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와 노조전임자 임금 관련 법 조항의 시행유예만료기간이 2009년 말로 다가옴 따라 또 다시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복수노조 문제는 노조의 계급지향적 노동투쟁방식을 폐기하지 않을 경우 기업의 위기의식은 더욱 커질 것이다. 또한 노동투쟁의 전리품으로 인식되는 노조전임자 문제는 귀족노조와 노동계급정치를 양산하고 있어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조합비로 전임자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정치지향적 계급투쟁 강령을 폐기하고, 노동운동이 영국과 미국 등 선진국처럼 근로조건 향상이라는 '일’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복수노조 문제와 노조전임자 임금문제가 또 다시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다. 그 이유는 개정 노동법의 시행유보 기간이 2009년으로 만료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들을 시행유보 했던 이유는 노조전임자 임금보조를 중단했을 때 예상되는 반발과 복수노조 등장으로 산업이 곤경에 처하는 상황도 피하고 싶다는 단순한 사고 때문이었다.

그러나 복수노조 상황이 아니었어도, 쌍용자동차 분규는 민노총 상급조직과 정당⋅사회단체 개입으로 회사존립을 위협하는 단계까지 갔었다. 이것은 복수노조에 대한 우려를 왜소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밖에 반정부 정치투쟁에 조직력을 가동하는 민노총의 자금력이 입증되면서 노조전임자 임금문제도 새로운 조명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우리는 전투적 노사관계국가라는 외부세계의 혹평을 감수하면서 민노총의 투쟁노선이 문제라는 실상을 밝히지 않는 이중사고에 빠져있다. 만약, 계급지향적 노동투쟁을 노사관계 우산으로 감싸지 않았다면 노사관계 담론은 헌법정신을 존중하는 기조 위에서 실용적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이 글은 이런 시각에서 복수노조와 전임자문제 본질을 조명하고자 한다.

복수노조 선결과제는 민노총의 '계급지향적 투쟁’ 강령 폐기

복수노조에 대한 공포는 노조가 투쟁하는 단체라는 인식 때문이다. 노조를 계급투쟁 수단이라고 가르치는 마르크스 교시에 따르면 복수노조 상황은 계급투쟁 확산을 의미하므로 기업측에 위기의식을 일으킨다. 일본노조 총평이 전개한 계급투쟁 노동운동을 닮은 민노총의 일관된 투쟁노선은 기업측에 불안감을 주었고 그것이 복수노조 공포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노총의 투쟁노선은 권력과 자본을 분쇄대상으로 규정한 강령에서도 나오지만 노사분규 외관을 빌리고, 사회는 그것을 노사관계 이름으로 수용하는 척하면서 뒤에서 속앓이를 했다. 쌍용자동차 사태는 정부와 재계를 포함한 노사관계 당사자의 이중적 접근자세에 경고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민노총 투쟁노선의 원천인 강령을 용인하면서 법과 질서라는 빈말을 반복하고 애국심을 팔아 언론플레이하는 이중성이 문제를 키웠다. 노조 내면에서 투쟁하는 단체로 이끄는 이데올로기에는 눈을 감고, 외부에 나타나는 단편적 행동만 보는 이중사고가 노사관계 불신을 조장했다.

영국에서 나온 최초의 노조는 조합원의 일을 지키기 위한 단결이었으며 자연스럽게 직종별노조가 발달했다. '근로조건 향상을 위하여 근로자에’ 노동삼권을 준다는 한국헌법의 간결한 표현 속에는 영국형 노시관계 역사교훈을 수용하는 논리가 들어 있다.

영국기업은 다수노조와 공존하면서 단일테이블 교섭방식(single table bargaining)을 고안하고 단일노조 협정(single union contract)을 성사시키며 유연하게 대응했다. 중소기업 중심인 영국과 달리 대기업이 주류를 이루는 미국에서는 적절 교섭단위제도(appropriate bargaining unit)를 설계하여 경영안정과 능률을 도모했으며, 기업별노조를 선택한 일본에서는 종업원 분열을 의미하는 복수노조가 생소하다. 계급투쟁 이데올로기가 없는 환경에서 일을 두고 형성되는 복수노조는 기피대상이 아니라 관리대상임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역사적으로 복수노조에 직면한 나라들은 다양한 접근방법을 개발하여 노사가 공존해 왔으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민노총의 투쟁노선을 지적하지 못하고 속으로 두려워하는 환경이 실용적 토론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종업원의 자유로운 접근과 선택이 소외될 우려도 있다.

호주 하워드정부는 세계에서 최초로 개별근로계약을 단체협약 수준으로 보호하는 절차를 도입하였다. 이것은 단결권을 노조에 독점시키는 제도가 도전받고 있다는 증후라고 할 수 있으며 복수노조에 대비하는 한국에도 참고가 될 것이다.

노조전임자 문제의 본질은 정치적 노동투쟁

노조전임자 이슈 속에는 임금문제보다 훨씬 심각한 국면이 숨어있다. 먼저 전임자 지위가 노동투쟁의 전리품이라는 인식에 문제가 있다. 전임자가 되면 근로제공의무를 면제받지만 그것을 노동투쟁의 전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임자가 담당할 직능과 과업을 따지지 않고 몸집만 키우려는 나쁜 버릇이 생겼다. 전임자문제가 빗나가기 시작한 출발점이다.

노동투쟁의 강도가 커질수록 그 전리품인 전임자 수가 증가되어 지금은 전임자 계층을 형성하고 노동조직 안에 귀족반열이 군림한다. 노동 내부에 일하지 않는 귀족계층이 늘어나자 그 중간에 근로제공의무를 불이행하는 준귀족층이 파생했다. 노조에 이름을 걸어 두고 일하지 않는 종업원계층이 있지만 투쟁하면 주어야 할 자리이기 때문에 묵인되고 있으며, 그것이 생산에 미치는 영향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 환경이 된 것이다.

