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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가 예상보다 심각하자,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시장보다는 정부가 엄격히 규제하는 시스템이 더 낫다며 정부간섭을 촉구하고 있다. 그로 인해 나라마다 정부 몫이 늘어나고 시장의 몫은 눈에 띠게 줄어들고 있으며, 정부의 시장에 대한 간섭과 규제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자유를 위축시키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자본주의의 대안은 모두 자본주의보다 못하다. 청사진으로는 아무리 그럴 듯해도, 실제로 시행되면, 그런 대안들은 모두 정치적 압제/문화적 통제와 정체․경제적 빈곤을 낳는다.

갑작스럽게 닥친 이번 금융위기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 드러나자,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목소리들이 거세졌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되도록 삼가는 미국형 경제 체제가 문제를 드러냈다는 진단은 온건한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장을 정부가 엄격하게 규제하는 유럽 대륙의 경제 체제가 낫다는 의견을 스스럼없이 밝혔다. 심지어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았다는 진단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번 위기의 원인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런 진단들이 별다른 근거를 지니지 못했음이 드러난다. 그것들이 말해주는 것은 경제적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해 반감을 지닌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뿐이다.

복합적 요인에 의해 만들어진 위기

이번 위기처럼 큰 사건은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만들어진다. 두드러진 요인들은 미국 금융 기업들의 무리한 경영과 미국 정부의 거시경제적 실책이다. 이 둘이 결합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나왔다. 일차적 책임은 물론 ‘월 스트리트’로 불리는 미국 금융 기업들에게 돌아간다. 은행업은 예금주들의 단기 자금들을 모아 개인들과 기업들에 장기 대출하는 영업이다. 따라서 은행업은 본질적으로 불안한 영업 방식이고, 은행들은 늘 유동성에 마음을 써야 한다. 미국 금융 기업들은 거의 다 시장이 늘 유동적이라는 가정 아래서 행동했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오류다. 이미 수많은 공황들이 보여주었듯이, 한번 두려움이 퍼지면, 아무도 위험을 지지 않으려 해서, 유동성이 문득 사라진다.

근년에 오래 지속된 호황 속에서 위험한 투자들이 큰 보상을 받았다. 자연히, 모든 금융 기업들이 다투어 위험한 투자에 몰두했다. 파생 금융은 거래소도 없는 데, 모두 파생 금융 상품들을 팔고 사는 데 여념이 없었고, 몇 해 동안에 세계 경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파생 금융 상품들을 안게 되었다.

다른 편으로는, 미국 금융 기업들의 그런 위험한 행태를 부른 거시경제적 상황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국 중앙은행은 경기를 떠받치려고 금리를 너무 낮게 유지했다. 금리가 낮아 자금이 싸니, 미국 시민들은 빚을 얻어 소비를 늘리고 집을 많이 샀다. 거품이 꺼지자, 집을 담보로 잡고 자금을 빌려준 은행들이 큰 손실을 보았다. 그래서 자금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어 이번 위기가 나왔다.

경기가 좋을 때, 경제가 무리한다고 경기를 낮추는 정책을 쓰면, 거센 비난을 받는다. … 경기가 자연적으로 낮아져도, 경기를 되살리라는 압력을 받아 거의 언제나 금리를 낮추게 된다. 그래서 작은 몸살들로 끝났을 일이 이번처럼 큰 몸살이 된다.

이런 상황은 미국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부동산 거품은 거의 모든 나라들에서 나왔고,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것도 바로 그런 거품의 존재다. 이렇게 보면, 지금 세계 경제는 그 동안 무리한 까닭에 ‘몸살’을 앓는 셈이다. 자금이 워낙 싸니, 많은 사람들이 무리하게 빚을 내서 소비하고 집을 샀다. 그런 무리가 이번 몸살을 부른 것이다. 몸살은 괴롭지만 실은 더 큰 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만일 몸살이 나지 않으면, 우리는 무리를 하는 줄 모르는 채 계속 무리를 하게 되어 더 큰 병에 걸리거나 급사한다.

이번 몸살은 실은 너무 늦게 왔다.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세계 경제가 무리를 해서 거품이 끼었다는 신호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중앙은행은 그런 신호를 무시했다.

정치적 요인이 더 큰 위기 불러

여기서 주목할 점은 중앙은행도 정치적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중앙은행 총재는 현인으로 존경을 받지만, 그도 비난은 피하고 인기는 높일 길을 고른다. 경기가 좋을 때, 경제가 무리한다고 경기를 낮추는 정책을 쓰면, 그는 거센 비난을 받는다. 특히, 자신의 치적에 마음을 쓰는 대통령이 경기를 일부러 식히는 정책에 순순히 따를 리 없다. 경기가 자연적으로 낮아져도, 경기를 되살리라는 압력을 받아 거의 언제나 금리를 낮추게 된다. 그래서 작은 몸살들로 끝났을 일이 이번처럼 큰 몸살이 된다.

 

정치적 논리는 경기에 대한 비대칭적 대응으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자산 거품이 주로 주택 시장에서 일었다는 사정은 통제를 무척 어렵게 했다. 모든 정권들은 가난한 사람들도 자기 집을 갖도록 하겠다는 정책을 추구한다. 미국도 물론 예외가 아니어서, 역대 정권들이 가난한 사람들이 집을 마련하도록 여러 혜택들을 제공했다. 이런 정책 덕분에 비우량주택담보대출(subprime mortgage)이 늘어났다. 설령 누가 비우량 대출이 급증하는 상황의 위험을 경고하더라도, 그런 경고는 이내 "그러면 가난한 사람은 돈도 빌릴 수 없다는 얘기냐?"는 반론에 부딪칠 터이다. 그런 반론이 지닌 정치적 무게는 물론 압도적이어서, 누구도 그 문제를 거론하지 못한다.

사회적 자유엔 큰 제약이 있다. 한 개인에게 허여된 자유는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해치지 않아야 하므로, 개인들이 실제로 누리는 자유는 큰 제약을 받는다. 당연히, 자유 시장은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시장에 참여한 개인들은 갖가지 법들과 관행들과 기구들이 미리 정해놓은 상당히 좁은 경기장에서 활동하게 된다.
너무 자유롭다는 평가를 받은 미국의 금융 시장도 촘촘히 짜인 규칙들 아래서 움직여 왔다. 이번 파국은 규칙들이 덜 촘촘해서 나온 부분도 있지만, 애초에 규칙들이 잘못 설계된 데서 나온 부분도 작지 않다. 그나마 미국 정부는 그 규칙들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다. 특히, 미국의 증권 시장을 직접 감독하는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는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래서 실제로 감독다운 감독이 없었다.

새로운 위험관리체계 마련돼야

이번 위기가 급한 대로 수습되면, 제도의 개혁이 따를 것이다. 위험 관리가 허술함이 드러났으므로, 새로운 위험 관리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 긴요하다. 이 과제는 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먼저, 중앙은행의 정책이 품은 내재적 편향이 근본적 원인이었으므로, 이 위험을 관리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이 일은 무척 어려워서, 가까운 장래에 시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음엔, 파생 금융 상품의 위험을 관리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기업의 차원에선 최고경영자가 파생 금융 상품들로 기업이 지는 위험을 정확히 아는 것이 필요하다. 불행하게도, 그런 위험을 제대로 아는 최고경영자는 너무 드물다는 것이 드러났다. 아주 어려운 수학을 써서 마련된 파생 금융 상품들의 위험을 모른 채, 그저 수익이 많아지니, 그대로 둔 것이었다.

걱정스러운 것은 지금 정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이 진화의 과정을 근본적 수준에서 방해한다는 사실이다. 진화의 과정은 적응에 실패한 종들과 특질들의 사라짐을 통해서 진행된다. 급한 김에 실패해서 도산하게 된 기업들을 살리면, 궁극적으로 시장의 건강과 진화를 해치게 된다.

금융 시장의 차원에서도 파생 금융의 위험을 관리하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체계가 어떤 모습을 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모두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막상 파생 금융을 규제하는 방안을 생각하면, 뚜렷한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도 그런 방안은 많은 시행착오 과정을 통해서 진화할 것이다.

확실한 것은 시장이 계속 진화하리라는 사실이다. 이번 위기를 결정적으로 키운 파생금융 상품들도 새로운 환경에서 나온 혁신이었다. 앞으로도 빠르게 바뀌는 환경에 대응해서 새로운 금융 기법들이 나올 것이다. 혁신들의 출현, 시장에서의 선택, 그리고 성공한 혁신들의 확산이라는 진화의 과정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크게 보면, 이번 금융 위기 자체도 시장이 진화하는 과정의 작은 부분일 따름이다. 이미 금융 시장의 구조는 크게 바뀌었고, 그렇게 바뀐 구조 자체가 적응을 통해서 얻어진 소중한 지식이다.

여기서 우리가 상기해야 할 점은 새로운 금융 기법들이 규제가 없는,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부의 규제가 나오면, 기업들은 그 규제에 반응해서 새로운 기법들을 생각해낸다. 앞으로도 기업들은 새로운 규제에 적응해서 새로운 기법들을 창안해낼 것이다. 환경이 늘 바뀌고 기업들이 규제에 반응해서 행동하는 터에, 완벽한 규제를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다. 우리는 미국 주택 금융 시장이 미국 정부가 실질적으로 소유한 ‘패니 메이(Fannie Mae)’와 ‘프레디 맥(Freddie Mac)’에 의해 주도되고 미국 정부의 주택 정책에 의해 인도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걱정스러운 것은 지금 정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이 진화의 과정을 근본적 수준에서 방해한다는 사실이다. 진화의 과정은 적응에 실패한 종들과 특질들의 사라짐을 통해서 진행된다. 급한 김에 실패해서 도산하게 될 기업들을 살리면, 궁극적으로 시장의 건강과 진화를 해치게 된다.

경제적 자유를 위축해서는 안된다

지금 정치적 상황은 경제적 자유의 위축을 부를 수밖에 없다. 이번 금융 위기를 시장의 잘못으로 돌리는 여론이 워낙 거세므로,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반동은 무척 클 것이다. 나라마다 정부의 몫이 늘어나고 시장의 몫은 눈에 뜨이게 줄어들 것이다. 정부의 시장에 대한 간섭과 규제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의 적들은 시장의 자율보다는 정부의 간섭을 권장한다. 언뜻 보면, 지금 상황은 그들의 주장을 떠받치는 것처럼 보인다. 찬찬히 살피면, 그러나 그들의 주장들이 허약한 바탕을 지녔음이 드러난다.

금융 위기는 시장이 너무 많은 자유를 누려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로 정부의 잘못에서 비롯했다. … 따라서 경제 발전에 크게 공헌한 자유 시장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은 어리석다.

정부가 위기를 맞은 금융 기업들에 자금을 대서 살리는 조치는 물론 시장 경제에선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 조치가 부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도 큰 문제다. 그러나 지금은 정상적 상황이 아니고, 사회가 치를 손실을 줄이려면, 정부가 나서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실은 어느 나라에서나 중앙은행은 늘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의 기능을 수행했고 경제적 위기가 나올 때마다 중앙은행이 신용을 제공했다. 따라서 이번에 여러 나라들의 정부가 시장을 구원한 것이 시장 경제의 원리를 깨뜨린 것은 아니다. 경제적 자유주의가 무정부주의를 지향했던 적은 없다.

경제적 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추구했고 현대적 민영화가 처음 시작된 영국이 은행 산업의 대부분을 국유화한 조치는 당연히 충격적이었다. 다른 나라들이 영국의 조치를 따르기로 결정한 것은 경제적 자유주의의 핵심까지 흔들리도록 만들었다. 그래도 이런 조치가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 은행 산업의 국유화는 금융 위기에 대처하는 조치로 이루어졌지 국유화 자체를 목표로 삼은 것이 아니다. 은행들을 국가가 계속 소유하겠다는 얘기도 아니다. 국가가 소유한 은행들은 되도록 빨리 그리고 높은 값을 받고 팔아서 납세자들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이미 합의가 이루어졌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이번 금융 위기는 시장이 너무 많은 자유를 누려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로 정부의 잘못에서 비롯했다. 규제가 적어서가 아니라, 규제가 잘못 설계되었거나 감독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나왔다. 따라서 경제 발전에 크게 공헌한 자유 시장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은 어리석다. 미국형 시장 경제가 몰락했다는 얘기는 피상적 관찰에서 나온 잘못된 진단이다. 1980년대에 미국에서 규제 철폐(deregulation)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뒤, 세계는 크게 발전했고 번영을 누렸다. 많은 사회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났고 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정치적 자유와 문화적 풍요를 아울러 누렸다. 이번 금융 위기를 부른 책임의 큰 부분을 미국형 시장 경제에 돌리는 일의 부당함을 떠나서, 이번 금융 위기로 입은 손실은 그렇게 거대한 공헌에 비기면 결코 크다 할 수 없다.

