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정부가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을 발표하자 전교조 등은 공교육 포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자율화 조치로 인해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교육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진정한 자율화를 위해서는 교육청 단위가 아니라 학교 단위에서 자율성을 가지고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이번 조치의 성공여부는 국민들이 자유와 자율의 가치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느냐에 달려 있다. |
지난 4월 15일 교육과학기술부는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지방교육자치를 내실화하기 위한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을 발표하였다. 이 발표에 따르면 그동안 단위학교의 자율성을 저해해온 29개 지침을 즉각 폐지하고, 규제성 법률 13개 조항을 6월 중 대폭 정비하고, 당장 폐지할 경우 공교육에 미치는 파장이 크고 현장의 수용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거나, 관계부처와 협의ㆍ조정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법령ㆍ지침은 7월 이후 단계적으로 개선 방안을 마련하여 추진된다. 계획을 3단계로 나누어 추진함으로써 자율화의 충격과 혼란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번 계획은 “교육 관련 규제를 철폐하여 교육의 자율과 자치의 밑바탕을 마련하고 학교 교육의 다양화를 유도”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 방향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가 시ㆍ도교육청 담당자, 현장 교원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 마련한 것이다. 전적으로 이번 계획안은 지난 10년 정권의 청산 결과로 얻은 선물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추진되는 자율화 과제는 (1) 학교 운영에 관한 사항은 학교가 결정한다. (2) 초ㆍ중등 교육에 관한 교육감 권한과 책임을 강화한다. (3) 교육과학기술부는 국가수준의 기준 설정과 합리적 보완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학교의 교육과정ㆍ학사 운영의 자율성이 대폭 확대됨으로써 학교장의 권한과 책무가 확대되었으며, 지역 교육청이 초ㆍ중등교육에 관한 일차적ㆍ최종적 책임기관으로 격상됨으로써 교육감의 권한과 책무도 확대되었다.
발표가 나오자마자 환영과 우려, 찬성과 반대가 엇갈렸다. 강력한 힘을 가진 일부 단체는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며 철회될 때까지 국민과 더불어 강력히 대응할 것을 천명하고 나섰다. 이것은 갓 태어난 이 추진 계획의 험난한 운명을 예고하고 있다. 자율화 추진 계획의 기본 정신과 방향에는 동의하면서도 우리 교육의 현실을 감안하여 이 정책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민주화가 아닌 교육자율화
전교조는 기자 회견을 열어 “정부는 졸속적인 ‘4ㆍ15 공교육 포기, 학교 학원화 계획’을 백지화하고, 교육 양극화 해소와 공교육 정상화 대책을 시급히 마련하라!”며 위원장은 1인 시위를 하였다. 뿐만 아니라 참교육 학부모회, 참여연대, 교수노조 등 교육ㆍ시민사회단체들은 긴급 정책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이들은 교육과학기술부의 학교 자율화 정책을 ‘학교 학원화 정책’으로 매도하면서 반대의 기치를 높이 들고 강력 투쟁을 선언하였다. 전교조와 교육ㆍ시민단체의 이러한 행동은 그들의 과거 행적으로 미루어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교육 양극화 해소와 공교육 정상화를 표면적인 명분으로 내세워 온 전교조가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학교 자율화 추진 계획”을 자율화를 가장한 ‘공교육 포기, 학교 학원화 추진 계획’이라고 매도한 것은 그들이 공교육 황폐화의 당사자들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처사에서 나온 행동이다.
[전교조는] 지금 우리 교육이 당면하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가 교육 자율화를 가로막은 교육단체들과 교육을 통제해 온 교육 당국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직까지 인정하지 않고 있다. |
그들은 우리 교육이 당면한 현실에 눈을 감고 좀 더 좋은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려는 정책에 대해서 한결같이 반대의견만 제시해 왔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하다. 그들은 좀 더 나은 학교 만들기에 도움이 될 만한 대부분의 정책에 대해, 학교를 입시전쟁터로 만들고 학교를 학원화하고 교육을 양극화한다는 동일 논리로 반대해 왔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환영하고 있는 이번 자율화 정책에 대해서도 이 정책이 학생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학부모의 사교육비 폭증을 유발하는 무한경쟁 입시 몰입정책이라 매도하고 있다. 자율화 정책이 공교육을 포기하는 정책이라 주장하면서 자율형 사립학교 확대 정책을 폐기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 우리 교육이 당면하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가 교육 자율화를 가로막은 교육단체들과 교육을 통제해 온 교육 당국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직까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이번 자율화 정책이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고 주장하면서 교육감과 교장들만의 자율화가 아니라 공교육을 정상화시킬 교육 주체들의 자율성 확보가 필요하다면서 “교직원회, 학부모회, 학생회가 법제화되어 학교를 진로와 생태, 인성과 학력이 조화로운 희망의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학교 자율이다”라면서 교육 민주화를 외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 민주화가 아니라 교육 자율화라는 사실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대처는 이들의 주장에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정부가 원칙과 일관성을 가지고 자율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좀 더 과감한 자율화가 필요하다.
