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법 개정의 필요성

오는 7월 1일부터 야간 집회가 전면 허용될 것 같다. 헌법재판소가 2009년 9월 24일 집시법의 야간집회 금지규정(제10조)에 대하여 집회허가 금지 및 과잉금지원칙 위배 등을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하면서 오는 6월 30일까지만 효력을 유지하기로 했었다. 그 시한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국회에서 집시법 개정안이 통과될 기미가 안 보이는 것이다. 6월 30일이 지나면 야간집회를 금지한 법조항이 효력을 상실함으로써 밤 12시든 새벽2,3시든 언제나 야간집회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헌재 결정 이후 한나라당은 현행법에 “해가 진 후 또는 해가 뜨기 전”으로 되어 있는 야간집회를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로 개정할 것을 주장하였고, 민주당은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을 아예 삭제하되 주거지역, 학교, 국회의사당 등 일부 지역에서만 밤 12시-다음 날 오전 6시로 제한하자고 주장하여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에 민주노동당이 야간집회는 물론 야간시위에 대한 제한을 전면 폐지하자는 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야간집회·시위의 제한 필요성

헌재가 야간 집회에 대하여 일체의 제한을 할 수 없다고 결정한 것은 아니다. 위헌의견도 “집회의 자유는 다수인이 집단적 행태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므로 공공의 질서 내지 법적 평화와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것이어서, 집회의 자유에 대한 일정범위내 제한은 불가피할 것인바,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허가제 이외의 방법으로 제한이 필요”하다고 인정하였다.

“옥외집회는 그 속성상 공공의 안녕질서, 법적 평화 및 타인의 평온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야간이라는 특수한 시간적 상황은 시민들의 평온이 더욱더 요청되는 시간대이고, 집회참가자 입장에서도 주간보다 감성적으로 민감해져 자제력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행정관서 입장에서도 야간옥외집회는 질서를 유지시키기가 어렵다.” 헌재의 헌법불합치 재판관들의 의견이다. 야간집회는 주간집회보다 질서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주간집회에 비하여 제한의 폭이 더 커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그 제한 방법에 대하여 한나라당은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시간을 설정하자는 것임에 반해, 민주당은 시간제한은 철폐하고 다만 집회 장소․소음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자는 것이었는데, 민주노동당은 여기에 야간집회는 물론 야간시위에 대한 시간제한까지 철폐하자면서 장소제한은 주간의 집회·시위와 동일하게 규정하면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우선, 야간 시위에 대한 제한을 모두 철폐하여 주간 시위와 동일하게 장소 등을 제한하면 충분하다는 민주노동당의 주장을 살펴보자.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법률안 제안이유에서 야간집회는 허용하고 야간시위를 금지하면, 야간에 한 장소에 머무르면서 집회를 하면 적법하고, 몇 발짝 걷기 시작하면 불법이 되는 “웃지 못 할 일”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 장소에 머무르면서 집회를 하면 적법하고, 몇 발짝 걷기 시작하면 불법이 되는 것이 과연 “웃지 못 할 일”일까? 그렇게 볼 수는 없다. 집회와 시위는 공공의 안녕질서에 미치는 영향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제한의 필요성에서도 차이가 날 수 있다. 사람들이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경우와 움직이는 경우 공공질서의 위험 측면에서 명백한 차이가 있고,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위협의 정도도 결코 같지 않다. 시위(示威)는 글자 그대로 다수인이 위세(威)를 보여(示) 다른 사람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행위다. 이는 시위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의 심리에 강제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므로 시위는 집회보다 공공의 안녕을 해칠 위험성이 더 큰 것이다.

그리고 합법적인 집회의 참가자들이 몇 발짝 움직이는 작은 차이로 인하여 불법이 된다 해서 기이하다고 볼 일이 아니다. 위법과 합법은 아주 사소한 차이로 인하여 갈리는 일이 흔하다. 예컨대, 아무리 합법적인 시위라 하더라도 시위참가자가 경찰의 질서유지선(폴리스라인)을 반 발짝만 넘으면 즉시 위법하게 된다. 다수인이 다른 사람에게 위세를 보이기 위하여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법적인 평가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다음, 야간 집회·시위의 장소를 제한하면 충분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첫째, 우리나라의 경우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이 밀착되어 있는 등 주거지역과 다른 지역을 칼로 무 자르듯 구분하기 어렵다. 가게에서 잠을 자는 사람이 적지 않고, 상업지역이라 하더라도 주거지역이 거리상 그렇게 멀지 않기 때문에 상업지역에서의 집회·시위의 영향이 상당히 클 수밖에 없다. 둘째, 심각한 소음피해로 인한 수면방해와 불안감 고조 등의 피해가 우려된다. 야간에는 다른 소음이 적기 때문에 집회·시위로 인한 소음 피해가 주간보다 훨씬 크다. 더욱이 인간은 심리상 같은 소란스러움이라도 안정을 취하고자 하는 야간에 더 불안감을 느낀다. 셋째, 또한, 야간에는 주간보다 신분은폐는 용이한 반면, 불법행위 채증은 곤란하여 불법 집회시위로 변질될 가능성 훨씬 커진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8년 광우병촛불시위시 55회의 폭력시위 중 46회가 밤10시 이후 발생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12시가 넘은 심야나 이른 새벽에 시위를 할 현실적 필요성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헌재는 “우리 사회 대다수의 직장과 학교는 그 근무 및 학업 시간대를 오전 8~9시부터 오후 5~6시까지로 하고 있어 평일 위 시간대에는 개인적 활동을 할 수 없으므로 … (중략) … 직장인들과 학생은 사실상 집회를 주최하거나 참가할 수 없게 되어,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박탈하거나 명목상의 것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필요성 때문에 야간집회를 허용해야 한다면 밤10나 11시까지 시위할 수 있으면 충분한 것 아닐까?