자본주의의 대안은 모두 자본주의보다 못하다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았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간단히 말하면, 자본주의는 재산을 그것을 모은 사람이 갖는 제도다. 그래서 인성에 맞고 자연스럽다. 인위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뜻에서, 그것은 ‘선택하지 않아도 나오는 상태(default state)’다. 따라서 사회주의와 같은 대안적 체제들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야 나오고, 자연히 비효율적이다.

70년 동안 이어진 공산주의 실험이 가리킨 것처럼, 자본주의의 대안은 모두 자본주의보다 못하다. 청사진으로는 아무리 그럴 듯해도, 실제로 시행되면, 그런 대안들은 모두 정치적 압제․문화적 통제와 정체․경제적 빈곤을 낳는다. 반면 자본주의가 제대로 시행된 현대 사회들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누렸다. 사람들이 때로 그 사실을 잊어버리지만, 그들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뛰어남을 깨닫게 된다.

지금 경제적 자유주의는 반대파의 거센 비난과 공격에 밀리고 있다. 1990년대 초엽에 공산주의가 무너진 뒤 처음으로 자유주의의 적들이 기세를 올리는 터라, 이념적 전선에서 이번 싸움이 지닌 중요성은 크다. 그래서 2008년 10월 18일자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가 사설에서 강조한 것처럼, "자본주의는 궁지로 몰렸지만, 자본주의를 믿는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위해서 싸워야 한다. (Capitalism is at bay, but those who believe in it must fight for it.)" ■

저자소개: 복거일 소설가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소설가, 경제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비명을 찾아서’. ‘진단과 처방’, ‘이념의 힘’ 외 다수가 있다.

복거일 / 소설가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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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소득 직불금제도란 농산물 시장 개방 확대로 쌀 가격 하락이 예상됨에 따라 농민에게 정부 예산으로 직접 보조금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벼 재배 면적에 비례하여 직불금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현행 쌀 소득 직불금 제도는 가난한 농민의 소득을 보조하기보다는 부자 농민이나 농업과 관련이 없는 지주나 부자 지주의 소득을 보조하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난한 농민을 위해서라면 최저생계비 제도 등과 같은 기초생활보호제도로 통합 운영하는 것이 바림직하다.

‘쌀 소득 등 보전 직접지불금’(이하 ’쌀 소득 직불금‘으로 표기)이 이번 국정감사의 최대 수확물(?)이라고 여겨도 좋을 것이다. 쌀 소득 직불금 때문에 한 명의 고위 공직자가 이미 사표를 냈고 국회가 쌀 소득 직불금 국정조사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이나 정치권 등은 그것의 실체와 관련된 문제점들을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외면한 채, 경자유전, 경작자가 아닌 공무원의 직불금 수령 등에 대한 문제에만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있다.

쌀 소득 보전 직불금 제도란

쌀 소득 직불금은 지난 2005년 7월 1일부터 ‘쌀 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에 의해 발효된 제도다. 쌀 소득 직불금은 농산물 시장 개방 확대로 쌀 등의 가격이 하락할 것이 예상됨에 따라 기존의 추곡수매제도를 대체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쌀 소득 직불금 지급은 농민에 대한 지원이 추곡가라는 ‘가격’에 의한 지원 방식에서 정부 예산으로 ‘직접 보조금’을 주는 방식으로 바뀐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추곡수매제도는 공공비축제로 전환되었다.

쌀 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쌀 소득 직불금은 ‘고정직접지불금’과 ‘변동직접지불금’으로 구성된다. 고정직접지불금은 문자 그대로 고정 금액이다. 변동직접지불금은 정부가 정한 ‘목표가’에서 쌀 수확기 ‘평균가격’을 뺀 차액에 85/100를 곱하여 구한 금액에서 고정직접지불금을 뺀 것이다. 2005년의 경우에 고정직접지불금이 1핵타르(ha)당 70만원이고 그 금액을 법이 정한 1ha당 쌀 생산량인 61가마(1가마는 80kg)로 나누면 가마당 고정직접지불금은 약 11,479원이 된다. 이 금액을 변동직접지불금 구하는 공식에 넣어보면 목표가와 평균가격의 차액은 1가마당 약 13,500원이 된다. 이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2005년의 경우에 목표가와 평균가격의 차이가 1가마당 13,500원이 넘으면 그 액수의 85%를 농민이 보조금으로 지불받고 13,500원 이하이면 고정직접지불금만 보조금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목표가를 높게 책정하거나 목표가격에 비하여 시장가격이 상당히 낮아지면 고정직접지불금은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쌀 소득 직불금은 농산물 시장 개방 확대로 쌀 등의 가격이 하락할 것이 예상됨에 따라 기존의 추곡수매제도를 대체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쌀 소득 직불금 지급은 농민에 대한 지원이 추곡가라는 ‘가격’에 의한 지원 방식에서 정부 예산으로 ‘직접 보조금’을 주는 방식으로 바뀐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두 가지 직접지불금으로 나눈 것은 시장 평균가격이 목표가에 근접하는 경우에는 농민이 시장에서 쌀을 판매하면 목표가 수준의 소득을 얻을 것이기 때문에 일정한 액수의 고정직접지불금만을 받도록 하고, 풍년, 시장 개방 등으로 평균가격이 크게 하락하여 목표가보다 매우 낮은 경우에는 목표가에 근접하는 소득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

쌀 소득 직불금, 빈농 보다는 부농에게 보조금 주는 것

이렇게 하여 쌀 소득 직불금으로 그 동안 쓰인 예산은 얼마일까? 농식품부는 쌀 소득 직불금으로 2006년 16,082억원, 2007년 16,672억원, 2008년 12,446억원을 지급했다. 이 금액들은 각 년도 농식품부 전체 예산의 약 19.5%, 19.1%, 14.3% 등으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물론 농식품부는 다른 직접지불금도 농민에게 지원하고 있지만 쌀 소득 직불금보다는 그 규모가 작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 각 농가는 얼마나 쌀 소득 직불금을 받을 수 있는가? 쌀 소득 직불금은 농식품부장관이 앞에서 제시한 방법대로 산정한 80kg당 변동직접지불금에 61가마를 곱하고 그것에 다시 등록된 벼 재배 면적(ha기준)을 곱하여 구한다. 이러한 계산 방식은 쌀 소득 직불금이 벼 재배 면적에 비례하여 증대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쌀 소득 직불금의 결정적인 문제점이라고 하겠다.

보도에 의하면 2005~2006년 44개 농가(법인 11개, 개인 33명)가 각각 5,000만원 이상을 받았고, 이 중 8개 농가(법인 6개, 개인 2명)가 각각 1억원 이상을 수령했다고 한다. 이와 연관하여 더 큰 문제는 법률(제6조)이 논농업에 이용하는 농지면적이 1천제곱미터(약 300평) 이하인 농민을 아예 쌀 소득 직불금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점이다. 쌀 소득 직불금도 소득 보조금의 일종인 만큼 저소득자에게만 보조금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일반적인 소득 지원 방식과는 완전히 정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하면, 현행 제도는 ‘빈익빈 부익부’를 초래하는 제도인 것이다.

쌀 소득 직불금 제도의 두 번째 문제점은 경작자가 아닌 지주에게 쌀 소득 직불금이 지급되었다는 것이다.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보도한 자료에 의하면 2006년 쌀 소득 직불금을 받은 998,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28만명이 농사를 짓지 않고 쌀 소득 직불금만 챙겼다고 한다. 지주가 쌀 소득 직불금을 수령한 것은 법률을 어긴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주의 쌀 소득 직불금 수령이 분배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경작자에게 쌀 소득 직불금을 지불하면 토지 임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여 토지 임대료를 끌어올릴 것이고 그것은 쌀 소득 직불금의 일부가 지주에게 분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와 반대로 지주에게 쌀 소득 직불금을 지불하면 임대 토지 공급의 증가를 통하여 토지 임대료를 하락하게 만들 것이고 그것은 쌀 소득 직불금의 일부가 경작자에게 분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현실은 거래비용의 존재가 분배의 양상을 조금 다르게 만들 것이지만 앞의 분석은 ‘경자유전’이 사실상 큰 의미가 없음을 의미한다. 적어도 쌀 소득 직불금의 분배에 관한 한에서는 말이다. 한 마디로, 지주가 쌀 소득 직불금을 수령한 것이 가진 법적 의미와 경제적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점 이외에도 경자유전은 농촌으로 자본이 유입되는 것을 막는 제도로 국내 산업에 외국인 투자를 금지하는 제도와 본질에서 차이가 없다.

지주의 쌀 소득 직불금 수령이 지닌 추가적인 문제점은 여기에도 소득 보조금을 받지 말아야 할 계층인 지주가 직불금을 수령했다는 사실이다. 지주의 소득이나 재산의 분포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지주는 소득 보조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점은 시장이 경작자와 지주 간에 쌀 소득 직불금을 어떻게 분배하는가와 상관이 없다.

쌀 소득 직불금 제도는 결코 바람직한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도 가난한 농민의 소득을 보조하기보다는 부자 농민이나 농업과 관련이 없는 지주나 부자 지주의 소득을 보조하기 때문이다.

쌀 소득 직불금 제도의 세 번째 문제점은 감시․감독과 관련하여 탈법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주와 경작자(소작인)가 이중으로 쌀 소득 직불금을 받은 경우가 작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는 2005년 3,200건, 2006년 1970건 등이고 지급된 직불금은 총 12억여 원이다. 농지 소재지가 아닌 주소지에서 쌀 소득 직불금을 신청하는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수치는 적발된 경우만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쌀 소득 직불금 이중 수령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다른 탈법 사례도 있다. ‘쌀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 시행 규칙’ 제3조 1항은 쌀 소득 직불금 지급 대상 농지를 1998~2000년 논농업에 이용된 농지로 제한하고 있다. 쌀 시장 개방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시기에 농지로 이용되었던 농지만을 보조금 지급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2006년에만 농지 41,600ha를 새로 취득한 115,000명이 468여억 원의 쌀 소득 직불금을 받았다고 한다. 이것은 쌀 시장 개방에 영향을 받았던 농민 또는 경작인에게만 쌀 소득 직불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제한 규정을 두어야 할 것을 농지를 대상으로 제한 규정을 두게 된데서 발생한 문제라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쌀 소득 직불금과 같은 보조금은 쌀 경작으로 불필요하게 많은 자원을 유입하게 만들고 다른 농작물 또는 산업에서는 자원을 모자라게 한다. 그 결과 쌀은 불필요하게 많이 생산되고 다른 농작물 또는 산업에서는 수요에 비하여 공급이 모자라게 된다. 물론 그런 과잉과 부족 현상은 보조금이 없을 때보다 가격을 하락과 상승으로 유도한다. 이런 현상은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쌀 소득 직불금 폐지하고, 가난한 사람을 지원하는 제도로 통합해야

미국은 1996년 농업법에서 폐지한 목표가격제를 2002년 농업법에서 부활시켰다. 쌀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에 대응하여 경기대응 방식의 소득보조를 도입한 것이다. 현재의 쌀 소득 직불금 제도는 미국의 그러한 목표가격제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만든 제도가 언제나 좋은 것이 아님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다른 나라 제도를 도입할 때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이유이다. 쌀 소득 직불금 제도는 그런 것 중의 하나임이 확실하다.

쌀 소득 직불금 제도는 결코 바람직한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도 가난한 농민의 소득을 보조하기보다는 부자 농민이나 농업과 관련이 없는 지주나 부자 지주의 소득을 보조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그가 농민의 여부와 상관없이-을 지원하는 제도로는 국민기초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 ‘최저생계비’제도가 있다. 만약에 가난한 사람을 꼭 지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말이다.

“농민은 모두 가난하다”, “농업은 전혀 경쟁력이 없다” 등과 같은 생각이나 견해를 가진 사람은 현실을 너무 모르거나 마음이 너무 뜨거운 나머지 현실을 보지 못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전용덕 / 대구대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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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발단이 되어 수천 억 달러의 공적 자금까지 투입할 상황으로까지 치달은 미국의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 때처럼 이번에도 시장경제에게 금융위기의 누명을 씌우려하고 있다. 금융시장의 규제완화와 투자가들의 탐욕이 그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장주의를 탈피하고 정부의 시장개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압도하고 있다. 금융위기에 대한 그 같은 진단과 처방이 옳은가?

