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속담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라는 말이 있다. 며느리 입장에서 시어머니는 늘 대립각을 세우지만, 제3자처럼 보이는 시누이가 나무라는 시어머니에게 말리는 척하면서 사실은 며느리인 자신을 나무라는 것을 조장·방조하는 행태를 꼬집은 말이다. 갑자기 왜 이 말을 하는가 하면, 포퓰리즘 정책을 주특기로 하는 좌파 정당의 정강정책이나 선거공약이야 원래 그러려니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명료히 하고 반 좌파 정책을 내고 맞대결해야 하는 한나라당이 이를 외면하고 내는 공약과 이를 둘러싼 정치 행태가 이 속담에 아주 적확하게 들어맞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민주당을 포함한 좌파 정당들이 일제히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들고 나온다. 그 타당성과 폐해를 차치하고 그들의 좌파 성향 때문에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를 대하는 집권 한나라당의 정략을 보면, 우리 유권자가 정말 믿고 의지할 만한 정당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정강·정책을 내는데 당론이 없는 것이 문제이지만, 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통령의 2007년 반값 등록금 대선 공약을 보면, 아무리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한다 해도 대학 사정을 알고나 내놓은 공약인지 의구심마저 든다. 필자가 속한 교육대학은 방송통신대학을 제외하고 가장 값싼 등록금을 받는 국립대학이다. 한 학기에 대략 150만 원 안팎인 대학 사정을 무시하고 ‘반값공약’을 냈으니 탈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학교경영상 등록금이 120만 원 정도 하던 몇 해 전 기성회비를 10만 원 정도만 인상하였더니 언론은 7% 인상이라고 대서특필하고, 최근에는 학생들은 단 돈 1만 원 인상하려 하여도 “반값은커녕 올리지나 말라”고 대통령을 비아냥거리면서 플랫카드와 대자보를 써 붙이며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가인상분 최소한의 소모성 경비도 못 올리게 만들어 버린 형국이다. 대통령 공약이 이런 형국이니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행태는 어떤지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요즈음 지방선거를 앞두고 온갖 인기에 영합하는 공약이 남발되는 실정에 대하여 나라 살림을 관장하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우회적으로나마 일침을 가한 적이 있다. 그는 얼마 전 ‘이명박 정부 2년 국정 평가 토론회’에 참석, 기조연설을 통하여 “값을 치르지 않고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주장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인기영합주의를 뜻하는 ‘포퓰리즘’ 정책은 한번 시행되면 되돌리기 어렵고 다른 분야에 악영향을 퍼뜨린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고 역설한 바 있다. 그러면서 그는 “그리스 정부가 임금 삭감안과 사회보장지출 감축 계획, 세수확충 등 재정 건전화 구상을 내놓으면 공공부문 노조가 파업으로 대응하고 있다.”면서 “남유럽의 고부채 국가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가 장기간의 ‘포퓰리즘’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고 친절하게 부연하였다고 한다. 너무나 당연하고 교과서적인 내용을 중언 부연해야 하는 우리 정치 현실이 답답하다.

포퓰리즘은 참으로 떨치기 어려운 유혹임에는 틀림없다. 과거 1970년대 좌파 포퓰리즘 정책으로 거의 온 유럽 국가들이 이른바 ‘유럽병’을 앓았던 경험이 있던 바로 그 유럽에서 다시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 포퓰리즘에 대한 경각심을 누그러뜨려선 안 된다.

그럼에도 한나라당 정치인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포퓰리즘에는 포퓰리즘으로 맞선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무상급식 공약 파괴력 크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라 한다. 그 결과로 중증장애인 연금확대·혁신도시 지원 등을 검토하기로 하고, 저소득층의 교통비 등도 혜택을 주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한나라당은 나름대로 ‘중도’를 표방한다고 변명을 할지 모르나 이는 중도도 아니다. 이념 없는 득표 전략일 뿐이다. 또 공공선택론에서 언급되는 중도선호이론(median preference theorem)이나 투표거래(logrolling)를 여기에 적용하려면 자신만의 소신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찾아볼 수도 없다. 그냥 어정쩡하게 흉내 내는 짝퉁 ‘중도’일 뿐이다. 이념 없는 중도는 정도(正道)를 벗어난 외도(外道)이다.1)

이념 없이 어설프게 설정한 ‘중도’ 노선은 좌파 포퓰리즘 정략에 편승하는 폐해도 있지만, 끊임없이 선거 전략이 방향을 잃는다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를테면 한나라당이 6ㆍ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학교 무상급식 공약을 ‘부자급식’이라고 폄하하면서도 또 다른 포퓰리즘으로 맞대응하는 중대한 과오를 범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정작 무상급식의 본질이 생산수단과 재화의 국유화를 가져오고 결과적으로 국가파탄을 초래한다는 좌파 발상의 위험성을 개진하려는 노력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기껏 나온 한나라당의 대응이라는 것이 무상급식 추진에는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을 들어 반대할 뿐이다. 이러한 태도를 정확하게 진단해 보면 한나라당도 근본적으로 무상급식에 찬동하고 동조한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당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는 한나라당의 유력 정치인이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자신의 서울특별시장 선거 공약으로 내고 있는 실정이다. 당론이나 당의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제재나 당내 비판도 찾아볼 수 없다.

