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업원-한경비즈니스 공동기획>

총장의 新사고, 대학 운영에 마케팅 개념 도입한 세일즈 총장

이사장님은 언제나 새로운 길 개척을 잘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싶은 것은 예전에 연세대, 명지대 총장님으로 계셨을 때 이루셨던 일들에 대해 듣고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대학 총장이 적극적으로 모금에 나섰다든지 가만히 있어도 학생들이 오는데도 불구하고 더 좋은 학생을 모집하러 전국을 다니신 일들도 새로운 길이었지요.



연세대 총장이 되고 난 후, 한국일보에 <총장의 新사고>란 제목으로 칼럼이 하나 나왔던 게 기억납니다. 제가 기존에 없던 것들을 새롭게 만들었다기보다는 이미 선진대학들이 하고 있는 것 중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들을 받아들이자고 말했던 것이지요. 이제 대학도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이것 또한 하나의 경영적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경제적으로 얘기하면,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누가 더 잘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것 아닙니까. 그런 면에서 우리 대학들도 관념을 가지고 운영하고,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성장하는 데 매력이 있는 것처럼 대학도 더 많이 경쟁하고 성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본을 가지고 운영해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엔 반발도 많았습니다. “총장이 무슨 술상무냐” “물건 팔려고 돌아다니는 장사꾼이냐”등 비판과 견제도 많이 받았지요. 세일즈맨처럼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자금을 모은다… 그래서 '세일즈 총장’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 <총장의 新사고>라고 하는 것은 대학을 운영하는 데 경영자적인 사고를 도입시키는 것인가요?

요새 경영이라는 건 “고객을 잘 섬긴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기업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미리 알아서 그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학도 마찬가지지요. 옛날엔 스승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고 얘기했지만. 지금은 교육도 수요자 중심입니다. 즉, 학생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아서 충족시켜주고 그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학생의 등록금이나 정부의 보조금만으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무언가 적극적인 투자를 끌어오는 게 필요했습니다.



“Times goes very fast.”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지요. 전 총장에 재임하면서 '지금 다 이루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세레 요한 같은 총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성경에 보시면, 세레 요한이 길을 놓고 예수가 와서 그 뜻을 이루지요. 바로 제 뒤에 오는 총장들이 이룰 수 있도록 저는 길을 놓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때 만들어놓은 가장 크고 중요한 인프라들이 지금 대학에서도 고스란히 쓰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대외협력처와 입학관리처를 만든 것이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지요. 대학이 자체적으로 입학관리를 담당한다는 그런 취지였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나라 대학입학은 12월 달에 교무처에서 하는 단발적인 행사로 끝났었지요.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입학사정관제는 절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선진 대학들을 보세요. 그들은 입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학생들을 직접 찾아다닙니다. 실제로 그 사람들은 담당 지역의 고등학교들과 항상 관계를 맺고 있고, 훌륭한 학생들을 유치하고 선발하기 위해서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저는 대외협력처를 만들면서 입학관리처와의 역할을 분리했습니다. 대외협력처는 주로 모금활동, 대학광고를 통한 학교홍보, 학부형 관리 등을 전담하였지요.

* 총장님이 만드신 대외협력처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마케팅 부서 같은 역할이 아닌지요?

그래서 제가 명지대학교 총장으로 있을 때는 아예 이름을 마케팅이라고 바꿨지요. 그리고 처음에 연세대에서 만들 때는 대외협력처란 말을 쓰지 않고 동문협력처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발전협력, 동문발전협력처 이러다가 나중에 대외협력처로 굳어진 것이지요. 따라서 하루아침에 간 게 아니라, 처음에는 동문에 포커스를 주고 모금활동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저는 대학도 투명해야 한다, 예산의 집행내역을 공시해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재단 공시와 함께 대학 광고를 처음으로 신문에 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학이 광고를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러나 지금 보면 거의 광고를 하지 않는 학교가 없지 않습니까? 이제 대학도 마케팅 활동 없이는 도태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 총장님께서 대학 운영에 도입하신 마케팅 개념과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모집하는 것들이 대부분의 대학에 퍼져나가 하나의 큰 변화를 만드셨네요



제가 총장에 출마하면서 500억을 모금하겠다는 공약을 걸었지요. 그런데 그 전에 제가 연세대 기획실장을 할 때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 설립에 80억을 모금했었습니다. 85년에 100억을 했으니, 92년에는 대체 얼마를 한다고 해야 할지가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다 마지막 소견발표를 앞두고 500억을 걸어 버렸지요.

* 좀 두렵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총장이면 근엄한 자리인데, 기업가들에게 아쉬운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싫지 않으셨습니까?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셨나요?

제가 교회를 십여 년 다닌 사람이니까, 하나님이 저를 연세대 총장으로 만든다고 생각하시면 분명히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된다고 생각하면 분명히 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두려운 것은 없었습니다.

모금을 하기 위해서 신문사, 대기업 회장 등 여러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 중에서 삼성 이건희 회장과 만나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 분이 “제가 도울 수 있는 한 열심히 도와드리겠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현대 정세영 회장도 큰 도움을 주셨지요.

그리고 제가 경영학 교수라 그런지 그 동안 기업가 분들과의 접촉은 꾸준히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 분들께 모금을 이야기하는 게 더 쉬웠을지도 모르지요.


* 연세대 정도면 우리나라 대학 중에서 그래도 제일 금전적 여유가 있는 대학 아닐까요?

그건 굉장히 상대적인 것이지요. 돈이라는 게 한없는 것 아닙니까. 등록금만 가지고 대학 운영하는 게 무모하기도 한 것이고요. 제가 항상 말하는 것이 “교육도 투자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하버드대학이 왜 일등일까요? 다른 게 일등이 아닙니다. 투자를 제일 많이 해야 일등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투자하지 않으면 일등이 될 수 없습니다. 저는 교육에서 소위, 수익적 지출은 등록금이 커버해야하고 자본적 지출은 대학이 책임을 져야한다고 봅니다.

