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건 사안의 개요
최근 그 동안 세간의 관심을 끌어왔던 소위 키코소송의 본안 1심 판결(2008가합108359)이 내려졌다. 원고는 중장비 등을 수출하는 상장법인으로서 수출대금을 미화로 수령함에 따라 발생하는 환위험을 헤지하기 위해 은행인 피고와 다양한 형태의 장외파생계약을 체결하였다.
수출기업이 환헤지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수출대금을 외화대금으로 수령할 때 환율이 하락하여 원화표시 매출액이 감소할 리스크를 우려하기 때문
그리고 이 계약들은 대체로 수출기업이 만기시 은행에 대해 일정환율(계약환율)에 일정금액(계약금액)의 외화를 매도할 수 있는 권리(풋옵션)를 은행으로부터 매수하고, 은행은 수출기업에 대해 계약환율에 계약금액에 해당하는 외화를 매수할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수출기업으로부터 매수하되, 수출기업의 풋옵션은 특정환율(낙아웃환율) 이하에서 소멸하고 은행의 콜옵션은 특정환율(낙인환율) 이상일 경우에만 발생하며, 콜옵션의 계약금액을 풋옵션의 계약금액의 배수(레버리지)로 하는 구조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수출기업이 환헤지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수출대금을 외화대금으로 수령할 때 환율이 하락하여 원화표시 매출액이 감소할 리스크를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본건의 경우도 원-달러 환율이 비교적 낮았고 스왑마진도 마이너스여서 시장의 대체적인 전망이 환율하락이었던 때 체결된 것이다.
해당 계약은 사기, 착오로 인한 계약 또는 신의성실 원칙 위반의 계약으로서 무효이고 피고는 이러한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를 원고에게 배상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
그런데, 2008년 하반기 예상치 못한 세계적 금융위기가 닥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원-달러 환율은 예측과 달리 급등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피고의 원고에 대한 콜옵션이 낙인(Knock-in)되어 피고는 원고에 대해 이에 상응하는 대금의 결제를 요구하였으나 원고는 이에 불응하며 본건 장외파생계약이 '환율이 낙아웃 환율 이하로 하락할 때에는 원고의 손실을 제한하는 아무런 기능이 없는 대신, 낙인 환율 이상으로 상승하는 경우에는 원고에게 무제한의 손실을 초래하게 하므로 구조적으로 수출기업의 환헤지에 적합하지 않은 상품’으로서 고객인 수출기업에게 적합한 금융상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적합성 원칙 위반), 이러한 점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판매하였으므로(설명의무 위반) 해당 계약은 사기, 착오로 인한 계약 또는 신의성실 원칙 위반의 계약으로서 무효이고 피고는 이러한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를 원고에게 배상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2. 본건 판결의 쟁점과 내용
먼저, 본건 상품구조가 과연 환헤지를 하고자 하는 수출기업에게 구조적으로 부적합한 것인지 여부가 문제일 것이다. 사실, 본건과 같은 키코가 수출기업의 환헤지에 부적합한 것이 아니라면, '사기, 착오에 의한 계약으로서 무효’라는 원고의 주장이나,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위반’이라는 원고의 주장은 그 근거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될 것이므로, 본건 키코가 환헤지에 구조적으로 부적합한지 여부가 본건에 있어서 핵심적인 문제일 것이다.
당시 수출기업들은 계약환율을 높여 적정한 이윤을 확보할 목적, 또는 제한된 구간에서 환율상승으로 인한 환차익을 누리기 위한 목적으로 단순선물환계약의 구조에 낙인, 낙아웃, 레버리지 등의 조건을 부가한 것
단순선물환계약의 경우, 예상되는 현물포지션에 부합하는 계약금액에 계약을 체결하기만 하면 환위험을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선물환계약은 체결 당시 선물환율이 현물환율보다 낮거나 할 경우 계약환율이 수출기업의 적정이윤을 위한 목표환율에 미치지 못하여 손실을 조기에 확정하는 문제가 있고, 또한 환위험 헤지의 대가로 환차익의 가능성도 사라지게 하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당시 수출기업들은 계약환율을 높여 적정한 이윤을 확보할 목적, 또는 제한된 구간에서 환율상승으로 인한 환차익을 누리기 위한 목적으로 단순선물환계약의 구조에 낙인, 낙아웃, 레버리지 등의 조건을 부가한 것이다. 즉, 발생확률이 낮은 특정구간(낙아웃환율 이하)에서의 환헤지를 포기하고 레버리지를 이용함에 의해 계약환율을 높이고, 특정구간(계약환율부터 낙인환율 사이)에서는 오히려 환율상승으로 인한 환차익을 누릴 수 있게 한 것이다.
