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근 5개 연도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분석 자료가 공개됐다. 조선일보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수능 세 영역 평균 합산 성적 상위 30개교 가운데 26개교가 특목고였다. 이를 두고 사교육의 주범인 외고를 완전 폐지하자는 의견과 설립취지에 맞게 개혁하자는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방송 3사 중에는 MBC가 외고 폐지를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MBC, “수능성적공개 문제 있다” vs SBS, “특목고 성적우수” MBC는 12일<학교별 수능성적 순위 공개..논란> 보도를 통해 전국 고등학교의 수능 성적 순위를 공개한 것 자체를 문제 삼으며 “학교 간 격차를 더 벌리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오성삼 건국대 교수 인터뷰를 인용해 "우리 사회의 평판도에 따라 특정 고등학교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수 있다고 우려했으며, 성적공개를 방조한 정부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한편, SBS는 <학교별 수능성적 공개...예상 밖 '사교육 1번지’> 보도에서 성적공개 결과를 상세히 분석했으며, “수능 성적 상위 30개 학교는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 비평준화 고등학교”라고 언급했다. SBS는 특목고와 자사고의 쏠림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일부 언론사의 성적공개 자체에 대해서는 문제시 하지 않았다. KBS는 학교별 수능 점수 공개 논란을 단신으로 처리했다. -외고 개혁 분위기 조성하는 MBC
MBC는 논란이 되고 있는 외고문제를 두고 외고 개혁이 가시화 되고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9일 <여야, '외국어고 개혁’ 공감대> 보도를 통해 “외국어고 입시가 사교육비 폭등의 주범”이라고 지적했으며, 여권핵심부와 여야 모두 이 문제에서만큼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 같은 날, <외고 입시, 사교육 진원지> 보도에서는 “ 외국어 영재 양성의 본래 목적은 이미 사라졌고 외고가 사교육과 양극화를 부추긴다”고 비판하며, “사교육 수요를 줄이기 위해 외고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외고를 개혁해야한다”고 주장했다. 15일 <외국어고, 자율형 사립고 전환 법안 추진>보도에서는 “외고 입시 개혁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있다”며 외고 개혁이 현실화 되고 있는 것과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반면, KBS는 13일 <외고 특별전형 늘려야...사교육 경감 역행>보도를 통해 외고 입시에서 특별전형 선발이 지난해 보다 크게 늘어 사교육비 경감에 역행한다고 비판했다. 15일<외고 변화 '불가피’... 학력격차 해소 되나?> 보도에서는 성균관대 양정호 교수의 인터뷰를 통해 “외고가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봤을 때 외고 문제점은 언젠가는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임을 지적했으나 MBC와는 달리 외고개혁이나 폐지 정책이 가시화 되고 있다는 분석은 없었다. SBS는 <학교별 수능성적 공개...예상 밖 '사교육 1번지’> 보도에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특목고 폐지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진전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짧게 전하며 외국어고 폐지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는 유보했다. <사교육 관련 기사>
|
'외고'에 해당되는 글 3건
- 2009.11.25 외고 개혁 칼날을 든 MBC
- 2009.11.18 외고가 사교육 주범이라는 주장의 허구
- 2009.11.13 외고 폐지? 그런 학교 더 많아야지
외국어고등학교가 사교육의 주범이기 때문에 외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그러나 외고가 사교육의 주범이라는 주장은 인과 관계를 잘못 파악한 인지적 오류에 기인하고 있다. 사실 사교육의 기형적 팽창 원인은 외고 때문이 아니라 학교선택권과 학생선발권을 제한한 평준화정책 때문이다. 평준화 정책으로 인해 다양한 교육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으며, 그 보완책으로 외고 등 특목고가 설립되었다. 그러므로 정작 손을 봐야 할 근본적인 원인은 평준화 정책이다. 설령 외고를 폐지한다하더라도 다양한 교육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사교육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책입안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특수목적고등학교(이하 특목고)의 하나인 외국어고등학교(이하 외고)를 폐지하고 자율고로 전환하는 등 일련의 조치를 담은 법안을 상정하겠다고 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찬반 여론이 각각 비등하지만, 포퓰리즘에 편승하여 이를 지지하는 의견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하긴, 학부모의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현안이 현 정권이 인기를 얻고 있는 서민대책과 꼭 맞아떨어지는 형국이니 정당한 논거를 가지고 설득하고자 한들 그 지지세가 웬만해선 꺾이지 않을 듯하다. 게다가 보도에 따르면,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의원의 상당수가 이를 지지한다고 한다.
