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하고 지내니?”라는 말이 뼈저리게 가슴 아픈 이들이 있다. 소위 '백수’, '백조’라고 불리는 취업 준비생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안고서 하루하루를 자신의 스펙 만들기에 투자하고, 어떤 이들은 공무원학원에 발을 돌린다. 치열한 경쟁자들과 시간, 정보와의 전쟁에 돌입하는 것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학원을 다니고, 스터디를 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그 불확실한 시기를 견뎌낼 수 있는 것은 작은 희망 하나를 안고 그 빛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필자도 얼마 동안 이런 시기를 경험했었고, 이러한 경험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감 상실과 사회에 대한 불만족, 갈등을 조장한다. 이 문제가 장기화되면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수 있으며, 사람마다 다양한 비용의 형태를 가지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으로 치러야 할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실업으로 인한 소득의 상실이 주된 비용일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화폐소득보다 높은 가치가 부여되는 역할수행의 성취감, 일상의 질서, 직장에서의 교제, 도전과 다양성 등의 상실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실업이 이러한 비용을 다 합쳐서 나타날 수 있다.

세계적인 경제침체의 여파로 지난해 우리나라 청소년 경제활동참가율이 사상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9 청소년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5세 이상 24세 이하 청소년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6.3%로 전년 대비 1.8%포인트 감소했다. 특히 지난해 연령대별 경제활동참가율은 15세 이상 19세 이하의 경우 6.5%, 20이상 24세 이하의 경우 50.1%로 나타났다. 청소년 경제활동 참가율은 관련 통계가 처음으로 작성된 2002년 34.4%에서 2003년 34.3%, 2004년 34.8%, 2005년 33.3%, 2006년 30.2%, 2007년 28.1%를 기록한 바 있다.

지난해 청소년 실업자는 전년 대비 1.4%(2000명) 감소했으며 청소년 취업자는 전년 대비 7.5%(11만4000명) 감소해 실업자보다 취업자 감소율이 더 크게 나타났다. 특히 청소년 실업률은 9.3%로 전년 대비 0.5%포인트 증가했으며, 이 가운데 15세 이상 19세 이하의 실업률은 10.2%, 20세 이상 24세 이하의 실업률은 9.2%로 각각 나타났다. 또한 지난해 청소년이 졸업이나 학업 중단 이후 첫 일자리를 얻기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평균 11개월로 전년과 같이 나타났다.

청소년 실업문제는 사실 꾸준히 제시되었던 우리사회의 커다란 문제점 중의 하나이다. 지금처럼 경제구도가 고도화되면서 청소년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으며, 인구가 감소하고, 현재의 전반적인 고용사정 악화로 인해 고용부진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고학력자 공급의 증가로 질 좋은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노동시장의 수급 불일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우선, 청소년 개개인은 눈높이를 맞춰 사회가 요구하는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학생 계층인 15~29세의 인구 증가로 비경제 활동 인구가 늘고 있는데다 고학력자의 증가로 청년층의 눈높이는 상승하는 반면 이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는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좋은 일자리, 괜찮은 일자리를 선호하면서 금융계나 서비스, 일반대기업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반면, 소위 3D업종이라고 하는 곳에는 사람들이 없어서 외국인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기업의 채용문화가 바로 현장에 투입 가능한 인재를 원하는데 대학 졸업자의 업무 수행능력 미비로 기업들이 경력직을 채용하는 성향이 겹치면서 청년층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대학시절 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되기 위한 준비가 꾸준히 필요하다. 여러 경험을 통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업종을 선택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인턴 경험을 통해 즉각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차원에서는 현재 비정규직보호법, 최저임금제와 같은 고용과 관련된 수많은 법과 규제를 해제해야 한다. 이러한 규제는 기업의 고용 경직성을 높여 오히려 기업들의 고용을 막고 비정규직의 고용도 불안케 하고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 및 고용관련 규제완화의 기반 위에 기업의 일자리 창출이 실현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실업극복이 가능할 것이다.

지속적인 청년실업의 증가는 사회적 역동성과 경제발전을 위축시키기 마련이다. 청소년들은 사회진출 초기부터 왕성한 활동의욕이 꺾이고 주변 환경에 소극적인 태도를 갖게 될 것이며, 이런 현상이 계속될수록 우리 사회에 미치는 사회적 손실은 엄청나다. 청년 실업문제는 이들의 실업자체도 문제지만 장기적으로 현재 청년들의 인적자원 실현을 요원하게 하여 그 동안의 사회적 비용을 사장시키는 데에 더욱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하루빨리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해제 정책이 요구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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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다녀오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며, 우리 사회의 분열이 초래되지 않길

차분하고 진지했다. 근조 배지를 달고 국화꽃을 든 시민들은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길게 늘어져 차례를 기다렸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 2시, 그럼에도 줄은 줄어들지 않았다. 노란색 천막 안으로 마련된 분향소에서는 고인의 영정 앞으로 헌화와 절이 계속됐다. 주변에서는 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이 방송됐고, 유서내용이 적힌 대자보가 나붙었으며, 넋을 기리는 시민들의 글 자취들이 천에 담겨 흩날렸다. 5월 25일 덕수궁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의 모습이다.


지난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사진은 서울에 마련된 덕수궁 앞 분향소 모습

한국 현대사의 슬픈 역사가 또 한 번 쓰였다. 지난 토요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는 온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지게 했다. 있을 수 없는 일 아니냐며 뉴스를 연신 훑던 사람은 비단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와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고 있었던 그가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영욕의 삶을 마감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기에 안타까움은 더하기만 하다.

오늘 찾은 서울 분향소에서는 그의 마지막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학생, 회사원, 주부, 어르신들까지 옷을 잘 갖춰입지 못했어도 나눠준 근조 배지를 가슴에 차고, 영정 앞까지 가는 길은 엄숙하기만 했다. 우려하던 전경과의 대치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님 편히 쉬세요. 대통령님의 꿈은 이제 산자의 꿈입니다’, '편히 쉬세요. 안녕히 가세요’, '힘들게 외롭게 보내드려 죄송합니다’ 등 국민들이 남긴 메모들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가슴 아파하고 있는 지 잘 보여준다.


