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수첩의 광우병 프로그램 판결에서 법원은 보도의 세세한 내용에 다소 과장이나 오해에 기인한 허위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하더라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사실에 부합한다면 허위보도로 볼 수 없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PD수첩의 방영내용은 세세한 부분에서의 오류, 전체적인 맥락에서의 사실과는 결코 부합되지 않는다. 결코 단순한 실수이거나 우연이 아닌 고의적 사실 왜곡과 과장, 증거조작을 통해 의도적으로 '미국소는 미친소’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이렇듯 국민의 상식과 법리에도 어긋나는 판결이 나온 이유는 법관이 개인적 양심과 법관으로서의 양심을 혼동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해결책이 모색되고 있지만, 건전한 상식과 균형감각을 갖춘 법률가를 법관으로 임용하는 경력법관제 도입이 필요하다.
1. 판결의 문제점
용산사건의 재정신청재판에서 수사기록을 공개한 일, 전교조 교사의 시국선언에 대한 무죄판결, 강기갑 의원에 대한 무죄판결에 이어 피디수첩 광우병 프로그램에 대하여 무죄판결이 선고되었다. 어느 하나 놀랍지 않은 것이 없지만 최근의 피디수첩판결을 살펴보자.
법원은 보도의 세세한 내용에 다소 과장이나 오해에 기인한 허위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하더라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사실에 부합한다면 허위보도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 과연 피디수첩 프로그램이 세세한 부분에서는 오류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사실에 부합할까?
(1) 다우너(downer)소 영상
방송은 광우병에 관하여 보도하면서 휴메인 소사이어티가 동물학대를 고발할 목적으로 촬영한 다우너소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이 주저앉는 소들이 광우병에 걸린 소로 의심됨에도 도축된 것처럼 보여주었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이 "젖소가 도축됐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거예요"라고 한 말을 "이런 소가 도축됐다고 생각하지 못할 거예요"로 자막을 내보내 발언 내용을 고치고, 진행자는 다우너소를 가리켜 "아까 그 광우병 걸린 소"라고 말해 다우너소가 광우병소인 것처럼 보도했다.
이에 대하여 판사는 "소가 주저앉는 이유는 수십 가지 있고, 미국이 1997년 사료금지 조치 이후에 태어난 소에서는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되지 아니하였다는 사정만으로는 이 사건 동영상 속에 등장하는 다우너소들이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단정할 수 없고, 따라서 피고인들이 동영상 속에 등장하는 소들을 '광우병 의심소'라고 보도하였다고 하여 이를 허위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이 동영상은 처음부터 광우병 의심소를 찍은 것이 아니고, 이 동영상 속의 소들이 광우병으로 의심되는 소도 아니다. 그 소 중에 광우병에 걸린 소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 그 소들은 광우병과 무관한 소들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이 "젖소가 도축됐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거예요"라고 한 말을 "이런 소가 도축됐다고 생각하지 못할 거예요"로 자막을 내보내 발언 내용을 고치고, 진행자는 다우너소를 가리켜 "아까 그 광우병 걸린 소"라고 말해 다우너소가 광우병소인 것처럼 보도
그럼에도 피디수첩은 시청자로 하여금 이 동영상 속의 소들이 광우병에 걸린 것일지도 모르는데 무차별 도축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도록 영상을 배치하고 "젖소 -> 이런 소"로 인터뷰의 내용을 조작하고, 나아가 진행자는 “아까 그 광우병 걸린 소”라고 불렀다.
광우병 증세를 보이고 있는 소를 찍은 영상이 아닌 영상을 보여주면서 광우병의 증세를 설명할 경우에는 "이 영상은 광우병에 걸린 소를 찍은 영상이 아니다"는 안내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안내를 하기는커녕 "저런 소"니 “아까 그 광우병 걸린 소"라고 불러 시청자의 오해를 유도했다.
이런 보도가 시청자를 속인 게 아니라면 어떤 경우에 속인 것으로 인정될까? 그리고 미국에서 마치 광우병에 의심되는 소를 무차별로 도축하는 듯이 보도한 것이 세세한 부분에 불과할까?
(2) 아레사 빈슨의 사인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딸의 병명을 가리킨 "a variant of CJD"를 인간광우병(vCJD)으로 번역한 것이 정확한지 아니면 "광우병 변종에 대한 통칭"이므로 부정확한지 여부는 논란이 있으니 논하지 않겠다.
