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강행했으며, 연이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러한 북한의 무력시위로 인해 한반도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한과 협상을 통해 핵무기 개발을 저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임을 알 수 있다. 북핵은 협상용이 아니라 북한의 오래된 꿈이며, 핵보유를 통해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남한을 위협하고 협박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안전을 위해 한미동맹체제를 강화하고, 지금까지 남북교류․협력의 행태를 종합적으로 재검토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북한은 지난달 25일 오전 9시 54분 함북 길주군 풍대계리 인근에서 핵실험을 했다. 이날 아침 북한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한다면서 조문(弔文)을 전달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처음부터 북한이 예의를 갖출 것이라는 것은 기대난망(期待難望)이었지만, 조전(弔電)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또 다시 그들의 기만성과 폭력성을 무엇으로 형언할 수 있겠는가? 이어서 핵실험을 자축하듯 미사일 축포를 그들의 시간표에 따라 쏘아 올렸다. 북한은 4월5일에도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뿌리치고 장거리미사일을 태평양 상공으로 날려 보낸 전력도 있다.

북한의 협상전략은 상대방제압하기

북한의 핵개발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일성은 남한의 무력통일은 오직 핵무기 밖에 없다는 복심을 숨기고 구소련을 귀찮게 했다. 김일성의 핵무기에 대한 오랜 집착은 1985년 소련으로부터 5MW 실험용 원자로를 도입하는데 성공했다. 이때 북한은 핵무기비확산방지조약(NPT)에 가입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그러나 북한은 핵개발 의혹이 불거지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해 1992년 NPT를 탈퇴했다. 이때부터 북한은 핵개발이라는 히든카드를 가지고 국제사회를 농락하면서 시간벌기와 보상의 크기를 조절했다.

북한은 1992년에 체결한 '한반도비핵화선언’을 휴지 처리했고, 1994년 체결한 제네바합의는 전리품을 챙기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북한은 1991년 1차 핵 위기 이후 46억불 상당의 200MW경수로를 전리품으로 챙겼고, 남한과 일본으로부터 식량도 지원받았다. 이런 경제적 보상은 체제유지와 경제난 극복에 사용되었고 핵무기 개발자금으로 활용했다. 다시 말해 핵개발을 포기하겠다는 명분으로 국제사회의 지원금은 핵개발 자금으로 둔갑했다. 이런 북한의 행태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신행위’와 다름이 없지만 핵개발 열차는 발진했다. 바로 북한의 교묘한 협상전략에 말려들어 국제사회가 사기를 당한 꼴이 됐다.

북한의 협상전략은 스스로 벼랑 끝에 서서 상대방을 위협하거나, 과격한 발언을 통해 상대의 심리를 압박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국의 이익에 유리하도록 협상의제를 조작하거나,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상대 국가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1991년 구소련의 붕괴는 핵개발을 가속시킨 또 다른 요인이다. 북한은 구소련의 붕괴로 생계가 곤란한 소련의 핵개발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평양으로 대거 유치했다. 바로 구소련의 붕괴가 북한의 핵무기의 기술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북한의 협상전략은 상대방제압하기(outmaneuvering)이다. 이 전략은 스스로 벼랑 끝에 서서 상대방을 위협하거나, 과격한 발언을 통해 상대의 심리를 압박하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자국의 이익에 유리하도록 협상의제를 조작하거나,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상대 국가를 지치게 만들었다. 이러한 협상전략에서 북한체제나 정책은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고 상대방의 변화만을 가져왔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북한은 지속적 요구와 상대국가의 더 큰 양보를 통해 보상과 시간을 버는 성과(?)를 얻었다.

이런 북한의 협상전략은 드디어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이이서 지난 5월 2차 핵실험이라는 핵개발 프로그램을 진행시켜 왔다. 꿈을 현실로 바꾸는 계획은 지속되고 있다.

북한 핵은 대남용이다

북한이 핵개발을 본격화한 시기는 1990년대 초반부터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한다. 이 시기 북한은 남북한 간의 엄청난 경제력 격차라는 체제내적 충격과 사회주의권의 몰락이라는 세계사적 충격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남북한 경제력 격차의 확대는 재래식 무기경쟁으로 영원히 군사적 우위를 차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자각은 자연히 핵무기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핵무장이 재래식 무기개발 비용보다 저렴할 뿐만 아니라 단순에 군사적 열세를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매력 때문에 김일성․김정일 부자는 핵개발에 집착했고 무기체계의 본격적 전환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과 소련이 수교할 당시 세바르드나제 소련외상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영남 당시 외상은 '한소 수교를 하면 우리는 핵보유국으로 간다’라고 공언했다. 이는 북한이 세계사적 격변의 시기에 개혁과 개방이라는 순방향으로 전진보다는 핵개발이라는 역주행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증거 중의 하나이다.

북핵은 협상용이 아니라 오래된 꿈이며, 핵보유를 통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남한을 위협하고 협박하기 위한 무기라는 사실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처럼 북한은 핵개발에 일관되고 지속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그런데 북핵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은 매우 위험하기 짝이 없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의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은 오히려 북핵을 옹호하는 어이없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북한의 핵개발은 '미군 군산복합체의 음모론이다’, '북한 핵은 미국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협상용이다’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1차 북핵 위기가 발생되자 남한의 친북세력들은 '북한은 핵을 개발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2002년 이후 제2차 북핵 위기가 발생되자 이들은 '북한은 미국의 핵공격에 대비하여 자위력을 제고한 것이다’라고 북한을 적극 옹호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는 2006년 제1차 핵실험 이후 김대중 전대통령도 '북한 핵은 미국책임이다’라면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고 나섰다. 북한은 핵개발과 관련해서 국제사회와 약속을 수차례 위반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주장을 동의 반복하는 친북세력들의 행태를 어떻게 설명하여야 하는가?

북한이 자위력을 높이기 위해 핵개발을 하였다면 북한의 핵개발로 남한의 자위력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자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도 북핵문제의 심각성을 경시해 온 측면이 있었다. 우리가 최대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핵문제는 국제적 사안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우리 스스로 북핵의 위험성을 무시했고, 남북관계 개선 내지 발전이라는 명분 때문에 북핵문제는 늘 뒷전이었다. 또한 북핵에 대한 북한의 의지와 능력은 과소평가하고 미국 때문에 핵을 만든다는 북한의 선전선동전략에 속아 북핵의 심각성을 무시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북핵의 최대 피해자는 남한이다. 북한은 1998년 9월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한 후 동년 12월 5일 노동신문을 통해 미사일의 표적이 '서울, 동경, 워싱턴’임을 천명했다. 이 기사는 북한 핵이 근본적으로 남한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미사일이 핵무기의 이동수단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대미협상론은 북핵의 본질적 문제가 아니다.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집착은 가희 광적이었다. 1990년대 초반 수백만 명이 기아선상에서 허덕일 때에도 핵보유라는 절대절명의 목표를 향해 달려왔고, 북한은 어떤 보상으로도 핵 집착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협상론은 어떤 명분도 실리도 없다. 그리고 역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북핵은 협상용이 아니라 오래된 꿈이며, 핵보유를 통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남한을 위협하고 협박하기 위한 무기라는 사실은 명백한 사실이다.

대북정책 기조 바꿔야

지난 10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기조는 '교역을 통한 평화’ (peace through trade)였다. 정부의 교역을 통한 평화정책은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으로 파탄 났음에도 협상의 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반면 북한의 핵전략은 한미를 철저히 분리하는 양면전략을 추진해 왔다. 미국과의 협상에서는 시간을 버는 지연전술이었다. 북한은 2007년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2.13합의를 도출하였지만 합의문에는 핵무기를 폐기한다는 조항을 빼는데 성공함으로써 '현재의 핵’에 대한 면죄부를 얻고,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보너스도 챙겼다.

한편 남한과의 협상에서는 '민족은 평화다’라는 슬로건을 통해 남한의 대북지원을 민족적 의무로 인식시킴으로써 핵개발 재원을 마련하는 전술을 구사하고 남남갈등을 유발시켰다. 이런 북한의 핵전략은 평화라는 명목으로 핵개발 자금을 조달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그러나 남한정부는 어떤 정책기조의 변화도 강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화정책을 유지하는데 급급해서 안보정책을 포기하는 우를 범했다.

오마바 정부 출범과 함께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그 강도를 높여가면서 북핵문제가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다. 북한은 지난 4월 5일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고 곧바로 5월 25일에는 2차 핵실험이라는 강수를 던졌다. 북한은 핵기술을 국제사회에 과시하고 핵보유 국가라는 것을 국제사회에 자랑이라도 하듯이 계획된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있다.

1차 핵실험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교류․협력정책의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 … 우리는 생존을 위해 한미동맹체제를 강화하고, 지금까지 남북교류․협력의 행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이런 북한의 행태에 대해 우리정부는 그저 우물쭈물 하고 어떤 과단성도 없었다. 만약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한다면 대량살상무기방지구상(PSI)에 참여하겠다고 천명했지만 막상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수많은 핑계거리로 뒤로 미루는 안보전략의 부재를 보여주더니, 2차 핵실험 이후 마지못해 PSI에 참여하는 실망스런 모습을 연출했다.

물론 PSI 참여카드를 만지작거린 이유는 개성공단에 억류근로자가 걸림돌로 작용했지만 종합적 전략․전술은 분명히 존재하지 않았다. 바로 남북간의 급격하게 변화된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북한의 핵보유가 수면아래 가시화되지 않은 상태의 1998년 패러다임을 핵보유가 현실화된 2008년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이 정석인데도 계속 악수만 두었다.