* 그래서 모금액은 달성하셨습니까?

참여건수, 금액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다르지만 총계로 따지면 2172억을 모금했습니다. 여기에 어떤 것을 넣고 빼느냐에 따라 달라지긴 합니다만, 순수한 발전기금을 보면 1383억 정도입니다. 여기에 연구비, 현물, 장학금, 학교 채권, 400교회운동, 연세사랑 저금통… 이걸 다 합치면 그 정도가 된다고 할 수 있지요.

* 500억을 약속하시고, 순 1000억 정도를 초과달성하신 쾌거를 이루신거네요.


그렇지요.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렇게 될 수도 없고요. 벌써 그 때부터 점점 학생 수가 줄어 들어간다는 것을 예측하고 대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연세대가 경쟁할 수 있는 대학이 서울대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다양성’입니다.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는 소품종 대량생산이 아니라, 다품종 소량생산을 겨냥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한 가지만 잘해도 그 학생을 키워줄 수 있는 대학의 시스템과 지원에 대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은 네 가지 자율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는 누구를 가르치는지, 누가 가르치는지, 무엇을 가르치는지, 어떻게 가르치는지에 대한 것을 의미하지요. 그런데 소위 세계적인 대학의 총장들은 이 네 가지를 다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권리나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총장들은 이 네 가지 중에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지요.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한 건 누구를 가르치느냐, 어떤 학생을 뽑느냐 이 두 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이거 우리나라에서 잘못했다가는 교도소 갑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대학에 충분한 자율권이 없으니 그 성장에도 한계점이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운영을 하면서 할 수 있는 소소한 실수들을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어야하는데, 교육은 중요하다고 하면서 그러한 실수를 일체 용납해주지를 않아요. 게다가 무엇이든지 처음부터 완벽하게 잘하려고 하다 보니 힘들게 되지요. 대한민국 교육은 모두 잘 하려고 하다가, 모두가 잘못 되어버리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요.

* 그러니까 정부도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다 컨트롤하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못하고 이렇게 못하고… 입학사정관제도 그렇습니다. 단지 실패한 사례가 많았다고 해서 아예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해지는 것이지요. 저는 사립학교가 기부입학을 하지 말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대신 도가 지나치면 안 되는 것이지요.

정부는 정부대로 다 잘 하려고 하다 보니까 문제가 되지요. 이게 규제나 제한을 확 풀어주면 확실히 대한민국 대학도 훨씬 더 잘 될 것이라고 봅니다. 공립학교는 정부가, 사립학교는 재단이 적극적인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 그럼 약간의 부작용만 감수하면 되는 것이군요?

마찬가지로 보면, 시장경제도 완전한 제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있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의 실패는 존재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좋은 의미에서는 '예방한다’는 식으로 모두를 다 묶어놓으면 어떻게 합니까? 교육은 왜 시장경제 개념의 도입이 안 된다고 하는 건지 이해가 도무지 안 됩니다. 교육도 시장 경쟁이 있어야 하고, 일단 경쟁이 있으려면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대학 운영에 있어 학부모, 학교, 재단 이 세 개가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부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학부모에게 교육에 대한 선택권을 주고, 그에 대해 책임지게 하는 것이지요. 이미 다른 나라 교육권은 점차 선택권을 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학부모는 그런 선택권이 없습니다. 그리고 학교에게는 자유를 줘서 경쟁을 자유롭게 하고, 그에 대해 엄정히 평가받도록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재단하고 정부는 교육에 대한 그들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투자 없이는 양질의 교육은 이루어질 수 없으니까요.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 확실한 인프라나 제반 환경을 구축해주어야지요.



제가 총장하면서, 대학교육이 잘 되려면 고등학교 교육이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미국 아이비리그 학생의 절반은 프랩스쿨(Preparatory School) 출신입니다. 대학에서 전문 엘리트 교육을 받기 위한 예비과정이지요. 그래서 저는 고등학교 교장을 하는 것이 교육자로서의 마지막 사명이 되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민족사관고처럼 소위 이야기하는 글로벌 인재를 만들어내는 학교, 모든 과목이 영어로 강의가 가능한 학교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투자, 학교 설립 등 여러 문제가 겹치면서 점차 어려워지더군요. 지금 (주)대교가 경기외고를 인수했는데 이쪽 자문역할을 할 생각입니다.


* 총장님께서는 학교도 주식회사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지금까지 저는 대학을 기업처럼 운영하는 것을 솔직히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외국에 있는 중‧고등학교들을 보면 상장되어있는 학교들도 있지요. 실례로 영국의 노드앵글리아(NordAglia) 그룹은 영국 내 12개 명문 사립학교, 32개 유아 교육기관, 중국의 상해국제학교 등 전 세계 12개의 국제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인천에서도 학교를 세우려고 했었지요.

* 그 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이 꽤 괜찮은가요?

등록금 만 달러를 똑같이 냈다고 했을 때, 누가 더 잘 가르치는지를 가지고 얘기 해야지 그 학교가 주식회사냐 비영리냐 영리냐가 무슨 상관일까요? 요새 병원들도 마찬가지지요. 영리병원이면 그냥 폭리나 취하는 줄 아는 경향이 있는데, 어떤 영리 병원은 비영리 병원보다 더 가격이 싸고 친절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영리 단체나 공기업이 사기업보다 다 잘한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대학이나 병원이라고 해서 기업형은 안 된다는 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것도 무조건 그렇게 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지요.