인지적 오류에서 비롯된 사교육 주범론
현재 외고에 들어가기 위하여 중학생들이 학원에 다녀야 하고, 또 웬만큼 우수한 성적을 내지 않고는 외고에 입학하기 어려운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편적인 사실이 외고가 사교육의 주범이기 때문에 외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리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이 논법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먼저 외고 폐지의 논거가 잘못되어 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하고, 사교육의 기형적 팽창의 '진짜 원인’이 어디에 있으며, 또 정두언 의원과 이를 지지하는 이들이 드러내고 있는 발상이 얼마나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는지를 검토하도록 하겠다.
정두언 의원과 외고 폐지를 지지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외고 폐지론, 즉 외고가 사교육의 주범이라는 논거가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를 살펴보기 위하여 '원인혼란’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소개된 자카리 쇼어(Zachary Shore)의 「생각의 함정」1) 에는 우리가 저지르는 인지함정(cognition trap)이라고 하는 일종의 인지적 오류가 몇 가지 소개되어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원제목 'blunder’는 사소한 실수를 가리키는 'mistake’와 달리 한 개인의 운명이나 국가사회의 진로를 바꿔놓을 만한 중대한 전기를 제공하는 실수를 일컫는다. 그 중 하나가 '원인혼란’이다. 이 원인혼란은 이번 외고 사태의 본질을 짚어내는 결정적인 개념이다.
원인혼란의 예로, 우울증의 원인이 뇌내 화학물질불균형이라고 보는 견해를 들 수 있다. 여기서 인과관계2) 를 화살표(→)로 표시할 경우,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원인혼란으로 그릇된 도식은 “뇌내 화학물질불균형 → 우울증”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분석하자면 우울증의 도식은 다음과 같이 되어야 옳다. “외부적인 사회경험 → 우울증 → 뇌내 화학물질불균형 현상”.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바와 달리 뇌내 화학물질불균형은 우울증의 원인이 아니라 우울증이 드러난 징후, 즉 우울증이 나타난 결과적 현상이다.
이와 같은 그릇된 원인혼란을 정두언 의원을 비롯한 외고 폐지론자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도식은 매우 단순하다.
“외고 입학 → 사교육조장(팽창)”
사교육이 기형적으로 팽창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외고 입학에 있다고 보는 단견은 우울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원인혼란에 빠져 있다. 이를 교정하여 올바른 인과관계를 보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은 도식이 되어야 한다.
①: “평준화 정책 → 다양한 교육욕구충족 실패 → 사교육 팽창(쏠림)현상”
위의 도식 ①에서 다양한 교육욕구 충족 실패는 현행 획일적인 평준화 정책에서 온 것이고, 그 돌파구가 사교육의 기형적인 의존 심화이다. 물론 도식 ①이 복잡한 요인을 모두 설명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다양한 교육욕구충족 실패의 또 다른 돌파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현행 평준화 정책의 '보완책’으로 나온 특목고의 설립이다. 그러니까 다양한 교육욕구충족 실패의 부분적인 '돌파구’가 외고를 비롯한 특목고 입학인 셈이다. 논의를 위하여 이와 관련한 경로를 표현하면 도식 ②가 된다.
