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정치적 책임성

사무엘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 설명한 세계적인 민주화 `제3의 물결`(the Third Wave of democratization) 이후 민주주의 정치의 주요 화두는 정치적 책임성(political accountability)이다. 정치적 책임성이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유권자에게 책임을 지는 것을 말한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국회가 국민에 대해서 지는 책임성도 의미한다. 나아가 권력획득을 실천하는 중요한 행위자로서 정당이 국민에게 지는 책임성도 포함된다.

1987년 민주화를 이룩한 이후 한국정치가 나아가야할 궁극적 지향점은 정치적 책임성의 확보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민주화 이후 ‘두 번의 정권교체’를 이루어내며 ‘민주주의의 공고화’(consolidation)를 확고히 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하여 시민문화의 정착이 국민의 몫이라면, 정치인의 몫은 정치적 책임성의 확보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국회와 정당이 보여주는 정치적 책임성은 언급하기 힘들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국회의원의 책임에 대한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가 많다. ‘한국에서 가장 좋은 직업’에는 국회의원이 1순위로 뽑힌다. 그 이유는 정년이 없고, 사무실 있고, 자동차 제공되고, 비서도 있으며, 권한만 있고 책임이 없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법률제정권에 국회 내 발언에 대한 면책특권, 범죄를 저질렀어도 회기 중 불구속이 기본인 막강한 권력의 직업이다. 반면에 선거운동 기간 2주 고생하고 4년을 목에 힘주고 지낼 수 있는 효율성에 대비하여 책임도 없는 직업이다. 또 최근에는 “세금만 많이 쓰고 가장 쓸모없는 국가 기관은?”에 대한 답 역시 국회 내지는 국회의원이다. 이러한 국회와 국회의원 관련 농담의 핵심은 권력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정치적 책임성의 미비이다.

국회와 더불어 정당들의 행태 또한 무책임하기는 대동소이하다. 최근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책임성을 잊은 행동은 기록이 필요할 정도이다. 세종시 수정안은 당내(黨內)의 합의조차도 이루지 못하고 중진위원회까지 만들었지만 결론은 ‘합의할 마음 전혀 없음’이다. 4대강 사업은 정부만 애타게 ‘해야 한다’를 외치고 있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강 건너 불구경이다. 또 6·2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당 지도부의 수장은 수습 대책도 없이 사표 던지고 바로 남아공 월드컵으로 훨훨 날아갔다. 그에게 책임 정당의 대표라는 직함이 무색하다. 선거를 총지휘한 선거대책본부장 역시 다르지 않다. 제대로 된 선거 패배의 반성이나 자숙도 없이 패배 2주도 채 안되어 자신의 정치 방식 실천을 위하여 당대표에 도전하겠다고 한다. 선거에 패배하면 책임은 모두 대통령과 청와대의 것이고, 승리하면 자신의 전략으로 승리한 것이 되니 편리한 사고의 정치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行政)은 정부의 책임이고, 선거(選擧)는 정당이 책임진다는 역할 분담은 중요하다. 자유선진당의 이회창 대표 역시 지방선거 패배로 사퇴했다가 슬그머니 업무에 복귀했다. 6·2 지방선거가 끝나고 패배한 정당에게 패배의 정치적 책임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정치적 책임성과 상임위원회, 특별위원회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의무와 책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소속된 상임위원회 활동과 법안을 제의하고, 예·결산 심의하고 예산안을 확정 짓는 일이다. 하지만 법안 심의와 관련하여 상정된 법안에 대하여 얼마나 잘 알고 토의하고, 투표를 하는지 모르겠다. 흔히들 자신이 속한 지역구의 예산은 꿰고 있지만 나라 살림살이는 액수가 커서 기억도 하지 못하는 사정이다. 국회의 정치적 책임성의 확보는 시급하고 중요하다.

국회의 상임위원회와 특별위원회 운영 역시 정치적 책임성을 언급하기 힘들다. 18대 국회는 16개 상임위원회와 2개의 특별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상임위원회는 운영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정무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국방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지식경제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국토해양위원회, 정보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로 구성되어 있다. 특별위원회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윤리특별위원회의 2개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앞의 특별위원회는 상설(常設, standing)의 성격을 가진 특별위원회(special committee)이고 한시적인 특별위원회(ad hoc special committee)는 별도로 만들어 진다.

국회 특별위원회는 국회에서 상임위원회가 맡아보는 안건 이외의 특정 사건이나 특별히 필요하다고 인정한 안건을 심사하여 처리하는 위원회이다. 국회법 제44조는 특별위원회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현재 국회가 만들어 활동 중인 특별위원회는 정치개혁 특별위원회, 지방행정체제개편 특별위원회, 국제경기대회개최 및 유치지원 특별위원회, 세계박람회지원 특별위원회, 사법제도개혁 특별위원회, 일자리 만들기 특별위원회, 독도영토수호대책 특별위원회, 천안함 침몰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등 총 8개가 있다. 최근 국회에서 만들어 활동 중인 특별위원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특별위원회 활동이 정치적 책임성을 가지지도, 운영이 효율적이지도 않다. 한시적인 조직이다 보니 책임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운영이 시스템화 되지 못하고, 소속 의원들의 책임감 역시 찾기 힘들다.

