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을 사랑했던 다산 정약용도 관존민비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정부 의존적 사고를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인간이 운영하기 때문에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다. 국민이 정부가 많은 일을 하기를 기대하면 할수록, 정부는 그 규모나 권한에서 커지고, 큰 정부는 그 만큼 많은 규제를 하게 되고, 세율은 높아지고, 기업의 활동은 위축되게 마련이다.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정부 의존적인 사고를 버려야 할 때이다. |
우리의 삶은 만남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만남을 통해 이해하고 사랑하고 배우고 돕고 하며 삶을 엮어가는 것이다. 부모와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좋은 책과의 만남, 친구와의 만남, 연인과의 만남 모두 만남들이다. 이러한 만남을 생각하며 필자는 “다산이 맬서스를 만났었더라면 우리사회가 지금보다는 더 좋아 졌을 터인데”하는 생각을 자주하곤 한다.
과거의 일은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런 것을 어찌 됐었더라면 하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일이지만 지금에라도 우리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우리의 갈 길을 선택하기 위해서 한번쯤 과거 가정법을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산 정약용과 맬서스 사상의 차이
공우리나라의 다산 정약용(1762~1836)과 영국의 토마스 맬서스(T. Malthus, 1766~1834)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들이다. 두 사람 모두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산 사람들로 다산은 맬서스보다 4년 일찍 1762년에 태어나 그보다 더 오래 살다가 1836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들이 만일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었더라면 분명히 서로 알만한 사이였을 것이다.
다산은 그의 명저 “목민심서”를 포함해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저술 활동을 했으며, 맬서스는 우리에게도 그의 명저 “인구론”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그들이 산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통신체계가 없었기 때문에 서로 그 존재를 모른 채 동시대에 지구상에 살다가 간 것이다.
다산은 정부나 관료가 가난이란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며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목민심서의 중요한 내용이다. 그러나 맬서스는 빈민구호를 위한 재정부담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빈곤의 해결책은 당사자 개인의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
우리나라의 다산과 영국의 맬서스는 경제문제에 관한 관심을 가졌던 점에서는 비슷했지만 그 견해가 대조적인 면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가난이란 문제를 놓고 많은 고심을 했다. 그러나 같은 시대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문화적 배경이 다른 탓인지 대조적인 생각을 했다. 다산은 가난을 보고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관료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 많은 생각과 논의를 했다. 그는 정부나 관료가 가난이란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며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목민심서의 중요한 내용이다.
그러나 다산과는 대조적으로 맬서스는 빈민구호를 위한 재정부담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빈곤의 해결책은 당사자 개인의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만일 이들이 글로라도 만나 교우 했더라면 다산의 생각도 맬서스를 포함한 동시대의 영국계몽사상가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경제문제에 관련해 우리나라 사람들도 정부 의존적 사고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산이 살던 조선 시대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강조되던 유교문화의 중심에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당시에 조선에 전파되어 들어온 기독교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매형 이승훈과 큰형 정약현의 처남 이벽이 모두 기독교 전파의 선구자들이었음을 보면 그가 쉽게 기독교를 만날 수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연유로 그의 대표적 저서 목민심서의 중요한 부분이 애민육조(愛民六條)인 점에서 보듯 그는 사랑 애(愛)를 많이 생각했다. 그는 그의 저서 목민심서(牧民心書)의 서문에서 자신이 인용한 “목민(牧民)하는 것을 가축을 기르는 것”에 비유한 맹자의 말대로 관(官)은 목동(牧童)처럼, 백성은 양(羊)떼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인간 삶의 개선은 어떤 지배계층이나 단체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각자가 책임을 지고 점차적으로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 가난은 가난한자의 잘못 때문이라며 스스로 해결해야지, 그것을 구제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의타적으로 만든다. |
그는 목민관이 백성을 청렴결백하게, 공평무사하게 다스려 나갈 것을 강조했다. 즉 목민심서의 애민육조에서도 나타나듯이 노인을 봉양하고, 어린이를 사랑으로 기르고, 불쌍한 사람을 구원하고, 가난을 구제 하는 등 백성을 기르려는 마음이 가득하다. 심지어 그는 가난하여 혼기가 지나도록 혼인을 하지 못한 사람은 마땅히 관에서 성혼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관의 역할과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없을 정도로 생각 하였다. 그의 생각에 의하면 어디까지나 관은 베풀고 지배하는 위치이고 백성은 동정의 대상, 지배의 대상이었다.