이번 자율화 조치로 지금 보다는 좀 더 나은 교육이 가능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장의 자율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들이 여러 가지 발표되었다. 오후 7시 이후 보충수업, 학원 강사 방과 후 학교 수업 가능, 초등학교 방과 후 학교 교과 과목 허용, 고등학교의 사설 모의고사 실시, 학교별 정기고사 문항 공개 등 학교에 활력을 일으킬 수 있는 변화들이 당장 가능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조치로 학교 현장에 학원 등 영리업체들이 강좌별로 공개 입찰을 통해 학교의 방과 후 학교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학교 현장에 큰 바람을 몰고 올 수도 있다. 이런 변화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학교의 정규 수업도 활기를 띨 수도 있다. 강좌 선택에 학부모ㆍ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된다면 교육 수요자의 선택이 확대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로 학교 현장에 … 영리업체들이 강좌별로 공개 입찰을 통해 학교의 방과 후 학교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학교 현장에 큰 바람을 몰고 올 수도 있다. 이런 변화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학교의 정규 수업도 활기를 띨 수도 있고 … 교육 수요자의 선택이 확대될 것이다. |
그러나 교육과학기술부의 발표에는 분명하지 못한 구석이 있다. “수업과 일과 운영에 관한 초ㆍ중등교육법상의 학교장 권한을 자율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된다.”는 구절이 있는 것을 보면 위의 결정은 전적으로 단위학교장의 결정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곧 “이러한 조치는 방과 후 학습이나 수준별 이동수업, 학사운영 등에 관한 정부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운영의 책임자인 학교장과 시ㆍ도교육감이 학교와 지역의 실정에 맞게 자율 결정토록 함으로써, 각 학교가 교육과학기술부와 교육청의 직접 통제에서 벗어나 교사와 학부모, 지역인사가 참여하는 학교단위의 자율경영 구조를 갖추어 학교 중심의 실질적인 지방교육자치체제가 정착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러한 구절만 보면 학교 ‘수업과 일과 운영’이 전적으로 학교장의 권한인지, 학교장이 시ㆍ도교육감과 협의하여 결정할 사항인지, 아니면 교사와 학부모, 지역 인사가 참여하는 학교단위의 자율 경영 구조가 결정할 사항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또 “정부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교육과학기술부는 빠지고 정부가 개입하겠다는 것인가? 정부와 교육과학부의 관계는 무엇인가? 애매한 구석이 너무 많다. 자율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인사, 재정, 교육 과정에 대한 언급은 빠져있다. 뿐만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 선택의 자유도 찾아 볼 수 없다. 개선되기는 했지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발표가 지향하는 방향과 목표가 옳음에도 불구하고 전망이 그렇게 밝은 것만은 아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정책 전환이 개별 학교나 시도교육청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정권 교체를 통한 정치적 결단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율의 주체가 되어야 할 개별 학교나 시도교육청이 자율의 소중함을 깨닫고 자율을 주체적으로 사용하려는 의욕과 그렇게 할 능력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경험에 비추어볼 때] 자율화 조치의 성공 여부는 그것이 얼마나 교육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가 아니라 국민들이 자유와 자율의 가치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느냐에 달려 있다. |
우리가 염려하고 있는 것은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학교 자율화 조치’가 실제로 얼마나 잘 시행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자율화 조치가 성공하려면 정부가 일방적으로 자율화를 내릴 것이 아니라 교육 주체들이 자율화를 정부로부터 싸워 빼앗아 왔어야 한다. 정부가 배급하는 자율은 자율이 아니라 변형된 타율에 불과하다. 그동안 위에서 내려온 정부 지침을 묵묵히 수행해 온 교육청이 갑자기 자율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앞선다.
이미 이런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정부가 우수반 편성과 0교시 수업을 교육청과 학교 자율에 맡기겠다고 발표했으나 결정권은 학교가 아니라 교육청이 가지게 되었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울 지역 학교에서는 우수반 편성과 0교시 수업은 금지한다.”고 발표하였다. 학교 단위가 아니라 교육청 단위에서 결정하면 자율화의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성공여부는 국민들에게 달려 있다
따라서 우리는 타율에 길들여진 교육이 정부의 ‘학교 자율화 조치’로 당장 큰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교육청이나 단위 학교가 자율성을 가진다고 해서 당장 교육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타율에서 자율로 넘어가려면 많은 혼란과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율’이 산적한 교육 문제를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만능키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단위 학교나 교육청의 신중하지 못한 정책 결정으로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고, 정부에서 ‘자율 효과’라고 말한 것들이 구체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율의 효능을 의심하게 될 수도 있다. 자율적인 학교 운영의 결과로 학부모와 학생의 수업 부담이나 과외비 부담이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자율이 당연히 수반할 수 있는 다양화에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들은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율화 이전이 좋았다는 퇴행적 태도를 취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율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전개되면 자율화에 대한 반대 전선이 힘을 얻어 자율화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시도될 것이다. 반 교육자율화 집단들이 결속하여 자율화의 문제점들을 온 세상에 과장하여 선전할 것이다. 국민 정서에 약한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이러한 상황을 팔짱만 끼고 바라보지는 않을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어디에 있느냐는 비판이 나오면서 교육자율화는 조종(弔鐘)을 울릴 수도 있다.
‘자율’ 자체가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에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자율은 항상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시행된 여러 자율화 정책들이 실패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유와 자율을 으뜸 가치로 여기는 자유주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자율화는 항상 풍전등화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다.
교육과학부가 발표한 이번 자율화 조치의 성공 여부는 그것이 얼마나 교육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가 아니라 국민들이 자유와 자율의 가치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번 조치는 우리 국민들의 자유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판가름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
신중섭 /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2008년 05월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