우선 북한의 핵위협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한다.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교류․협력정책의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 북한은 1992년 한반도 비핵화선언 이후 17년 동안 국제사회와 남한을 철저하게 무시했고 앞으로도 비핵화라는 약속을 지킬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사실과 함께, 3-4년 내 핵무기를 실전배치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문제의 심각성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북한 핵의 실전배치는 한반도 파멸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핵무기에는 핵무기밖에 대처방법이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존을 위해 미군의 핵우산이 언제 어디서나 항상 가동될 수 있는 한미동맹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6월중에 개최되는 한미정상회담을 잘 활용하여 한미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북교류․협력의 행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북한은 개혁과 개방의 전초기지로 활용할 목적에서 개성공단을 건설한 것이 아니라 황색바람의 차단막으로서 공단을 개발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 그리고 개성공단은 북한이 배타적으로 행정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남한근로자를 인질로 삼을 수 있다는 사실도 직시하여야 한다.

따라서 공단개발은 남한 단독개발에서 국제공동 컨소시엄으로 개발방식을 전환하던지, 아니면 남북한의 행정력이 공동으로 미칠 수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개발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입주기업과 노동자들이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다.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은 폐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저자소개: 조영기 교수는 건국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와 한반도선진화재단 교육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현대북한경제론’ 외 다수가 있다.

조영기 /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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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반시장주의자들은 언제나 그 원인을 시장 또는 자본주의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경기변동은 거의 언제나 정부의 이자율 규제와 화폐량 증가 때문에 발생해왔다. 과다한 통화량은 자본재 산업에서의 과오투자를 유발한다. 그 결과 경제 모든 분야에서 과오투자가 일어나는 붐(boom), 상당수 기업이 자신들의 투자가 이윤이 나지 않고 그 결과 투자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위기(crisis), 상당수의 산업과 기업에서 파산・실업・구조조정・합병 등이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침체(depression) 등이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경기변동의 정확한 원인은 시장이나 자본주의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정부실패’때문이다.

전 세계적 경기변동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이번 경기변동의 원인에 대한 분석과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서는 지금까지 나온 분석과 주장의 옳고 그름을 따져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문제가 되는 현상을 고치거나 재발을 막고자한다면 현상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고 그에 대한 처방은 그 다음이기 때문이다.

이번 경기변동은 미국 부동산에서 버블이 발생하고 잇따라 서브 프라임 모기지의 연체가 높아져서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지면서 본격적으로 가시화되었다. 미국 부동산버블과 그에 따른 금융기관의 부실은 경기변동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부동산버블과 금융위기보다 범위가 넓은 경기변동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경기변동 원인은 과다한 통화량 증가

경기변동은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경제 내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과오투자(malinvestment)가 일어나는 붐(boom) 국면, 상당수 기업이 자신들의 투자가 이윤이 나지 않고 그 결과 투자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위기(crisis) 국면, 상당수의 산업과 기업에서 파산・실업・구조조정・합병 등이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침체(depression) 국면 등이다.

이제 경기변동의 원인들을 살펴보자. 먼저 과다한 통화량 증가를 이번 경기변동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주장이 있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이하 '연준’)가 연방기금 목표금리를 인위적으로 낮게 규제하였고 이에 따라 신용수단 또는 통화량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에 경기변동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연준이 만들어진 1913년부터 2001년까지 창출된 요구불예금 총액의 70%에 맞먹는, 실로 엄청난 액수의 요구불예금이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창출되었다. 제도적으로는, 지폐의 발권을 정부가 독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앙은행이 민간금융기관의 부분지급준비제도를 허용하기 때문에 통화량이 과다 창출되는 것이다.

과다한 통화량은 자본재 산업에서의 과오투자(과잉투자나 과소투자)를 초래한다. … 과오투자가 행해지는 시기를 붐 시기라고 한다면 그런 과다투자가 잘못된 투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청산하는 시기를 버스트(bust) 시기라고 한다.

통화량 증가가 어떻게 경기변동을 초래하는가를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과다한 통화량은 주택시장을 포함한 자본재 산업에서의 과오투자를 초래한다. 여기에서 과오투자란 과잉투자(동일 산업에서의 과잉투자는 중복투자가 된다)뿐만 아니라 과소투자도 또한 포함한다. 일정 부문 또는 산업에서 과잉 투자되면 경제 내의 자원이 그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그 부문을 제외한 다른 부문 또는 산업에서는 과소 투자된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에 주택, 자동차 등의 자본재 산업에서 엄청난 과잉투자가 일어났다.

그러나 과잉투자에 비해 과소 투자된 부문을 식별할 수는 없다. 경제이론으로만 그런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경제 내의 일부 부문에서 과잉투자의 크기가 클수록 다른 부문에서는 그와 비례하여 과소투자의 크기가 커진다. 과오투자가 행해지는 시기를 붐 시기라고 한다면 그런 과다투자가 잘못된 투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청산하는 시기를 버스트(bust) 시기라고 한다.

이번 경기변동을 화폐량 증가에서 찾는 견해는 비록 소수 견해이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힘을 얻고 있다. 그리고 이 견해가 이번 경기변동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다. 여기에 평등주의,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 탐욕에 기인한 기회주의 등이 이번 경기변동을 증폭시켰다.

그린스펀의 오류: 저축이 경기변동을 유발했다?

앞에서 제시한 분석을 제외한 경기변동의 원인들이라고 주장되고 있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아시아의 과도한 저축이 경기변동을 불렀다는 것이다. 소위 아시아 책임론 또는 음모론이다. 이 주장은 이번 경기변동의 책임이 미국 연준으로 향해지자 연준의 전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이 3월 11일자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제기한 것이다.

그린스펀의 주장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먼저 그는 이자율을 낮추어 통화량을 증가시킨 것이 이번 경기변동, 특히 주택버블과 무관하다는 주장을 폈다. 그를 뒷받침하는 내용으로 장기 모기지 금리와 연방기금 목표금리는 최근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증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과거에도 여러 번 장기 모기지 금리와 연방기금 목표금리의 상관관계가 분리되었든 적은 많았다. 그렇지만 그때도 미국 정부가 이자율을 낮추어 통화량을 팽창시킴으로써 경기변동을 초래했음을 미국 금융 통계는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단기금리가 장기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도 그린스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무엇보다도 명백한 것은 앞에서 지적했듯이 2001년 이후에 엄청난 액수의 요구불예금이 창출되었다는 점이다.

저축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경제성장을 초래하면 초래했지 버블을 초래할 수는 없다. 저축이 사회에 어떤 문제를 일으킨다는 [그린스펀의] 이론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이어서 그린스펀은 자신의 엉터리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작금의 부동산버블의 원인으로 아시아, 특히 중국의 과도한 저축을 지목했다. 그러나 중국의 미국 재무부 증권에 대한 투자는 그 자체로는 전 세계의 달러 총재고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버블과 경기변동을 초래하는 것은 화폐 총재고의 변화이다. 다만 중국은 보유한 달러를 다시 미국 국내에 투자했는데 그런 투자는 달러의 지역 간 재고를 변화시킨다. 자금의 이러한 이동은 그 자금이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 투자되는 것과 비교한다면 미국 내의 달러 총재고를 더욱 팽창시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중국 보유 달러의 미국 내 투자는 미국 정부로 하여금 낮은 이자율에 국채를 발행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적어도 미국 정부에게만은 좋은 것이다.

게다가 1994년경부터 2005년경까지 중국은 실질적으로 중국 '위안’을 달러에 고정한 고정환율제를 채택했다. 물론 이 당시 중국 정부와 미국 정부는 위안의 대달러 환율을 고정시키는 데 묵시적으로 동의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 것은 물론 양국 정부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화폐의 고정환율과 그로 인한 무역흑자를 미국 국채에 투자한 것은 미국의 무역적자와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 즉 미국의 쌍둥이 적자를 큰 문제없이 지속되게 만들었다. 한 마디로, 달러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달러의 과다 발행으로 인한 달러 가치 하락의 '피해자’이지 이번 경기변동의 원인 제공자가 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아시아의 과도한 저축이 부동산버블을 초래했다는 주장은 이론적으로 결정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저축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경제성장을 초래하면 초래했지 버블을 초래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저축이 사회에 어떤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론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절약의 역설’도 그 점에서 틀린 것이다. 그린스펀은 완전히 틀린 경제이론을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탐욕과 어리석음이 경기변동을 유발했나?

둘째, 이번 경기변동의 원인을 사람들의 탐욕과 어리석음에서 찾는 것이다. 방송과 같은 대중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견해일 뿐만 아니라 어쩌면 주류 견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틀렸다. 먼저 자금을 빌려준 사람들(lenders)의 탐욕을 비난하는 것이다. 그렇게 위험도가 높은 모기지 담보부증권(mortgage-backed securities)을 구입한 투자자들의 비정상적인 탐욕이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국제 투자자들도 포함된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인간은 탐욕스럽다. 아마도 탐욕을 비난하는 사람들 자신들도 여유 자금만 충분했다면 이번 경기변동에서 모기지 담보부증권을 구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요약하면 탐욕은 인간이 가진 조건으로써 인간의 삶에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기변동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인간의 탐욕이 경기변동의 원인이 될 수 없지만 이 지점에서 일부 집단의 비정상적인 행동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미국 신용평가사들은 모기지 담보부증권에 대하여 매우 높은 등급의 신용을 부여했다. 가장 흔한 경우는 'AAA' 등급이라고 한다. 신용 평가사들은 위험이 매우 높은 증권에 그렇게 높은 신용 등급을 부여한 것이다.