분향소 앞에는 조문을 하려는 수많은 시민들이 줄을 서 있었다.
주변에선 조문객이 남긴 글띠가 흩날렸고, 노 전 대통령의 사진과 유언들이 붙혀져 이목을 끌었다.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 고통을 전부 이해할 길은 없다. 다만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었던 유언만이 그의 심적 상황을 헤아리게 한다. 최근 들어 잇따라 터진 측근과 형, 부인, 아들 등 가족들의 비리연루는 그에게 치명적인 상처와 자존심의 저해를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고 자신의 상징과도 같았던 도덕성이 무너지면서 모멸감을 견디기 힘들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기에, 그가 죽음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생을 마감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다.

산 자들의 일은 무엇보다도 차분한 애도와 이후 사회적 안정을 위한 노력이다. 많은 국민들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사회적으로 큰 혼란상황이 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빈소 주변에서는 그러한 분열과 반목의 기미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는 듯하다. 일부 노사모 회원 등에 의해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팽개쳐졌고, 이회창 총재 등 몇몇 정치권 인사들의 조문도 저지당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 충격과 비탄에 빠진 지지자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빈소를 찾아 애도를 표하는 것조차 막는 것은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다.

특히 현 정치인들이 앞장서 고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론’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며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은 매우 올바르지 못한 처사다. 김두관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가 너무 잔인하다”고 비난했다. 안희정 최고위원은 “이명박 대통령, (당신이) 원했던 결과가 이건가”라며 “사실상 정치적 타살”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어떤 사람이건 고인의 죽음 앞에 가책과 슬픔이 없겠는가. 이는 생전에 노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정치인이었어도 마찬가지다. 한 생명의 엄숙한 죽음 앞에서 반목을 부추기고 있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고인의 생명마저 정치적,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아 무례해 보인다. 이는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던 고인의 유언과도 배치된다.

깨끗한 지도자를 약속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은 노무현 전 대통령. 이제 전 국민의 진정 어린 애도 속에 차분하게 노 전 대통령을 보내야 할 때가 왔다. 고인의 장례식은 유가족과의 합의에 따라 7일간의 국민장으로 치러진다. 영결식은 29일이다. 남은 5일 동안 한국 현대사를 폭풍처럼 살아간 그의 행적을 기리자. 그리고 이 때 만큼은 반목과 갈등, 불신과 비난 모두 내려놓고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최대의 예우로 경건한 념(念)을 표하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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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선배의 학업 개업식에서 오랜만에 사범대 선후배들을 만나게 됐다. 졸업한 지 어느 정도 지나서인지 다들 나름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임용고사에 합격해 중학교에서 열심히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선배부터, 기간제 교사로 3년째 근무하고 있는 선배, 사립학교에 원서를 넣어 올해부터 근무하게 된 후배, 과외로 근근이 돈을 벌어 임용고사 공부 중인 후배, 학원 선생님으로의 전향을 결정한 선배까지 다양했다.

이렇게 모이니 먼저랄 것도 없이 오가는 화제는 당연히 '교육’이었다. 기간제로 학교에서 근무 중인 선배는 아직도 개선되지 않는 '콩나물 교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일반 시내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그의 반은 38명 정도. 1990년대 말 반 학생수가 55명까지 육박하던 때에 비하면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빽빽한 숫자라는 것이다. 질문을 한 명당 1분씩 받아도 수업시간이 끝나는데, 어떻게 학생들의 창의력과 자발성을 유도하는 토론수업이 가능하겠느냐며 볼멘소리를 늘어놨다.

사립중학교에 들어갔다던 후배는 처음부터 담임을 맡더니 사회과목 수업을 주당 24시간을 한다고 했다. 국영수를 비롯한 주요과목 교사들의 주당 시수가 18-20시간인 걸 감안하면 꽤 많은 시간이다. 왜 수업을 그렇게 많이 하느냐고 물었더니 학교가 교사를 더 뽑을 예산이 없기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수업시수가 월급의 양을 크게 좌우하는 것도 아니었다. 교사성과급제 운영 기준에 담임 유무, 수업시수 양, 주요 직책 여부 등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C등급을 받지 않는 이상 성과급에 큰 차이도 없다고 했다. 학생들의 성적 향상 등은 기준에 없어 교사가 어떻게 가르치는 지에 대한 평가가 되지 않아 교사들의 가르침 욕구도 상승시키지도 못한다고 지적했다. 다량의 수업과 업무에도 인센티브가 없는 그녀가 과연 수업을 연구하고, 보충 자료를 만들 필요와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범대 출신들의 수다는 자연스럽게 교육 지원의 현실에 대해서도 이어졌다. 400명이 넘는 중학교의 예산지원과 100여 명 안팎의 학교의 예산지원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교사 인력 수급이나 인프라 지원에 계속 문제가 생긴다는 내용이었다. 시골 분교에는 최신식 교육 설비까지 지원하면서 돈을 쏟아 붓고 있지만, 정작 폐교되는 사례들이 생기면 그 설비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는 한숨 섞인 소리도 터져 나왔다. 한 선배는 자신이 아는 실업계 고교에 기본적인 과학실험도구가 턱없이 부족한데, 해당 교육청에서는 지원비를 균등 분배해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했다.

자질구레하게 이어지던 대화였지만, 일선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웃지 못 할 고민이자 교육의 현 모습이 아닐까 싶어 헤어지고 나서도 계속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문제는 우리가 나눈 대화들이 마냥 흘려버릴 만한 수다에 그치진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교육 현황은 일선 교사들의 불평이 현실에도 어느 정도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1월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공동 발간한 '2008 교육정책 분야별 통계’ 자료집에 따르면, 중학교 학급당 평균 학생수는 34.7명으로 나타났다. 학급당 학생수가 20명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은 초등학교에만 해당하는 현실이다. 중학교 중에는 40명에 육박하는 학생수를 가진 학교도 많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학급당 평균학생수인 중학교 24.1명(2007년 기준)보다는 여전히 높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교원 1인당 학생수가 월등히 많고 중학교와 일반계고 절반 이상이 과밀학급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자료집에 따르면, 초등교원 확보율은 100.4%로 정원 초과 상태지만 중등교원 확보율은 80.3%다. 이것도 평균이어서 그렇지, 울산, 경기, 대전, 충북 등은 70%에 머물렀다. 중고교 일선학교에 학생들을 지도하고 가르칠 평교사들이 부족한 상황임에도 교과부는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감소한다는 이유를 들어 교원 증원에 소극적이다.