 
아까부터 계속 강조한 내용인데요. 대학부터 먼저 얘기를 하면, 대학에게 자율권을 주고 평가를 엄하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일을 해나가는 능력이 없고 시장의 룰을 위반했다면, 그런 대학은 자체적으로 시장에서 퇴출되게 되겠지요. 세상에 경쟁력 있는 대학들도 자율 말고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누구를 가르치고 누가 가르치고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가르치고 이 네 가지를 완전히 자율로 하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학생들이 학교를 즐거워서 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제가 어렸을 땐 학교가 집보다 뭐든지 좋았습니다. 그래서 학교 가는 것이 즐거웠지요.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학교가 집보다 환경이 더 낫다고 말하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요? 왜냐면 아직 우리나라 사고로는 “공부는 돈 없어도 한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돈이 없으면 제대로 공부할 수 없지요. 강남 아이들이 어떻게 하는 지 뻔히 통계에 다 나오는데 왜 그걸 부인하려고 하는지…

제일 중요한 건 학생들이 학교를 즐거워서 갈 수 있게 하고, 아파트 중산층 이상의 시설이 완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학교 환경이 참 불편하겠다고 느낍니다. 그러면서 사교육은 무조건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이 말이 안 되지요.

정부는 평범한 사람들이 정말로 사교육비를 쓰지 않고 공교육만 가지고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여학생들과 한 번 대담을 한 적이 있는데, 학교에 가면 그냥 잔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공부는 언제 하냐고 하니까 학원에 가서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했든 어떻게 했든, 정부는 공교육에만 신경 써야지 사교육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거기에 무슨 부정이 있느니 돈을 어떻게 잘못해서 세금을 탈세했느니 그건 별개의 문제지요. 사교육과 교육 TV를 규제한다고 공교육을 바로 잡을 수는 없을 겁니다.


송자 이사장: 1936년생. 59년 연세대 상학과 졸업. 62년 미국 워싱턴대 경영학 석사. 67년 워싱턴대 경영학 박사. 67년 코네티컷대 경영대학원 교수. 76년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92년 연세대 총장. 97년 명지대 총장. 2001년 (주)대교 회장. 2004년 사회복지법인 '아이들과 미래’ 이사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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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선배의 학업 개업식에서 오랜만에 사범대 선후배들을 만나게 됐다. 졸업한 지 어느 정도 지나서인지 다들 나름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임용고사에 합격해 중학교에서 열심히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선배부터, 기간제 교사로 3년째 근무하고 있는 선배, 사립학교에 원서를 넣어 올해부터 근무하게 된 후배, 과외로 근근이 돈을 벌어 임용고사 공부 중인 후배, 학원 선생님으로의 전향을 결정한 선배까지 다양했다.

이렇게 모이니 먼저랄 것도 없이 오가는 화제는 당연히 '교육’이었다. 기간제로 학교에서 근무 중인 선배는 아직도 개선되지 않는 '콩나물 교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일반 시내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그의 반은 38명 정도. 1990년대 말 반 학생수가 55명까지 육박하던 때에 비하면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빽빽한 숫자라는 것이다. 질문을 한 명당 1분씩 받아도 수업시간이 끝나는데, 어떻게 학생들의 창의력과 자발성을 유도하는 토론수업이 가능하겠느냐며 볼멘소리를 늘어놨다.

사립중학교에 들어갔다던 후배는 처음부터 담임을 맡더니 사회과목 수업을 주당 24시간을 한다고 했다. 국영수를 비롯한 주요과목 교사들의 주당 시수가 18-20시간인 걸 감안하면 꽤 많은 시간이다. 왜 수업을 그렇게 많이 하느냐고 물었더니 학교가 교사를 더 뽑을 예산이 없기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수업시수가 월급의 양을 크게 좌우하는 것도 아니었다. 교사성과급제 운영 기준에 담임 유무, 수업시수 양, 주요 직책 여부 등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C등급을 받지 않는 이상 성과급에 큰 차이도 없다고 했다. 학생들의 성적 향상 등은 기준에 없어 교사가 어떻게 가르치는 지에 대한 평가가 되지 않아 교사들의 가르침 욕구도 상승시키지도 못한다고 지적했다. 다량의 수업과 업무에도 인센티브가 없는 그녀가 과연 수업을 연구하고, 보충 자료를 만들 필요와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범대 출신들의 수다는 자연스럽게 교육 지원의 현실에 대해서도 이어졌다. 400명이 넘는 중학교의 예산지원과 100여 명 안팎의 학교의 예산지원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교사 인력 수급이나 인프라 지원에 계속 문제가 생긴다는 내용이었다. 시골 분교에는 최신식 교육 설비까지 지원하면서 돈을 쏟아 붓고 있지만, 정작 폐교되는 사례들이 생기면 그 설비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는 한숨 섞인 소리도 터져 나왔다. 한 선배는 자신이 아는 실업계 고교에 기본적인 과학실험도구가 턱없이 부족한데, 해당 교육청에서는 지원비를 균등 분배해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했다.

자질구레하게 이어지던 대화였지만, 일선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선생님들의 웃지 못 할 고민이자 교육의 현 모습이 아닐까 싶어 헤어지고 나서도 계속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문제는 우리가 나눈 대화들이 마냥 흘려버릴 만한 수다에 그치진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교육 현황은 일선 교사들의 불평이 현실에도 어느 정도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1월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공동 발간한 '2008 교육정책 분야별 통계’ 자료집에 따르면, 중학교 학급당 평균 학생수는 34.7명으로 나타났다. 학급당 학생수가 20명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은 초등학교에만 해당하는 현실이다. 중학교 중에는 40명에 육박하는 학생수를 가진 학교도 많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학급당 평균학생수인 중학교 24.1명(2007년 기준)보다는 여전히 높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교원 1인당 학생수가 월등히 많고 중학교와 일반계고 절반 이상이 과밀학급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자료집에 따르면, 초등교원 확보율은 100.4%로 정원 초과 상태지만 중등교원 확보율은 80.3%다. 이것도 평균이어서 그렇지, 울산, 경기, 대전, 충북 등은 70%에 머물렀다. 중고교 일선학교에 학생들을 지도하고 가르칠 평교사들이 부족한 상황임에도 교과부는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감소한다는 이유를 들어 교원 증원에 소극적이다.

