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안번호 1808651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 -
방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의 주요 내용
중계방송권, 특히 스포츠 등의 중계권을 둘러싼 방송사들 간의 갈등과 분쟁을 사전에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최문순 의원 등 16명의 국회의원이 방송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제출했다.
개정법률안은 중계방송권과 관련이 없는 내용도 일부 포함하고 있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중계방송권과 관련한 것이다. 중계방송권과 관련한 개정법률안의 주요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중계방송권을 다른 방송사업자에게 중계방송권의 총 계약금액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차별 없이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안 제76조 제3항). 둘째, 중계방송권의 판매 또는 구매를 거부하거나 지연시키는 행위 또는 중계방송권을 부당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 등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안 제76조의3제1항). 요컨대 개정법률안은 중계방송권의 판매를 강제하고 중계방송권 판매금액의 상한선을 제시하고 있다.
보편적 시청권 보장은 허구
중계방송권의 판매를 강제하고 판매금액의 상한을 제한하는 법률안의 근저에는 `일반국민의 보편적 시청권 보장’이라는 논리가 있다. 과연 보편적 시청권이라는 개념이 타당한 것인가? 다시 말하면 권리로서 시청권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보편적 시청권이 권리로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의 보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거나 그런 권리가 오히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게 된다.
신문사가 종이로 된 신문(최근에는 전자신문)을 매체로 하여 정보를 전달하고 이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 신문사가 신문을 판매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신문사의 재산일 뿐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정보가 나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날짜가 한참 지난’ 신문은 소비자가 가치 있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판매할 수 없고(폐지로는 판매할 수 있다) 다른 신문사가 만든 신문은 자신의 신문이 아니기 때문에 판매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어떤 신문사가 매일 매일의 신문을 판매하는 것은 그것이 그 신문사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방송의 경우도 신문과 큰 차이가 없다. 방송사가 방송 프로그램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전파를 이용해야 한다. 방송 프로그램을 전달하기 위한 특정 전파는 그 전파를 발사한 방송사의 자산이다. 그러므로 방송사는 그 전파를 팔 수 있다. 이 점에서 방송사의 전파는 신문의 경우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근래에는 모든 전파가 `유선 또는 케이블’로 전달되고 소비자는 유선 또는 케이블을 사용하는 데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도 도시 거주 지역의 대부분에서 그렇게 하고 있지만 유선 또는 케이블의 사용 대가를 방송의 광고 또는 홈쇼핑의 광고 등에서 상당 부분 충당한다는 점에서 미국 등과 약간 다르다고 하겠다. 그리고 유선 또는 케이블을 이용하여 전파를 수신하는 경우에도 TV 단말기 등과 같은 전파 수신 장치는 전파 소비자가 보유해야 한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제작과 관련된 모든 비용을 소비자가 부담하지 않는다. 가격이 너무 비싸지면 수요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신문사나 방송사는 광고를 판매하여 비용의 상당 부분을 충당한다. 그러나 이 점이 신문과 전파가 신문사와 방송사의 자산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광고는 소비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소비자의 효용을 감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증대시키는 것이다(물론 사기 광고가 없지는 않지만 예외라고 보는 것이 옳다).
특정 전파는 그 전파를 발사한 방송사의 자산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보편적 시청권이라는 개념은 `허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하면 소비자가 방송사의 자산을 구매할 때만이 전파를 잡아 시청할 수 있기 때문에 시청권이라는 개념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정 전파는 그 전파를 발사한 방송사의 자산이고, 그 자산의 보유와 이용을 보호하기 위하여 전파와 관련한 재산권이 발달한다. 방송사의 자산인 전파에 대하여 보편적 시청권을 주장하는 것은 타인의 재산에 대하여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방송과 유사한 신문에는 `구독권’이라는 개념이 없다. 이제 시청권이라는 개념은 방송 관련 규제자가 방송사를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장치임을 알 수 있다(물론 이 점은 좀 더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시청권이라는 이름으로 방송사의 행위를 정부가 어떤 방법으로든 규제하면 방송사와 방송의 수요자인 일반 국민 간에 소득재분배가 일어나고 방송사와 방송사 간에도 소득배분배가 일어날 수 있다. 즉 보편적 시청권은 방송사의 권리를 침해하는 개념으로서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보편적 시청권을 토대로 중계방송권의 판매를 강제하고 중계방송권 판매금액의 상한을 제시한 방송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이론적 토대가 취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시청권이라는 잘못 만들어진 권리는 다양한 소득재분배를 초래하기 때문에 방송사의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
가격 상승을 통한 국부 유출 주장은 중상주의 시각
단독중계가 가격을 높일 것인가? 모든 방송사들이 합쳐져서 하나의 창구를 마련하여 공급자와 협상하는 경우와 여러 방송사들이 경쟁하여 계약을 따내고자 하는 경우를 비교하면 후자가 전자에 비해 중계료 즉 중계권의 가격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코리아 풀’을 결성하여 협상하는 경우에 스포츠와 같은 행사 중계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각각 하나인 경우가 된다. 이 경우에는 공급자가 받고자 하는 최대 가격과 수요자가 지불하고자 하는 최소 가격의 사이에서 두 당사자의 협상력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공급자는 하나이지만 수요자가 다수일 때(우리의 경우 3사)는 수요자 간의 경쟁으로 가격이 전자의 경우에 비해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언제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 경우가 되더라도 국부 유출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각 자의 목적에 맞게 움직이는 것이 시장 원리이고 그에 따른 결과는 각자가 책임져야 할 몫이다. 국가 전체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은 개인보다 국가를 중시하는 `중상주의’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국부 유출을 이유로 단독 중계를 비난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와 책임이라는 관점에서는 잘못된 것이다.
