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간 한국의 성장모델이었던 일본이 이제는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 일본항공의 파산, 세이부 백화점의 폐점 등은 일본의 현 주소를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20년’은 최근 일본을 표현할 때 자주 쓰는 말입니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도쿄 중심의 긴자를 팔면 미국의 뉴욕을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본은 잘나갔습니다. 엔화가 절상된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에도 일본은 세계 1,2위를 다투는 무역흑자국이었습니다. '팔려나가는 미국’, 'NO라고 말하는 일본’, '달러가 휴지되는 날’ 같은 출판물이 세계 서점가를 휩쓸었다고 합니다. 당시 세계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였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989년 12월 29일 도쿄 증권시장에서 닛케이 평균주가는 사상 최고치인 3만 8915엔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거품경제의 종착점이었고, 장기불황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 닛케이 평균은 3분의 1이 되었고, 뉴욕증권시장을 누르고 한 때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시가총액은 반으로 줄었습니다. 또한 주가 붕괴와 함께 부동산 가격의 거품도 무너졌습니다.

(닛케이 평균주가) 1989년 3만 8915엔 -> 2009년 1만 638엔

(시가총액) 1989년 600조엔 -> 2009년 308조엔

사실 일본의 위기가 어제와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지난 90년대 이미 10년의 기나긴 침체기를 겪었고 저성장, 저물가, 고실업은 일본 경제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90년대 초반부터 경기부양을 위해서 엄청난 재정을 쏟아 부었지만 경기는 살아나지 않았고 GDP의 70% 수준이던 국가채무가 2009년 218.6%가 될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국가로 들어오는 세금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공공지출부분이 과도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한국의 GDP대비 국가채무의 비율은 2009년 33.8%입니다.

재정의 확대덕분에 90년대 중반 성장률이 조금 오르자 일본정부는 이를 경기회복의 시작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긴축정책으로 재빠르게 전환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판이었고, 이미 엄청난 재정의 투입과 제로금리정책의 시행으로 경기를 회복시킬 마땅한 수단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빚으로 빚을 갚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불황이 지속되다보니 호황일 때나 가능한 세계 최고의 노인복지, 의료, 연금 등 사회복지시스템이 작동을 못하게 되면서 곳곳에서 문제가 터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출산과 고령화, 인구감소는 심각한 문제를 낳았습니다.

거품이 꺼지던 89년에서 90년에 태어난 세대는 호황대신 불황에 시달리고, 부양노인은 거의 2배로 많아졌습니다. 태어났을 때 2.3%였던 실업률은 5.2%, 청년실업률은 3.8%에서 8.4%로 뛰었습니다. 국가채무는 266조엔에서 864조엔으로 늘었고, 경제성장률은 5.4%에서 제로에 가까워졌습니다. 이들이 부양해야할 65세 이상의 노인은 1489만명에서 2941만명으로 거의 2배로 늘었고, 사회보장예산은 10조엔에서 25조엔으로 2.5배 늘었습니다.

어려운 와중에도 일본 경제가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GDP의 55%를 차지하는 내수덕분이었습니다. 1억 3천만명의 소비시장은 해외수출이 감소하는 와중에도 큰 역할을 해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세이부 백화점의 몰락은 일본의 내수시장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일본 백화점의 매출감소는 13년째 진행중이고, 90%정도의 백화점이 적자를 보여 수십 개의 백화점이 문을 닫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경제의 호황을 상징하던 일본항공이 1월 19일 법정관리를 신청했습니다. 1월 27일에는 도쿄 긴자의 세이부 백화점이 폐점을 발표했습니다. 이어서 도요타는 1000만대에 달하는 차를 리콜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고, 혼다자동차도 100만대에 가까운 리콜에 들어갔습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2009년 연말 “잃어버린 20년에 종지부를 찍을까”라는 사설에서 “신흥국을 포함한 글로벌 경쟁의 시대에서 일본은 승자가 되지 못했고, 앞으로도 성장의 맹아를 찾지 못하면 잃어버린 20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충고했습니다.

1월 말 신용평가사 S&P는 일본의 신용등급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추었습니다. 재정적자를 타개할 방법이 없고, 하토야마 민주당 정책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유로 제시했습니다. 2월 말에 무디스도 일본 국가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이제 한국 이야기로 가보겠습니다. 2009년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추월했습니다. 국내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했고, 일본 기업들은 수익 악화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2009년 3∙4분기의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소니, 파나소닉, 히타치 등 일본 경쟁사 9곳의 이익을 다 합친 것 보다 2배 이상 되었습니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6개를 거머쥐면서 종합5위로 선전했습니다. 일본은 은메달 3개에 그치면서 종합 20위로 몰락했습니다.

