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구조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개헌 논의가 한창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국가권력을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이에 대한 논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역사적으로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을 가진 영국과 미국은 그렇지 않은 프랑스, 독일보다 훨씬 더 큰 자유와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구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유럽 국가들 가운데 국가권력을 억제하고 경제에 대한 국가 간섭을 제한하는 나라는 승승장구를 하고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빈곤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그래서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헌법규칙이 중요하다.

정치권이나 학계에서 개헌논의가 한창이다. 쟁점은 대체로 내각책임제냐 대통령중심제냐, 분권형 대통령제냐 또는 이원집정제냐, 대통령 연임제냐 아니냐, 부통령제를 둘 것인가 등 권력구조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국가권력을 조직하는 것이 적합한가?”에 관한 문제, 즉 헌법규칙으로서 ‘조직규칙(organizational rule)’의 문제이다.

이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해할만하다.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기만 하면 만사가 해결될 것으로 믿고 대통령 직선을 중심으로 1987년 개헌을 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은 대로 일이 잘돼가는 것이 아니었다. 1987년 체제는 우리를 실망시켰다. 경제는 불안해졌고 고용도 불안하고 성장도 불안해졌다. 정치권은 무책임하고 그 결과, 모든 피해는 국민들이 짊어져야했다. 개헌한지 20년이 지난 금년, 그리고 헌법을 제정한지 60년이 되는 금년,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겹겹이 쌓인 규제 덩어리와 경제의 취약성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권력구조와 관련된 헌법을 개정하고자 논의가 한창이다. 1987년 체제의 민주주의는 지속가능하지 못하니까 새로이 ‘지속가능한 민주주의(sustainable democracy)’를 찾아야 한다고 한다. 이런 논의는 대단히 고무적이고도 매우 중요하다.

개헌한지 20년이 지난 금년, 그리고 헌법을 제정한지 60년이 되는 금년,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겹겹이 쌓인 규제 덩어리와 경제의 취약성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권력구조와 관련된 헌법을 개정하고자 논의가 한창이다. 그러나 국가권력구조에 치중하는 개헌논의가 충분한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러나 국가권력구조에 치중하는 개헌논의가 충분한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왜냐하면 “어떻게 국가권력을 적합하게 조직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으로서 적합한 헌법적 제도를 찾았다고 해도 이런 헌법으로는 도저히 해결 할 수 없는 아주 중차대한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제한할 것인가”의 문제, 간단히 말해서 ‘제한규칙(limiting rule)’의 문제가 그것이다. 국가권력의 조직문제와 국가권력의 제한 문제는 원리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국가의 권력을 효과적으로 제한하는 헌법규칙의 문제가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한 헌법 개정이 없이는 어떤 개헌으로도 규제의 늪에 빠진 오늘의 침체된 한국경제를 구출하여 번영의 길로 안내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개헌에 관한 거대한 담론의 장(場)에 진지하게 제시하려는 관점이다. 이를 위해서 우선,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두 가지 헌법규칙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두 가지 종류의 헌법규칙: 제한규칙과 조직규칙

조직규칙은 대통령제, 내각제, 등과 같은 문제뿐만 아니라 의회의 구성방법, 대통령이나 그 밖의 정치적 인물의 선거제도, 헌법재판소의 구성, 정당조직에 관한 헌법조항, 투표권 등도 조직규칙에 속하는 사항이다.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 또는 정부에 할당된 자원의 관리 방법 등도 조직규칙에 속한다.