결국, 키코의 수익구조 그래프는 좌우비대칭(환율상승시 파생계약으로 인한 손실가능성은 열려 있는 반면, 이로 인한 이익의 상한은 낙아웃환율에 의해 제한됨)이기는 하나, 이러한 좌우비대칭은 위와 같은 수출기업의 수요를 반영한 것이고 또한 외관상의 좌우비대칭은 이론적인 가능성이 표현된 것으로서 당해 계약으로부터의 이익/손실의 현실적인 가능성은 체결 당시 예상환율의 확률분포를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 키코가 구조적으로 환헤지에 부적합한 상품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확률이 낮은 구간의 위험을 부담하는 대가로 확률이 높은 구간인 낙아웃환율부터 낙인환율 사이의 구간에서 행사환율을 높여 통화선도거래에 비해 추가수익을 올릴 수 있는 통화옵션상품’...본건 상품이 수출기업의 환헤지에 구조적으로 부적합한 상품이라는 원고의 주장을 적절히 배척
본건 판례도 키코에 대해 '확률이 낮은 구간의 위험을 부담하는 대가로 확률이 높은 구간인 낙아웃환율부터 낙인환율 사이의 구간에서 행사환율을 높여 통화선도거래에 비해 추가수익을 올릴 수 있는 통화옵션상품’이라는 취지로 판시하여 본건 상품이 수출기업의 환헤지에 구조적으로 부적합한 상품이라는 원고의 주장을 적절히 배척하였다.
한편, 수출기업은 현물포지션으로부터 발생하는 환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해 파생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므로 환율상승으로 인해 발생하는 원고의 파생계약평가손실은 원고가 보유한(보유할) 현물포지션에서 발생하는 환차익과 상쇄될 것이므로, 원고가 이러한 환차익을 고려하지 않고 파생평가손실만을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도 법원은 '환율이 상승하는 경우에도 수출대금인 외화현물로 인하여 얻을 수 있는 환차익으로 통화옵션계약으로 인한 손실을 상쇄시킬 수 있다’, '원고가 주장하는 손실은 통화옵션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면 누릴 수 있었던 환차익을 얻지 못하는 결과, 즉 기회이익의 상실에 해당할 뿐’이라고 하여 원고의 주장을 적절히 배척하였다.
결국, 본건과 같은 경우 기업의 계속을 위해 적절한 이윤을 확보해야 하는 수출기업의 입장에서 이를 달성하기 위한 목표환율보다 단순선물환거래의 계약환율이 낮을 경우 계약환율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레버리지를 사용한 결과 오버헤지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게 되고, 이러한 경우 환율상승으로 인한 파생평가손을 현물로부터의 환차익이 상쇄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나, 이는 키코상품의 구조적 불공정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계약체결 당시의 선물환시장의 상황과 수출기업의 내부적인 상황, 그리고 예상치 못한 환율급등이 결합하여 결과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법원은 원고가 그 동안 다양한 형태의 통화옵션계약을 체결하고 이에 따른 이행을 한 경험이 있다는 점을 들어 원고가 스스로 적합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적합성 원칙위반이라는 원고의 주장을 적절히 배척
이와 같이 본다면, 키코가 수출기업에 부적합한 상품임에도 은행이 투자권유를 하였다는 주장은 그 근거를 잃을 것이다. 또한, 설사 키코가 부적합한 상품이라 하더라도 오랫동안 수출거래와 환헤지 거래를 해 온 상장법인과 은행 간의 거래에 적합성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도 문제일 것이다. 적합성의 원칙은 자본시장법에 의해 도입된 것으로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문제되는 금융투자업자와 일반투자자 간의 거래에 적용되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법원은 원고가 그 동안 다양한 형태의 통화옵션계약을 체결하고 이에 따른 이행을 한 경험이 있다는 점을 들어 원고가 스스로 적합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적합성 원칙위반이라는 원고의 주장을 적절히 배척하였다.