2월 말 파이낸셜 타임즈는 “한국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습니다.

일본에서 한국을 배우자는 열기가 뜨겁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습니다. 3월 초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세계에서 약진하는 한국 기업을 배우자’는 제목의 대형 사설을 실었습니다. 일본 제품을 모방하면서 시작한 한국의 기업들이 이제는 가격과 품질 면에서 일본을 능가했다고 탄식했습니다. 3월 말 일본 정부는 경제산업성 산하에 한국실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한국의 일부 언론은 '한일경제역전론’을 내세우면서 한국이 곧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물론 숙적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그에 맞춰서 일본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지나칠 정도로 함께 내보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많이 들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983년 미쓰비시 연구소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5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세계적인 컨설턴트로 평가받는 오마에 겐이치는 한국의 외환위기 당시 '한국이 일어설 수 없는 이유’라는 글을 썼습니다. 결론적으로 일본은 한국을 과소평가 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경제는 점점 어려워 질 것으로 보이고, 한국은 일본을 여러 방면에서 앞서가는 듯 보이니, 이제는 한국이 일본을 과소평가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듭니다.

“우리가 일본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단단히 준비하고 긴장해야 한다.”

3월 22일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일본이 지금은 주춤거리고 있지만 강력한 자본력과 외교력을 앞세워 한국을 견제대상으로 부각시킬 경우 한국의 산업과 경제는 심각한 시련에 봉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일본의 재정적자의 문제를 보면 국채의 90%이상이 국내에 있습니다. 모두 엔화표시 채무여서 해외로 자금이탈의 충격이 없습니다. 140조엔에 이르는 가계자산도 정부로 하여금 국채를 새로 발행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해외자산도 상당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이자수익도 많습니다. 이런 수익이 경상수지의 70%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리스크가 보다 심화될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2009년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에 속한 일본 기업은 한국의 14개보다 5배나 많은 68개입니다. 2007년 세계 연구개발 투자 상위 1250대 기업 중 일본기업은 220개나 됩니다. 한국은 21개입니다. 또한 한국의 전체 R&D 규모는 일본의 20%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사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일본은 한국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은 수십 년간 일본을 모델로 쉼 없이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일본은 잘 나갈 때 자만하고 경직되었습니다. 지금 잘 나가는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요?

현재 한국의 국가채무 증가속도는 일본보다 빠릅니다. 한국은 1997년 60조원이었던 국가채무가 2009년 말에는 361조원으로 6배 이상이 되었습니다. 과거 일본의 국가채무 증가속도도 따라잡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령화 속도도 따라잡고 있습니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어 노인인구가 많아지는 반면 출산률이 낮아져서 젊은 인구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인구가 줄어들면 구매력 저하로 시장이 위축됩니다. 생산과 소비 모두가 위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은 90년대 초부터 젊은 인구가 줄어들고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시작된 것입니다. 어느덧 '잃어버린 10년’이 '잃어버린 20년’으로 변해가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경기 침체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2015년 정도에 한국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되면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사회, 경제 등 여러 부분에서 한국의 현재 모습은 일본의 예전 모습과 닮은 면이 많습니다.

한국이 지금 위기의식을 갖고 미래에 대한 준비에 매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일본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도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일본처럼 이렇게 하면 '잃어버린 시간’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본기업도 한국기업에게 지금 단계에서 주의해야 할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계 자동차 시장의 2위 그룹이었던 도요타가 2007년 GM을 누르고 1등의 위치에 오른 순간 그들은 어떻게 행동했는지 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등의 영예에 자만해서 가야할 길을 잃어버린 결과가 어떠했는지 모두가 보았습니다. 자만심에 빠져 긴장을 놓는다면 지금 잘 나가는 삼성이나 현대자동차가 뒤쳐지는 것이 순식간입니다.