집권당으로서 공약 추진에 소요되는 예산을 이슈화하는 것은 정작 선거판에서 쟁점이 될 수가 없고 설득력도 떨어진다. 야당의 정치적 쟁점은 무상급식 재원을 현 정권의 트레이드 마크인 4대강 사업을 중단하면 마련된다고 하는 노림수에 있다. 그러니까 야권의 전략은 무상급식을 통한 인기영합에도 있고, 4대강 사업 무력화에 초점을 맞춘 일석이조의 전략이다.

한마디로 한나라당의 무상급식에 관한 대응 전략은 이념 빠진 무소신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2) 오히려 국민들의 눈에 민주당이나 여타 정당의 좌파 정강·정책은 그 타당성이나 실행가능성 여부에 앞서 소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나라당은 이에 대응하여 소신 있는 정강·정책을 내는 것이 아니라 포퓰리즘에 매달려 질질 끌려가는 형국이다. 더욱이 이러한 한나라당의 무소신은 제 나름대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작금의 무상급식 논란의 전초전이 되었던 2006년 학교급식법 개악(?)3)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의 좌파 정략에 소신 없이 합의해준 야합에 불과하다. 이렇게 보면 지금 야권의 무상급식 논란은 이미 4년 전에 한나라당이 자초한 결과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한나라당이 학교급식법의 개정을 서둘러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소신 있게 집권당의 면모를 보여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당시 입법과 관련하여 두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하나는 학교급식법은 2006년 개악 이후 현재까지 개정안이 상임위원회 소위에 상정조차 안 된 실정이다. 과반수를 차지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무엇을 했는지 설명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상임위에 상정하고자 내놓은 개정안이 13개 정도(정부 입법안 포함)인데, 이 중에서 헌법에 보장된 자유민주적 질서에 부합되도록 직영급식 의무화와 무상급식을 금지하는 입법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위헌적인 ‘무상급식 금지’ 조항을 넣을 용기 있는 정치인이 한 명도 없는 것이 국민의 입장에서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국민들을 대신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하는 의원을 거꾸로 국민이 걱정하는 형국이니 말이다.

소신 없이 눈치 보기의 행태는 이번 지방선거를 통하여 선출하는 교육의원 문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국회에서 ‘지방교육자치법’은 지난 국회에서 만들어진 ‘교육의원’ 선출 문제를 이번 선거에서만 선출하기로 합의(?)하고 개정된 바 있다. 이 역시 두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하나는 교육의원 선출에 문제가 많다는 점이다.4) 교육의원 구성에서부터 대표성에 이르기까지 위헌 소지도 포함되어 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인구 수와 국회의원 수에 전혀 비례하지 않는 교육의원을 광역의회 상임위원회에 존치하는 것을 들 수 있다.5) 국회의원 4명과 광역의원 10명에 해당하는 대표성을 갖는 이들이 광역의회 안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은 파행이나 독주를 낳을 것으로 예견된다. 다른 하나는 이처럼 문제가 많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를 폐기하지 못하고 소수당인 민주당에 한나라당이 합의해 준 야합의 행태이다. 이 법안을 주도한 과거 열린우리당을 계승한 민주당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한나라당은 무엇을 한 것인지 묻고 싶다. 집권당에 과반수 의석을 만들어준 민의를 이렇게 내팽개쳐도 좋은 일인지 모를 일이다. 소수 정당에 발목을 잡혀 끌려가는 형국은 한나라당이 소신이 없어서이다.

좌파정책을 방조하는 한나라당의 행태는 국민들에게 좌파정책을 가지고 인기에 편승하고 노골적으로 선동하는 야당의 행태보다 더 심각한 문제이다. ‘때리는 시어머니’야 원래 시어머니 속성상 그렇다 치더라도 ‘말리는 시누이’의 정체성은 도대체 무엇인가? 한나라당의 이념 빠진 중도 전략을 보면 ‘말리는 시누이’의 밉상을 그대로 보는 듯하다.

❚김정래 (부산교육대학교 교수ㆍ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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