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간 한국의 성장모델이었던 일본이 이제는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 일본항공의 파산, 세이부 백화점의 폐점 등은 일본의 현 주소를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20년’은 최근 일본을 표현할 때 자주 쓰는 말입니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도쿄 중심의 긴자를 팔면 미국의 뉴욕을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본은 잘나갔습니다. 엔화가 절상된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에도 일본은 세계 1,2위를 다투는 무역흑자국이었습니다. '팔려나가는 미국’, 'NO라고 말하는 일본’, '달러가 휴지되는 날’ 같은 출판물이 세계 서점가를 휩쓸었다고 합니다. 당시 세계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였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989년 12월 29일 도쿄 증권시장에서 닛케이 평균주가는 사상 최고치인 3만 8915엔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거품경제의 종착점이었고, 장기불황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 닛케이 평균은 3분의 1이 되었고, 뉴욕증권시장을 누르고 한 때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시가총액은 반으로 줄었습니다. 또한 주가 붕괴와 함께 부동산 가격의 거품도 무너졌습니다.

(닛케이 평균주가) 1989년 3만 8915엔 -> 2009년 1만 638엔

(시가총액) 1989년 600조엔 -> 2009년 308조엔

사실 일본의 위기가 어제와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지난 90년대 이미 10년의 기나긴 침체기를 겪었고 저성장, 저물가, 고실업은 일본 경제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90년대 초반부터 경기부양을 위해서 엄청난 재정을 쏟아 부었지만 경기는 살아나지 않았고 GDP의 70% 수준이던 국가채무가 2009년 218.6%가 될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국가로 들어오는 세금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공공지출부분이 과도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한국의 GDP대비 국가채무의 비율은 2009년 33.8%입니다.

재정의 확대덕분에 90년대 중반 성장률이 조금 오르자 일본정부는 이를 경기회복의 시작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긴축정책으로 재빠르게 전환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판이었고, 이미 엄청난 재정의 투입과 제로금리정책의 시행으로 경기를 회복시킬 마땅한 수단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빚으로 빚을 갚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불황이 지속되다보니 호황일 때나 가능한 세계 최고의 노인복지, 의료, 연금 등 사회복지시스템이 작동을 못하게 되면서 곳곳에서 문제가 터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출산과 고령화, 인구감소는 심각한 문제를 낳았습니다.

거품이 꺼지던 89년에서 90년에 태어난 세대는 호황대신 불황에 시달리고, 부양노인은 거의 2배로 많아졌습니다. 태어났을 때 2.3%였던 실업률은 5.2%, 청년실업률은 3.8%에서 8.4%로 뛰었습니다. 국가채무는 266조엔에서 864조엔으로 늘었고, 경제성장률은 5.4%에서 제로에 가까워졌습니다. 이들이 부양해야할 65세 이상의 노인은 1489만명에서 2941만명으로 거의 2배로 늘었고, 사회보장예산은 10조엔에서 25조엔으로 2.5배 늘었습니다.

어려운 와중에도 일본 경제가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GDP의 55%를 차지하는 내수덕분이었습니다. 1억 3천만명의 소비시장은 해외수출이 감소하는 와중에도 큰 역할을 해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세이부 백화점의 몰락은 일본의 내수시장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일본 백화점의 매출감소는 13년째 진행중이고, 90%정도의 백화점이 적자를 보여 수십 개의 백화점이 문을 닫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경제의 호황을 상징하던 일본항공이 1월 19일 법정관리를 신청했습니다. 1월 27일에는 도쿄 긴자의 세이부 백화점이 폐점을 발표했습니다. 이어서 도요타는 1000만대에 달하는 차를 리콜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고, 혼다자동차도 100만대에 가까운 리콜에 들어갔습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2009년 연말 “잃어버린 20년에 종지부를 찍을까”라는 사설에서 “신흥국을 포함한 글로벌 경쟁의 시대에서 일본은 승자가 되지 못했고, 앞으로도 성장의 맹아를 찾지 못하면 잃어버린 20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충고했습니다.

1월 말 신용평가사 S&P는 일본의 신용등급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추었습니다. 재정적자를 타개할 방법이 없고, 하토야마 민주당 정책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유로 제시했습니다. 2월 말에 무디스도 일본 국가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이제 한국 이야기로 가보겠습니다. 2009년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추월했습니다. 국내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했고, 일본 기업들은 수익 악화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2009년 3∙4분기의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소니, 파나소닉, 히타치 등 일본 경쟁사 9곳의 이익을 다 합친 것 보다 2배 이상 되었습니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6개를 거머쥐면서 종합5위로 선전했습니다. 일본은 은메달 3개에 그치면서 종합 20위로 몰락했습니다.