그렇다고 교사들에게 가르침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대가가 주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분명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교사가 있음에도 월급의 차이는 없으니, 열심히 하려는 교사에게는 더욱 피로감을 가져다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성과급 지급 기준을 지난해 최고 30%에서 50%까지 확대하기로 한 교과부의 결정은 옳은 방향이다.

여기에 성과급 지급 기준 내용을 더욱 개선할 필요가 있다. 교원평가와 맞물려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정도 등을 적용해 성과급을 지급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직책의 고하, 담임 선택 유무 등으로만 적용되는 성과급의 안이한 판단 기준을 바꿔내고 교사들의 가르침 욕구를 증대하고 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교과부는 이달 말 대대적인 '학교 자율화 방안’을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거기에는 학교 현장을 자율화하기 위한 교장의 권한을 확대하는 핵심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학교장이 수업 시수를 20% 선에서 자율 조정할 수 있으며, 교사의 전입 요청권도 가진다. 박사학위 소지자 등 교원자격증 없이도 채용 가능한 교사의 범위가 확대된다. 이 모두는 국가 통제 하에 두었던 학교교육을 개방해 학교마다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고, 아이들의 특성에 맞춰진 효율적인 교육을 위한 것이다.

이 제도들이 효과적으로 학교 현장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교육 인프라 개선이 시급하다. 학급당 학생수가 많을 경우, 학생 개개인의 수요를 반영한 교육을 진행하기가 어려워진다. 교육의 변화를 위해서는 교실 환경의 변화도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능력 있는 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예산 지원도 필요하다. 학교 자율화 진행시 균등 분배로 교육예산을 집행하지 않고, 학업성취도와 특성화 면에서 우수한 면을 보이는 학교에 차등적으로 지급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교육은 인륜지대계라고 했다. 그동안의 교육개혁이 번번이 실패했던 것에는 교육 제도의 변화를 꾀할 뿐, 실제 교육 현장에서 무엇이 문제이고, 먼저 바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총체적인 고민과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닐까. 한 나라의 교육의 분위기를 바꿔내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작업임을 감안한다면, 이번 교육개혁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서 일선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과 현실까지 고려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함께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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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를 지지했거나 반대했던 사람들 모두들 많이 놀랐을 것이다. 한창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었고 때문에 연일 매스컴에 얼굴을 드러낸 전직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서거 직후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모든 수사를 종결했다. 당사자가 사망했으니 수사를 더 진행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가족들까지도 형사 처분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한다. 이것으로 직접적으로든 가족들을 통해 간접적으로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진실로 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알 길은 영영 없어졌다.

하지만 왜 그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의문투성이다. 그는 왜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검찰의 책임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검찰의 조사가 아무리 강압적이었다고 한들 평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품상 거기에 결코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한 평생을 투쟁의 선봉에 섰던 사람에게 검찰 조사가 자살의 원인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그의 명예를 가장 훼손하는 말일 것이다.

언론을 탓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내내 소위 보수언론이라 불리는 신문사들과 싸워왔다. 신문이 아무리 비판해도 개의치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밀어붙였던 대통령이다. 그런데도 책임을 몇몇 언론사에 돌리는 것은 역시 그의 성품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뇌물수수가 사실로 드러나 법적인 처벌은 물론 자신의 명성에 상처를 입을 것이 두려워서였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사무엘 존슨은 '사람들은 자기가 원치 않는 하나의 진실이 밝혀지기보다는 자신에 관한 백 가지의 거짓말이 토로되는 것을 바란다.’고 했다. 이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의도했던 바는 아니었다고 믿는다. 물론 결과적으로 진실은 감춰졌고 온갖 추측과 유언비어만이 난무하고 있지만.

하지만 이렇게 진실이 감추어짐으로써 한 가지 가치만은 지켜질지도 모른다. 나는 바로 이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라 믿는다. 그가 한평생 가장 중요시 했던 가치인 '도덕성’ 말이다. 그에게 '도덕성’은 정치인의 본질이었다. '도덕성’이라는 기반이 없었다면 트레이드마크인 '권위주의 타파’나 '지역주의 타파’도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그가 지키고자 한 '도덕성’은 결코 자신의 '도덕성’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도덕성’ 그 자체였다. 설사 자신에게 죄가 있고 그것이 밝혀진다고 해도 '도덕성’이라는 가치만 지킬 수 있다면 그는 분명 정면 돌파를 선택했을 것이다. '나 인간 노무현은 도덕적이다.’는 사실 보다는 '정치인에게 도덕성은 생명이다.’는 명제를 지키는 것이 그의 인생에서 더 소중한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만약 죄가 있다고 밝혀졌다면 말할 것도 없지만, 뇌물수수 사건과 관련해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만으로도 이 가치는 손상되었을 것이다. '도덕성’의 상징이었던 노무현의 몰락은 곧 대중에게 '정치인에게 도덕성은 허구다.’는 인식을 주고 이것이 그에게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인생의 마지막까지 승부사적인 기질을 보여주었다.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긴 가치를 지키기 위해 죽음이라는 인생에서 가장 극적이고 치명적인 승부수를 던졌다.

