대주택을 대량공급하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자가보유를 촉진하는 것이 좋은지의 문제이다. 이는 이슈의 문제라기보다는 주택이라는 재화를 바라보는 관점1) 에 따른 문제로 보인다. 즉, 주택이 사유재인지, 공유재인지의 성격에 따라 정책의 방향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사유재와 공유재의 구분은 우리가 쉽게 이해하고 있는 재화가 갖고 있는 성질 중에 배제성과 경합성의 유무를 갖고 판단한다. 배제성과 경합성 모두의 성질을 갖고 있으면 우리는 흔히 사유재라고 한다. 이는 개인의 소유권을 기초로 물권의 성질을 갖는 기본적인 재화이다. 이와는 달리 배제성과 경합성 모두의 성질을 갖고 있지 않으면 이것은 공유재라고 하는데, 치안이나 국방서비스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서 주택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학자마다 개인마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사유재로 본다면 주택이 갖고 있는 성질, 철저히 문만 걸어 잠그면 남을 배제할 수 있고, 또한 서로 좋은 주택에서 살고 싶은 욕구가 경합한다고 볼 수 있다(배제성과 경합성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해당되며, 이는 개인의 효율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또한 공유재로 본다면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인 의.식.주의 측면에 해당되기에 이로부터 정부가 주거서비스를 관리하여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주택이라는 것이 인간이라면 모두가 누려야 할 대상이며, 아울러 이는 인간의 형평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기서 주택을 사유재로 보는 미국이 자가보유촉진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자가보유가 어려운 계층에 대해서는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정책을 취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극심한 주택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임대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다가 점차 공공임대주택이 슬럽화되고 사회문제로 대두되어 1973년 닉슨은 공공임대주택 건설중지를 선언하였다. 이후 각 지자체에게 공공임대주택의 공급과 유지관리 등의 책임을 넘겼고 정부는 각 지자체의 주거안정을 지원해주는 역할만 수행하게 되었다. 공유재로 보는 유럽이 공공임대주택 공급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공공임대주택이 전체 주택재고량의 20%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이는 2차세계대전 이후 주택난에 대한 빠른 대응과 사회주의 이념과 정권의 영향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80, 90년대 이후 유럽도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데 이는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하는 것보다 유지관리가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일정수준이상의 비용이 들어가도 결국 슬럼화되는 문제로 심각한 도시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대안을 공공임대주택을 민간자선단체에 불하하여 민간이 관리하거나, 아니면 임차인에게 불하하여 스스로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이 그 예이다. 또한 수요자 중심의 주거복지제도가 도입되었다. 유럽의 경우도 미국과 같이 주택바우처(voucher : 특정한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구매력 증진을 위하여 쿠폰이나 카드 형태로 구매권을 주는 정책수단)를 통해 주거복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공임대주택 정책은 자가보유정책과 수요자 중심의 주거복지 정책으로부터 그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이는 공공임대주택이 갖고 있는 '비효율성' 때문이다. 여기에는 삼중의 주・대리인 문제가 있다. ①비대칭적 정보에 따는 임차인과 공공임대주택 관리인 사이의 문제로 임차인은 자신의 재산이 아니기에 성실하게 사용할 의무가 없으며, ②공공임대주택 관리인과 정부사이의 문제로 정부는 관리인을 면밀히 살필 수 없기에 관리인은 최선을 다할 인센티브가 없다. 또한 ③정부와 국민사이의 문제로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조세를 부과하여 국민을 대신하여 국가를 운영하지만 그 돈은 자신의 돈이 아니기에 공공임대주택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어도 세금을 거둬 충당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여기에 공공임대주택은 거주자의 사회적 격리현상으로 인해 사회적 비용도 발생한다. 단,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은 임차인에게 최저주거수준을 보장한다는 장점은 있다. 반면에 자가보유는 주・대리인 문제도 없으며 주택의 효율적 사용으로 인하여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다. 또한 거주자의 사회적 격리 현상도 없으며 개인적 자부심도 고취된다. 단, 자가보유의 문제는 저소득층들은 소득 부족으로 인해 자가 보유가 어렵다는 것이다.