그러나 이와는 엄격히 구분해야 할 제한규칙은 국가의 역할과 국가의 의무를 무제한으로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엄격히 제한하기 위한 헌법규칙이다. 조직규칙은 국가의 과제가 무엇이고 국가의 활동범위가 얼마나 제한해야 하는가의 문제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제한 규칙 사례>

  • 정부지출규모, 지출용도를 헌법으로 제한하거나 적자예산을 엄격히 제한하는 헌법규칙
  • 세율을 누진세율 대신에 단일세율로 정하는 것
  • ‘편들기’나 ‘편 가르기’ 같은 차별적인 내용을 가진 입법을 억제하는 헌법규칙
  •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것을 국가의 제일의 의무라고 천명하는 헌법규칙
  • 복지나 재분배를 위한 정부지출을 제한하는 헌법규칙

헌법규칙으로서 이런 제한규칙은 국가의 권력을 제한하여 국가로부터의 개인의 자유와 재산의 침해를 막기 위한 것들이다. 국가라고 해서 자의적으로 민간인의 재산과 명예, 그리고 인격을 침해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도 시민들과 똑같이 타인들의 재산, 명예와 인격을 침해하는 것을 막아서 모든 사람들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을 찾는 것이다.

헌법규칙의 이와 같은 구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것이 ‘헌법실패’와 ‘정부실패’의 개념이다. 헌법실패는 국가의 권력을 적절히 제한하지 못하여 생겨나는 현상이다. 정부실패는 적절한 제한 규칙이 있음에도 선거제도 또는 권력배분 등과 같은 적합한 조직규칙의 불비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가지 규칙의 구분은 이상적인 두 가지 정부의 구분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구분이 그것이다. 조직규칙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민주주이다. 이에 반하여 제한규칙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자유주의이다.

중요한 것은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것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조직규칙과 제한규칙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의 문제이다. 내각제를 가진 나라와 대통령제를 가진 나라를 비교하면 무엇이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독일과 영국을 보자. 모두 내각제이다. 그럼에도 경제적 성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캐나다의 프레이저 연구소(Fraser Institute)의 보고에 따르면 얼마나 자유가 많은가를 말해주는 ‘자유지수’에서 영국은 경제자유가 많기로 세계에서 5위권에 속한다. 그러나 독일은 20위권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자유지수의 차이의 경제적 결과다. 실업률에서 독일은 영국보다 항상 2~3배 높고 성장률은 배 이상 낮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가? 이 문제는 조직규칙과 관련된 내각제로는 설명할 수 없다. 다 같은 내각제임에도 경제적 성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독일헌법에는 경제와 관련하여 국가권력에 대한 제한규칙이 없다. 헌법은 시장 간섭에 대해서는 의회의 전권에 맡겼다. 경제관련 불문 헌법이 있기는 하다. 이른바 ‘사회적 시장경제’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의 과제와 관련하여 엄격한 제한이 없다. 오히려 국가의 권력을 제한 없이 불러오는 것이 사회적 시장경제다.

권력구조는 중요하지 않고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국가의 권력을 제한하여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한 나라는 번영했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망했다. … 산업혁명이 중국에서 일어나지 않고 하필이면 유럽에서 발생한 이유도 시장경제의 기반이 되는 재산과 자유의 보호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불문헌법은 고유한 자유주의 전통에 따라 국가권력을 제한하여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것을 중시한다. 바로 이 차이가 독일경제와 영국경제의 차이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을 가진 나라의 경제적 번영이 그렇지 못한 나라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대통령 중심제인 미국과 프랑스의 비교에서도 드러난다. 미국의 자유지수도 역시 영국과 마찬가지로 5위권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52위권이다. 미국의 실업률에 비하여 프랑스의 그것은 3배 정도나 된다. 미국의 성장률은 프랑스보다 2배 이상 높다. 다 같은 대통령 중심제임에도 이런 차이를 가져오는 것도 미국은 국가의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을 가진 반면에 프랑스는 그런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권력구조는 중요하지 않고,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미에나 유럽에만 적용되는 특수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 원리이다. 역사적으로 국가의 권력을 제한하여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한 나라는 번영했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망했다. 로마의 흥망성쇠는 물론 남미도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을 가지고 있는가에 좌우되었다. 산업혁명이 중국에서 일어나지 않고 하필이면 유럽에서 발생한 이유도 시장경제의 기반이 되는 재산과 자유의 보호 때문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권력구조에 초점을 맞추는 개헌론은 ‘1987년 체제’의 실패를 잘못된 권력구조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라는 것은 경제관련 한국헌법을 보면 또렷하게 드러난다.