'한 작가가 아직 살아 있을 때는 우리는 그의 가장 못한 작품으로 그를 평가하고, 그가 죽으면 그의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그를 평가한다.’는 사무엘 존슨의 말처럼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찌되었건 그의 허물을 잊고 용서했다. 대통령으로서 실패한 정책은 물론 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도 특별한 관심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작품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의 마지막 승부수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아무리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자살이라는 선택은 그릇된 것이다. 그의 정치적 이상을 옹호하거나 대통령 재임시절 정책들에 대해 칭찬할 마음도 없다. 분명 그는 이념적 색채가 불분명한 준비가 덜 된 대통령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던진 대부분의 승부수는 파격적이었지만 잘못된 것이었고 따라서 실패했다. 마지막 승부수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 대통령 노무현을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 단 그가 남긴 가장 뛰어난 작품 하나만은 기억하자. 이왕이면 그가 끝까지 결백을 주장함으로써 지켰으면 좋았을 가치, 하지만 결국 죽음으로서밖에 지킬 수 없었던 가치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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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북좌파 진영이 주도한 ‘촛불광풍’(狂風)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종부세’(종합부동산세) 폐지 문제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종부세는 평등과 분배를 앞세워 집권한 노무현 정권이 국민을 1%와 99%로 구분하고, 1% 부자들에게 세금을 걷어 국민 전체가 나눠 쓰자는 ‘징벌적 차원’에서 도입된 제도다. 종부세는 구체적으로 주거용 토지와 건물과표의 합산액이 일정 액수 이상이 되면 합산 누진하는 이중과세로 이미 시행중인 종토세(종합토지세)와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난다.

이중 누진체계 종부세, 부동산 투기 억제 못해

첫째, 종토세의 경우 주택이 지어져 있는 토지와 나대지(裸垈地) 등 토지만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종부세는 토지뿐만 아니라 주거용으로 쓰이는 건물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다.

둘째, 종토세로부터 나오는 세수는 토지의 소유자가 속하는 기초자치단체에 귀속되는 반면 종부세의 세수는 소유자의 거주지와는 무관하게 배분된다.

지방세인 재산세를 누진과세로 운영하는 경우는 외국에서도 찾기 힘든 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우리나라의 경우 종토세에다 종부세까지 얹어 2중의 누진체계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세금을 통해 한 가지 목표도 제대로 달성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종부세와 같은 다목적 세금이 바람대로 기능하기는 어려웠다. 우선 세금으로 부동산투기를 억제할 수 없다는 것은 굳이 경제이론을 예로 들어 설명하지 않더라도 지난 역사가 증명해 준다.

특히 종부세를 통해 부자들의 자금을 족집게처럼 걸러내겠다는 좌파(左派)정권의 의도는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이유는 억울한 납세자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야당·좌파단체, 종부세 완화 반대 공동선언 발표

종부세 부과 이후 강북지역에서 터져 나온 비명소리와 맞벌이 가구, 그리고 1가구1주택 장기보유자와 저소득 은퇴고령자들의 한숨소리가 좋은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제대로 기능도 못하면서 이 문제를 놓고 격렬한 찬반 논쟁에 불을 붙이는 세력이 있다. 바로 민주당·민노당·창조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을 비롯, 한국진보연대·참여연대·녹색연합 등이다.

이들 단체 가운데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참여연대는 지난 달 10일 소위 주택공공성 확보와 주거약자 지원을 명목으로 녹색연합·녹색교통운동·환경정의 등 54개 좌파단체가 참여한 ‘토지주택공공성네트워크’(이하 토지네트워크)를 출범시켰다.

이후 토지네트워크는 ‘촛불시위’를 주도한 극좌(極左) 성향의 ‘한국진보연대’(상임대표 오종렬·한상렬)와 함께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주도하는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 ‘깨어있는 누리꾼 모임’(촛불시위 관련 인터넷 카페 모임), ‘종부세 무력화 저지와 서민 주거복지를 위한 국회의원(이하 주거복지의원모임)’ 등의 단체와 함께 최근 ‘주거복지의원모임-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를 결성하고 종부세 완화 반대를 위한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연석회의는 지난 달 30일 국회본관 정론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종부세가 완화된다면 일부 부유층에 대해 세금 감면 혜택만 있을 뿐, 세금인하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거나 부동산 거래가 활성화 되는 등의 정부가 기대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면서 정부의 종부세 완화 움직임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통합민주당 “종부세 폐지, 반드시 저지할 것”

연석회의는 이어 “정부·여당의 종부세 무력화 조처는 2% 강부자만을 위해 98% 대다수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방안”이라며 “뜻있는 국회의원들과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손을 잡고 정부의 종부세 무력화 방안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석회의의 한 축인 국회의원모임에는 현재 이용섭·김상희·이미경 의원(이상 민주당), 이정희·홍희덕·강기갑·권영길·곽정숙 의원(이상 민노당), 문국현 의원(창조한국당), 이상민 의원(現 자유선진당, 前 열린우리당 의원) 등 좌파(左派)성향 정치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앞서 연석회의 참여단체인 한국진보연대와 토지네트워크 등은 29일 한나라당 당사와 종로구 청운동 사무소 앞(청와대 근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부터 한나라당을 강부자 당으로 고쳐 부르기로 했다”, “이명박 정부가 공안탄압에 이어 서민 경제도 외면하고 있다”면서 온라인 홍보·거리 피케팅 시위 등을 통해 정부의 종부세 완화 방침에 반기(反旗)를 들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지난 1일 국회 의원회관 앞에서 ‘종부세 개악저지 및 부가가치세 30% 인하를 위한 결의대회’를 가진 데 이어 3일 같은 명목으로 전북 김제시 구이면 모악산에서 행사를 갖고 “한나라당의 종부세 폐지를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종부세는 부자가 세금 좀 더 내서 그 돈으로 다른 서민들의 복지를 위해 쓰자고 걷는 돈”이라며 “부동산 투기하는 사람들에게 돈 걷어서 좋은 곳에 쓰자는 것인 데 이를 없애자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한나라당은 부자의 부담을 낮추자고 말하는 정당이고, 민주당은 반대로 서민들의 부담을 낮추자고 하는 정당”이라며 “한나라당과 달리 민주당은 서민들을 위해 부가가치세율 30% 인하와 재산세 부담 30% 경감, 종부세 개악 저지에 나설 것”이라고 언급했다.