원고는 또한 피고의 설명의무위반을 주장하였는데, 이 역시 자본시장법에 의해 명시적으로 도입된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금융투자업자가 일반투자자에 대해 부담하는 의무이다. 동법에 의해 설명의무가 도입되기 전에도 우리 판례는 금융기관의 일반투자자에 대한 투자상품의 판매에 있어서 설명의무가 있음을 판시한 바 있다. 본건의 경우, 계약체결 당시 수출을 하는 주권상장법인인 원고에 대해 과연 은행이 설명의무를 부담하는지 여부가 문제될 수 있을 것이다. 설명의무 역시 정보의 비대칭성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서 원칙적으로 금융기관과 일반투자자 간의 거래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원은 본건에 대해 피고가 원고에게 설명의무를 부담함을 전제로 여러 증거를 들어 설명의무를 다하였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법원이 본건과 같은 거래에 대해 은행이 수출기업에 대해 설명의무를 부담하는지 여부에 대해 명시적인 판단을 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자본시장법은 주권상장법인을 투자자보호 관련 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는 전문투자자로 분류하면서 장외파생거래에 관해서만은 주권상장법인이 명시적으로 전문투자자로 대우받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이상 설명의무를 비롯한 투자자보호 조항의 적용을 받는 일반투자자로 간주하여 입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 상태이다.
법원은 본건에 대해 피고가 원고에게 설명의무를 부담함을 전제로 여러 증거를 들어 설명의무를 다하였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법원이 본건과 같은 거래에 대해 은행이 수출기업에 대해 설명의무를 부담하는지 여부에 대해 명시적인 판단을 하지 않은 점은 아쉬움
한편, 법원은 본건 거래가 이전 파생거래의 손실금과 본건 거래의 옵션프레미엄을 상계하는 방식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이유로 본건이 외국환거래규정상 '기존거래를 변경, 취소 또는 종료하면서 발생한 손익을 신규 거래 가격에 반영하는 행위(Historical Rate Rollover: HRR)’에 해당하므로 이를 사전 신고하지 않은 것은 외국환거래법 위반이라는 주장을 하였는데, 법원은 이에 대해 이와 같은 거래는 사전 신고를 요하는 HRR거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본 쟁점은 키코에 고유한 문제는 아니나 외국환거래규정의 해당 조항의 해석과 관련하여 2차 거래의 프레미엄의 수수가 1차 거래에 관한 손실금과의 상계로 이루어졌다 해도 2차 거래가 시장조건을 적절히 반영한 거래라면 시장을 교란하거나 손실을 은폐하는 거래(off-market transaction)라 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힌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3. 이번 판결의 의미
그 동안 유사사례에 대해 법원은 계약체결 당시 당사자들이 예상한 원-달러 환율의 내재변동성(implied volatility)이 그 후 환율급등으로 인해 변경되었다는 이유로 사정변경을 원인으로 한 해지권을 수출기업에 인정하거나, 은행의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면서 그 범위를 당초 환율의 130%를 초과하는 부분에 관한 것으로 판단하여 결과적으로 130%를 초과하는 부분에 관해 당해 계약의 효력을 부인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법원이 이번 판결을 통해 개별 수출기업의 특수한 사정에 흔들리지 않고,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계약법의 대원칙을 지켜낸 점은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
그런데 이러한 결정들은 장외파생계약이라는 것이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당사자들이 최선을 다한 예측을 토대로 체결하되, 그 이후 실현되는 위험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이 계약에서 약정한 내용대로 분배(allocation)하겠다는 결의가 제도화된 것임을 간과한 온정주의적 결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법원이 이번 판결을 통해, 개별 수출기업의 특수한 사정(영업의 계속을 위해 계약환율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레버리지를 이용한 결과, 환차익으로 커버되지 않는 파생평가손을 입은 사정)에 흔들리지 않고,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계약법의 대원칙을 지켜낸 점은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이수현 /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