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인하 투쟁으로 인해 연일 시민단체, 학부모, 대학생들이 길거리로 나서고 있다. 등록금 문제에 관해 너무 상반되는 의견을 가지는 대학 측과 시민단체, 객원기자가 현장을 방문하고 그들의 주장을 면밀히 살펴 보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으로 열린 대규모 집회의 주인공은 대학생이었다. 지난 3월 28일 참여연대 등 전국 540여 개 단체로 구성된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 사회단체 전국 네트워크(등록금 넷)'은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대학 등록금 대책 투쟁 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전국 각지에서 상경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21세기 전국대학생연합(한대련), 전국학생행진 소속 7000여 명의 대학생들이 모였다.

오후 2시부터 진행된 집회는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최근 좀처럼 볼 수 없는 대규모 학생 집회에 경찰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예정된 거리행진에서 학생들이 대오를 이탈해 시민에 불편을 주는 일이 없도록 미리 행진 진행로를 전경과 경찰버스로 차단했다.

높은등록금에 정부와 여당탓만 하는 시위대

집회가 시작되자 학생들은 '등록금 천만원 이명박 니가 내라', '대학자율화는 등록금 폭등 자율화', '2MB 대학구조정 통폐합 영어공교육 프로젝트반대' 등이 적힌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정부와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 공약인 반값등록금을 이행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4·9총선에서 한나라당을 심판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생을 대표해 연사로 나선 강민욱 한대련 의장(광운대 총학생회장)은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자살하는 대학생도 있는데 이 대통령은 뭐하는 것이냐"고 따지며 "등록금 반값 정책을 약속해 놓고 이제 와서 국민의 세금으로 장학금을 확충할 테니 장학금을 타라고 망발한다. 이 대통령이 부끄럽다. 4.9 총선에 등록금에 신경도 안 쓰는 당에게는 한 표도 줘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등록금 폭등에 대한 분노를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표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학생들의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질타가 끝나자, 치솟는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 개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학부모 대표로 나선 환경미화원 임성훈씨(민주노동조합 서울 성북지부장)는 "매달 야간 월차수당 다 합해 월 140여 만 원을 받는다"며 "1년 일해야 1700여 만 원 인데 1000만 원이 넘는 대학 등록금 얘기를 들으면 서글퍼 말도 안 나온다"고 호소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김남준 변호사는 "새 정부는 교육에 시장원리를 강조하지만 OECD국가들도 등록금에 관해선 자율적이지 않다"며 "일본은 학자금을 정부가 책임지고 지원하고 있으며 영국과 호주는 정부 학생 학부모가 등록금의 1/3씩 소득과 연계해 차등 분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등록금은 물가상승률의 4배씩 오르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대학 등록금을 25%이상 인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4.9 총선에 20대 후보를 대거 내세우며 대학생 표심잡기에 나섰던 민주노동당의 천영세 대표는 반드시 고(高)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해 학생들의 호응을 받았다. 그는 "18대 국회에서 등록금 상한제를 제1법안으로 올리려 한다"며 "청년 학생들의 민노당은 한학기 150만원 상한제로 반드시 대학 등록금을 정복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이에 뒤질세라 진보신당 이덕우 공동대표도 "소득기준으로 하위 10%로는 무상, 20~30%는 반의 반값, 40~60%는 반값 등록금을 골자로 한 서민 맞춤형 등록금을 관철시키겠다"고 말하며 학생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집권한지 한 달 밖에 안 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은 억지스러웠지만 이날 서울시청 광장에 울려 퍼진 이들의 치솟는 등록금에 대한 절박한 호소는 일리가 있어 보였다.

2000년에 연간 평균 477만 원이던 사립대 등록금은 매년 평균 6%가량씩 껑충껑충 뛰어 작년 647만 원까지 치솟았다. 일부 사립대는 7~10%씨 상승해 1000만 원을 가뿐하게 넘었다. 3%~4%대의 소비자물가 인상률을 감안하면 분명 등록금의 상승곡선은 가파르다.

또 대학의 등록금 의존 비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문제의식도 공감가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대학 예산에서 등록금 비율은 국립대 40~50%, 사립대 65~80%에 달해 미국 등 선진국의 30~50%보다 훨씬 높다.

하바드대급 수준을 요하면서 등록금은 낮추라고?