②: “평준화 정책 → 다양한 교육욕구충족 실패 → 외고 등 특목고 설립”
도식 ①과 ②에서 다양한 교육욕구충족 실패가 원인이 되어 드러난 현상이 '사교육의 기형적인 팽창과 의존’, 그리고 '외고 등 특목고 설립’ 두 가지이다. 따라서 도식 ①과 ②를 통해서, '사교육의 기형적인 팽창과 의존’과 '외고 등 특목고 설립’이 인과관계에 있지 않다. 즉 그리고 '외고 등 특목고 입학’이 '사교육의 기형적인 팽창과 의존’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사교육의 기형적인 팽창과 의존’, 그리고 '외고 등 특목고 설립’) 사이에 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상관관계이다. 상관관계를 놓고 한쪽이 원인이 된다고 단정해놓고 그 원인을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제거하겠다는 것은 옳은 처사가 아니다.
사교육 근본적인 원인은 평준화 정책
오히려 '사교육의 기형적인 팽창과 의존’, 그리고 '외고 등 특목고 설립’이라는 두 가지 현상은 한 가지 원인인 '다양한 교육욕구충족 실패’에 의하여 야기된 점을 올바르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중요한 논점은 '다양한 교육욕구충족 실패’의 심인(沈因)이 바로 '평준화 정책’에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작 손을 보아야 할 근본적인 원인은 평준화 정책이다.
모르기는 해도 그릇되게 퍼져있는 좌파 포퓰리즘이 평준화 정책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여기기 때문에 압도적인 지지로 집권한 여당 실세조차도 평준화 정책에 대한 언급조차 못하는 모양이다. 필자가 줄곧 개진해 왔던 평준화 정책의 여러 가지 심각한 폐해를 고려할 때,3) 이제는 좌파 눈치 보지 말고 교육만악(萬惡)의 근원인 평준화 정책을 원인으로 보고 교육을 원상태로 돌려놓으려는 솔직한 자세가 요구된다.
평준화 정책은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선택권과 사립학교의 선발권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정책적으로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정의롭지 못한 정책이다. 이 지구상에 우리처럼 입학전형을 국가권력으로 강제 배정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세계 어느 나라도 '평준화’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1973년 우리가 평준화 정책을 도입할 당시 패러디 했던 일본도 그 폐해를 솔직히 인정하고 현재 단위학교별 전형을 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평준화 정책이라는 근원적인 원인보다는 엉뚱한 곳에서 원인을 찾아 엉뚱하게 자유민주주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방송은 물론 신문 등 여러 매체의 보도 양태가 매우 우려된다.
게다가 이 주장의 선봉에 선 정두언 의원은 지난 10월 20일 밤 KBS 11시 뉴스와 22일 밤 SBS의 나이트 라인(23일 0시 이후 방송)에 직접 출연하여 외고의 '왜곡된(?)’ 교육을 지적하면서 비장한 표정으로 사립학교인 외고의 선발권을 “뺏어 와야 한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대목에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의 선발권과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에 속하는 권리이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한 대한민국 헌법에 의하여 여러 가지 권한과 특권을 누리는 현역 국회의원이 여과 없이 전달되는 지상파 생방송에 나와서 전의에 찬 어투로 외고의 선발권을 박탈하겠다고 한 발언을 어떻게 해석해야 옳은 일인가.
다양한 교육욕구를 충족시키지 않는 한 사교육은 결코 줄지 않아
이 점을 보면, 정두언 의원이 우리나라 우파 정당이라고 하는 한나라당 소속 의원인지 의문이 갈 정도이다. 좌파정당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노동당이나 이념적으로 좌파를 지향하는 이들이 적지 않게 소속된 민주당 의원이라면 어느 정도 수긍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나라당 의원이 사립학교의 학생 선발권을 빼앗아 와야 한다는 말을 공영 방송을 통하여 서슴없이 하는 것을 보면, 집권 한나라당의 정책 이념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정두언 의원처럼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학교선택권과 학생선발권을, 그것도 교육폐해의 원인인 평준화 정책 아래서 그나마 몇몇 안 되는 학교가 행사하고 있는 제한된 선발권마저 박탈하겠다는 발상이 우리 사회에 먹히는 연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워낙 자유와 선택의 가치에 무감각해져서인가, 아니면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실세가 추진하는 '권력’의 위력 때문인가.
