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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국내 경제는 물론 세계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다.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이 다양한 경기부양책을 앞 다투어 발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경기 부양책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나 정부가 연이어 내놓고 있는 미분양 해소나 건설경기 보완대책을 보면 부동산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심화될 경우 장차 내수 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정부 당국의 인식은 엿볼 수 있다.
경기적 요인이 아니더라도 새 정부 들어 부동산 규제에 다양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매우 높았다. 정권의 변화가 있기도 했지만 과거 부동산 관련 규제가 가격 안정에 치우쳐 다소 과도했다는 평가가 있기 때문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규제완화
그러나 이러한 기대감과는 달리 부동산 규제 완화의 속도는 무척이나 더딜 뿐만 아니라 그 내용과 범위 역시 매우 제한적이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규제완화가 너무 “찔끔찔끔”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몰 멘 소리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가 내놓는 부동산 관련 대책마다 조건과 제약이 일일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수도권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책 및 제도 변화 이후에 나타날 가격 불안의 우려가 내포되어 규제완화의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완화의 범위를 매우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수도권에 대해서는 여전히 매우 소극적인 대응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시장경제 논리를 표방한다는 정부는 출범 이래 계속하여 부동산시장의 가격 안정을 전제로 할 때만 규제 완화가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도대체 ‘가격 안정’이 무엇인가? 상반기 전국의 주택가격은 이미 물가상승률을 하회하는 3%대에 그쳤다. 그렇지만 특정 지역의 주택가격은 상반기에 두 자리 수 이상 상승한 지역도 있다. 버블 세븐지역이라고 규정한 강남 일부 지역은 상반기에 오히려 5%가량 가격이 하락하였다. 대신 올 상반기 전북지역은 공식적인 지가상승이 20%에 육박한다. 즉, 안정의 기준을 지역에 국한되어 볼 것이냐, 전국의 수준으로 볼 것이냐 부터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정부는 이렇게 부동산 가격 변동이 지역별로 다르게 나타나자, 이번에는 지역여건에 맞는 차별적인 부동산 대책을 수립하여 시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 차원에서 지역별로 차별할 수 있는 정책은 매우 제한적이다. 또한 지역구분에 따르는 기술적인 문제점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지난 8.21 부동산 대책 발표 후 국내 건설업종의 주가지수는 일제히 6%가량 하락하였다. 주식시장처럼 정책에 민감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시장은 이렇게 정부의 부동산 규제완화에 실망감을 표현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 대책이 건설업체들의 의견만을 수용한 대책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건설업계에서도 실망감을 내비치긴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미분양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신도시나 공급관련 규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규제완화를 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부동산 규제 완화는 시장을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입장과 논리를 가질 수 있다. 부동산 문제를 ‘경제 문제’로 보느냐, ‘분배 등 이념의 문제’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입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부동산 문제는 지역경제의 현안이면서 동시에 지역주민들의 민원사항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역이 처한 상황에 따라 서로 상반된 의견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중앙정부는 부동산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우선 정부는 특정한 입장에 쏠려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 정부의 부동산 대책 모두가 문제투성이였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각각의 대책들이 특정 이념과 주장에 쏠려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정책수립에 있어 균형 있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5년 동안 부동산 시장의 가격은 유래 없이 상승했다. 전례 없이 강도 높은 많은 대책이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부동산 가격 상승은 지속되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즉 급한 일이 있는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부동산 시장의 가격은 유래 없이 상승했다. 전례 없이 강도 높은 많은 대책이 발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부동산 가격 상승은 지속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라는 아주 악조건 속에 있다. 우리 스스로가 조절할 수 없는 외생변수도 매우 많다. 따라서 부동산 문제 역시 이러한 종합적인 상황에서 다루어지고 취급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비교적 소득이 높아 구매력이 있는 수도권을 제외하고 지방의 규제를 푸는 것이 어떤 효과가 있겠는가?
