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삼익악기의 영창악기의 기업결합이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므로 공정거래위원회가 그 주식을 매각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린 것은 합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의 판결처럼 피아노 시장에서 경쟁이 제한되어 소비자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일까?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다. 노동집약적인 피아노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국제경쟁력을 갖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역 자유화의 결과 외제 피아노는 어디가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 있는 시장에 국내 회사가 하나인 경우와 둘인 경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1970년대 중반 필자가 법학을 처음 공부할 때 우리나라 법학교과서에서 다루지 않는 것이 있었다. “정책”이었다. 논란이 있는 대목에서 “이것은 입법정책의 문제이다”라고 하면 더 이상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다. 법문의 의미를 다투는 이른바 ‘학설’에서도 직접 경제 정책적 관점에서 논리를 전개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정부가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던 시대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군부 독재시대라서 그랬는지 법률가에게 ‘정책문제’는 일종의 금기였고 법률가와 정책은 부적절한 관계였다.

10년 뒤 1980년대 중반 미국 로스쿨에서 공부할 때 받았던 충격의 하나는 끊임없이 ‘정책’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주요 쟁점마다 거의 예외 없이 정책적 논점(policy questions)이 다루어졌고, 아예 교과서 제목이 “Law and Policy of ○○○" 식으로 되어 있기도 했다. 필자의 눈에는 전혀 법률문제로 보이지 않는 ‘정책적 문제’들을 미국 시민들은 법원으로 갖고 왔고, 미국 판사들은 그런 문제에 대해 판결의 이름으로 결정을 했으며, 미국 사회는 그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었다. 지구의 반대편에서 ‘법학’을 공부한 필자는 법이 이렇게 나서도 되나 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충격이 정점은 코이퍼(Thomas E. Kauper)교수의 강의였다. 필자는 당시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얼마 안 된 공정거래법을 전공하고 싶었다. 그래서 미국 법무부에서 공정거래 담당 법무차관으로 AT&T의 분할을 주도했던 코이퍼 교수를 지도교수로 정하였다.

코이퍼 교수는 공정거래법 수업을 “공정거래법은 정책이다”라는 말로 시작했고, 수업은 끊임없이 무엇이 좋은 정책인가에 대한 토의로 이어져나갔다. 정책은 빼고 법규정의 문언적 해석으로 가득했던 까칠한 식단에 익숙했던 필자에게 정책으로 가득 찬 호화로운 식단은 소화하기 힘들었고 결국 공정거래법 전공을 포기해야 했다. 귀국한 후 정책을 논하는 법학자로 살기는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법의 이름으로 정잭을 논하는 것은] …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간다는 증거이다. 중요한 문제를 힘 있는 사람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대신 합리성과 타당성을 판단하도록 훈련된 조직이 결정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시대가 달라져서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법의 이름으로 ‘정책’을 논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국가가 간척사업을 해도 되는지, 회사를 사도 되는지, 시각장애인이 아닌 사람도 안마를 해도 되는지 법원에 물어 보는 세상이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간다는 증거이다. 중요한 문제를 힘 있는 사람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대신 합리성과 타당성을 판단하도록 훈련된 조직이 결정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기업결합 경과

대법원은 지난 5월 29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익악기와 삼송공업이 영창악기의 주식을 인수한 것은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므로 그 주식을 매각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린 것은 합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을 읽으면서 법원의 “정책” 판단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영창악기 사건의 시작은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6년 창업한 영창악기는 우리나라 피아노시장의 60%이상을 점유하고 있었고 수량기준으로는 세계 3대 피아노 메이커의 하나이기도 했다. 영창악기는 1990년대 후반 약 4천만불을 중국에 투자했는데 노동집약적인 악기산업의 특성이나 영창악기의 자금력으로 볼 때 무리한 결정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자금사정이 악화되어서 1998년 8월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2002년 6월에 워크아웃을 졸업하였지만 경영정상화계획은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부채 상환은 물론 퇴직금도 지급할 수 없었다. 자본의 부분잠식으로 유상증자가 어려운 상황에서 법인세 추징까지 있자 결국 증자나 차입을 포기하고 회사를 인수할 사람을 찾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경쟁사인 삼익악기에 인수를 제안하여 2004년 3월 삼익악기등이 제3자 신주배정방식으로 영창악기의 주식 48%를 인수하고 경영권을 인수하게 되었다.

삼익악기는 경쟁사인 영창악기를 인수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신고를 했는데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2004면 9월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주식인수는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행위라고 보아 1년 이내에 인수한 주식 전부를 제3자에게 매각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시정명령 이후 삼익악기는 투자를 중단하였고 영창악기는 자금압박을 견디지 못하여 부도가 났다. 이후 이 사건은 두 회사로 나뉘어 아래 표와 같이 진행되었다.

<삼익악기>

 

 

 

<영창악기>

영창악기 주식 48% 취득

-

2004.  3. 12.

 

 

공정거래위 주식 매각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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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9. 24.

 

 

 

 

2004.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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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창악기 회사정리절차 개시

공정거래위에 이의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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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11.  1.

 

 

공정거래위 이의신청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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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1.  5.

 

 

서울고등법원에 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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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2.  4.

 

 

 

 

2006.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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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산업개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서울고등법원 항소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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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3. 15.