사실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수익을 올리려는 욕심에서 신용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았음이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드러났다. 무디스의 한 직원은 “평가모델이 위험의 절반도 반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의 그런 행위는 탐욕에 기인한 기회주의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물론 신용평가사들의 탐욕은 경기변동의 원인이기보다는 변동을 증폭시킨 요인이라고 하겠다.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경기변동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인간은 탐욕스럽다. 그리고 인간이 지닌 지식은 언제나 그런[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탐욕이나 어리석음은 인간이 가진 조건 또는 환경이지 경기변동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

미국에서 경기변동의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은 탐욕보다는 차라리 어리석음이다. 주로 차용자들(borrowers) 또는 기업가들의 어리석음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인간이 지닌 지식은 언제나 그런 것이다. 완전한 지식을 소유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그렇다면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물론 사람마다 지식이나 지혜의 정도의 차이가 있고 그 차이가 때로는 작을 수도 있고 때로는 클 수도 있다. 상업의 세계에서 정상적인 경우에 미래를 잘 예측하여 이윤을 내는 기업가들과 손실을 보는 기업가들이 언제나 다수 존재한다.

그러나 경기변동의 경우에 다수의 기업가가 큰 오류를 범하게 되는 일이 한꺼번에 발생하게 된다. 이 경우에 왜 다수의 기업가가 집단적으로 미래를 잘못 예측하는 일이 발생하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어리석음이 문제가 된다면 경기변동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인간의 지식이 하루아침에 크게 개선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반복되는 경기변동의 원인을 어리석음으로 지목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어리석음은 인간이 가진 조건 또는 환경이지 경기변동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

이번 경기변동의 원인을 차용자들의 어리석음, 특히 경제지식의 부족 내지는 불완전에서 찾는 것은 차용자들, 더 나아가 일반인들의 경제지식을 교육해야 한다는 결론에 쉽게 이르게 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경제위기 시에 사회 일각에서는 그런 경제지식 교육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제기했고 그에 따라 일부 기관은 그런 일을 지금도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 때 우리나라의 경기변동도 사실은 앞에서 보았듯이 인위적으로 낮게 규제된 이자율에 의한 과다한 통화량 증가에 의해 발생한 것이지 일반인들의 어리석음 때문은 아니다.

'너무 적은 경제적 자유’와 '과도한 규제’가 원인

셋째, 이번 경제위기가 금융산업에서의 '과도한 경제적 자유’와 '너무 적은 규제’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는 최근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다수의 정치인이 주장하는 것이다. 이 주장의 근저에는 이번 위기가 규제 완화를 추구했던 신자유주의 또는 자본주의 때문에 발생했다는 주장이나 비판이 놓여있다. 그리고 이 주장은 탐욕과 어리석음에도 닿아 있다. 예를 들어 헤지펀드와 같은 탐욕스러운 경제주체나 서브 프라임 대출자와 같은 어리석은 경제주체에게 과도한 자유가 주어졌기 때문에 큰 변괴가 일어난 것이고 그런 행동을 통제할 충분한 규제가 있었다면 현재와 같은 경제위기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경제행위를 규제할 미국 연방정부의 정부 부처가 12개가 넘고, 연방 규제기관이 100개가 넘고, 85,000쪽이 넘는 연방등록부(Federal Register)가 있으며, 수없이 많은 주정부와 지방정부 차원의 규제기관과 통제기관 등이 있다. 정부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보증함에 따라 도덕적 해이가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확대를 위한 주택도시개발부의 프레디맥과 페니메이에 대한 지원과 보증은 두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대출에 따른 위험을 평가하지 않는, 묻지마 대출과 모기지 유동화증권을 무한정하게 발행하게 만들었다. 즉 '도덕적 해이’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규제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자율, 통화량, 화폐제도, 금융제도 등에 대한 수많은 규제와 정부의 지원과 보증 등과 같은 것이 경기변동을 불러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민간 금융기관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에 관한 한 주택도시개발부의 지원과 보증을 받았기 때문에 프레디맥과 페니메이와 유사한 현상, 즉 도덕적 해이 현상이 발생했다. 도덕적 해이는 경기변동을 증폭시킨 요인이다. 여기에서 지원과 보증은 규제의 일종이다. 무엇보다도 미 연준이 이자율을 규제함으로써 통화량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시간선호를 왜곡하여 저축보다는 소비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경기변동을 초래한다는 점을 앞에서 보았다.

규제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자율, 통화량, 화폐제도, 금융제도 등에 대한 수많은 규제와 정부의 지원과 보증 등과 같은 것이 경기변동을 불러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시 말하면, 대통령 등의 주장과 반대로 '너무 적은 경제적 자유’와 '과도한 규제’로 인하여 이번 경기변동이 발생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경기변동의 정확한 원인은 정부실패 때문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정리하면, 이번 경기변동의 원인에 대한 세 가지 '잘못된’ 분석이나 주장은 명시적으로 또는 묵시적으로 이번 경기변동의 원인을 '시장실패’ 또는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큰 경제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 관변 경제학자들, 케인스주의자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같은 통칭 반시장주의자들 등은 그런 위기를 언제나 시장 또는 자본주의 탓으로 돌려왔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반복되는 경기변동은 직접적으로는 거의 언제나 정부의 이자율 규제와 그에 따른 화폐량 증가 때문에 발생해왔다. 그리고 그런 증가의 근저에는 화폐제도와 금융제도의 결함이 자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번 경기변동의 정확한 원인은 '정부실패’라는 것이다. 다만 이번 국제신용평가사들의 탐욕에 기인한 기회주의에 대해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경기변동을 증폭시킨 반시장적 평등주의,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 등에 대해서도 시장원리와 일치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끝으로. 앞에서 검토한 내용은 전 세계에서 반복되고 있는 경기변동에 거의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각국의 화폐제도와 금융제도가 거의 비슷할 뿐만 아니라 이자율을 낮추어 신용수단을 증가시키는 통화정책 등의 정부행위도 나라별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저자소개: 전용덕 교수는 미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대구대학교 무역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자유주의 철학과 시장경제원리에 관한 연구, 강의, 발표 등에 관심과 노력을 쏟고 있다. 주요저서와 논문으로는 '공정거래법의 모순', '헌법재판소 판례연구(공저)’, '시장경제의 이해(공저)’, Conglomerates and Economic Calculation 외 다수가 있다.

전용덕  /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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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논란이 일고 있는 '영리병원제도’는 의사에게 귀속되어 있던 의료업의 진입 제한을 풀어 의사가 아닌 사람과 법인에 의료사업을 개방하는 것이다. 병원에 자본 투입을 허용하여 병원을 영세한 자영업 형태에서 기업 형태로 발전시키자는 취지다.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병원은 새로운 자본을 차입할 수 있어 투자를 늘릴 수 있으며, 이러한 투자확대는 우리 사회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이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종류의 의료 상품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머지않아 개방될 예정인 의료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영리법인병원 허용’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과거 십 수 년 전부터 지금까지 찬반의 입장 차는 좁혀 들고 있지 않다. 오히려 사회 각층의 관심이 커지면서 오해의 골이 더 깊어지는 모양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여러 각도의 해석이 있겠으나 필자는 '영리’라는 단어 사용에서 문제를 접근해보고자 한다. 2008년 4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병의원의 93.1%(전체 의료기관 대비 법인 제외 개인 병원, 의원)이 영리를 추구하고 있다. 즉 영리병원은 새로울 것이 없는 지극히 일반적인 형태다. 투자와 수익 배분이 존재하며 최대 40%의 세금을 납세하고 있으니 무늬만 영리병원이 아니다.

이렇듯 기업의 생리를 가졌음에도 “비영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결과는 경쟁력의 약화에 의한 소비자 후생 수준의 답보였으며 부산물로는 불투명성과 폐쇄성을 가져왔다. 그러므로 영리병원 도입 반대라든지 의료영리화 심지어 의료민영화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병원에 자본 유입이 필요한 이유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영리병원 제도’란 '지금까지 의사 개인의 자본 또는 차입으로 의료 사업을 하던 방식에서 하나의 방법이 추가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즉 '영리병원제도’란 '의사’에게 귀속되어 있던 의료업의 진입 제한을 풀어 의사가 아닌 사람과 법인에 의료사업을 개방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영리병원’이 아니라 '출자개방병원’ 또는 '투자개방병원’ 이 옳은 용어 사용이다. 말 그대로 병원에 자본 투입을 허용하여 병원을 영세한 자영업 형태에서 기업 형태로 발전시키자는 취지다.

그렇다면 병원의 자본 유입은 왜 필요한 것인가? '투자개방병원’의 도입이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몇 가지 입장으로 정리될 수 있다.

'영리병원제도’란 '의사’에게 귀속되어 있던 의료업의 진입 제한을 풀어 의사가 아닌 사람과 법인에 의료사업을 개방하는 것이다. … 병원에 자본 투입을 허용하여 병원을 영세한 자영업 형태에서 기업 형태로 발전시키자는 취지다.

우선 병원의 입장이다. 현 의료법 하에서는 의사가 개원을 하기 위해서 개인의 자본 또는 차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확장을 할 경우라도 차입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차입이 이루어지는 순간부터 의사는 부채를 안고 진료를 할 수 밖에 없어 매달 돌아오는 이자와 원금 상환의 부담을 감내해야만 한다. 특히 요즘과 같이 불경기에는 은행권의 대출마저도 쉽지 않다. 이자와 대출 상환금에 못 이겨 과잉 진료와 청구, 각종 리베이트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 '투자’라는 새로운 요소가 추가된다면 상환의 부담이 줄어든 만큼 의사는 안정적인 병원 운영이 가능해진다. 지난해 우리나라 병의원 폐업률은 12%에 달했다. 은행 차입금에 허덕이다 결국 문을 닫은 것인 것이다. 외부 자본을 통해 안정적으로 운영을 하게 된다면 병원의 급격한 도산을 막아 폐업에 의한 의료 접근성 하락이 줄어들 것이며 의료인은 진료에만 전념함으로써 의료 소비자들이 건강보험체제하에서 현재보다 훨씬 높은 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독점적 지위 남용 폐해 줄여 소비자들에게도 이익

두 번째로 의료소비자의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투자개방병원 제도가 주주의 압력에 의해 의료 남용의 결과를 초래, 의료비가 상승하고 의료의 본질이 훼손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떻게 운영하는가의 문제로 귀속된다. 영세하게 운영되던 병의원 운영에 경영 전문가가 참여, 경영의 효율화를 가져오게 된다.

