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사정관제도는 대학이 자신이 원하는 인재를 독자적인 방식으로 자율적으로 선발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이다. 국가주도의 교육정책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마련한 입학사정관제를 다시 정부가 개입하여 관제 입학사정관제로 천편일률적으로 시행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관 주도의 정책은 교육 자율의 취지에도 맞지 않으며, 그 부작용으로 인해 늘 학생과 국민들만 피해를 입는다. 정부가 할 일은 자신이 세원 '자율’과 '경쟁’의 원칙을 지키고 학교에 실질적인 자율을 회복해 주는 것이다. |
이명박 정부 집권 후 많은 국민들이 기대한 것과 정반대의 정책 지향과 정치 행보에 크게 실망하고 있다. 정치 분야, 노동 분야의 대응 방식에서부터 반(反)시장 경제정책에 걸쳐 국민들은 실망감과 배신감을 갖게 된다. 교육 분야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관제자율과 방임행정으로 가나?
원래 이 대통령의 교육 부문 대선 공약 사항의 핵심은 '자율’과 '경쟁’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반 동안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자신의 공약과는 정반대로, '자율’과 '경쟁’은 명분에 그치고 실제에 있어서는 '관제(官製) 자율’과 '방임(放任)행정’으로 가고 있다.
관제 자율이라고 하는 것은 '자율’을 앞세우지만, 정부 당국이 일일이 가이드라인을 정하여 개입하는 행태를 말하는 것이다. 아직도 대학입학 전형이나 중등학교의 선발권의 핵인 평준화 정책에 대하여 이전의 정부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대학입학전형은 주관 부서가 교육부에서 대교협으로 이관된 듯하고, 평준화 정책은 오히려 좌파 정부보다 더 강화하고 있는 듯하다. 특목고, 자율형 고등학교의 신입생 선발 전형에 대한 통제가 오히려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방임행정이라고 하는 것은 정작 법질서와 기강을 잡아야 할 경우에는 당국의 권한을 온당하게 사용하지 않고 방기(放棄)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학생들을 부당하게 동원한 작년 쇠고기 파동 불법시위 때 교육당국의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대응이 이에 해당한다.
최근에 대통령의 행보는 '중도’를 표방하면서 서민 대책에 치중하고 있다. 서민들의 민생을 해결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다만 그 맥락의 연장에서 교육정책이 애꿎게도 자율과는 반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민생투어의 일환으로 대통령은 한 지방의 학교에 들러서 학생들과 대화하며 면접만으로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고, 지난 7월에는 라디오 연설을 통하여 임기 말에는 대학입학사정관을 통하여 100% 신입생을 뽑을 수 있는 대학입학 전형을 교육개혁 드라이브 차원에서 추진하겠다고 한 바 있다.
대입사정관제도의 취지에 어긋난 국가 주도 입학사정관제
현 정부의 교육정책의 지향점을 보면 절대 왕정이나 군사독재 정권의 것과 너무나 닮아 있다. 교육정책 시행을 국가의 '시혜’로 보는 듯하다. 대통령이 시혜를 베풀듯이 순진한 학생들에게 면접만 가지고 대학 갈 수 있다고 하면, 그 아이들의 머리 속에는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는가. 공부 안 해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허황되고 그릇된 믿음을 심어준다. 뭐 하나만 똑 부러지게 잘 하면 누구나 원하는 대학 간다고 선동한 과거 '이해찬 세대’를 또 다시 만들려는가.
대입사정관제도야말로 대학자율의 백미인 전형제도이다. 각 대학이 자신이 원하는 인재를 독자적인 방식으로 선발하기 위하여 마련한 제도이다. 이 제도가 우리나라에서도 큰 매력을 갖는 것은 국가주도의 수능시험의 한계가 있고, 내신은 평준화 정책으로 신뢰성을 잃고 있는데다가 내신 성적 자체가 대학의 수학능력을 예견하기보다는 중등학교 학업의 기록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주도의 교육정책의 단점을 제거할 수 있는 입학사정관을 다시 국가가 개입하여 정부 주도로 하겠다는 것은 이 제도의 취지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처사이다. 대학이 신입생 선발 전형에 있어서 어떤 평가 준거를 사용할지, 평가 자료는 무엇으로 정하고, 어떤 비율로 할 것인지, 그리고 대입사정관을 존치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대학의 자율과 권한에 맡겨져야 한다. 면접 100%만으로 전형할 수도 있고, 수능시험과 내신을 혼합할 수도 있고, 본고사를 치를 수도 있고, 대입사정관이 전권을 가지고 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처럼 각 대학이 독자적 방식으로 선발해야 '자율’이라고 하는 것이다.