 

 

대법원에 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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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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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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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산업개발 지분 57.3% 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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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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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정리절차 종료

대법원 상고 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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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5. 29

 

 

사건의 법리적 쟁점과 법원의 판결

공정거래법 전공을 포기한 필자는 이 사건의 법리적 쟁점들, 예를 들면 신품 피아노와 중고 피아노를 같은 시장으로 봐야 하는지 다른 시장으로 봐야 하는지, 시장 점유율을 경쟁의 결과로 봐야 하는지 경쟁제한의 이유로 봐야 하는지, 국내 시장이 중요한지 국제시장이 중요한지를 판단할 처지에 있지 못하다. 그렇지만 이 사건의 진행경과는 공정거래법에 관한 문외한들에게도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에 소송이 제기된 2005년 2월에는 영창악기에 대해 회사정리절차가 개시되어 진행되는 중이었고 판결을 내린 2006년 3월에는 이미 정리회사 영창악기의 M&A가 진행되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현대산업개발이 기업인수를 위한 실사를 하고 있었다. 영창악기에 대한 회사정리절차는 삼익악기와 공정거래위원회와의 다툼과는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어 서울고법이 원고의 주장을 인정해서 공정위의 주식매각명령을 취소해도 영창악기를 회사정리절차개시 이전 단계로 돌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서울고법이 어떻게 판단하든지 대주주인 삼익악기가 갖고 있는 영창악기 주식은 회사정리절차에서 대부분 소각되어 삼익악기가 주식취득을 위해 투자한 100억여원을 회수할 기회가 없게 되었다. 만일 서울고법이 공정위의 명령이 위법하다고 판단하면 삼익악기는 공정위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 점은 대법원 상고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행정부의 정책이 법의 이름으로 시행되는 한 법원 역시 행정부에 못지 않는 정책적 고민을 하고 판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공정위는 자신의 정책판단대로 법을 집행할 것이고 법원은 면죄부를 주는 역할만 하게 된다.

이미 새 주인이 나온 상태에서 옛 이야기를 들추어내어 잘잘못을 가리는 일은 법원으로서도 재미없는 일이다. 일만 복잡하게 만든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행정부의 정책이 법의 이름으로 시행되는 한 법원 역시 행정부에 못지 않는 정책적 고민을 하고 판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공정위는 자신의 정책판단대로 법을 집행할 것이고 법원은 면죄부를 주는 역할만 하게 된다.

대법원 판결은 고등법원 판결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데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는 이유로 우리나라 신품 피아노 시장을 관련시장으로 획정하여, 이 시장에서 영창악기와 삼익악기가 결합하면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게 되고, 이 결합이 효율성을 증대하거나 회생이 불가능한 회사와의 결합이 아니라는 점을 들었다. 이러한 사실판단과 법리적용에 대해서는 논자에 따라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좀더 근본적인 정책적 쟁점에 대해 대법원이 침묵하고 있는 점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우선 영창악기에 대한 회사정리절차가 이미 시작된 후 내려진 고등법원 판결이나 종결된 이후 내려진 대법원의 판결에서 먼저 결정해야 했던 것은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이 부도 전 제3자 인수에 의한 방식이 더 나은 것인지 아니면 회사정리절차(현행 도산법이라면 회생절차)에 의한 방식이 더 나은 것인지에 관한 “정책적 판단”이였다.

이 사건의 본질은 회사와 그 이해관계자의 이익과 소비자의 이익 중 누구의 이익을 우선해야 하는가 하는 “정책 판단”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법원의 판결은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당사자의 합의에 따른 구조조정이 가능하다면 그것이 회생절차를 통해 구조조정을 하는 것보다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회생절차는 일반적으로 채권자나 기존 주주의 권리를 감축하고, 절차를 진행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회사와 그 이해관계자들에게 상당한 불이익을 주게 된다. 이 사건에서도 영창악기가 회사정리절차에 들어감으로써 21개월 동안 법원의 감독하에 관리인이 경영권을 행사하였다.

영창악기의 회사정리계획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일반적인 관행을 미루어 짐작해 보면 기존의 주주는 권리를 모두 잃었을 것이고 채권자들도 채권을 전액 변제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본질은 회사와 그 이해관계자의 이익과 소비자의 이익 중 누구의 이익을 우선해야 하는가 하는 “정책 판단”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법원의 판결은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정책 판단자로서 법관의 역할

설사 소비자의 이익을 우선한다고 하여도 삼익악기와 영창악기의 기업결합으로 피아노 시장에서 경쟁이 제한되어 우리나라 소비자의 이익이 정말 침해되었을까? 공정거래법을 잘 모르는 필자로서는 나서기가 조심스럽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에 기대어 참견을 한다면,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다. 노동집약적인 피아노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국제경쟁력을 갖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고급 피아노의 대명사인 야마하는 바다 건너 일본 회사이고, 중국은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세계 3대 피아노 메이커 중 하나를 갖고 있다. 무역 자유화의 결과 외제 피아노는 어디가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 있는 시장에 국내 회사가 하나인 경우와 둘인 경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나라 피아노 산업은 자식을 많이 낳고, 낳은 자식마다 피아노를 가르치던 세대가 만들어 준 것이다. 이제 자식도 많이 낳지 않고, 피아노 말고도 가르칠 것이 많은 시절이 되었다. 더욱이 피아노는 보호받을 상품도 아니어서 국제적인 경쟁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피아노 산업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보다 근본적인 정책 판단을 판결에서 듣고 싶었다.

지금 당장 법원의 판단에 따라 해당 회사의 운명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지라도 법원이 근본적인 정책 문제에 대한 판단을 해 줘야 공정거래위원회가 그에 맞추어 법을 집행하게 된다. 그런 판단 없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처분이 옳다고 판결을 하면 그 전제가 되는 정책적 쟁점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법집행의 전제가 되는 근본적인 정책적 쟁점에 대해 법원이 더 적극적으로 판단해 줄 것을 기대한다. ■

오수근 / 이화여대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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