또한 병원의 대형화, 체인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와 기업식 운영으로 비용을 크게 줄이게 되어 장기적으로 치료비를 대폭 낮출 수 있다. 미국의 의료기업인 OCA나 TLC 가 고가의 치열 교정과 라식 수술을 큰 부담 없이 소비자에 공급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투자개방병원(영리병원)은 기업이건 개인이건 병원 경영의 주체가 되도록 함으로써 직업 선택의 자유를 실현하며 더 이상 독점적 지위의 남용 폐해를 줄이는 첫 걸음이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자본 참여를 개방한다면 의료 보장성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료의 오남용 역시 시스템적으로 줄일 수 있다. 싱가포르의 래플즈병원의 경우 외부인으로 구성된 진료감사위원회가 있어 의료의 오남용으로 인한 폐해를 방지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처럼 너나 할 것 없이 정보력을 갖춘 시대에 진료 오남용으로 병원의 이미지를 추락시켜 소비자의 외면을 자청할 병원은 없다.

또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품질과 가격, 다양한 형태의 병원들이 생겨날 것이다. 고급의료보다는 저가격을 표방하는 병원들이 훨씬 더 많이 생기게 될 것인데 왜냐하면 저수가 정책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투자개방병원의 또 한 가지 목적은 독점적인 의사의 사업권을 일반으로 확대하는 데 있다. 현재의 의료법은 의사에게 환자 진료권 뿐 아니라 병원 사업의 독점권까지 주고 있다. 리베이트 관행 등 병원들의 불합리한 관행들 대부분이 의사들의 사업 독점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투자개방병원은 기업이건 개인이건 병원 경영의 주체가 되도록 함으로써 직업 선택의 자유를 실현하며 더 이상 독점적 지위의 남용 폐해를 줄이는 첫 걸음이다.

의료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

의료인에게는 안정적 병원 운영을, 의료소비자에게는 질 높은 의료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투자개방병원이 현 정부에서 주목받는 것은 다름 아닌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일 것이다.

노무현 정부 역시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식한바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였고 지금의 정부도 불황을 타개하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핵심 산업으로 의료를 인식하고 있다.

OECD 헬스데이터에 의하면, 2006년 OECD국가의 평균 의료서비스 시장규모는 GDP의 8.9% 수준이다. 반면 국내 의료 서비스 시장 규모는 GDP의 5.6%로 OECD국가 중 최하위에 해당한다. 이를 OECD 국가 평균 수준으로 키울 경우 1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의료서비스산업의 취업계수는 제조업의 4배로 그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투자개방병원’은 의료 서비스 선진화의 첫 걸음이자 '의료개방’에 대처하는 우리 병의원의 경쟁력 강화의 시발점이다. 시장 원리에 따라 자본, 경영, 기술의 최적 결합이 이루어지고 병원에 기업식 경영 체질을 만드는 것이 다양한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한 의료 상품을 제공하는 것이다.

최근 의료계에는 '의료관광’이라는 화두가 던져져 있다. 해외 환자들의 유인 알선 행위가 합법화 된 것인데, 위축되어있는 의료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단지 병의원의 수익 창출뿐만 아니라 전문 코디네이터, 메디컬 투어 컨시어지 등의 인력 양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있다.

미국 미네소타 주의 로체스터에 있는 메이요 클리닉의 경우, 병원과 호텔의 혼합 형태로 도시 인구의 절반이 메이요 클리닉 또는 메이요 유관 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인구 7만의 작은 도시지만 이곳은 세계 각국 왕족과 거부는 물론 유명 인사들이 단골로 찾는 곳이 되었고 그 작은 시골 마을에 국제공항까지 생겨났다.

세계 수준의 의료 기술을 지금부터라도 국부 창출에 기여한다는 취지의 의료관광은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고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기 부양에 거는 기대 또한 크다. 하지만, 여전히 영세한 우리의 현실 속에서 보폭을 넓히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진료 서비스의 양과 질을 개선한다는 것은 시설 및 규모의 확장, 즉 투자가 선행되어야 하고 이는 개인의 자본력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유입 없이는 세계인에게 주목받는 의료 관광국가, 대한민국은 사상누각의 위험성도 없지 않다. 의료관광의 빅 3라 할 수 있는 태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투자개방병원이 본격화 된 직후부터 의료관광국가로의 면모를 다지며 지금의 의료관광대국으로서의 도약이 가능했다.

우리는 수년간 '영리 병원’이라는 잘못 된 용어 사용에서 오는 오해로 수없이 충돌하였다. 그것은 오해를 넘어 이념의 대립을 초래하였고 그로 인해 막대한 국가적 손실을 보았다.

'투자개방병원’은 의료 서비스 선진화의 첫 걸음이자 머지않은 장래에 대두될 '의료개방’에 대처하는 우리 병의원의 경쟁력 강화의 시발점이다. 시장 원리에 따라 자본, 경영, 기술의 최적 결합이 이루어지고 병원에 기업식 경영 체질을 만드는 것이 다양한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한 의료 상품을 제공하는 것이다. 나아가 병원은 충실한 수익과 투병한 회계를 통해 세수를 창출에도 기여 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투자개방병원 허용에 대한 갑론을박의 날을 세울 때가 아니다. 10년 후 나와 후손들이 무엇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찾아야 할 때이다. 그 답은 의료서비스 산업의 선진화로 귀결될 것이며 세계 의료 4강의 신화로 나타날 것이다. 투자개방병원이 바로 지금 절실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

저자소개: 박인출 회장은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1992년 예치과 창립했으며, 현재 70개 예 네트워크 (치과, 한의원, 성형외과) 대표이자 의료경영지원회사인 메디파트너㈜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네트워크병의원들의 협의체인 대한네트워크병의원협회의 초대회장을 맡고 있으며 (사)코리아의료관광협회 초대 회장으로 국제의료서비스 및 의료서비스선진화에 앞장서고 있다. 저서에는 '병원을 경영하라’, '환자도 고객이다’, 'Ye류 치과마케팅’ 등이 있다.

박인출 / 대한네트워크병의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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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적극적으로 기업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지난 외환위기 이후 또 다시 정부주도로 기업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부실에 빠진 기업들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주도의 기업구조조정은 정부간섭을 통해 시장의 조정과정을 왜곡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정부가 부실기업의 선별과정에 개입하겠다고 한다면 정부는 원칙만을 세우고 기업구조조정은 이해당사자들에게 맡겨야 한다.

세상이 참으로 어수선하다. 금융위기에다 신종 독감의 발병이 세계를 위협한다. 이 둘은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모두 미국과 그 인근 지역이 발원지이며 그것의 전염 속도가 아주 빨라 즉각 범지구적 문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한국도 그 피해 권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신속한 대응의 결과인지 모르지만 우리의 경우 이를 점차 극복해 가고 있다고들 한다. 다행한 일이다. 그렇지만 아직 마음 놓고 있어도 될 형편은 전혀 못 된다. 언제 그 불씨가 다시 지펴질지 모르며 그것이 모르핀 같은 진통제로 일시적 기분 좋은 상태에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적극적 기업구조조정 추진의 명분

그래서 대통령까지 나서서 전 경제인들에게 그것의 경계심을 풀지 말기를 당부하였다. 그러면서 기업의 구조조정을 서둘러 완수하도록 재촉하였다. 이에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채권은행에게 책임을 묻겠다면서 구조조정 과정에 일일이 개입할 태세이며 금융위원회도 공적자금 관리위원회를 오는 7월에 구성하여 부실한 기업과 금융기관에 투입될 공적 자금을 관리할 예정이다.

정부가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명분은 … 채권단 은행이 손실 부담 때문에 부실기업의 퇴출에 소극적이며, … 한 곳이 무너지면 다른 곳도 연쇄적으로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명분은 단순하다. 채권단 은행이 손실 부담 때문에 부실기업의 퇴출에 소극적이며, 경기가 점차 회복 국면으로 접어드는 지금 은행들은 더욱 소극적이 될 것이 분명하다. 오늘날 분업경제는 매우 심화되어 거의 모든 기업이 서로 얽혀 있어 한 곳이 무너지면 다른 곳도 연쇄적으로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지금의 부실기업이 수면 아래로 숨어버리게 되면 그것이 언제 한국경제 붕괴의 뇌관으로 자리 잡을지 모른다. 따라서 썩은 부위를 신속하고 과감하게 도려내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썩은 부위뿐만 아니라 섞을 우려가 있는 기업까지 정리해야 한다.

구조조정은 이해당사자의 문제일 뿐이다

정부의 이러한 숭고한 동기는 많은 식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모두 한국 경제를 걱정한다고 하니 이에 토 달기도 마땅치 않다. 그런데 왜 그대로 내버려 두면 시장에서 기업의 구조조정이 일어나지 않는가? 구조조정이 반드시 선(善)인가? 돈을 빌려준 채권단과 돈을 갚아야 할 기업들은 각자 자신의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이 둘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기에 손을 놓고 있는가? 이것은 누구나 한번쯤 품어 볼 수 있는 의문이다.