학교 측은 등록금이 너무 높다는 학생들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등록금이 많기로 15위 안에 드는 한 유명 사립대의 예산처에 물었다. 관계자는 "등록금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라 언급하기 곤란하다"면서도 '합리적인 등록금'을 위해선 대학의 재정구조를 파악하는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그는 "대학마다 수입 구조는 천차만별로 다르기 때문에 학생들이 제시한 물가상승률 기준 또는 재정자립도 등으로 등록금이 많다 적다를 논할 수 없다"며 "합리적 등록금을 계산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인 등록금 환원율도 대학이 학생에게 투자하는 것이 당장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아 정확한 잣대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 재정과 재원이 좋지 않은 대학은 등록금을 많이 거둘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손병두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은 11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등록금 문제에 대한 대학의 고민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대학 입장에서는 돈이 중요하다며 "교육의 질을 높이라면서 등록금을 낮추라는 건 이율배반적인 요구"라고 말했다. 손 회장은 국내 대학에 미국 하바드 대학 같은 선진국 수준을 요하지만 국내 대학 등록금은 선진국 수준이 되는지는 의문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또 우리나라 대학이 처한 재정적 구조 때문에 선진국과 비교해 등록금 잣대를 만들기도 힘들다고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 대학은 정부 지원금, 기부금 등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돈이 적기 때문에 등록금 의존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대학들은 그간 국가 예산이 초·중·고에 집중돼온 반면 대학 예산은 해마다 삭감돼 왔다고 말한다. 실제로 교육예산은 GDP의 5%에 이르지만 대학 지원 예산은 0.6%에 불과하다.

재정구조가 다른 선진국과 우리나라 대학의 등록금을 단순 비교하기는 힘들고 또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대학 교육적 측면에서 현재의 등록금이 과하다고 속단하기도 어렵다는 주장이다.

학교와 학생 측 간 등록금을 두고 이해가 충돌하는 이유는 대학이 제공하는 상품이 복잡하고 추상적인 무형의 것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학은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기본 상품으로 한다. 하지만 또한 다른 한편에서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 달리 학문적 가치를 지향하면서 교육의 파생적 가치 증대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존재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에 진출했을 때 무형의 이익을 주는 소위 '학벌'이란 것을 현실적으로 무시하기도 힘들다. 이는 당장 학생이 누리는 혜택이 아니라 미래에 학교 발전과 함께 받는 혜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복잡한 상품의 가격을 따진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미래의 대학생과 현재 대학생의 힘겨루기

문화평론가인 복거일씨는 등록금 문제를 '현재의 대학생과 미래의 대학생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것이 등록금'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위대의 요구는 본질적으로 대학생들이 누리는 혜택을 늘리라는 얘기다. 문제는 그들이 추가로 받을 혜택이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 대학생들의 부담으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대학생들에게 등록금 인하나 동결은 물론 유리하지만 그들이 등록금을 더 내도, 당장 더 낸 만큼 좋은 교육을 받을 수는 없다. 오른 등록금이 더 좋은 교육으로 구체화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미래 대학생들의 이해는 사뭇 다르다. 현재 대학생들의 등록금이 학교를 유지하고 정상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미래의 교육의 질은 낮아질 터이다. 당연히, 미래 대학생들은 손해 본다. 현재 대학생들과 미래 대학생들의 이해가 맞부딪치는 것이다. 미래 대학생들을 대변하는 것은 대학이므로, 대학은 현재 대학생들로부터 되도록 많은 등록금을 거두려 한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등록금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 학교와 학생은 등록금에 대해 상이한 이해를 가지고 있지만 국가 개입을 원한다는 입장은 비슷하다. 학교는 높은 등록금 의존 비율을 국가 비용으로 충당하길 원하고 학생들은 국가가 나서 합리적인 등록금 가격을 국가가 책정하고 집행하길 원한다. 하지만 이런 요구는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다. 재정 쓰임이 천차만별인 대학들을 어떤 잣대로 지원할 근거를 마련할 것이며, 추상적 상품인 교육을 어떻게 합리적 인 가격으로 책정할 것인가. 오히려 정부는 정치적 논리에 의해 휩쓸려 갈 공산이 크다.

시장은 합리적인 가격을 만든다

그래서 일각에선 인위적인 조정으로 합리성을 찾기보다는 시장 경제 구조에 맡기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등록금이 시장의 가격 기구가 아니라 정부의 통제에 의해 결정되는 한, 등록금의 수준은 정치적 힘의 우열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교육도 엄연한 서비스산업의 하나임을 고려한라면 교육시장에도 시장원리가 적절히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일각에서는‘시장은 무자비하다’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지만 이는 자신의 이익만을 주된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오는 오해다. 분명 인위적인 가격조정보다 시장에 의한 가격 결정은 시간이 걸리며 여러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자생적 질서인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행착오를 겪어 형성되는 가격은 현실을 반영하며 합리적이다.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따라 시장은 희소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경쟁력을 강화하게 마련이다.●

강필성 / 객원기자 (freemento@naver.com)

Posted by 자유기업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