그렇다고 교사들에게 가르침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대가가 주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분명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교사가 있음에도 월급의 차이는 없으니, 열심히 하려는 교사에게는 더욱 피로감을 가져다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성과급 지급 기준을 지난해 최고 30%에서 50%까지 확대하기로 한 교과부의 결정은 옳은 방향이다.

여기에 성과급 지급 기준 내용을 더욱 개선할 필요가 있다. 교원평가와 맞물려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정도 등을 적용해 성과급을 지급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직책의 고하, 담임 선택 유무 등으로만 적용되는 성과급의 안이한 판단 기준을 바꿔내고 교사들의 가르침 욕구를 증대하고 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교과부는 이달 말 대대적인 '학교 자율화 방안’을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거기에는 학교 현장을 자율화하기 위한 교장의 권한을 확대하는 핵심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학교장이 수업 시수를 20% 선에서 자율 조정할 수 있으며, 교사의 전입 요청권도 가진다. 박사학위 소지자 등 교원자격증 없이도 채용 가능한 교사의 범위가 확대된다. 이 모두는 국가 통제 하에 두었던 학교교육을 개방해 학교마다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고, 아이들의 특성에 맞춰진 효율적인 교육을 위한 것이다.

이 제도들이 효과적으로 학교 현장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교육 인프라 개선이 시급하다. 학급당 학생수가 많을 경우, 학생 개개인의 수요를 반영한 교육을 진행하기가 어려워진다. 교육의 변화를 위해서는 교실 환경의 변화도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능력 있는 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예산 지원도 필요하다. 학교 자율화 진행시 균등 분배로 교육예산을 집행하지 않고, 학업성취도와 특성화 면에서 우수한 면을 보이는 학교에 차등적으로 지급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교육은 인륜지대계라고 했다. 그동안의 교육개혁이 번번이 실패했던 것에는 교육 제도의 변화를 꾀할 뿐, 실제 교육 현장에서 무엇이 문제이고, 먼저 바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총체적인 고민과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닐까. 한 나라의 교육의 분위기를 바꿔내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작업임을 감안한다면, 이번 교육개혁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서 일선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과 현실까지 고려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함께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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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도 2개의 국제중학교가 지정될 예정이다. 국제중학교 설립을 두고 사교육 증가, 귀족학교화 등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행 교육제도하에서 특성화 중학교라는 기형적인 이름으로 국제중학교가 설립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1969년 국가가 강압적으로 시행한 평준화정책 때문이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형적인 이름으로 평준화 정책을 보완할 것이 아니라 사립학교들에게 자율성을 주어야 할 것이다.

국제중학교 설립 필요성

서울에도 2개의 국제중이 지정될 예정이다. 부산에 공립으로 설립된 부산국제중학교와 수도권의 청심국제중학교에 이어 드디어 서울에도 특성화 중학교가 생기게 되었다. 서울특별시 교육청은 특성화 중학교인 국제중학교의 지정 계획의 협의를 교육과학기술부에 요청하였다. 2006년 3월에도 서울특별시 교육청은 2007년 개교를 목표로 대원학원과 영훈학원의 국제중학교 설립 인가를 당시 교육부에 제출하였지만 전교조 서울지부장이 설립에 반대하여 16일간 단식을 결행하고, 교육부도 반대하여 결국 서울에서 국제중 설립이 좌절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설립 가능성이 높아졌다. 서울시 교육청이 밝힌 특성화 중학교 운영의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제화ㆍ정보화 시대를 선도할 글로벌 인재 육성
둘째, 장기 해외 거주 귀국학생을 위한 교육 연계성 보장
셋째, 국제 분야 교육 기회를 제공하여 유학욕구를 수용함으로써 조기유학에 따른 폐단 해결
넷째, 서울 학생의 지방 국제중학교 진학에 따른 학부모 부담 해소

국제중 설립의 필요성은 그 나름의 강력한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미 존재하는 2개의 국제중은 이러한 필요성에 어느 정도 부응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교육청은 “특성화 중학교 지정 계획”을 통해 국제중학생 선발 방식과 운영 계획을 자세하게 밝혀 국제 중학교의 특성은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서울특별시 교육청이 작성한 “특성화 중학교(국제중) 관련 Q&A”에 나타난 것과 같이 교육과정 특성화를 통해 현재 일반 중학교와 구별되는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중 설립 반대 논리

항상 그래 왔듯이 새로운 제도의 도입을 둘러싸고 치열한 찬반 논쟁이 일어났다. 교육과학기술부와 서울특별시 교육청의 세심한 운영ㆍ부작용 최소화 계획에도 불구하고 사교육 증가와 ‘귀족학교’화에 대한 우려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서울특별시 교육청이 제시한 3단계 입학 전형이 사교육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으로 판단되지만 그 전형 방식이 사교육을 억제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1단계를 통과하려면 우수한 내신 성적이 필요하다. 필기시험 없이 학생생활기록부 중심으로 전형한다고 하지만 학생생활기록부에 게재되는 사항들을 위해 사교육이 효과적이라고 판단되면 사교육을 하게 될 것이다.