그 이유를 찾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당신에게 돈을 빌린 사람이 그 돈을 제때에 갚지 않는다고, 성질대로 법에 의존하겠는가? 당신의 궁극적인 바람은 어쨌든 돈을 받아내는 일이지 채무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돈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빌려준 자의 재무 상황을 악화시켜 자신의 신용도를 떨어뜨리게 된다.

[채권자는] 어쨌든 돈을 받아내는 일이지 채무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돈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빌려준 자의 재무 상황을 악화시켜 자신의 신용도를 떨어뜨리게 된다. 그래서 채권단 은행은 주저주저하는 것이다. … 그러므로 봄에 씨앗을 뿌려 여름 내내 걱정하며 지켜본 주인보다 제3자가 그것의 생육에 대해 더 잘 안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래서 채권단 은행은 주저주저하는 것이다. 부실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 경영을 정상화 한다면 원리금을 받을 수 있으며, 다시 경제가 회복될 기미가 보인다니 더욱 이런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므로 봄에 씨앗을 뿌려 여름 내내 걱정하며 지켜본 주인보다 제3자가 그것의 생육에 대해 더 잘 안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주인은 그렇지 않다고 또는 좀 더 기다려 보겠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이가 나서서 썩었다고 또는 썩을 가능성이 있다고 강압적으로 잘라내 버리는 것이 사리에 맞는 일인가? 만약 그 싹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생기를 얻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정부는 이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경제 회복의 기미가 한계 기업들을 수면 아래로 숨게 한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이들 기업을 구조조정 없이 되살릴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한번 부실이 영원한 부실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생각인가?

기업구조조정 지연 이유는 공적자금 때문

구조조정 지연의 이유가 정부의 공적자금 그 자체에 있다는 지적도 정부는 되새겨 들어야 한다. 기업 또는 채권단은 이 지원책을 가능한 자기 쪽에 유리하도록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정부는 공적자금을 통해 한계 기업을 퇴출시키고 기업의 부실 부분을 과감히 털어내기를 바라나, 기업의 목적은 공적자금을 획득하고 퇴출 기업의 명단에 올라가지 않는 것이다.

이 때 기업은 항상 청산 가치보다 공적자금을 통한 존속 가치가 높다고 주장하며 경영정상화 방안도 조직 구성원을 최대한 다치지 않는 방향에 겉만 번지르르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물밑 정치적 거래가 활발히 일어날 개연성도 있다. 채권단도 지금 청산하는 것보다 정부의 지원으로 부실기업을 살려놓는 것이 최소한 그 지원책만큼 유리할 것이다. 기업이나 은행 모두 정부의 공적자금을 쳐다보고 있는 셈이다.

구조조정 지연의 이유가 정부의 공적자금 그 자체에 있다. … 기업 또는 채권단은 이 지원책을 가능한 자기 쪽에 유리하도록 활용하고자 할 것이다. 정부는 공적자금을 통해 한계 기업을 퇴출시키고 기업의 부실 부분을 과감히 털어내기를 바라나, 기업의 목적은 공적자금을 획득하고 퇴출 기업의 명단에 올라가지 않는 것이다.

이를 기업이나 은행의 도덕적 해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마냥 도덕적이고 윤리적 잣대로 비난만 할 수 없다. 공적자금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이런 행위가 나오는 것이며, 정부의 기업회생 가능성의 선별 과정이 도덕적으로 마냥 깨끗하고 실수가 없다고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분명 억울한 기업이 나올 수 있고 뒤에 숨어서 돈 잔치를 하는 기업이나 은행도 있을 수 있다. 더욱이 그 돈이 어떤 돈인가? 채권, 채무 당사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열심히 살아가는 일반 개인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아닌가?

정부 개입은 시장의 조정과정을 왜곡시킨다

기업의 사회적 의미는 혁신의 주체로서 또는 윤리적인 책무의 수행자로 인식되곤 한다. 그러나 기업 본연의 임무는 혁신도 윤리적 책무 수행도 아닌 조정자로서의 역할이다. 여기에는 기업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생산량과 가격의 조정뿐 아니라 직장 폐쇄와 새로운 업종으로의 전환과 확장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근본적으로 이것이 원활해야만 시장의 역동성과 혁신을 기대할 수 있다.

기업이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완수한다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의미 이전에 그 기업이 시장에서 살아남고 성공하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 기업은 시장의 움직임에 대한 예측을 가능한 정확히 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개입하면 기업은 시장의 움직임에 대한 예측보다 정부의 움직임에만 관심을 갖게 된다. 이 경우 기업으로부터 조정자로서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다.

실물 경제가 어려워지게 되면, 금융권은 자본 손실을 줄이기 위해 기업에게 관행적이었던 대출 기한을 연기하지 않으려 할 것이며 대출 심사도 까다로워지고 미래의 불확실성 증가로 인한 시간선호율 즉 이자율도 높아지게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한계 기업은 자연히 시장 압력에 견디지 못하여 자구책을 강구하든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시장의 조정 과정이다.

기업이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완수한다는 것은 …기업이 시장에서 살아남고 성공하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 기업은 시장의 움직임에 대한 예측을 가능한 정확히 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개입하면 기업은 시장의 움직임에 대한 예측보다 정부의 움직임에만 관심을 갖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 우려되는 대량 실업의 문제와 경기침체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지닐 수는 있어도 시장의 문제는 아니다. 시장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건강해지고 우리가 기대하는 혁신과 역동적인 진보가 시장에서 일어나게 된다. 무엇보다 금융권을 포함한 모든 기업들은 신속한 조정으로 자본 손실을 줄여주어 재무 건전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자연스러운 이러한 구조조정 과정을 거부하고 이제 와서야 환부를 도려내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겠다니 본말이 전도되었다. 더욱이 정부는 은행으로 하여금 저리(低利)의 자금 대출을 강요하고 중소기업에 적극적으로 융자해준 은행에 대해서는 해당 중소기업의 부실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하니 세상의 순리를 정부가 거스르는 것이다.

공적자금에 의한 구조조정의 원칙

금융위기로 인해 금융 시스템의 개혁을 주장하고 탐욕이라는 이름으로 금융권 전체를 질타하고 있다. 화폐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금본위제도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보면 현행 은행 시스템의 신용 창출 과정이 작금의 경제위기만을 초래한 것은 아니다. 오늘의 부와 번영을 가져온 것도 분명하다.

신용 대출은 미래에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자의 꿈을 현실화 해주었고 기업은 금융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 죽으라고 일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것은 신용창출 과정과 계약의 엄격한 준수가 기업가로 하여금 기업가 정신을 투철하게 해주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금융기관의 건전성 확보라는 이유로 금융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 있다.

신용이란 것이 다름 아니라 장부에만 존재하고 실질 가치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빈 공간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빚의 연결 고리 한두 개가 잘못되면 그 허한 공간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그런 가능성은 유사 이래 어느 시대 어는 곳에서도 존재하였다. 현대 경제에서 그 가능성은 정부의 다양한 시장 개입에 의해 더 높아졌다. 미국의 주택시장 붕괴 역시 정부의 지나친 저금리 정책과 지역 균형발전 정책에 의한바가 크다고 하지 않는가?

금융 시스템에 의한 신용창출과 이윤창출의 과정에 잘못된 정보를 넣는 정부의 개입은 가능한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은행은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할 수도 있으며 기업은 대출금이 연기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구조조정도 이해당사자들에게 맡겨 놓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시장의 이치와 번영의 길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공적자금으로 기업의 선별과정에 개입하겠다고 한다면 정부는 원칙만을 수립하고 구조조정은 이해당사자에 의해 주도되도록 해야 한다. 일반 원칙은 투명하고 분명해야 하며 복잡하지 않고 예외 조항을 가급적 줄여야 한다. 그 원칙은 공적자금 지원에 관한 것으로 한정해야 하고, 채무재조정은 전적으로 이해당사자와 사법부의 판단에 일임해야 한다. ■

저자소개: 배진영 교수는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인제대학교 국제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경제질서의 이론과 정책’이 있으며, 주요 연구 분야는 시장경제와 경제정책 등 이다.

배진영 / 인제대 국제경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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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양도세 중과를 폐지하겠다던 정책추진이 실패했다. 당정 엇박자에 이어 국회처리과정에서도 부동산정책은 중심을 못 잡고 정치논리에 휘둘렸고, 양도세 중과폐지는 내년 말까지 한시적 폐지라는 누더기 입법이 되고 말았다. 부동산 정책의 목표는 국민들이 쾌적한 환경에 여유롭게 살아가도록 주거의 질을 높여 국민의 삶에 기여하는 것이다. 올바른 부동산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 방향과 목표를 재검토하고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양도소득세 중과폐지가 당·정 간 엇박자에 이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의결과정에서도 오락가락하다 결국 '누더기’라는 오명까지 얻게 되었다. 재건축 규제완화, 송파신도시 건설,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 등 주요 현안도 갈팡질팡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래가지고서는 정부를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혼란에 빠진 부동산 정책

국회 본회의 논의과정에서 그 내용이 다시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정부가 발표한 양도세 중과폐지 방침을 믿고 거래한 사람들은 낭패를 보게 됐다. 정부도 신뢰성에 상처를 입었다는 점에서 반성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가뜩이나 얼어붙은 시장에서 거래위축을 막기 위해 양도세 중과폐지를 소급해서 적용하겠다던 정부의 입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국회처리를 당연시하다 생긴 해프닝임에 분명하다.

부동산 정책이 혼선을 거듭하다 보니 본질적 내용의 변화보다는 절충안에 그치고 있다. 이는 부동산정책이 그동안 혼란에 빠진 이유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데서 비롯되고 있다.