2월 말 파이낸셜 타임즈는 “한국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습니다.

일본에서 한국을 배우자는 열기가 뜨겁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습니다. 3월 초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세계에서 약진하는 한국 기업을 배우자’는 제목의 대형 사설을 실었습니다. 일본 제품을 모방하면서 시작한 한국의 기업들이 이제는 가격과 품질 면에서 일본을 능가했다고 탄식했습니다. 3월 말 일본 정부는 경제산업성 산하에 한국실을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한국의 일부 언론은 '한일경제역전론’을 내세우면서 한국이 곧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물론 숙적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그에 맞춰서 일본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지나칠 정도로 함께 내보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많이 들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983년 미쓰비시 연구소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5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세계적인 컨설턴트로 평가받는 오마에 겐이치는 한국의 외환위기 당시 '한국이 일어설 수 없는 이유’라는 글을 썼습니다. 결론적으로 일본은 한국을 과소평가 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경제는 점점 어려워 질 것으로 보이고, 한국은 일본을 여러 방면에서 앞서가는 듯 보이니, 이제는 한국이 일본을 과소평가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듭니다.

“우리가 일본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단단히 준비하고 긴장해야 한다.”

3월 22일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일본이 지금은 주춤거리고 있지만 강력한 자본력과 외교력을 앞세워 한국을 견제대상으로 부각시킬 경우 한국의 산업과 경제는 심각한 시련에 봉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일본의 재정적자의 문제를 보면 국채의 90%이상이 국내에 있습니다. 모두 엔화표시 채무여서 해외로 자금이탈의 충격이 없습니다. 140조엔에 이르는 가계자산도 정부로 하여금 국채를 새로 발행할 수 있게 해줍니다. 해외자산도 상당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이자수익도 많습니다. 이런 수익이 경상수지의 70%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리스크가 보다 심화될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2009년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에 속한 일본 기업은 한국의 14개보다 5배나 많은 68개입니다. 2007년 세계 연구개발 투자 상위 1250대 기업 중 일본기업은 220개나 됩니다. 한국은 21개입니다. 또한 한국의 전체 R&D 규모는 일본의 20%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사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일본은 한국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은 수십 년간 일본을 모델로 쉼 없이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일본은 잘 나갈 때 자만하고 경직되었습니다. 지금 잘 나가는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요?

현재 한국의 국가채무 증가속도는 일본보다 빠릅니다. 한국은 1997년 60조원이었던 국가채무가 2009년 말에는 361조원으로 6배 이상이 되었습니다. 과거 일본의 국가채무 증가속도도 따라잡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령화 속도도 따라잡고 있습니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어 노인인구가 많아지는 반면 출산률이 낮아져서 젊은 인구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인구가 줄어들면 구매력 저하로 시장이 위축됩니다. 생산과 소비 모두가 위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은 90년대 초부터 젊은 인구가 줄어들고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시작된 것입니다. 어느덧 '잃어버린 10년’이 '잃어버린 20년’으로 변해가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경기 침체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2015년 정도에 한국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되면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사회, 경제 등 여러 부분에서 한국의 현재 모습은 일본의 예전 모습과 닮은 면이 많습니다.

한국이 지금 위기의식을 갖고 미래에 대한 준비에 매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일본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도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일본처럼 이렇게 하면 '잃어버린 시간’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본기업도 한국기업에게 지금 단계에서 주의해야 할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계 자동차 시장의 2위 그룹이었던 도요타가 2007년 GM을 누르고 1등의 위치에 오른 순간 그들은 어떻게 행동했는지 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등의 영예에 자만해서 가야할 길을 잃어버린 결과가 어떠했는지 모두가 보았습니다. 자만심에 빠져 긴장을 놓는다면 지금 잘 나가는 삼성이나 현대자동차가 뒤쳐지는 것이 순식간입니다.

“일본은 헝그리 정신을 잊어버렸다. 이대로라면 일본은 망한다. 도요타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2001년 도요타 오쿠다 히로시 회장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 기업이 무너진다. 삼성이 어찌 될지 모른다. 10년 안에 삼성이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이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 - 2010년 삼성 이건희 회장

한국은 일본에서 배울 점이 아직 많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 관해서 철저히 연구하고 대처해야 합니다.

Posted by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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