2단계의 면접ㆍ토론을 위한 사교육이 없을 것이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입시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시간당 사교육비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것도 면접을 위한 사교육이다. 나아가 진학 후에 많은 수업들이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영어를 위한 사교육이 필요할 것임은 분명하다. 곧 기본인 영어를 비롯하여 내신성적, 경시대회, 면접ㆍ토론에 대비하자면 높은 소득과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학부모에게 유리한 사교육 인프라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을 부정하기 어렵다. “사교육비가 오르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는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말에 진정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관리가 실제로 사교육의 증가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교육 열풍에 대한 우려가 상위 1%를 위한 ‘귀족학교론’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제중 입학생 가운데 경제적으로 상위에 있는 계층이 많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자료가 입증하고 있다. 교육부가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9월에 작성한 ‘청심국제중 학부모 직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체 신입생 94명 가운데 전문직종이나 부유층에 속하는 부모를 둔 학생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성화 중학교라는 기형적인 이름으로 국제중학교가 설립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1969년 국가가 강압적으로 시행한 평준화정책 때문이다. … 자유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교육의 목표와 방법을 국가나 특정 집단의 교육철학으로 획일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교육과 ‘귀족학교’화에 대한 반대보다 더 근본적인 지적도 있다. 그것은 ‘중학교 교육에서부터 특성화 교육이 과연 교육적으로 바람직한가?’하는 것이다. 중학교 시기의 학생에게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지식과 인성교육을 시키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특성화된 교육’을 시키는 것이 ‘글로벌 인재 육성’이라는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인가에 대해서도 우리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특성화 중학교의 “법적인 설립 근거가 취약하며 국민보통교육기관에서 영어몰입교육으로 교수 언어를 국어가 아닌 영어로 하는 것은 위헌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지적도 가볍게 넘어갈 사안은 아니다.

평준화 정책이 기형적인 교육을 초래했다

이런 반대 논리들도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요인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특성화 중학교라는 기형적인 이름으로 국제중학교가 설립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1969년 국가가 강압적으로 시행한 평준화정책 때문이다. 평준화정책 시행 이전에는 우리나라에도 자생적으로 생성된 사립학교들이 존재했고 그 학교들은 자신들이 설정한 교육 목표를 나름대로 훌륭하게 수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자신이 설정한 교육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이런 학교들을 폐교나 다름없는 상태로 만들었다. 기형적인 이름으로 평준화 정책을 보완할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사립학교들에게 자율성을 주어야 할 것이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교육의 목표와 방법을 국가나 특정 집단의 교육철학으로 획일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회 정의나 도덕적인 관점, 자신이나 집단의 교육 철학에 비추어 설사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교육 현상일지라도 국가의 권력을 매개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것은 자유주의의 근본이념에 어긋나고 현실적으로도 성공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사교육 열풍은 국가 주도의 교육제도가 유인하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학부모의 교육열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설사 학부모의 지나친 교육열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국가 권력이나 특정 집단의 교육 철학으로 억압하는 것은 개인의 자발성과 자기 선택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귀족학교론’은 특정 집단의 교육철학을 보여주는 효과적인 말일 수는 있지만, 자유사회에서는 삼가야 한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출생에 의한 신분이 존재하는 봉건사회가 아니다. 타고난 능력에 따라 학생들의 학업 능력은 차이나 날 수밖에 없으며, 어느 정도는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의해서도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전체주의적인 발상이다.

학부모의 지나친 교육열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국가 권력이나 특정 집단의 교육 철학으로 억압하는 것은 개인의 자발성과 자기 선택권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교육은 영합게임(제로섬)이 아니다. 특정 집단의 학생이 좋은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다른 집단에게 교육적으로 피해가 가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불우한 처지에 있는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 실시하고 있듯이 학업 성적이 같은 수준에 있지만 가정의 경제 능력의 차이로 입학이 어려운 경우, 가계 소득에 비례해서 등록금을 차등 부과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물론 가장 어려운 집단에 속한 학생들에게는 등록금뿐만 아니라 생활비까지 장학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사회의 근본을 허물지 않고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는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모든 사립학교에 자율성을 주자

정부 통제를 통한 사교육 억제 압력이 이제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정부의 교육 정책이 바뀔 때마다 사교육은 그 정책에 맞추어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였으며, 아예 사교육을 우회하여 해외 조기 유학을 떠나는 학생 수는 해마다 증가하였다.

사교육은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들의 육체적 정신적 성장을 위해 바람직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국제중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이 땅에서 사교육이 사라지고 필요한 교육이 공교육으로 흡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다. 모든 사람이 바람직하다고 믿고 있는 것이 왜 현실적으로 실현되지 않는가.

우리 사회가 봉착한 교육 문제를 비롯한 여러 문제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좀 더 진지하게 반성해보아야 한다. …기형적인 이름으로 평준화 정책을 보완할 것이 아니라 사립학교들에게 자율성을 주어야 할 것이다.

좌파의 쇄신을 주창하면서 ‘다윈주의 좌파’를 표방하고 있는 미국의 응용윤리학자 피터 싱어가 지적하고 있듯이 우리는 인간 사이의 갈등과 분쟁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혁명ㆍ사회적 변화ㆍ좋은 교육을 통해 갈등과 분쟁을 줄이려는 노력은 지속되어야 하겠지만 이것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모든 불평등이 차별, 편견, 억압 또는 사회적 조건으로부터만 생겨났다고 가정해서도 안 된다. 현실적인 불평등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유전적으로 능력이 다르고,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런 사실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려는 시도는 현실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교육적 관심과 정책적 배려를 지속하기 위해서도 어떤 사회ㆍ경제적 변화가 이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 지혜로운 판단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어떤 정치ㆍ사회ㆍ경제적 체제 아래 살든지 자신의 자식들이 좀더 좋은 교육을 받길 원하고, 자신의 지위가 상승되길 바라고, 권력을 획득하거나 친족들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노력하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 이런 사실을 부정하고, 완전히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전체주의 국가를 구축하여 모든 것을 국가 권력이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단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 뿐 영속될 수 없음을 인류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사회가 봉착한 교육 문제를 비롯한 여러 문제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좀 더 진지하게 반성해보아야 한다. 이성적으로, 도덕적으로,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것을 국가가 강제력을 통해 교정할 수만은 없다. 자유로운 의사 결정 주체로서 시민들이 성숙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국가가 여기에 개입할 수는 없다. 특히 교육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과잉교육열에 의한 사교육과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른 계층의 고착화는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바람직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국제중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서 국가 권력에 의해 통제하려고 할 때에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궁극적으로 국제중학교 설립의 문제를 넘어 모든 사립학교들에게 자율성을 주려는 정공법을 택할 때가 되었다. ■


신중섭 /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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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 소장 인터뷰 전문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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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독자들이 부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공소장님의 책 ‘부자의 생각, 빈자의 생각’ 중 이 기사를 읽는 독자들에게 부자가 되는 생각을 알려주시죠.