책임성을 확보하는 특위 운영 개선

이렇게 사회적으로 무슨 일만 생기면 만드는 이런 저런 이름의 국회 특별위원회는 여론을 의식하여 급조한 한시적 특별위원회(ad hoc committee)가 대부분이다. 여야가 구성에 합의한다고 하더라도 위원장과 갑자기 배정된 위원들의 전문성은 별로 없고, 한 목소리 내고 싶은 목소리 큰 의원들 중심으로 구성되기 쉽다. 전문성이 떨어짐은 특별위원회에 위원들을 중복 배정하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나라당 홍일표 의원은 세계박람회 특별위원회와 사법제도개혁 특별위원회에 동시에 소속되어 있다. 세계박람회 유치와 사법제도 개혁의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 차명진 의원은 지방행정체제개편 특별위원회와 세계박람회지원 특별위원회에 동시에 소속되어 있다. 행정체제개편과 세계박람회 지원의 연관성 역시 찾기 힘들다. 정진섭 의원은 일자리 만들기 특별위원회와 천안함 침몰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에 소속되어 있다. 일자리 만들기와 천안함 침몰 등 국회의원의 관심이 다양하다고 해야 할지 뭐든지 하는 전공 없는 의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민주당도 사정은 비슷하다. 서갑원 의원은 정치개혁 특별위원회와 세계박람회지원 특별위원회에 동시에 활동하고 있다. 박영선 의원은 사법제도개혁 특별위원회와 천안함 침몰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에서 동시에 활동하고 있지만 원래 상임위원회는 정보통신위원회 소속이다. 창조한국당 이용경 의원은 정치개혁 특별위원회와 국제경기대회개최 및 유지지원 특별위원회 소속이면서 동시에 상임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 위원회 소속이다. 그래도 국제경기대회와 문화체육관광은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특위 중복 배정의 문제는 의원으로 하여금 전력투구 하지 못하게 하고, 아울러 정치적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한다는 데 있다.

특별위원회 운영도 문제인 것이 준비만 하고 회의 한번 제대로 안하는 특별위원회가 대다수이다. 17대 국회에서 독도특위는 8개월간 회의를 단 한차례 했다. 17대 국회에서는 문제가 터지면 구성한 특위가 24개였고, 그 후 유야무야 되어 평가는 낙제점이었다. 활동을 안 해도 위원장에게 월982만원씩 지급됐다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동아일보』, 2008년 9월 4일). 활동은 없어도 배정된 운영 예산은 꼬박꼬박 챙겨가는 비효율성은 심각한 문제다.

과거 여야 합의로 만들어진 ‘규제개혁 특별위원회’도 ‘일자리 만들기 특별위원회’도 국회가 나서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며 대국민용 전시성 위원회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특위 구성이 이뤄진 뒤 회의를 연 것은 한 두 번에 불과하고 활동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현실이다. 결국 ‘국회 특위=무위도식=무책임’이라는 비판도 감수해야 한다.

나아가 특별히 국회가 다루어야할 사안도 아닌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대책 특별위원회”나 “독도영토수호대책 특별위원회”를 만드는 것이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외교적 사안을 국회의원들이 여론에 편승하여 해결하려 든다면, 국가간 갈등만 증폭되고 진정한 외교적 해결이 요원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특위인 만큼 그에 걸 맞는 기본적인 운영 절차가 갖추어져야 한다. 위원장 선정과 위원수 배정 등 특위 구성으로 여야가 다투고, 회의 날짜로 다투고, 회의 열고나서는 장관 다그치기에 열중해서는 특위 운영도 효율적이고 책임성도 기대하기 힘들다. 특위에 배정된 의원들이 비전문가이다 보니 회의를 해도 장관 출석시켜 야단치고,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 베끼기가 주(主)가 되기도 한다. 효율성도 떨어지고 전문성도 없는 한시적 특별위원회를 남발하면서, 국회가 마치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는 듯 여론 눈치보기성 특위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개선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마구잡이 특위보다는 전문성과 지속성을 갖추고 전문위원의 행정지원도 받을 수 있는 상임위원회 활동을 확대하는 것이 대안이다. 천안함 침몰사건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라는 새로운 위원회를 만들기 보다는 국방위원회의 활동을 강화하고, 독도영토수호대책 특별위원회는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전문적이고 지속적으로 세련되게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회독도특위 위원들이 2009년 6월 2일 네덜란드 왕립도서관을 방문하여 독도관련 고지도와 문헌들을 조사했다고 한다. 특위 위원들이 독도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연구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의 독도 연구자들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한 것이다. 전문성의 측면에서 볼 때 국회 특위 위원들의 예산 낭비 전시성 행사이다.

마지막으로 특위로 활동할 것이 아니라 상설위원회(standing committee)로서 상임위원회가 되어야 하는 예산안·결산 심의를 위한 기구가 아직도 예산·결산 특별위원회로 존속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산·결산 심의는 특위로 운영하지 말고 상임위원회로 운영되어야 할 중차대한 국회의 업무에 해당한다. 따라서 전문적이고 상시적인 예·결산 심사를 위하여 상설특위인 예결특위를 상임위원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임위원회로 해야 할 것은 특위로 하고, 중복적이기 때문에 굳이 만들 필요가 없는 사안을 국민 여론이라는 정치적 고려 때문에 특위를 만들어 예산만 낭비하는 국회 위원회 제도의 비효율성과 무책임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 상임위원회와 특별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에 정치적 책임성과 효율성을 주문한다. ▌

김인영 / 한림대학교 교수, 정치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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