금융위기의 원인을 찾을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2002년 후반부터 시작하여 종전까지 지속했던 경제적 붐이다. 주식가격과 주택가격이 상승했고 더구나 높은 고용과 높은 성장을 구가했다. 이런 붐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는데, 이 붐에서 터져 나온 것이 금융위기다. 그런데 이런 금융위기는 이와 상이한 다른 모든 경제현상과 똑같이 인간행동의 결과이다. 인간행동은 시장신호와 그리고 특히 정부정책에 대한 반응이다. 정치적 영향이 크면 클수록 그 반응도 격렬하다. 따라서 위기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행동하는 인간’이 아니라 정부의 개입정책이다. 정부정책과 관련하여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통화증가를 통한 저금리 정책과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정책이다. 지속가능한 번영을 돈과 법을 통하여 인위적으로 창출하겠다는 야심찬 정부 개입의 실패가 버블이자 금융위기이다.

정부 간섭으로 야기된 금융위기

연방은행은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추어 인위적으로 붐을 조성했다. 이런 인위적인 붐의 조성은 이미 1990년대 후반에도 있었다. 흔히 말하는 ‘닷컴의 버블’이 그것이다. 그러나 2000년에 버블이 꺼지자, 연방은행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6.5%에서 1%로 급진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풀린 돈이 특히 주식시장과 주택시장으로 흘러들어갔다. 이 부문이 역동적으로 성장한 이유, 그리고 버블이 생긴 이유가 그 때문이다.

[정부의] 통화확대정책과 함께 서브프라임 모기지 정책은 주택시장의 버블을 야기했다. … 대출의 원금 상환개시가 시작되자 연체와 상환불능이 생겨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심화되었다. 그리고 여기에다 연방은행의 고금리정책은 상환불능 사태를 더욱 심화시켰다. 이것이 금융시장으로 파급되어 금융위기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버블은 자발적인 저축과 관련이 없는 대출과 투자의 결과이기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 없고, 경제에 막중한 피해를 야기한다. 주택시장의 버블은 정부간여가 없었다면 다른 산업부문에서 사용했을 자원을 정부가 강제로 빼앗은 결과이다. 그래서 위기는 필연적이다. 더구나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한 인플레의 위험성 때문에 더 이상 돈을 풀 수도 없었다. 돈줄의 고삐를 잡아 당겼다. 위기가 앞당겨진 것은 이 때문이다. 금융위기를 통해서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인위적인 대출증대와 신용인플레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지름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단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있지만 그렇지도 못한 경우도 빈번하다.

풀린 돈은 어딘가로 흘러가기 마련인데 바로 주택부분으로 유입되었다. 이를 촉진시킨 것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정책이다. 상환능력과 관계없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이 대출하도록 했다. 이런 대출실적이 금융기관들에 대한 정부의 중요한 평가기준이었다. 그리고 파니맥(Fannie Mac)이나 프레디매이(Freddie Mae)처럼 정부의 보증과 지원을 받고 있던 회사들은 보다 더 위험한 대출을 구매하여 서브프라임 시장을 확장해 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제도는 카터 정부시대에 등장했지만 자유시장경제를 강조한 레이건 정부에서는 유명무실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실시한 것은 평등이념을 중시했던 클린턴 정부였다. 파생상품시장의 조성과 이 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도 이때부터였다. 무주택자들의 주택구입에 필요한 초기 납입금, 거래비용을 정부가 보조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통화확대정책과 함께 서브프라임 모기지 정책은 주택시장의 버블을 야기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대출의 원금 상환개시가 시작되자 연체와 상환불능이 생겨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심화되었다. 그리고 여기에다 연방은행의 고금리정책은 상환불능 사태를 더욱 심화시켰다. 이것이 금융시장으로 파급되어 금융위기로 이어진 것이다.

대출에서 신중함이 결여된 ‘묻지마 대출’이 성행했던 것은 … 통화팽창정책과 나란히 정부의 묵시적 명시적 구제금융 보증 때문이었다. 위기의 원인이 잘못된 정부의 간섭 때문임이 그래서 분명하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금융위기는 정부 간섭에 의한 반시장적 정책 때문에 생겨난 것이지 금융규제완화의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겸업금지의 철폐와 같은 조치가 없었더라면 상업은행들이 신용위기에 몰려있던 투자은행을 구매하지 못하여 위기의 여파가 더욱 극심했을 것이다.

투자가들의 탐욕에서 무분별한 대출이 범람했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발생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기는 매한가지이다. 대출에서 신중함이 결여된 ‘묻지마 대출’이 성행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탐욕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런 행동을 가능하게 한 정책이다. 애덤 스미스가 중시했던 ‘신중(prudence)의 도덕’이 결여되었던 것은 통화팽창정책과 나란히 정부의 묵시적 명시적 구제금융 보증 때문이었다. 위기의 원인이 잘못된 정부의 간섭 때문임이 그래서 분명하다.

금융위기의 원인을 정부 간섭 때문이라고 이해한다면 그 위기는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위기는 병(病)이 아니라 정부 간섭의 실패를 수정하여 경제를 정상적인 상황으로 회복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정부 개입이 실패하는 이유는 지식의 문제 때문

왜 주택정책과 통화정책이 실패했는가? 근원적인 이유가 있다. “지식의 문제(knowledge- problem)”가 그것이다. 적정 금리를 계산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통화 공급도 계획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통하여 서민층을 위한 주택정책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도 이와 관련된 수많은 지식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정부사람들이나 통화당국을 포함하여 그런 지식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성공적인 계획과 규제를 위해 필연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조차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잘못된 그리고 불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통화공급 계획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 결과, 수많은 금융기관을 도산으로 이끌었고, 대출의 연체율과 상환불능 사태가 수없이 야기했다. 정부의 정책을 믿고 따랐던 사람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잘못된 그리고 불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통화공급 계획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 결과, 수많은 금융기관을 도산으로 이끌었고, 대출의 연체율과 상환불능 사태가 수없이 야기했다.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의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주민들을 빈곤의 질곡으로 이끌었고 드디어 참혹하게 실패했던 것도 지식의 문제 때문이었다. 바로 이 문제를 기반으로 하여 1930년대에 이미 사회주의의 불가능성을 발견했던 인물이 미제스와 하이에크였다. 그들의 불가능 정리(impossibility theorem)를 통화계획과 주택정책에도 조건 없이 적용해도 무방하다.

스스로를 전지전능하다고 믿거나 또는 언제나 적합한 통화정책을 통하여 금융을 미세 조정할 수 있을 만큼 지적으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자만에 빠지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주택시장과 금융시장을 조종하여 누구나 자기 집을 소유하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만큼 현명하다고 자만하는 것도 똑같이 위험하다. 하이에크는 이 맥락을 ‘치명적 자만’이라고 불렀다.

미국정부의 치명적 자만이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까지 강타한 금융위기를 야기한 것이다. 금융위기가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은 인간의 이성이 남용되거나 악용될 경우 그것은 핵폭탄만큼이나 위험하다는 것이다.

금융위기의 해법은 시장경제의 원칙

금융위기의 원인이 치명적 자만에서 비롯된 정부 개입 때문임에도 위기의 해법으로 정부개입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베어 스턴스, 리만 브러더스, AIG와 같은 금융기관들을 구제하기 위해 수천억 달러의 공적 자금을 투입한다. 금리를 낮추고 있다. 금융규제도 더욱 강화할 태세다. 국유화도 위기타개의 한몫을 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런 조치는 금융시스템의 도덕적 해이의 원인이 되고 금리인하 정책과 함께 새로운 위기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위기극복을 위한 그와 같은 정치적 노력은 ‘자유’의 가치를 ‘안정’의 가치로 대체하려는 것이다.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그와 같은 노력이 반복되고 있다. 2000년 닷컴 버블의 붕괴로 오늘의 금융위기의 주범이 되는 금리인하 정책도, 독일의 나치즘, 미국의 뉴딜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자유를 포기하고 안정을 택한 전형적인 예이다.

위기의 해결을 … 정부가 맡을 경우 일시적으로 금융위기를 완화시킬 수는 있지만, 그러나 그런 정책들은 지식의 문제 때문에 유감스럽게도 또 다른 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위기의 연속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신뢰 그리고 자유로운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킨다.

위기의 해결을 시장의 경쟁에 맡기는 대신에 정부가 맡을 경우 일시적으로 금융위기를 완화시킬 수는 있지만, 그러나 지식의 문제 때문에 또 다른 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위기의 연속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신뢰 그리고 자유로운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킨다. 따라서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금융위기의 원인이 정부의 정책 실패라고 한다면 그 해결도 정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의 유명한 말처럼 정부는 해결이 아니라 문제이다. 그것이 문제인 근본적인 이유는 고질적인 지식의 한계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경제는 정치와 분명히 다르다. 시장경제의 경쟁은 오류의 발견과 그리고 그 수정이 매우 신속하고 생산적이다. 정부가 해결할 수 없는 지식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해준다. 시장의 결과보다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 정부가 파니와 프레디 같은 거대한 금융조직을 만들어 냈지만 이 조직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밝혀준 것은 금융시장이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얼빠진 금융상품도 밝혀내어 가차 없이 처벌하는 것도 시장경제이다. 해체될 금융회사들을 가려내는 것도 시장이었다. 종이 돈이나 파생금융 상품, 헤지 펀드 또는 서브프라임으로 부를 추구하는 사람들 가운데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을 처벌한 것도 금융시장이었다.

하이에크가 발견한 자유경쟁의 ‘발견의 절차’는 정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다. 시장은 정부보다 현명하다는 말은 그래서 적실성이 있다.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지만 그 규모가 1930년대 대공황만큼 심각하지 않은 이유도 자본시장이 비교적 자유롭고 그리고 자유무역 때문이다. 이것이 개인의 자유와 책임, 글로벌과 자유무역 등, 시장경제의 원칙이 국가위기와 금융위기를 막는데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다.

정부 간섭을 막기 위해 중요한 것은 헌법

그러나 정부가 시장경제의 원칙을 벗어나, 간섭주의의 수단으로서 법과 돈을 자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지 않으면, 우리는 정부가 만들어 내는 주기적인 위기의 질곡에 빠질 수밖에 없다. 치명적 결과를 가져오는 정부의 지적 자만으로 부터 시장경제를 보호하는 효과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이 장치가 정치적 과정의 기반이 되는 국가헌법이다.

그러나 미국의 헌법도 다른 나라의 헌법처럼 통화정책과 입법정책을 효과적으로 제한하는 헌법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의회와 통화당국의 재량에 맡기는 헌법적 우(愚)를 범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통하여 분명해진 것은 자의적인 권력을 효과적으로 제한하는 헌법을 갖는 것이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번영의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

민경국 /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저자소개: 민경국 교수는 독일 프라이부르그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강원대학교 경제무역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하이에크, 자유의 길’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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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적이어서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그 이유는 역사교과서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경제발전 등 지난 60년간의 성취를 대체적으로 부정하고 북한체제에 호의적인 근본 기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 교육은 미래세대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왜곡과 오류투성이인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개정은 학계합의 도출과정을 거쳐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계시록(啓示錄)적인 그의 소설 『1984년』에서 "과거를 지배하는 者,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者, 과거를 지배하리라(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who controls the present controls the past.)."라는 얘기를 했다. 역사가 현재에 대한 이해와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초석이라는 뜻과 현재의 권력이 과거를 재구성한다는 주장이 교묘히 결합된 명언이다.

역사 교육이 중요한 이유

역사, 특히 자국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기억의 공유”를 하기 위한 작업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얻기 위해 자신의 뿌리를 알기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업은 맹목적인 자화자찬이나 ‘신화만들기’와도 구별된다. 앞 세대가 걸어간 길의 공과(功過)와 명암(明暗)을 객관적으로 살펴보아 차세대가 더 올바른 길로 나가게 하기 위한 기제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현재와 가장 가까운 근현대사에 대한 교육은 국사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근현대사 과목이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한국이 국가로서 장래에 나아가야할 방향을 직접적으로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젊은 세대의 올바른 근현대사 교육은 미래 세대의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과거를 지배하는 者,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者, 과거를 지배하리라(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who controls the present controls the past). 조지 오웰 소설 ‘1984’ 중에서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의 근현대사교육은 대단히 왜곡돼 있다. 이에 교육과학기술부는 교과서 개편에 앞서 '현대사 교육 수업자료'를 만들어 내달까지 일선 초·중·고교에 배포해 수업에 활용하도록 할 방침이라 한다. 원로·중진 인사들이 직접 일선 고교를 찾아가 왜곡을 시정하는 근현대사 특강을 할 계획도 세워져 있다 한다.