인간의 행동은 생각의 결과물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빈자가 될 수도 있고, 부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성공학 책들이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저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의타심 때문입니다. 남에게 기대려고 하는 한 아무리 돈을 갖다 주어도 결국 가난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 원리는 국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북한 사람들이 스스로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아무리 많은 무상 지원을 해 준다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개인이건, 국가이던 자신의 허물을 스스로 책임지기 보다는 타인에게 미루려고 하는 마음, 즉 의타심을 가지게 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빈자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내 허물이 모두 내 탓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자기경영 아카데미에 석봉토스트로 유명하신 김석봉씨가 참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같이 점심식사를 하다가 그분이 일어서게 된 배경을 듣게 되었습니다. 본인이 술을 잔뜩 먹고 일어난 어느 날 아침 문득 ‘나는 거지근성을 가진 게으름뱅이다.’ 란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당장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시작했고 그러면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다른 메시지는 없었습니까?

‘부자의 생각, 빈자의 생각’은 모든 것이 관점의 문제라는 것을 강조하는 책인 만큼 나와 조직을 보는 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회사만 나를 선택하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도 회사를 선택하고 버릴 수 있다! 쿨(Cool)하게 생각하자는 것이 요점입니다.

사회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어느 사회나 부자와 빈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나라가 나에게 뭘 해주기를 바라는 것 보다는 내가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 지만을 고민하라고 조언합니다. 인간은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한 존재 일뿐 남을 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의 길은 자기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죠.

자기가 가난한 이유가 모두 자기 탓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이군요. 비슷한 맥락으로 공소장님께서 전파하고 계시는 것 중 하나인 ‘자기경영’ 에 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자기경영 다이어리와 각종 서적들이 있는데 ‘자기경영’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세일즈로 말을 시작하겠습니다. 세일즈에 성공하려면 좋은 판매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잘 팔아보겠다는 의욕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의욕은 변덕스럽기 때문에 크게 결심을 했다가도 금방 식어 버리기 십상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훌륭한 세일즈맨들은 순간순간의 의욕과 관계없이 자신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탁월한 판매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탁월한 판매시스템이 있어야 탁월한 판매실적이 가능한 것처럼 인생도 좋은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기분이 어떻게 변하든 행동을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자기의 삶을 시스템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 가정, 시간, 돈 모두를 시자원으로 보고 회사가 운영되는 것처럼 삶을 시스템화, 매뉴얼화 하십시오. 매뉴얼은 결코 딱딱한 것만은 아닙니다. 제가 책을 많이 써낼 수 있는 이유도 책을 쓰는 시스템 잘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책 쓰는 시스템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으면 좋겠군요.

책을 쓰기 전에 머릿속에 짜임새 있는 청사진을 그려놓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제 당 원고지 15~20매 정도의 덩어리 40개로 나눕니다. 칼럼을 쓰듯이 매일 40여일 정도를 꾸준히 쓰다 보면 어느 새 책 한권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책 한권을 40덩어리로 나누고 하루에 한 덩어리씩 채워 나간다, 그것이 공병호식 책 쓰기 시스템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러나 로드맵이 있어야합니다. 그래야만 심적 안정에도 도전정신을 고취시키는 데도 도움이 되거든요. 책을 쓰는 것 뿐 아니라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많은 분들이 생각을 잘 안하세요. 그냥 살면 잘 살 수 없죠. ‘어떻게 하면 잘할까, 어떻게 하면 시간을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IBM의 초기 캐치프레이즈도 씽크! (THINK!)였습니다.

본인이 그런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신 결과, 공소장님의 책 ‘명품인생을 위한 10년 법칙’ 처럼 명품인생을 사시는 것 같습니다. 본인의 인생에 비추어 명품 인생을 꾸리는 법을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강의 중에 늘 강조하는 것이 ‘선택과 집중’입니다. 누구든지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는 없습니다. 선택해서 얼마만큼 화력을 집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며 최소한 10년 정도는 집중해야 합니다. 신정아씨 경우도 사람 자체는 재기발랄했던 사람 같아요. 그러나 한 십년은 묵직하게 했어야 하는 공부를 안하고 너무 빨리 과실을 얻으려고 한 거지요. 어떤 길이든 문리가 트이려면 십년은 묵묵히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일단 문리가 트이고 나면 많은 기회가 옵니다. 인생은 포기의 미학입니다. 포기할 부분은 과감히 포기하고 집중할 부분을 확실히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공소장님께서 포기하신 것은 무엇 무엇이 있을까요?

모든 잡기를 포기했지요. 제가 가진 시간과 모든 역량을 직업적 성과로 만드는 데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 활동에는 물론 책 쓰기와 강연이 포함되겠지요.

젊은 시절 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시간을 거친 후 저는 제 길을 명확히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을 해왔습니다. 그 결과 지금의 모든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제가 포기한 잡기들에 대해서 어떠한 후회도 없습니다. 흔히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도 일정한 기간 동안 아주 열심히 하는 과정 없이는 가능하지 않거든요.

골프도 잡기 중의 하나인데요. 공소장님은 업무상 명사들을 많이 만나실테고 골프치자는 말씀도 많이 들으실 것 같습니다. 요즘은 골프가 사교와 정보교환의 장이 되는데 골프를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불편하시지는 않나요?