더욱이 시위는 일반시민에게 시위참가자들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라 부른다. 그러면 사람들이 대부분 잠자리에 드는 밤 1, 2시에 시위를 해서 누구에게 보여주겠다는 것인지 문제다. 심야시위가 효과를 거두려면, 잠자는 사람들을 깨워서라도 참가자들의 주장을 알릴 수밖에 없다. 결국, 일반시민의 안녕과 평화에 대한 희생을 전제로 할 때 심야 시위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의미가 되는데, 이는 일반시민에게 너무 큰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의 집회·시위 문화

OECD통계연보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법질서지수는 OECD 30개국 중 27위라 한다. 2007년 100만 명당 집회 건수가 서울 736건, 홍콩 548건, 워싱턴 207건, 파리 186건, 도쿄 59건이고,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집회·시위로 인하여 부상을 입은 전·의경이 2005년 993명, 2006년 817명, 2007년 302명, 2008년 577명, 2009년 510명에 이르니 최하위를 면한 것이 다행일 정도다.

야간시위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 정도다. 그런데 만약 야간집회·시위가 무제한 허용될 경우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야간에는 어둠 때문에 집회·시위참가자들이 일탈하고픈 유혹을 더 느낀다는 사실은 심리학자의 말을 빌 필요도 없이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그리고 경찰은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하여 시위현장에서 불법·폭력행위자 체포를 자제하고 범법자를 촬영하였다가 추후 체포하는 방법을 흔히 사용하는데, 야간집회·시위에서는 이러한 방법을 쓰기 어렵다. 폭력적인 야간집회·시위를 통제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야간집회·시위의 허용은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부패, 선거부정, 치안 등 여러 부문에서 나아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집회·시위에서는 그러한 기미가 없다. 외국인들이 대한민국하면 연상되는 것 중의 하나가 거리에 화염병이 나뒹굴고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파업농성하는 장면이라 할 정도로 폭력시위는 한국사회의 ‘전통’인데, 이러한 부정적 전통이 단절될 기미가 없는 것이다.

이게 우리의 집회·시위문화의 수준이다. 민주화이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아직 참담한 수준이다. 매년 수백 명의 경찰관이 시위현장에서 다치고, 경찰병원에는 이들 경찰관들이 넘쳐나고 있다면 이를 과연 정상적인 사회에서의 시위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일 지경이다.

집회·시위의 자유와 공공질서의 조화

야간집회·시위에 대하여 제한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를 앞세우고, 제한하자는 사람들은 공공의 안녕질서를 내세운다. 어느 쪽이나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할까?

헌법상 보장되는 모든 기본권은 한계가 있다. 집회·결사의 자유도 물론 그렇다. 그 한계는 집회·시위의 자유와 공공질서의 조화에서 찾아야 한다. 공공질서를 내세워서 조금이라도 질서에 위협이 되면 집회·시위를 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것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지만, 집회시위가 공공질서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것은 집회·시위의 자유의 한계를 넘은 것이다. 집회·시위의 자유와 공공질서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우리의 시위문화에서 야간시위를 무제한 허용하자는 것은 선진화에도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야간에 걸핏하면 시위가 벌어지는 사회에서 안정을 기대할 수 없고, 그러니 합리적인 예측을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 자본의 투자는 물론 국내자본의 장기투자를 꿈꾸기도 어렵다. 세계시장에서 ‘시위공화국’의 자동차가 ‘쿨하다’고 여겨질 것 같지도 않고, 그런 나라에서 만든 영화나 드라마가 환상을 주기도 어려울 것이다. 단순히 값싸고 품질 좋은 것만으로는 선진화될 수 없다. 제품에 고급 이미지를 입혀야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이 될 수 있는데, 시위공화국은 그렇게 하기 어렵다. 우리가 선진화하기 위해서라도 시위공화국으로부터 탈피해야만 하는 이유다.

결국, 타협점은 야간시위 허용하되 그 시간을 제한하는 것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야간집회를 허용하되 일반시민이 불안에 떨지 않고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 주는 것, 즉 밤 몇 시 이후의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것이 조화점이 될 것이다. 그 시각은 밤10시가 될 수도 있고, 밤12시가 될 수도 있겠다. 여・야의 조속한 합의를 촉구한다. ▌

이재교 / 변호사, 시대정신 이사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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