다산이 맬서스를 만났더라면
그는 정조(1752-1800)의 신임과 사랑을 받아 많은 일을 했다. 그의 업적과 저서를 보면 그는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이 지혜로운 사람이 애담 스미스(Adam Smith, 1723~1790), 리카도(D. Ricardo, 1772~1823) 등을 포함한 동시대 영국 계몽사상가(Anglo-Scottish Enlightenment) 중의 한사람인 맬서스라도 만났었더라면 우리나라에 일찍이 이 사상이 전파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즉 다산의 지적능력에 기초해 영국계몽사상이 일찍이 우리사회에 소개되고 전파되어 우리의 시장경제 사상이 이해되고 정립 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그랬더라면 우리나라가 보다 빨리 보다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국계몽사상의 요점은 “사회의 변화는 그 구성원의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 삶의 개선은 어떤 지배계층이나 단체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각자가 책임을 지고 점차적으로 이루어 나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맬서스는 그의 인구론에서 가난은 가난한자의 잘못 때문이라며 스스로 해결해야지, 그것을 구제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의타적으로 만든다고 주장했다.
맬서스의 인구론 하면 우리에게는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반면에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라는 명제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추가적으로 주장한 인구증가의 억제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사실 그는 만혼 교육 등의 예방적 억제책과, 전쟁 질병 기아 가혹한 노동 등의 적극적 억제책 그리고 도덕적 억제에 의해 인구증가가 억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러한 주장 때문에 결혼을 집례하기도 하는 목사이기도 했던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물론 그는 훗날 주로 교수생활을 했지만 말이다.
정부는 천사나 요정이나 전능한 존재가 아닌 인간이 운영하는 것이다. 국민이 정부가 많은 일을 하기를 기대하면 할수록, 정부는 그 규모나 권한에서 커지고, 큰 정부는 그 만큼 많은 규제를 하게 되고, 세율은 높아지고, 기업의 활동은 위축되게 마련이다. |
이런 의미에서 어느 남자가 아이가 많은 것이 가난의 원인이라고 자신의 성기를 자른 소식을 접하고 애절양(哀絶陽: 아이 많은 가난한 남성이 성기를 자른 것을 슬퍼한 다산의 시)을 지었다던가, 가난하여 혼기가 지나도록 혼인을 하지 못한 사람은 마땅히 관에서 성혼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한 다산은 맬서스와 대조가 된다. 다산은 관의 역할과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없을 정도로 생각하였다. 그의 생각에 의하면 어디까지나 관은 베풀고 지배하는 위치이고 백성은 동정의 대상, 지배의 대상이었다.
정부 의존적 생각의 굴레를 벗자
우리는 아직도 정부를 무소불위(無所不爲)적 존재로 생각하고, 정부 의존적 생각, 관존민비적 생각의 굴레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고시 준비하느라 생산대열에 참가치 못한 수많은 젊은 인력이 소모되고, 대학이 있기만 하면 행정학과가 있고, 이공계를 경시(일본도 이 때문에 발목이 잡혀 있다)하고, 지나치게 권력을 추구하고 있는 나라가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그나마 1950년대 이후 자의에서건 타의에서건 영미사상을 받아 들여 이 나마의 성취를 이룩한 것이다. “정부란 국민들이 개별적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을 전체국민을 위해 공동으로 하기 위해 존재 하는 것이다”라는 링컨(1809-1965)의 말이나, “영어에서 가장 폭력적인 아홉 개의 단어는 ‘나는 정부공무원인데 도와주려 여기에 있습니다(I'm from the government. I'm here to help you)’이다”라는 레이건(1911~2004)의 말을 우리는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의 도깨비 방망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리고 정부는 언제나 공정하고 효율적이지도 않다. 정부는 천사나 요정이나 전능한 존재가 아닌 인간이 운영하는 것이다. 국민이 정부가 많은 일을 하기를 기대하면 할수록, 정부는 그 규모나 권한에서 커지고, 큰 정부는 그 만큼 많은 규제를 하게 되고, 세율은 높아지고, 기업의 활동은 위축되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발전을 해 왔다. 정부가 알파요 오메가인 북한과 우리를 비교하면, 그나마 우리가 영미사상을 부분적으로나마 받아 들여 부분적이나마 민간주도의 시장경제를 운용하여 이 나마의 성취를 이룬 것이다. 현재 국민 총생산 기준 남한은 북한의 26배의 생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명실 공히 선진국대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영국계몽사상이 보다 더 이 사회에 전파돼야 하겠다. 사회의 변화는 구성원 즉 모두 각기 자신이 변해야 된다는 것, 가난으로부터의 탈피도 내가 해야 된다는 생각이 보다 널리 전파되고 수용돼야겠다. 다산이 2백여 년 전에 만나서 전파했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널리 전파하며 실천해야 하는 일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과제이다. ■
이경원 / 대진대 미국학과 교수
2008/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