괴담에 가까운 좌파진영의 종부세 완화 반대 주장

함께 자리한 김진표 최고위원은 “종부세가 완화되면 그동안 우리나라 부자 2%가 부담했던 세 부담이 전 국민의 부담으로 확산된다”면서 “이는 정부의 예산 부담 가중을 가져올 뿐 아니라 3조4천억의 세금이 결국 전체 국민의 부담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송영길·김민석·박주선 최고위원을 비롯, 강봉균 전북도당위원장, 최규성·김춘진·장세환·김세웅·강기정 의원과 장영달 전 의원, 김완주 전북지사, 이한수 익산시장, 임정엽 완주군수 및 시·도의원, 당직자 등 당원과 지역민 1,00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여당과 대다수의 보수 성향 경제전문가들은 야당과 좌파(左派)단체의 괴담(怪談)에 가까운 종부세 완화 반대 주장에 문제를 제기하며 이번 논란이 ‘촛불시위’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의 경우 “종부세는 한마디로 노무현 정권에서 재산세가 있는데도 ‘있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더 물린다면서 만든 ‘분노의 세금’”이라며 “종부세를 이념논쟁·정치적 싸움으로 몰고 가는 선동과 포퓰리즘은 우리 모두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세금 내는 일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며,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은 존경 받아야 한다”고 지적한 뒤, “그렇지만 그 세금은 일관된 원칙아래 효율적이고 상식적으로 매겨져야 한다는 점에서 종부세는 많은 결함을 지녔다”고 지적했다.

포퓰리즘에 입각한 조세제도, 사회 양극화 부추겨

그는 이어 “종부세 폐지가 ‘부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부자만을 위하고 서민에게 고통을 주냐”면서 “경제의 역동성이 살아나면 우리 사회 전체가 잘 먹고 잘 살게 된다. 언제까지 계급논리에 함몰돼 획일적 평등주의로 여론몰이를 해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전 의원은 또 “부자들은 사실 도움이 필요 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문제는 간단하다. 부자들은 가만두고 알아서 살라고 하면 되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복지정책’으로 뒷받침해 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진 자들은 사회적 책무를 더 엄격하게 실행해야 하고, 세금에 대해 경건한 납세의무를 완수해야 하며, 공적 나눔인 세금과 더불어 사적인 나눔인 기부를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부자가 존경받고 사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익명을 요구한 모 경제학자는 “촛불집회가 한바탕 휩쓸고 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종부세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촛불집회 진행 과정을 되돌아보면 현 상황을 마냥 지켜만 볼 수도 없을 것 같다”면서 좌파(左派)진영의 움직임에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이어 “종부세를 놓고 찬반논쟁이 불붙은 이유는 종부세의 소득 재분배 기능에 대한 막연한 기대 때문”이라며 “보통사람들에게 종부세의 부유세(富裕稅)적 성격은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로 보일 것이다. 이번 종부세 개편안은 상위 1%만을 위한 조치, 부자의 부담을 서민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는 식의 2차 ‘종부세 괴담’이 최근 유포되는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저항이 없는 조세제도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의 갈등을 조장하고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종부세를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대중적 인기에 영합한 조세제도의 운영은 결국 사회 양극화 해소가 아니라 양극화를 더욱 부채질 할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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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거친 경쟁을 본성적으로 달가와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편안함, 안전함을 선호할 것이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한 직장 생활, 언제 성적이 떨어질지 모르는 위태한 고3시절 등등 이런 강렬한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 때 우리나라에서는 명문 중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교 학생들이 밤 늦게까지 과외 공부를 하던 시기가 있었다. 너무 어린 학생들에게 중압감을 주던 중학교 입시제도는 이후 학군제로 바뀌었다. 성적과는 상관없이 사는 동네에 따라 자신의 중학교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비록 중학교 입시 시험제도가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초등학교에서 경쟁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불붙는 사교육 열풍을 타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공부 경쟁이 점점 뜨거워지자, 1997년부터 교육부는 초등학교에서 등위를 매기는 시험을 폐지하고 등위를 공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점수도 알리지 않도록 했다. (현실적으로는 점수와 등위를 알려주는 경우가 많지만 원칙은 알려주지 않아야 한다.)

만약 당신이 초등학교 담임 교사라고 하자. 객관적인 점수와 등위를 공개할 수 없게 되었다면 통지표에 아이를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국어, 수학 등등의 분야에서 어떤 한 아이를 평가하면서 쓸 수 있는 말은 두루뭉실한 표현으로 ‘잘함’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편할 것이다. 만약 아이의 학업 능력을 ‘노력 요함’이나 ‘부진함’이라고 평가했다고 하자. 아마 아이의 부모는 당장 자신의 아이의 점수와 등위를 알려달라고 성화일 것이다. 부모의 입김이 드센 시기에, 도대체 우리 아이가 몇 점을 받았기에 부진하다고 평가했느냐며 자료를 요구하지 않겠는가? 객관적인 점수나 등위를 공개하기 힘든 상황에서 담임 교사는 아이에 대해 평가를 솔직하게 내리기 힘들게 되었고, 자연히 별 문제가 없을 만한 (부모도 어느 정도 안심시키면서) 말이 바로 ‘잘 함’이 아닐까.