최근 논쟁에서도 여당은 '부자감세’라는 야당의 정치공세가 부담이고, 부동산 경기가 다소 침체를 벗어난 것이 아닌가하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투기열풍이 재연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추가됐다. 특정지역의 아파트가 얼마 올랐다는 뉴스가 정부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일이 이번에도 반복된 것이다. 이런 현상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 정부 들어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부동산 가격은 늘 변한다. 시장에서 가격변화가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럼에도 가격변동에 정책이 흔들리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다. … 가격변화에 일희일비하다가는 부동산정책은 그 본질과 방향을 잃게 된다.

부동산 가격은 늘 변한다. 시장에서 가격변화가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럼에도 가격변동에 정책이 흔들리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다. 마치 몸통이 꼬리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꼬리에 몸통이 휘둘리는 꼴이다. 가격변화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다가는 부동산정책은 그 본질과 방향을 잃게 된다.

사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부동산 시장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다. 원칙을 분명히 세우고 일관된 정책실행 의지를 보여야 할 때다. 지금은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겠다거나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식의 잘못된 정책목표를 내세운 투기대책들을 원점에서 다시 평가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제거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그동안 부동산 시장을 왜곡시키고 거래를 위축시켜온 악성규제를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부동산 시장의 정상화를 위해 취해야할 선결과제인 셈이다.

이러한 노력과 함께 부동산정책이 올바로 추진될 수 있도록 그 방향을 제대로 세우는 일에도 나서야 한다. 투기대책이나 남발해서는 국민의 삶에 기여하기 어렵다. 국민의 주거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부동산정책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된 정책방향과 정책목표를 재검토해야 한다.

1가구 1주택이라는 헛된 망상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는 부동산에서 시작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금융시장의 파생상품에 끼어들면서 금융위기를 야기한 것이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을 살펴보면, 자가주택소유비율을 높이려 했던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화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 신용이 낮은 사람들도 집 한 채씩 갖도록 도와주자는 화려한 구호가 실제로 정책으로 현실화되면서 세계경제를 파탄으로 몰아가는 블랙홀을 만든 것이다.

미국 정부는 신용이 낮은 사람들에게 쉽게 돈을 빌려주도록 무한보증에 나섰고, 부실 우려가 큰 모기지를 취급하도록 은행들을 독려했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갈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가격이 내려가면서 정부의 대출지원은 신용 낮은 사람들에게 재앙이 되었다. 부동산이 비록 낮은 수준의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이기는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결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대출로 집을 산 저신용자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모기지를 상품에 끼워 넣은 파생상품은 금융시장을 마비시켰다.

정부가 잘못된 정책목표를 강하게 추진할수록 시장은 더 큰 보복을 한다. 현상만 보고 본질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시장이 실패한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이번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위기는 전형적인 정부실패이다.

정부가 잘못된 정책목표를 강하게 추진할수록 시장은 더 큰 보복을 한다. 현상만 보고 본질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시장이 실패한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이번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위기는 전형적인 정부실패인 셈이다. 정부가 올바른 정책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이다.

미국에 자가주택소유 촉진이라는 잘못된 정책이 있었다면, 우리나라에는 양도세중과라는 잘못된 정책이 있다. 두 정책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1가구 1주택을 이상향으로 삼는 정책들이다. 1가구 1주택 정책 가운데, 다른 선진국에는 없는 극단적인 처방인 양도세 중과가 우리나라에서 호응을 얻은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사회주의 평등세력에 휘둘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택보급률의 함정

올바른 부동산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려면 올바른 정책목표를 세워야 하고, 그러려면 거기에 적합한 정책변수를 살펴야 한다. 부동산 분야에서 정부가 기존에 내세워 온 정책변수는 주택보급률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10명이 1가구로 1채의 집에서 살고 있는 경우와 10명이 10채의 집에서 각자 살고 있는 경우를 비교해 보자. 주택보급률은 똑 같이 100%이지만, 속사정은 전혀 다르다. 10인 가족이 한 집에 살고 있고, 주택이 비좁고 열악한 주거환경이라면 아무리 주택보급률 100%라고 하더라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주택보급률은 실제로 아무런 의미도 제공하지 못하는 허망한 지표일 뿐이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신주택보급률도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는 이제 산업화를 거치면서 가구당 인구수가 줄고 있다. … 출산율 하락으로 인해 인구가 장기적으로 감소한다고 하지만, 가구 수의 증가를 고려하여야 올바른 부동산공급정책이 세워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산업화를 거치면서 가구당 인구수가 줄고 있다. 실제로 세계적인 대도시에서 가구당 인구수는 줄고, 1인가구의 비중은 높아지고 있다. 출산율 하락으로 인해 인구가 장기적으로 감소한다고 하지만, 가구수의 증가를 고려하여야 올바른 부동산공급정책이 세워질 수 있다.

주택보급률의 허망한 측면은 이미 외환위기 때도 경험했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집을 줄이고 전세도 줄였다. 심지어 분가했던 가족이 다시 한 집에 모여 살게 되는 일도 흔했다. 그러다 보니 집은 남았고, 가격은 하락했다. 일시적으로 가구 수는 줄어들고 남아도는 집으로 인해 주택 공급이 여유 있는 것으로 비춰졌지만, 경제가 다시 살아나면서 집에 대한 수요는 급속히 커졌다.

왜 주택 수와 주거 면적이 중요한가

부동산의 양적인 측면에서 공급을 잘 보여주는 데이터가 있다. 바로 인구 1천 명당 주택 수이다. 우리나라 1천 명당 주택 수는 1995년 214.5호, 2000년 248.7호, 2005년 279.7호로 늘어왔다. 하지만 미국(427가구), 일본(423가구), 영국(417가구) 등 선진국들이 400호 이상인 것을 고려한다면 양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주택보급률보다는 1천 명당 주택수를 정책변수로 사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나라의 부동산 정책이 취해야할 정책목표는 분명하다. 국민이 얼마나 쾌적한 주거공간에서 얼마나 여유롭게 살아가느냐이다. 이러한 질적인 주거환경을 알려주는 지표가 바로 1인당 주거 면적이다.

부동산 정책이 취해야할 정책목표는 … 국민이 얼마나 쾌적한 주거공간에서 얼마나 여유롭게 살아가느냐이다. 이러한 질적인 주거환경을 알려주는 지표가 바로 1인당 주거 면적이다.

우리나라 1인당 주거면적은 1980년 9.6m2(2.9평), 1985년 11.6m2(3.5평), 1990년 14.2m2(4.3평), 1995년 17.2m2(5.2평), 2000년 20.2m2(6.1평), 2005년 22.8m2(6.9평)로 늘어 왔다. 하지만 2007년 26.2m2(7.9평)로 여전히 미국(68m2), 일본(36m2), 영국(38m2)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삶의 질을 고려하는 통계인 1인당 주거 면적이 어느 수준인지를 따지는 일은 생각보다 의미가 크며, 실질적인 부동산 정책이 지향해야할 핵심 내용이다. 실제로 1인당 주거 면적이 넓을수록 국민의 삶은 풍요로워지고 향상될 수 있다.

올바른 정책을 위한 정책목표를 바로 세워야

부동산정책의 방향을 올바로 잡아야 국민의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그 핵심은 1천 명당 주택수를 선진국 수준으로 늘리는 일이며, 1인당 주거 면적이 최소 33m2(10평)가 되도록 주거공간을 넓혀 주는 일이다.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통계를 참고하여야 효과적인 부동산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 그래서 부동산 정책의 목표가 국민들의 주거환경과 삶의 질을 반영하도록 개선하는 일은 중요하면서도 시급한 과제이다. 또한 투기대책으로 왜곡된 시장을 정상화하는 노력도 선행과제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

저자소개: 최승노 박사는 자유기업원 대외협력실장으로 재직 중이며, 공개련 운영위원,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이사, 미래한국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작은정부, 경제자유지수, 세금해방일 등이며, 저서로는 '대규모기업집단’, '지방분권과 지방의 시장친화성' 등이 있다.

최승노 / 자유기업원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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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경제위기에 직면하면서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을 확대하는 등 진력을 다하고 있다. 작금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재정지출 확대가 필요한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나타날 부작용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정부가 세금을 덜 쓰고도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을 부양하는 최선의 방법은 재정지출 확대보다는 규제완화다. 규제완화를 통해 국민의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경제제도를 개선하면, 지금의 위기 극복에도 도움이 되지만 위기국면이 지난 이후에도 큰 부작용 없이 경제 재도약에 지속적인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재정확대는 경제회생을 위한 임시방편의 차선책

세계 모든 나라는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자국의 경기부양을 위해 진력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미국의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따른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국제금융시장이 꽁꽁 얼면서 세계 교역량이 감소하는 등 경제가 빠른 속도로 침체되면서 산업 활동은 위축되고 실업률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미국, EU,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경기부양을 위해 막대한 재정지출을 늘리는 한편, 자국의 산업을 회생시키기 위한 세제 지원 등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들어 금융 불안은 다소 진정되어 가는 듯이 보이지만 실물경제는 이와 관계없이 상당기간 침체국면에서 헤어나기 어렵다는 전망이 다수설이다. 상황이 심각한 만큼 각국의 재정적자 지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금 4월 국회에서는 28.9조원에 달하는 사상최대의 추가경정예산을 놓고 여야가 한창 공방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정부가 징수한 세금을 훨씬 초과하는 재정을 지출하고 화폐발행을 늘려 유동성을 확대하면, 당장의 고통은 줄일 수 있어도 그러한 정책은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국민과 경제에 또 다른 고통을 초래할 수 있다.