두 번째 논란꺼리,

분양형 보금자리주택의 공급방식과 관련이 있다. 앞서 언급한 주변시세의 50% 수준에서의 공급이다. 즉, 이 말은 당첨만 되면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으로 로또와 다름없다는 비판이다. 물론 이런 문제에 대해 정부가 전매제한 기간을 연장함으로써 해결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그린벨트를 해제하여 공급하는 분양주택에 대해 7년간 전매제한을 두었고, 분양가격이 시세의 70% 미만일 경우에는 전매제한기간을 10년으로 연장하였다. 그리고 전매제한 기간 내에 주택을 팔고자 할 경우 공공기관이 선매권을 갖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처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효성이 미흡한 것은 자산의 유동성(전매제한 기간 내에 있어 자산을 묶어두는 효과)을 제약할 뿐, 시세차익을 없애는 근원적인 처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듯 시세차익이 큰 지역위주로 청약 열풍이 일어나며, 경우에 따라서 미분양이 나올 수 도 있다. 정부가 만들어준 절호의 기회로 이 기회를 그냥 놓칠 사람은 없다. 가구소득과 가구원수의 변화에 따라 주택의 필터링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소형주택에서는 이런 필터링이 일어나지 않으며, 보금자리 주택공급이 계속되는 한 소형 재고주택은 주로 임대용으로만 거래될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시세보다 매우 저렴하게 주택을 분양 할수록 청약대기자는 이 제도가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생길 것이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청약대기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해야 하는데, 그 전제조건은 그린벨트의 해제이다.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고서는 시세의 50% 선에서의 공급이 어렵기 때문이다. 과연 지속적으로 그린벨트를 해제한다는 것이 가능할 지도 의문이다. 민간사업자 입장에서의 또 하나의 문제는 현행 보금자리주택이 전용면적 85㎡ 이하에서 시세의 50% 선에서 이루어지기에 가격 경쟁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적어도 보금자리주택이 시세의 85~90%수준이라면 품질과 브랜드에 의해 정부의 분양주택과 경쟁을 해 볼 수 있음). 따라서 소비자는 민간주택을 분양 받으러 하지 않기에 민간사업자들의 85㎡이하의 분양주택시장은 사라질 수 밖에 없다. 이 밖에 보금자리주택 내부의 프로그램별 형평성도 문제가 된다. 가령, 임대형 보금자리주택 중에는 10년 임대 후 분양하는 공공임대주택이 있다. 이 임대주택의 경우 분양가격은 분양시점의 감정평가가격을 기준으로 하기에 분양형 보금자리주택과 비교할 때 불리한 것이다. 여기서의 형평성에 입각한 상충의 문제가 있다.

이처럼 분양형 보금자리주택이 너무 낮은 가격으로 분양되다보니 여러 부작용이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분양형 보금자리주택의 분양가를 시세에 근접하게 정할 수 도 없는 현실이다(당초의 대선공약과 위배되며, 아울러 분양가를 시세에 근접시킬 경우 자가보유가 어려운 계층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 밖에 없음).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대안을 제시하면,

우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한다. 소득, 1~2분위 계층은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해야 주거안정을 이룰 수 있고, 소득 3~5분위 계층은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해야 자가를 보유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이런 고정관념에 머물고 있는 한, 공공임대주택 공급과 분양공급은 서로 이해관계가 상충된다. 중요한 것은 자기 소득의 일정한 부분으로 최저주거수준 이상의 주거공간에서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우선 자가 보유가 쉽지 않은 계층에 대해서는 소득의 20~30% 수준으로 최저주거수준 이상의 주거공간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반드시 공공임대주택의 방법이 아닌 주택 바우처 제도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따라서 이들 계층에게는 공공임대주택 공급과 주택 바우처제도를 통해 주거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좋다. 이를 통해 주택의 필터링에 의해 저소득층의 주거수준도 향상시킬 수 있다. 이는 보금자리주택을 분양용으로 하는 것이 좋은지, 임대용으로 하는 것이 좋은지의 문제가 아니라 신규로 얼마만큼의 주택을 공급하느냐가 중요해지게 된다. 자가 보유 가능성이 있고 자가 보유의 욕구도 강한 계층에게는 현재와 미래소득까지 고려하여 주택을 보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반드시 시세의 50% 수준으로 분양주택을 공급해야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시세의 90%에 공급하더라도 자기 소득의 30%내외에서 장기적으로 원리금을 변제할 수 있다면, 현재의 소득 수준 하에서도 자가 보유가 가능하게 된다. 이 경우 분양가를 크게 낮추어 줌으로써 나타나는 각종 문제를 봉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지원을 가구 단위로 패키지화 할 경우, 각 가구는 지원 패지지 하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주택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앞으로 각종 학회세미나 등의 의견을 고루 수렴할 필요성이 있다.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입장이 중요하다. 현실을 잘 반영한 제도 개선을 통하여 더 이상 즉흥적인 처방이 나오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1)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면 '부동산정책을 보는 주류적 관점의 이해' 2007. 2.15일자를 참고하기 바람.

