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말, 한국은 내년 G20(주요 20개국)정상회의를 유치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대통령 일행은 성공을 축하하며 만세삼창을 외쳤고, 정부는 “단군 이래 가장 큰 외교행사”, “외교사에 남을 쾌거”로 평가하며 큰 홍보에 나섰습니다. 세계 경제의 주요 현안을 협의하고 방향을 결정하던 G7의 역할이 G20으로 이양되면서 개발도상국과 신흥시장국가의 역할이 강화되는 시기에 한국이 G20정상회의를 개최하게 된 것은 정말 잘 된 일입니다. 한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며, 한국이 개최한 국제회의 중에 최대의 경제적 효과를 낼 것이라는 등의 긍정적인 보도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은 G20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작년 9월 세계적 경제위기가 시작되면서 G20형식의 모임이 추진될 때 유럽의 일부국가들은 한국의 참여를 반대했고, 중국과 일본의 반응도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한국이 아시아를 대표할 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참여하기 위해서 한국 정부가 벌인 노력도 대단했고, 그로 인한 미국의 큰 지지로 인해 한국은 G20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G20 출범 1년 만에 정상회의를 유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2000년 ASEM 정상회의, 2005년 APEC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룬 경험이 있고, 올림픽과 월드컵도 성공적으로 진행한 경험이 있어서 한국의 저력을 모은다면 내년 11월에 개최될 G20정상회의도 잘 치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기까지는 외형상 드러나는 한국의 G20정상회의 개최 관련 모습입니다. 이제부터 조금 더 깊이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G20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경제의 '의제 설정(agenda-setting)'기관이다.”

-2009년 9월 G20 정상회의에서 미국 재무부 장관 티머시 가이트너

“오늘 G7개편 이야기는 없었다.”

-2009년 10월 G7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미국 재무부 장관 티머시 가이트너

G20정상회의는 G7, G8을 대체하는 글로벌 협의체로 부상했고, 선진국과 신흥국이 공조하는 새로운 마당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국가 간의 정책 조율이나 글로벌 불균형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주요 무역 흑자국이 포함되어있는 신흥국이 빠져있는 G8로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 재무부 장관의 말에 비춰보면 G8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하토야마 총리는 “정치 지도자 20명이 모여서 어떤 결론을 끌어내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 이라며 G20을 평가 절하했습니다.

결국 G8국가들은 세계 경제 위기를 해결하는 데 신흥국들의 도움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은 여전히 자신들만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G20을 최고의 경제협의체(the premier forum)로 격상시킨 것에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제3차 피츠버그 G20정상회의의 성과를 보면 글로벌 불균형 해소(Rebalancing)라는 말이 나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무역 흑자인 국가와 무역 적자인 국가, 저축이 많은 나라와 소비가 많은 나라들 사이에 균형을 맞춰보자는 것입니다. 특히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자국이 발행한 채권을 아시아 국가들이 사들여 미국 경상수지 적자를 메워주는 현재와 같은 관계를 바꿔보자는 뜻이 될 것입니다. 즉 선진국들은 신흥국들에게 수출을 줄이고, 흑자를 축소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수출을 많이 하기 위해서 환율을 의도적으로 조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진국에게는 '잘나가는 신흥국들은 수출에만 열을 올리고 수입에는 게으르다.’는 이미지가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한국도 수출에만 열을 올리고 수입에는 게으른 '잘나가는 신흥국’ 중의 하나입니다. G20회의를 통해서 외환보유고만 쌓는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불만이 나온다고 합니다. 미국이 법적 강제성이 있는 테두리 안에 중국을 끌어드리려고 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서 흑자를 줄이고 환율을 조작하지 말라는 성격이 강합니다.

G8을 비롯해서 세계 경제의 강자로 부상한 신흥국을 포함하는 G20은 글로벌 불균형 해소라는 측면에서 자칫 선진국 대 신흥국의 대결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야 하므로 의사결정을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없는 추상적인 합의만 나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내년 한국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까지 1년이란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그 시간동안 세계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세계적 금융위기라는 공통적인 인식이 이 G20이란 모임을 유지시켜주고 있으나, 위기상황을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된다면 G20의 성격이 바뀌게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직까지 세계 경제는 출구전략을 쓸 만큼 회복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출구전략을 쓸 때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어쩌면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의 대결의 장이 될지도 모르는 회의를 개최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은 선진국과 신흥국의 중재자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합니다. 근본적이고 개혁적인 협력 방안보다는, 가시적이고 구체적이며 단기적으로 실현가능한 협력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그 핵심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공조를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슬기로움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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