다만, 광우병으로 죽은 것으로 의심받은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의 발언에 대한 번역만 보아도 허위보도 여부는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
*빈슨의 어머니: this disease (that) my daughter could possibly"
의 미: 우리 딸이 걸렸을지도 모를 병
방송자막: 우리 딸이 걸렸던 병
*빈슨의 어머니: If she contracted it, how did she
의 미: "아레사가 만약 인간광우병에 걸린 게 사실이라면 어떻게 걸렸는지 모르겠어 요"
방송자막: "아레사가 어떻게 인간광우병에 걸렸는지 모르겠어요"
*버지니아주 보건당국 문서: VIRGINIA DEPARTMENT OF HEALTH INVESTIGATES ILLNESS OF PORTSMOUTH WOMAN
의 미: 버지니아 보건당국의 포트머쓰 여인의 병에 대한 조사
방송 자막: 보건당국자료 vCJD 사망자 조사
위의 것들은 오역을 할 만한 내용이 아니다. 빈슨의 어머니는 딸이 인간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만을 염두에 두고 설명하고 있는데, 제작진은 한결같이 인간광우병에 걸린 것으로 확신한 것처럼 번역했다. 실수일 수가 없다.
더욱이 미국에서 인간광우병은 아레사 빈슨의 사인 중의 하나로 지목되었지만 유일한 사인으로 의심받았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피디수첩 프로그램이 방송된 2008.4.29. 당시에는 인간광우병 보다는 다른 사인에 더 무게가 주어졌다. 그런데 피디수첩은 오로지 인간광우병이 마치 유일한 사인 후보인 것처럼 보도하면서 위와 같이 '오역’까지 했던 것이다.
빈슨의 어머니는 딸이 인간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만을 염두에 두고 설명하고 있는데, 제작진은 한결같이 인간광우병에 걸린 것으로 확신한 것처럼 번역
판결문은 "위에서 인정한 아레사 빈슨 관련 보도내용 전부를 보통의 주의를 기울이고 시청하는 시청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고려해 보면, 이 부분 아레사 빈슨 관련 보도 내용의 의미는 '아레사 빈슨이 MRI검사결과 인간광우병 의심 진단을 받고 사망하였고 현재 보건당국에서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글쎄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이고 보더라도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시청자로서는 아레사 빈슨은 거의 틀림없이 인간광우병에 걸려 죽은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3) MM형 유전자
법원은 피디수첩은 “한국인의 94%는 MM형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지금까지 인간광우병이 발병한 사람은 모두가 메티오닌 MM형이었으므로 한국인이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섭취할 경우 인간광우병이 발병할 확률이 약 94% 된다”고 단정했다.
전문가들은 발병은 유전자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요인이 있기 때문에 MM형유전자로 감염확률을 단정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문제는 매우 전문적인 판단이므로 피디수첩팀으로서는 당연히 전문가에게 확인했어야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과연 그럴까? 전문가들은 발병은 유전자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요인이 있기 때문에 MM형유전자로 감염확률을 단정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문제는 매우 전문적인 판단이므로 피디수첩팀으로서는 당연히 전문가에게 확인했어야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게 단순한 실수나 오해일까? 왜 오역이나 오해가 모두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증대시키는 방향일까?
(4) 소결
피디수첩은 광우병과 무관한 다우너소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마치 미국 도축업자들이 광우병으로 주저앉는 것으로 의심되는 소를 마구 도살하는 것처럼 시청자들이 믿도록 유도했고(정보왜곡),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나 관련자들의 인터뷰를 '오역’했고(증거조작), 아레사 빈슨의 사인으로 거론되는 여러 병명 중 오직 인간광우병만 소개하고(증거의 편파적 선택), MM형 유전자에 관해서는 말도 안 되는 논리적 비약을 했다(사실확인 소홀 및 위험성 과장).
그런데 이와 같은 정보왜곡, 증거조작, 증거의 편파적 선택, 그리고 과장이 모두 하나의 방향으로 향했다. 그것은 거칠게 말하면, '미국소는 광우병(미친)소이므로 먹으면 죽는다’는 메시지다. 이렇게 한 방향으로 향한 것은 실수이거나 우연의 결과일 수 없다. 고의적으로 사실(fact)을 외면한 것이다.
다른 정보 없이 피디수첩의 광우병 프로그램을 시청한 후, '미국소는 광우병(미친소)이므로 먹으면 죽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와 같은 정보왜곡, 증거조작, 증거의 편파적 선택, 그리고 과장이 모두 하나의 방향으로 향했다. 그것은 거칠게 말하면, '미국소는 광우병(미친)소이므로 먹으면 죽는다’는 메시지다
그런데 판사는 미국산 쇠고기에 광우병 위험이 있다고 의심할 만한 객관적인 근거가 있었으므로 그 의심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제시된 근거가 비록 사실이 아니더라도 허위보도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판사가 기사작성의 기본원칙을 모른다 한들 허위보도에 대하여 이렇게 관대할 수 있을까? 무죄라고 속칭 삘(feel)받은 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명백한 오판이고, 오판을 넘어 작심하고 무죄를 선고한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2. 무죄 사태의 원인
왜 이렇게 국민의 상식에도 맞지 않고 법리와도 어긋날 판결이 나온 것일까? 법관이 개인적 양심과 법관으로서의 양심을 혼동하였기 때문이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많은 법관들이 여기서 말하는 양심을 오해한다. 여기서 말하는 양심은 법률가, 법관으로서의 양심이다. 이는 전문가적인 직업적인 양심으로서 개인적 양심과는 구별된다.