정 의원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외고를 '마녀사냥’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마녀’를 '마녀’라고 지칭했을 뿐이라는 단정도 하였다. '마녀사냥’은 성한 사람에게 죄를 덮어씌우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그것도 중세기에나 가능했던 말이다. 이 말은 평준화 체제에서 이런 저런 온갖 제약과 통제 속에서 그나마 우수 인력을 배출하는 외고 교육에 몸담고 있는 교육자를 모독하는 것이다.
교육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는 우수 인재를 육성하는 일이다. 이를 위하여 물건에 명품이 있고, 작품에 걸작이 있듯이, 학교도 명문학교가 있어야 한다. 현행 우리 평준화 체제에서 명문학교가 있기나 한가? 교육당국은 '명문학교’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서열화라는 애매한 말로 얼버무릴 일이 아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의원들은 교육당국이 이러한 역할을 격려하고 수행하지 못하면 질책해야 한다. 그러나 정 의원의 외고 폐지론은 이와 반대로 나가는 것 아닌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사교육의 주범은 외고가 아니다. 더군다나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외고 입학이 사교육의 결정적인 원인도 아니다. 사교육은 현행 평준화 체제가 유지되는 한, 즉 다양한 교육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는 한, 기형적으로 기승을 부릴 것이다. 그러니까 설사 외고를 폐지한다고 하더라도 사교육은 결코 줄지 않는다. 또 주말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정 의원은 아예 외고를 포함한 모든 특목고를 없앨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수 인재 육성, 다양한 교육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사교육은 결코 줄지 않는다. 교육당국과 현 정권 실세들은 이 점을 분명히 새겨야 할 것이다. ■
김정래 / 부산교육대학교 교수
1) 원제목: Blunder: Why Smart People Makes Bad Decisions, 2008(임옥희 역, 서울: 에코의 서재, 2009)
2) 여기서 말하는 '인과관계’는 원인이 결정적인 원인이 작용하여 결과가 나타난다고 보는 결정론적 인과관계가 아니다. 원인은 결과로 보이는 현상(사실)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의미 또는 한 요인이 다른 요인을 드러내는 데 가장 영향력이 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예컨대, 사교육이 외고입학전형의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3) 필자의 근간 예정인 「고혹 평준화 해부」(한국경제연구원 간)에서 평준화 정책의 기원, 내력, 여러 폐해와 대책 및 방안이 종합적으로 소개되어 있으므로 이를 참고할 것.
저자소개: 김정래 교수는 영국 University of Keele 대학원에서 교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부산교육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전교조 비평’, '서양교육사절요’, '고혹 평준화 해부’ 외 다수가 있다.
부실한 공교육을 끌어올릴 생각 아닌
질높은 교육 담보하는 외고 없애 계속 하향평준화하겠다는 것이 문제
'외국어고 폐지’라는 메가톤급 이슈로 사회가 혼란스럽다. 지난 15일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외고를 자율형사립고로 전환, 외고를 사실상 폐지하는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히면서 외고 논란의 불을 댕겼다. 이로부터 정치권을 중심으로 중구난방식의 방안들이 쏟아졌다. 외고를 특성화고, 국제고, 일반고 등으로 전환하자거나, 외고를 유지하며 선발방식을 바꾸자는 안 등이 제기됐다. 여기에 외고를 비롯한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총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목고 입시 설명회 모습 ⓒ네이버 |
정치권에서 외고 폐지를 거론한 것은 외고가 사교육 광풍의 주범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어학영재 육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외고가 명문대 진학 전문고로 변질되면서 외고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외고는 고난도 문제로 학생들을 선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교육에 매달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외고 등 특목고 대비 학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중학교 사교육이 전체 사교육 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외고 폐지가 사교육비 문제의 처방이 될 수 있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외고를 폐지한다고 해서 과연 사교육비 문제가 해소될까. 이는 외고로의 경쟁이 치열한 현실 이면에 작용한 평준화된 공교육 제도를 간과한 해법에 불과하다. 현재 한국에는 20개의 과학고와 30개의 외고가 운영 중에 있다. 전국2000여 고교의 불과 2.5%밖에 되지 않는다. 특목고는 일반고에 비해 더 좋은 교육에의 질을 담보하면서 학생, 학부모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수요는 넘쳐나는데 공급은 적으니 자연히 경쟁이 치열해지고, 어떻게든 특목고 입학을 위한 사교육이 자연스레 성행하게 된 것이다.