■ 참고문헌

•이용만, "이명박 정부의 주택정책 전환과 보금자리 주택", 한국주택학회・한국부동산분석학회, 부동산정책의 변화와 발전방향모색, 정책세미나, 2009, 10

 
Posted by 자유기업원
,


<첫 번째 이야기>

지구온난화에 따른 환경 재앙을 막기 위해서 합의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의견에는 모두가 공감하실 것입니다. 대응이 늦을수록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찬성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지난 9월 22일, 사상 최대의 기후변화 정상회의가 미국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 회의는 올해 12월에 열리는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 총회를 앞두고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이견을 조정하려는 목적으로 열렸습니다.

“올해 타결 못하면 용서받지 못할 것” - 반기문 UN 사무총장

“지금 대응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 직면할 것” - 오바마 미국 대통령

이렇게 강한 어조로 회의는 시작했지만, 결국 구체적인 수치나 대안이 없는 말잔치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중국은 2020년까지 2005년과 비교해서 놀라울 만큼 감축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 수치가 결여되었고, 미국은 감축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뿐이었습니다.

“개도국도 온실가스 감축에서 자기 몫을 해야 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선진국의 기술과 재정 지원이 해결책의 핵심이다.” -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EU는 선진국이 2020년까지 1990년 수준에서 20% 감축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과 인도는 선진국이 야기한 지구 온난화의 책임을 개발도상국에게 떠넘기고 있다며 반발했습니다. 일본의 하토야마 총리는 연설에서 온실가스를 25% 삭감하겠다고 발표해서 갈채를 받았지만, 정작 일본의 산업계는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그리고 온실가스 감축 이행여부를 감시하는 방안을 놓고도 견해가 엇갈렸습니다.

기후변화 정상회의에 이은 G20 정상회의에서 새로운 합의점이 도출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역시 불발되었습니다. 결국 12월 코펜하겐 총회에서 향후 협상의 틀을 제시하는 수준에서 머무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 세계적 금융위기 속에서 어느 나라도 총대를 매려하지 않는 다는 것이 현실에 가까울 것입니다. 또한 부자나라는 공해가 많이 나는 산업을 가난한 나라에 이전에 놓고 고통분담을 강요해서 공정성의 시비도 거셉니다. 그리고 개도국들은 선진국에 40% 이상 이산화탄소를 감축하고 금융지원을 해줄 것을 요구해서 선진국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에서 발간한 '세계 에너지 전망 2009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9위를 기록했고 OECD국가 중에는 6위로 조사되었습니다. 1위는 중국, 2위는 미국이었으며 러시아, 인도, 일본, 독일, 캐나다, 영국 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특히 1990년 이후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증가율이 OECD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같은 기간 OECD국가의 평균 증가율은 17.4%를 나타냈는데, 한국은 113%나 증가해서 6.5배나 증가 속도가 빠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에 비해서 한국의 에너지 효율성은 OECD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가 세계 최고 수준을 보이는 이유는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꼽힙니다. 녹색성장이 정권의 화두로 제시되어서 그에 따른 대책이 쏟아지는 지금, 대기업들은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편이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여지가 크지 않고, 중소기업들은 에너지 효율성을 높여야 하는데 재원의 미비와 관심의 부족으로 진전이 별로 없는 상태입니다.