현행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문제제기는 요 몇 년간 꾸준히 있어 왔지만 참여정부에 의해 거부됐었다. 그래도 약간의 효과는 있었으니 계속된 수정요구와 비판으로 인해 가장 문제가 많은 한 교과서는 그동안 무려 300여 군데에 걸쳐 오류와 편향을 수정했다. 그러나 이 교과서의 문제는 몇 부분이 수정되고 표현을 완화했다고 해결될 성질의 문제는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지난 60년간의 성취를 대체적으로 부정하고 북한체제에 호의적인 근본 기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류와 폄하로 얼룩진 한국근현대사

첫째, 대한민국은 자발적 국민의 지지 없는 단정세력에 의해 수립된 정통성이 결여된 정체(政體)이고, 남한의 정부수립이 분단을 초래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반면 북한에서는 “남한 때문에 어쩔 수없이” 선거를 치러 국가가 수립됐다는 부연설명이 뒤따른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의 초대 정부는 정당한 국민투표를 거쳐 탄생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북한에선 이미 소련에 의해 북한에서의 단독정부 수립에 대한 계획이 먼저 치밀하게 전개됐다는 것이 최근 공산권 붕괴로 인한 비밀자료의 공개로 밝혀졌는데도 한국의 근현대사교과서는 이러한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있다. 또한 남한만의 단독 선거가 이루어진 것은 UN이 제시한 남북한 공동선거안을 소련이 거부했기 때문이었다는 점도 무시되고 있다.

둘째로 독립운동과 건국과정, 그리고 통치시기에서의 이승만의 업적이 철저히 부정됐다. 현재 학계에서 대성공으로 평가되는 이승만의 농지개혁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결여됐으며, 문맹률 감소와 같은 국민교육의 성공도 무시됐다. 한미방위조약 등으로 굳건한 안보 체계와 국제협력노선을 택하는 현명한 방향설정을 해서 대한민국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점 등도 역시 언급이 안됐고, 대신 독재정치와 부정부패만 장황히 나열돼 있다. 상징적인 사실이지만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초대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사진은 없고 대신 마오쩌둥의 사진이 있다는 것은 경악할만한 사실이다.

셋째로 반미적 기조이다. 광복과정에서 미국의 공로가 의도적으로 배제됐으며, 분단의 책임을 미국에게만 전가됐다. 전반적으로 미국에 대한 긍정적 서술은 거의 없으니, 금성교과서의 경우 미국관련 표현 167건 중 긍정적인 것은 단 3회에 불과하다. “미군정은 남한의 경제를 살리는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경제뿐만 아니라 무기체계도 미국에 종속되어갔다.” “일장기가 내려진 자리에 성조기가 올라갔다”, “미국의 농산물 원조는 생산과잉으로 자국내 농업공황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것” 등의 편향되고 부정확한 서술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난 60년간의 한국의 성취인 건국, 안보, 경제발전, 민주화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균형감각을 상실한 서술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난 60년간의 한국의 성취인 건국, 안보, 경제발전, 민주화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균형감각을 상실한 서술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미관계에서 문제가 있는 점도 많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외관계, 특히 가장 중요한 대미관계에서 한국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생존과 경제발전을 위한 국가안보의 확보와 유지’였다. 그러한 전체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한미관계의 트랙 레코드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넷째로 6.25 전쟁에 대한 서술이다. 6.25 이전의 작은 분쟁/무력충돌이 자연스럽게 큰 충돌로 확산된 것으로 6.25의 발발원인을 서술하는 등 이미 폐기된 ‘브루스 커밍스’류의 좌파 수정주의적 연구를 비판 없이 채택하고 있었다. 또한 “애치슨 선언”과 같은 사료를 교묘히 왜곡, 편집해서 자료로 싣는 등의 방법으로 미국이 전쟁을 유도했다는 식의 서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수정주의적 해석은 역시 공산권 붕괴 이후 공개된 비밀자료의 연구들을 통해 폐기된 지 오래이다. 캐스린 웨더스비(Kathryn Weathersby)와 같은 학자들은 6.25가 김일성이 스탈린을 두 차례나 찾아가 강력하게 설득하여 동의를 얻은 후에 면밀히 계획되고 집행된 사건이라는 것을 이미 오래전 규명했지만 이러한 선도연구에 대한 서술이 전무한 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다섯째로 시장경제, 그리고 산업화와 경제개발에 대한 부정적 평가다. 한국은 주위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산업화를 이룬 국가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적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고 있고, 대신 부정적 측면을 조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국은 주위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산업화를 이룬 국가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적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고 있고, 대신 부정적 측면을 조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압권은 천리마 운동과 새마을 운동에 대한 상반된 평가이다. 북의 천리마 운동은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전반에 걸쳐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커다란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서술한 반면 새마을 운동은 “박정희 정부가 대중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장기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요인이 새마을 운동의 극히 일부분을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결코 이 운동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낙후지역 개발 정책의 롤 모델이 되는 것도 새마을운동이고, 작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도 빈곤퇴치 운동인 새마을 운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얼마 전 언급한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민주화운동에 대한 평가다. 근현대사 교과서들은 현대 정치사를 “민주주의의 시련의 역사”로 취급한다. 즉 해방 시에 이미 확립된 민주주의가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 등에 의해 침해됐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어디까지나 신생국이고 약소국이며 분단국이었다. 그래서 한국정치사는 없었던 민주주의사회를 힘들게 생성해 나가는 과정이란 것이 기본적인 사실이다. 따라서 1948년 완성된 상태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 다른 후진국처럼 걸음마 단계에서 시작해서 어려운 과정을 거쳐 정착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해야한다.

원로학자인 권태준은 최근 『한국의 세기 뛰어넘기』란 책에서 후학들에게 “역산(逆算)하지 마라”란 귀중한 충고를 주고 있다. 즉 “오늘의 고지에서 지난 역사를 재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 경구를 마음에 품고 봤을 때 근현대사교과서는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를 마음대로 재단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마지막으로 북한 북한체제의 문제점에 대한 철저한 외면하고 있다. 북한체제와 주체사상에 대한 서술은 거의 미화의 수준인데, 이러한 서술은 “통일 지상주의”적 관점과 “내재적” 관점으로만 북한을 바라보려한 노력에 그 원인이 있다 하겠다. 따라서 공산 왕정체제적인 부자세습과 대량아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현대 북한을 이해하는 주제어인 “선군정치(先軍政治)”에 대한 언급도 없다. 대신 “사회주의 국가건설이라는 이념적 명분을 갖고 있었으며,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던 김일성 측” “김정일 체제의 북한은 외교와 기술관료를 중심으로 정치 경제 발전을 위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라는 서술들이 등장한다.

대한민국 건국과 헌법의 의미를 새롭게 평가해야

현행교과서들은 편향된 역사관과 잘못된 사실인식에 기초해 한국의 근현대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세계사에서 제3세계 국가 중에 독립 후 산업화와 민주주의를 모두 이뤄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굴곡 속에서 이뤄낸 이러한 “건국과 부국”의 업적은 완전히 무시되거나 과소평가되고 반대로 (북한주민에 대한 애정이 아닌) 파산상태에 빠진 북한체제에 대한 애정이 나타나는 것이 “근현대사”교과서의 현주소이다.

권태준은 최근 『한국의 세기 뛰어넘기』란 책에서 후학들에게 “역산(逆算)하지 마라”란 귀중한 충고를 주고 있다. 즉 “오늘의 고지에서 지난 역사를 재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나 근현대사 수정 문제는 뿌리 깊은 학계의 갈등과 연관된 복잡한 사안인 만큼 위에서부터 무리하게 추진하기보다 학계의 합의 도출 과정을 거쳐 서서히,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일단 8차 교육과정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서술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현재 8차 교육과정에서 국사과목에서는 “국사”와 “한국 근현대사”가 통합돼 “역사”라는 과목으로 가르쳐 질 예정이라 한다. 구체적 내용에 들어가서는 대한민국 건국과 헌법의 의미를 새롭게 평가하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과 헌법이 자유민주주의와 입헌주의(법치주의), 그리고 공화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건강한 시민사회를 이루기 위한 제도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문명사적 의의를 되새겨야 하겠다. 또한 민족, 민중, 통일지상주의라는 협소하고 폐쇄적인 사관에서 탈피해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국제적 관점을 강화해야한다.

이러한 서술을 위해서는 국사학자 외에 서양사, 동양사학자등이 함께 참여해 비교사적 관점을 취해야한다. 보다 더 넓은 관점을 포용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자, 정치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 등과 같은 인접 사회과학자들 또는 필요시 자연과학자들의 참여 역시 필요하다하겠다. ■

강규형 /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

저자소개: 강규형 교수는 미국 오하이오대학교에서 역사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명지대학교 기록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한국외교사와 국제정치’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역사의 풍경: 역사가는 어떻게 과거를 그리는가?’, ‘9.11의 충격과 미국의 거대전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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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은행(Commercial Bank)은 고객들로부터 ‘예금’을 받아 자금을 조성한다. 그리고 자금을 필요로 하는 경제주체들의 대출신청을 받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심사를 한 후 적절한 경제 주체에게 ‘대출’을 해 준다. 자금은 예금을 통해 상업은행으로 흘러들어갔다가 대출을 통해 필요한 곳으로 전달된다. 이 과정에서 예금은 은행의 부채가 되고 대출은 은행의 자산이 된다. 이것이 바로 간접금융시스템이며 이를 기관중심금융이라고도 부른다. 정부는 예금자보호를 위해 예금보험시스템을 작동시키는데 예금보험은 은행 입장에서는 부채에 대한 보험이 되므로 은행의 자금집행과정에서 모럴해저드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농후하다.

반면 자본시장시스템을 통한 직접금융도 있다. 우선 이 시스템에서는 주식이나 채권 등의 증권이나 파생상품이 거래되는 시장이 전제된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여 자금이 필요한 기업은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한 후 이를 시장에 내다 판다. 이 증권이나 파생상품은 투자자들이 매입하게 되고 이들이 지불한 매수대금이 기업으로 흘러 들어가 기업의 자금이 마련된다. 이처럼 증권과 파생상품을 매개로 하여 금융이 일어나는 시스템을 직접금융이라 한다. 이 때 증권과 파생상품에 대한 중개 자기자금투자 자문 일임 집합투자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는 주체를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이라 한다. 투자은행업무는 이처럼 직접금융시스템 하에서 주식, 채권 등의 거래를 통한 투자행위를 통해 발생하므로 시장의 중요성이 매우 부각이 된다.

미국 금융위기의 원인은?

그동안 직접금융시장에서의 투자은행체제가 매우 발달하여 세계 최고임을 자부한 미국이 최근에 위기를 맞아 흔들리고 있다. 1980년대의 남미외채위기는 유로달러시장의 상업은행들이 남미국가에 대출을 몰아주고 이 대출이 부실화됨으로써 발생하였다. 1990년의 동남아 외환위기도 은행의 과도한 대출과 그로 인한 부실의 발생이 대표적인 원인이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 금융위기의 원인은 남미나 동남아 위기와는 조금 다르다. 미국 금융위기는 상업은행업과 투자은행업을 포함한 금융전반과 연결되어 있다. 상업은행업 쪽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주고 이에 대한 원금과 이자를 받으면 그만인데 이 대출에 대한 원금과 이자를 받을 권리를 유동화하는 기법을 통해 주택대출담보부 증권을 만들어내었고 이를 거래하기 시작하였다.

유동화증권은 투자은행 쪽의 업무이므로 투자은행도 여기에 관련이 된다. 주택대출을 기초로 유동화증권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역할을 하면 수입이 짭짤하다. 이렇게 유동화된 증권이 팔리면 돈은 상업은행 쪽으로 회수가 된다. 그러면 다시 이 돈으로 담보대출을 줄 수가 있다. 이렇게 주택담보대출 → 유동화 → 자금회수로 이루어지는 사이클을 한번 씩 돌릴 때마다 돈이 벌리게 되므로 결국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모두 이 비즈니스를 과도하게 시행하게 된 것이다.

채권이 팔리면 돈은 마련되므로 대출은 자꾸 커지고 결국 이 과정에서 비우량 소비자에게까지 담보대출이 집행이 됨으로써 주택담보대출로 지나치게 과도한 자금이 몰리게 되었다. 계속 오를 줄 알았던 주택가격이 드디어 하락하고 버블이 터지면서 관련된 기관들이 모두 한꺼번에 부실화되는 상황에 처한 것이 최근의 모습이다.