이제 수도권에 남아 있는 문제는 LTV와 DTI규제이다. 이 규제는 과거 금융기관들이 과도하게 대출경쟁을 할 때에는 효과적인 조치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설사 두 규제가 풀린다고 하더라도 금융기관들은 무리한 주택담보대출을 시행할 수 없다. 세계금융시장의 경색으로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수요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8%를 넘어섰다. 고정금리는 10%대이다. 누구라도 쉽게 대출로 집을 사기 녹록한 상황이 아니다. 그러므로 금융규제를 푼들 시장이 다시 과열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 뿐인가? 조만간 발표된 세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양도세가 완화되면 부동산 가격은 오히려 매물증가로 가격이 하락할 것이다. 이미 5년 이상의 호황 끝인 지금, 부동산을 구입하겠다는 사람보다 이익을 실현하고 싶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걱정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매도자금이 소형 재개발 지분 등에 재투자되는 부작용을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가계의 금융부채가 많은 현 상황에서 적절한 부동산 처분은 오히려 가계부채 상환재원으로 활용되어 우리 경제를 건전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8.21] 대책은 최근의 문제가 되고 있는 미분양 등의 문제해소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것은 대책에 담긴 수요활성화 내용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 아무리 공급 관련 규제를 정비하고 완화할지라도 수요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
지난 8월 21일 정부와 한나라당이 발표한 「주택공급 기반 강화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은 최근 부동산 경기 둔화에 대한 정부의 시각이 이전보다 좀 더 심각하게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내용의 상당 부분이 내수 경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설 경기의 연착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대책은 최근의 문제가 되고 있는 미분양 등의 문제해소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것은 대책에 담긴 수요활성화 내용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물론 9월초 부동산 관련 세제개편이 예고되어 있다. 그러나 내용과 범위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이는 지금까지 정부가 보여 온 부동산 정책이 매우 미온적이었기 때문이다.
과감한 규제완화가 필요하다
지금의 부동산 관련 규제완화는 크게 두 가지의 숙제가 있다. 우선 경기 전반을 고려해 ‘시급히 개선해야 할 것’과 기본적인 정책의 틀을 개선해야 하는 ‘중요한 것’이다. 이번 8․21 대책에서 발표된 다양한 공급관련 정책은 후자이다. 여론의 비판과는 달리 이번에 제시된 다양한 공급제도 보완은 비단 경제 활성화 측면만이 고려된 것이 아니다. 이는 이미 기업과 시장에서 장기간 동안 개선을 요구해왔던 사항이다. 불필요한 절차의 중복, 현실과 괴리되었던 제도를 현실에 맞게 개선한 것이다.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나 일반 분양분의 후분양 강제, 분양가상한제 일부 보완, 재개발 재건축 사업 절차 개선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이를 두고 건설업체만의 의견을 반영한 규제완화라고 매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한편 ‘시급한 문제’에 대한 정부의 접근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외환위기 이후 사상 최대의 미분양이 적체되어 있는 현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일까? 주택시장의 활발한 거래를 통해 미분양이 해소되는 것일 것이다. 현재 건설 경기 둔화와 부진은 신규 수주 물량의 고갈보다는 기존 사업에서 자금이 회수되지 못하는 데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 거기에 자재가격 상승과 금융비용의 증가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택 등의 부동산 산업은 수요가 견인하는 사업으로 공급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편리성보다는 수요 회복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아무리 공급 관련 규제를 정비하고 완화할지라도 수요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신중함과 점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선인들의 표현 중에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듯이 근본적인 것일수록 천천히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그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급한 문제는 조금 다르다. 시급성을 요하기 때문에 다소 과감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부동산 시장 상황은 지난 외환위기 직후가 아닌 외환위기 직전과 오히려 유사하다. 즉 부동산 및 건설시장의 내부 문제가 거시경제적인 악재를 만나면서 경기침체를 가속화시켰던 지난 1997년의 상황을 다시 한 번 상기할 때이다. 이제 부동산은 당분간 경제문제이다.
만약 정부가 부동산 규제와 관련하여 근본적인 것과 시급한 것을 분리해서 제시한다면 국민들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지금의 경제상황이 안 좋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급한 문제에 대해 정부 정책이 실기한다면 근본적인 문제해결에도 역시 시장은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정부의 좀 더 과감한 행보를 기대해 본다. ■
김현아 /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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