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환경운동의 대부 최 열
2. 反독재, 反자본 이념으로 접근한 초기 환경운동
3. 환경운동단체에 막강한 영향력 행사
4. 정치참여
5. 환경운동의 꽃은 反核운동, 하지만 북한핵에는 관대
6. 환경을 명분으로 反美운동에도 적극적
7. '개발=공해’ 인식가지고 있으면서 기업후원으로 단체유지
'한국 환경운동의 대부(代父)’라는 칭호를 기꺼이 써줄 수 있는 인물은 바로 환경재단의 최열 대표다. 그는 한국최초의 환경운동단체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만들었으며, <환경운동연합>(이하 환경연합)을 창립해 사무총장과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환경연합은 2008년 중앙조직과 51개 지역조직을 거느리고 있으며 회원 수가 한때 8만 5천명에 달하는 아시아 최대 시민단체다. 회원들의 회비만 해도 2009년 평균 월 5천만 원 이상씩 들어오며 2003년 최열 대표가 사무총장을 떠나기 직전에는 월 7천만 원의 회비가 걷혔었다. 환경연합은 '(사)시민환경연구소’, '환경법률센터’, '(사)환경교육센터’, '월간 함께 사는 길’, '(사)시민환경정보센터’, '에코 생활협동조합’ 등 일부는 독립적 법인형태를 갖춘 전문기관이 소속되어 있다.
최열 대표는 현재 환경단체를 지원하기 위한 재단인 환경재단을 주도적으로 설립해 창립이후 지금까지 대표를 맡고 있다. 또 2008년 2월 환경재단 산하에 기후변화센터를 창립해 공동대표도 겸하고 있다. 환경재단은 상근자 50명에 2008년 사업비 59억 원에 육박하는 시민단체 재단치고는 거대 재단이다.
한국 환경운동사에서 최열 대표의 활동을 빼놓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열 대표가 '33년간 해온 환경운동’을 환경재단이 펴낸 책 [환경운동25년사, 자연의 친구들1, 2]과 [환경운동과 함께한 33년], [억지와 위선] 등의 책과 그 동안 최대표의 각종 인터뷰와 신문기사 등을 정리해본 결과 그의 33년은 환경을 살리는 일과 반미 반시장적 이념이 복합적으로 착종된 운동이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본 인물 모니터는 환경운동의 지평을 개척하여 '환경운동의 대부’, '한국 환경운동사 그 자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최열 환경재단 대표의 활동을 이념적으로 경도되어있는 부분에 집중하여 모순을 밝혀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