단독중계와 달리 코리아 풀을 결성하는 경우에 각 방송사는 비용은 적게 들지만 수익도 줄어들게 된다.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풀을 결성하는 것이 자사의 이윤을 극대화할 수 없는 길이 될 수도 있다. 풀에 참가할 것인가 또는 단독중계를 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각 방송사가 결정할 문제라는 것이다. 여기에 국가의 이익을 내세워 풀을 강제하거나 단독중계를 비난할 수는 없다. 경제 용어로 말하면, 풀의 결성이 전적으로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런 풀의 결성은 일종의 `카르텔’(cartel)이라고 하겠다. 소위 자발적 카르텔인 것이다. 자발적 카르텔에 참여할 것인가 여부는 각자의 이익과 비용에 의존할 것이다. 이익이 비용보다 크다면 카르텔에 참여할 것이고 반대인 경우에 카르텔은 붕괴하고 단독중계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풀을 강제하는 경우는 비자발적 카르텔이고 그것은 독점으로서 각종 폐해를 유발한다.
사회통합 기능의 약화?
단독중계가 사회통합 기능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이 있다. 방송 커버리지가 낮은 방송사가 단독중계를 할 경우에 시청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지역의 주민을 중계방송 시청에서 제외함으로써 위화감을 가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방송통신위원회의 6월15일자 해명자료를 보면 문제가 된 방송사의 가시청 가구 비율은 약 95%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 통계자료가 의미하는 바는 비록 약간의 난시청 가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 통합을 염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민영 방송사의 설립 목적은 이윤이고 국공영 방송사의 설립 목적은 이윤이 아닌 다른 것이 될 수 있고 그 중의 하나가 사회통합일 수 있다. 그런데 지난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파동에서 보듯이 방송사의 방송 내용 자체가 사회를 분열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이다. 사실 방송 내용에 비하면 난시청 가구가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인터넷과 같은 저렴한 매체가 발달하면서 난시청 가구는 사회통합이라는 차원에서 더더욱 중요성이 작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국공영 방송사도 난시청 지역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어떤 방송사가 단독중계를 하든지 여러 방송사가 풀을 경성하여 중계를 하든지 상관없이 사회통합의 약화는 크게 염려할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요컨대 한 방송사의 단독중계가 사회통합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은 침소봉대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계약 자유의 원칙 부인은 사회주의
자본주의는 자산의 사적 소유와 계약 자유의 원칙을 인정하는 제도이다. 만약 자산의 사적 소유를 인정하되 계약 자유의 원칙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런 제도를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전파를 자산으로 인정하여 매매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이번에 제안된 방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의 주요 내용은 계약 자유의 원칙을 부분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개정 법률안의 주요 내용은 `사회주의’인 것이다. 이러한 사회주의는 앞에서 보듯이 각종 소득재분배를 초래한다. 사회주의는 다른 문제도 만들어낸다. 잘못된 인센티브 구조로 인한 비효율과 낭비, 부정부패 등이다. 자산의 사적 소유를 인정한다면 계약 자유의 원칙도 인정하는 것이 완전한 자본주의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주지하듯이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우위에 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방송사 설립 규제 철폐로 독점 제거해야
정부가 국내외 행사에 대한 중계권의 계약에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보편적 시청권이라는 방송에서 널리 사용되는 개념은 사실상 허구이고 그 결과 여러 가지 악영향과 부작용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보편적 시청권이라는 개념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방송법 일부 개정 법률안은 권리라는 관점에서 기초가 없는 것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그런 법률안은 방송사의 재산권을 침해하게 된다. 용어의 사용에 있어서도 주의를 요한다. 단독중계권이라는 개념은 옳지만 독점중계권이라는 용어는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독점중계권이라는 용어는 불필요하게 비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지만 방송사업은 정부의 허가사항이라는 점에서 독점이고 각 방송사는 독점자이다. 그러므로 방송을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독점에 따르는 폐해를 없앨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단독중계권은 자체로서는 문제가 없지만 방송사 자체가 정부의 허가에 의해 존폐가 결정되는 한에 있어서는 방송사는 독점이득을 누리고 국민은 독점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방송중계권과 관련한 계약을 규제할 것이 아니라 방송사의 설립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여 독점을 제거함으로써 방송과 관련한 국민의 이익을 향상시키는데 노력을 기우려야 할 것이다. ▌
‣ 전용덕 (대구대학교 교수ㆍ무역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