지금은 모두가 거시경제정책에서 케인즈안(Keynesian)인 것처럼 보인다.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재정적자를 무릅쓰고 지출을 늘리고 돈(유동성)을 풀어 유효수요를 진작해야 한다는 케인즈 이론에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정부가 징수한 세금을 훨씬 초과하는 재정을 지출하고 화폐발행을 늘려 유동성을 확대하면, 당장의 고통은 줄일 수 있어도 그러한 정책은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국민과 경제에 또 다른 고통을 초래할 수 있다.

지금의 고통을 다음 세대의 고통으로 이연시키고, 정부의 팽창에 따라 시장경제의 위축을 초래할 위험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우리 모두가 케인즈 이론의 단기적 효과만 보고 장기적 부작용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그만큼 진행되는 경기침체의 골이 깊고 심각하기 때문에 당장에 효과가 있다면 물불 가릴 여유가 없다는 것이겠으나 정부팽창만이 경제위기 극복의 전부이자 최선의 수단인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이다.

최선의 근본처방은 규제완화 등 경제제도의 개선

유례없는 경기 침체기인 만큼 케인즈 처방도 어느 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세금을 덜 쓰고도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을 부양하는 최선의 방법은 규제완화이다. 규제완화를 통해 국민의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경제제도를 개선하면, 지금의 위기 극복에도 도움이 되지만 위기국면이 지난 이후에도 큰 부작용 없이 경제 재도약에 지속적인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경제제도의 개선은 경제회생을 위한 근본처방일 뿐 아니라 다른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가 두 가지 점에서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처방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첫째,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우리나라 규제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하여 높고 그 체계가 매우 복잡다단해서 제도개선을 통한 추가 성장의 기회가 그만큼 크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금융, 교육, 의료, 관광 등으로 구성된 서비스 산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서비스 산업은 부가가치와 일자리 창출효과도 높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규모가 영세하고 분절화되어 있어 선진국과 비교할 때 제 역할을 다 못하고 있다.

우리의 서비스 산업은, 생산성은 제조업의 40%에 불과하고,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57.6%로서 미국의 76.5%는 물론이고 OECD 평균치 71.9%에 훨씬 못 미친다. 경쟁력이 취약하다 보니 대외거래에서 서비스 수지는 매년 적자를 기록하고 2007년에는 그 적자폭이 200억 달러에 육박하기도 했다.

정부가 세금을 덜 쓰고도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을 부양하는 최선의 방법은 규제완화이다. 규제완화를 통해 국민의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경제제도를 개선하면, 지금의 위기 극복에도 도움이 되지만 위기국면이 지난 이후에도 큰 부작용 없이 경제 재도약에 지속적인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이 이렇게 된 데에는 다른 원인도 있겠지만 근본적 이유는, 서비스 산업의 각 업종에 종사하는 직종별 전문가 단체가 공익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경쟁과 산업화를 거부하고 진입 및 영업규제를 자초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역 이기주의에 포획된 의료, 교육 등 서비스 산업의 각종 규제를 풀고 시장원리를 도입하게 되면 국민의 혈세를 축내지 않고도 추가 성장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제도개선을 통해 추가 성장이 가능한 또 다른 이유는, 이명박 정부의 개혁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부터 기업 친화적(business-friendly) 제도개혁을 강조할 만큼 우리나라 규제가 글로벌 기준을 넘어 과도하고 복잡하다는 문제점을 잘 알고 있고, 취임 이후에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중심으로 창업절차에서부터 토지이용규제, 수도권 규제 완화에 이르기까지 규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정부 부처도 소관 법령 중에 시장원리에 맞지 않거나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큰 부분에 대한 개혁을 추진 중이다. 예를 들면, 기획재정부는 법인세율을 경쟁국 수준으로 낮춘데 이어 최근에는 서비스 산업의 선진화 방안을 마련 중이며, 공정위는 대기업 역차별 규제의 상징인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고 지주회사의 각종 행위제한을 완화하는 법률 개정안을, 금융위에서는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해 금산분리를 일부 완화하는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환경노동부는 비정규직보호법으로 인한 대량해고를 방지하기 위한 법률 개정안 등을 발의해 놓은 상태이다.

경제활동을 구속하는 제도개혁은 국회가 앞장서야

그러나 아무리 필요하고 시급한 제도개혁이라 해도 행정부 혼자 열심히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경제를 규율하는 제도는 법으로 성문화되어 있고 이들 법률의 개폐는 국회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이다. 행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글로벌 기준에 맞지 않는 규제를 개혁하기 위해 발의한 법률 개정안이라 해도 당연히 국회에서 심의, 의결하는 절차를 거쳐 확정해야 한다. 아니, 정상적인 경우라면 경제활동을 구속하는 경제제도를 바로잡고 그럼으로써 경제제도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개혁 법안은 국회의원이 주도적으로 발의해야 할 일이다. 삼권분립의 원칙상 행정부는 규제 집행의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에 행정부처가 자기 스스로 권한을 줄이는 규제완화 추진에 미온적일 수밖에 없는 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제도개혁은 반드시 법률 개폐과정을 수반하기 때문에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다른 나라에 뒤떨어진 경제제도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일은 행정부가 아닌 국회의 몫이자 책임이다. 그런데 지금은, 행정부가 발의한 개혁 법안마저 국회에서 지척되는 경우가 있어 문제이다. 금년 7월 이전에 비정규직 해고 대란이 예상되는 마당에 이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정부가 발의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법안심사소위도 구성하지 않은 상태이다. 다른 나라보다 과도하여 편법·탈법의 부작용을 낳고 지하경제를 조장하는 상속 및 증여세제를 합리화하기 위해 작년 11월에 상정된 상·증세 일부개정 법률안도 추가적인 논의의 흔적이 없다. 또한 대기업들의 지주회사 전환을 유도하면서도 다른 나라에 없는 행위규제를 두어 생기는 문제를 줄이기 위하여 지주회사 관련 규제를 일부 완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지난 2월 국회에서 4월에 처리하기로 했는데, 이 또한 연기될 전망이다.

1993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던 더글라스 노스(D. North) 교수는 그 많은 시장 중에서 가장 불완전한 시장은 정치시장이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시장실패를 문제 삼아 규제법안을 만드는 정치과정이 진행되는 그 시장의 실패가 가장 심각하다는 사실은 불행한 역설이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까닭은 정치인이란 본질적으로 국민경제의 장기적인 발전보다는 눈앞에 닥친 재선과 지역구민의 여론에 더 많이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위기 상황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자율보다는 국가 통제를, 경쟁촉진보다는 경제력집중 억제를 중시해온 탓에 규제개혁을 통한 추가성장의 기회가 다른 나라보다 큰 편이다. 이러한 점들을 잘 헤아려서 우리 국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그리고 그 어떤 다른 나라의 의회보다 더 효율적으로 기능함으로써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을 구속하는 경제제도의 개혁에 앞장서고 그럼으로써 경제회생에 기여하기를 기대해본다.

저자소개: 황인학 산업본부장은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기업정책의 현안과 쟁점’, '재벌구조의 특징과 쟁점’, '출자총액 재규제에 대한 비판적 검토’ 외 다수가 있다.

황인학 /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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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8일 ~ 5월 22일 까지 보도된 방송 3사의 시장경제 뉴스를 일일브리핑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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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04일 ~ 5월 08일 까지 보도된 방송 3사의 시장경제 뉴스를 일일브리핑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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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간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 성적이 공개됐다. 언 듯 보면 공개하지 않았던 수능성적을 공개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성적 공개하게 된 배경을 보면 눈 가리고 아옹 하는 식이다. 그리고 공개대상과 범위도 매우 제한적이며, 개인별 학교별로 전면공개하지도 않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교육수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무한 경쟁사회에서 언제까지 교육당국은 간섭과 통제를 일삼을 것인가? 교과부가 견지해야 할 태도는 정보공개의 장점을 살리고,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솔직히 받아들여 개선하는 노력이다.

지난 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최근 5년간(2005∼2009학년도)의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을 16개 시·도별, 232개 시·군·구별로 분석해 발표한 바 있다. 수능 성적을 공개하지 않는 것을 마치 국가 1급 기밀인양 취급하여 그 정보를 꼭꼭 숨겨오던 교육당국의 기존 입장에 비추어 보면, 진일보한 처사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수능성적 공개 배경

그러나 이나마 공개하게 된 배경은 교육부의 교육적 소신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작년 9월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 조전혁 의원이 '기습적으로’ 정보 공개 요청한 데 대하여 장관이 '얼떨결’에 “사회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아 발언한 것에 대한 조치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기밀처럼 여겨졌던 수능 비공개 원칙을 사수(?)하느라 교과부 관리들 사이에선 허겁지겁 수습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수능 점수의 공개 범위와 방식을 놓고 교과부 관리들 사이에선 논란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결과 교과부가 지난 달 내놓은 수능성적공개는 16개 시·도별, 232개 시·군·구 단위로 공개하되 국회의원만 찾아가 열람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정해놓고 보니, 국회의원들이 열람하고 그 자료를 유출시킬 경우 공개하는 것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것을 예상하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내세워 그것도 '전문가 세미나’ 형식으로 공개하게 된 것이 이번 수능 '짝퉁’ 공개의 전모이다.

[수능성적을] 공개하게 된 배경은 교육부의 교육적 소신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작년 9월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 '기습적으로’ 정보 공개 요청한 데 대하여 장관이 '얼떨결’에 “사회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아 발언한 것에 대한 조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은 교육당국의 조치는 그 발상이나 방식에 있어서 매우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이번 조치는 수능 시험의 일차적 이해당사자인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들에 대한 감사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의 눈치 보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작년 국회에서 장관의 발언에 대한 관료들의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바로 이를 입증하고 있다.