담보대출을 준 상업은행들, 유동화채권을 사들인 투자은행과 헤지펀드들, 그리고 이에 대한 보증을 해준 보증회사인 소위 모노라이너들 모두 한꺼번에 부실화되었고 이와 관련된 비즈니스를 열심히 한 ‘프레디맥’과 ‘패니메이’ 등의 금융기관들은 국유화되고 ‘리먼’은 파산을 신청하고 ‘메릴린치’는 매각되는 등 대부분의 기관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골드만삭스’와 ‘제이 피 모건’은 은행지주회사로 구조를 바꾸기로 한바 있다. 최근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이제 향후 추이에 눈이 쏠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유주의 실패 언급은 난센스다

그런데 최근 문제가 되는 것은 이번 사태를 가지고 금융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시스템을 공격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가장 많이 거론되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의 흐름은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에 잘 요약되어 있다. 그 흐름은 예산 삭감, 작은 정부추구, 자본시장 자유화, 외환시장 개방, 관세 인하, 국가 기간산업 민영화, 외국 자본의 국내 기업 M&A 허용, 규제 완화, 재산권 보호 강화 등이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

물론 최근 사태가 주는 교훈을 되새기며 금융산업에 대한 건전성 감독을 일부 강화하는 등 보완을 해야 할 필요는 있으나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아직도 한국은 규제가 심하고 정부기능의 팽창과 과도한 규제에 신음하고 있으며, 일시적으로 사고가 난 미국을 보면서 규제를 풀면 안 되겠다고 얘기하는 것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 금번 사태가 극복할 만한 사고인지 아닌지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한다. 그리고 침착하게 상황을 관찰하되 이와 상관없이 민간의 창의와 자율을 지나치게 억압하는 규제는 계속 풀어가야 할 것이다.

또한 최근 일각에서 미국 금융위기의 예를 가지고 금융자본주의의 실패를 거론하고 있으나 이는 대단히 성급한 결론이다. 미국이 공적자금을 조성하여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꼴좋다’는 식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과거 우리나라는 어떠했는가. 1997년 외환위기 때 우리나라는 무려 167조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이 규모는 당시 GDP와 대비 약 35%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는데 이 엄청난 자금을 조성하여 금융기관에 투입함으로써 금융기관의 대차대조표에서 부실자산을 덜어내고 우량자산으로 교체하면서 금융기관이 힘을 되찾고 위기를 조기에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167조 원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공적자금을 조달할 당시 국가부채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가 가능했던 것이고 보면 외환위기 극복에 대한 공헌 중에는 그 이전 정권들이 국가부채를 거의 영에 가깝게 유지한 것도 상당한 도움이 되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의 국가부채는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에 힘들기는 하나 현재 미국이 조성하기로 한 7000억 달러는 14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 GDP의 크기에 비추어 보면 5%에 해당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조성했던 공적자금의 크기에 비해서는 그리 큰 수준이 아니다. 현재 미국의 FRB 의장을 맡고 있는 버낭키는 대공황에 대한 연구를 오랫동안 해온 경제학자다. 그는 과거 대공황 당시 미국 중앙은행이 긴축정책을 사용했기 때문에 공황 극복이 늦어졌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지금 미국은 버낭키 의장의 소신과 한국의 경험도 감안하여 공적자금 조기투입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GDP의 35% 수준에 해당하는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부실을 털어낸 경험이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GDP의 5% 정도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부분에 대해 비판을 하며 자유주의 시스템의 실패를 언급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공적자금조달을 통해 위기를 잘 극복한 바 있는 나라로서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규제 완화

최근 우리는 오랫동안 준비한 자본시장통합법의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은 금융투자회사에게 매매 중개 일임 자문 집합투자 신탁업의 겸영을 과감히 허용하고 금융투자 상품의 범위를 늘여서 다양한 상품이 출시되도록 유도하는 등 획기적인 조치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기능별 금융감독체제 구축과 투자자 보호 장치도 다양하게 도입되도록 되어 있다.

금융상품이 중심이 되는 직접금융의 경우 투자자가 그 위험을 부담하기 때문에 시장자율로 모든 위험이 소화되는 장점이 존재하며 주식이나 채권의 자유로운 거래를 통해 은행 중심 금융에서는 달성하기 힘든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잘 사용하면 상당한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하므로 이 제도를 이용하여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경제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국가 경제적으로 매우 의미가 있으므로 자본시장통합법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할 것이며 투자금융업을 정상적인 궤도를 따라 지속적으로 육성해 나가기 위한 준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다만 금번 사태처럼 전체시장으로 위기가 확산될 경우 시장실패를 보정하는 차원에서 정부가 나서는 것은 의미가 있으며 금융시장의 일시적인 실패에 대한 정부 차원의 보정기능이 작동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보인다. 미국의 일부 금융기관은 금번 기회를 통해 큰 수익을 올리기 위해 준비를 하는 곳도 있다. 부실자산으로 분류된 것 중에 상대적으로 우량한 자산을 매입하여 정상화 될 경우 큰 수익을 거두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금융기관이 무너지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좋은 투자기회로 보고 좋은 기회를 포착하기 노력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투자은행모형의 실패를 거론하는 것은 너무 이른 것으로 보인다.

남미의 경우 과도한 대출을 통해 모라토리움이 발생하였지만 이를 보면서 상업은행업 즉 예금 및 대출을 근간으로 하는 금융모형을 폐기되거나 종언하자고 주장한 바는 거의 없었다. 투자은행업과 상업은행업은 수레의 두 바퀴이다. 둘이 같이 가는 것이며 둘 다 의미가 있다. 제대로 된 투자은행업을 해본 일이 없으면서 제대로 한번 하자니까 사고날까봐 안 되겠다는 지적은 문제가 있다. 자본시장통합법도 확실하게 추진하되 리스크 관리와 병행하면 얼마든지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가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섣부른 비판은 자제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규제완화와 시장경쟁력 강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

윤창현 /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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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의 영향력이 막강해지고 있다. 방송이 어떤 내용을 방송하느냐에 따라 국민의 여론이 좌우되고, 심지어는 선거에서 후보의 당락이 결정되기도 한다. 이렇듯 방송이 중요하지만, 방송사는 주인이 없다. 주인이 없으니 방만 경영을 하고 소비자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방송사가 소비자를 위한 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민영화를 통해 진정한 주인을 찾아주어야 한다.

열정적이다. 좋게 말해 동료의식이요 나쁘게 말해 집단의식이 함께 배어난다. 우리 한국인의 모습에서 어렵사리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다. 열정을 발견할 때 이 에너지가 더불어 표출될 때 희망과 힘이 솟는다. 반면 정보의 타당성을 깊이 고려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돌진할 때에는 섬뜩하기조차 하다. 들불같이 일어난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 속에서 신명 비슷한 열정을 발견하고, 비록 정부의 미숙함이 자초하기도 했지만 한갓된 괴담으로 세계인들에게 의아스런 대상이 되어버린 광우병 시위에서 비극적인 의식을 발견한다.

이념 방송의 위험성

‘지금, 왜 저래요?’ 필리핀 친구가 물었다. 80년대 필리핀 민주화에 참여하며 필자와 비슷한 고뇌를 안고 살았던 필리피노의 눈에 촛불시위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필리핀산 쇠고기는 맛이 없다. 대부분 물소인 까닭에 깊은 맛도 없고 고무씹는 맛이 난다. 질기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건이 되는 사람들은 미국산이나 호주산을 사먹는다. 대부분의 필리피노에게 미국산 쇠고기는 선망의 대상이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온 나라가 밤마다 거의 무정부상태라니 민주화운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그마저도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거였다. 대답하지 못하였다. 내 영어가 짧아서만은 아니었다. 구사해야 할 단어가 매우 어렵기 때문도 아니었다. 우리의 모습에 내재한 무모한 측면을 설명할 수 없어 결국 얼버무리고 말았다.

광우병 괴담이 온 나라를 적셔가자 가정의 식단을 책임진, 주로 어머니들에게 초비상이 걸렸다. 어떤 젊은 어머니는 유모차까지 끌고 촛불시위에 참여했다. 이 와중에 한 어머니는 의아스런 눈길로 인천공항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천국제공항이 귀국사태로 연일 난리가 나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미국소가 그렇게 위험하다면 그리고 그것이 이제야 좀 더 분명해졌다면 재미교포들과 한국유학생들이 대거 보따리를 싸들고 한국으로 와야 맞는데 공항은 예와 다름없었다. 아니 유가의 급등으로 더 한산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열정은 지켜내되 단결의식이 아닌 집단의식으로부터 개인과 공동체를 지켜내야 한다. 이를 위해 광장을 열어야 한다. 비판과 합리에 기초해서 다양한 생각들이 오갈 수 있는 자유의 광장을 열고 가꾸어야 한다.

그 어머니는 깨달았다. 텔레비전에 나와서 어려운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자녀들이 유학에서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 미국산 쇠고기에 문제가 없고, 문제는 정작 그 괴담을 퍼뜨리는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을 인천국제공항을 보며 알아차렸던 것이다. 한 어머니의 간단하고 또렷한 상식마저 이미 방향을 정하고 돌진하는 물결에겐 조그마한 파장도 될 수 없었다.

열정은 지켜내되 단결의식이 아닌 집단의식으로부터 개인과 공동체를 지켜내야 한다. 이를 위해 광장을 열어야 한다. 비판과 합리에 기초해서 다양한 생각들이 오갈 수 있는 자유의 광장을 열고 가꾸어야 한다. 이 광장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해야할 것이다. 자유라는 것이 쟁취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자연(自然)은 인자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게 되자 자연을 인자하게 인식해 가고 있는 것이다. 사회도 인자하지 않았다. 자유주의 혁명을 거치고서야 자유는 하나의 뚜렷한 개념으로 성립하기 시작했으며 좌와 우를 망라한 사람들의 진지한 노력 속에 자유는 풍부하게 발전해 왔다. 토론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분투했던 동서고금의 모든 선지자들에게 감사하자. 그리고 한국에 그 자유를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보답하자. 이제 마땅한 싸움을 시작해야 할 듯하다.

합리적인 토론광장이 필요하다

한줌의 선동가가 우리의 이성을 옥죄고, 합리를 파괴하여 결국 나라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합리적인 토론광장을 만들자. 그 출발은 토론의 광장으로서 언론을 가꾸는 것에서 출발하며 공영방송을 이념의 사유물로 여기는 자들과의 싸움으로 진행될 것이고, 그 결과가 자유롭고 합리적인 토론광장으로서 공정방송으로의 정착이 될 것이라 믿는다.

2년마다 한국언론재단은 언론수용자 의식조사라는 것을 하는데 지난 6월 30일 발간한 ‘신문과 방송’ 7월호에서 2008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5월에 전국 5000명을 1:1면담으로 조사했다고 하니 신뢰도도 무척 높다. 응답자들은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로 KBS(32.5%) MBC(21.7%) 네이버(17.1%) 다음(4.2%) 조선일보(3.7%) 순으로 꼽았다. 가장 신뢰하는 매체로는 KBS(31.1%) MBC(21.6%) 네이버(13.5%) 조선일보(4.5%) 다음(3.2%) 순으로 지적했다. 방송이 전체적으로 54.2%의 영향력과 52.7%의 신뢰도를 가지고 있다. 포털까지 합치면 70%를 훌쩍 넘기게 된다.

상황이 이러니 방송이 병풍을 일으키면 대통령의 당락이 바뀐다. 2002년 대선의 경우 1~2위 후보의 득표율 차이는 2.3%였다. 그런데 유력야당후보를 병풍으로 추궁했던 2002년 7월 그 후보의 지지율은 최대 11.8%가 하락했다고 서울지방법원 민사 25부는 지적했다. 총소리 없는 쿠데타라고 해도 유구무언의 상황이었다.

방송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2004년 탄핵당시 편파성을 조사했던 한국언론학회의 조사 결과 시사프로그램 앵커의 발언이 1:27로 탄핵 찬성과 반대의 비율을 보였다. 뉴스량, 인터뷰, 인용, 화면 등을 종합하면 그건 공영방송이 아니라 특정세력의 선무(先務)방송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 선동방송은 불행하게도 2008년 한국의 봄을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이념노조에 장악되다시피 한 MBC 등에 합리적인 토론의 광장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임이 입증되었다. MBC 살리기! 그것은 정권교체 여부와 무관한 또 다른 중대한 과제임이 또렷해진 것이다.

소비자를 위한 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해 민영화해야

이미 미디어선진화국민연합이 발족되어 활동하고 있고, 이번에 또 공정언론시민연대가 9월 30일, 그간 주요 편파사례를 비교 분석하고 공정언론 실현에 대한 제안을 하며 발족한다. 공영방송의 공정성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 서글프다. 미디어선진화국민연합과 공정언론시민연대와 같은 기구들이 하루 속히 임무를 다하고 박물관에 역사로 남게 되기를 기대한다.

방송사가 회사처럼 주인이 있다면 방만 경영을 하기 어려워 질 것이며, 지금처럼 방송사를 경영하지 않을 것이다. 방송사는 국민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물론 방송을 감시하기 위해서는 시민단체의 활동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방송에 주인을 찾아주는 일이다. 늘 공영방송은 국민의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주인이 없다. 주인이 없다보니 방송사는 국민세금을 지원 받으면서도 방만 경영을 하게 되고,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는다.