최근 어느 뉴스를 보니 초등학교 6년 내내 ‘잘 함’이라는 평가를 받은 아이들이 중학교에 놀라가서 (예를 들자면) 전교 310등이라는 (그 부모들에게는 충격적이며) 부진한 결과를 나타내자 부모들이 진작 성적을 공개하지 않은데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자신의 아이의 성적을 알았더라면 더 일찍 열심히 공부시켰을텐데 하는 원망일 것이다. 나는 그 기사를 보며 평등을 강조하는 좌파의 정책이란 결국 이런 비극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 모두가 성적에 구애받지 않고 그저 재밌게 뛰어 놀며 인성을 기르는 초등학교 생활이 존재한다면 모두가 꿈꾸는 멋진 이상이겠지만, 현실에서는 절대 이루어 지지 않는다. 설령 정부가 나서서 성적을 감추고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시험이 없다고 해도 아이들의 성적 차이는 반드시 뚜렷이 존재하며, 정부와 학교가 숨긴다고 해도 결국은 시간이 지나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드러나게 되어 있다. 물론 아이들의 성적 차이는 다수의 부모와 아이들에게 큰 스트레스가 된다. 그러나 성적 차이가 존재하기에 학생들은 더 노력하게 되고, 더 나은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되고 그 스트레스 덕분에 우리의 기업들은 잘 교육된 인재를 구할 수 있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경쟁을 유도하며 성적을 공개하는 것은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성적에 뒤처지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주눅들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자라면서 계속 다른 학생들보다 성적이 낮은 아이들은 나름대로 전통적인 ‘공부’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 재능을 키울 수 있고, 일찍 직업을 갖고 사업을 꿈꾸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요즘 잘 나간다는 연예인들이나, 청과물 시장에서 자신의 가게를 갖고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대개 학창 시절 그다지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다소 고통스럽지만 상대적인 평가를 받았기에 다른 아이들이 잘하는 공부 쪽의 진로보다는 자신만의 남다른 끼와 재능, 사업상의 능력을 발휘할 용기와 배짱을 갖게 된 것이다.

만약 그들이 자신의 학업상 위치를 알지 못하고 부모들이 시키는대로 그럭저럭 공부만 하다가 뒤늦게 자신의 뒤떨어진 경쟁력을 깨닫게 된다면 그 얼마나 비참한 일일까. 경쟁과 그 결과를 공개하는 것은 나름 다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사회에 발휘하도록 돕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경쟁의 고통스러움과 탈락의 고배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받아들여야 할 과정이 아닐까 싶다.

한 때 잭 웰치의 별명은 ‘중성자탄(Neutron) 잭’이었다. 중성자탄이란 탱크나 건물 등은 손상시키지 않은 상태로 살아있는 생체만을 파괴하는 방사능 무기로서, 아마도 조직은 그냥 둔채 하위 일부 노동자를 지속적으로 해고했던 그의 경영을 비판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잭 웰치는 부진한 업무 성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별 말없이 3-40대까지 노동자를 끌고 가다가 회사가 부진해지고 나서야 어쩔 수 없이 해고하는 것(이렇게 되면 한창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비를 대야할 가장들은 재취업의 기회마저 잃는다)보다 일찍 젊을 때 자신의 능력에 맞는 곳을 찾아가도록 해고하고 재취업을 돕는 것이 낫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모는 일이 다소 안타까워 보일 수 있지만, 초등학교부터 평생동안 이어지는 강렬한 경쟁과 경쟁의 결과를 제대로 아는 일은 아이의 재능을 알아내고 아이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게 만드는 거의 유일한 힘이 된다. 다소 고통스러울지 모르지만 그 고통을 피하기만 한다면 6년간 ‘잘 함’이었지만 전교 310등이 된 아이의 부모가 될 것 같다.

어제 당선된 서울시 교육감도 이런 면에서 아이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하도록 장려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고 칭찬해주는 일을 두려워 하지 않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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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날을 거쳐 다양한 신문을 보다보면 두 가지 패턴의 사설이나 칼럼이 눈에 띈다. 첫 번째는 경제발전 또는 무한경쟁의 시대를 해쳐 나가는데 필요한 정부의 역할 즉, 정부의 전략과 비전 거기에 따른 구체적인 행동계획과 이를 실천하기 위한 거시경제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는 각 분야의 전문가나 교수들이 10년 후에 한국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는가? 하는 칼럼이나 기고문을 통해서 현재 자신이 속한 전문분야가 미래의 한국의 발전을 이끌 동력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으므로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 정부가 할 일은 경제 주체들의 자발적 교환과 이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지 비전을 세우고 이를 통해서 특정사업을 육성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정부는 추상적인 의미이고 이 조직을 이끌어 가는 것은 정치가와 관료라는 이름의 개인들이다. 정치가와 관료들이 보통개인들을 넘어서는 비인간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가질 수도 없다. 이들이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어떤 계획을 세우든 그 일부는 우연히 혹은 정부의 공권력으로 독점시장을 유지함으로서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정부의 간섭으로 낭비되는 많은 자원에 비하면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특정 사업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정부의 행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관료나 관료의 지원을 받은 공기업과 사기업의 사람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 사람들 보다 시장의 변화와 소비자의 욕망을 더 잘 파악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관료는 보통 인간이므로 미래와 소비자의 욕구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그 기법을 전해 줄 수가 없다. 그러므로 경제성장률을 높이거나 특정사업을 강화하고자 하는 정부의 노력은 빈번히 실패하게 되어 자원이 낭비되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의 농어촌 지원과 김대중 정부의 벤처venture 사업 지원 실패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때문에 정부의 역할은 시장참여자들의 재산과 자발적인 교환을 보호하는데 한정되어야 한다. 때때로 한국, 대만, 싱가포르가 정부 주도로 경제발전에 성공한 역할 모델로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이들 세 나라 외에 정부주도로 경제발전을 시도한 인도, 말레이시아, 필리핀, 아프리카나 중동의 나라 등 수많은 나라들이 실패 했으므로 단순히 3국의 성공이 정부주도의 경제발전 전략을 정당화 시킬 수는 없다.

 

  미래의 시장 환경과 그 변화에 대해서 잘 예측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현재 시점에서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상황을 예측하여 투자, 생산의 조정, 새로운 재화의 생산 등의 계획에 착수한다. 이런 판단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 과거의 통계를 참고하고, 관련분야의 연구자들에게 용역 주는 등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노력은 미래 예측의 정확성이 증가할수록 손해의 확률은 감소하고 이익의 확률은 증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자의 이익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응하는 자신의 재산 혹은 시간과 같은 비용을 투입해야 하기에 투자의 실패는 투자자들에게 일정한 고통을 준다. 그러므로 투자자들은 실패의 고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투자의 정확성을 높이고 자신의 계획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러나 미래를 위한 투자가 정부의 자금(세금)으로 이루어지면, 투자 위험의 불확실성은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된다. 물론 개인에게 돌아가는 성공의 과실 역시 줄어들게 되지만, 정부의 프로젝트 실패로 인한 재산상의 손해는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에 지급되는 월급을 충실하게 받는 것으로 시간상의 손해도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이루어지는 개인과 사기업의 투자의 이익이 큰 만큼, 실패에 따른 손실 부담도 크기 때문에 효율적인 투자와 투자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즉, 국가의 지도와 지원에 의한 투자는 개인이나 사기업의 선택에 따라 결정되는 투자보다 효율성이 낮다.