정작 수능 원자료 점수가 필요한 사람은 수험생과 학부모, 그리고 이들의 입시지도를 하는 일선학교 선생님들이다. 말로는 교육소비자 위주의 행정을 운운하면서 사실은 이들을 전적으로 배제하고 외면하는 정책을 견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교육당국의 이러한 행태가 과거 60∼70년대의 밀실행정, 탁상행정의 재판이라 하면 교육당국이 뭐라 답할지 궁금하다.

둘째, 이러한 과정을 거친 결과로 공개 범위와 방식이 엉성하기 짝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분석대상은 일반계 고등학교 재학생으로 한정하였다. 수능 시험을 치르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이들만을 대상으로 공개한 이유는 무엇인가? 점수 공개도 언어, 수리, 외국어 영역만으로 한정했다고 한다. 그것도 1∼4등급(40%)을 1그룹, 5∼6등급(37%)을 2그룹, 7∼9등급(23%)을 3그룹으로 분류하여 발표하였다. 그나마 각 그룹의 분포 비율을 16개 시·도별로만 공개하고, 시·군·구별로는 공개하지도 않았다. 

수능성적공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다

교육당국의 이 조치도 한 마디로 학생·학부모와 일반인을 무시하는 처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 우선 3개 그룹으로 나눈 근거가 무엇인가? 이른바 1그룹이라고 하는 40%상위 그룹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필자의 학식이 미흡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교육학적 근거를 찾아볼 수도 없고 추론해낼 수가 없다. 공개는 해야 하겠고, 공개해서 일어날 파장을 생각하니 두루뭉실하게 묶어서 하자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여기서 '두루뭉실’하다는 것은 원만하게 해결했다는 것이 아니다. 교육당국자들이야 자기네들 사이에서 '원만하게’ 넘어간 것이라고 자평할 수도 있겠지만, 수능시험을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교육평가도구가 갖는 변별력을 원천적으로 무시하고 수능시험 당사자들과 세금을 내는 일반인들을 현혹시킨 것에 불과한 것이다. '혹세무민(惑世誣民)’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사용하는 말인 듯하다. '혹세무민’에다가 수능시험 당사자와 일반국민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해도 그들이 어떤 변명을 늘어놓을지 궁금하다.

수능 시험 결과를 개인별, 학교별로 전면 공개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그릇된 '평준화 제도의 근간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필자가 아는 바로는, 교과부 교육담당 고위관료의 상당수가 국가가 지급하는 장학금으로 외국의 유명대학에서 교육학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며, 이번 발표의 전위에 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서 내놓으라는 쟁쟁한 교육평가전문가가 모여 있는 전문기관이다. 이러한 고급 두뇌들이 모여서 내놓은 결과가 이 정도라면 그것은 수능 당사자와 일반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는 사실을 교묘하게 은폐하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높은 학식을 가진 교육 관료들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까? 그 이유는 자신들의 소신이라기보다는 좌파 눈치 보기와 그릇된 평등관념 때문이다. 왜 공개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짝퉁 공개’를 하게 되었는가를 살펴보자.

첫째, 수능 시험 결과를 개인별, 학교별로 공개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성적 공개에 따른 파장과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교과부의 '친절한’ 설명이 있었다고 보도되었다. 그러면 '성적 공개에 따른 파장과 충격’은 무엇인가? 그것은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여기는 '평준화’ 정책 때문이다. 평준화가 평등의 이상을 실현한다고 믿고 있는 일부 관료와 좌파들의 그릇된 이상이 이와 같은 이상한 성적공개를 가져온 것이다.

평준화는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평등을 실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중학교 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하지도 않는다. 기존에 이미 발표된 자료만 하더라도 서울시내 자치구별 우수대학 진학자 수가 지나친 편차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예컨대 서울대학교에 10명이내만이 진학하는 구(區)가 있는가 하면 이에 10배 이상 진학하는 자치구가 있다는 것은 평준화가 평등실현이 아니라 불평등을 조장하는 제도라는 것을 입증한다.

그리고 평준화 지역에서 중학생들의 사교육이 줄지 않는 것은 평준화가 중학교 교육 정상화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게다가 평준화 지역에서 사교육 수요가 많은 것은 여러 자료에 의하여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수능 시험 결과를 개인별, 학교별로 전면 공개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그릇된 '평준화 제도의 근간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수능 성적의 완전한 공개는 교육수요자의 교육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필요하다. 동시에 교육수요자에 대한 교육당국의 의무이다. 전면 공개의 당위성은 여기서 찾아진다.

둘째, '평준화 제도의 근간 유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좌파 정부에서 사용하던 이른바 '3불(不)정책’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요즈음 정권이 바꾸어 '3불정책’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정권이 바뀐 1년여 동안 '3불정책’에 대한 교육당국의 기본 입장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필자는 이 말 자체가 무엇이 '계명’처럼 여기면서 금지해야 할 '3불’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3불’ 중 하나가 '고교등급제’ 금지이다. 따라서 수능 성적을 학교별로 공개하면 학교 간의 등급이 매겨져 '3불’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마치 불가에서 말하는 보신(報身)·법신(法身)·화신(化身)의 '3불(三佛)’이라도 훼손되는 것처럼, 고교등급제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좌파들이 지어낸 이 말은 사실을 매우 호도하는 용어이다. 이 세상에 어디에 차이가 없는 존재가 있는가? 열심히 가르치는 학교가 있고, 이에 뒤처지는 학교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앞서는 학교를 더욱 앞서게 하고 뒤처지는 학교를 독려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니면 이들 간의 차이를 아예 묵살하고 무조건 덮어두는 것이 더 옳은 처사인지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주요 일간 신문들이 이번 '짝퉁 공개’를 보도하면서 제한된 정보 공개의 문제점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앞서가는 학교의 사정에 집중하는 것은 잘 하는 학교가 있고, 그렇지 못한 학교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을 알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보도하는 기자들이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는 않았지만, 각 학교 간의 등급이 있음을 보도한 것이다.

수능성적 전면 공개해야

이번과 같은 '짝퉁 공개’는 교육수요자와 일반국민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선만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원래 정보 공개가 가진 장점을 살리려면 이번과 같은 방식은 지양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정보공개 방식은 수백 억 원의 예산을 들이고 전(全) 국민적인 관심 속에서 치러지는 수능 시험에 대한 국가적 낭비이다. 그리고 이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직무 유기이다. 오직 정확한 정보 공개만이 혼선을 줄일 수 있다.

정확한 정보 공개는 혼선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수요를 만족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작년 봄 조전혁 의원에 의하여 공개된 각 학교별 전교조 가입 교사(조합원) 수는 큰 반향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많은 학부모로 하여금 해당 학교의 어느 교사가 전교조 가입 교사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증대시켰다. 이후 당국의 비협조와 전교조의 저항으로 극히 일부 학교의 전교조 가입 교사가 공개되었을 뿐이었지만, 여전히 이에 대한 일반인과 학부모의 궁금증은 여전히 살아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능 성적의 완전한 공개는 교육수요자의 교육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동시에 교육수요자에 대한 교육당국의 의무인 것이다. 전면 공개의 당위성은 여기서 찾아진다.

이번 '짝퉁공개’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교육당국의 기본적인 인식이 획기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까지 학식과 경륜이 많은 교육 관료가 왜 이렇게 끌려 다녔는가? 답은 좌파 눈치 보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항간에 나도는 청와대 핵심참모와 교육수뇌부에 대한 의구심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좌파 눈치 보기라는 인식을 불식시키려면, 먼저 평등에 대한 기본 전제와 평준화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요구된다. 그렇게 되면 좌파가 주장하는 논리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떳떳하게 교육문제를 대처해 갈 수 있다. 국제중학교 신입생추첨배정, 서울특별시 고교선택제(필자가 보기엔 이 역시 '짝퉁선택제’이지만) 등을 포함하여 좌파의 눈치를 본 사례가 이번만은 아니지만, 이제는 좌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일반국민들의 교육수요와 욕구를 직시하고, 올바른 교육정책의 방향 속에서 교육정보 공개를 해야 한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언제까지 교육당국은 간섭과 통제를 일삼을 것인가? 특히 주어진 권한을 사용한 간섭과 통제 속에서 은밀히 이루어지는 은폐와 규제를 언제까지 밀고 나갈 셈인가?  

따라서 교육당국이 수능 점수 문제와 관련하여 취해야 할 입장은 전면 공개에 있다. 개인별 점수는 개별 학생에게 원점수와 석차, 소속 학교에서의 위치(석차), 지역에서의 석차, 전국 석차와 함께 분포도 및 편차 등을 총점과 과목별로 공개하고, 학교별 점수는 지역 내에서의 석차와 전국 석차를 분포도, 편차 등을 학교평균점수와 과목별 평균 점수를 공개하여야 한다.

이와 아울러 시도별, 시군구별로 매년 변화된 점수도 공개하여 교육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전면 공개가 평준화나 기타 이유로 꺼린다면, 그것은 평준화가 잘못 되어 있다는 것을 자인(自認)하는 것이므로, 평준화도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평준화 정책이 잘 된 것이라고 정말로 확신한다면,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고 전면 공개하면 된다. 교육당국이 견지해야 할 태도는 공개의 원칙이 갖는 장점을 살리는 일, 즉 잘잘못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솔직히 받아들여 개선하는 노력이다. 매우 간단하면서 쉬운 일이다. ■

저자소개: 김정래 교수는 영국 University of Keele 대학원에서 교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부산교육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전교조 비평’, '서양교육사절요’ 외 다수가 있다.

김정래 / 부산교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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