방송사가 회사처럼 주인이 있다면 방만 경영을 하기 어려워 질 것이며, 지금처럼 방송사를 경영하지 않을 것이다. 방송사는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아울러 추가적으로 국민들의 세금을 지원하지 않아도 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방송사 지분을 민간에 매각해 민영화해야 한다. 이제는 방송 민영화를 통해 진정한 주인을 찾아주고 소비자를 위하는 방송사를 만들도록 하자. ■

최홍재 / 뉴라이트재단 이사

저자소개: 최홍재 이사는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냈으며, 한총련 조국통일위원회 정책국장으로 일했다. 전국연합 자주통일위원회 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시대정신' 편집위원을 거쳐 뉴라이트재단 이사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386의 꿈 그 성찰의 이유(2005)', ‘내 마음의 정한수(200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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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경제의 어려움은 대외적 여건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새 정부 출범 후 경제정책 추진과정에서 혼선을 빚어 정책 신뢰성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정책 신뢰성의 하락 원인은 시장원리를 무시한 오락가락 정책으로 경제주체들에게 정책기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시그널을 주었기 때문이다. 경제정책 혼선에서 벗어나려면 경제정책 기조를 재산권과 경제적 자유 보장, 그리고 자발적인 거래를 보호하는 시장경제원리에 두어야 한다.

대외 경제 여건의 급변으로 한국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유를 비롯하여 곡물가격과 원자재 가격이 크게 상승하여 자원빈국인 한국 경제는 물가상승과 국제수지의 악화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그리고 연이은 미국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우리 경제도 환율과 주가가 출렁거리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실물부문도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쇠고기 파동을 거쳐 9월 위기설을 겨우 넘긴 정부는 숨 돌릴 겨를도 없이 경제의 안정을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정책 신뢰성 하락의 원인은

최근에 겪고 있는 한국경제의 어려움은 우리로서는 피할 수 없는 외생적인 충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경제가 어려워진데 대해 현 정부의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은 현 정부의 출범 전부터 어느 정도는 예상된 것이었다. 따라서 외부적 충격에 대비하여 이를 어느 정도 완화하거나 흡수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였어야 했다.

그럼에도 오히려 새로운 정부 출범 이후 경제정책의 추진과정에 혼선을 빚어 정책의 신뢰성을 크게 떨어뜨렸다. 시장 환율이 하락하고 있을 때는 수출을 늘이기 위해 고환율 정책을 유지하였고,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시장 환율이 상승하고 있을 때는 물가상승을 줄이기 위하여 환율상승을 억제하고자 하였다.

물론 이것을 정책의 혼선으로 비판하는 것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 그것은 올해 초만 하더라도 유가가 100달러를 크게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한다고 물가안정이 시급한 시점에서 고 환율정책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다.

정부정책이 관치와 시장경제를 오락가락해 시장과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고 … 경제 정책이 일관성을 잃었다. 여러 부문에 걸친 정책의 혼선은 대외 여건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제정책에 기조가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정부가 혼란스러운 시그널을 주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는 물가안정을 위해 인위적 시장 개입을 시도하였다는 점이다. 개별품목의 가격도 관리하고자 하고 가스나 전기 요금을 억제하고 이로 인한 기업의 부담을 정부재정으로 지원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또한 정책의 추진 과정에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면 엇갈린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그래서 정부정책이 관치와 시장경제를 오락가락해 시장과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이 나오고 경제 정책이 일관성을 잃었다고 비판을 받았다. 여러 부문에 걸친 정책의 혼선은 대외 여건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제정책에 기조가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정부가 혼란스러운 시그널을 주었기 때문이다.

명분을 내세워 시장경제원리를 무시해서는 안돼

새로운 정부가 ‘경제 살리기’를 내세우지만, 그것이 정책의 기조가 될 수는 없다. 어느 정부에서나 경제 살리기를 부정한 적이 없다. 이전의 정부는 경제 성장도 중요하지만 분배나 균형을 위하여 어느 정도 성장을 희생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여겼다. 이들은 분배나 균형을 위해 시장을 억압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새로운 정부의 물가안정이나 서민생활 대책을 보면 새로운 정부에서도 명분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시장경제의 기본원리마저 무시할 수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물론 정부는 경제의 안정과 효율을 위하여 시장의 변화에 따라 시의 적절한 정책수단을 선택할 수 있다. 특히 금융 시장의 안정을 위한 적절한 감독은 불가피하다. 금융부문은 실문부문에 비하여 외부충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금융부분의 과도한 위험을 제한하기 위한 정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시장의 급격한 변동에 따른 일시적 혼란을 완화하거나 시장기능의 회복을 위한 최소한도의 개입으로 끝나야 한다. 대외 여건의 변화에 따른 시장의 조정 과정에 섣불리 개입하면 조정이 지연되고 경제적 효율성이 희생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정책의 기조는 어디까지나 개인과 기업의 재산권과 경제적 자유를 존중하고 경제주체간의 자유로운 거래형성을 보호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 … 정부의 개입은 … 불가피한 경우에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가 서민생활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탓할 수 없다.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생활을 누려야 하고, 이를 위해 정부가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전의 정부에서 보았듯이 분배나 균형을 위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억압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자유를 제한하면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지고 정부 재정의 기반이 축소된다. 그렇게 되면 인간다운 삶의 보장을 위한 사회보장 정책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인간다운 삶의 보장은 시장의 개입이 아닌 재정을 통한 사회보장정책으로 달성되어야 한다. 국민이면 누구나 누려야할 최소한의 생활 보장은 국민 모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민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시장을 억압하는 것은 특정 시장의 관련자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물론 사회보장 정책이 경제주체들의 인센티브를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 따라서 정책을 통해 보호하고자 하는 집단에 직접 혜택이 가도록 하고, 이에 따른 인센티브의 왜곡을 최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경제정책 기조, 재산권과 경제적 자유를 존중해야

결국 경제 정책의 기조는 어디까지나 개인과 기업의 재산권과 경제적 자유를 존중하고 경제주체간의 자유로운 거래형성을 보호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 정부의 경제 정책은 경제 전체의 효율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정부의 개입은 국민경제의 안정과 효율의 증대를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에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정책 기조에 대해 분배를 희생하고 성장을 우선하는 정책이라고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경제의 효율이 높아져 분배를 위한 재정기반이 확충되는 정책이더라도 단기적으로는 이익과 손실을 보는 집단이 생기게 마련이다. 정책의 수혜자는 말이 없는데 비하여 기득권의 침해를 받는 집단은 소리 높여 반대하게 된다. 그래서 선거에서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국회의원들의 반대에 직면할 수도 있다.

정부는 이를 예상하고 원칙을 가지고 꾸준히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허둥대며 국민이 몰라준다고 아쉬워하는 것은 정책이 섬세하게 준비되지 못한 탓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재정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그리고 경제의 효율을 높이는 정책과 사회보장 정책이 맞물려 추진되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은 경제의 효율을 높이는 정책이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될 것이다.

경제정책의 기조가 흔들리면 눈앞에 보이는 경제문제에 집착하게 되고 사안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정부의 개입이 일어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정부 스스로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게 된다. 또한 경제적 효율이 희생되고, 이에 따라 인간다운 삶의 보장이라는 궁극적인 목표의 달성도 어려워진다. 비록 서민생활의 안정을 위한다고 하더라도 시장 기능을 제한하는 것은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 서민생활의 안정을 헤치게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저자소개: 정기화 교수는 현재 전남대 경제학부에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사회정의와 사회발전』, 『한국법의 경제학(공저)』, 역서로는 『법경제학(Richard Posner)』 등이 있다. 연구 분야는 공정거래법, 법경제학 등이다.

정기화 /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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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설이 기정사실화되고 있어 한반도 주변의 정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는 김 위원장의 건강악화가 북한 내부의 권력구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그리고 북한의 대외정책은 어떻게 바뀔 것인지, 북한이 가용한 핵 협상 시나리오는 무엇인지, 그리고 한국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 지 등을 다루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9월 9일 북한정권 수립 60주년 기념식에 불참함으로써 증폭된 ‘와병설’이 기정사실로 정착되고 있다. 약간의 병세호전을 전하고 있는 국내외 정보와 북한의 5대 권력기관들이 ‘영도자를 중심으로 일심단결(一心團結)’을 외치면서 충성을 서약하는 것을 보면 곧바로 ‘권력공백’이 도래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건강악화가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은 곧바로 현실문제가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우선 주목해야 할 분야는 북한내부의 권력구도, 북한의 대외정책, 북핵 협상 등이다. 이 세 분야는 상호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가 악화될수록 권력후계 문제가 부상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실세들의 역할이 커질 것이며, 이들의 판단에 따라 대외정책과 핵협상도 달라질 수 있음이다. 때문에 한국으로서도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악화 및 통치불능 가능성을 가정한 각종 대비책들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북한의 권력구도는 어떻게 될까?

우선 예상해야 하는 다음 사태는 북한에 사실상의 집단지도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이다. 김정일 위원장에게는 김정남(37), 김정철(27), 김정운(25)이라는 세 아들이 있지만 이들 중 하나가 곧바로 권력을 승계받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통상 권력자의 자녀가 권력을 인계받기 위해서는 ‘3P'가 필요하다. 즉, power(권력기반), policy(정책능력), personality(지도자 자질) 등이 필요한데, 이 세 가지를 겸비한 아들은 없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때문에 김 위원장의 통치가 불가능해진다면 일단은 집단지도체제가 등장하고 그 이후에 권력투쟁이 전개되어 세 아들 중 한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후계자’ 구도가 정착될 수도 있고,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다른 개인이나 집단이 권력을 장악하게 될 수도 있다.

통상 권력자의 자녀가 권력을 인계받기 위해서는 ‘권력기반, 정책능력, 지도자 자질 등이 필요한데, 이 세 가지를 겸비한 아들은 없다. 때문에 김 위원장의 통치가 불가능해진다면 집단지도체제가 등장하고 그 이후에 권력투쟁이 전개되어 세 아들 중 한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후계자’ 구도가 정착될 수도 있고,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다른 개인이나 집단이 권력을 장악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은 김정일 위원장의 통치불능 사태직후 권력기관들에 포진하고 있는 직계세력들에 의한 집단지도체제의 가능성이다. 이 경우 최고 권력기관이라 할 수 있는 국방위원회, 노동당중앙위원회, 노동당중앙군사위원회 등 3대 기관에 포진한 측근인물들이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하지만 당(黨)ㆍ군(軍)ㆍ정(政)이 골고루 대변되는 ‘모양새’를 중시한다면 일단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장을 필두로 그 휘하에 당과 군의 인물들이 포진하고 내각의 김영일 총리까지 포함되는 체제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권력이 당과 군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과 김 위원장이 체제생존 차원에서 선군(先軍)정치를 이끌어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국방위원회, 인민무력부 등에 포진한 군 인사들이 핵심이 될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와 관련하여 조명록 차수(80), 현철해 대장(74), 이명수 대장(71), 박재경 대장(75), 김명국 대장(68) 등이 이미 언론에 거명되고 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장도 그렇지만 군부실세 중 상당수가 혁명 제1세대 출신으로 고령이다. 집단지도체제가 등장하더라도 이어서 새로운 권력투쟁이 시작될 것으로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외정책, 경직될 가능성 커

군부중심의 집단지도체제가 등장한다면, 북한의 대외정책은 당분간 현재보다 더 경직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및 러시아와의 전통적인 우호ㆍ동맹관계에 의존하면서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 대해서는 보다 강경한 자세로 나오기 쉽다.

이러한 예상을 가능하게 하는 주된 요인으로는 ‘체제에 대한 집착’을 들 수 있다. 이들 원로 군부그룹은 북한정권 수립이후 지금까지 최고위직에 머물면서 ‘혁명의 최대 수혜자’로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이들에게 있어 체제수호는 목숨과 동일하다. 서방세계로부터의 고립이 강화된다면 북한주민의 경제난과 식량난은 악화될 것이나, 군부 원로들에게 있어 주민의 삶의 질을 해결하는 것은 체제생존 다음의 문제일 뿐이다.

[북한은] 중국 및 러시아와의 전통적인 우호ㆍ동맹관계에 의존하면서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 대해서는 보다 강경한 자세로 나오기 쉽다. 이러한 예상을 가능하게 하는 주된 요인으로는 ‘체제에 대한 집착’을 들 수 있다.