근로제공의무에서 해방된 전임자계층이 정치적 노동투쟁의 중추를 이루고, 정치적 노동투쟁은 다시 전임자계층의 일상적 직능으로 변하여 순환된다. 한국의 전임자계층이 19세기 혁명적 환경에서 마르크스가 개발한 '노동계급정치(working class politics)’ 전술을 21세기 환경에서 실천하고 있다.

귀족노조 타파위해 전임자 임금은 조합비로 지급해야

노조를 투쟁하는 단체로, 전임자를 노동투쟁의 전과라고 보면 임금은 패자인 사용자 부담이 되며, 이것이 한국의 관행이 되었다. 그러나 노조 목적을 조합원의 일 보호에 맞추면 전임자문제는 노조 내부관리문제로 바뀐다. 일을 지키기 위하여 단결한 영국노조는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관리비를 조합비로 충당했기 때문에 일하지 않는 귀족층이 생기지 않았다.

노조가 현장에서 일을 지키게 되면 조합원을 위한 봉사와 희생정신이 나오고, 활동범위가 확대되면 노조 힘으로 보상하는 시장원리가 작용될 것이다. 현장에서 보면, 조합원의 일을 지키는 노조활동과 기업의 생산 활동이 동행하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보상이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와 기업은 노동문제를 일과 분리하여 아웃소싱(outsourcing)시킨 결과 '일’이 빠진 이상한 노동문화가 나왔다. 노사분규는 정부 관계당국과 특정 단체의 존재이유가 되었으며 노사관계가 안정되면 존재이유도 없어진다는 아이러니가 성립된다. 노사관계 이슈가 터질 때마다 본질적 해법을 추구하지 않고 고식적 임기응변으로 일관하는 이유가 나타난다.

기업이 번영해야 임금을 더 요구할 수 있다며 노조를 이끈 영국 초기노조의 비즈니스 유니오니즘(unionism)이나, 조금이라도 더 받아내는 것이 노동운동의 목적이라는 미국의 비즈니스 유니오니즘 중심에는 일이 있었다. 노⋅사가 함께 일을 떠나 대결하면 거창한 계급차원의 이익이나 편협한 명분에 따라 행동하는 교조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일이 노사관계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말하는 것이며, 일에서 소외된 한국노사관계 상층구조의 한계를 암시한다. 영국이 노동부 역할을 산업관련부서에 이관한 이유가 나온다.

노조, 정치투쟁 폐기하고 근로조건 향상에 목적을 둬야

일이 노사관계 중심에 오면 노조가 단결권을 독점하는 제도에 의문이 생긴다. 영국에서 처음 나온 단결권 원형은 노동이 쟁취한 것이며 후발공업국에서 단결권을 노조에 독점시키는 법이 나왔다. 영국에서 단결권 독점현상(closed shop)은 대처정부에서 사라졌으며, 오바마정부가 추진 중인 종업원 선택권 확대(Employee Free Choice Act)나 호주의 하워드정부가 종업원단체에 교섭권을 인정한 것은 단결권 독점상황의 변화를 의미한다.

한국에서도 헌법상 근로조건 향상목적에 충실하면 종업원의견 수렴방식을 개방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노사협의회’에 종업원임금 대변기능을 부여해도 헌법상 이상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유럽에서 근로자평의회(works council)와 노조가 기능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은 단결권을 노조에 독점시키는 환경의 변화를 말하며, 현안인 복수노조문제 해법에도 중요한 활로를 제시한다.

계급투쟁 이데올로기를 포기한 영국노동은 기업의 파트너가 되어 생산성 향상운동을 전개한다. 일을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보면 근로계약은 파트너십계약과 유사하므로 노조가 생산성 향상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생산성향상운동에 동참하는 노조를 생각하면 복수노조 공포는 곧 투쟁노선 공포와 같은 것이다.

시장원리가 존중되는 영국에서 노조는 생활공동체 형태로 변하고 있다. 일을 촉매로 기업과 노조 그리고 지역사회가 공동체적 유대관계를 맺고 공존하는 면에서 보면, 단결권을 노조에 독점시킨 19세기 구도는 더 이상 성역이 될 수 없다. 노조기능이 지역공동체 안에서 재설계되는 21세기 변화방향을 코뮤니티 유니오니즘(community unionism)이라고 한다면, 쌍용자동차 사태는 이것을 한국에 알리는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을 종합할 때, 민노총의 정치지향적 투쟁노선이 그대로 있다면 노사를 만족시키는 묘안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먼저 민노총이 헌법정신을 존중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노조로 변해야 하며, 이것은 다시 투쟁정신의 원천인 강령을 수정해야 가능한 일이다. 결국 대안개발노력의 우선순위가 민노총 강령 수정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만약 이중적 접근자세가 이런 노력을 기피한다면 어떤 대안이 나와도 유사 쌍용사태는 이어질 것이다. ■

김영환 / 명지전문대 명예교수

저자소개:김영환 명예교수는 명지전문대학에서 정년퇴직 후 민노총의 투쟁 노선 등 좌파 노동이론에 대해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노동조합의 기원과 조직형태’, '불법폭력파업과 시민권리 보호’, '한국노사관계의 재인식-일 중심 노사관계와 계급투쟁 노동운동’ 등이 있다.



[언론기고] 노조전임자 임금은 노동조합이 부담해야
[리버테리안] 귀족노조'라는 표현에 숨겨진 독소
[Digest]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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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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