“일본은 헝그리 정신을 잊어버렸다. 이대로라면 일본은 망한다. 도요타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2001년 도요타 오쿠다 히로시 회장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 기업이 무너진다. 삼성이 어찌 될지 모른다. 10년 안에 삼성이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이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 - 2010년 삼성 이건희 회장

한국은 일본에서 배울 점이 아직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 관해서 철저히 연구하고 대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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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한계를 뛰어넘기 전과 그 후를 함께 바라봐야

기획 단계부터 논란이 많았던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명단사전’이 발간되었다. 그리고 그 논란의 중심에는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있다. 그가 24세의 늦은 나이 때문에 불가능했던 만주군관학교에 가기 위하여 쓴 혈서는 친일 행적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되었다. '좌파’ 또는 '진보'진영에서는 그가 한국에서 존경받는 것에 대해 우려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를 친일파로 매도하는 것이 역사 바로 세우기의 첫걸음인 것처럼 주장한다. 물론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박 대통령의 공적으로 평가받는 경제발전 역시 그가 아니라도 다른 누군가가 했을 것이라는 폄훼도 당하고 있다.

우리의 시각으로 한국 대통령을 했던 사람이 젊은 시절에 일제의 장교였다는 것을 달가워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의 바람일 뿐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 나는 인류 역사에서 많은 위인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 하나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위인이라고 하더라도 대부분은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령 한계를 극복하였다 해도 그 이전까지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살았다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가 을사오적을 친일파라고 비판하는 이유는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자리에 있음에도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 나라를 팔아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을사오적이 활동하던 시기와 박정희의 청년기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친일'이라는 용어자체도 굉장히 모호하다. 일제에 나라를 뺐긴지 7년이 지난 1917년 박정희는 태어났다. 그리고 1932년부터 5년간 대구사범학교를 다녔다. 아쉽지만 그가 세상을 인식할 때쯤에는 한반도의 많은 사람들이 일제의 식민통치를 어쩔 수 없이 여기고 일본 제국의 국민으로 살 것이라고 생각할 확률이 높다. 나는 박정희 역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점에서 40년대에도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의 선견지명과 노고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도 동의한다. 그들은 반드시 역사적으로 평가받고 존경받아야 한다. 그러나 독립운동가의 삶과 박정희의 선택을 비교해가면서 꼬투리를 잡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마음 같아서는 40년대에 한반도에서 살던 우리 조상들의 생각이 현재의 우리와 똑같기를 바라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현실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정희라는 한 인간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시기는 61년 5.16부터 79년 10.26까지라고 생각한다. 최고 권력자로서 한국이라는 최빈국을 선진국 문턱까지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박정희를 만주군 장교로 기억함에도 그를 존경하는 대통령 1위로 자리 매김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의 업적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은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장면(장면 전 총리의 이름 역시 이번 친일명단사전에 등재되었다) 정부가 경제를 발전시켰을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박정희가 아니었더라도 한국은 발전했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편다.

그러나 이것 역시 '흠집 내기'에 불과하다. 우선 이승만정부나 장면정부의 경제 정책과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책에는 상당히 많은 차이가 있다. 이전 정부들이 수입대체공업화 정책을 폈다면 박정희 정부는 수출주도공업화와 중화학공업의 건설을 추진했다는 특징이 있다. 지금 한국경제는 수출로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중화학공업이 수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 역시 무시할 수는 없다.

다른 인물들이 박정희를 대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 또한 그렇다. 쿠데타와 독재를 통해 정권을 창출하고 유지시킨 한계가 있지만, 한국의 경제발전은 최대 공헌자는 박정희 대통령이다.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집현전 학자들이 있었기에 세종이 아니더라도 한글이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주장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조직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리더의 역할은 굉장히 중요하다. 하물며 한 국가가 돌아가는데 있어 대통령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시스템이 잘 정착된 미국 같은 나라는 대통령 개인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지만, 60년대 한국은 현재의 미국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역사에서의 기회주의자들을 단죄하는 것에 나도 동의한다. 그런 면에서 '친일명단사전'이 갖는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제 45년을 똑같이 바라보는 것은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삼성전자가 소니를 뛰어넘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흔치 않았듯이 일제 강점기 말기에 우리가 독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적었을 것이다. 그것이 강제에 의해서건 자발적이건 그 시대의 분위기를 감안해야 그 시대의 사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청년 박정희의 행동을 '친일'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친일'을 했다고 비난받는 그의 대통령으로서의 업적을 바탕으로 '가까운 미래에 한국이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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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민주당이 54년 만에 제1당으로 집권해 정권교체를 실현했다. 민주당 집권이 미국이나 한국 등 주변국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민주당 집권으로 일본의 외교정책에 커다란 변혁이 나타날 것이라는 시각이 있으나, 커다란 변화는 없을 것이다. 민주당은 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하면서도 대미관계에서 일본의 위상을 제고시키기 위해 전략적 노력을 할 것이고, 상대적으로 유엔 중심 외교·아시아 외교에 비중을 높일 것이다. 또 민주당 정권 실세들이 한국에 우호적이기 때문에 한일 협력은 한층 더 원만하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8월 30일 일본 총선에서 민주당은 대승을 거두며 역사적인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 총의석 480석(소선거구 300석, 비례구 180석) 가운데, 민주당은 308석, 자민당 119석, 공명당 21석, 공산당 9석, 사민당 7석 등이다. 야당이 제1당으로 등장하며 정권교체를 실현한 것은 일본 전후 정치사에서 54년만이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 국가들은 향후 민주당 정권의 국내정치 운용 및 대외정책의 전개에 대해 매우 관심이 높다.