이 경우 현재 진행 중인 미북 관계개선, 북일 수교를 위한 대일협상 등이 보류되면서 중국과 러시아를 향한 북한의 구애(求愛)공세가 강화되는 국면을 예상할 수 있다. 현재의 세계구도를 감안할 때 북한의 이러한 시도는 일단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중국은 ‘도광양해(韜光養晦), 유소작위(有所作爲)’의 구호아래 굴욕의 현대사를 청산하고 중화(中華)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2020년에는 미국 경제력의 1.5배를 능가하는 경제력과 현대화된 국방력을 보유한 초강국 지위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수립해 놓고 있다. 러시아 역시 푸친 대통령 이래 과거 초강국으로서의 영향력을 되찾고자 노력 중이며, 미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하는데 중국과 합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친중ㆍ친러 시도는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화답을 받은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남북한 관계는 불가피하게 경색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지루하게 지속되고 있는 남북간 기(氣)싸움도 좀 더 길게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핵 협상 시나리오

현재 북한에게 가용한 핵 시나리오는 4가지 정도이다. 첫째는 최대한의 반대급부를 받고 핵을 완전히 포기하는 시나리오이며, 둘째는 핵무기 개발을 재개하면서 국제사회와의 대결로 회귀하는 시나리오이다. 셋째는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미북관계 개선 등 최대한의 반대급부를 얻어내다가 마지막 순간에 핵을 포기하는 경우이며, 넷째는 최대한 시간을 끌고 꾸준히 반대급부를 얻어내지만 결국 핵을 고수하는 시나리오이다.

현재로서 첫 번째 및 두 번째 시나리오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어떤 경우에도 체제를 수호해야 하는 북한 지배자들의 체제 딜레마는 여전히 그대로이며,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정책결정자들이 취약한 정치적 입지를 가진 부시 대통령과 진행 중인 대미관계 개선 과정을 차버릴 만큼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이] 가용한 핵 시나리오는 첫째 최대한의 반대급부를 받고 핵을 완전히 포기, 둘째 핵무기 개발을 재개하면서 국제사회와의 대결로 회귀, 셋째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미북관계 개선 등 최대한의 반대급부를 얻어내다가 마지막 순간에 핵 포기, 넷째는 최대한 시간을 끌고 꾸준히 반대급부를 얻어내지만 결국 핵 고수 등 4가지다.

그러나 군부의 실세들이 북한의 대외정책을 장악하는 상황이 온다면 네 번째 및 두 번째 시나리오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핵무기는 체제생존 수단’이라는 등식이 더욱 설득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정권을 장악한 군부실세들의 핵문제 접근은 두 가지 경로로 예상할 수 있다. 주민의 삶의 질 개선이라는 실용주의적 측면이 중시된다면, 네 번째 시나리오를 선호하게 될 것이다. 즉, 핵을 포기할 의도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핵 대화의 틀을 깨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 상태에서의 핵협상이 진행된다면 국제사회는 미북 양자대화 고수, 한국배제, 한미간 이간, 한국 내 남남갈등 자극 등 북한의 과거 협상전략들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위기조성, 벼랑 끝 핵외교, 의제 추가하기, 의제 쪼개기, 꼬리 짜르기(salami tactics), 강탈적 요구에 의한 기선제압 등 각종 협상전술들도 다시 목도하게 될 것이다. 1993년 북한은 느닷없이 경수로 건설을 요구하는 ‘의제 추가하기’ 전술을 구사하여 1994년 제네바합의에서 이를 관철했고, 1994년에는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한국을 겁주어 대화의 테이블에서 밀어내고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었다. 미국의 핵 탑재 군함이나 항공기의 한반도 접근이나 출입까지 금지하고 한국 내 미군기지들을 조사해야 한다는 북한판 ‘조선반도 비핵화’ 방안을 다시 들고 나오는 것은 강탈적 요구로 비대칭 세력인 미국의 기를 꺾는 협상전술이 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의 와병과 함께 정책결정권을 쥐게 된 군부가 체제위기를 느끼고 모든 것에 앞서 체제단속을 시도하고자 한다면, 북한의 핵문제 접근법은 좀 더 두 번째 시나리오 쪽으로 가까이 가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하기조차 싫은 일이지만 북한이 검증체제 협상을 거부하고 핵실험을 재개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일단 상정할 수 있다.

한국은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김정일 위원장의 통치불능 사태가 도래할 경우 군부중심의 집단지도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나 그 이후 새로운 권력투쟁이 벌어져 보다 안정적인 권력이 탄생할 것이라는 것은 합리적 추론에 의한 예상일 뿐이다. 현실에서는 강경군부 대신 실용주의 세력이 먼저 등장할 가능성도 있으며, 집단지도체제 이후에 실용주의적인 정권이 등장할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의 미래를 놓고 일정한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어쩌면 평화통일의 기회가 다가올지도 모른다. 김정일 위원장의 와병이 한반도에 복(福)을 가져올지 화(禍)를 가져올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특히, 임종을 앞둔 통치자의 심리적 요인을 중시한다면 완전히 다른 시나리오가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김정일 위원장이 병상에서나마 권력을 위임하지 않고 상당기간 통치를 이어가는 가운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다면 상기의 예상과는 다른 대외정책 행태가 나타날 수 있다. 김일성 주석이 죽음을 앞둔 시기에 남북 정상회담을 수락했듯이 또는 고 정주영 회장이 말년에 고향인 강원도 통천을 그리며 소떼를 몰고 방북하여 햇볕정책의 물꼬를 텄듯이, 권력자들도 인간이라면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는 심리적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그러한 심리변화가 북핵문제 등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때에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딱 한가지이다. 큰 소리를 내지 않는 가운데 차분하게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다. ■

김태우 / 한국국방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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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도 2개의 국제중학교가 지정될 예정이다. 국제중학교 설립을 두고 사교육 증가, 귀족학교화 등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행 교육제도하에서 특성화 중학교라는 기형적인 이름으로 국제중학교가 설립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1969년 국가가 강압적으로 시행한 평준화정책 때문이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형적인 이름으로 평준화 정책을 보완할 것이 아니라 사립학교들에게 자율성을 주어야 할 것이다.

국제중학교 설립 필요성

서울에도 2개의 국제중이 지정될 예정이다. 부산에 공립으로 설립된 부산국제중학교와 수도권의 청심국제중학교에 이어 드디어 서울에도 특성화 중학교가 생기게 되었다. 서울특별시 교육청은 특성화 중학교인 국제중학교의 지정 계획의 협의를 교육과학기술부에 요청하였다. 2006년 3월에도 서울특별시 교육청은 2007년 개교를 목표로 대원학원과 영훈학원의 국제중학교 설립 인가를 당시 교육부에 제출하였지만 전교조 서울지부장이 설립에 반대하여 16일간 단식을 결행하고, 교육부도 반대하여 결국 서울에서 국제중 설립이 좌절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설립 가능성이 높아졌다. 서울시 교육청이 밝힌 특성화 중학교 운영의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제화ㆍ정보화 시대를 선도할 글로벌 인재 육성
둘째, 장기 해외 거주 귀국학생을 위한 교육 연계성 보장
셋째, 국제 분야 교육 기회를 제공하여 유학욕구를 수용함으로써 조기유학에 따른 폐단 해결
넷째, 서울 학생의 지방 국제중학교 진학에 따른 학부모 부담 해소

국제중 설립의 필요성은 그 나름의 강력한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미 존재하는 2개의 국제중은 이러한 필요성에 어느 정도 부응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교육청은 “특성화 중학교 지정 계획”을 통해 국제중학생 선발 방식과 운영 계획을 자세하게 밝혀 국제 중학교의 특성은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서울특별시 교육청이 작성한 “특성화 중학교(국제중) 관련 Q&A”에 나타난 것과 같이 교육과정 특성화를 통해 현재 일반 중학교와 구별되는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중 설립 반대 논리

항상 그래 왔듯이 새로운 제도의 도입을 둘러싸고 치열한 찬반 논쟁이 일어났다. 교육과학기술부와 서울특별시 교육청의 세심한 운영ㆍ부작용 최소화 계획에도 불구하고 사교육 증가와 ‘귀족학교’화에 대한 우려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서울특별시 교육청이 제시한 3단계 입학 전형이 사교육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으로 판단되지만 그 전형 방식이 사교육을 억제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1단계를 통과하려면 우수한 내신 성적이 필요하다. 필기시험 없이 학생생활기록부 중심으로 전형한다고 하지만 학생생활기록부에 게재되는 사항들을 위해 사교육이 효과적이라고 판단되면 사교육을 하게 될 것이다.

2단계의 면접ㆍ토론을 위한 사교육이 없을 것이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입시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시간당 사교육비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것도 면접을 위한 사교육이다. 나아가 진학 후에 많은 수업들이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영어를 위한 사교육이 필요할 것임은 분명하다. 곧 기본인 영어를 비롯하여 내신성적, 경시대회, 면접ㆍ토론에 대비하자면 높은 소득과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학부모에게 유리한 사교육 인프라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을 부정하기 어렵다. “사교육비가 오르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는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말에 진정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관리가 실제로 사교육의 증가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교육 열풍에 대한 우려가 상위 1%를 위한 ‘귀족학교론’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제중 입학생 가운데 경제적으로 상위에 있는 계층이 많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자료가 입증하고 있다. 교육부가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9월에 작성한 ‘청심국제중 학부모 직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체 신입생 94명 가운데 전문직종이나 부유층에 속하는 부모를 둔 학생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성화 중학교라는 기형적인 이름으로 국제중학교가 설립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1969년 국가가 강압적으로 시행한 평준화정책 때문이다. … 자유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교육의 목표와 방법을 국가나 특정 집단의 교육철학으로 획일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교육과 ‘귀족학교’화에 대한 반대보다 더 근본적인 지적도 있다. 그것은 ‘중학교 교육에서부터 특성화 교육이 과연 교육적으로 바람직한가?’하는 것이다. 중학교 시기의 학생에게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지식과 인성교육을 시키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특성화된 교육’을 시키는 것이 ‘글로벌 인재 육성’이라는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인가에 대해서도 우리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특성화 중학교의 “법적인 설립 근거가 취약하며 국민보통교육기관에서 영어몰입교육으로 교수 언어를 국어가 아닌 영어로 하는 것은 위헌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지적도 가볍게 넘어갈 사안은 아니다.

평준화 정책이 기형적인 교육을 초래했다

이런 반대 논리들도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요인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특성화 중학교라는 기형적인 이름으로 국제중학교가 설립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1969년 국가가 강압적으로 시행한 평준화정책 때문이다. 평준화정책 시행 이전에는 우리나라에도 자생적으로 생성된 사립학교들이 존재했고 그 학교들은 자신들이 설정한 교육 목표를 나름대로 훌륭하게 수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자신이 설정한 교육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이런 학교들을 폐교나 다름없는 상태로 만들었다. 기형적인 이름으로 평준화 정책을 보완할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사립학교들에게 자율성을 주어야 할 것이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교육의 목표와 방법을 국가나 특정 집단의 교육철학으로 획일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회 정의나 도덕적인 관점, 자신이나 집단의 교육 철학에 비추어 설사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교육 현상일지라도 국가의 권력을 매개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것은 자유주의의 근본이념에 어긋나고 현실적으로도 성공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사교육 열풍은 국가 주도의 교육제도가 유인하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학부모의 교육열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설사 학부모의 지나친 교육열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국가 권력이나 특정 집단의 교육 철학으로 억압하는 것은 개인의 자발성과 자기 선택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귀족학교론’은 특정 집단의 교육철학을 보여주는 효과적인 말일 수는 있지만, 자유사회에서는 삼가야 한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출생에 의한 신분이 존재하는 봉건사회가 아니다. 타고난 능력에 따라 학생들의 학업 능력은 차이나 날 수밖에 없으며, 어느 정도는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의해서도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전체주의적인 발상이다.

학부모의 지나친 교육열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국가 권력이나 특정 집단의 교육 철학으로 억압하는 것은 개인의 자발성과 자기 선택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교육은 영합게임(제로섬)이 아니다. 특정 집단의 학생이 좋은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다른 집단에게 교육적으로 피해가 가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불우한 처지에 있는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 실시하고 있듯이 학업 성적이 같은 수준에 있지만 가정의 경제 능력의 차이로 입학이 어려운 경우, 가계 소득에 비례해서 등록금을 차등 부과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물론 가장 어려운 집단에 속한 학생들에게는 등록금뿐만 아니라 생활비까지 장학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사회의 근본을 허물지 않고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는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모든 사립학교에 자율성을 주자

정부 통제를 통한 사교육 억제 압력이 이제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정부의 교육 정책이 바뀔 때마다 사교육은 그 정책에 맞추어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였으며, 아예 사교육을 우회하여 해외 조기 유학을 떠나는 학생 수는 해마다 증가하였다.

사교육은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들의 육체적 정신적 성장을 위해 바람직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국제중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이 땅에서 사교육이 사라지고 필요한 교육이 공교육으로 흡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다. 모든 사람이 바람직하다고 믿고 있는 것이 왜 현실적으로 실현되지 않는가.

우리 사회가 봉착한 교육 문제를 비롯한 여러 문제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좀 더 진지하게 반성해보아야 한다. …기형적인 이름으로 평준화 정책을 보완할 것이 아니라 사립학교들에게 자율성을 주어야 할 것이다.