 

  미래의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할수록 손실을 극소화하고 이익을 극대화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능력은 개인과 국가 모두 가질 수 없지만 개인은 자신의 재산을 투자하기 때문에 효율적 자본이용의 인센티브Incentive가 정부보다 더 크다. 그러므로 정부의 역할은 경제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 지원이 아니라 개인이 자유롭게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치안과 국방을 튼튼히 하여 개인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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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8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 일본에서 ‘탄소 제로 주택’이 선보였다. 냉난방에 화석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탄소 제로주택 은 ‘온난화’와 ‘고유가 경제위기’라는 G8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를 그대로 담아 설계됐다.

일본 정부와 계약을 맺은 건설업체 세크스이 하우스가 이번에 공개한 4인 가족용 탄소 제로 주택은 풍력발전기와 태양전지판을 갖춰 에너지를 자체 조달한다. 일본 주택의 평균 사용전력의 5배 수준인 15k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게 업체의 설명이다. 또 지붕에는 태양전지판 옆에 얇은 두께의 이끼를 재배해, 주택내부의 온도를 1℃낮추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여름철 에어컨 사용을 그만큼 줄일 수 있다.

주택 내부는 일본기업들의 에너지 절약형 첨단 가전제품들로 채워져 있다. 산요전기의 ‘물 없는 세탁기’. 현재 일본과 대만에서 판매 중인 이 세탁기는 물을 전혀 쓰지 않고 강한 공기바람과 오존만으로 세탁물을 빨고, 세균소독, 건조까지 할 수 있다. 미쓰비시의 ‘지능센서 에어컨’. 열 감지기로 사람의 동작과 위치를 감지해 사람을 향해 시원한 바람을 보내는 이 에어컨은 불필요한 곳까지 냉각시키는 에너지 소비를 줄여준다. 이밖에도 세계에서 가장 얇은 TV인 샤프의 저에너지 TV도 2cm 두께를 뽐냈다.

영국에는 이런 탄소 제로 주택으로 이뤄진 ‘베드제드’ 마을이 있다. 2002년도 완공된 ‘베드제드(BedZED, Beddington Zero Energy Development)’는 화석연료가 아닌 바람과 태양, 목재쓰레기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3층짜리 공동주택으로 이뤄진 베드제드 주택들에는 빨강, 노랑, 파랑, 초록의 환풍기가 달려있다. 이 환풍기는 바람에 따라 회전하면서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실내로 공급하고, 실내 온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열교환기를 부착한 환풍기를 통해 바깥의 찬 공기는 실내 더운 공기와 섞이면서 따뜻해지기 때문에 따로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도 난방효과를 낼 수 있다.

또 지붕에는 태양열 집열판과 잔디로 이뤄져 있다. 지붕 위 잔디는 비가 올 때 빗물을 흡수해 저장하고, 이 빗물은 파이프를 통해 지하 물탱크로 보내진다. 물탱크의 빗물은 정화과정을 거쳐 화장실과 정원의 물로 재활용된다. 이를 통해 보통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의 양을 3분의 1정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또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유리창은 3중창이며, 벽은 단열재를 두툼하게 넣었다. 이 밖에도 실내 샤워나 수도꼭지는 물을 아낄 수 있도록 콸콸 나오지 않게 만들었다. 전기와 가스 계량기도 부엌 잘 보이는 곳에 설치해 늘 에너지 소비량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 베드제드 주택은 친환경 건축가 빌 던스터 씨와 저소득층 지원 자선기관과 합작으로 지어졌다. 그래서 82가구 중 3분의 1은 저소득층에게 임대해주고 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베드제드를 미래 주거 환경의 모델로 삼아 지난해 ‘친환경 주택 10만호 건설 계획’을 마련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도 2016년 ‘탄소 제로 도시’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에 있다.

아직 탄소 제로 주택은 비용문제로 실용화되긴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에너지 효율성을 높인 주택은 고유가시대의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최근 정부는 유가가 150달러를 넘으면 민간부문의 에너지 절약을 행정력으로 강제하는 ‘2단계 위기 관리조치’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이 조치가 가동되면 승용차 요일제가 강제되며, 대중목욕탕 격주 휴무, 골프장.놀이공원.유흥음식점 등 에너지 소비가 많은 사업장에 대한 야간 영업시간이 제한된다. 텔레비전 방영시간도 단축된다. 대부분 인간 활동을 제약하는 방식이다.

석유의 고갈은 언제가 인간에게 닥쳐 올 위기였고 또한 인간이 극복해야 할 과제였다. 고유가 시대, 인간의 활동을 제약하는 방식이 아닌, 인간의 창의력을 활용한 대안이 필요하다. 한국도 이제 ‘탄소 제로 주택’과 같은 인간의 생활이 진화하는 미래지향적 아이디어에 관심과 투자를 늘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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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많지만 중요한 서울시 교육감 선거

 

7월 30일은 최초로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있는 날이다. 서울시 교육감은 1년간 약 6조원의 예산을 다루고 초중고교 교육의 전권을 행사한다. 교장을 포함하여 공립학교 교원 55.000명에 대한 인사권을 갖으며, 특수목적고를 지정하거나 0교시 수업, 학교선택제 등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특히 서울시 교육청의 정책은 각 시도 교육청이 따라할 만큼 교육에 있어서 큰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서울 시내 곳곳에 후보들의 현수막이 달려 있어 선거 분위기가 띄어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보이고 있다. 후보들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것들을 먼저 짚어보기로 하겠다.