나의 가장 큰 핵심 역량이 뭘까? 제가 종종 제 자신에게 묻곤 하는 질문입니다. 내가 세상에 기여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재능은 무엇인가 하는 거죠. 확실한 것은 사람들은 많이 만나서 저녁 먹는 일이 저의 핵심역량은 아니라는 겁니다. 저의 핵심역량은 컨텐츠 창조능력입니다.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세상으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그 길을 감에 있어서 사람들을 만나서 저녁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일은 불필요한 비용인 셈입니다.

그래도 많은 한국인들이 인맥 관리를 위해 네트워킹 활동에 엄청난 투자를 합니다. 그런 일들도 굳이 필요하지 않은 감정의 낭비라고 보시는 건가요?

핵심역량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넓은 인맥이 핵심역량을 발휘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그 분들에게 인맥관리는 낭비가 아니라 꼭 필요한 일이지요. 사람만나고 사귀는 일에 어느 정도를 투자할 것인지는 개개인이 각자 결정할 문제입니다.

공소장님의 책에 보면 그렇게 10년 정도 하나의 목표에 몰입하다보면 두뇌구조 자체가 바뀐다고 하셨는데 거기에 대해서도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예. 저는 한 인간이 자신의 업무에 집중할 때 뇌구조가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자신도 그러한 경험을 했습니다. 앞으로 뇌과학이 발달하면 시각적으로 확인가능하게 되겠지요. 어떤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두뇌 속에서 그 일과 관련된 사고 회로가 엉성하고 성긴 도로망에서 세밀하고 정교한 도로망으로 바뀌게 되는 거죠. 제 경우는 오랫동안 책 쓰는 일에 매진하다 보니 책을 쓰는 기량이 느는 느낌입니다. 사고 회로가 자연스레 그 쪽으로 발달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공병호 소장 인터뷰 전문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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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자립도, 학교선택권, 학교자율화, 개방화 4가지 항목으로 광역시도별 교육자유 정도를 평가한 결과 서울이 가장 높은 자유도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서울 지역에서 제공되는 교육서비스가 시장친화적이며, 공급자와 수요자의 만족도가 높음을 의미한다.

서울은 재정자립도, 학교자율화, 개방화 세 분야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1위로 나왔으며, 경기와 충남은 각각 2위와 3위를 기록했다. 반면, 재정자립도와 학교 자율화 항목에서 비교적 낮은 점수를 받은 전북이 가장 낮은 교육 자유도를 보였다.

<표 1> 지방자치단체별 교육자유지수

재정자립도

학교선택권

학교자율화

개방화

교육자유 지수

순위

서울

5.00

0.10

3.75

5.00

3.46

1

경기

3.15

2.27

3.75

1.87

2.76

2

충남

0.95

5.00

3.75

0.07

2.44

3

강원

0.82

5.00

2.50

0.39

2.18

4

부산

1.93

0.24

5.00

1.44

2.15

5

제주

1.51

2.32

3.75

0.00

1.89

6

경남

0.82

1.83

3.75

0.49

1.72

7

경북

0.54

5.00

1.25

0.00

1.70

8

인천

2.60

0.00

2.50

1.59

1.67

9

충북

0.50

2.32

3.75

0.09

1.67

10

대전

2.15

0.11

1.25

2.97

1.62

11

울산

2.46

0.00

3.75

0.00

1.55

12

대구

2.07

0.05

2.50

0.37

1.25

13

전남

0.03

2.19

2.50

0.00

1.18

14

광주

1.35

0.00

2.50

0.45

1.08

15

전북

0.00

1.35

0.00

0.15

0.37

16


자유기업원이 발표한 교육자유지수는 네 가지 항목으로 구성되며, 5점 만점으로 환산한 평균값을 교육자유지수로 정의했다. 네 가지 항목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재정자립도는 교육서비스의 비용을 소비한 주체가 스스로 얼마나 부담하고 있는지를 평가한다. 시도별 교육청의 재정수입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이전수입과 교육청 자체 수익이 높을수록 재정자립도가 높은 것으로 계산된다. 서울과 경기도가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둘째, 학교선택권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타나낸다. 현재 교육평준화로 인해 학교선택권이 제약받고 있다는 측면에서 지방자치단체별 고등학생의 평준화 정도를 지표로 삼았다. 교육 비평준화 지역인 강원, 경북, 충남이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셋째, 학교자율화는 학교 스스로 제공할 교육서비스의 내용과 방식을 결정할 수 있는 지를 평가한다. ‘4.15 학교 자율화 조치’ 발표 이후 논란이 되고 있는 우열반편성, 0교시, 방과후 수업, 사설모의고사 등이 주요 평가항목이다. 학교자율화 항목에서는 부산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넷째, 개방화는 많은 학생들이 국내 교육에 만족하지 못하고 해외교육서비스를 받기 위해 해외로 나가고 있는 실정임을 고려해, 외국인학교 학생 수 비율을 평가 대상으로 했다. 서울과 대전이 높은 비율을 보였다.

<표 2> ‘4·15 교육자율화' 조치에 따른 입장

우열반 편성

0교시

방과후 학교 영리단체 참여

방과후 초등 교과 강의

사설 모의고사

합계
점수

서울

X

X

O

O

5

부산

X

O

O

6

대구

X

X

O

4

인천

X

X

O

4

광주

X

X

O

4

대전

X

X

X

O

3

울산

X

X

O

O

5

경기

X

X

O

O

5

충북

X

O

X

O

5

충남

X

X

O

O

5

전북

X

X

X

2

전남

X

X

O

4

경북

X

X

3

경남

X

X

O

O

5

강원

X

X

O

4

제주

X

X

O

O

5

   주 : 허용O=2, 제한적 허용 △=1, 금지 X=0 점을 부여함.