헌법이 전제하는 사회적 시장경제 틀렸다

경제관련 헌법을 검토해보자. 한국헌법은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제한하는 효과적인 헌법규칙이 없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은 정부의 광범위한 간섭을 요구하고 있다. 그 간섭은 경제활동 규제, 특정 산업 보호육성, 복지와 분배정책 등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표 1> 헌법상 정부간섭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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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조항과 정부간섭의 내용

경제활동 규제 

  • 제119조 2항(균형성장, 경제안정, 소득분배,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억제, 경제민주화를 위한 규제와 조정)
  • 제120조(자연자원에 대한 제한적 특허, 국토와 자원의 균형개발을 위 한 계획)
  • 제121조(경자유전원칙, 농지의 임대차의 제한)
  • 제122조(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한 이용과 개발제한)
  • 특정산업 보호육성

  • 제123조(농어촌 개발계획, 지역의 균형발전, 중소기업보호육성, 농수산물가격안정과 농어민 보호)
  • 제124조(소비자 보호운동의 보장)
  • 제125조(대외무역의 육성, 규제, 조정)
  • 제127조(국가의 과학기술개발, 국가표준제도 확립)
  • 복지와분배 

  • 제32조(노동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 적정임금과 최저 임금 보장, 고용증대 노력, 년소자와 부녀자 특별보호, 국가유공자 유가족 고용우선)
  • 제34조(사회보장, 사회복지의 증진, 여자의 복지, 노인과 청소년 복지, 신체장애자 질병 노령)
  • 제35조(환경권과 주택개발정책)
  • 현행헌법이 추구하는 경제질서를 헌법학계에서는 ‘사회적 시장경제’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헌법은 경제와 관련하여 국가권력을 효과적으로 제한하는 헌법규칙이 없다는 것, 오히려 국가에게 거의 무제한의 간섭권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권력을 거의 무제한 불러들이고 있다. 이 맥락에서 흥미로운 것은 왜 현행헌법은 경제와 관련하여 국가 권력을 무제한 불러들이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그것은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제헌헌법부터 현행헌법에 이르기까지 관통한 한국헌법의 기조는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불신이었다. 자유시장경제는 빈곤의 문제, 성장, 분배, 환경, 고용과 같은 경제문제의 해결사가 아니라 그런 경제문제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 역사적 경험의 결과만 본다고 해도 (우리) 헌법이 전제하고 있는 경제관(사회적 시장경제)은 틀렸다. … 시장경제원칙을 확실하게 지킨 나라나 정부는 빈곤의 문제는 물론 성장과 번영 그리고 분배문제, 환경문제 심지어 주택문제까지도 성공적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이론적 역사적 경험의 결과만 본다고 해도 헌법이 전제하고 있는 경제관은 틀렸다는 것이 또렷이 드러난다.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우리는 성공한 나라와 실패한 나라를 구분해주는 중요한 기준을 발견할 수 있다. 성공한 나라는 한결같이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확실하게 보호한 나라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시장경제원칙을 확실하게 지킨 나라나 정부는 빈곤의 문제는 물론 성장과 번영 그리고 분배문제 환경문제 심지어 주택문제까지도 성공적으로 해결했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만 보아도 확실하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였던 동유럽국가들 가운데 사회주의의 탈을 벗고 시장경제원칙을 지켰던 발틱 3국이나 헝가리, 체코 등은 버젓이 중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 그러나 사회주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나라들은 아직도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지키지 못한 남미국가들도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독일만 해도 그렇다. 자유시장경제를 확실히 지켰던 1950~60년대에는 생산성도 높고 성장도 높았다. 실업 문제도 만족스럽게 해결했고 분배도 양호했다. 그러나 정부의 간섭이 심해지기 시작했던 1970년대 이후에는 정부가 커지면서 생산성도 줄어들었고 성장도 느렸고 실업은 급격히 늘어났다. 흥망성쇠는 시장경제를 제대로 지키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은 스웨덴과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국의 대처수상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침체의 늪에서 자국경제를 살렸다. 확실하게 시장경제원칙을 지켰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한국헌법의 불신은 이론적 근거는 물론 경험적 역사적 근거도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국가의 간섭이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한국헌법의 신뢰도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1987년 체제’의 실패는 국가권력을 제한하지 못한 헌법실패