좌파의 쇄신을 주창하면서 ‘다윈주의 좌파’를 표방하고 있는 미국의 응용윤리학자 피터 싱어가 지적하고 있듯이 우리는 인간 사이의 갈등과 분쟁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혁명ㆍ사회적 변화ㆍ좋은 교육을 통해 갈등과 분쟁을 줄이려는 노력은 지속되어야 하겠지만 이것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모든 불평등이 차별, 편견, 억압 또는 사회적 조건으로부터만 생겨났다고 가정해서도 안 된다. 현실적인 불평등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유전적으로 능력이 다르고,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실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려는 시도는 현실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교육적 관심과 정책적 배려를 지속하기 위해서도 어떤 사회ㆍ경제적 변화가 이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 지혜로운 판단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어떤 정치ㆍ사회ㆍ경제적 체제 아래 살든지 자신의 자식들이 좀더 좋은 교육을 받길 원하고, 자신의 지위가 상승되길 바라고, 권력을 획득하거나 친족들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노력하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 이런 사실을 부정하고, 완전히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전체주의 국가를 구축하여 모든 것을 국가 권력이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단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 뿐 영속될 수 없음을 인류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사회가 봉착한 교육 문제를 비롯한 여러 문제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좀 더 진지하게 반성해보아야 한다. 이성적으로, 도덕적으로,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것을 국가가 강제력을 통해 교정할 수만은 없다. 자유로운 의사 결정 주체로서 시민들이 성숙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국가가 여기에 개입할 수는 없다. 특히 교육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과잉교육열에 의한 사교육과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른 계층의 고착화는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바람직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국제중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서 국가 권력에 의해 통제하려고 할 때에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궁극적으로 국제중학교 설립의 문제를 넘어 모든 사립학교들에게 자율성을 주려는 정공법을 택할 때가 되었다. ■


신중섭 /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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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달러 환율이 상승하면서 외환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다. 정부는 외환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시장에 개입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그 이유는 국가간 자본이동이 자율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의 외환시장개입은 아주 단기적인 효과를 제외하고는 환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따라서 환율 변동 상황이 불만족스럽다고 해서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 해결하려는 것은 외화준비 자산만 낭비시킬 뿐 효과가 없으므로, 환율 문제는 시장에 맡기는 것이 옳다.

원 달러 환율이 지난 수개월간 요동을 치고 있다. 지난 8월 한 달간 원 달러 환율은 1,014.6원에서 1,089.4 원으로 7.37퍼센트나 올랐다. 9월 1일에는 27.3원이나 폭등하여 1,116.0원에 마감되었다. 증시도 폭락하며 코스피지수를 59.8 포인트 나 끌어 내렸다. 여기에 주요 이자율까지 오르니 모든 신문의 1단 기사가 "금융시장 패닉" 이라고 외치고 있다. 지난 이틀간도 원화는 계속 추락하여 9월 3일에는 1,148.5원까지 기록했다. 2004년 10월 7일이래 최저치다.

정부의 외환시장의 개입은 원칙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운 상태에서 외화준비자산이 계속 손실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9월 금융위기설, 10월 외환위기설 등 불확실성을 높이는 루머들이 끊이지 않고 나돌고 있다. 더 이상 외환시장에 국한되지 않고 전 금융시장으로 파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진원지는 외환시장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외환정책에 대한 재성찰이 필요하다.

환율은 두 통화의 상대 가치다

환율은 두 통화의 상대 가치란 점에서 두 나라의 경제 환경을 동시에 반영한다. 원 달러 환율은 한국과 미국경제에 일어나는 일에 모두 영향을 받는 것이다. 세계의 각국통화의 달러환율이 비슷한 추세를 보인다면 이는 환율변화가 미국 경제에 기인하는 것이며 반면 원화의 달러환율이 다른 통화에 비해 유별나게 움직인다면 그 움직임은 한국경제의 특이한 상황에 기인한 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2월간의 주요 각국통화의 변동을 비교해 보자. 유로나 엔과 같은 국제통화와 싱가포르 달러나 대만 달러처럼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나라의 통화를 비교해 보는 것이 의미 있을 것이다. 이들 통화들의 공통점은 3월 초까지 달러에 대해 강세를 유지하다 그 이후 3~4개월간 보합세를 보였으며 최근 30~40일간 달러에 대해 약세로 돌아섰다(엔화는 3월초 이후 보합세 없이 계속 약세를 유지하고 있는 점이 약간 상이하다).

환율은 두 통화의 상대 가치란 점에서 두 나라의 경제 환경을 동시에 반영한다. … 세계의 각국통화의 달러환율이 비슷한 추세를 보인다면 이는 환율변화가 미국 경제에 기인하는 것이며 반면 원화의 달러환율이 다른 통화에 비해 유별나게 움직인다면 그 움직임은 한국경제의 특이한 상황에 기인한 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세계의 주요 통화의 달러가치가 공통적인 모양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달러화 자체의 가치 변동이 그 주요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즉 3~4개월 전 외환시장의 기조는 약 달러시대에서 강 달러시대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2사분기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예상을 크게 넘어 3.3퍼센트를 기록한 반면 유럽연합이나 일본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과 유가 하락이 달러화의 최근 추세 반등의 주요한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이들 통화에 비해 원화는 2006~7년 2년간 좁은 범위 내에서 등락하다 작년 11월경 다른 통화들 보다 거의 6개월 빨리 달러화에 대한 가치하락을 시작했으며 올해 3월 이후에는 더욱 가속화 되었다. 지난 6개월간에도 몇 번의 등락이 있었으나 가치하락이 트렌드가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고, 그 낙폭 또한 다른 비교 통화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위의 다른 비교 통화들이 5~6 퍼센트 정도 하락한 반면 원화는 약 20퍼센트 이상 하락하였다.

환율변동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

원화의 가치가 하락하는 데는 여러 가지 수긍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국제원자재 가격의 인상, 이로 인한 인플레 및 경상수지 적자, 외국자본의 이탈로 인한 자본수지의 적자 등등이 거론된다. 여기에 더해 정부 측의 금융정책방향이 환율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여겨진다.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은 취임 이후 줄 곧 ‘물가’보다는 ‘성장’을 중시하며 이를 수출을 통해 달성하려는 듯 원화환율의 상승을 용인하거나 심지어 유도하고자 하는 발언도 마다치 않았다. 이에 비해 이성태 한국은행총재는 지난 3월 달러환율이 1,000원 미만이던 시점에서 이미 ‘환율 고점론’ 을 내어 놓으며 원화가 단기적인 현상으로 균형 환율에 비해 지나치게 절하되어 있음을 시사했다. 지난 수개월 동안의 환율변화는 시장이 미래를 예측함에 있어 결국 재경부 측의 견해에 더 큰 무게를 주었다는 것을 말하고 이에 따라 기대 물가나 환율이 모두 오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원화의 가치가 하락하는 데는 … 국제원자재 가격의 인상, 이로 인한 인플레 및 경상수지 적자, 외국자본의 이탈로 인한 자본수지의 적자 등등이 거론된다. 여기에 더해 정부측의 금융정책방향이 환율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원화의 가치하락이 강만수 장관의 입장처럼 바람직한 것인가? 환율은 우리나라와 같이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는 ‘가장 중요한 가격’이라 할 만큼 국민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원화가치의 하락은 달러 등 외화의 원화환산 가치를 상승시켜 수출업자에게 유리한 반면 수입품의 국내가격을 인상시켜 수입업자나 국내소비자에게 불리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따라서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증대를 통해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거나 불경기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경제에서 국내통화가치의 하락은 희소식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원화가치의 하락은 또 다른 경로를 통해 경제에 영향을 준다. 수입물가의 상승은 소비자 물가지수 같은 전반적인 물가에 영향을 준다. 수입원자재들의 달러화 가격이 국제시장가격이 급격히 오름으로 인해 인플레 압력이 높은 현 시점에서 한국경제의 물가 수호자인 한국은행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환율변동이 미치는 영향으로 중요한 또 다른 경로는 원화의 평가절하 즉 달러화의 평가절상이 외화 표시 부채의 원화가치를 상승시키고 이의 원리금 상환압력을 주어 기업의 채산성을 낮춤으로 국민경제에 부담을 주고 이에 따라 외국자본의 유출을 가속화함으로써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을 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원화가치의 하락이 바람직한 것인지 당연히 의심이 간다.

시장개입은 효과 있나?

시장개입은 효과 있나? 변동환율제는 1973년 달러중심의 고정환율제(브레튼우즈 시스템)가 붕괴되면서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 선진국에서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후진국이나 신흥국에서는 엄격한 의미의 자유변동환율제도가 존재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거의 모든 나라가 외환시장개입을 당연시 해 왔다. 미국 등 선진7개국(G7)은 1985년의 플라자회담이나 1987년의 루브르회담에서처럼 공동으로 달러화의 가치를 내리거나 안정적으로 유지할 것을 결정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전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외환시장개입은 아주 단기적인 효과를 제외하고는 환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결론이다. 외환시장개입이 기대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통화량이나 금리 등 금융정책의 변경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효과를 외환시장개입의 효과로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금융정책의 효과라고 봄이 정당할 것이다.

외환시장개입은 아주 단기적인 효과를 제외하고는 환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결론이다.

국제금융경제학의 기본 명제의 하나로 트리렘마(Trilemma)라는 것이 있다. 개방경제하에서 환율의 안정, 국제자본이동의 자유, 자율적 금융정책의 세 가지를 동시에 성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정부가 이미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자본이동의 자유를 천명하고 금융정책의 기조로 인플레이션 타겟팅(Inflation targeting)을 설정한 현재 상황에서 환율의 안정은 더 이상 독자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며 환율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환율의 안정을 정책목표로 한다면 국제자본이동을 규제하거나 목표 인플레를 포기 또는 수정해야 할 것이다. 현 정부의 환율정책의 가장 큰 과오는 세 마리의 토끼를 모두 쫓으면서 이 트리렘마를 무시하려고 한 데 있는 것이다.

이상을 종합 해보면 원화가치의 하락의 이유는 지난 2사분기 까지는 새로운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기대 심리(성장 위주 정책으로 인한 인플레 인상)가 작용한 듯하고 그 이후는 달러화의 세계적인 강세에 기인한 듯하다. 지난 2사분기까지 달러화가 세계적으로 약세일 때 원화가 나 홀로 달러화에 비해 더 하락하게 된 것은 이명박 정부의 팽창적 거시경제운용에 대한 기대심리로 예상 인플레가 오르고 예측 환율이 하락된 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외환정책,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난 몇 개월간의 상황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이젠 통화가치의 약세는 원화만의 상황이 아니라 전 세계 통화에 적용되는 것이니 이젠 달러환율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대세에 대항하는 것으로 정부의 환율시장개입이 더 힘들어 지고 외환보유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유출되게 된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환율의 급격한 변동은 금융 외환정책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음을 반증한다. 한국은행이 물가안정을 최선목표로 정책을 추진함에서 기획재정부가 이에 제동을 거는 것은 불합리하며 특히 환율조정으로 물가를 제어하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이번 외환시장개입의 실패를 통해 명백해 졌다.

환율의 문제는 시장에 맡기는 것이 온당한 순서이다. 환율의 변동 특히 전반적인 추세가 불만족스러울 때 이를 외환시장개입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외화준비 자산만 낭비시킬 뿐이다.

물가를 비롯한 거시경제의 안정은 금융정책에 맡기는 것이 순리이다. 환율의 문제를 외환시장개입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국제자본이동이 자율화된 이 시점에서 극히 어려운 일이다. 혹자는 정책이자율을 조정하는 방향으로 환율정책의 방향을 권고하고 있으나 이는 환율의 문제를 거시경제운용의 가장 중요한 통제수단을 동원해 잡아보려 하는 것으로 바람직하다 할 수 없다.

현 정부가 국제자본이동의 자유나 인플레이션 타겟팅 등의 경제정책의 기본적인 틀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환율의 문제는 시장에 맡기는 것이 온당한 순서이다. 환율의 변동 특히 전반적인 추세가 불만족스러울 때 이를 외환시장개입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외화준비 자산만 낭비시킬 뿐이다. 결국 경제정책의 방향과 대전제가 수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정책 담당자들간에 미래의 한국경제상에 대해 구체적인 협정이 있어야 하고 국민과 시장 참여자들에게는 확고한 미래 예측을 할 수 있는 신뢰를 주어야 한다.

지난 수개월간의 현 정부의 환율정책은 모범적 실패작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가 과거의 실수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경제정책의 대 혁신을 이루어 간다면 이 또한 귀한 성공담으로 교과서에 남을 것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이명박 정부가 부디 남은 임기 동안 이렇게 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김윤배 / University of Kentucky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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