새로운 기후변화협약은 시험대에 올라있습니다. 올해 말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의 협상을 낙관할 수는 없지만, 녹생성장이 현 시대의 대세임은 분명하고 녹색 기술을 선점하는 국가가 녹색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1997년 합의한 교토의정서에서 한국은 개발도상국으로 의무감축국에서 제외되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은 말뿐인 '녹색’이 아니라 실질적인 '녹색’을 준비해야 할 시점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모든 나라는 필연적으로 보호주의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세가 낮아지거나 사라져도, 기업에 보조금을 제공하는 등의 지원을 통해서 비관세장벽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누구나 치열한 경쟁을 꺼리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나마 손쉽게 자국 산업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 표가 아쉬운 정치인이라면 이러한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녹색전쟁은 보호무역주의에 이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산화탄소 감축을 하지 않은 나라의 물품에 대해서 수입을 금지하거나 관세를 높게 매길 수 있는 법안을 만들 수도 있고, 수입되는 물품에 까다로운 환경규제를 적용해서 보호주의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효율이 높은 제품만을 사용할 수 있게 해서 비관세장벽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구온난화 방지 노력이 유럽의 평균에 미달하는 물품에 대해서 세금을 매기자고 주장해왔고, 독일 총리도 지지의사를 밝혔습니다. 온난화 방지 및 이산화탄소 거래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이산화탄소 감축목표에 서명하지 않는 국가들을 처벌하고, 그 방법으로 무역장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 중국, 인도 등 개도국들의 물품으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하겠다는 속셈에 가깝습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감축목표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개도국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녹색전쟁을 명분으로 내세워서 보호주의 강화를 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석탄을 예로 들면, 아직까지 석탄은 전 세계에 공급되는 전기의 절반가량을 생산한다고 합니다. 개도국에서는 그 수치가 더 높습니다. 사회기반시설 등 핵심 인프라에 대한 전기 공급을 큰 부분을 석탄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과 인도에서는 전력생산의 80%이상을 석탄의 의존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 방지를 구실로 섣부르게 보호무역을 강화하려고 하는 것은 자유무역의 이익을 감소시키며, 몇 년 내에 석탄 사용을 크게 줄이라고 하는 것은 개도국의 수십억 인구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 방지라는 좋은 목적이 있더라도 엄청난 비용이 드는 이산화탄소 감축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거나, 그것을 빌미로 보호무역을 강화하려고 한다면 더 큰 피해가 올 수 있음을 세계 모든 국가의 정치인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


9월 말, 한국은 내년 G20(주요 20개국)정상회의를 유치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대통령 일행은 성공을 축하하며 만세삼창을 외쳤고, 정부는 “단군 이래 가장 큰 외교행사”, “외교사에 남을 쾌거”로 평가하며 큰 홍보에 나섰습니다. 세계 경제의 주요 현안을 협의하고 방향을 결정하던 G7의 역할이 G20으로 이양되면서 개발도상국과 신흥시장국가의 역할이 강화되는 시기에 한국이 G20정상회의를 개최하게 된 것은 정말 잘 된 일입니다. 한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며, 한국이 개최한 국제회의 중에 최대의 경제적 효과를 낼 것이라는 등의 긍정적인 보도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은 G20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작년 9월 세계적 경제위기가 시작되면서 G20형식의 모임이 추진될 때 유럽의 일부국가들은 한국의 참여를 반대했고, 중국과 일본의 반응도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한국이 아시아를 대표할 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참여하기 위해서 한국 정부가 벌인 노력도 대단했고, 그로 인한 미국의 큰 지지로 인해 한국은 G20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G20 출범 1년 만에 정상회의를 유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2000년 ASEM 정상회의, 2005년 APEC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룬 경험이 있고, 올림픽과 월드컵도 성공적으로 진행한 경험이 있어서 한국의 저력을 모은다면 내년 11월에 개최될 G20정상회의도 잘 치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기까지는 외형상 드러나는 한국의 G20정상회의 개최 관련 모습입니다. 이제부터 조금 더 깊이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G20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경제의 '의제 설정(agenda-setting)'기관이다.”

-2009년 9월 G20 정상회의에서 미국 재무부 장관 티머시 가이트너

“오늘 G7개편 이야기는 없었다.”