    다시 ‘1987년 체제’의 실패 원인의 문제로 돌아오자. 현행헌법은 경제와 관련하여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조항이 없다. 그렇다면 1987년 체제의 실패원인은 뚜렷하다. 국가권력을 효과적으로 제한하는 제한규칙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오히려 국가에게 거의 무제한의 권력을 허용한 헌법 때문이다. 1987년 체제, 즉 이른바 민주화 체제는 국가권력을 제한하는데 초점을 맞춘 체제가 아니라 국가권력의 조직에 초점을 맞춘 체제이다. 국가권력의 제한에는 소홀이 한 체제이다. 왜 소홀이 했는가?

    현행헌법은 경제와 관련하여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조항이 없다. 그렇다면 1987년 체제의 실패원인은 뚜렷하다. 국가권력을 효과적으로 제한하는 제한규칙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오히려 국가에게 거의 무제한의 권력을 허용한 헌법 때문이다.

    그 이유는 대통령만 우리 손으로 뽑으면 만사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자신들을 대신하여 통치할 대표자들을 다수결을 통해 주기적으로 보통, 비밀 선거를 통해 통치자를 뽑는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면 경제적 번영도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1987년 헌법 개정에서 사람들은 민주적 과정만 일단 지킨다면, 국가권력에 대한 다른 일체의 제한이 불필요하다는 환상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이런 환상 때문에 권력을 효과적으로 제한하는 제한규칙의 마련을 소홀히 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제한되지 않은 민주주의의 위험성이 현실로 등장했다.

    정당간의 경쟁에서 집권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지지층이 필요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은 피해가 생긴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에게 장기간에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이익을 가져다주는 장기정책보다는 특정 집단에게 집약적으로 이익을 주는 단기적인 정책을 표방하는 정당이 승리한다. 더구나 불특정 다수에게 비용을 부담하게 하고 편익은 특별한 계층이나 산업에게 주는 지출정책을 표방하는 정당이 승리한다.

    이런 정치적 과정의 결과가 현실로 나타났다. 시혜적인 복지정책이 증가하고 이를 위한 지출도 증가했다. 지지표 때문에 수도권규제도 풀지 못하고 민영화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서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생필품 가격규제도 도입한다. 소액주주의 운동도 강화되어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대기업과 경영자를 심하게 구속하는 제도도 도입되었다. 노조의 힘으로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강화하는 제도도 실현되었다. 다수결논리에 따른 대기업규제, 부동산 규제가 강화되었다.

    계몽사상가들은 프랑스 혁명을 보면서 민주주의를 제한하지 않으면 그것은 왕이나 군주의 절대권만큼이나 무서운 것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그래서 제한적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민주적이라고 해도 국가권력은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민주주의는 자제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정책들의 결과, 수많은 통계가 입증하듯이 지난 10수년간 성장잠재력은 물론 경제성장률도 지속적인 하강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설비투자도 저조하다. 고용증가도 정체되었고 빈곤층도 증가하고 있다. 정치는 민주주의인데 경제는 불안하다. 이것이 1987년 체제의 실패를 상징한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이와 동일한 실수를 이미 오래전에 저지른 것은 유럽 국가였다. 왕이나 군주의 주권이 국민자치와 국민주권으로 전환되면, 자유와 재산의 보장 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믿음 때문에 절대적 권력을 제한하기 위해 고안되었던 법의 지배, 권력분립, 법 아래에서의 정부, 그리고 공법과 사법의 구분과 같은 자유주의 원칙이 경시되었다. 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이루어지면 권력을 자의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방지할 별도의 조치가 필요가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런 믿음을 확립하고 국가권력을 조직하는 문제에 집착했던 것이 홉스(T. Hobbes) 루소(J. J. Rousseau) 전통의 프랑스 계몽주의였다.

