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은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올해 초 UN군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던 영국군의 전투를 기록한 『마지막 총알 To The Last Round -임진강에서의 전설적인 저항』이 발간됐었다. 영국인으로 미국 워싱턴 타임스지 서울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는 앤드루 새먼이 참전용사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작성한 책이다. 최근 『마지막 총알』의 한국어판이 준비 중이다(출판사 시대정신, 2010년 1월 발간 예정).

책에는 1950년 11월 시변리 전투부터 1951년 4월 임진강 전투까지, 영국군의 치열했던 전투일지가 상세하게 담겨있다. 또 포로로 붙잡혀, 2년간 포로수용소에 수감됐던 포로들의 일상도 기록돼 있다.

영국군은 한국전쟁 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적과 전투를 치렀다. 1951년 4월 22일부터 나흘간 임진강에서 벌어진 전투는 영국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4천여 명의 영국군 제29 보병여단은 2만7천여 명의 중국군과 싸워 1천여 명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다. 그리고 포로로 붙잡혔다. 특히 임진강 전선 한가운데서 고립됐던 영국군 글로스터 연대는 전 부대가 괴멸당하는 혈전을 치렀다. 이들의 희생은 중국군의 서울 진입을 지연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마지막 총알』에는 영국군의 용감했던 전투장면과 함께, 한국전쟁에 대한 이들의 솔직한 심정도 담겨있다.

피란민들이 얼어붙은 임진강을 건너는데 중국군의 도강을 막기 위해서 UN군은 얼음을 깨야했다. 남한의 준군사조직은 북한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민간인을 학살했다. 민간인으로 위장한 중국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UN군은 어쩔 수 없이 민간인을 향해 총구를 겨눌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은 참전용사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자신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자신들의 일이 그리고 한국에서 벌어진 참상이 민주주의와 멀어 보였기 때문이다. 또 자신들의 총에 죽어간 앳된 중국 병사들의 모습 역시 전쟁의 의미를 알 수 없게 만들었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다수의 영국군들은 전투의 치열함과 한국전쟁의 비참함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다시는 한국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데이비드 스트래천도 이들 중 한명이었다. 1951년 1월, 중국군에 밀려 남쪽으로 후퇴하던 스트래천은 자신의 참호에 불쑥 나타난 중국 병사를 향해 발포했다. 중국 병사의 몸이 스트래천 위로 떨어졌고, 꼬박 4시간이 걸려 그 적병의 목숨이 끊어졌다. 이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스트래천은 영국으로 돌아가서도 이 적병을 계속 만났다고 한다. 자택 침실에서 악몽을 꾸다 악의에 찬 인기척을 느끼고 깨어나면 그가 죽인 병사가 그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수년간 중국군 병사의 환영에 시달려야 했다.

스트래천은 정신과 의사의 충고에 따라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파괴된, 남은 것이라고는 고아와 시체 밖에 없던 한국이 눈부시게 발전해 있었던 것이다. 한국 방문도중 그는 고장 난 벨트 버클을 고치려고 수선집에 들어갔다. 그가 참전용사라는 이야기를 들은 수선집 주인이 그에게 인사를 하더니 한사코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스트래천은 감동을 받았고 이후 중국군의 환영을 두 번 다시 보지 않았다고 한다.

프레스톤 벨 역시 오늘날 한국을 보고 전쟁에 대한 관점을 영원히 바꿨다고 한다. 그는 새먼에게 “주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가 뭔지 압니까”하고 물었다고 한다.

“둘 사이엔 차이가 없어요. 50년 전 나는 내 일생 중 1년을 한국에서 바쳤어요. 나의 작은 공헌이 한국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이 됐는지 잘 모르고 살았습니다. 한국을 둘러보며 환대를 받았습니다. 한국은 모든 것이 최신식이고, 멋지고, 가운차고, 얼마나 상스러운(vulgar) 동시에 만물이 번영하는 국가였어요. 나는 한국 사람들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한테 감사하지 마세요. 내 인생을 가치 있는 인생으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아프간 재건팀 파견을 앞둔 우리에게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고백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죽고 죽이는 전투 현장에서 전쟁의 의미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역사가 쌓이면 그 의미가 서서히 들어날 것이다. 한국이 그랬듯이 말이다. 한국을 위해 싸워준 UN군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우리의 번영은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3대 세습과 심각한 경제난의 북한을 보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아프간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고 근대화를 부정하는 탈레반으로부터 아프간 주민들을 지키는 것은 매우 힘든 과정이다. 그러나 이를 지켜내야, 그곳에서 새로운 삶이 싹 틀수 있다. 우리는 그 바탕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59년전 UN군이 그랬듯이 말이다. 한국전 참전 영국군의 전투일지를 따라가며, 아프간과 우리의 역할을 생각해 본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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