-2009년 10월 G7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미국 재무부 장관 티머시 가이트너

G20정상회의는 G7, G8을 대체하는 글로벌 협의체로 부상했고, 선진국과 신흥국이 공조하는 새로운 마당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국가 간의 정책 조율이나 글로벌 불균형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주요 무역 흑자국이 포함되어있는 신흥국이 빠져있는 G8로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 재무부 장관의 말에 비춰보면 G8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하토야마 총리는 “정치 지도자 20명이 모여서 어떤 결론을 끌어내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 이라며 G20을 평가 절하했습니다.

결국 G8국가들은 세계 경제 위기를 해결하는 데 신흥국들의 도움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은 여전히 자신들만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G20을 최고의 경제협의체(the premier forum)로 격상시킨 것에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제3차 피츠버그 G20정상회의의 성과를 보면 글로벌 불균형 해소(Rebalancing)라는 말이 나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무역 흑자인 국가와 무역 적자인 국가, 저축이 많은 나라와 소비가 많은 나라들 사이에 균형을 맞춰보자는 것입니다. 특히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자국이 발행한 채권을 아시아 국가들이 사들여 미국 경상수지 적자를 메워주는 현재와 같은 관계를 바꿔보자는 뜻이 될 것입니다. 즉 선진국들은 신흥국들에게 수출을 줄이고, 흑자를 축소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수출을 많이 하기 위해서 환율을 의도적으로 조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진국에게는 '잘나가는 신흥국들은 수출에만 열을 올리고 수입에는 게으르다.’는 이미지가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한국도 수출에만 열을 올리고 수입에는 게으른 '잘나가는 신흥국’ 중의 하나입니다. G20회의를 통해서 외환보유고만 쌓는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불만이 나온다고 합니다. 미국이 법적 강제성이 있는 테두리 안에 중국을 끌어드리려고 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서 흑자를 줄이고 환율을 조작하지 말라는 성격이 강합니다.

G8을 비롯해서 세계 경제의 강자로 부상한 신흥국을 포함하는 G20은 글로벌 불균형 해소라는 측면에서 자칫 선진국 대 신흥국의 대결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야 하므로 의사결정을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없는 추상적인 합의만 나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내년 한국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까지 1년이란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그 시간동안 세계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세계적 금융위기라는 공통적인 인식이 이 G20이란 모임을 유지시켜주고 있으나, 위기상황을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된다면 G20의 성격이 바뀌게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직까지 세계 경제는 출구전략을 쓸 만큼 회복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출구전략을 쓸 때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어쩌면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의 대결의 장이 될지도 모르는 회의를 개최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은 선진국과 신흥국의 중재자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합니다. 근본적이고 개혁적인 협력 방안보다는, 가시적이고 구체적이며 단기적으로 실현가능한 협력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그 핵심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공조를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슬기로움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


 
부실한 공교육을 끌어올릴 생각 아닌
질높은 교육 담보하는 외고 없애 계속 하향평준화하겠다는 것이 문제

'외국어고 폐지’라는 메가톤급 이슈로 사회가 혼란스럽다. 지난 15일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외고를 자율형사립고로 전환, 외고를 사실상 폐지하는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히면서 외고 논란의 불을 댕겼다. 이로부터 정치권을 중심으로 중구난방식의 방안들이 쏟아졌다. 외고를 특성화고, 국제고, 일반고 등으로 전환하자거나, 외고를 유지하며 선발방식을 바꾸자는 안 등이 제기됐다. 여기에 외고를 비롯한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총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목고 입시 설명회 모습 ⓒ네이버

정치권에서 외고 폐지를 거론한 것은 외고가 사교육 광풍의 주범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어학영재 육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외고가 명문대 진학 전문고로 변질되면서 외고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외고는 고난도 문제로 학생들을 선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교육에 매달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외고 등 특목고 대비 학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중학교 사교육이 전체 사교육 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외고 폐지가 사교육비 문제의 처방이 될 수 있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외고를 폐지한다고 해서 과연 사교육비 문제가 해소될까. 이는 외고로의 경쟁이 치열한 현실 이면에 작용한 평준화된 공교육 제도를 간과한 해법에 불과하다. 현재 한국에는 20개의 과학고와 30개의 외고가 운영 중에 있다. 전국2000여 고교의 불과 2.5%밖에 되지 않는다. 특목고는 일반고에 비해 더 좋은 교육에의 질을 담보하면서 학생, 학부모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수요는 넘쳐나는데 공급은 적으니 자연히 경쟁이 치열해지고, 어떻게든 특목고 입학을 위한 사교육이 자연스레 성행하게 된 것이다.