    그러나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은 민주주의는 권력의 원천을 말해줄 뿐 권력의 내용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이라고 해도 그 권력은 스스로 제한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났다. 헌법적으로 제한을 두지 않은 ‘무제한 민주주의(unlimited democracy)’의 결과는 국내생산액(GDP) 대비 정부지출이 50~60%, 고소득층 세율이 60%였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야기한 복지국가가 초래했다. 생산성은 줄어들고 1~2%로 성장은 둔화되었고 10%를 상회하는 실업이 일상적이다.

    그러나 민주적이라고 해도 정부의 권력은 제한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왕의 주권이나 군주의 절대권을 제한하기 위해 고안했던 자유주의 원칙을 고수했던 것이 흄(D. Hume)과 스미스(A. Smith)를 비롯한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였다. 이 사상의 추종자들은 프랑스 혁명을 보면서 민주주의를 제한하지 않으면 그것은 왕이나 군주의 절대권만큼이나 무서운 것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그래서 제한적 민주주의(정부)를 요구했다. 민주적이라고 해도 국가권력은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민주주의는 자제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통치자의 자의적인 권력행사로부터 시민들의 재산과 인격, 그리고 자유를 보호하는 것, 이것이 헌법의 역할이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정부의 권리보다 우선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들에게 통치자의 자의적인 권력행사로부터 시민들의 재산과 인격, 그리고 자유를 보호하는 것, 이것이 헌법의 역할이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정부의 권리보다 우선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근대헌법의 뿌리로서 17세기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나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s)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18세기에는 재산과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의 권력을 제한하려는 자유주의의 유서 깊은 원칙들이 확산되었다.

    미국에서 이런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매디슨을 비롯한 유명한 미국헌법제정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유였다. 인격과 재산을 보호하고 자유로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호하는 헌법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정부권력을 제한하지 않으면 그것은 무제한적 권력을 행사하고 이로써 개인의 인격과 재산을 침해할 것을 두려워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찾기보다 정부의 권력을 효과적으로 제한하여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헌법을 찾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 노력의 결과가 미국헌법을 구성하고 있는 원칙이다. 자의적인 국가강제로부터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것은 헌법이고 그래서 헌법이 중요하다는 헌법주의의 확고한 전통을 확립했던 것이다. 시장경제의 발달은 이런 제도적 산물이다. 헌법을 통하여 시장경제를 보호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이 누리고 있는 물질적 비물질적 번영은 그런 헌법주의의 산물이다.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경제질서 : 자유시장경제

    이제 뚜렷해진 것이 있다. 성공한 헌법은 정부의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이라는 것이다. 그런 헌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 활동을 제한하는 작은 정부-큰 시장을 지향하는 헌법
    둘째, 자유와 재산권을 중시하는 헌법
    셋째, 시장경제의 원칙을 중시하는 헌법
    넷째, 특수한 집단의 이해나 산업을 보호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헌법이 아니라 보편이익을 보호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헌법

    이런 정신을 구현한 것이 자유시장경제이다. 이것은 국가권력을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일에만 행사할 것을 요구하는 경제질서이다. 국가의 과제를 폭력과 기만 그리고 개인의 재산이나 명예를 침범하는 것을 막는 법과 질서의 유지를 제일의 과제로 여기는 것이다. 이 점이 국가권력과 국가과제를 거의 제한 없이 불러들이는 사회적 시장경제와 다른 점이다.

    (1) 헌법이 추구할 경제질서는 공동체자유주의가 아니다.