한편, 대학에 따라서 입학사정관을 두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분위기로는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으면 각종 교부금이나 지원금의 차등을 두는 것처럼 되어 있어서 너도나도 다 입학사정관을 두고자 한다고 한다.
이러한 방식은 5공화국 때 교육정책에 아주 닮아 있다. 당시 교복, 두발을 '자율화’한다고 하여 '전국적으로 폐지’한 경험이 있다. 그 결과 예기치 않게 당시 많은 부모들이 교복 대신 입게 될 아이들의 옷 걱정에 적잖은 부담을 떠안은 경험이 있다. 현재처럼 '관제’ 대입사정관제가 추진되면 어떤 부작용이 나올지 아무지 예견할 수 없다.
천편일률적 입학사정관제는 부작용만 나올 것
설사 이명박 대통령이나 교육 관료들의 발상대로 대입사정관제가 관 주도로 천편일률적으로 시행되었다고 치자. 우선 이를 수용토록 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보조금을 지급할 것이며, 이를 미끼로 대학학사업무에 또 얼마나 많은 개입과 간섭을 할 것인가. 구조조정과 민영화로 인한 효율적 정부 구상과 예산 절감하겠다는 대선 공약과도 배치된다.
둘째, 현재 추세로 모든 대학이 이 제도를 채택할 경우 입학사정관을 할 인력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은 상황은 또 어쩔 것인가. 혹시 전시에 병력을 동원하듯이 학식 있는 사람들을 '국가동원’ 형식으로 모조리 불러 모아 입학사정관에 앉힐 것인가.
셋째, 각 대학이 채용한 입학사정관의 전형결과에 대하여 신뢰성과 객관성 확보 방안은 무엇인가. 만약 조급하게 도입한 결과 대입사정관의 결정에 따라 낙방한 수험생과 학부모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 어떤 대책으로 사태를 해결할 것인가.
관 주도로 대입사정관제를 권장하는 것은 이 제도의 취지뿐만 아니라 교육 자율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늘 관이 주도했다가 문제가 생겨 피해 보는 것은 해당학교와 학생, 그리고 국민들이다.
과거 교원 정년을 무리하게 단축하여 교원 수급이 맞지 않아서 교육대학에 편입생 모집을 종용하고 사대 졸업생에게 초등교사 저격을 남발하여 교단과 학생들의 반발을 샀고, 또 교원 임용고사를 한 해에 7번 이상 치른 적도 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는 초등 교원 적체가 다시 발생하는 등 악순환은 모두 국가 개입으로 인한 것이다.
정부의 할 일은 '자율’과 '경쟁’의 원칙을 지키는 것
결론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할 일은 아주 단순하다. 자신이 세운 '자율’과 '경쟁’의 원칙만 지키면 된다. 대학에게, 그리고 초·중등 단위학교에 실질적인 자율을 회복해 주면 된다.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도록 학교선택권을 돌려주면 된다. 권력의 속성상 뭔가를 '규제’하고 싶다면, '규제의 패러독스’에 따라 규제하라. 규제를 없애기 위해 정부기구와 권력집행을 단속하는 '규제’만을 하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규제와 간섭으로 '자율’은 허울뿐이고, 실질적인 자율과 경쟁 체제가 확립되지 않는다면, '경쟁적 사회주의’처럼 된다. 사회주의자들이 어리석은 '꾀’를 내어 만들었다는 경쟁적 사회주의가 성공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자율’로 포장된 '관제’ 교육정책이 실패할 것이 분명한 것은 이 때문이다.
김정래/ 부산교대 유아교육과 교수
김정래 교수는 영국 University of Keele 대학원에서 교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부산교육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전교조 비평’, '서양교육사절요’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