좋은 학교, 좋은 대학 등을 향한 학생, 학부모의 강렬한 열망이 존재하고, 공교육은 하향평준화의 늪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상 외고가 없어진다고 해서 사교육도 같이 없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외고가 폐지되면 사람들은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는 대상을 좇아 다시 자립형사립고나 국제고 등으로 눈을 돌리게 될 것이고 이를 위한 사교육은 새롭게 번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공교육에 회의를 느끼고 유학 등을 택하는 학생들이 증가하게 되면 사교육비는 되레 증가할지 모른다.

외고를 실패한 교육 모델로 단정 지으며 폐지를 주장하는 것도 옳지 않다. 외고가 그동안 우수 학생을 대상으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며 하향평준화를 극복하고 교육 경쟁력을 높여왔던 것은 엄염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외고의 존재는 국내 다른 고교들에 수월성 교육 시스템 경쟁을 유도하는 자극제 역할도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외고만의 경쟁력프로그램 ⓒ조선일보

외고에서는 다른 인문계 고교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갖가지 혁신적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학생의 능력을 성장시키고 있다. 미국 대학에서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AP(대학과목 선이수제) 과정이 수도권 상당수 외고에 개설돼 있다. 또한 서울‧경기지역 외고에선 미 아이비리그에 매년 50명에 가까운 학생들을 합격시켜 외국 언론들을 놀라게 했다. 부산외고는 '교원평가’라는 단어가 쓰이기도 전인 2000년에 자체적으로 교원평가를 실시했다. 많은 외고들은 해외 명문고를 찾아 벤치마킹하고 글로벌 수준의 교육 프로그램 등을 도입해 공교육 체계 안에서도 학생, 학부모 모두가 만족할만한 교육을 제공해왔던 것이다.

외고 폐지는 양질의 교육을 원하는 학생, 학부모를 위해서도, 하향평준화된 공교육을 끌어올리기 위한 룰모델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외고 폐지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편법 운영, 사교육 유발 문제 등을 개선해 나가면서 외고가 글로벌 시대의 경쟁력 있는 인재양성이라는 기능을 유지‧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율해 나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한편 현재 외고는 입시전형 상에서 공교육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내 사교육을 받지 않고서는 입학이 힘든 환경을 조성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특목고 학비 및 기타 비용도 사립대학에 버금갈 정도로 비싸다. 이에 따라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특목고 합격과 큰 상관관계를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입학사정관제 도입, 또는 저소득층 자녀의 입학 비율을 확대하는 방식 등도 고려할만하다.

최근 외고들도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해 사교육 유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지를 밝혔다. 대원외고는 2011학년도 입시부터 어려운 영어듣기 시험을 폐지하고 내신과 면접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고 했고, 이화외고도 영어듣기 시험을 폐지하고 '내신+입학사정관제’로 전환하는 방안과 '내신+기본 영어실력(자격시험)’으로 바꾸는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다. 외고 스스로도 노력하고 있는 만큼 정부는 당장 외고를 폐지하는 극단의 처방을 내리기보다 외고의 자율적인 변화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외고 열풍은 외고가 평준화 제도 속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질 높은 교육 욕구를 충족시켜 생긴 자연스런 결과였다. 교육입안자들은 이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따라서 외고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외고와 같은 교육을 어떻게 하면 모든 공교육에 적용시켜 더 많은 학생이 경제적 능력이나 부모의 열의와 관계없이 양질의 교육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외고와 같은 학교가 더욱 늘어나고 다양하고 특색 있는 학교들이 많아져 학생의 학교 선택권이 확대되도록 해야 한다. 교육의 본보기가 되고 있는 외고를 벤치마킹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갈등요소만 없애 결과적으로는 학교의 하향평준화를 유지하겠다는 발상은 그만두었으면 한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