--법관이 개인적 양심과 법관으로서의 양심을 혼동하였기 때문
두 양심이 때로는 충돌하기도 한다. 어느 법관이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고 하자. 이 법관이 종교적인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피고인에 대한 형사재판을 맡게 될 경우 개인적 양심과 법관으로서의 양심이 충돌한다. 개인적 양심으로는 처벌해서는 안 되지만, 우리 현행법상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이 규정이 합헌이라 하므로 법관의 양심으로는 처벌해야 한다.
이렇게 두 양심이 충돌할 경우 법관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법관의 양심을 우선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해야 한다. 개인적 양심보다는 법관으로서의 양심을 우선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확신이 틀렸다 하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 다만, 그 개인적인 소신을 앞세운 나머지 공정·객관적인 재판을 하지 않고 무죄를 선고하였으니 문제
만약, 법관이 도저히 개인적 양심을 저버릴 수 없다면? 그 재판을 회피하든가 사직하는 수밖에 없다. 개인적인 양심을 앞세워 무죄를 선고해서는 안 된다.
피디수첩 사건 재판을 한 판사는 아마도 피디수첩은 정부의 졸속협상을 비판하고, 그로 인한 미국산쇠고기의 위험성을 경고한 프로그램이므로 비록 오류가 있더라도 처벌되어서는 안 된다는 개인적인 확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개인적인 확신이 틀렸다 하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 다만, 그 개인적인 소신을 앞세운 나머지 공정·객관적인 재판을 하지 않고 무죄를 선고하였으니 문제인 것이다.
3. 해결책
상식을 벗어난 일련의 무죄판결에 대하여 대법원이 10년 이상의 경력자에게 형사단독을 맡긴다든가 재정합의제(단독판사 3인에 의한 재판)를 활성화한다는 등의 방책을 내 놓았다. 지금 당장 실현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법관의 자질과 품성에 있고, 그 원인은 시험성적으로 법관을 임용하는 임용제도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하여 경험이 일천한 법관을 형사단독을 맡긴 상황, 우리법연구회를 감싸고 나아가 그 회원들을 중용한 대법원장의 책임, 작년 신영철 대법관파동으로 법원장의 행정통제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사태발생의 한 원인임은 분명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법관의 자질과 품성에 있고, 그 원인은 시험성적으로 법관을 임용하는 임용제도에 있다.
현행과 같이 시험성적에 따라 법관을 임용하고 임용된 후에는 도제시스템으로 훈련받는 관료법관제도에서는 법관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건전한 상식과 균형감각을 갖춘 법관만 선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해결책은 경력법관제다. 경력법관제는 법률가의 자격을 취득하여 각 분야(변호사, 검사, 행정부 등)에서 법률전문가로 활동하는 경력자 중 법관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평가받는 법률가를 법관으로 임용하는 제도다. 법관임용의 가장 중요한 조건을 건전한 상식과 균형감각에 둔다면 그러한 자질을 갖춘 법관을 뽑게 된다. 미국이 채택하고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로스쿨이 도입되어 경력법관제 도입을 피할 수 없지만 차제에 도입을 앞당길 필요가 있겠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경력법관제다. 경력법관제는 법률가의 자격을 취득하여 각 분야(변호사, 검사, 행정부 등)에서 법률전문가로 활동하는 경력자 중 법관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평가받는 법률가를 법관으로 임용하는 제도
판사에 따라 보는 눈이 다를 수 있다. 아니 다른 것이 당연하다. 판사가 완벽할 수는 없으므로 오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상급심이 있을 터이다. 따라서 자신이 믿고 있는 바와 다르다고,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는다고 법원판결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특히, 해당 판사의 집에 찾아가 시위를 한다든가 대법원장의 퇴임을 요구하면서 계란을 던지는 행위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이는 여론으로 법원을 압박하는 것으로 법관에 대한 독립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판결에 대한 법리적 비판과는 구별된다. 이러한 비판은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지 않기에 허용됨은 물론 사법발전에 도움이 된다.
이번의 무죄판결 사태를 계기로 법관들이 개인적인 양심과 법관으로서의 양심에 대한 구별을 명확히 하고, 대법원이 단기적으로는 단독판사의 경력을 높이는 쪽으로, 장기적으로 경력법관제를 채택하여 제도 개선에 나섬으로써 차후 이와 같은 비상식적인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뜻을 모아 발전의 계기로 삼는다면 대한민국의 선진화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재교 / 변호사, 공정언론시민연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