민주당은 총선 공약, 수뇌부의 기자회견 등을 통하여 대외정책을 밝혔는데, 특히 유엔 중심 외교의 표명에 따른 대미정책과 미·일 동맹,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한 아시아 중시 정책의 표명과 한국·중국과의 관계 등이 주목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향후 일본 국내정치의 전개와 관련, 민주당의 현실적 한계에 대해 주목하면서 냉철하고도 전략적 관점에서 대외정책의 전개를 전망하여야 할 것이다.

일 민주당 집권, 미·일 동맹을 악화시킬 것인가?

자민당 정권은 대미 중시외교와 더불어 미·일 동맹의 강화정책을 추구하였다. 이와 같은 자민당의 대미정책에 대해, 민주당은 8월 30일 총선 정국에서 '대미 추종외교’라고 비판하면서, 정책공약을 통하여 '긴밀하고도 대등한 미·일관계의 구축’의 주창과 함께 미·일간의 예민한 정책현안인 오키나마 기지이전의 수정, 미·일 지위협정의 개정 등을 제시하였다. 또,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는 8월 30일 총선 직전, 8월 27일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 전자판에 게재된 칼럼도 미·일 관계에서 미국의 과도한 영향력 행사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였다.

위와 같은 상황을 검토해 볼 때, 일본의 미·일 동맹 중시 정책의 기조에는 변함이 없지만, 일정 부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할 수 있다. 즉, 민주당 정권은 미·일 동맹 및 미국 중시의 정책기조를 견지하겠지만, 대미관계에서 일본의 위상을 전략적으로 제고시키는 노력을 전개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물론, 민주당이 야당에서 여당으로 전환하면서 현실노선에 따라 주요 현안 문제에 대해 정책공약대로 이행하지 않고 유연하게 전략적으로 대처할 것이다. 이미 민주당은 총선 과정에서 현실주의 입장에서 대미 정책노선에 수정을 가하기도 하였다. 민주당은 그동안 반대해 온 해상자위대의 인도양에서의 다국적군 함대에 대한 급유지원 활동의 문제도 8월 30일 총선 공약의 원안과는 달리, 2009년 7월 23일에 당분간 용인할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리고 하토야마 유키오 대표는 2009년 8월 31일 기자회견에서 “나는 반미주의자가 아니며 아시아 지역의 미래에 대한 나의 비전은 미국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면서 동년 9월 3일 오바마 대통령과의 첫 전화 회담에서는 “미·일 동맹이 기축”임을 강조함과 더불어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미·일 관계의 구축”을 역설하였다.

요컨대, 야당의 여당의 정책에 대한 책임감이 다른 만큼, 민주당 정권도 야당시절에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현실주의 입장에서 미·일 동맹을 외교의 기축으로 하는 정책기조를 견지하면서, 대미관계에서 일본의 위상을 제고시키는 전략적 노력을 전개할 것이다. 아울러, 자민당 정권의 미·일 동맹의 강화에 역점을 둔 대미정책에 비해, 민주당 정권은 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유엔 중심 외교, 아시아 외교의 비중을 높일 것이다.

민주당 집권이 한·일 관계에 미치는 영향

한·일 관계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경제위기로 확산되면서 중요한 협력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중·일의 협력이 전개되는 가운데 한·일 협력은 양국 정상의 셔틀외교의 활성화에 힘입어 비교적 원만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국제정치경제환경의 변화 즉, 세계금융경제위기의 도래에 따른 미국 국력의 상대적 약화, 중국·인도의 부상, 미·중 경제·전략 협력의 강화 등 변화가 나타남에 따라 한·일 협력은 양국 정상의 셔틀외교를 중심으로 비교적 원만하게 전개되고 있다.