 

# 홍보부족과 관심 부족

 

이번 선거는 2006년 12월 '지방교육 자치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학교운영위원을 통한 간접선거에서 주민 직선제로 바뀌었다. 그러나 문제는 거의 홍보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각종 선거에서 제기되는 문제이지만, 이번 선거는 특히 선거율이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운동기간은 10일밖에 되지 않는다. 7월 말에서 8월 초가 휴가의 절정이라는 것과 평일인 투표일도 그러하다. 지난 6월 25일에 치러진 충남 교육감 선거 율은 17.2%의 투표율 밖에 되지 않았으며, 7월 23일의 전북교육감선거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에 선출될 교육감이 얼마나 민심을 대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한 시민들이 교육감의 역할과 중요성을 잘 모르는 것 역시 큰 문제이다. 6명이나 입후보를 하였지만, 후보자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를 만큼 그들만의 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 대표적인 탁상행정, 전형적인 세금낭비

 

이번 민선 교육감은 미처 2년이 안되는 짧은 기간만 재임하게 된다. 2010년 5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새로운 선거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 교육감이 차기 거에서 낙선할 경우 불과 2년 만에 교육정책이 바뀌게 되어 일선 현장의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선거관리비 200억 원과 후보자 비용 120억 원 등 총 32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선관위에서는 밝히고 있다. 대표적인 탁상행정에 따른 전형적인 세금낭비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애매한 기준과 교육현실과의 괴리

 

그 누구도 교육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헌법역시 31조 4항에서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지방교육자치법 역시 24조에서 교육감 후보자는 후보자 등록신청일로부터 과거 2년간 정당의 당원이 아니어야 함을 정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번 선거가 어느 선거 못지않게 정치성을 띠고 있다는 데에 있다.

 

주경복 후보는 이번 선거를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미친교육이라고 폄훼하며 선거를 중간 평가의 분위기로 몰아간다. 공정택 후보는 광우병 관련 촛불시위를 비판하며 전교조대 반전교조로 선거판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물론이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역시 자신들의 정책과 비슷한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언론과 시민단체들도 마찬가지이다. 서로가 보이지 않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특정 후보를 띠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지난해 위의 지방교육자치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헌법재판소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입법목적과 방법이 적절하다”면서 “교육감 후보자의 불이익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라는 공익이 더 크다”라면서 기각했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게 돌아가는 형편이다.

 

교육정책을 기준으로 뽑아야 한다지만, 정책선거를 해본 경험이 없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이상적인 요구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정책의 근본은 철학이 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교육감은 자신의 교육 철학에 맞게 정책을 만들 수밖에 없다. 교육은 중립적이어야 하지만 교육감 선거는 중립적일 수 없는 이유이다. 정당대리전이니 정치화가 우려되는 상황은 직접 선거를 선택한 조건에서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다음 선거부터는 정당에 의한 후보추천제나 단체장의 러닝메이트로 선출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아직은 끝나지 않았지만 이번 서울시 교육감선거는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다. 그래서 다음 선거에서는 개선되어야 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감이라는 중요한 위치는 우리에게 합리적인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나아가서는 한국의 백년을 위해 소중한 한표를 던져야 한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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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개미와 베짱이 동화는 누구나 들어봤을 친숙한 이야기이다. 개미는 더운 여름 내내 추운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여 곡식을 모았지만, 반면 베짱이는 여름 내내 시원한 나무그늘에 앉아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추운 겨울이 오자 부지런히 일한 개미는 그 동안 일해서 거둬들일 곡식으로 따뜻한 굴에서 행복하게 살았지만, 베짱이는 먹을 것이 없어서 결국 개미네 집에 가서 식량을 얻어먹어야 했다.

 

무더운 여름날에도 추운 겨울을 나기위해 열심히 일하는 개미와, 매일 일은 하지 않고 노래만 부르며 살아가는 베짱이의 동화에서 서로 상대적인 생활모습을 통해 우리들에게 개미처럼 생활하여야 한다는 가치관을 심어준다. 즉 노는 것을 좋아하다가는 어려운 상황에 닥쳤을 때 해쳐나갈 수 없으니 꾸준히 노력하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읽었던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보이는 면에만 사로잡혀 생각하는 편견을 심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자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사실 각 개인들의 부에 대한 욕망은 우리 사회에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했던 것처럼 그에 대한 갈망과 동경은 무척 높다. 하지만 본인과는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돈이 많은 사람들은 일단 잘못된 툴과 룰로 모은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대부분이다. 물론 분명히 정치적으로 부패한 방식으로 부를 획득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갑작스런 경제성장과 더불어 생겨난 일명 벼락부자도 존재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 그들은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적게 쓰면서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해왔음에 틀림없다. 또 시대 흐름에 맞는 눈을 가지고 더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잠재력과 재능으로 자신의 부를 쌓았을 것이다. 부지런히 일해서 식량을 비축했던 개미도 훌륭하지만, 자신의 재능을 살려 열심히 노래했던 베짱이도 가수로 데뷔해서 훌륭한 연예인이 될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혹은 개미는 베짱이의 노래 소리에 흥이 나서 어렵고 지루했던 일을 꾸준히 해나갈 수 있었고, 베짱이는 개미가 모아놓은 식량 덕분에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어쨌든 개미건 베짱이이건, 자신이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한 점에는 변함이 없다.


부를 축적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며, 또 그런 행위가 비난받을 일은 전혀 아니다. 돈이 삶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인 것은 분명하며, 삶을 윤택하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되고 있음은 의심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부자와 서민에 대한 인식을 목적점이 있는 경주 정도로 생각하면 어떨까? 우리보다 먼저 부를 쌓은 사람들을 시기하고 의심하기 보다는 먼저 목표에 도달한 그들을 존경하고, 나도 그렇게 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겠는가! 물론 부자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의무를 다하고, 자신과 동일한 목적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서민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행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외국의 부자들처럼 먼저 베풀고 건넴으로써 '공공의 적'이 아닌 '존경과 명예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우리나라 국민들이 사고의 틀을 변화시킬 수 있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개미와 베짱이처럼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상생하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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