    한국헌법이 추구할 경제질서는 현행헌법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아니라 자유시장경제라는 것이 뚜렷해졌다. 그런데 한국경제의 ‘선진화’를 위한 경제질서는 공동체자유주의라고 믿는 식자(識者)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한국헌법이 가야할 길이 아니다.

    그 이유로서 몇 가지를 들면, 반(反) 자유주의 성향인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를 절충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동체자유주의도 자유주의는 약육강식이라는 등, 자유주의를 오해하고 있다. 기업을 공동체로 파악하여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희석시키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이해하고 있다.

    노사정(勞使政)위원회 대신에 노사학(勞使學)으로 교체하여 정부가 빠지고 학자가 대신하는 새로운 집단주의를 시도하고 있다. 이것도 노사정 위원회와 다름없는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하는 조치이다. 환경문제나 정치문제를 보통사람이 시행할 수없는 높은 차원의 도덕주의를 요구하는 것을 봐도 공동체자유주의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친동생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공동체자유주의로는 국가권력을 제한하기 어렵다. 국가권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자유시장경제이고 이 원리의 실천을 국가의무로 규정하는 것이 ‘자유의 헌법’이다.

    (2) 자유시장경제를 위한 바람직한 헌법의 세 가지 조건

    결국 한국헌법이 가야 할 길은 자유시장경제이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의 문제이다. 자유시장경제를 위한 헌법이 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세 가지 헌법적 조건이 있다. 그 조건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자유시장경제를 위한 3가지 헌법적 조건>

    첫째, 경제에 대한 정부의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
    둘째,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보호를 최우선하는 헌법
    셋째, 복지국가의 환상에서 벗어난 헌법

    작은 정부는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것을 제일로 여기는 정부이다.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경우, 다시 말하면 보편적인 이익을 위해서만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하다. 왜 자유와 재산권의 보호가 중요한가? 그 이유에 대하여 이미 앞에서 언급했다. 몇 가지 간단한 예를 들면, 경제적 번영은 자유와 재산의 보호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경제자유와 재산의 인정과 그 보호는 정치적 자유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아주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빈곤문제, 고용문제와 같은 민생문제의 첩경은 자유시장경제라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좋은 헌법은 정부의 시혜적 복지를 막아내고 최소의 생활보장에 정부의 복지역할을 한정하는 것이다. 복지와 관련한 국가의 역할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최소의 생존을 보장하는 보편적인 사회안전망의 마련을 요구하는 것, 이것이 바람직한 헌법이다. 이런 식으로 복지부문에서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특정한 계층을 열거하여 그 계층을 돌봐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는 헌법은 차별적 이고 편들기 하는 헌법이 되기 쉽다. 그리고 이런 편들기의 국가권력은 제한하기도 쉽지 않다.

    개헌논의는 국가권력의 제한규칙에 대한 논의부터

    지금까지 9차례나 헌법이 개정되었다. 그 개정 논의에서 중심된 것은 항상 권력구조의 문제였다. 이에 반하여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는 대단히 인색했다.

    그 권력구조의 개헌에서 최고 절정은 민주화였다. 민주화는 권력을 어떻게 조직하는 것이 합당한가의 조직규칙의 문제이다. 그러나 조직규칙에 치중했던 ‘1987년 체제’는 실패하고야 말았다. 내각제로의 개헌논의도 권력구조의 문제이다. 국가권력을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권력구조의 문제에 집착하는 개헌논의는 실패한 프랑스 계몽주의의 전철을 밟는 것과 다름이 없다.

    프랑스 계몽주의의 현대판이 스웨덴, 독일, 프랑스의 복지국가이다. 우리의 개헌논의는 프랑스 계몽주의를 답습하고 있는 현행헌법을 바꾸는 일이다.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을 구현하는 일이다. 이런 헌법이 지속가능한 헌법이다. 그래서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개헌논의는 현행헌법을 어떻게 개정하는 것이 국가권력을 제한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우리가 진정 번영의 길로 갈려면 국가가 자유와 재산을 억압하는 현행헌법을 개선하여 국가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

    민경국 /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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