2009년 6월 28일의 도쿄 한·일정상회담에서는 과거사 문제, 독도문제 등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고 갈등을 초래하기 쉬운 민감한 문제는 배제하고, 양국의 실질적 현안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 결과,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5자 협의의 필요성 공유, 첨단 분야에서 일본측 기술지원을 포함한 협력 강화, 한국 내 부품·소재산업 공단의 일본 기업 진출 지원 요청, 한·일 FTA 교섭 재개 등 양자 간 현안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되었을 뿐 아니라, 기후, 테러, 아프가니스탄 지원 등 글로벌 주요 현안에 대해서도 논의되었다.

이와 같은 실용주의적 한·일 협력은 민주당이 집권함에 따라, 한층 더 원만하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총선 정국에서 주일 외국 언론과의 회견을 통하여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를 존중하고 계승할 것’을 언급하면서, '총리 및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불참배’를 선언하였고,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민주당의 총선 공약에서도 ▲야스쿠니 산사를 대체할 국립추도시설 설립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처리 ▲영주 외국인의 지방참정권 실현 ▲북한에 의한 납치 및 핵·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양호한 한·일관계의 재구축 ▲한·일의 신뢰관계 강화 및 한·중·일의 강력한 신뢰협력관계 구축 등을 제시하면서 과거사 문제의 전향적 태도와 더불어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시사했다.

더욱이, 민주당 정권의 실세인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 오카다 가츠야 외무상, 간 나오토 국가전략국 담당상,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 등이 한국에 우호적인 지한파 또는 친한파 정치인이므로, 일본은 아시아 외교의 전개와 더불어 한·일 관계를 중시할 것이다.

일본 외교정책의 현실적 한계와 한국의 전략적 고려

민주당이 집권하면 외교정책에 커다란 변혁이 나타날 것이라는 시각이 있으나, 적지 않은 현실적 한계가 있다. 첫째, 현재 민주당은 참의원에서 과반수를 점하지 못하고 있고, 따라서 안정된 정국운영을 위해 정치 전략적 차원에서 내년 7월의 참의원 선거를 고려하여야 한다. 즉, 정권의 안정적 기반의 강화를 위해 대외전략보다는 경지대책, 고용, 연금, 의료, 복지 등 국내 주요 현안들에 역점을 두고 정치적으로 접근하여야 한다. 즉, 민주당이 외교정책에 커다란 변화를 추구할 만큼 정치적 여유가 없다.

둘째, 민주당은 여러 정치적 성향의 계파가 있다. 즉, 자민당을 탈당한 보수 그룹에서 사회당 계열의 진보·좌파 그룹까지 여러 정치적 성향의 계파가 있다. 상황에 따라서 이들 계파 간에 정책노선 차이로 인한 갈등이 초래될 수도 있다. 즉, 민주당이 자민당과의 정치적 마찰을 일으키고, 내부적으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미·일 동맹 문제 등을 쟁점화하기에 한계가 있다.

셋째, 민주당의 압승이 국민들의 민주당의 대외 정책노선의 공감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고이즈미 정권의 개혁정책 후유증인 “격차사회”의 등장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불만, '귀족내각’으로 특징 지워진 아소정권의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정국 운용 등, 국민들의 '자민당의 비판의 고조’ 덕분으로 '반사이익’에 의한 '총선 승리 및 정권교체’이다. 즉, 8월 30일 총선에서 308석의 획득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국민적 지지기반은 견고하지 못하다.

넷째, 미·일 동맹은 미·영 동맹과 함께 미국의 세계전략의 핵심 대외축이다. 그러므로 미국은 미·일 동맹 및 대일 중시 외교를 지속할 것이고, 일본 역시 '미·일 관계의 관계 재조정’을 추구하더라도 대미 중시 및 미·일 동맹의 강화외교를 추구할 것이다.

일본의 대외전략은 정권의 특성에 따라 다소 질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대외전략의 기조는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그다지 차이가 없을 것이다. 대외전략의 기조는 '21세기 국제지도국’을 지향하여 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유엔 외교, 아시아 외교에 역점을 두고 전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은 민주당의 현실적 한계에 주목하면서 냉철하고도 전략적 관점에서 접근하여야 할 것이다. ■

배정호 / 통일연구원 국제관계연구센타 소장

저자소개: 배정호 소장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는 통일연구원 국제관계연구센타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일본의 안보전략과 국가전략’, '아베 정권의 국내정치와 대외전략’, '전환기 동북아국가들의 국내정치와 대외전략’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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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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