좋은 학교, 좋은 대학 등을 향한 학생, 학부모의 강렬한 열망이 존재하고, 공교육은 하향평준화의 늪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상 외고가 없어진다고 해서 사교육도 같이 없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외고가 폐지되면 사람들은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하는 대상을 좇아 다시 자립형사립고나 국제고 등으로 눈을 돌리게 될 것이고 이를 위한 사교육은 새롭게 번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공교육에 회의를 느끼고 유학 등을 택하는 학생들이 증가하게 되면 사교육비는 되레 증가할지 모른다.
외고를 실패한 교육 모델로 단정 지으며 폐지를 주장하는 것도 옳지 않다. 외고가 그동안 우수 학생을 대상으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며 하향평준화를 극복하고 교육 경쟁력을 높여왔던 것은 엄염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외고의 존재는 국내 다른 고교들에 수월성 교육 시스템 경쟁을 유도하는 자극제 역할도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외고만의 경쟁력프로그램 ⓒ조선일보 |
외고에서는 다른 인문계 고교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갖가지 혁신적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학생의 능력을 성장시키고 있다. 미국 대학에서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AP(대학과목 선이수제) 과정이 수도권 상당수 외고에 개설돼 있다. 또한 서울‧경기지역 외고에선 미 아이비리그에 매년 50명에 가까운 학생들을 합격시켜 외국 언론들을 놀라게 했다. 부산외고는 '교원평가’라는 단어가 쓰이기도 전인 2000년에 자체적으로 교원평가를 실시했다. 많은 외고들은 해외 명문고를 찾아 벤치마킹하고 글로벌 수준의 교육 프로그램 등을 도입해 공교육 체계 안에서도 학생, 학부모 모두가 만족할만한 교육을 제공해왔던 것이다.
외고 폐지는 양질의 교육을 원하는 학생, 학부모를 위해서도, 하향평준화된 공교육을 끌어올리기 위한 룰모델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외고 폐지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편법 운영, 사교육 유발 문제 등을 개선해 나가면서 외고가 글로벌 시대의 경쟁력 있는 인재양성이라는 기능을 유지‧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율해 나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한편 현재 외고는 입시전형 상에서 공교육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내 사교육을 받지 않고서는 입학이 힘든 환경을 조성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특목고 학비 및 기타 비용도 사립대학에 버금갈 정도로 비싸다. 이에 따라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특목고 합격과 큰 상관관계를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입학사정관제 도입, 또는 저소득층 자녀의 입학 비율을 확대하는 방식 등도 고려할만하다.
최근 외고들도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해 사교육 유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지를 밝혔다. 대원외고는 2011학년도 입시부터 어려운 영어듣기 시험을 폐지하고 내신과 면접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고 했고, 이화외고도 영어듣기 시험을 폐지하고 '내신+입학사정관제’로 전환하는 방안과 '내신+기본 영어실력(자격시험)’으로 바꾸는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다. 외고 스스로도 노력하고 있는 만큼 정부는 당장 외고를 폐지하는 극단의 처방을 내리기보다 외고의 자율적인 변화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외고 열풍은 외고가 평준화 제도 속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질 높은 교육 욕구를 충족시켜 생긴 자연스런 결과였다. 교육입안자들은 이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따라서 외고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외고와 같은 교육을 어떻게 하면 모든 공교육에 적용시켜 더 많은 학생이 경제적 능력이나 부모의 열의와 관계없이 양질의 교육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외고와 같은 학교가 더욱 늘어나고 다양하고 특색 있는 학교들이 많아져 학생의 학교 선택권이 확대되도록 해야 한다. 교육의 본보기가 되고 있는 외고를 벤치마킹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갈등요소만 없애 결과적으로는 학교의 하향평준화를 유지하겠다는 발상은 그만두었으면 한다.