각 지역별 교육자유지수 비교통계를 통해 교육자치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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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거친 경쟁을 본성적으로 달가와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편안함, 안전함을 선호할 것이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한 직장 생활, 언제 성적이 떨어질지 모르는 위태한 고3시절 등등 이런 강렬한 경쟁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 때 우리나라에서는 명문 중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교 학생들이 밤 늦게까지 과외 공부를 하던 시기가 있었다. 너무 어린 학생들에게 중압감을 주던 중학교 입시제도는 이후 학군제로 바뀌었다. 성적과는 상관없이 사는 동네에 따라 자신의 중학교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비록 중학교 입시 시험제도가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초등학교에서 경쟁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불붙는 사교육 열풍을 타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공부 경쟁이 점점 뜨거워지자, 1997년부터 교육부는 초등학교에서 등위를 매기는 시험을 폐지하고 등위를 공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점수도 알리지 않도록 했다. (현실적으로는 점수와 등위를 알려주는 경우가 많지만 원칙은 알려주지 않아야 한다.)

만약 당신이 초등학교 담임 교사라고 하자. 객관적인 점수와 등위를 공개할 수 없게 되었다면 통지표에 아이를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국어, 수학 등등의 분야에서 어떤 한 아이를 평가하면서 쓸 수 있는 말은 두루뭉실한 표현으로 ‘잘함’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편할 것이다. 만약 아이의 학업 능력을 ‘노력 요함’이나 ‘부진함’이라고 평가했다고 하자. 아마 아이의 부모는 당장 자신의 아이의 점수와 등위를 알려달라고 성화일 것이다. 부모의 입김이 드센 시기에, 도대체 우리 아이가 몇 점을 받았기에 부진하다고 평가했느냐며 자료를 요구하지 않겠는가? 객관적인 점수나 등위를 공개하기 힘든 상황에서 담임 교사는 아이에 대해 평가를 솔직하게 내리기 힘들게 되었고, 자연히 별 문제가 없을 만한 (부모도 어느 정도 안심시키면서) 말이 바로 ‘잘 함’이 아닐까.

최근 어느 뉴스를 보니 초등학교 6년 내내 ‘잘 함’이라는 평가를 받은 아이들이 중학교에 놀라가서 (예를 들자면) 전교 310등이라는 (그 부모들에게는 충격적이며) 부진한 결과를 나타내자 부모들이 진작 성적을 공개하지 않은데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자신의 아이의 성적을 알았더라면 더 일찍 열심히 공부시켰을텐데 하는 원망일 것이다. 나는 그 기사를 보며 평등을 강조하는 좌파의 정책이란 결국 이런 비극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 모두가 성적에 구애받지 않고 그저 재밌게 뛰어 놀며 인성을 기르는 초등학교 생활이 존재한다면 모두가 꿈꾸는 멋진 이상이겠지만, 현실에서는 절대 이루어 지지 않는다. 설령 정부가 나서서 성적을 감추고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시험이 없다고 해도 아이들의 성적 차이는 반드시 뚜렷이 존재하며, 정부와 학교가 숨긴다고 해도 결국은 시간이 지나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드러나게 되어 있다. 물론 아이들의 성적 차이는 다수의 부모와 아이들에게 큰 스트레스가 된다. 그러나 성적 차이가 존재하기에 학생들은 더 노력하게 되고, 더 나은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되고 그 스트레스 덕분에 우리의 기업들은 잘 교육된 인재를 구할 수 있다.

물론 어린 시절부터 경쟁을 유도하며 성적을 공개하는 것은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성적에 뒤처지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주눅들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자라면서 계속 다른 학생들보다 성적이 낮은 아이들은 나름대로 전통적인 ‘공부’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 재능을 키울 수 있고, 일찍 직업을 갖고 사업을 꿈꾸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요즘 잘 나간다는 연예인들이나, 청과물 시장에서 자신의 가게를 갖고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대개 학창 시절 그다지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다소 고통스럽지만 상대적인 평가를 받았기에 다른 아이들이 잘하는 공부 쪽의 진로보다는 자신만의 남다른 끼와 재능, 사업상의 능력을 발휘할 용기와 배짱을 갖게 된 것이다.

만약 그들이 자신의 학업상 위치를 알지 못하고 부모들이 시키는대로 그럭저럭 공부만 하다가 뒤늦게 자신의 뒤떨어진 경쟁력을 깨닫게 된다면 그 얼마나 비참한 일일까. 경쟁과 그 결과를 공개하는 것은 나름 다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사회에 발휘하도록 돕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경쟁의 고통스러움과 탈락의 고배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받아들여야 할 과정이 아닐까 싶다.

한 때 잭 웰치의 별명은 ‘중성자탄(Neutron) 잭’이었다. 중성자탄이란 탱크나 건물 등은 손상시키지 않은 상태로 살아있는 생체만을 파괴하는 방사능 무기로서, 아마도 조직은 그냥 둔채 하위 일부 노동자를 지속적으로 해고했던 그의 경영을 비판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잭 웰치는 부진한 업무 성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별 말없이 3-40대까지 노동자를 끌고 가다가 회사가 부진해지고 나서야 어쩔 수 없이 해고하는 것(이렇게 되면 한창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비를 대야할 가장들은 재취업의 기회마저 잃는다)보다 일찍 젊을 때 자신의 능력에 맞는 곳을 찾아가도록 해고하고 재취업을 돕는 것이 낫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모는 일이 다소 안타까워 보일 수 있지만, 초등학교부터 평생동안 이어지는 강렬한 경쟁과 경쟁의 결과를 제대로 아는 일은 아이의 재능을 알아내고 아이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게 만드는 거의 유일한 힘이 된다. 다소 고통스러울지 모르지만 그 고통을 피하기만 한다면 6년간 ‘잘 함’이었지만 전교 310등이 된 아이의 부모가 될 것 같다.

어제 당선된 서울시 교육감도 이런 면에서 아이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하도록 장려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고 칭찬해주는 일을 두려워 하지 않길 기대해 본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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